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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cial Construction of Fengshui Place - A Case of ‘Ubokdong’ in Songnis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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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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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적 장소의 사회적 구성 - 속리산 ‘우복동(牛腹洞)’을 사례로 -

권선정*

The Social Construction of Fengshui Place - A Case of ‘Ubokdong’ in Songnisan -

Seonjeong Kwon*

이 논문은 2017년 9월 경상대학교 명산문화연구센터가 주관한 『속리산 우복동의 산림인문』에서 발표한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임.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초빙교수(Visiting Professor, Department of Future Prediction, Dongbang Culture Graduate University),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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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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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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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본고에서는 장소의 사회적 구성 차원에서 지리산 청학동, 가야산 만수동과 함께 동천, 복지, 길지, 승지 등 으로 널리 알려져 온 속리산 우복동을 사례로 그것이 풍수적 장소로 의미 구성되는 과정을 탐색해 보았다. 우복 동이 풍수적 장소로 의미 구성되는 과정과 관련해 두 가지 장소화·탈장소화 과정에 주목하였다. 먼저 조선중기 이후부터 지식엘리트나 낙향한 권력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동천, 복지, 구곡 등 동양적 이상향으로서 우복 동의 장소 의미 구성이다. 다음으로 18세기말에서 19세기를 거치며 기존에 지식엘리트들에 의해 구성된 동양적 이상향으로서 우복동이 풍수적 장소로 탈장소화되는 과정이다. 이것은 기존의 사회 지배층과 대비되는 일반 백 성들의 길지 낙토에 대한 관념이나 조선후기 정상화되는 명당풍수가 투영된 ‘현실적 이상향’이자 풍수 명당으로 서 우복동이 새롭게 장소화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어 : 명당풍수, 사회적 구성, 우복동, 의미, 이상향, 장소, 장소화

Abstract : In this paper, I have explored the process of constructing a meaning as a fengshui place in the case of Ubokdong in Songnisan which has been famous for the oriental utopia and the traditional ideal place like

‘dongcheon’, ‘bokji’, ‘gugok’ with Cheonghakdong in Jilisan and Mansudong in Gayasan from the perspec- tive of the social construction of place. In regards to the process of constructing the meaning of Ubokdong as a fengshui place, I focused on two stages of Ubokdong’s becoming places. First stage was related to the construction of Ubokdong as the oriental ideal place which was led by knowledge elites since the mid Jo- seon Dynasty. Next was just substitution process which Ubokdong as an oriental ideal place had become a fengshui place from the end of the 18th century through the 19th century. Ubokdong as a fengshui place is a ‘realistic utopia’ projected with the idea of the long-reaching chaos and wish of ordinary people compared with the existing social ruling class. Fengshui as a cultural code had been involved in such process.

Key Words : fengshui, meaning, place, social construction, Ubokdong, u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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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공간은 인간 삶의 물질적 토대이자 동시에 다차 원적인 의미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역동적인 장소 (place)이다. 그렇기에 공간은 그것에 주어진 지형, 기후 등의 자연환경이나 입지적 특성, 규모 등 형태상 드러나는 특징이 동일할지라도 그것이 소비되는 사 회의 문화적 코드나 인간의 의도, 시대상황 등에 따라 다양하게 의미가 구성될 수 있다. 이른바 공간, 장소 는 끊임없는 장소화, 탈장소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 다. 장소가 본질적으로 불변하는 특성을 지닌 물리적 실체가 아닌 ‘과정(process)’으로 접근되어야 하는 이 유이다.1)

본고에서 관심 갖는 풍수적 장소도 예외는 아니다.

소위 명당풍수(明堂風水)2) 상 특정한 입지조건을 갖 춘 명당 국면의 선택, 그리고 국면에 인위적 변화를 가하는 비보(裨補)나 단맥(斷脈), 형국(形局) 부여 등 의 조치도 결국은 풍수를 바탕에 두고 이루어지는 장 소의 의미구성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풍수상 명당을 찾는다거나 비보 또는 단맥을 통해 명당 국면의 특성 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본질적 차원에서 “맞다”, “틀리 다”,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라는 식으로 접근될 일 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풍수적 장소로 구성 되는 과정에 주목하게 되면 그러한 장소와 관계되는 인간은 누구이고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상이나 문 화적 코드, 장소 의미구성 과정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 는 의도 등은 무엇인지로 관심이 바뀔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장소의 의미 구성에 관심 갖는 입장은 장소 마다 가지고 있는 불변의 본질적 속성이나 실체, 기 왕에 당연시 되어 온 믿음이나 신화(myth) 등에 대 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사회적 구성(social construction)’ 차원의 논의 안에서 더욱 흥미롭게 수행될 수 있다. 여기서 사회적 구성 논의는 전통 철 학 내에서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 그리고 정치 적·철학적 차원에서의 반박이나 비판으로서 구성주 의(constructionism) 등 다양하게 구분될 수 있는데 (Hacking, I., 1999), 세계나 환경, 지식, 문화, 믿음 등에 대한 다양한 비판적 이해의 장을 열어준다는 점

에 그 의의가 있다. 가령 가장 인위적인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 자연에 대해서도 사회적 구 성 논의를 통해 전통적으로 당연시되어 온 자연에 대 한 일반적 관념이나 정치적으로 구성된 자연의 이데 올로기적 측면, 자연을 사회적 실재로 구성하는데 있 어서의 언어나 담론의 역할 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다(David Demeritt, 2002; James D. Protor, 1998).

이와 관련해 본고에서는 지리산 청학동(靑鶴洞), 가야산 만수동(萬壽洞)과 함께 동천(洞天), 복지(福 地)이자 길지(吉地) 등으로 널리 알려져 온 속리산 우 복동(牛腹洞)을 사례로 그것이 풍수적 장소로 의미 구성되는 과정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우복동 을 풍수적 장소로 보는 것은 그동안 우복동과 관련해

‘동천’, ‘복지’, ‘길지’, ‘승지(勝地)’, ‘명당(明堂)’ 등으 로 이해해 온 세간의 현재적 관념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 우복동과 관련된 여러 언표들의 사상적 범주는 차치하더라도 우선 우복동이라는 명칭 자체가 이미 한국 풍수의 특징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 풍수 형국 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지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 복동이 정확히 어느 곳인지, 주어진 우복형(牛腹形:

누워 있는 소의 배 모양) 국면을 구성하는 관련 풍수 형국이 어떻게 배치될 수 있는지 여부를 떠나 우복동 은 풍수적 장소로 접근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사 회적 구성 차원에서 우복동이라는 장소가 풍수적 장 소로 의미 구성되는 과정이 본고의 주된 관심사이다.

