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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으며, 길 위에 있는 사람들
강미나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mail protected]) 연구자의 서가 •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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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올레여행
서명숙 지음
여행기와 답사기를 다룬 책은 언제나 내 가슴을 뛰게 한다. 그중에서도 「놀멍 쉬멍 걸으 멍 제주올레여행」은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다. 나는 이 책을 가끔씩 펼쳐보며 제주도의 따 스한 햇살과 비릿한 바닷바람을 마음속에 충전하기도 한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해외 배낭여행이 유행처 럼 번졌다. 서점가에서는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1996), 「나의 문화유산 답 사기-남도 답사 일번지」(1993)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낯선 것을 직접 경험하고 느 껴보는 답사 붐이 일었다. 다산초당과 무위사를 찾는 강진과 해남으로의 무박2일 답사에 도 대중들의 발길이 이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안팎으로 낯선 것에 대한 열망으로 눈을 빛낸 시기를 거쳐서일까. 여전히 나는 내 안에 감추어져 있던 낯선 것에 대한 동경과 방 랑의 DNA를 깨워 주는 글에 마음이 설렌다.
‘왜 여행을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지고 또 나름의 해답을 구하는 질문일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아 예 「여행의 이유」(2019)라는 책을 쓰고, 그 안에서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본문 23쪽)”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걷는 것일까? 이렇게 바쁜 일상 속에서, 속도감 있는 KTX와 비 행기가 발달한 지금 시점에 말이다. 서명숙 작가는 이렇게 답하고 있다. “도보여행은 오
77 감을 만족시키는 여행이다. 차량으로 휙휙 이동하면 눈만 즐겁지만, 같은 장소라도 걸어 서 가면 오감이 충족된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라이브 음악으로 들으면서, 목덜미를 간 질이는 해풍을 느끼면서, 꽃향기를 흠흠 맡으면서, 풀섶에 숨은 산딸기와 볼레낭 열매를 따 먹으면서, 나비의 미세한 날갯짓까지 지켜보는 즐거움이란!(본문 71쪽)”.
이 책에는 제주올레의 태동과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 난 사람들, 그리고 서귀포 매일시장에서 경험한 저자의 추억이 담겨 있다. 제주올레는 제 주의 관광문화를 바꾼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국으로 퍼진 ‘걷는 길’의 출발이었다. 이제는 진화를 거듭하여 산티아고의 알베르게 같은 게스트하우스와 자 원봉사자도 있고, 제주를 알리는 아카데미, 클린올레, 길동무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 하고 있다. 제주올레길의 탄생 이야기도 다시금 들으면서 내가 걸었던 올레길과 함께했 던 사람들을, 그리고 그 시간을 반추하게 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돌하르방 어디 감수광」(2012)을 들춰가면서,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 다니던 관덕정과 만덕할망 기념비 를 기억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이왈종 화백의 어린이 같은 천진한 색감의 그림과 김영갑 작가의 사진에서 바람이 전하는 애잔함을 느끼면서, 그리고 작가와의 동질감에 기뻐하던 그 순간들을.
제주어로 조근조근 들려주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동네 ‘삼춘’들과 지기 들의 이야기가 나의 할머니와 ‘삼춘’들의 이야기와 겹쳐지면서 더 가깝게 와닿는다. 아마 도 시간에 대한 공감, 공간에 대한 공감, 세대공감 그리고 과거로의 소환이 이 책의 매력 도를 더욱 높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걷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모든 올레가 그의 것이다(본문 71쪽)”.
저자와 함께 그 길을 걷고 기웃거리면서 담을 엿보는 그런 느낌. 천천히 나도 저자와 함께 놀멍 쉬멍 걸으멍, 외돌개와 산티아고의 길까지 함께 가고 있다. 글 속에 숨어 있는 제주 방 언도 정겹고, 꾸미지 않은 사진은 옛 기억을 소환한다. 나도 ‘간세다리’가 되고 싶다는 욕망 을 품고, “복삭하게 걸은 날은 몸과 마음이 더 가뿐하다. 지치도록 걷는 사이에 몸은 회복되 고 마음은 절로 충만해진다(본문 102쪽)”라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끔은 한 발만 디 뎌도 된다. 왼발과 오른발 사이에 길은 존재하므로(본문 119쪽)”에 위안을 받으면서.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말은 주거복지 연구자들이 흔히 하곤 하는 말이다. 현장에 가 기 위해 길을 나서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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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호 2021 June
연구자의 서가 38회 예고
손재영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가 다음 호 필자로 나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