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 이후의 초기 제정(서기 14-193년)
첫 두 세기 동안의 평화
서기 42-84 년 동안 브리타니아가 제국에 병합
제국의 남동부에서 몇 차례의 유다 반란(서기 66-70년, 132-135년, 서 기 115-116년)
66-70년 사이의 유다 반란 때 티투스(당시 황태자)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 괴(70년)
132-135년 사이의 반란은 메시아를 자칭한 바르 코크바가 이끔. 진압 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다인을 예루살렘에서 추방
팍스 로마나(pax Romana기원전 29년 – 서기 180년) 시대
5현제 시대 (96-180년): 네르와,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회적 변화
서기 1-2세기에 로마 시민권 확산
서기 200년 경 행정 귀족의 출현 : 원로원, 기사, 시원로원이라는 세 계층 출신의 인사로 구성, 공통의 라틴-그리스 문화를 향유, 다양한 헬레니즘 철학 파의 윤리 관념을 공유, 교육받은 문예(paideia)가 중요하게 여겨짐.
로마법 : 형식 존중, 법조문 중심의 발전, 본질적으로 판결에서 발전, 따라서 입법에서 유래하지 않은 사법(private law)
법의 원천 : 법률 제정(백인조회와 트리부스회에서 통과된 법령들 leges와 평민회에서 통과된 plebistica), 판결, 판례, 관습법, 법학자들의 주석, 법무관의 포고, 법학자들의 주석, 원로원 결정, 황제의 서한 및 칙령
사법은 여러 번 정리되고 분류됨. 서기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시민법 대 전(Corpus Iuris Civilis)에서 법전으로 만들어 짐. 이 법전은 법령집
(institutiones), 해석집(digesta), 황제 칙령(codex)로 구성
사법 행정 상 사회 계급 사이에 차별이 존재 : 예를 들어 상류 게층과 달리 노예 는 심문 중 고문 가능
노동과 지위 : 로마인이 소속된 사회 계급은 그의 직업보다 중요함.
여성 : 소년은 아버지나 남성 친척들에의해 교육받고, 소녀는 어머니와 다른 여성 친척들로부터 교육받음. 여성은 이른 나이(13-4세)에 결혼하고 남성은 20-35세 에 결혼. 이혼은 흔한 일. 이혼 시 남편은 부인의 지참금을 돌려주는 것이 관례. 로마 귀족 여성은 그리스귀족 여성에 비해 행동의 자유와 권리가 더 많음.
종교
최고신 유피테르(Jupiter), 유노(Juno, 유피테르의 아내), 미네르와
(Minerva, 수공예와 학문, 예술의 여신), 마르스(Mars, 전쟁과 봄의 생 명력의 신) 등이 주요 신들. 시간이 지나며 로마인은 점차 그리스의 신들과 자 신의 신들을 동일시하게 됨.
시빌리나(Sybilina) 신탁집 : 중요한 사건이나 큰 재해 시에 특별 사 제단이 전설적인 로마의 무녀 시빌리나의 이름을 딴 시빌리나 신탁집을 찾 아봄. 그녀는 나폴리만에 있는 쿠마이 근처 동굴에서 살았다고 믿어짐.
외래신의 도입 : 그리스 신들이 인기. 소아시아 풍요의 여신 키벨레 숭배도 도 입, 이시스와 오시리스, 미트라스(mithras) 숭배도 인기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는 어느 한 민족에 제한되지 않았던 꽤나 새로운 종교(예수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 황제 때인 서기 30년 경에 사망)
박해 : 교회 조직이 국가 내의 국가로서 음모를 꾸밀까봐 정부는 걱정. 종종 박 해. 예를 들어 네로 황제는 서기 64년에 로마의 거의 반을 불태웠던 대화 재의 범인으로 그리스도교인을 지목.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의 한 종파로서 취급받았으나, 결국 분리(서기 90년 경)
유일신교적 면, 단순 명료한 가르침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그리스도교인은 행정직을 맡지 않았고, 군복무도 하지 않음. 그러나 그들은 제국이 나 황제를 위해 기도했고 세금도 납부, 즉 그들은 반란자는 아니었음.
서기 3세기의 위기
변경의 커져가는 압력 : 서기 161-166년 로마와 파르티아의 전쟁
서기 165-180년에는 게르만 족들의 침공
사기 180년 경 게르만 족은 로마의 북쪽 변경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
국경 지대의 압력은 로마 제국의 취약성을 드러내게 됨
군사 문제 : 로마의 적들은 이제 로마 제국의 군사적 지식을 배워가고, 로마 병 사들의 용맹성은 줄어듬.
조세 체계도 단순 완고하여 늘어난 방어 비용을 충당할 수 없었고, 전리품 등 여분의 수입도 더 이상 없었음.
세웨루스 왕조
서기 193년, 북아프리카 출신의 셉티미우스 세웨루스가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황제의 아들인 코모두스 황제 피살 이후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여 황제가 됨.
그가 이끄는 다뉴브 군단의 승리 -> 군인 황제 시대의 선례가 됨.
셉티미우스 세웨루스의 아들 카라칼라는 서기 212년 제국의 모든 자유민에 게 로마 시민권 부여 <- 재정적 고려, 즉 상속세 등의 세금 부과 위해
군인 황제 시대(서기 235-284년)
50년 간 26명의 황제가 갈림
제국의 여러 지역이 전쟁으로 황폐, 과중한 세금
불안한 사회 상황, 재정적 곤경
병사들에 대한 계속적 상여금 인상
때로는 같은 시기에 여러 명의 황제들이 등장
군사적 쿠데타로 권력 장악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284-305년)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3세기 위기가 끝남.
여러 가지 개혁 정책 -> 사회적 유동성이 줄어듬
여러 행정적 변화
토착농부제 시행(중세 농노제의 선구)
관료제의 팽창
속주를 관구로 재편, 4개의 대관구
두명의 정황제(Augustus), 두 명의 부황제(Caesar)의 네 명이 미코메 디아, 밀라노, 시르미움, 트리에르에 거주하며 변경의 전쟁에 대비
콘스탄티누스(재위 306-337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퇴위 후 정황제와 부황제들의 후손들의 내전 발발, 결국 콘 스탄티누스가 승리
그는 내전기에 그리스도교에 공감하게 됨
교회의 내적 관계에도 주목 : 324년 소아시아 북부의 니케아(Nicea)에 서 열린 종교회의도 주관, 이 공의회의 신앙 고백은 니케아 신경으로 불리고 그 이후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준수
서기 324-330년 사이에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 새로운 수도 역할
증가된 재정 부담과 화페 제도(솔리두스 금화 도입)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로마 제국
이 시기 150여 년은 중세의 태동기인 과도기 : 제국 동부와 서부의 균열, 여 러 도시들의 몰락, 지속적인 제국의 그리스도교화, 늘어나는 변경의 압력이 이 시대의 네 가지 특징
서기 378년 게르만족의 일파인 비시고트족이 하드리아노플에서 동로마 제국 에 큰 승리.
서로마의 여러 지역에 게르만족이 들어와서 정착, 로마 군대에도 게르만족이 대단히 많이 늘어남 -> 로마 군단의 게르만 화
서기 476년 게르만족 출신의 장군 오도아케르(Odoacer)가 정권을 장 악하고 황제를 폐위. 자신을 이탈리아의 게르만 왕으로 칭함.
동로마 제국은 1453년 까지 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