2. 장소의 의미 구성과 문화적 코드로서 풍수

사회적 구성 차원에서의 장소에 대한 관심은 그것 의 형태적 측면 외에 장소화, 탈장소화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 다양한 의미영역이다. 앞서 말했듯이 장소 는 불변의 본질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역동적인 과정 (process)이고 또 장소 의미는 보물찾기의 대상처럼 장소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장소화·탈장소화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 실재(real- ity)이기 때문이다. 결국 장소(또는 장소 의미)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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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구성 논의는 “특정 장소와 관련된 의미가 무 엇인가?”보다는 “그러한 장소(또는 장소 의미)가 어 떤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가?”하는 의미론적 물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사회적 구성 차원에 서 풍수적 장소를 접근할 때 특정 장소가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풍수적 의미보다는 풍수적 장소로 장소화·탈장소화되는 과정이 주된 관심사가 된다.

먼저 장소화·탈장소화로 대변되는 장소의 의미구 성 과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찍이 인본주의 지리학(humanistic approach)에서 장소는 물리적 공간(physical space)과 구분되는 의미체로 접근되 었다. 가령 랠프(Relph, E., 1976)나 투안(Tuan, Yi- Fu, 1977)은 공간 또는 장소에 대해 획일화된 가정 을 전제하는 논리실증주의적 방법론을 비판하며 현 상학적, 경험적 관점을 도입하였는데 인간의 신체에 서부터 방·집·근린·마을·도시·국가·대륙에 이르 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공간과 장소 의미를 해석하 기 위해 인간의 복잡한 ‘경험 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투안은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이다. 차별화되 지 않았던 공간이 장소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 공간을 더 잘 알게 되고 또 가치를 부여하게 되면서 부터이 다(Tuan, Yi-Fu, 1977, 6).’라고 하여 현상과의 경험 관계를 통한 장소화·탈장소화 과정에 주목하였다.

소위 인간 주체의 경험을 통한 추상적 공간(abstract space)의 장소화·탈장소화라고 할 수 있다.

공간적 차원에서 이러한 인간의 구체적인 경험 대 상은 장소에 충전되어 있는 제반 물질적 경관이나 언 표적 요소, 지리적 재현물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동일한 장소를 구성하는 경관 중 어떤 것을 경험하는 지에 따라 장소화되는 과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한 같은 경관이라 하더라고 인간 주체의 감각을 통한 실제 경관의 경험 그리고 지명·지역 브랜드슬로건 등의 언표, 지도·사진 같은 재현물의 경험을 통해 이 루어지는 장소 의미구성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동 일한 장소라고 하더라도 경험하는 구체적 경관에 따 라 다양하게 차이나는 장소로 장소화·탈장소화되는 것이다. 최근처럼 온라인 상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가 일상화된 시대 관광지에 대한 사전 정보 검색 차원 의 장소 경험과 실제 현지에서의 장소 경험은 연속적

인 탈장소화 과정이라고 할 정도로 동일하게 진행되 지 않는다. 본고에서 사례로 삼은 속리산 우복동이라 는 장소에 대한 경험도 구체적으로 그것을 구성하는 다양한 물질적, 언표적 경관들에 대한 경험을 통해 이 루어진다고 할 때 어떤 경관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우 복동의 장소 의미 구성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우 복동이 풍수적 장소로 장소화 또는 탈장소화 되는 과 정과 관련된 물질적, 언표적 경관에 주목해야 하는 이 유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주체가 수행하는 경험(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의 바탕에는 일종의 의미를 공유하게 하는 맥락(con- textual meaning), 소위 문화적 코드(cultural code) 나 사회구조 등이 작동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일상에 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식사 그리고 음식, 밥상을 떠 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예는 충분할 것 같다. 같은 음 식(경관)을 통해 구성되는 밥상(장소)의 형태에서부 터 심지어 그 밥상차림이나 식사 예절 등의 의미는 일 정한 경향성과 더불어 다양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 다. 이것은 식사(음식, 밥상)를 경험하는 인간 주체에 게 영향을 미치는 자연환경, 문화적 코드, 사회·경제 구조 등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 주체의 경험 과 관련된 공통의 약속체계 또는 관계 맺기 방식이 하 늘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처럼 인간의 공간적 행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장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물질적, 언 표적, 재현적 요소들이 서로 간에 이웃관계(계열화)3) 를 이루는 특징적인 관계 맺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계열화 즉 이웃관계는

‘배치’라고 하는데 그것은 지표상의 개별 요소들이 단 순히 여기저기 분포해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일정한 방 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구조주의나 후 기구조주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이웃관계 즉 배치나 계열화가 문화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코드나 구조 안 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또 그러한 공간적, 시간적 차원 의 배치나 계열화를 통해 의미가 발생한다는 것에 주 목하고 있다(이정우 역, 1999, 62-120).

배치나 계열화를 통해 장소화·탈장소화를 보면 그 것은 장소를 구성하는 자연환경과 인위적 요소,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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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경관과 언표적 재현물 간의 관계 맺기를 통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읽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구성 과정과 관련되는 문화적 코드 나 구조의 변화(시간적) 및 차이(공간적)에 따라 기존 에 장소화 되었던 장소는 다른 장소로 탈장소화 되고, 동시에 탈장소화 과정은 또 다른 장소화 과정을 수반 한다. 그 과정에서 장소를 구성하는 다양한 물질적, 언표적 경관의 형태적 특성은 변화될 수도 있고 그렇 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앞서 말한 장소 의미 구성을 위한 인간 주체의 경험은 문화적 코드나 구조를 공유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수행하는 다양한 관계 맺기 과 정 즉 경관과 장소의 배치, 계열화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볼 때 우복동이 풍수적 장소로 장소 화 또는 탈장소화 되는 과정은 풍수라는 문화적 코드 를 관계 맺기의 방식으로 공유하는 상황에서 우복동 을 구성하는 다양한 물질적, 언표적 경관들을 특징적 인 방식으로 배치 또는 재배치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배치를 통한 장소 의미구성 과정은 풍수가 우복동의 풍수적 장소화 과정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 하는지 제시해 준다. 풍수는 우복동의 장소화·탈장 소화와 관련해 우복동이라는 장소를 구성하는 다양 한 물질적, 언표적 경관들을 배치시키는 문화적 코드 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필자는 기왕의 연구(권선정, 2011; 2017b)에서 ‘풍수’ 또는 ‘지리’ 개념의 용례나 대표적인 지리적 재현물인 고지도 상의 공간구성·방 위 배치·지명 특성 등에 주목하여 풍수가 근대 이전 공유되었던 공간에 대한 문화적 코드임을 제시한바 있다. 또한 한국 풍수의 전개 상 조선후기는 현재 풍 수하면 흔히 떠올리는 중국의 이론풍수 위주의 ‘명당 풍수’가 기존의 ‘국가적 차원의 비보풍수(裨補風水)’

를 대체하며 정상화되는 시기임을 드러낸 바 있다(권 선정, 2016, 61-62).4) 결국 사회적 구성 차원에서 우 복동을 풍수적 장소로 접근하는 것은 풍수를 문화적 코드로 하여 의미 구성된 장소텍스트에 대한 해석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3. 우복동의 입지 및 공간적 범위

