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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의 대두 배경과 의미포스트모던의 대두 배경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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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건축 강의자료

제4주 :

포스트모던의 대두 배경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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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의 대두 배경과 그 영향

1. 결정주의의 한계 인식 : 예측과 통제에서 이해로

건축 비평가 Charles Jencks는 “1972년 7월 15일 15시 32 분을 기하여 근대건축은 그 운명을 다하였다”라고 말하였는데, 이 는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Pruitt-Igoe 주거단지의 비극적인 폭파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Pruitt-Igoe 주거단지는 가장 진 보된 모던의 이론에 의해 계획 및 설계되어진 국제현상설계의 당 선안(설계자는 일본 건축가 미노루 야마시키였음)을 실현시킨 주 거단지로 여러 건축잡지에서 극구 칭찬을 했던 프로젝트였지만, 불행하게도 여러 가지 매우 부정적인 문제를 야기시킴으로써 실현 된지 얼마 안되어서 마침내 상기의 날짜에 폭파되는 운명을 맞이 하게 되었던 것이다.1)

그 원인에 대한 이후의 연구는 주민들의 욕구, 취향 및 생활 양식에 대한 진지하고도 충분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비극적 사건의 근저에는 모던이 지향했던 프로젝트로서의 유토피아와 프로젝트의 내재적 속성과 관련이 있다. 즉 거주민과 환경간의 관계를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보는 소위 건축적 결정주의 (architectural determinism)를 고지식하게 투영시키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물리적 환경의 질을 개선하면 주민들의 생

1) Pruit-Igoe 주거단지는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단지로 평균 11층 33동으로 된 11,000명을 수용하고자 했던 프로젝트였다. 1950년대 이 계획은 미국 공 공주택의 우수한 본보기의 하나로 건축잡지에서 극구 칭찬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여러 가지 참신한 배치계획에도 불구하고 건물들 사이의 공간은 황폐해지고 갤러리는 우범장소가 되고 말았다. 그러한 문제점을 개선 할 목적으로 두 번째 건축회사와 계약을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건 물들이 버려지고 범죄와 만행이 판을 치게 되었다. 결국 1972년 이 주거단지 의 상당부분이 건축주와 주택도시개발성에 의해 폭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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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의 질도 개선된다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불량주택지구 및 도심지 재개발사업이 많이 일어 났으나, 그 결과는 상기의 예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듯이 유감스럽 게도 많은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즉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 내재하는 여러 가지의 관계는 그 내용이나 양상이 매우 복잡 하여 건축적 결정주의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설명하고 예측 및 통제하려고 하는 접근방식으로는 필연적으로 그 어떤 심각한 오류 를 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후 주민 또는 이용자의 행태(user behaviour) 및 이용자의 욕구(user needs)를 반영하고자 하는 환경 및 사회심리 학적 접근이 대두되었고, 그에 따른 다양한 조사관찰의 기법에 의 거하여 거주환경의 계획 및 설계에 상당한 기여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접근방법이 모 색되었는데, 그 중에서 특히 Oscar Newman의 연구는 매우 주목 할 만하다. 그는 모던의 논리에 의한 무차별화된 외부공간과는 달 리 거주지의 외부공간이 영역적으로 위계를 갖는 구성이 이루어질 때, 주민들의 소속감과 질서감을 유발시켜 결과적으로 범죄예방에 매우 효과적임을 그의 저서 <Defensible Space>에서 보여주고 있다.2) 또한 Jane Jacobs는 그녀의 저서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에서, 모던의 논리에 의해 기능적으로 분리된 근대도시에서의 삭막함에 비하여, 여러 가지 기능들이 혼 재해 있는 구시가지나 구도심지에서의 활기나 다양성, 주민들간의 연대의식, 그리고 그로 인한 범죄예방효과를 ‘다양성의 신화(the myth of diversity)라고 하는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예측과 통제라는 모던의 프로젝트의 개념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

2) 그는 외부공간을 공적(public), 준공적(semi-public), 준사적(semi-private), 사적(private)으로 위계화함으로써 주민들의 장소적 반응과 소속감 또는 연대 의식을 유발하여 범죄예방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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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1> 경계의 기회(화살표)로 강화된 영역의 정의를 나타내는 그림

