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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교수: 김세기

제7강 토기와 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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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기

1. 토기의 의의

토기란 흙으로 만든 그릇으로, 고운 점토에 물을 섞어 반죽한 덩어리를 손이나 물레(녹로)로 성형하여 구워낸(燒成)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신석기시대 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용된 모든 용기류를 일컫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세 계적으로는 B.C. 8,000년을 전후하여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인류 는 농경과 목축을 실시하여 생산경제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신석기 시대에 신·구 대륙과 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저장과 관련하여 토기를 발 명, 사용하게 된 것이다.

2. 토기의 성형방법

토기를 만드는 방법으로는 녹로(?? : 물레)로 만드는 방법과 손으로 빚어 만드 는 방법이 있다.

가. 녹로법

물레를 손이나 발로 돌려서 회전력을 이용하여 성형하는 방법이다.

나. 비(非) 녹로법

물레를 쓰지 않고 직접 손으로 성형하는 수법인데 수날법(手捏法), 권상법(卷上

法 ), 윤적법(輪積法)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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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나. 비(非) 녹로법

1) 수날법(手捏法 : 손빚기)

공모양의 점토 반죽을 수제비를 빚듯이 양손으로 늘려가면서 토기 모양을 완 성시키는 수법인데 주로 작은 그릇을 만드는 방법이다.

2) 권상법(卷上法 : 서리기)

점토반죽을 엿가락처럼 길게 늘려서 코일 모양으로 감아올려 제작하는 수법이 다.

3) 윤적법(輪積法 : 테쌓기)

권상법과 제작 요령이 같으나 도너츠 모양의 흙테를 여러 개 쌓아올리고 테와

테 사이를 눌러 메꿔가면서 형태를 잡아가는 수법이다. 물레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B.C. 3,400년 경에 발명되었고 중국에서는 B.C. 1,000년경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기원 전후하여 한식(漢式) 토기가 들어올 때 물

레가 들어왔다. 물레를 발명하기 이전에는 전세계적으로 손으로 토기를 빚어

만들었으며 우리 나라의 신석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B.C. 6,000년부터 기원

전후까지)는 토기를 직접 손으로 빚어 사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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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가. 토기의 소성방법

1) 노천요(露天窯 : 한데가마)

옥외에서 지면의 패인 곳을 이용하거나 구덩이를 파서 장작과 짚을 토기와 포개어 쌓아 굽는 방법으로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노천요는 600℃∼900℃ 이상의 열을 얻 을 수가 없기 때문에 구워낸 토기는 단단하지 못하고(軟質土器) 액체를 담으면 물이 스며 나오며 구울 때 산소의 공급이 원활하기 때문에 산화염(酸化焰)이 되어 표면색이 적갈색 을 띠게 된다.

2) 실요(室窯), 등요(登窯 : 굴가마)

실요와 등요는 같은 폐쇄요(閉鎖窯)인데 등요는 가마를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하여 비스 듬하게 쌓아간 것을 말한다. 폐쇄요이므로 1,000℃ 이상의 고열을 얻을 수 있어 물을 담 아도 스며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토기(硬質土器)가 되는데 구울 때 외부와 공기 소 통이 안 되어 환원염(還元焰)이 되어 표면이 회청색을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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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기

나. 토기의 명칭

토기는 굽는 온도에 의해 토기를 세분하기도 한다.

1) 좁은 의미의 토기(earthenware, 軟質土器)

600℃∼900℃에서 구워진 것으로 물이 스며나오는 토기로, 한국 선사토기의 대명사인 빗 살무늬(櫛文)토기와 민무늬(無文)토기가 여기에 속한다.

2) 경질토기(stoneware, 硬質土器)

1,000℃∼1,200℃에서 구워 내어서 물을 담아도 스며나오지 않는 단단한 토기로, 대표적 인 것으로 가야토기와 신라토기를 들 수 있다.

3) 도자기(porcelain, 陶磁器)

고령토를 태토로 써서 1,300℃ 이상으로 구워낸 것으로, 고려와 조선시대의 청자와 백자 가 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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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5. 토기의 시대적 변천

토기는 시대와 문화적 변천에 따라 신석기시대의 선즐문기(先櫛文期) 토기와 빗살무늬 (櫛文)토기, 청동기시대의 민무늬(無文)토기, 초기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의 와질(瓦質)토 기·연질(軟質)토기·경질(硬質)토기, 삼국시대 토기로 구분할 수 있다.