우선 우복동이라는 장소의 풍수적 의미를 읽어보 기 위해 그것이 실재하는 마을인지 아닌지, 또 실재한 다면 하나의 마을 단위인지 아니면 일정한 공간적 범 위를 가지는 권역 수준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해 지는 여러 종류의 우복동 관련 문헌들을 보면 우복동 이라는 마을은 과연 실재하는 인간 삶터로서의 마을 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가령 정약용(1762~1836)의

「우복동가(牛腹洞歌)」에 “속리산 동쪽에 항아리처럼 생긴 산이 있는데 예로부터 그 안에 우복동이 숨어 있 네. … 이 세상에 우복동이 어찌 있을 수 있으리.”5)라 거나 이규경(1788~1856)의 「우복동변증설(牛腹洞 辨證說)」에 “우리나라에도 도화원과 유사한 곳이 있 으니 그 이름이 우복동이다. 그곳에 가 살기를 바라 는 자들은 간절히 원하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그래서 온갖 방법으로 찾아 나서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6)라고 하고, 또 「우복동진가변증설(牛腹洞眞假辨證 說)」에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동천복지는 남쪽의 두 류(청학동)와 북쪽의 우복동이 전해진다. 그런데 단 지 그 명칭만 있을 뿐 실제 그 공간은 없다.”7)라고 하 여 우복동이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실제 우복동은 존재하지 않거나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 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우복동에 대한 여러 문헌 기록에서는 우 복동이 실재한다는 전제하에 그곳까지 가는 여정, 주 변의 환경적 특성, 관련 인물들의 전해지는 이야기, 심지어 우복동의 진위 여부나 풍수적 형세까지 거론 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은 앞서 말했듯이 찾을 수 없 다는 결론으로 끝나고 말지만 말이다. 이와 관련해 우 복동을 실재한다고 보고 오히려 그것이 하나의 마을 단위인지 아니면 특징적인 산수 조건을 갖춘 공간적 권역인지의 문제로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왜냐하 면 우복동이라는 지명을 구성하고 있는 ‘동(洞)’이라 는 명칭이 공간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체제 상 ‘동’은 현재 도시 내 최하위 행정단위를 지칭하고 있고 조선시대에도 ‘리 (里)’와 함께 자연마을이나 몇 개의 자연마을이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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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최하위 행정단위를 일컬었다. 행정체제 상 이와 같 이 동을 구분하게 되면 우복동은 하나의 마을이거나 서로 인접해 있는 작은 마을들이 함께 모여 있는 마을 단위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마을을 의미하는 ‘동(洞)’은 그 한자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같은 물을 공유하는 장 소(水+同)’를 의미한다. 지표환경 상 인간 정주에서 같은 물을 공유한다는 것은 결국 동일한 하천 유역에 마을들이 속해있음을 말하는 것이다(이도원, 2003, 12-13). 이와 관련해 경북 상주시 화북면의 상오리·

장암리·용유리와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일대를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이들 마을은 백두대간의 속리산권에 속하는 고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상오리를 지나 북류 하는 용유천과 장암리의 입석천 그리고 두 하천을 합 류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영강의 유역권에 속한다(그 림 1).

이렇듯 우복동을 하나의 마을단위로 볼 것인지 아 니면 그림 1에서처럼 상오리·장암리·용유리·내서 리 등 여러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공간 권역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우복동의 입지 및 그 공간적 범위 그리 고 우복동의 장소 의미도 다르게 읽혀질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우복동을 언급하고 있는 여러 문헌 상 우복동의 위치와 관련된 내용 서술을 통해 이와 같이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 우복동의 입지 및 공간 범 위를 추정할 수 있다.

먼저 정약용의 「우복동가」에 “속리산 동쪽에 항아 리처럼 생긴 산이 있는데 예로부터 그 안에 우복동이 숨어 있네.”라 하고 이규경의 「우복동진가변증설」에

“이곳에서 상주부 읍치까지는 80~90리쯤 되고 괴산 군 읍치까지는 100리나 된다. 안동네와 바깥 동네 모 두 상주 땅이라고 한다. 또 이 동네 40리 밖에 회덕송 씨의 정자와 승지 임천상의 가장이 있는데 이 동네가 속칭 우복동이라고 하였다.”라거나 「우복동노정기」

에 “대저 속리산, 청화산, 도장산 세 산중에는 인적이 닿지 않은 마을이 많이 있다. 이른바 우복동이라는 곳 도 이 산속에 있을 따름이다.”8)라고 하여 우복동이 깊 은 산중에 위치한 하나의 마을로 보고 있다.

그에 반해 이규경의 「우복동변증설」에는 “우복동 은 세 개 도(三道)가 만나는 경계에 있다. … 영남의

상주목과 호서의 청주목을 경계로 하고 또 영남의 문 경현과 호서 연풍현(현 괴산군)을 경계로 하기 때문 에 삼도봉이 있다. … 이것은 바로 충주 남쪽, 상주 북 쪽, 문경 서쪽, 청주 동쪽 땅이라고 한다. … 상주 서 쪽, 문경 북쪽, 연풍 동쪽에 우복동이 있다.”라 하고 무명씨의 「우복동기(牛腹洞記)」에는 “우복동은 천황 봉이 주산(主)이고 주흘산이 안산(按)이다. 문경, 함 창, 상주, 청주, 연풍, 괴산, 보은, 충주 여덟 고을의

그림 1. 우복동 일대의 자연환경과 마을

그림 2. 조선시대 행정구역 상 우복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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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데 청주의 남쪽, 문경의 서쪽, 충주의 남쪽이다 (화북면지편찬위원회, 1992).”라 하여 보다 거시적 수 준에서 우복동의 위치를 기술하고 있다(그림 2 참조).

하나의 마을 위치를 서술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 도로 구체성이 많이 결여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우복동을 인접 여러 군·현과 경계를 잇대고 있는 공간 권역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 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상 상주목, 청주목, 문경현, 연 풍현이 경계를 잇대고 있는 지역(그림 2의 점선 원)은 그림 1에서 구분해 본 북쪽의 청화산과 남쪽의 도장 산, 서쪽의 속리산 문장대로 둘러싸인 공간 권역과 거 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4. 풍수적 장소로서 우복동의 장소화

1) 동천(洞天), 복지(福地), 구곡(九曲)으로서 우 복동

본고에서는 우복동의 입지 및 공간적 범위를 앞서 구분한 두 영역 중 백두대간 속리산권에 속하는 속리 산(문장대)-청화산-도장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면 서 각 산지에서 발원한 입석천, 용유천 그리고 영강 등의 하천 유역 일대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들을 포함 한 공간권역으로 보고자 한다. 현재적 입장에서도 용 유리의 광정이나 화산마을, 상오리의 장각마을, 운흥 리의 용화지구 등 개별 마을단위를 중심으로 우복동 의 입지나 풍수적 특성을 주장하는 입장들이 있고 또 한 본 연구의 전제처럼 상오리·장암리·용유리 일대 를 우복동으로 추정하는 입장들이 공존하고 있다.

