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발제2] 생태 환경과 기독교 교육
지도교수 : 남은경 교수
제목 : 존 웨슬리의 “새로운 창조” : 생태신학의 가능성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본 창조신앙 생태영성)
발제자 : M.Div Ⅱ 4차 박광선
1. 존 웨슬리의 사역
존 웨슬리는 메소디스트 운동의 창시자이다. 그는 차터하우스와 옥스퍼드의 크라이스 트 처지에서 공부를 하였다. 목사안수는 1725년 준비하고 성서와 함께 토마스 아 켐피스, 제 레미 테일러, 윌리엄 로의 저서를 읽으며, 평생을 지속한 일기쓰기와 새벽기도회, 경건 훈련들 을 시작했다.
1729년에는 옥스퍼드 학생들과 함께 홀리 클럽 또는 메소디스트라 알려진 모임을 시 작하였는데, 찰스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등이 동참하였고, 당시 학생들과는 구별되는 성서적 기독교의 경건을 실천하였다. 이 메소디스트의 기도, 금식, 절제 등의 개인적인 경건은 옥스퍼 드 주변사회로 확대되어, 빈민, 어린이, 교도소 등을 방문하여 복음과 함께 음식과 물건을 나 누는 사랑의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1735년 웨슬리는 이전까지의 윤리적인 경건이 자신의 구원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 하고, 이를 극복해 보고자 북미의 조지아로 선교를 떠난다. 그러나 철저한 목회방법과 소피 합키라는 여인으로 인한 스캔들 때문에 오래 지속할 수 없었고, 이즈음 웨슬리에게 신앙적인 도전과 해답을 제시한 사람들은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인 모라비안들이었다. 모라비안들은 풍랑 이 일고 있는 바다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웨슬리는 충격을 받게 되고 자신의 신앙의 큰 도전을 받게 된다.
1738년 모라비안들이 강조하는 "구원의 믿음"이 자신에게 부족함을 깨닫고 고민하며 기도하는 중, 5월 24일 런던의 올더스케이트 모임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구언의 확신"을 얻었고, 이후 많은 웨슬리안들은 이를 웨슬리의 회심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1739년 1월 1일 도료 메소디스트들과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충만함으로 자신의 사역 에서의 새로운 모습과 능력이 나타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선교지에서의 부정적인 소식과 모라비안들과 가깝다는 소문은 웨슬리로 하여금 설교 강단에 설수 없게 만들었고, 그의 친구 휫필드의 조언을 받고 옥외설교를 시작하게 된다. 옥 외설교는 당시 국교회의 교구경계를 넘어 부흥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게 되는 결정적인 전 도 및 대중집회의 형식이 되었다. 국교회의 목회가 예배당에 참석해야 하는 의무감과 적극성 에 호소하였다면, 웨슬리의 옥회설교는 정규예배에 참석할 수 없는 농민, 노동자, 탄광부, 여 인, 어린이들에게 직접 나가 야외에서 복음을 전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목회 방법이 되었 다.
1740년 이후 특히 성령의 역사에 힘입은 은사주의적인 사역이 주루를 이루었는데, 중생이라는 주제 외에도 성도의 변화된 모습이 완전에 이를 수 있다는 성결(그리스도인의 완 전)의 신학, 복음이 영적인 상태의 구원뿐만이 아니라, 육체적 연약함을 치료하셔서 온전하게 만드실 것이라는 신유의 신학,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재림의 신학의 맹아가 나타 나기도 하였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여 자신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변화된 신자 의 생활을 강조하는 성결론을 발전시켰고, 이처럼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잉글랜드의 런던, 브 리스톨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잉글랜드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 리고 북미로 전파되었다.
2. 문제제기
웨슬리는 영국의 최고의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대학생들을 지도할 위치에 있 었으며, 당시 새롭게 일어나던 과학의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고, 계몽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관과 우주관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며, 웨슬리는 같은 나라에서 활동하던 아이작 뉴튼의 과 학과 존 로크의 경험론을 통해 자연과 과학을 이해하고 있었고, 경험을 통한 진리를 강조하는 학문적 자세를 배웠다.
