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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곡을 소개해주세요. 후배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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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곡을 소개해주세요. 후배는 말했다...

1945년 2월 13일 드레스덴은 지옥이었다. 1000여대의 영, 미 폭격기가 토해내는 폭탄 세례에 3만 5000명의 민간인 이 하룻밤 사이에 죽어나갔다.

전세는 이미 기울어져 독일의 패색이 짙었고 더구나 드레스 덴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 지도 아니었다. 때문에 이 공 습은 지금도 도쿄 대공습과 더불어 의도된 대규모 비전투 원(민간인) 학살의 대표적 사 례로 여겨지고 있다. 인종적 편견과 복수심에서 비롯된 학 살이었다. 단 하룻밤에 엘베 강의 진주로 불리던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은 지옥으로 변 했다.

1960년 쏘련, 그는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일기와 편지에 이 결정을 일생일대의 최악의 선택이라고 기록했다. 패배감에 휩싸였고 정서적으로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해 야만 했다. 나는 늘 창녀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창녀일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렇게 기록 했다.

한달후 그는 드레스덴 공습에 관한 영화에 쓰일 음악(Five days, five nights)을 위해 드레 스덴을 방문한다. 그가 목도한 드레스덴의 참상은 그의 정신세계의 파괴와 묘한 공명을 일 으킨다. 그리고 “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한곡의 현악사중주를 작곡해낸다.

그의 정신세계의 파멸과 참혹한 살육에의 전율이 어우러진. 쇼스타코비치 현악4중주 8번!

이 곡은 그냥 들어도 작곡가의 비장한 정서를 바로 느낄 수 있을 만큼 표현적이다. 5악장이 휴지부 없이 한번에 연주된다. 쇼스타코비치에 익숙한 사람은 그가 이 곡에서 자신의 다른 곡의 선율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는 것(self-quatation)을 알게된다. 교향곡 1번, 5번, 10번, 피아노 삼중주, 1번 첼로 협주곡, 므젠스크의 맥베드 부인에서 익숙한 선율이 녹아 들어가있 다. 1악장 Largo는 일종의 자전적인 성격으로 그의 이름의 약자인 DSCH 음으로 이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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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불길한 예감을 주는 고요함으로 네 악기가 번갈아서 같은 선율을 반 복한다. 서늘한 고요함의 1악장은 전쟁의 공포와 단발마적 비명을 날카로운 사이렌소리를 연상케 하는 현의 절규로 표현한 2악장에 의해 갑자기 끊어진다. 인간의 야만성과 폭력의 부당함을 절 규하는 악장이다. 3악장은 왈츠이다. 베를리오즈 의 환상교향곡, 닐센의 6번 교향곡과 더불어 왈 츠가 가장 기괴하게 차용된 악장일 것이다. 불길 한 보름달이 뜬 밤에 해골들이 모여서 추는 그로 테스크한 댄스이다.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에 천 연덕스럽게 가장 친근한 것이 겹쳐질 때 그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연쇄살인의 현장에 모짤 트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연주되는 것을 상상해 보라. 가슴을 치는 듯한 셋잇단음표의 방망 이질로 시작되는 4악장은 공포의 연속이다. 당시 쏘련에서는 KGB가 누군가를 체포하러 나 타날 때 먼저 보는 사람이 신호로 테이블을 3번 두들겼다 한다. 시종일관 날카롭게 울리는 1바이올린의 날카로운 지속음은 비행기의 공습을 알리는 경보와 같이 불안하고 성가시다.

공포의 장력이 견딜 수 있는 최정점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어둠속을 뚫고 오는 한줄기 빛처 럼, 포연 속에 홀로 핀 야생화처럼 아름다운 선율이 첼로를 타고 하강한다(멕베드 부인의 아리아). 그러나 그 것은 전투 중에 피우는 담배 한대와 같고, 곤고한 삶 중에 잠시 꾸는 백 일몽과 같은 잠시의 휴식이다. 공포의 무게는 그대로 5악장으로 연결된다. 5악장은 1악장에 다름아니다. 처음 제시된 문제가 전혀 해결됨이 없이 적막한 고요 속에 침몰하며 아쉽게 끝 맺는다. 청중은 돌파구 없는 공포와 비극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신이 없는 세상의 자화상이 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의 공식적인 초연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초연 전에 보로딘 4중주 단의 연주를 그의 집에서 들었다. 머리를 무릎에 조아리며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전통적인 명반으로는 Fitzwilliam SQ의 연주(L’Oiseau-Lyre, DSLO11, 1975, LP, CD)가 있 다. 아일란드 사람들로 추정되는데 Fitz는

아일란드 말로 ~의 형제란 말로 Fitzwilliam은 William의 형제란 뜻이다.

이 들은 쇼스타코비치와 서신으로 또는 직 접 찾아가 자문을 얻으며 이 곡을 녹음했 는데 이 들의 전곡연주는 전통적인 명반으 로 꼽히고 있다. 정치한 앙상블과 우아함이 Fiztwilliam SQ의 특징이다. 그러나 공포와 비탄이 날 것으로 드러난 8번 연주의 경우 이들의 연주는 너무 논리적이고 치밀하여 서구적으로 다듬어진(tamed) 쇼스타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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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근래에 우리나라에 내한한 Emerson SQ의 전곡 연주(DG, 463 284-2, 2000, 5CD)는 치밀한 앙상블과 더불어 약동하는 리듬감 그리고 생생함을 특징으로 하는 명연주이다. Fiztwilliam에 비해 남성적이지 만 칙칙하지 않고 대단히 동적이다.