여기서 우복동을 보다 광범위한 공간권역으로 전 제하고자 하는 것은 우복동에 풍수적 의미가 관련되 는 것이 조선후기 명당풍수가 정상화(normaliza- tion)9)되면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조 선후기 풍수적 장소로서 우복동이 장소화 되는 것은 조선중기 이후부터 지식엘리트나 낙향한 권력엘리트 들이 주도한 도교나 도가, 유교, 신선사상 등을 토대 로 의미 구성된 우복동에 대한 대응적 성격을 갖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풍수적 장소화 이전 엘리트들에 의 한 우복동의 장소화는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경관이나 장소를 통해 그 범위를 추정해 볼 수 있는데 다름 아닌 그림 1, 2에 표시된 속리산권의 고산들에 의해 둘러싸인 공간 권역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풍 수적 장소로서 우복동의 장소화는 조선후기 명당풍 수가 전국적 수준으로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사회 지 배층과 대비되는 일반 백성들의 길지 낙토에 대한 관 념이 기존에 엘리트들에 의해 구성된 우복동을 탈장 소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삶과는 너 무나도 괴리가 컸던 지상의 신선계와 같은 동천, 복지 심지어 구곡동천으로서가 아닌 현실적 어려움을 조 금은 벗어나게 해 줄 것 같은 ‘현실적 이상향’으로서 풍수 명당이 요구되었던 것이다.10) 그렇기에 우복동 은 그것이 어느 곳이든 심지어 실재하든 그렇지 않든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현실적 이상향에 대한 인간 주체들의 의미구성의 차이, 그러한 의미의 사회적 구 성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의도 또한 다를 수밖에 없 는 것이다.

이에 먼저 보다 거시적인 공간권역으로 우복동을 전제하고 그것에 풍수적 의미가 구성되기 이전 지식 엘리트, 낙향한 권력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동 천, 복지, 구곡 등 동양적 이상향으로서 우복동의 장 소 의미구성을 살펴보고자 한다.11) 본래 동천이나 복 지는 도교적 세계관이 투영된 이상적 지리공간이다.

도교적 세계관에서는 세계가 선계, 인계, 지계 다시 말하면 신선이 사는 천상계, 인간이 사는 지상계, 그 리고 귀신의 세계인 지하세계로 이루어지며 이들 세 계에 사는 자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행 위의 선악에 따라 상승하기도 하고 하강하기도 한다 고 본다(최수빈, 2014, 307-309). 이런 입장에서 동 천은 지상의 명산승지에 존재하는 신선의 세계로 본 래 복지에 있는 동굴을 가리켰다고 하는데 당대에 이 르러 동천과 복지가 각각 별개의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최수빈, 2014, 331).

그리고 주자(朱子, 1130~1200)의 무이구곡(武夷 九曲)에 기원을 두는 구곡 또한 조선 중·후기 지식인 들이 추구했던 도학적 정신세계와 자연관이 녹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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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특징적 경관으로서 단순히 수려한 풍경을 갖춘 계 곡만이 아닌 동천으로 이해될 수 있는 곳이다.18) 구곡 을 보다 넓은 의미 맥락에서 ‘구곡동천’, ‘동천구곡’으 로 부를 수 있는 이유이다. 이렇듯 지식엘리트의 정 신세계가 투영된 이상적 장소인 동천, 복지, 구곡으로 서 우복동의 장소 의미 구성은 본고에서 설정한 우복 동 권역 즉 현재의 상오리·장암리·용유리 일대에서

확인되는 다양한 물질적 경관이나 언표적 재현물(문 집이나 각자, 현판 등)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표 1).

앞서 장소의 의미 구성 과정은 장소를 구성하는 구 체적인 물질적 경관에 대한 경험을 통해 또는 장소에 서 확인되는 다양한 물질적-언표적 요소들 간의 배 치에 의해 이루어짐을 보았다. 이와 관련해 볼 때 표 표 1. 우복동의 장소 의미 구성과 관련된 언표적 배치물과 경관·장소

저자 언표적 배치물 경관, 장소

양사언(1517~1584)12) ‘동천’(洞天: 용유동 중간 지점 바위 각자) 동천암

이민구(1589~1670) ‘하용유동(下龍遊洞)’(『동주집(東州集)』, 권3, 「영남록」) 용유동 김창협(1651~1708) 「화양제승기(華陽諸勝記)」(『농암집(農巖集)』, 권23) 병천

김창흡(1653~1722) ‘용유동(龍遊洞)’(『삼연집(三淵集)』, 권7) 용유동

이만부(1664~1732) ‘용유동기(龍遊洞記)’(『식산집(息山集)』, 별집 권2, 「지행록3」) 용유동

송요좌(1678~1723)13)

‘회란석’(廻瀾石: 용유동 입구 병천 가운데 바위 각자)14) 회란석

‘연좌암’(宴坐巖: 용유동 하천 북쪽 바위 각자)15) 연좌암

‘대은병’(大隱屛: 용유동 연좌암 뒤편 바위 각자)16) 바위

송요좌(1678~1723) ‘병천정사’(甁泉精舍: 1703년 송요좌가 창건한 병천정사 현판) 병천정사

이현익(1678~1717) ‘입병천(入甁泉)~’(『정암집(正菴集)』, 권1) 병천

이익(1681~1763) ‘용유동(龍遊洞)’(『성호사설(星湖僿說)』, 권6, 「만물문」) 용유동

민우수(1694~1756) ‘병천정사(甁泉精舍)’(『정암집(貞菴集)』, 권1) 병천

송명흠(1705~1768) ‘병천(甁泉)~’(『역천문집(櫟泉文集)』, 권1, 권2, 권3) 병천

송문흠(1710~1752) 「병천기략(甁泉記略)」(『한정당집(閒靜堂集)』, 권7) 병천

이긍익(1736~1806) ‘병천(甁川)(『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 권16, 「지리전고」, 산천형승) 병천

정종로(1738~1816) ‘용유동(龍遊洞)~’(『입재집(立齋集)』, 권2) 용유동

남한조(1744~1809) ‘용유동(龍遊洞)’·‘용유동반석(龍遊洞盤石)’(『손재집(損齋集)』, 권1) 용유동

남한조(1744~1809) ‘쌍룡구곡(雙龍九曲)’(『손재집(損齋集)』, 권1) 병천

정약용(1762~1836) ‘우복동가(牛腹洞歌)’(『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1집, 시문집 권5) 우복동

이규경(1788~1856)

‘우복동변증설(牛腹洞辨證說)’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지편, 지리류, 동부) 우복동