가. 신석기시대 토기

1) 융기문(隆起文 : 덧무늬)토기

토기의 겉면에 진흙띄를 말아 붙이거나 손끝으로 찝어 눌러 돋게 하여 여러 가지의 무늬를 만든 토기이다. 진흙띄의 폭이 1cm정도인 덧무늬토기와 2∼3mm 정도의 돋은무늬(細線隆起文)토기로 구분되 며 바닥은 대개 납작바닥(平底)이다. 이 토기는 부산, 김해를 중심으 로 남해안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한반도 내부의 내 륙지역에서는 아직 출토되고 있지 않으나, 일본의 규슈지방 및 야 마가다겐(山形縣) 이남의 혼슈지방에서는 출토되고 있어 두 지역간 의 문화 교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 덧무늬토기(부산 영산동)

이 토기는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로 밝혀지고 있으나 두 지역간의 선후 관계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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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2) 빗살무늬토기

토기의 표면에 빗살모양의 무늬가 그려져 있는 토기인데 무 늬의 구성이 선과 점을 배합하여 만들어졌다하여 기하문(幾 何文)토기라고도 하고, 무늬가 있다하여 유문(有文)토기라고 도 한다. 이 토기는 모래흙이나 진흙에 운모, 활석, 석면, 흑 연, 모래 등을 섞어 손빚기(手捏法), 서리기(捲上法), 테쌓기 (輪積法) 등으로 빚어 올려 말린 뒤 노천요에서 섭씨

600℃∼800℃의 온도에서 구운 적갈색 토기이다.

이런 토기는 만주, 시베리아 일원과 독일북부, 핀랜드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에 분포되어 있어 우리 나라의 신석기 문화는 넓게 보 아 북방문화권에 포함됨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한반도에서도 지역과 시기차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 별개의 문화영역(동북, 서북, 중·서부, 남부)으로 구분되고 있다. 빗살무늬토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강가나 해변을 생활근거지로 삼고 고기잡이나 채집을 위주로 생활하 다가 B.C 2,000년 경에는 농경을 실시하게 되어 정착생활로 전환하 게 된다. 따라서 토기가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컸던 것이다.

▲ 빗살무늬토기 - 서울 암사동 출토

▲ 빗살덧무늬토기 -

김해 수가리 출토(부산대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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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나. 청동기시대 토기 - 민무늬(無文)토기

▲ 여러 가지 민무늬토기 ▲ 겹아가리토기 ▲ 붉은간토기 ▲ 구멍무늬토기 ▲ 깊은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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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다. 원삼국시대 토기 - 와질(瓦質)토기

민무늬토기보다 약간 높은 온도(900℃)에서 구운 회색, 회흑색, 흑색, 적갈색의 토기로 질 감과 굳기가 기와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토기는 한식(漢式)토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져 영남지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충청지방에서도 많이 나오고 있 다. 토기의 형태는 재래의 민무늬토기를 본따 만든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한식토기를 모 방한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한계(漢系)의 목기를 본뜬 것도 있다. 와질토기는 집터나 조개 더미 등 생활유적에서 보다는 주로 무덤유적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어서 와질토기 자체 가 청동기시대의 홍도, 채문토기, 흑도 등과 마찬가지로 무덤에 부장하기 위한 특수 목적 의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와질토기는 고식과 신식의 두 단계로 구분된다.

1) 고식 와질토기

계란형의 몸통 위에 밖으로 바라지는 긴 목이 달려 있고 어깨에는 조합식의 쇠뿔형 손잡 이가 달려 있는 조합 우각형 파수부 장경호(組合牛角形 把手附長頸壺 : 쇠뿔잡이 항아리), 양파형 몸통에 짧은 목이 붙어 있는 소형 항아리(甕), 아가리가 밖으로 바라진 포탄형 항 아리와 주머니형 항아리 등이 있다.

2) 신식 와질토기

고식인 주머니형 항아리가 사라지고 굽다리접시(高杯), 굽다리항아리(臺附爐形土器) 등 굽다리 토기가 등장하여 뚜껑이 있고 목이 바로선 형태의 항아리가 일반적인 형태이다.

