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포항 지역 법조 문화 연구
1. 사법적 헤게모니의 문제
‘사법적 대표로서의 법률가’라는 헌법 규범과 ‘사법은 법률가들의 독점 영역’이라는 헌법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는 내게 이에 관한 법사회학적 해명의 필요성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그와 함께 떠오른 것은 사법적 헤게 모니(judicial hegemony)라는 개념이었다. 헌법 규범과 헌법 현실의 간극이야말로 그 속에 살아 있는 법(living law)과 이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적 지배 관계의 현존을 드러내는 징표였던 까닭이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이런 발상은 형식적 법규범 바깥의 살아 있는 법을 사회학적 방식으로 확인하려는 흐름과, 형식적 법규범 그 자체를 계급 관계의 반영으로 해석하려는 흐름 사이에서, 주로 지배와 그 정당화를 초점으 로 법규범과 법 현실 사이의 간극을 추적하려는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 다른 두 접근이 공유하는 이원론적 이 해를 비판하면서, 이 제3의 접근은 법규범과 법 현실의 간극을 채우는 이데올로기, 관행, 조직 문화, 도덕, 상 식, 습관, 이미지 등을 특히 권력관계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것이 법사회학의 본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
이 제3의 관점에서 살피자면, ‘사법은 법률가들의 독점 영역’이라는 명제는 수많은 의문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사법적 대표로서의 법률가’라는 명백한 헌법 규범에도 불구하고 그 명제의 정당성이 의심되지 않고 있는 이유 는 무엇인가? 그것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떤 방식으로 유포되며 관리되고 있는가? 현실 속에 서 그 명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제도적 비제도적 장치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잠재적으로 그 명 제의 정당성을 위협할 수 있는 다른 명제들은 무엇이며, 그것들은 또 어떻게 대중의 인식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는가? 이와 같은 의문점들 가운데 나는 일단 가장 손쉬운 것, 즉 ‘현실 속에서 이 명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 고 있는 제도적 비제도적 장치들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사법적 헤게모니 를, ‘사법 과정에서 법률가 집단이 다른 사회집단들에 대한 지배를 관철하는 과정에서 그 정당성에 관한 동의 를 이끌어 내는 사회 문화적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보다 그 힘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2)
1)_현대 법사회학자들 중 이런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펼치고 있는 사람은 역시 영국 학자 알란 헌트(Alan Hunt)이 다. 그는 법사회학이 갖는 비판적 실천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면서, 그와 같은 법사회학적 분석이 법적 실 천에 있어서 일종의 역헤게모니 전략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Hunt 1993, Ch. 10; Hunt & Wickham 1994). 법사회학사를 세 개의 다른 흐름으로 이해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만프레드 레빈더로부터 시사받은 것이다 (레빈더 1981, 특히 제3장 제3절 “법사회학의 3대 고전가”).
2)_성공적인 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의 이해(利害)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종속된 집단으로 하여금 그것을 ‘자연스러운
2.‘압축 근대’와 포항 사회의 변화
3. 포항의 법문화 : 일반인과 경계인
일제강점기 이래 이웃 경주의 법원과 검찰청의 관할구역이었던 포항 지역은 1998년 10월 1일을 기해 사법적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3) 그 날짜로 대구지방법원 포항 지원과 대구지방검찰청 포항 지청이 설치되었기 때문이 다. ‘사법적 대표로서의 법률가’라는 시각에서 보자면, 법원과 검찰청의 설치는 혁명적 사건일 수 있었다. 양적 인 변화만 보더라도, 50만 명이 사는 도시에 걸맞지 않게 5~6명4)에 불과했던 변호사 숫자가 2~3년 만에 60여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질적인 변화는 법원과 검찰청의 설치 그 자체로 인해 발생했다. 포항 사회 내부에 민형 사소송의 1심 단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독립적 사법 과정(좀 더 정확히는 사법적 대표 과정)이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법원과 검찰청의 설치를 주장했던 포항 사회 내부의 논리에는 토착 시민 세력을 기축으로 시민사회를 활성화 하기 위해 사법 과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권리 정치(politics of right)의 흐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일 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앞서 언급한 한동대학교의 재단 분쟁 사건이지만, 그 밖에도 ‘시 청 공무원들의 뇌물 수수 사건’, ‘포스코의 납품 비리 사건’ 등 공직 부패 사건들이 문제되었고, 2004년에는 ‘송 도 백사장 피해 보상 사건’이 소송 전 단계의 협상 과정을 어렵사리 마무리한 상태다.5) 요컨대 법원과 검찰청 의 설치 이후 사법 과정을 통한 정치적 문제 제기는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것’으로 혹은 ‘상식’의 문제로 간주하게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이론가인 안토니오 그람시에 따르면, 이런 동의의 자세는 사회적 생존의 모든 측면, 즉 제도 관계 사상 도덕 등에 퍼져 있다. 요컨대 헤게모니란 ‘자연스럽거나 자 명한 것으로 기능하는 통합적 관계망’인 것이다(아담슨 1989, 242-254; 김성국 1995).