‘우복동진가변증설(牛腹洞眞假辨證說)’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지편, 지리류, 동부) 우복동

‘세전우복동노정기(世傳牛腹洞路程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지편, 지리류, 동부) 우복동 무명씨 ‘우복동기(牛腹洞記)’(『화동승람(華東勝覽)』, 화북면지편찬위원회, 1992) 우복동 김득연(19세기 중엽)17) ‘장암동기(壯岩洞記)’(『화동승람(華東勝覽)』, 화북면지편찬위원회, 1992) 장암동

* 자료출처: 한국고전종합DB(http://db.itkc.or.kr), 국립중앙도서관(http://www.nl.go.kr), 화북면지편찬위원회(1992)

(8)

1에 제시된 우복동 권역의 경관·장소 그리고 그와 관 련된 언표적 배치물들은 주로 17세기~19세기 중엽 에 이르는 시기 당대 지식인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가 령 우복동 권역과 관련된 언표적 배치물 중 이민구의

『동주집(東州集)』 ‘하용유동(下龍遊洞)’에 “아침에 신선이 사는 동천(洞)을 나오는데 화초와 새들이 돌 아가는 나를 조롱하는구나.”라거나 이만부의 『식산집 (息山集)』 ‘용유동(龍遊洞)’에 “(쌍룡)계곡을 지나는 데 몇 굽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안천과 부천을 지나 자 동천(洞)이 비로소 확 트여 따로 별천지가 나타났 다.”라 하고, 이규경의 「우복동변증설」에 “우리나라 에도 도화원과 유사한 곳이 있으니 그 이름이 우복동

이다.” 또 「우복동진가변증설」에 “세상 사람들이 말 하는 동천복지는 남쪽의 두류(청학동)와 북쪽의 우복 동이 전해진다.”라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들 언표적 배치물 중 우복동의 장소 의미 변화 즉 탈장소화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문헌들이 있 다. 19세기 중엽까지 생존한 이규경의 「우복동변증 설」, 「우복동진가변증설」, 「세전우복동노정기」 등 여 러 우복동 관련 서술이 그것이다. 이들 문헌에서는 우 복동을 동천이나 복지로서만이 아닌 풍수적 장소로 의미 구성하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말하자면 17세기~19세기에 이르는 시기 동천이나 복지, 구곡으로서 우복동 권역의 장소 의미구성과 관 련된 언표적 배치물 중 후대에 가까운 문헌일수록 풍 수와 관련된 내용이 함께 서술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풍수적 장소로 우복동이 의미 구성되는 시점을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 풍수적 장소로서 ‘우복동(牛腹洞)’

앞서 말했듯이 본고에서는 우복동의 풍수적 장소 의미 구성이 조선후기 명당풍수의 정상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조선중기 이후부터 지식 엘리트나 낙향한 권력엘리트들의 주도하에 도교나 도가, 유교, 신선사상 등을 토대로 구성된 동천, 복지, 구곡으로서 우복동의 장소 의미가 명당풍수를 코드 로 하여 탈장소화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조선 후기 풍수적 장소로서 우복동의 등장은 우복동이라 는 장소 텍스트와 관련된 의미구성의 주체와 문화적 코드가 바뀌었고 그로 인해 풍수적 길지나 낙토, 명 당, 승지 등으로 우복동이 새롭게 의미 구성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그림 5).

말하자면 18세기말에서 19세기를 거치며 기존의 장소 의미가 탈장소화되면서 풍수적 장소로서 우복 그림 3. 용유동의 ‘동천(洞天)’ 각자(刻字)

그림 4. 병천의 회란석(廻瀾石)

(시기) 16세기~19세기 중엽 18세기 말~19세기

(장소 텍스트) 동천, 복지, 구곡으로서 우복동 풍수적 장소로서 우복동 (의미 구성의 토대) (도교, 도가, 유교, 신선사상 등) (명당풍수)

그림 5. 장소 텍스트로서 우복동의 의미 구성 및 탈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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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풍수 형국 상 ‘누운 소의 배’를 의미하는 한자지명 ‘우복동(牛腹 洞)’의 차자표기 경로를 ①‘소굿골~소구붓골>牛伏洞

>牛腹洞’[훈차+훈(음)차+훈차표기], ②‘소눈골~소누 골~소눗골>牛伏洞>牛腹洞’[훈차+훈(음)차+훈차표 기], ③‘소복골>牛伏洞>牛腹洞’(훈차+음차+훈차표 기), ④소배골>牛腹洞’(훈차표기) 등으로 구분해 살 펴보고 18세기에 한자표기 ‘우복동(牛伏洞)’의 등장 그리고 이후 18세기말~19세기를 거치며 도참사상을 따르는 정감록 비결파들에 의해 풍수적 의미를 갖는

‘우복동(牛腹洞)’으로의 지명 변천을 탐색해 본 연구 (김순배, 2017, 529)도 우복동의 풍수적 장소화 시기 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복동의 장소 의미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 는 문헌이 바로 19세기 중엽 이규경의 여러 우복동 관련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우복동변증설」에 천왕봉으로 주산을 삼는다거나 「우복동노정기」를 소 개하는 내용 중 “그 안의 촌락은 자좌오향(子坐午向) 이다. 속리산을 안산(案山)으로 하여 환히 뚫려 넓고 컸다.”고 하고, 「우복동진가변증설」에 “큰 동네가 하 나 나왔는데 주위가 30-40리는 될 듯했다. 국면의 형세(局勢)가 속리산 천왕봉을 안산(案山)으로 삼았 고 중간에 3층의 대가 있었는데 하대에 민가 일곱 집 이 있었다. … 또 시냇물 중에 유안(流案)19)이 있고 풀 을 묶어 둔 수구(水口)가 있다.… 집터(陽宅)와 묘(陰 基)로 쓸 수 있는 자리가 매우 많았다. … 이 동네가 속칭 우복동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소의 배처럼 생기 지 않고 소의 목처럼 생겼다. 우복동은 속리산 천왕 봉을 주(主: 주산)로 하는데 이 동네는 천왕봉을 주로 할 경우 세상에 전하는 우복동도기(牛腹洞圖記)와 서로 어긋난다.”라거나 「세전우복동노정기(世傳牛腹 洞路程記)」에 “옥룡자 비기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 다. … (그림에서) 그곳의 지리를 말하기를 ‘이곳에 살 면 장수와 정승이 나오는 것이 천지와 더불어 무궁할 것입니다. 그 중에 판서가 여덟 명 배출될 것인데 문 장과 사업으로 천하를 진동할 것입니다. 그 말년에 이 르러서는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갈 것입니다. 그리 하여 팔판동(八判洞)이라고 합니다. … 그 그림은 자 좌(子坐: 북쪽)에 (산을 두고) 손방(巽方: 동남쪽)에