<그림 5-2> 공적공간에서 사적공간에 이르는 외부공간의 영역적 위계를 나타내는 Oscar Newman의 Defensible space의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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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태학적 관점의 대두 : 적응과 공존의 재인식

CIAM과 아테네헌장을 통하여 모던의 논리가 정립되자 근대 건축가들은 모던의 논리에 의해 도시전체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분과 함께 짧은 기간에 급격하고도 무자비한 건설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지난 반세기도 채 되지 않 은 기간에 우리는 과거 수 천년동안에 걸쳐 이룩해 놓은 양만큼의 건설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양적문제에 대한 집착은 그 어떤 한계가 없는 막대기와 탑의 모양을 한 건물을 나열하였고, 중심이 나 척추를 갖지 못한 광대한 교외지역을 확장시켰으며, 정신이나 성격이 없는 도시를 건설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973년 에너지 위기를 맞게 되자 기술적 발달과 그 맥을 같이 하면서 끝없이 발전할 것 같았던 근대도시와 건축은 그 러한 외적 상황의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그러한 도시와 건축은 에너지 의존도가 너무 높고 또 에너지 소모 가 너무 많다는 취약성이 드러난 것이다. 한여름과 한겨울 내내 냉난방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온통 유리로 감싸여 있는 대형건물, 엘리베이터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초고층건물, 자동차 나 대중교통수단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꼼짝도 할 수 없는 거대도 시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전기나 석유 및 가스 등의 에너지 공급이 중단된다면 그로 인한 끔찍한 혼란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 다.3)

따라서 검증되지 않은 논리에 의한 최선의 그 어떤 것이 아 닌 오랜 기간에 걸쳐 인정된 가장 덜 위험한 것 또는 가장 적응력 인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됨을 인식하여야 할 것 이다.4) 특히 어느 경우에도 사람은 실험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3) 그리하여 70년대에 대체에너지의 개발, 태양열을 이용한 난방방식, 그리고 지하공간의 이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4) 이점에 있어 민주주의는 최선의 정치제도가 아니라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한 정치제도 중 가장 덜 위험한 제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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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던의 건축가들은 검증되지 않은 논리에 의한 건축과 도 시를 건설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위험한 실험의 대상이 되 게 하였다는 윤리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자연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이용하여야 할 대 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공존하여야 할 파트너로서의 인식과 함 께(즉 身土不二) 다른 한편으로는 전근대도시와 토속 및 전통건축 에서 볼 수 있는 주어진 환경에 대한 적응성에 대한 관심 및 옛 사람들의 지혜를 재인식하게 되었다(즉 溫故知新). 비록 토속적이 라는 말이 투박하고 촌스럽게 들릴지는 모르나, 재료를 알뜰하게 써야만 했던 매우 엄격한 조건하에서의 최소한의 안식처라는 보편 적인 기풍으로 이해한다면, 토속적이라는 말의 본질적인 의미는 솔직하고 매우 근검하며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따라서 지속성과 즐거움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또한 사회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즉 그것은 과거와의 단절과 함께 오로지 새로움의 추구라는 모던 의 논리에 의해 외면당하였던 고유의 뿌리 회복과 지나간 역사와 의 연결을 꾀하고자 하는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제 발전과 진보라는 모던의 개념은 자연(넓게는 우리가 사는 지 구)과 인간, 그리고 개인과 사회간에는 상호의존성이 있다라는 유 기적이고도 생태학적 개념으로 바뀌었으며, 자연에 대한 책임 그 리고 인간 상호간의 교류와 어울림에 대한 의미의 재인식이 이루 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E. F. Schumacher와 Theodore Roszak 같은 사 람들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에는 필히 관계의 정도와 결합력의 정 도에 대한 스케일의 재검토와 재조정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것은 Roszak의 표현에 의하면, 앞으로의 모든 공공시설은 “스케일을 줄이고, 속도를 낮추고, 분산화되어야 하며, 그리고 민주화되어야 할 것”이 요구되어 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것이 외적 변화에 대한 위험성을 줄이고 적응력을 높이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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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대적 가치의 대두 : 획일화에서 다양화로