3)_원래 포항 지원 및 포항 지청의 설치는 1993년 12월의 입법 조치를 통해 1997년 9월 1일 부로 시행될 예정이었 으나, 1997년 8월 22일 <각급법원의설치와관할구역에관한법률>의 일부 개정을 통해 그 시기가 1998년 10월 1일 로 연기되었다.
4)_포항 지원과 포항 지청이 설치되기 이전, 사법 서비스의 확충 차원에서 도입된 시법원이 설치되어 단기간 존속했 으며, 여기에는 판사 1인이 근무했다.
5)_포항 송도의 상가 주민들은 1968년 포스코 건설 이후 인접한 백사장이 점차 사라져 장기간 영업 피해를 입었다 는 이유로 1999년 12월부터 포스코에 피해 보상을 요구해 왔다. 그 뒤 양자는 합의하에 2001년 10월 한국해양연 구원에 피해 조사를 의뢰했으며, 동 연구원으로부터 포스코 건설 이후 송도해수욕장 상가 일대의 모래가 서서히 사라졌으며 그 원인은 포스코 건설에 따른 준설 작업의 영향이 75퍼센트, 방파제 연장 공사와 자연재해 등의 영 향이 25퍼센트라는 조사 결과를 통보받았다. 이에 따라 2003년 봄부터는 피해 보상을 위한 협의가 9차례 진행되 었는데, 그 과정에서 주민 대표 2명, 포스코 2명, 시의회 의원 1명, 지역 발전 협의회 1명 등 8명으로 이루어진
‘송도실무소위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50억 원을 요구하는 송도 상가 주민들과 1백억 원을 제시하는 포스 코의 입장이 맞서 합의가 순탄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했으나, 결국 지루한 협상 과정을 거쳐 2004년 9월에 이르러 최종적인 타협에 이르렀다.
넓은 의미의 정치적 엘리트들을 종래의 지배 블록과 토착 시민 세력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적어도 전자의 입 장에서 이와 같은 변화는 상당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지역사회에 대한 그들의 지배 권이 사법 과정을 통한 정치적 비판에 언제나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법 과정을 통한 정치적 문제 제기의 태반이 검찰의 수사권 발동을 유도하는 것이었으므로, 이런 우려는 대단히 실제적인 의미를 가지 고 있었다.6) 또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이 늘어나는 것도 행정 능률이나 소송비용 등의 측면에서 매우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7) 그러나 도전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후자의 입장에서도 이와 같은 변화가 반드시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사법 과정을 통해 정치적 이슈를 제기하는 방식은 정치과정을 경유하 는 것보다 비용 면에서 매력적이었지만, 동시에 언제나 법적 분쟁의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토착 시민 세력 내부의 갈등이 도덕 차원의 상호 비난을 넘어 형사적인 고소 고발 사태로 비화되는 일이 생기 면서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위한 시민 단체들의 활동이 오히려 위축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므로 법원과 검찰청이 설치된 이후 포항 사회의 정치적 엘리트들에게는, 어떤 이유에서건, 사법 과정을 독 점하는 이 새로운 엘리트들에게 접근할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무엇보다 1심 단계의 최종 결정권자들인 판검사 집단과 상호 이해의 연결 고리를 확보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긴요한 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관해 일단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출신 학교나 출신 지역 등을 고리 로 삼아 사적인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출신 학교가 법률가 집단 내부에 다수의 졸업생을 배출한 명문이 거나, 출신 지역이 포항이나 기타 인근 지역이거나, 둘 다라면 사적인 연줄 망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당연 히 높아진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새롭기에 모든 것이 노출되는 포항의 법조 환경에서 이런 노골적인 접근은 위 험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판검사 집단은, 다음 장에서 논의할 여러 가지 이유로, 가능하면 포항 사회 내부에 깊이 관여하지 않은 채 익명의 사법적 엘리트로 남아 있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학연이나 지연에 의존한 연줄 망 만들기는 기껏해야 개인적으로 인사나 하고 지내는 식의 초보적 관계를 확보하는 것 정도의 효과를 가질 뿐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포항 사회의 정치적 엘