와질토기는 기원전 3세기 경에 고식이 출현하였으며 기원후 2세기경 신식이 제작되고 기원후 3세기 후반까지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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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기

라. 삼국시대 토기

연질토기도 있으나 대부분이 경질토기들이며 종류가 다종다양하고 많은 양이 출토되고 있다.

1) 고구려

아가리가 크게 벌어지고 손잡이가 네 개달린 항아리(四耳壺), 배부른단지(鼓腹小壺), 깊은바리(深鉢) 등이 대표적인데 대부분 납작밑(平底)이다. 초기(3세기 이전)에는 모 래섞인 태토로 빚은 엷은 갈색계통의 토기와 검은색 토기 등이 있고 단지, 항아리, 잔 등의 형태가 있다. 중기(4∼5세기경)에는 고운 점토질의 바탕흙으로 제작되며 구운 온도가 비교적 높아진다. 색깔은 회색·황갈색을 띠는데 어깨나 몸통 부분에 간단한 줄무늬가 베풀어지기도 한다. 병·독·뚜껑이 있는 대접(有蓋碗), 손잡이 달린잔(把手附 盞), 솥, 화덕 등 종류가 다양해진다. 중국의 한(漢)과 육조의 영향을 받아 황갈색의 유약을 바른 토기가 제작되고 동진(東晋)에서 청자·백자 항아리가 수입된다. 후기(6 세기 이후)에는 토기의 종류가 더욱 다양해져서 생활용구인 벼루, 베개, 호자(虎子) 등이 출토되고 있다.

▲ 나팔항아리

▲ 긴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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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2) 백제

초기에는 원삼국시대의 회청색 경질토기 제작 방법을 바탕으로 낙랑과 고구려의 토기 제작기술을 받아 들여 만들어졌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종류와 형태가 다양해졌는데 삿무늬(繩蓆文)의 보편화, 세발토기, 납작바닥토기(平底土器)의 성행, 특이한 그릇받침(器臺)의 등장 등을 들 수 있다. 태토와 빛깔로 보아 적 갈색 연질토기, 검은색토기, 회청색토기 등으로 나눈다. 적갈색 연질토기는 민무늬 토기처럼 바탕흙이 거칠고 질이 좋지 않으며 화분형 그릇이 많다. 검은색 토기는 그릇의 표면을 잘 갈아 칠흙색의 광택이 난다. 회청색 토기는 경질과 연질의 두 종류가 있는데 연질토기는 백제시대 초기부터 말기까지 오랫동 안 만들어졌으며 삿무늬가 나타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질토기는 백제토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고운 바탕흙을 써서 고온으로 구운 것인데 말기에는 청록색 또는 황갈색의 유약을 씌운 것도 있다. 종류로는 항아리나 단지가 대부분이지만 생활용기인 바리(鉢), 대접, 자배기, 잔, 접시, 합, 시루, 병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초기에는 둥근바닥을 가진 토기가 많이 만들어지고 중기 이후부터는 납작바닥이 주류를 이룬다. 세발토 기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토기이며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용(火葬用)의 뼈단지(骨壺)도 많이 만들어졌다. 이밖에 벼루, 등잔, 변기(便器) 등 특수용기도 있는데 그릇 받침은 의식(儀式)에 썼던 것으로 특징을 이루고 있다.

▲ 유개호, 개배, 장군 - 나주 신촌리

◀ 뚜껑 - 광주 명화동,

삼족토기 – 광주 월계동▶

▲ 병형토기 - 나주 대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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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3) 신라

호청색 경질토기와 적갈색 연질토기가 있다. 가야토기와 같이 원삼국시대의 연질 토기와 와질토기에서 발전된 토기로, 물레를 이용하여 빚고 굴가마 속에서