한편으로는 목회자로서 자연에 대한 경이와 존경으로 그 너머의 존재에 대한 설교와 활동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한 이해의 도구로 사용했던 과학에 대한 웨슬리의 태도를 살펴본다면, 웨슬리의 모호한 모습이 우선 다가온다. 그러나 웨슬리가 신앙과 과학의 두 영역, 즉 전통적 세계관과 새로운 세계관 사이에서 세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 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두 세계관의 통전적인 이해가 항상 성공적 이지도 않았고, 모두에게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과학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이 정당 하게 만나야 함을 제시하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웨슬리 연구에 있어 웨슬리가 가지고 있었던 세계관과 우주관 그리고 인간을 툴러싼 환경에 대한 태도를 알아보고, 웨슬리의 세계관이 전체적인 통일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자연철학이라는 말이 다소 생소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웨슬리 자신이 직접 자연 철학개론을 써서 해박한 자신의 자연철학을 밝힌 적이 있고, 설교와 저서 등을 통해서도 자신 의 세상과 자연에 대한 이해와 태도를 강조하였다는 점이 웨슬리 연구에 있어서 자연철학 또 는 자연신학을 가능하게 한다.
3. 웨슬리의 자연철학개론
웨슬리는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을 다니면서 물리학을 배웠고, 후에 이 물 리학을 동료들에게 추천하여 공부하게 했으며, 키스우드에 세운 학교의 정규 과목으로 지정하 기까지 했다. 그의 물리학에 대한 이해는 뉴턴의 중력과 진공에 대한 지식을 자신의 주석에서 밝히고 있을 정도였다.
웨슬리는 뉴턴에 의해 제시된 새로운 세계관에 깊은 매력을 느꼈을 정도로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서 무척 민감했다. 그러나 웨슬리는 전문적 과학자가 아니었기에 직접적인 실험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과학현상에 대해 능동적인 관찰과 설명을 시도하였다. 성서적인 지식, 특히 교육과 신유를 강조하는 그의 목회에서는 이 지식을 적극 활용하였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는 복음의 선포와 죄의 고통에서 백성을 해방하는 것이었기에 웨슬리에게 있어 과학은 성서를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고, 의학적인 치료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과학이 성서, 즉 헤아릴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증 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더욱이 중년이 되면서 웨슬리의 과학에 대한 연구는 더욱 두드러졌는데, 전기에 대한 연구와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등을 통해 보여주었던 그의 관심은 임종의 순간까지 계속 되었 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밝힌 전기의 힘과 의학적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깊이 도전받은 웨슬 리는 4개의 전기 기계를 구입하여, 의학적 치료에 사용하였다. 그리고 웨슬리는 이를 최선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1747년 웨슬리는 자신이 파송한 설교자들이 영적인 사역뿐만이 아니라 육적인 신유 를 시행할 수 있도록 당시의 과학과 상식을 집대성하여 기초의술을 발간했는데 여기서 웨슬리 는 모든 질병이 타락과 하나님에 대한 반역에서 유래되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생사
의 권한, 즉 무덤에도 집어넣으시고 일으키기도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설득 했다. 이러한 점에서 웨슬리의 과학정신은 직접적이고 전문적인 실험보다는 진지한 관찰과 적 용에 있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과학자들의 저작에 대한 폭넓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목회에 적용하였다.
특히 웨슬리가 세웠던 킹스우드 학교의 학생들을 위한 커리큘럼으로 사용할 자연철학 도서목록을 지역의 한 의사에게 부탁했고, 그는 웨슬리의 요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자연철학자들은 두 가지에 대하여 분주합니다. 즉 '사실의 역사와 '결과의 원인'을 전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어느 누구도 상식적으로 자연의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 기 전까지 두 번째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자연의 역사란 생활과 경건을 위해 매우 유익합니다. 일반적인 생활에 많은 유옹한 것을 가르치고, 창조주에 대한 존경을 주의 깊은 마음안에 일으킵니다. 즉 창조물에 대한 광대한 시각은 창조 주의 힘과 지혜와 선합을 추상적인 추론보다 더 감각적이고 감정적으로 드러냅니다.』
위의 편지를 통해 웨슬리의 자연철학에 대한 이해를 알 수 있다. '사실의 역사'와 '결 과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라는 두 가지의 일을 구분하고 있다. 전자는 사실을 기술하고 묘사 하는 일이며, 후자는 그 사실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해 내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자 가 분명히 선행되어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자연철학을 공부할 의미가 있다. 자연철학은 보다 추상적인 학문을 위한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지식의 기능을 한다.
당시 웨슬리와 마찬가지로 많은 전통적인 신학자들은 새롭게 풍미하게 된 과학지식으 로 인해 신학과 과학의 조화를 이루려고 시도하였고, 웨슬리는 이러한 조화를 이루려는 위도 에서 자연과 하나님에 대한 당시의 과학 이론서들로 만족할 수 없어, 스스로 자연철학개론을 쓰기 시작했다. 1758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63년 첫 두권을 출판했으며, 70년에 3권 77년에 4 권 84년 4번의 편집으로 그 양이 점차 늘어났다. 각 5권은 1권 인간에 관하여 2권 짐승에 관 하여, 3권 식물과 호하석에 관하여, 4권 흙, 물, 불,공기 그리고 유성에 관하여, 5권 세계, 천 체, 자연계의 속성과 원인등으로 구성 되었다.
