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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는 서재라 하기에는 초라하고 옹색한 작은 공간 이 두 곳 있다. 좁지만 한쪽 벽면을 책으로 채운 서가 가 있고, 작은 책상과 의자도 마련되어 있어 오롯이 책 읽기에만 전념할 수 있는 서재 분위기가 제법 나는 곳이다. 서가의 책들은 어느 정도 꽂혀 있다 사라지곤 한다. 부지런히 버리기를 좋아하는 아내의 성격 탓도 있지만, 새 책을 구입하면 조금 연식이 된 책들은 우 리 가족이 자주 이용하는 서가에서 본래의 자리를 내 주고 안쪽의 다른 서가가 있는 공간으로 이동한다.
서가에 꽂혀져 있는 책들은 장르 불문이다. 읽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해설이 없으면 도통 이해되지 않는 몇 권의 고전과 명작부터, 칼 세이건의 「코스모 스」,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 망친 100세 노인」 등등 그때그때 보고 싶었거나 아내 가 사서 읽었던 책들이 뒤죽박죽 꽂혀 있다. 이쯤 되 면 다들 느끼셨겠지만 나의 작은 서가는 전공 무관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회사와 가정을 분리하고자 하는 의지로 업무와 관련한 서적들을 대부분 연구실에 두 기 때문이다.
서가의 책들 가운데 아끼는 책을 꼽자면 의미 있는 고전이나 명작도 있고, 읽는 내내 정말 재밌어서 손에
서 놓지 못했던 책도 있지만 읽을수록 내게 새로운 발 견을 주었던 특별한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교 재 학 시절 읽었던 박범신 작가의 「풀잎처럼 눕다(1983년 영화로도 제작됨)」, 정지용 시인의 「향수」, 대학 은사 이신 고 리영희 교수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그 리고 앞으로 소개할 고 신영복 교수의 「담론」이 그러 하다. 특히 「담론」은 읽을수록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가히 최고라 말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책읽기를 즐기지 않는다. 사실 즐기지 않는다기보다 푹 빠져드는 책이 많지 않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책읽기에만 몰두했다는 사람이 나 자기계발을 위해 이러저러한 책의 내용을 정리하 여 암기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 또 그 박식다식함으 로 TV 등에 출연해 자기의 학식을 자랑하는 사람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러한 나의 피상적인 인식은 내가 그들과 관계를, 즉 그들을 본 적도, 만 난 적도 없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할 책은 바로 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 이다.
고 신영복 교수의 「담론」은 저자가 성공회대학교 교 수로 재직하던 시절의 강의노트와 녹취록에 기반해
‘관계’에 관한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이수욱 |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장 ([email protected])
담론
신영복 지음 돌베개 발간 연구자의 서가 • 21
80 81
80
제460호 2020 february
2부 25장의 내용으로 출판되었다. 저자는 시경, 주 역, 맹자 등 고전을 통해 현재를 해석하고, 일상의 경 험을 가미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자기성찰을 이야기 한다. 책의 내용들은 모두 무척이나 좋지만, 특히 개 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은 ‘점은 선이 되지 못하고 (7장)’, ‘잠들지 않는 강물(8장)’, ‘관계와 인식(16장)’
등이다. 이들 장에는 사람 관계와 이해, 자기성찰의 과정에 대한 명쾌하고 가슴 따뜻한 해석들이 좀 더 담 겨져 있기 때문이다.
‘점은 선이 되지 못하고’에서는 우리 시대의 삶을 형 성하는 인간관계를 ‘본 것’과 ‘못 본 것’의 차이로 이야 기한다. 저자는 소 대신 양이 죽임을 당하는 맹자의 이양역지(以羊易之, 소는 보았으나 양은 보지 못했다.
그 결과 소는 살고 양이 대신 재물로 죽는다) 고사를 들어 ‘본 것’과 ‘못 본 것’, 즉 관계있는 것(소, 生)과 관계없는 것(양, 死)의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저자는 도시 과밀로 인한 현대의 얼굴 없는 인 간관계와 만남 없는 인간관계가 현재의 왜소하고 지 속적이지 않은 인간관계와 사회성의 실상이고, 만나 지 못해 선(線)이 되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삶이 외딴 점(點)이고 장(場)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잠들지 않는 강물’은 물을 최고의 선으로 여긴 노자 의 사상을 소개한다. 노자는 물이 만물을 이롭게 하는 생명이고(수선리만물, 水善利萬物), 흐르는 물은 선 두를 다투지 않으며(유수부쟁선, 流水不爭先), 반드시 소외되고 낮은 곳으로 흐르기(처중인지소오, 處衆人 之所惡) 때문에 최고의 선으로 보았다. 저자는 노자의 사상에서 잠들지 않고 흐르는 강물이 바다에 이르러 바다를 만들어내는 물의 교훈을 현실에 반영하며 살 아갈 것과 사람과의 만남에도 이 같은 자세를 견지해 나갈 것을 희망한다.
관계의 최고 형태를 이야기하는 ‘관계와 인식’에서
는 입장의 동일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관계의 최고 형태를 입장의 동일함으로 보지만, 그 동 일함이라는 것을 경제적 의미나 계급이라는 협소함으 로만 읽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입장의 동일함 을 경제적 의미로 읽을 경우 인간관계마저 경제적 관 계로 왜소화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담론」을 읽고 ‘관계’는 ‘공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 한다는 이해를 가지게 됐다. 연구를 하면서 자기 변화 의 출발점이 ‘공감하는’ 데 있음도 많이 느낀다. 우리 가 다루는 연구주제에 대한 공감, 함께 일하는 동료 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 그러하다. 책에서 저자는 노인 목수에게서 받은 엄청난 충격을 적고 있다.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와 달리 주춧돌부터 시작해 맨 나중에 지붕을 그리는 노인목수를 보면서 일하는 사람은 집 그리는 순서와 집 짓는 순서가 같지만, 책 을 통해서 생각을 키워온 우리는 지붕부터 그리는 인 식의 차이와 이런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 는 것이 자기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 다. “‘공감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도 우리 연구가 지향 해야 할 목적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분 들, 그리고 ‘공감’과 ‘존중’에 대한 마음의 울림이 필요 한 분들께 꼭 한번 「담론」 읽기를 권하고 싶다.
연구자의 서가 22회 예고
정의철 건국대학교 교수가 다음 호 필자로 나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81 81 80
제460호 2020 febru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