서 물이 들어와 경방(庚方: 거의 서쪽)으로 흘러 나간 다(손득경파 巽得庚破). … 왼쪽으로 갑묘(甲卯: 동 쪽)방에서 물이 흘러오는데 물줄기가 30리나 이어진 다. 왼쪽을 가로막은 산에 수구(水口)가 있어서 작은 계곡이 되었는데 기다란 길이 안산(案山) 밖을 빙 둘 렀다. … 또 일행을 이끌고 고개 안쪽 안(案: 안산) 바 깥에 이르렀는데 외안(外案: 바깥 안산)은 이름이 초 산이었다. 마을 오른쪽 내백호(內白虎) 바깥쪽에는 작은 계곡이 있고 길이 있었으며 외백호(外白虎)에는 수철점이 있었다. 속리산 천황봉이 마을 북쪽에 있어 조(祖: 조산)가 된다. 마을 오른쪽 백호(白虎) 바깥과 천황봉 사이는 조금 낮아 고갯길이 멀리 보인다.”라 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이들 내용 서술에는 소위 산·수·방위·인간 등을 주요 구성요소로 삼는 명당풍수의 이론체계 상 관련 된 주요 개념들이 거의 모두 등장하고 있다. ‘양택’·

‘음기’ 등 명당풍수의 사용 목적상 구분을 비롯하여 (권선정, 2017a, 94-95) 산과 관련된 ‘주산’·‘안산’·

‘조산(祖山)’ 그리고 국면의 오른쪽에 있는 사신사로 서 백호를 내-외로 구분한 ‘내백호’-‘외백호’, 물길과 관련된 ‘득파’·‘수구’, 방위 관련된 ‘좌향’ 및 수법(水 法) 방위론, 이 외에도 풍수 입지와 인사(人事)와의 관계를 설정한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20), 한국 풍수 의 특징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 형국론(形局論)21)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명당풍수 관련 개념이나 이론 들은 앞서 동천, 복지, 구곡으로서 우복동을 의미 구 성했던 언표적 배치물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은 것 들이다. 이를 통해 우복동의 풍수적 장소 의미 구성에 작용한 문화적 코드는 조선후기 전국적 수준으로 일 상화되는 명당풍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저자와 시기를 확인할 수 없는 무명씨의

「우복동기」22)나 「옥룡자시」23)·「이여송시」24) 등 또 다른 우복동의 풍수 관련 서술이 확인되는데, 이들을 이규경의 문헌에서 확인되는 우복동 관련 풍수적 내 용과 비교해 보면 그 서술 시기가 거의 비슷하거나 이 규경 문헌보다 후대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들은 한국 풍수의 비조로 알려진 통일신라 하대 의 옥룡자 도선(道詵, 827~898)이나 임진왜란 당시 출병했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 1549~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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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가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앞서의 이규경 문헌에서와 같이 조선후기 정상화되 는 명당풍수의 핵심 개념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우복동기」에 “우복동은 천황봉이 주산 (主)이고 주흘산이 안산(按)이다. … 북쪽 고개를 넘 어 들어가니 바위에 우복동이라 새겨져 있고 또 이제 독의 석비가 있는데 그가 지은 시에 ‘천황봉 아래 오 성(五星)이 갖추어진 땅, 혈(穴)이 명당(明堂) 우복동 안에 있네(天皇峯下五星地 穴在明堂牛腹中).”라거 나 「옥룡자시」에 “청화산 남쪽에 좋은 국면(局)이 열 렸으니 … 평평한 언덕 혈(穴) 맺힌 곳 몇 천 년이 되 었는가. 홀을 잡은 듯한 신선들이 안산(案) 밖에 서 있네.”, 「이여송시」에 “천황봉 아래 북두칠성의 정기 가 맺힌 곳. 혈(穴)이 명당(明堂) 우복동에 있네.”라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앞서 이규경의 풍수 관련 서술에 서 확인되지 않았던 ‘오성’, ‘혈’, ‘명당’, ‘국’ 등 명당풍 수의 핵심 개념까지 등장하고 있다.25)

그런데 이들 내용을 통해 우복동의 풍수적 특징을 살펴보면 본고에서 설정한 우복동의 공간 권역을 구 성하고 있는 제반 환경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 풍수 적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령 천왕봉을 주산 또 는 안산으로 삼거나 심지어는 마을 북쪽에 있어 조산 (祖山)으로 설정하는 내용도 있는데, 그럴 경우 함께 서술된 내용에서 천황봉에 대응하는 풍수 사신사의 배치, 물길의 흐름 등이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우복동진가변증설」에 「옥룡자비기(玉龍子秘記)」를 인용하며 자좌(子坐: 북쪽)의 산세에 손득경파(巽得 庚破)라 하여 동남쪽에서 거의 서쪽으로 흐르는 물길 을 제시하고 있는데 우복동 권역에서 확인되는 물길 은 주산을 어느 곳으로 정하든 이와 같은 조건을 갖춘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오랫동안 동천, 복지, 구곡 등 지식엘 리트들에 의해 구성된 동양적 이상향으로 전해져 오 던 우복동이 그 존재 여부나 위치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당시 일상화되고 있던 명당풍수를 통해 우 복동의 장소 의미구성을 시도한 결과가 아닌가 한 다. 실재하지 않는 장소에 대해 의미를 관련지음으로 써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일종의 장소 신화 (place myth)의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

복동은 오히려 그 장소가 드러나고 뭇 사람들에 의해 찾아지면 그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마치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적 장소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풍수적 장소로서의 우복동은 앞서 동천, 복지, 구곡 등 당대 엘리트들의 정신세계가 투영된 말 그대로 신선계와 같은 이상향이 아니라 현실적 어려 움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백성들의 길지, 낙토, 승 지로서 다가오는 현실적 이상향의 표상이라 할 수 있 다. 인간정주의 필수조건이 되는 용수로서의 물, 마을 이 기대는 산, 경제적 빈곤함을 달래주는 적절한 경 지, 견디기 어려운 기후조건이나 전란으로부터의 피 난을 위한 외부세계로부터의 보호 등은 바로 풍수상 명당 국면을 형성하는 주요한 조건이 된다. 이런 차 원에서의 풍수적 길지이자 낙토로서 우복동은 한반 도 도처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사례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상적인 풍수 적 장소로서 우복동을 말하고 또 찾고자 한다. 우복동 으로 표상된 현실적 이상향 또는 풍수적 길지나 낙토, 명당에 대한 관념을 몸의 유전자처럼 또 인생의 로망 처럼 가지고 사는 한국인들의 땅에 대한 심성(Geo- mentality)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5. 나가며

장소는 인간의 구체적 삶이 펼쳐지는 물질적 토대 이자 동시에 끊임없는 장소화·탈장소화 과정을 통 해 다차원적인 의미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역동적인 장이다. 그렇기에 장소는 불변의 특성을 지닌 물리적 실체가 아닌 ‘과정(process)’으로 접근될 필요가 있 다. 그사이 장소에 대한 지리학적 접근에서 장소 의미 (the meaning of place), 장소성(placeness), 장소이 미지(the image of place), 장소정체성(place iden- tity), 장소령(the spirit of place) 등 다양하게 표현되 는 장소의 의미 차원에 대해 관심 가져온 이유이다.