6)_실제로 내가 만났던 고위 공무원, 지역 정치인, 지역 상공인 등은 법원과 검찰청이 설치된 이후 발생한 대표적인 변화로서 검찰의 공직 사정 수사가 강화된 것과, 이에 따라 일련의 공직 부패 사건들이 문제되었던 것을 이구동 성으로 언급했다.
7)_예컨대, 2003년 7월 4일 제92회 포항 시의회(제1차 정례회)에서 김종린 의원이 발언한 내용을 보자(해당 회의록에 서 발췌 인용). “…… 본 의원이 지난 87회 포항시 의회 제2차 정례회 때 우리시 소송사건 현황과 소송에서 패소 한 원인이 업무 소홀, 미숙 등으로 인한 패소에 대해 관련 공무원의 책임과 향후 승소율을 높일 수 있는 계획 등 에 대해 시정 질문을 한 바 있었지만, 이번 민사소송 패소 원인 조사 특별위원회 활동 결과 지난 3년 동안 포항 시에서 패소한 민사소송의 건수는 92건으로 이 중에서 71건은 부당 이득금 반환 청구의 건이며 나머지 21건은 소유권 이전등기, 손해배상 청구의 건 등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에 따른 배상금이 44억4천만 원, 소송대리인 선 임 비용 1억3,900만 원과 원고 측 소송비용으로 1억800만 원으로 민사소송 92건에 대해서만 47억1,000만 원이라 는 시민의 아까운 세금이 사용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아울러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 담당을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방안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포항시에서 발생하는 행정소송 및 민사소송 등을 수행하는 법무 담당은 현재 행정직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년 시민들이 자기의 권익을 찾는 소송이 증가하고 있 는 상황에서 효율적인 소송수행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이 됩니다. 지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간 포항 시에 발생된 민사소송 및 행정소송 건수만 하여 226건이나 됩니다. 이렇듯 많은 소송 업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 기 위해서는 이번 민사소송 패소에 대한 행정사무 조사 결과에서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포항시의 법 무 담당을 변호사 또는 법무사 등 외부의 법률 전문가 중에서 별정직으로 임명해 소송 업무에 대해 전문성을 강 화하고 행 재정적인 손실을 방지할 의향은 없는지 시장의 견해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
리트들에게는 어떤 대안이 있었을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최근 들어 이들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변화이다. 특히 2000년대로 진입하면서 포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익명의 존재였던 외지 출신 지식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넓은 의미의 정치적 엘리 트 집단 내로 포섭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8) 예를 들어 ‘지방분권 운동’과 같이, 개발연대의 중앙집권적 사 고방식에 가려 묻혀 있었던 새로운 이슈들에 관해서 포항공과대학교 한동대학교 위덕대학교 등에 재직하는 대 학교수들과 산업과학연구원 포항테크노파크 등의 연구 전문 인력들, 그리고 그 밖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상당 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면식 있는 사람들과의 주관적 의리를 중시하고, 배타적 인간관계 속에서 만 