산업사회인 근대사회에서 정보화사회 또는 후기산업사회라고 불리는 포스트모던사회로의 전환기에 있는 우리는 이제 우리사회 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면할 수 없는 일련의 변화와 그 의미에 주 목해야할 것이다. 예컨대 획일적이고도 경직된 제도의 붕괴, 이념(

ideology)의 와해, 가치관의 변화 등이 그것이다. 건축과 도시에서 의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모던운동에 대한 반발이라고 할 수 있 는, 소위 포스트모던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모던의 지배 적인 개념인 실증적 합리, 경제성(즉 생산성) 그리고 기능성 등으 로 인하여 배제되었던 다양한 지역적 문화적 아이덴티티의 회복 및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 내재해 있는 외면할 수 없는 복잡 하고 다양한 감정적 관계의 회복 내지는 그 의의의 재인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의 진정한 대두배경은 소위 ’68혁명이라고 불리우는 프랑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사고의 등장과 밀접 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지나치게 팽창한 기능주의적 문명에 대한 깊은 반발, 그리고 단조롭고 획일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새로운 삶의 방식의 추구와 그에 따른 새로운 거주방 식에 대한 열망에 기인한다. 그것은 또한 각기 그 고유의 뿌리의 회복과 함께 지나간 역사와의 연결하고자 하는 욕구에도 기인한 다.

한편 컴퓨터의 놀라운 발달은 종전과는 매우 다른 생산방식 을 가져왔는데, 이러한 생산방식은 비교적 전형화된 모던의 생산 방식보다는 훨씬 더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고 고객의 취향에 훨 씬 더 잘 부합할 수 있는 방식이다. 대량생산과 반복생산은 부정 할 수 없는 모던의 기본원리중의 하나이나 고객의 취향이나 욕구 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스타일의 생산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 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즉 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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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의 제시와 자동생산체계 그리고 정교한 시장조사 및 예측기법 에 의해 다양한 스타일과 고객의 취향에 거의 응할 수 있기 때문 이다. 따라서 이러한 결과는 19세기 장인의 손기술에 의한 생산과 매우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혁신적인 통신 및 생산수단의 발전은 화상회의나 재택 근무 등으로 전통적인 주거체계를 다시 낳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 아 졌다. 그리하여 옛날의 마을을 연상시키는 공동체들이 옛 도시 를 연상시키는 도시를 중심으로 다시 모이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일차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집으로부터 빠져나갔던 온갖 기능 들이 이차산업혁명(즉 정보통신혁명)으로 인하여 다시 집으로 들 어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포스트모던의 건축과 도 시는 모던과는 다른 생활방식 및 그에 따른 거주방식을 표현하고 자 하였던 것이다.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의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건축비평 가 Charles Jencks는 그의 저서 <What is Postmodernism?>에 서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

- 대량생산에서 부문별 생산으로(from mass-production to segmented production)

- 중앙집권적 권위에서 분산화된 다원주의로(from centralized authority to decentralized pluralism)

- 소수 스타일에서 여러 장르로(from few styles to many genres)

- 일률적인 것에서 다양한 감성의 표출로(from consistent to kaleidoscopic sensibility)

- 배제에서 포함으로(from exclusion to i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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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의 내용과 그 의미

“오로지 현재만을 생각하기 위해 과거를 외면한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심지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 하는 것은 위험한 환상이다. 현재와 과거의 대립은 어리 석은 것이다. 미래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으 며,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 미래는 우리가 건설하는 것 이기에 모든 것 심지어는 우리의 목숨도 바쳐야 한다.

그러나 주기위해서는 우리는 소유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그리고 우리가 삭이고 융 화시키고 재창조한 소중한 그 어떤 삶, 그 어떤 것만을 소유할 뿐이다. 인간 영혼의 모든 욕구 중 과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것이다.”

- Simone Weil -

엄밀히 말한다면, 포스트모던의 주의(主義)는 존재하지 않는 다. 다만 모던의 주의에 대한 반발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건축가 들은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는 모던의 교리를 거부하고 바로크의 연계성의 원리를 다시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더 이상 공 허한 녹지공간에 고립된 건물을 세우지 않고 도시의 구성조직 속 에 건물을 긴밀하게 짜 넣었다. 입면에 있어서 창은 이제 더 이상 아무렇게나 산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식에 의해 강하게 상호 연 결되어 있게 된다. 그들은 기능적인 문제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 고 상징에 부단한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일상적인 평범한 건축이 아닌 기념적 건축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과거의 건축과 도시에 존재하여 왔던 구성의 원 리를 재발견하였다. 즉 전체를 이루는 모든 부분들은 상호간 매우 엄격한 법칙에 의해서 연계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법칙의 첫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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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이고 둘째는 한계이다. 이러한 입장은 도시적 스케일에서는 새로운 도시구성조직의 연구로, 그리고 건축적 스케일에서는 새로 운 기념성의 재발견으로 구체화되어졌다.