웨슬리는 서문에서 자신의 자연철학개론의 집필의도를 밝히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자연철학개론을 보기 원했다. (1) 너무 산만하거나 너무 많은 말로 설명하지 않고, 적당한 범주 내에서 이루어져서 시간으로나 재정적으로 큰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 것, (2) 부족하거나 불완전하지 않아. 땅과 하늘 어느 쪽에 관해서도 확실하게 알려진 주제들을 포함하는 것,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것을 보기 원했는데, (3) 사물의 본질이 드 러내는 가장 평이한 형식으로, 가장 명확하고도 쉽고 지적인 방법으로 단순하고도 솔직하게 표현되어, 특히 평범한 독자들에게 이교적 헬라어와 같이 들리는 수학의 전문어로부터 벗어난 것, 동시에 나는 그 목적에 맞게 보이는 창조물에 대한 이러한 짧고, 풍성하며, 평이한 설명을 보고 싶었다. 단순히 게으르고 쓸모없는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부분, 그분의 능력, 지혜, 그리고 선함을 보기 위해서.』
결국 웨슬리가 자연철학개론을 쓴 의도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부분, 그분의 능력, 지혜, 선함을 드러내게 하려는 것이 집필의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자연철학의 과 업, 즉 당시 과학의 일은 묘사는 것에 머문다는 경계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의 범위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자신의 자연철학개론의 진정한 의도였다.
자연찰학의 가치는 교만한 인간을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드러 냄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지혜, 그리고 선함을 나타내고, 인간의 가슴을 뜨겁게 하여, 입에 경이와 사랑과 찬양이 가득하게 하는 것이다. 즉 웨슬리는 과학과 종교, 학문과 신앙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학문을 제대로하면, 오히려 뜨거운 가슴의 신앙인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웨슬리는 자연철학을 신앙을 더욱 성숙시켜 성결에 이르게 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1) 창조질서와 하나님의 형상
웨슬리는 자연철학의 대상인 우주, 즉 세계를 어떤 신앙의 눈으로 보는가? 웨슬리는 세계를 창조질서의 측면에서 바로보고 있다. 창조 때부터 나타난 하나님의 본래 목적을, "하나 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세기의 말씀에서 찾았다.
웨슬리는 창조의 상태에는 모든 피조물들이 "연결고리"가 있으며, 존재의 계열이 있다 고 생각했다. 최고에서 최하까지 동물과 식물이 화석에 이르기까지 죽은 땅에서 하나님의 형 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 이르기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웨슬리가 생각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소유한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하나님가의 관계로 이해하였다.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다른 피조물들에게 반사 해야 하는 존재로 그렸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살아있는 관계 성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웨슬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세 측면에서 살피고 있었다.
첫째는 자연적 형상이다. 자연적 형상이란 영적인 존재의 하나님과 같이 피조물인 인 간이 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들어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이해력(이성), 의지, 자 유다. 특희 이서응ㄴ 마음으로 사물을 느끼는 지각과 인식을 서로 비교하는 판단과 이를 종합 하는 추론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의지와 자유를 통해 피조물은 책임적인 존재요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는 것이니, 이 자연적 형상은 영적 존재자의 기본 자질을 이루게 된다.
둘째는 정치적 형상이다. 인간이 창조주를 반영하여, 지상의 대리인이 되도록 지도력 과 관리력을 부여 받았다. 이간과 다른 피조물 사이를 궁극적인 차이가 나도록 한 특별한 책 임과 특권적인 지위이다. 정치적 형상은 인간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를 전달하는 특별한 통 로가 되는 책임을 부여받았고, 청지기로서 피조물을 돌보아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지속적인 과 업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과 다른 모든 짐승 세계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었던 것이다.
셋째는 도덕적 형상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보존되는 것인데, 타락과 함께 인간이 상실한 것이다. 자연적 형상과 정치적 형상이 온전한 형태는 아니더라도 타락후에도 인간에게 남아 있지만, 하나님과 공유했던 정의, 자비, 진리는 영적 호흡을 통해서 만 유지하고 행사할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피조물을 위해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이 타락했을 때, 모든 피조물은 무질서와 불행과 죽음에로 내던져졌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회복된 인간은 이제 피조물과의 온전한 관계에 들 요건이 되는 것이라고 보았 다.