법률관계를 형성하려는 종래의 경향 역시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 종래의 지배 블록과 토착 시민 세력이 이 와 같은 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려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으로 분화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 엘리트 집단 내부의 변화가 사법적 엘리트들과 의사소통 공간을 만드는 문제에 있 어서도 새로운 해결책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포항 사회라는 공동의 대상을 위해 자발적으로 공익 운동을 시작한 뒤, 그 움직임에 사법적 엘리트들을 동참시키는 방식이다. 예컨대 범죄 예방 운동이나 부패 추방 운동과 같은 범시민적 공익 운동에 각급 기관장들이나 시민 단체 지도자들이 포함된 운동 주체가, 포항 사회의 핵심 관련 기관인 법원이나 검찰청의 기관장이나 소속 구성원의 참여를 요청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2002년 이후 1~2년 동안 포항 사회에서 시작 된 ‘기관장 홀리 클럽(holy club) 운동’이나 ‘부패방지신고센터 설립 운동’ 등은 이런 새로운 추진 방식을 채택 하고 있다.9)
법원과 검찰청이 설치된 이후 포항 사회의 상층부를 형성하는 넓은 의미의 정치적 엘리트 집단이 이와 같은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에 비해, 저변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은 별다른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 는 것으로 판단된다. 70여 명의 포항 시민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종합해 보건대, 이들은 남녀노소, 정치적 성향, 직업 및 학력, 포항에서 생활한 기간 등을 막론하고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법과 법 률가에 대한 피해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10)
법이란 무척 딱딱하고 권위적인 것이며, 법률가들은 모두 똑똑하고 돈도 많이 버는 사람들이지만, 고압적이고 거만하며 불친절하기 때문에 대하기가 불편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이것은 예컨대 1991년 과 1994년에 한국법제연구원에서 시행한 국민 법의식 조사 연구의 결과와도 대체로 일치하는 것이었다.11)
8)_시민운동의 관점에서 이런 인식의 전환을 보여 주는 예로서 포항지방의정연구소에서 주최한 “좌담, 포항 지역 시 민운동의 과제와 전망” 자료집(포항지방의정연구소 1999)을 참조.
9)_흥미로운 것은 이 두 운동 모두가 기독교라는 또 다른 연줄 망 조직에 의해 주도되는 인상이 짙다는 점이다. 기 관장 홀리 클럽 운동은 포항성시화운동본부에서, 부패방지센터 설립 운동은 포항YMCA에서 그 산파 역할을 맡은 바 있다.
10)_특징적인 것은 포항 사회의 일반 시민들이 면접 조사원들에게 보이는 태도였다. 법이나 법률가에 관련된 인터뷰 는 일단 최대한 회피하려 했으며, 마지못해 응하는 경우에도 대단히 소극적인 답변 태도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 다. 하위 법조 직업 종사자들은 일반 시민들과 조금 달랐다. 대체로 초반에는 인터뷰의 목적 등을 집요하게 묻는 등 회피하려 했으나,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적극적이고 과시적인 태도로 돌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 시민들 가운데 포항 사회의 법률가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으며, 알고 있더라도 개인적인 친 분 관계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흥미롭게도, 개인적으로 아는 법률가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예외적으로 좋은 법률가’라는 식으로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법원과 검찰청이 설치된 것이 몇 년 되지 않아서인지, 포항에서 법 또는 법률가에 관련된 경험을 가진 사람들 역시 소수에 불과했고, 어쩌다 경험이 있는 경우에도 대체로 “아주 골치 아프고 짜증스런 일이었다.”라는 투의 부정적 체험담을 토로했다.