<그림 6-1> 1981년 파리에서 열린 ‘과거의 현존’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위한 문 (건축가 : 훼르난도 몽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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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성체로서의 도시의 재인식

모던이 과거와의 단절과 함께 ‘무에서의 창조’를 추구하였다 면, 포스트모던은 과거의 도시에 눈을 돌렸는데, 그 이유는 도시란 단순히 설정된 기능간의 합리적 관계의 표현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장소적 특질과 그로 인한 정서적 관계 역시 중요함을 재인식함과 동시에, 또한 과거의 도시(즉 전 근대도시)에서는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그 어떤 형태적 및 구성적 특질 그리고 경관적 특질이 있음을 재발견하였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이제 포스트모던의 건축가들은 바람직한 도시의 형 태와 그 구성원리를 재발견하고 그것의 특질을 회복하고자 하였 다. 왜냐하면 과거의 모범적인 도시의 예를 살펴볼 때, 그 특질은 결코 기능적인 것만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기능체가 아니 라 오랜 세월을 두고 주어진 여건에 적응하면서 이루어진 집단적 삶의 표현으로서의 하나의 구성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스트모 던 건축가들은 모던에서처럼 기능체로서의 도시가 아닌 구성체로 서의 도시에 주목했는데, 그 이유는 구성적 특질은 공간이 단지 실용적 및 기능적 요구에 의해 분배되는 경우에 생기는 것이 아니 라 질적 요구에 의해 짜여지는 경우에 생기기 때문이다.

도시구성이란 도시에 그 어떤 형태적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다. 따라서 도시의 대상물들은 모던에서처럼 나열되거나 우연적 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조절되고 이해될 수 있는 형태가 되는 것 이다. 구성의 어원(compose : put together, make with)에서 구 성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즉 구성요 소)을 갖고 그것들의 관계가 조화로운 전체가 되도록 짜는 것’임 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구성의 요소는 그 자체로서는 그 어떤 의 미가 없으며 구성적 관계속에서의 그 역할에 의해 그 의미와 가치 가 부여된다.

건축구성과 도시구성은 부분과 전체를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 는 그 기본 원리는 같으나, 이 두 구성간에는 시간적 리듬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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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즉 건축의 수명은 도시 보다 매우 짧아 그 변화의 주기가 빠름에 비해 도시는 느리게 변 한다. 따라서 건축구성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되거나 또는 다른 것으로 대체될 하나의 건물 이미지의 설정이 그 목적이 지만, 도시구성은 그렇게 변화하는 건축의 일련의 이미지들을 수 용할 수 있는 과정을 설정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러므로 도시 구성의 미덕은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즉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하나의 전체로 하는 데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언제나 구성요소간의 갈등과 모순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구성요소간의 갈등과 모순을 화해시키고 해결하는 것이 도시구성 의 본질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도시구성은 공간적 형상화뿐만 아니라 시간, 즉 도 시의 점진적인 형성과정을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도시의 변화와 발전을 흡수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근본구조가 되는 점진 적인 형성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도시형태나 그 결 과로서의 아름다운 경관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의 도시의 생성, 발전, 그리고 변화의 논리적 과정을 재발견 하고 회복하는 데에 있다.5)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거의 것을 다 시금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다른 것을 구상하기 위 해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순수한 창조가 아니라 경험 또는 선례로서 역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모던에서처럼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연속성 속에서의 연장이나 재 조작이 가능한 열린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시간과 공간 속에 서 동시에 생각하는 태도와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5)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인의 저서 <도시구성, 충북대학교출판부, 2013>을 참조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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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시조직의 회복