2) 종말론적 대망
웨슬리는 이 세상을 분명히 창조주를 드러내는 장소요, 공간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 이고 있다. 이 세상은 창조로부터 하나님의 지혜를 그대로 옮겨 놓은 작업공간이다. 그래서 그 어떤 근시안적인 인간도 우주를 통해 창조주의 지혜를 짐작할 수 있다. 전우주의 창조와 질서, 그리고 그 하나하나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 시며 보호하심에도 드러난다. 그러나 웨슬리는 현재의 상태가 창조의 시기와 동일하다는 주장
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참혹한 상태를 보면 창조 자체가 불완전했다거나 창조주를 부 인하는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다. 웨슬리에게 있어 창조세계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스 스로를 드러내는 토대이기때문이다.
인간이 자연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본것으로 만족하 고 그것으로 행복해 한다면, 성서에서 가장 경계하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학문 자체를 이성의 작용을 통해 완결되는 것으로 본다면 가장 큰 낭패를 맞게 된다.
당시 경험론적 철학으로 대변되던 자연철학은 그 자체로 완결된 구조가 아니라는 의 식이 웨슬리에게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으며 웨슬리에게 있어 자연 철학의 대상으로서 자연세 계의 자리는 결국 다음에 오는 미래적 세계를 안내하는 신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 분명 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의 웨슬에게 절실했던 종말론적인 대망은 바ㄹ로 자연철학의 궁극적 인 지향점이 되어야 했다.
웨슬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면, 자연철학에서 궁금해 하고,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설명을 얻게 될 것을 낙관했다 아울러 지금의 자연철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난제 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 희망했다. 결국 자연철학은 현재의 일을 묘사하지만, 결국 보다 나은 세상을 암시적으로 가르친다는 점에서 그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자연철학의 한계점 너머에서 웨슬리는 인간의 존재를 밝히고자 한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와 거기에 에 테르를 포함한 5가지가 세상의 구성요소라고 본 플라톤의 개념뿐만 아니라, 데카르트의 사상 까지 두루 섭렵하고 인간은 여러 원소들의 김한 결합 이사으이 사고를 통해 내적 관념을 형성 하며, 추론, 상상, 기억, 판단 등을 하는 존재라는 경험론적인 결론을 얻는다. 그러나 사고 기 능은 의지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이를 웨슬리는 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간은 영 적인 존재이다. 영은 단순히 자연적인 물질의 결합 너머의 또 다른 원리, 또 다른 세상, 또다 른 궁극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며 뉴턴의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앞에서 말한 원소들은 수동적이거나 비운동성의 존재들이지만 영은 하나님으로 부터 내적 운동 원리를 받았고, 그것을 가지고 마음대로 몸의 모든 부분을 다스린다고 보았다. 웨 슬리는 자연철학과 신학의 영역이 단순히 "존재의 유비"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
믿음의 유비"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중층구조를 이로구 있다고 보았다. 웨슬리에게 있어 인간 존재의 목적은 세상 가운데서, 영과 육으로 하나일 때 영원을 준비하는 것임이 분명해진다.
자연철학의 목적은 인간의 존재 목적에 일치해야 하며, 영원을 준비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웨 슬리는 인간이 자연세계에서 영원을 준비하는 일을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결국 자연세계는 심판을 준비하는 단계요, 그런 의미에서 웨슬리는 은혜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은 일정 기간 자연을 관리하는 청지기로서, 그리고 창조주와 피조물을 바 르게 연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역설하였다.
웨슬리에게서 자연세계는 영원을 위한 종마롤ㄴ적인 지평으로 기능한다고 보았고, 웨 슬리의 자연철학은 종말론적 기대와 함께 이해되어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죽음을 앞둔 노년 의 웨슬리가 자연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4. 새하늘과 새땅: 환경의 청지기
자연세계에 대한 선한 청지기로서의 임무를 자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웨슬리가 자연철 학을 통해 강조하는 바는 분명하다. 실제로 웨슬리 스스로 선한 청지기로서 살기 위해 여러 실천적인 활동들을 했다. 아래의 다섯가지의 모습을 통해 청지기로서의 실천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1) 채식에 관하여
주변의 성도들에게 불편을 주거나 오해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육식을 금함으로 열병 이나 질병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웨슬리는 미국 선교시절에 체득했으며 이러한 웨슬리에게 서 분명히 현대의 절식, 채식주의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건강역시 청지기가 가져야하는 몫 으로 여겼던 것이다.
2) 인권의 관하여
자연세계에서 선한 청지기로서의 웨슬리의 최대의 관심은 자연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 이었다. 웨슬리는 민주주의 제도를 용인한 사람이 아니며, 왕당파를 지지하여 미국의 독립을 사악한 욕심으로인한 것이라고 본 사람이었으나, 웨슬리는 민주주의가 초래할 혼란과 의회독 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뿐 원칙적으로는 인권을 개선하려고 했다.