1,000℃이상의 고온으로 구운 것이다. 종류로는 항아리, 목항아리, 굽다리 목항아

리(有臺長頸壺), 단지, 독, 그릇받침, 잔 등 생활용기와 인물형·동물형 배, 수레, 등

잔 등의 상형(象形)토기가 있다. 신라토기는 처음에는 가야토기와 동일한 형태로

제작되었으나 5세기가 되면 신라 토기의 특징이 뚜렷해져 토기의 색깔이 회색으

로 되고 굽구명(透孔)이 서로 엇갈려 뚫려 있는 것이 많다. 목 항아리나 굽다리

접시의 뚜껑에 동물이나 인물을 작게 만든 토우(土偶)가 붙어 있기도 한 것이 신

라토기의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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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토우의 내용에는 사냥하는 인물, 가야금을 타는 사람, 성교하는 장면, 춤추는 장면 등 일상생활에서 얻은 소재와, 개구리를 쫓는 뱀의 모습, 여인과 성교하는 뱀의 모습 등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는 주술적인 내용 이 많다. 상형토기로는 기마인물형 토기, 배모양 토기, 수레형 토기, 오리형 토기, 집모양 토기 등이 있는 데 이들 토기는 묻힌 이의 영혼을 명부(冥部)세계로 운반하는 교통수단의 의미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 다. 신라토기는 후기가 되면 전반적으로 굽다리가 높아지고 기형도 단순해져 통일신라토기로의 이행이 일어난다.

▲ 목긴 항아리 ▲ 굽다리접시

▲ 토기 각종 - 경주 천마총 ▲ 목긴 항아리 - 경주 천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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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4) 가야

신라와 마찬가지로 회청색 경질토기와 적갈색 연질토기가 있으며 그 종류도 항아리, 목 항아리, 단지, 그릇받침, 잔, 시루, 굽다리 접시 등이 있다. 그러나 가야토기는 신라의 것 에 비해 보다 날렵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져 있으며 신라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동물, 집, 신발, 배, 수레, 등잔 등의 상형토기와, 용도를 알 수 없는 이형토기들이 많은 것이 특 색이다. 지역에 따라서 서로 차이를 보여 여러 개의 지역군(地域群 : 高靈群, 咸安群, 金海 群 따위)으로 구분한다.

▲ 목항아리와 그릇받침 ▲ 굽다리접시 ▲ 그릇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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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 (좌) 그릇받침과 뚜껑항아리, ▲ (우) 합

▲ (좌) 굽다리접시, (우) 제사토기

▲ (좌) 목항아리, (우) 여라가지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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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瓦)와 전(塼)

2) 막새기와

▲ 수막새 세부 명칭도 ▲ 연꽃무늬 수막새

▲ 연꽃무늬 소형막새 ▲ 화엽무늬 반원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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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와(瓦)와 전(塼)

형태에 따라 일반형인 방형 벽돌과 장방형 벽돌이 있고, 특수형으로 네모 모양의 전돌을 대각선 방향으 로 절단하여 2매 또는 수매로 분할하여 제작한 소형의 삼각전, 사다리꼴에 유사한 제형전(梯形塼), 마름 모꼴인 능형전(菱形塼), 요즈음의 벽돌과 같은 이형전(異形塼) 등으로 구별된다. 이 가운데 삼각전과 능 형전은 부전이 사각(斜角)으로 부설될 때 그 끝부분을 마무리하는 곳에 주로 사용되고, 제형전과 이형전 은 특수한 장소의 장식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리고 전돌의 표면이나 턱면에 새겨진 무 늬의 유무에 따라 민무늬전(無文塼)과 문양전(文樣塼)으로 대별되고, 문자가 기입된 명문전(銘文塼)이 있 다. 문양전은 연화문전, 보상화문전, 당초문전, 초화문(草花文)전 등으로 구분되고 있다. 이외에도 수렵문, 봉황문, 구름무늬(雲文), 귀면문 등이 다채롭게 채용되고 있으며 때로는 턱면에 사슴문(鹿文)과 용무늬가 배치되어 화려한 의장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초기까지는 앞시대의 화려한 전통이 그대로 계승되고 있으나 곧바로 단절되었고 그 대신 모란당초 문(牡丹唐草文)이 주요한 시문(施文)단위로 채용되어 겨우 그 맥락을 유지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는 대부분 무문전만 제작되고 있다. 간혹 조선시대에는 십장생 계통의 무늬가 새겨지고 있는 경우도 있 지만 소수에 불과하고 이미 그 전통을 상실한지 오래되었다.

▲ 연꽃무늬 수막새 - 고구려 ▲ (좌) 귀면무늬수막새와

(우) 귀면 연꽃무늬 수막새 -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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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瓦)와 전(塼)

▲ 연꽃무늬 수막새 - 백제(1, 2, 3, 4, 6), 파무늬 수막새 - 백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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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와(瓦)와 전(塼)

▲ 연꽃무늬 수막새 - 통일신라(1, 2, 3, 4),

연꽃보상화무늬 수막새 - 통일신라(5), 보상화무늬 수막새 - 통일신라(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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