특히 장소의 의미 구성에 대한 ‘사회적 구성(social construction)’ 차원의 논의는 장소마다 가지고 있는 불변의 본질적 속성이나 실체, 기왕에 당연시 되어 온

(11)

믿음이나 신화(myth) 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 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 본고에서는 지리산 청학동(靑鶴洞), 가야산 만수동(萬壽洞)과 함께 동천(洞天), 복지(福 地), 길지(吉地), 승지(勝地) 등으로 널리 알려져 온 속리산 우복동(牛腹洞)을 사례로 그것이 풍수적 장소 로 의미 구성되는 과정을 탐색해 보았다. 사회적 구 성 차원에서 풍수적 장소에 대한 관심은 특정 장소가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풍수적 의미보다는 오 히려 풍수적 장소로 장소화·탈장소화되는 과정에 주 목한다. 여기서 풍수적 장소로의 장소화·탈장소화는 풍수라는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상황에서 장소를 구성하는 다양한 물질적, 언표적 경관들에 대한 인간 주체의 경험 그리고 이들 경관을 특징적인 방식으로 배치 또는 재배치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사회적 구성 차원에서 우복동을 풍수적 장소로 접근 하는 것은 풍수를 문화적 코드로 하여 의미 구성된 장 소텍스트에 대한 해석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사이 전통적 이상향 중 하나로 인식돼 온 우복동 의 존재 여부나 공간영역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이 있 어 왔다. 이것은 우복동과 관련된 조선 중·후기 역 사 문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해 본고에서 는 우복동을 실재하는 장소로 전제하고 그것의 입지 및 공간 범위를 설정하였다. 이에 우복동을 하나의 마 을단위라기보다는 여러 마을을 포함한 공간권역으로 보았다. 구체적으로 백두대간의 속리산권에 속하는 속리산(문장대)-청화산-도장산 등의 산지에 의해 둘 러싸여 있으면서 각 산지에서 발원한 입석천, 용유천, 영강 유역인 경북 상주시 화북면의 용유리·상오리·

장암리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영역이다.

우복동이 풍수적 장소로 의미 구성되는 과정과 관 련해 두 가지 장소화·탈장소화 과정에 주목하였다.

먼저 조선중기 이후부터 지식엘리트나 낙향한 권력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동천, 복지, 구곡 등 동 양적 이상향으로서 우복동의 장소 의미 구성이다. 동 천, 복지, 구곡으로서 우복동의 장소화는 도교나 도 가, 유교, 신선사상 등을 토대로 조선 중·후기 지식인 들이 추구했던 도학적 정신세계와 자연관이 투영된 이상적 장소로서 우복동을 의미 구성한 것이다. 이는

본고에서 설정한 우복동 권역에서 확인되는 17세기

~19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 당대 지식인들과 관련 된 다양한 물질적 경관이나 언표적 재현물(문집이나 각자, 현판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가 18세기말에서 19세기를 거치며 동천, 복 지, 구곡으로서의 우복동은 풍수적 장소로 탈장소화 된다. 조선후기 풍수적 장소로서 우복동의 등장은 우 복동이라는 장소 텍스트와 관련된 의미구성의 주체 와 문화적 코드가 바뀌었고 그로 인해 풍수적 길지 나 낙토, 명당, 승지 등으로 우복동이 새롭게 의미 구 성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복동의 장소 의 미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19세기 중엽 의 여러 우복동 관련 문헌 내용이다. 여기서는 조선후 기 정상화되는 명당풍수의 주요 개념 소위 산·수·방 위·인간 등을 구성요소로 삼는 명당풍수의 이론체계 상 관련 개념이나 주요 이론이 거의 모두 등장하고 있 다. 가령 명당풍수의 사용 목적과 관련된 ‘양택’·‘음 기’를 비롯하여 ‘명당’·‘혈’·‘국’·‘주산’·‘안산’·‘조산 (祖山)’·‘오성’ 등의 핵심 개념, 그리고 국면의 오른쪽 에 있는 사신사로서 백호를 내-외로 구분한 ‘내백호’

-‘외백호’, 물길과 관련된 ‘득파’·‘수구’, 방위 관련된

‘좌향’ 및 수법 방위론, 이 외에도 풍수 입지와 인사 (人事)와의 관계를 설정한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 한국 풍수의 특징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 형국론 등 이 확인되고 있다.

결국 조선후기 우복동의 풍수적 장소화는 오랫동 안 동천, 복지, 구곡 등 지식엘리트들에 의해 구성된 동양적 이상향으로 전해오던 우복동의 탈장소화이면 서 동시에 기존의 사회 지배층과 대비되는 일반 백성 들의 길지 낙토에 대한 관념이나 조선후기 정상화되 는 명당풍수가 투영된 ‘현실적 이상향’이자 풍수 명 당으로서 우복동을 새롭게 의미 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풍수적 장소로서의 우복동은 당대 지식엘리 트들의 정신세계가 투영된 말 그대로 신선계와 같은 이상향이 아니라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수 많은 백성들의 길지, 낙토, 승지로서 다가오는 현실 적 이상향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대 적, 사회적 상황 변화를 반영하는 또 다른 우복동 수 많은 우복동의 장소화·탈장소화는 멈추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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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향후 우복동을 비롯한 청학동, 만수동 등 동양 의 전통적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는 특징적 장소에 투 영되어 있는 인간의 장소에 대한 보편적 심성(Geo- mentality), 추구하는 가치, 환경적 조건이나 인식 등 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현재적 입장에서 그 의 미가 새롭게 재구성되기를 기대한다.

1) 프레드(Pred, A.)가 구조화 이론과 시간지리학의 이론적 통합에 기초하여 장소를 ‘역사적으로 우연한 과정(histori- cally contingent process)’으로 보고 ’장소되기(becoming place)’에 주목한 것도 이와 관련된다(Pred, A., 1984).

2) 여기서 명당풍수는 현재 풍수하면 으레 떠올리는 풍수를 말한다. 소위 ‘명당’,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주산(主山)’ 등의 개념으로 대변되는 명당풍수는 보통 사 신사(四神砂: 청룡·백호·주작·현무)에 의해 둘러싸인 국 면 즉 명당 입지의 선택과 묘나 주택, 관청, 궁궐 등 공간 구성물의 배치를 주로 관심 갖는다(권선정, 2017a, 93- 94).