웨슬리가 자연철학을 통해 터득한 자연스러운 자유가 인권의 기초가 되며, "자연적 정의"에도 함치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흑인 노예는 그 어떤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이 자연적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었기에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웨슬리는 지식의 열망을 불태웠던 자연 세계를 떠나는 마지막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흑인 노예에 대한 문제였으며, 자연적 정의의 실 현이었다.
3) 가난한 사람들의 관하여
18세기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았던 웨슬리는 산업화의 그늘 가운데 있었던 가난한 사 람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다. 단순히 동점심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한 것이 웨슬리는 평 생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살았으며, 사도행전에 나타난 소유공동체를 자신의 메소디스트 안에서 실현하기 희망했다. 웨슬리는 필요이상의 재산의 축적이 자연세계의 질서를 파괴할 수 있음을 분명히 알았던 것이다.
4) 교육에 관하여
가난한 이들과 사회의 약자에 대한 웨슬리의 관심은 자연히 교육환견에 대한 관심으 로 이어졌다. 웨슬리는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원했다. 웨슬 리는 이성이 시작될 때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은 이곳에 계시고 어느 곳에도 계신다는 것을 주 입시켜야 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다스리시기도 하시니 선인과 악인 소인과 위 인 등 모든 자를 다스릴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지혜와 능력을 부여하며 다스리시는 분이심 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다.
5) 여성의 관하여
웨슬리의 자연세계에 대한 관심은 여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 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다고 말했고,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 어 졌으며 영생을 부여받은 동등한 존재들로 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웨슬리의 부흥운동에 자 발적이고 헌신적으로 부흥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5. 결론
존 웨슬리가 살던 시대는 과학의 발전과 함께 시작된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일어나 던 시기였다. 웨슬리는 자연철학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과학의 역할은 측정 가능하고 실함 가 능한 것들을 묘사하고 과정을 기술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과학으로만 눈앞에 벌어지는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과 의도를 밝혀내려는 시도보다는 신학으로의 도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웨슬리의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따른 세계관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자연철학은 신학의 출발점이자 토대가 된다. 웨슬리는 자연세계에 대한 정보가 교육과 전도에 의하여 창조자이며 우주의 운행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신학으로 믿음의 도약을 할 것을 강력히 희망했다. 그러므로 웨슬리에게 있어 자연철학은 신학이 시작되는 지 평이라고 보았다.
둘째, 웨슬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창조주의 목적이 드러난 현장이요, 특히 창조주와 피조물을 하나의 관계로 해석하고 있다. 창조때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은혜를 입어 새롭게 창조된 인간은 이제 자연에 대한 청지기로서 사명을 감당해야한다. 자연세계는 미래에 대한 기대,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비전,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등으로 자연스럽게 융합된 종말론적인 지평으로 작용하였으며, 자연세계 안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생태계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이해를 갖는 것은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자세가 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웨슬리의 세계관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아간다. 목회자로서 웨슬리는 신 도들에게 제시하는 세계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연환경의 청지기로서 활동할 것을 기대하였고 자신도 그러한 활동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생태적인 주제, 즉 건강과 영성을 위한 채식, 종교의 자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교육, 흑인 노예, 더 나아가 여성의 지위등에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하였고, 웨슬리에게 있어 개인의 영역에서의 영성의 추구는 사회적인 영역에서의 실천적인 활동을 자연스럽게 포함하였다.
웨슬리는 당시의 통념을 뛰어 넘는 매우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하나 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려던 고지식한 성서주의에 입각한 통전적인 세계관에 힘입은 목회자 였음을 볼 수 있다.
6. 발제자의 생각
과학은 이제 우리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크게 자라하고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 과학의 발전이 크게 도전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웨슬리처럼 우리도 과학을 버릴수 없다면 성경을 과학의 증 거들을 가지고 해석할 것인지 더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웨슬리가 과학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음처럼 우리도 과학이 증명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더욱더 알고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해야하는 시대임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기 위해 편협적인 생각은 버리고 더욱더 과학을 공부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 을 것이라고 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미련해 보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되며 과학에 대해서 더욱더 우리가 많이 알고 과학이 증명한 것이 성경을 통해 어 떻게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세게 세워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웨슬리보다 더 노력하고 연구하 며 생각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7. 토론주제
웨슬리의 시대보다 더 많은 과학의 발전으로 성경과 반대되는 증거들이 보도되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과학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또한 어떻게 교회에서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토론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