도시의 형태적 및 구성적 특질의 재발견과 함께 이제 포스트 모던 건축가들은 길과 광장을 따라 촘촘히 짜여 진 건물들을 설계 함으로써 도시조직(urban tissue)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도시에 대 한 이러한 개념은 해방된 공간에 고립된 건물을 세우고자 했던 모 던의 이론과는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성벽 안에 치밀하게 짜여지고 기념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옛 도시의 전통 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특히 건축가 Leon Krier는 ‘도시의 사회적 문화적 복잡성은 필연적으로 도시의 물리적 구조와 밀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전제 하에, 도시에서의 빌딩블럭(building block)의 길이와 폭은 유형학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크기이어야 하고, 이 러한 빌딩블럭은 수평적이고도 다방향적인 도시공간의 망(즉 도시 조직)을 이루는 가로와 광장이 가능한 한 많이 생기게끔 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 점에 있어, 우리는 지역지구제(zoning)에 의한 ‘조각난 근 대도시(fragmented city)’와 빌딩블럭에 의해 짜여지는 ‘조각으로 구성되는 옛 도시(city composed of fragments)’간의 차이를 이 해하여야 할 것이다. 즉 전통적인 도시에서의 조각, 즉 빌딩블럭은 도시의 구성요소가 되는 하나의 형태이다. 된다. 그러므로 빌딩블 럭의 크기와 모양은 도시의 성격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와는 반대로 지역지구제에 의한 근대도시에서의 블록(즉 기능적 구획)은 그 어떤 형태가 없다. 이 점은 이미 제4장에서 Leon Krier가 빌딩블럭의 크기변화과정에서 잘 보여주었던 것처 럼, 지역지구제에 의한 근대도시에서의 구획은 그 하나의 크기가 과거 중세도시의 크기만 하다는 것을 상기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독립적인 블록은 결코 도시로 발전되지 않는다. 그것은 흔히는 고리모양의 도로망에 의해 한정 되는 고정되고 닫힌 모양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구성에서 그 구성요소는 고정된 기능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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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기계부품과 같은 것이 아니라, 요소들간의 관계나 전체적 상 황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빌딩블럭의 이 같은 다양한 역할은 바로 도시에서의 도시조직의 역할이며, 이러 한 역할로 인하여 도시성 또는 도시적 분위기가 이루어지는 것이 다. 즉 도시조직의 회복은 모던에 의해 상실된 다양한 도시공간과 그곳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잉태함으로 써, 복잡하고 다양한 도시에서의 일상적인 삶을 탄력성있게 수용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3. 건축형태의 회복

그러나 이러한 연계성으로의 회귀 그 자체만으로는 포스트모 던의 이론적 주의를 구성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론적 큰 공백 만을 입증하는 셈이었다. 모던에 의해 정의된 제 원리들을 거부하 는 포스트모던 건축가들한테는, 그러므로 그들의 작품이 의지할 수 있는 새로운 뿌리를 찾아야만 했다. 따라서 포스트모던의 역사 는 이러한 새로운 뿌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몇몇 건축가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의 건축에서 쓰였던 기둥, 주두(柱頭), 박공, 장식 등을 가지고 전통을 재발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의 발견은 매우 형식적 인 상태에 머물렀다. 즉 초기의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과거 건축 의 외양에서 착상을 얻었을 뿐, 그것을 출현하게 하는 이유나 논 리적 근거에서 출발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비가 오지 않는 지역에 지붕을 설계하였고, 철근콘크리트로 된 건물에 돌로 된 궁륭천장을 하였고, 탁 트인 조망이 없는 곳에 파노라믹 한 수평창을 설치하였고, 정원이 없는 필로티를 세웠던 것이다.

또한 근대 건축가들이 기능과 구조를 형태보다 더 중시했음 에 반하여,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그와는 정반대로 하였다. 그러 나 이러한 사실이 그들의 작품의 흥미를 없애지는 않았는데, 이는 로마건축이나 고전건축만큼이나 역시 흥미있는 바로크건축에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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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작품이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의 입장은 장식에 부여된 새로운 중요성을 통하여, 그리고 구조에 그 중요성을 훨씬 덜 부여함으로써 구체화되어졌다.