3) ‘이웃관계’ 즉, 이웃 항과의 관계는 위상학에서 유래한 개 념으로 어떤 두 항이 일정 범위 내에서 서로 이웃해 있을 때 그 관계의 양태를 말한다. 가령 시청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은 거리는 매우 가깝지만 불연속적인 이웃관계를, 시청 지하철역과 서울역 지하철역은 거리는 멀지만 연속 적인 이웃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정우 해설, 1993, 168). 후기구조주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관계 맺기의 방식들을 포괄하는 추상적 형식을 ‘디아그람(diagram)’이 라고 부른다(이정우, 2008, 29).

4) 필자는 한국의 전통적 산 인식체계 상 널리 알려진 두 개념

‘진산(鎭山)’, ‘주산(主山)’의 용례 및 변천과정을 통해 한국 풍수 역사상 여러 종류의 풍수가 전개되어 왔음을 제시하 였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풍수의 차이를 ‘국가 적 차원의 비보풍수(裨補風水)’와 ‘중국 이론풍수 위주의 명당풍수’로 구분한 바 있다(권선정, 2016).

5) 『여유당전서』, 제1집, 시문집 권5.

6) 『오주연문장전산고』, 천지편, 지리류, 동부.

7) 『오주연문장전산고』, 천지편, 지리류, 동부.

8) 『오주연문장전산고』, 천지편, 지리류, 동부.

9) 일정한 시·공간적, 사회적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다수에 의해 수용되어 공유되는 상황을 정상적(normal)이라고 한 다. 학문영역에서의 패러다임처럼 사유나 인식체계, 의·

식·주 관련된 다양한 문화적 양태 등에서 일상적으로 수용 되거나 또는 심지어 기준·중심으로 작동하는 정상적 입장 들은 기존에 정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관점이나 태도, 영역 등을 타자화시키는 정상화 과정을 통해 등장한다.

10) 최창조(1987)는 한민족의 길지낙토 관념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서양의 유토피아와 다르게 현실적이라고 보 았다.

11) 조선시대 지식엘리트의 정신세계가 투영된 이상적 장 소로서 동천, 복지, 구곡 등에 대한 논의로 김영모·진상 철, 2002; 최석기, 2008; 김덕현, 2008; 2011; 이혁종·최 기수, 2009; 2010; 기근도, 2012; 정우락, 2013; 최수빈, 2014; 최원석, 2014, 387-400; 이국화, 2016 등의 연구가 있다.

12) 송문흠(1710~1752)의 「병천기략(甁泉記略)」(『한정당 집』, 권 7)」에 양사언의 글씨라고 기록되어 있다.

13) 회란석·연좌암·대은병 각자의 글씨 모두 병천정사를 창 건한 송요좌가 쓴 것으로 추정한다(국립산림과학원·한국 문화역사지리학회, 2017, 82-84).

14) 회란석은 ‘미친 듯 세차게 흐르는 물을 돌아가게 하는 바 위’라는 뜻으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한 세태를 정상 으로 되돌린다는 의미이다(국립산림과학원·한국문화역사 지리학회, 2017, 82).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의 『택 리지』에도 병천(甁川)의 너럭바위에 대한 서술이 있다(「복 거총론」, 산수).

15) 연좌암은 ‘편안히 앉아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당대 시인 백거이(白居易, 992~846)의 「병중연좌(病中宴坐)」의 “작 은 연못가에 편안히 앉으니 청풍이 수시로 옷깃을 흔드네 (宴坐小池畔 淸風時動襟).”에서 취한 듯하다(국립산림과 학원·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7, 84).

16) 대은병은 주자가 은거한 무이산(武夷山)의 은병봉(隱屛 峯)에서 취한 것으로 크게 은거한다는 의미이다(국립산림 과학원·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7, 84).

17) ‘장암동기’는 김득연(19세기 중엽)이 저술한 것으로 추정 된다(국립산림과학원·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7, 116).

18) 김덕현은 조선 중·후기 한반도 동남부의 구곡문화에 대 해 주자가 살았던 복건성과 한반도 동남부 지역의 지리적 조건의 유사성에 주목하였다(김덕현, 2011, 3).

19) 흐르는 물 가운데 있는 수구사(水口砂) 중 화표(華表)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화표는 수구에 우뚝 솟은 봉우리 (수구사의 일종)를 말하는데 화표가 수구 내에 있으면 반 드시 넓은 땅이 있고 왕후가 날 정도의 좋은 땅이라고 한다 (천인호, 2012, 271-272).

20) 동기감응론은 풍수의 인식체계 상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이자 명당풍수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친자감응론 (親子感應論)이라고도 하는데 “부모나 조상의 유해가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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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지기(地氣)가 자식이나 후손에게 전달된다.”라는 내용 이다. 그렇지만 동기감응론은 이러한 혈족 중심의 동기간 (자연적 동기간) 외에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 간 관계(사회 적 동기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환경 간의 생태적 동기간을 포함하는 풍수의 인식론적 대전제이다(권선정, 2004).

21) 물형론(物形規局論)이라고도 하는데 국면을 구성하는 다 양한 조건들을 사람이나 동물, 자연물 등의 형상에 비유하 여 국면의 역량과 기세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가령 마을 뒷산이 ‘누워 있는 소의 형상(臥牛形)’이라 든가 묏자리의 ‘주산과 안산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모양 (玉女彈琴形)’이라든가 하는 예가 그것이다. 이는 세계 내 존재들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이기(理氣)와 형상(形象) 으로 이루어져 있고 따라서 존재의 형상에는 그에 상응하 는 기운이 내재돼 있다고 보는 관념을 원리로 삼는다(권선 정, 2017a, 105-106).

22) 화북면지편찬위원회, 1992, 화동승람.

23) 화북면지편찬위원회, 1992, 화동승람.

24) 화북면지편찬위원회, 1992, 화동승람.

25) 명당풍수의 전 체계 중에서 가장 핵심적 개념이 명당과 혈이다. 풍수적 조건을 갖춘 특징적 입지를 의미하는 명당 은 보통 청룡(靑龍)·백호(白虎)·주작(朱雀)·현무(玄武) 등의 사신사(四神砂)에 의하여 둘러싸인 국면으로 생기가 가장 밀집돼 있다고 하는 혈(穴)을 포함하고 있다. 세분화 하여 ‘내명당(內明堂)과 외명당(外明堂)을 구분하기도 하 는데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의 경우 북악산·인왕산·낙산·

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사대문안의 땅이 내명당이요, 그 안 에서 경복궁이 들어선 자리를 혈장(穴場), 그 가운데 임금 의 용상이 놓여 있는 곳이 혈이 된다. 그리고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 지역 대부분은 외명당이 된다. 또한 풍수에서는 산을 ‘성(星)’ 또는 ‘요(曜)’라고도 하는데 특히 오성은 목·

화·토·금·수 오행(五行)에 기초하여 산의 형태를 구분하 는 것이다(권선정, 2017a, 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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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투고일 2018. 12. 7 수정일 2018. 12. 17 최종접수일 2018.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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