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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독재시대에 키워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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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Publico 8.11(수)자 비공식 번역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독재시대에 키워진 사랑

<위대한 정치인의 사랑>

한국의 대통령과 영부인의 관계는 70년대 반군부 시위 속에서 공고해졌다.

복장과 공공활동에서 시대에 앞선 유쾌한 영부인은 2017년 대선에서 남편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나랑 결혼할 거니, 안 할 거니? 빨리 말해봐”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거의 가차 없는 요청으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결혼하게 되었 다. 70년대 말 두 사람 관계의 상징적 순간은 이렇게 매력적이지 않아 보인 다. 그러나 결혼 요청을 한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당시 시대를 봐서 더욱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보수적인 군사독재 시절 남녀 불평등이 여 전히 추세였던 한국사회의 상황에서는 더욱 별나다.

문대통령과 김여사의 관계는 종종 당시 통상적인 남녀관계와 차이가 있었고, 특히 당시 권위주의 문화에서 그러한 사랑을 키우는데 있어 어려움도 많았 다. 그럼에도 그들의 사랑은 살아남았고, 민주적 전환기에 꽃을 피우고, 김여 사는 2017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요즘 김여사는 한국의 가장 인기 있는 인사 중 한 명이며 그녀의 프로필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한국의 전통적인 영부인들과 대조된다. 그녀는 유쾌하고 유머감각이 있음을 보여주기를 좋아하고 영부인 직책의 엄격한 형식에는 별 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김여사는 남편의 대선 승리 얼마 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웃 같 이 친근한 영부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선 사람들에게 나를 영부인 으로 대우하지 말라고 이미 요청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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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최루탄 가스>

김정숙 여사와 문재인 대통령은 1974년 알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서울에 있는 경희대학교 학생이었다. 그녀는 음악을 전공하고 있었고 그는 법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한국의 언론 보도와 김여사의 모든 프로필 인용에 따르면, 문대통령을 김여 사에게 소개한 두 사람을 아는 지인은 대통령이 1960-70년대 유럽영화를 대 표하는 배우중의 한 명이고 당시 섹스심볼로 잘 알려진 배우 알랭 들롱과 신체적으로 닮았다고 묘사했다.

김여사가 문대통령과 들롱 사이에서 유사점을 발견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려져 있지 않지만 첫 인상이 첫 눈에 사랑으로 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김 여사와 문대통령은 친구가 되었으나 그 이상은 아니었다.

당시 문대통령은 이미 민주주의와 반정부 반독재를 위한 학생시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1975년 학생시위 중 한 시위가 김여사와 사랑에 접근하도록 했다. 시위자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은 문대통령이 김 여사의 도움의 손길에 의해 군중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그의 발자취를 담은 책에서 “눈을 떴을 때 그녀가 그녀의 손 수건으로 내 얼굴을 걱정스럽게 닦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얘기했다. 이 일 이 있은 후 얼마 안되어 김여사와 문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커플이 되었다.

서울 광장시장내 상인인 김여사의 부친은 초기에 자신의 딸과 한국전쟁중 북한에서 피난 온 가난한 아들이면서 학생에서 부산의 민주주의 활동가로 변모한 그와의 관계를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따라서 이 커플은 초창기 몇 년 동안은 김여사 부친의 반대 때문에 오랜 기 간 원거리 연애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런데 문대통령은 반독재 시위에 더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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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대학내 시위 주도로 결국 체포되어 그러잖아도 드물었던 김여사와의 만남은 수차례 교도소 면회실에서 이루어졌다. 문대통령은 석방된 지 얼마 후 특전사에서 병역의무를 위해 입대하였으며, 이로 인해 또 서로 떨어져 지 내게 되었다.

<피아니스트도 아니고 판사도 아닌>

문대통령은 1979년 제대 후 학업을 마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복학 을 결정한다. 김여사는 이미 졸업을 하고 서울시립 합창단 소속이었다.

그 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1948년 선포된 헌법에 따라 민주주의 제도가 수립될 것이라는 꿈을 꾸었던 짧은 시간 후에 전두환 장군이 집권하 였다.

또 다시 새로운 독재반대를 위해 시위에 참여한 문대통령은 또 한 번 체포 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사법시험 합격통지서를 받았고, 그와 김여사와의 관 계는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김여사의 별난 프로포즈로 문대통령과 김여사는 1981년 결혼해 처음 연애시 기의 방해와 제한 없이 두 사람의 인생을 시작한다. 결혼 얼마 후 김여사는 태어난 자녀(1남 1녀) 양육을 위한 전업주부가 되기 위해 피아니스트가 되는 꿈을 포기했다.

문 대통령은 전공학과의 가장 우수한 학생 중의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학생운동 이력으로 인해 원했던 판사의 길을 걷는 것이 금지되어 변호 사의 길을 택해 인권 소송 변호를 전문으로 맡았다.

80년대 말 군 수뇌부는 한국의 민주화를 허용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87년 독재종식 약속과 함께 선출된 노태우 대통령은 개인의 자유를 확대 하고 냉전의 동구권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몇 년 후 유엔에 가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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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등 군부독재 체제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김정숙 스타일”>

문대통령과 다른 민주주의 인사들에게 민주주의의 이양은 위대한 승리였다.

그리고 새로운 비행을 위해 나아갈 순간이었다. 문재인 변호사는 노무현 변 호사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대통령이 되어 문재인 변호사를 정치로 끌어들 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07년과 2008년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다.

정치생활에의 입문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른 포즈를 요구했다. 계속적으로 주목을 받고, 여러 공개행사 참석은 무뚝뚝하고 단조롭고 이성적인 남자인 그에게 사회성과 적응력을 요구했다.

김여사는 그 시기에 문대통령의 카운셀러이자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그녀의 외향적 성격뿐만 자신의 생각과 정치적 프로젝트에 관해 그녀가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기 때문이었다. 문대통령은“그녀는 내가 지쳐있다고 느낄 때면 포도주 한잔을 주고 간혹 사람들의 확고한 견해를 나에게 말해주고 더 쓴 충고를 한다”고 얘기했다.

문대통령이 한국 정치계에서 성장함에 따라 - 처음에는 대통령 비서실장, 다 음에는 국회의원, 나중에 민주당 대표와 결국 대통령 - 김여사의 인기와 사 람들의 호감도도 갈수록 남편의 이력에 더해 증가했다.

한국 정치인의 부인은 한복을 입고 남편의 한 발자국 뒤에 있는 전통을 깨 고, 김여사는 유권자들과 대화하고 군중과 섞이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복장 을 입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오늘날 영부인으로서도 계속 해서 전통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로이터 통신을 인용해 하재규 문화평론가는“과거 영부인들은 격식을 차리 고 항상 신중하고 말을 아꼈다. 반대로 김여사는 가까이 다가가기 쉽고 현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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