그런데 과거에 대한 확신과 미래에서의 새로운 뿌리내림의 추구는 건축가들에게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가져왔는데, 그 하나 는 먼 전통으로부터 착상을 얻고자 하는 낭만적인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가까운 전통으로부터 착상을 찾고자 하는 합리주의 적 태도이다. 전자의 경우는 이후 고전적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로 이어지고 있으며, 후자의 경우는 모던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신모던(Neo-Modern)의 추구로 이어진 다. 먼 전통으로부터 착상을 얻고자 하는 낭만적 태도의 가장 유 명한 예는 Ricardo Bofill의 거대한 작품들에서 볼 수 있으며, 가 까운 전통으로부터 착상을 찾고자 하는 합리주의적 태도의 가장 유명한 예는 Henri Ciriani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Henri Ciriani 는 지금이야말로 1930년대의 근대건축이 과거의 여러 주요 건축 적 운동과 연결될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 여 Le Corbusier와 Bauhaus의 온갖 건축어휘들을 - 예컨대 입 방체적 볼륨, 필로티, 옥상정원, 경사로와 난간, 파노라믹한 수평 창 등 -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다시 취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우리는 포스트모던 건축에서 화려한 교회와 바로크 궁전같은 건물들이 출현함과 동시에 또한 포스트고딕 성채 와 포스트클래식 저택의 매우 검소함이 출현함을 볼 수 있는 것이 다. 즉 한쪽은 정열이고, 다른 한쪽은 이성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추구하는 바가 같고 그 방법 또한 같은 두 가지의 형태적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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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2> 인공의 강뚝위에 세워진 200세대의 주거건물 (건축가 : 리카르도 보필)

<그림 6-3> 마른느 라 발레에 있는 주거건물 (건축가 : 앙리 시리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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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념적 건축과 장식의 부활

1) 기념적 건축

모던의 역사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즉 이론적인 것 이 많이 출현하였으나 그것의 실현은 적었던 1930년대와 이론적 발전은 적었으나 많은 건설이 이루어졌던 1960년대로 구분된다.

사고하는 시기와 행동하는 시기간의 이러한 교체는 건축에 관한 한 하나의 추세인 바, 비활동적인 시기에는 그간의 축적된 아이디 어로부터 건설을 하고, 정신없이 활동하는 시기에는 그간의 축적 된 경험으로부터 새로운 사고를 상상한다.

1930년대의 경제위기의 기간동안에는 대량생산이라고 하는 면과는 거리가 있었다. 실제로 그것은 당시의 경제적 여건으로서 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새로운 이론을 실험할 수 있는 계 기를 주는 예외적이고 이례적인 건물의 생산에 그 방향을 맞추었 던 것이다. 그러므로 1930년대의 건축가들은 도시를 건설하고자 하였으나 그러한 사회적 여건으로 인하여 그들이 바라는 도시를 구성하게 될 건물만을 실현시켰을 뿐이며, 대량생산을 바랬으나 단지 근대건축의 원형(原型)만을 창안해 냈던 것이다.

반면에 1960년대의 이례적인 팽창의 기간 동안에는 외면할 수 없는 다수의 일반 대중을 위한 건축에 관심을 두었고, 긴급을 요하지 않았던 실험적인 건물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따라서 기념비적인 것들을 건설할 준비나 여건이 성숙된 당시로서는 건축 가들이 도시전체를 건설하고자 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경제위기의 시대에는 평범한 도시에 기념비적인 건축을 세우고자 했던 반면에 팽창의 시기에는 기념적 인 거대한 도시에 평범한 건축을 짓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기념 적인 거대한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거창하기 때문에 기념적 인 건축이 존재할 수 없고, 평범하고 수수한 자그마한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다 너무 작고 평범하기 때문에 역시 평범한 건축이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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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할 수 없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이례적인 것과 일상 적인 것 간의 변증법적 관계는 언제나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양적인 문제에 집착한 모던은 결국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그 리고 비개성적인 건축물을 낳게 하였다. 그리하여 똑 같은 단위세 포를 무수히 쌓아 넣은 가대한 수평/수직의 막대기를 세우게 되었 고, 주거는 이러한 이름 없는 집합체 속에서 단지 숫자화하게 되 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포스트모던의 건축가들은 효용적인 것에 비효용적인 것을 그리고 기능에 상징을 첨가함으로써 그들의 주거 를 개성화 시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례적이고 비효용적이며 상 징적인 것의 정수는 바로 기념물인 것이다.