Borodin SQ는 1945년에 설립되었고 멤버는 바 뀌었지만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Beethoven SQ, Taneyev SQ와 더불어 구쏘련을 대표하는 현악사중주단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곡의 대부분이 Beethoven SQ에게 헌 정되었지만 그 연주의 질과 성가에 대해서는 Borodin SQ이 훨씬 앞서고 있다. 이 들의 쇼스 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를 약 4번 정도 녹음하였 는데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8번은 3종이 있다.

원년 멤버가 아니지만 가장 최근 녹음으로 Virgin record(Virgin 5616302, 1990, 2CD)에서 발매된 것이 있다. 가장 유명한 녹음은 멜로디야에서 녹음하고 EMI에서 box set로 나온 것 (EMI/Melodiya, SLS879, 6LP, 1967~1972)이다. 다행히 Chandos에서 CD로 재발매하였다 (CHAN 10064 4CD). 마지막으로 미국 기술진이 모스코바로 건너가 35mm magnetic recorder에 녹음한 LP가 있는데 Mercury Living presence에서 발매되었다(Mercury, SR90309, MG50309, LP). Borodin SQ의 연주는 대단히 직설적이며 남성적이다. 그러나 역 설적이게도 모든 악구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세

밀한 뉘앙스를 성공적으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앞 서 언급한 다른 단체들의 우아하고 치밀함, 약동하 는 리듬감, 다이나믹을 다 포함하면서도 그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구할 수 있다면 Mercury를 권하고 싶다. 쇼스타코비치의 육성을 듣는 것처럼 직설적 이며 직접적인 표현이 일품이다. 가공되지 않은 원 시적 힘의 분출이 느껴지는 명연이다. EMI 녹음도 그에 밀리지 않는 수작이다. 보다 정밀하고 잘 짜 인 앙상블을 들을 수 있다. 음질이 문제라면 Emerson SQ를 강추한다. 대단한 리듬감에 생동감 있는 표현이 일품이다.

신이 있었고 신 때문에 싸운 세상은 행복했던가?

중부유럽을 휩쓴 30년 전쟁은 그에게 모든 것을 앗아갔다. 부모, 형제, 아내, 아내의 자매, 두 딸을 그 와중에 다 잃었다. 안락한 삶은 온데 간데 없고 매일 매일을 걱정해야 했다. 한 없는 절망의 끄트머리에 그는 서있었다. 하인리히 쉬츠는 그랬었다. 음악신동으로 빛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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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베네치아에서 유학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선제후의 보호 아래 독일 음악을 일깨울 걸작을 작곡하였다. 그러나 1618년 신.구교로 각축하던 독일은 30년이나 계속될 전쟁의 소용돌이 에 빠진다. 인구의 2/3가 죽어 없어지고 정치.경제.문화가 200년이나 후퇴할 전쟁인지도 모 르고. 가족도 친구도 세상을 떠나고 급료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1645년, 30년 전쟁의 막바지에 작센의 수도인 드레스덴에서 쉬츠는 60세의 노구를 이끌고 독일 종교음악 사상 가장 빛나는 몇 안 되는 곡을 작곡한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신앙의 힘으로 힘겹게 건져 올린 한가닥 희망의 노래였다. “십자가 상의 일곱 가지 말씀(Die Sieben wortes Jesu Christi am Kreuz)”은 쉬츠가 독창적으로 창안한 형식은 아니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같 이, 바로크시대에 독일에서 유행하던 수난곡의 양식이었다. 하나의 복음서만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4대 복음서의 각 구절을 인용하여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고난의 의미를 기리고 있 다. 4대 복음서를 종합할 때 예수는 7가지 말을 남기고 있고 또 기독교 전통에서는 7을 성 스러운 숫자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형식의 곡이 유행했는데 하이든도 현악4중주로 같은 제목의 곡을 작곡한 바 있다.

일곱가지 말씀은 다음과 같다. 1.무지로 인해 예수를 십자가에 메단 사람들에 대한 용서를 구함(누가 복음) 2. 성모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함(요한 복음) 3. 두 범죄자와의 대화(누가 복음) 4. 하나님에게 부르짖음(마태 복음) 5. 나는 목이 마르다(요한 복음) 6. 다 이루었다 7.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누가 복음).

테너, 베이스, 어린이 소프라노가 복음사가를 맡고 예수는 테너에 의해 노래된다. 복음사가 의 노래는 통주저음만으로 반주되지만 예수의 말씀은 그윽한 다 감바에 의해 반주되어 마치 머리에 후광이 비추인듯한데 이런 음화기법은 후에 바흐의 마태수난곡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전쟁의 참화를 예수의 힘으로 극복하고픈 당시 신앙인의 애절한 바람이 300년이 지난 지금 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어린이들의 순결한 가창의 복음사가는 청아하기 그지 없고 예수의 절창은 종교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경건과신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음반의 선택 은 의외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40년이란 세월을 이겨내고 불멸의 명반으로 추앙받는 연주 가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종교음악지휘자인 Mauesberger가 드레스덴에서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을 이끌고 녹음한 음반(Archiv, 198 408, 1966, LP, CD)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연주 이다. 젊었을 때의 Peter Schreier가 노래하는 예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창으로 경건함, 청아함의 모순된 요소가 역설적으로 공존해있다.

카를 리히터가 지휘한 마태수난곡에서 노래한 복음사가와 함께 그의 최고의 연주일 것이다.

표피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내면의 목소리를 듣 고 싶을 때 나는 이 곡을 자꾸 자꾸 듣는다.

2006.1.3. 조 홍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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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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