“다른 것은 다 두고, 첫째, 인격을 무시해!”라며 분노를 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포항에 법원과 검찰청이 설치 된 사실은 대부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으나, 그로 인해 자신들의 법 생활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12) 정치적 엘리트 집단에서 아주 중요한 변화로 평가하고 있는 ‘시청 공 무원들의 뇌물 수수 사건’이나 ‘포스코의 납품 비리 사건’을 거론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현직 총장의 법정 구속 사태까지 초래했던 ‘한동대학교의 재단 분쟁 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지 역과 비교해 포항 사회의 법 집행이 공정한지를 묻는 질문에 관해서는 대체로 ‘어디나 똑같다’는 답변이 많았 으나, 외지 출신들의 경우에는 다수가 “포항 사회 자체가 준법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대단히 흥미로운 것은 “누가 구속되거나 전세금을 날리는 등 법적으로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답변이었다. 거의 모두가 변호사를 선임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실력 있는 변호사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도 잘 알고 법도 잘 알며 변호사도 잘 아는 주 변의 사람들을 찾아 상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위 법조 직업 종사자들이 그런 중개자 역할을 담당하는 것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포항 사회의 일반 시민들은 법률가들이 자신 들과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사법적 대표로서의 법률가’들이 포항 사회에 출현한 것이 나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변화가 발생한 것에 관해서는 대부분 인식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경찰, 법무사, 법원 직원, 공인중개사 등과 같이 일반 시민과 법률가를 실무적으로 연결하는 하위 법조 직업 종사자들의 경우에는 훨씬 구체적인 정보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법과 법률가에 관한 인상에 있 어서도 전반적으로는 일반 시민들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인식 그 자체에 관해서는 법 지식이 부족한 탓도 크다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판사는 권위, 검찰은 권력, 변호사는 돈’과 같이 상당히 분화된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다수였고, 법률가란 한마디로 법 지식을 가지고 일반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법적 분쟁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속속들이 그 내용을 분석하고 있었고,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포항 사회의 법률가들에 관해서는 특히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11)_두 차례의 국민 법의식 조사는 “귀하는 법이란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느낌을 갖게 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합계 70퍼센트가 넘는 응답자가, “권위적이다”, “편파적이다”, “엄격하다”라는 답변을 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 다(한국법제연구원 1994, 37).
12)_도리어 법원과 검찰청이 들어온 뒤로도 장성동 지역이 별로 개발되지 않아 땅값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식의 불평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아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자신이 아는 법률가의 경우에는 ‘실력 있고 훌륭한 법률가’라는 단서를 다는 것이 보 통이었다. 포항에 법원과 검찰청이 설치된 사실은 대개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발생한 변화에 관해서도 각기 일정한 평가를 가지고 있었다. 법원이 가까워져서 비용상으로 크게 절약이 된다든지, 검 찰청이 생긴 뒤로는 경찰에 고소, 고발하는 사건 수가 줄었다는 등의 평가들이었다. 정치적 엘리트들이 거론하 는 대형 비리 사건들을 변화의 구체적인 예로 드는 경우는 전무했다.
하위 법조 직업 종사자들은 일반 시민들에 비해 어느 정도 법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자신들이 포 항 사회의 법률가들(특히 변호사들)에 대해 훨씬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리고 이와 같은 일종의 자신감은 일반 시민들이 변호사를 선임하는 과정에 대한 이들의 관찰에도 그대로 이어 지고 있었다. 거의 공통된 답변에 의하면, 의뢰인들은 일반적으로 변호사를 그냥 찾아가는 경우는 드물고 어떻 게 해서든 중간에 아는 사람을 넣어서 여러 가지를 확인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때 대개 입소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판검사 출신 변호사라면 일단 믿고 보는 것이 대다수라고 한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차라리 스스 로 법 지식을 쌓아서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말하자 면, 법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유는, 간혹 법률가가 게을러서인 경우도 있지만, 십중팔구 본인이 무지하 고 미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13)
13)_인터뷰에서 하위 법조 직업 종사자들에게 질문한 내용은 위 일반 시민들에 관한 내용 가운데 A영역의 질문에 다음 내용을 덧붙인 것이었다.
C-1. 일반 포항 시민들이 생각하는 법률가의 이미지와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C-2. 일반 포항 시민들은 소송이 발생한 경우에 대체로 어떤 방식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던가요?
C-3. 그간의 경험 가운데 법률가가 잘못해서 일반 포항 시민이 억울함을 당한 경우를 알고 계신가요? 자세히 설명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