양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됨에 따라 이제 많은 사람들이 성냥갑 같은 주거가 아니라 궁궐 같은 저택이나 개성이 있는 주거 에서 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성채의 형태로 된 별장과 기념물의 형태로 된 건물을 생각해 냈다. 그러 나 그들은 결코 임의적으로 그러한 형태를 생각해 낸 것은 아니 다. 그것은 단지 사회전체의 요구에 응한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기념이란 단어의 의미가 어원적으로 볼 때 ‘무엇을 상기시키는 것’이므로, 이러한 사회전체의 요구란 바로 ‘집단적인 기억(collective memory)'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념물은 바로 집단적 기억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실체이기도 하다. Aldo Rossi는 그의 책 <The Architecture of the City>에 서 “도시 그 자체는 도시 주민들의 기억이다. 기억이 어떤 사실이 나 장소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도시는 집단적 기억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도시형태의 원동력이 되는 요소로서의 기념물 그리고 도시의 지속적인 발전에 있어 기념물의 역할을 강 조하였다.

도시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과거와 미래간의 결합을 실현한 다. 즉 그러한 생각은 기억이 한 개인의 일생을 가로지르듯이 집 단적 기억은 도시를 가로지른다. 그것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언 제나 현실에 형태를 부여하여야만 할 것이며, 동시에 현실에 순응 해야만 한다. 그러한 형태는 기념물과 같은 독특한 도시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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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것으로부터 갖게 되는 생각 속에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왜 고대인들 에게는 도시가 신화 속에서 그 기원을 갖게 되는 가에 대한 이유 이기도 하다.

2) 풍부한 장식

보다 높고 넓은 공간을 갖는 건물을 짓고자 하는 인간의 열 망은 그러나 언제나 구조와 시공기술에 의해 제약을 받아 왔다.

그리하여 고대 로마 이후 부단히 구조와 시공기술의 발전이 이루 어지면서 그 이전에는 생각할 없었던 규모의 건물과 공간을 실현 할 수 있었다. 근대건축 역시 철근콘크리트 및 철골구조와 그에 따른 시공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모던 역시 막대기와 탑의 형태에서 볼 수 있듯이 그 형태에 있어 구조적 및 시공기술적 제약을 여전히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규모나 형태의 건물도 가능할 정도의 거 의 완벽한 수준의 기술을 지니게 되었다. 그 결과 이제 포스트모 던 건축가들은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그 어떤 형태도 자유롭 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시공기술을 극단적으로 표현하 거나 아니면 거의 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을 감추기도 하였 다. 그리하여 몇몇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기술적인 것을 새로운 건축을 고안해내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것은 현란스러운 교회나 바로크의 궁궐과 비교되는 조르쥬 퐁피두센타를 낳게 하였다. 이 와는 반대로 몇몇 다른 건축가들은 이제 그들이 보기에는 단지 형 태를 구현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기술을 전적으로 잊게 했는데, 이는 19세기의 몇몇 기념물과 비교해야 되는 Bofill의 궁궐같은 건물을 낳게 하였다.

모던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입면과 함께 온갖 종류의 장식을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모던의 건축가들은 건물 그 자체가 자율적인 볼륨에 자율적인 개구부를 배열하였다. 그러나 포스트모 던의 건축가들은 개구부를 건물 전체의 볼륨과 관련하여 입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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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함으로써 그 어떤 연계성을 다시 갖게 하였다. 즉 그들은 바 로크 시대의 필수적 역할의 하나이었던 장식의 원리를 재발견하였 던 것이다. 이러한 장식은 단지 건물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 고자 쓰인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장식은 또한 건물에 의미를 부 여함과 동시에 건물이나 도시의 단일성 또는 통일성을 주는데 기 여하기 때문이다. 즉 장식은 연계성의 도구인 셈인 것이다. 따라서 장식은 이제 건축적 구성의 새로운 도구가 되었다.

그런데 포스트모던의 이러한 장식은 끊임없이 두 가지 경향 에 의거하였는데, 그 하나는 과거의 건축요소인 박공, 기둥, 그리 고 아케이드 등을 자유로이 갖다 쓰는 낭만적이며 자유분방한 역 사주의적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엄격하고 검소한 근대건축의 기 본 정신은 존중하되 재해석을 통하여 적절하게 장식을 도입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림 6-4> 아브락사스 광장, 파리 (건축가 : 리카르도 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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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5> 파블로 피카소광장, 파리 (건축가 : 야노브스키)

<그림 6-6> 조르쥬 퐁피두센타, 파리(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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