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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주차 강의: 새로운 생명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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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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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주차 강의: 새로운 생명공학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생명 윤리와 관련된 핵심적인 문제들은 생명의 파괴 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된 지금 새롭고 골치 아픈 다양한 생명 윤리적 딜레마들이 생겨났다. 이 딜레마는 생명을 창조하고 조작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과학 기술의 진보 체외 수정

1978년에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와 패트릭 스텝토 박사는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영국의 한 병원에서 한 아기가 탄생한 것을 필두로, 체외수정은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체외수정은 불임 부부들에게 아이를 안겨 주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난자와 배아를 검사, 연구하고 조작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체외수정이 발전함 에 따라, 아이들은 이제 네 요소의 산물로 간주될 수 있다. 난자 공급자, 정자 공급자, 자 궁, 탄생 후 돌보아주는 사람이다. 이는 유전적 어머니, 임신한 어머니, 사회적 어머니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정자 혹은 난자 혹은 배아 기증이 가능하고, 대리 임신이라는 개념도 생겼다. 심지어 배아 ‘입양’까지도 있다. 또한 배아는 연구용으로 사용 될 수도 있고 치료 목적으로 배우 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 조작할 수도 있다.

성별 선택

복잡한 유전학적 기술을 동원해서 배아를 검사할 수 있다. 치명적인 질병을 가진 배아가 착상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런 기술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성별을 선택하 기 위해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영국 인간 수정 및 발생학 당국이 2003년에 실시한 주요 공개 상담을 보면, 대다수 대중들이 성별선택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반면, 2001년 미국 생식 의학회는 부부가 ‘아들딸을 고루 낳기 위해’ 아이의 성별을 선택하도록 돕는 것은 적절하고 윤리적이라고 판결했다.

물론 성별 선택은 수천 년간 이어 온 과정이다. 단지 현재 이것이 첨단 기술화 된 것일 뿐이다. 인도의 예를 보면, 해마다 적어도 5만 명에 이르는 여아가 낙태된다. 이것은 개 인 낙태 시술소와 성감별소에서 행해지는데 상당한 돈벌이가 된다. 이것이 불법으로 규 정 되었지만 여전히 통제가 어렵다. 당연히, 미국과 유럽의 많은 시사 비평자와 윤리학자 들은 이러한 차별적 관행에 격분과 충격을 표했다. 성별 선택은 윤리적인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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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구 자유주의 사고방식의 관점에서만 그렇다.

착상 전 유전자 검사와 배아 선택

현재 착상 전 유전자 검사와 배아 선택은, 겸상 적혈구 빈혈증이나 낭포성 섬유증같이,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지는 아동기 질병을 탐지하는 경우에만 시행할 수 있다. 보통 질병을 유발할 만한 유전적 변이를 지닌 배아를 걸러내는 부정적 선택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유전적 변이를 가진 배아를 골라 택하는 긍정적 선택을 구분한다.

하지만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어떤 아이가 직접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후손에게 그것을 전염시킬 수도 있는 보균자 유전자형을 가진 배아는 선택을 거 부해야 하는가?

어떤 나라들은 난자나 정자 기증자를 찾는 과정이 점점 더 상업화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기증자에 대한 소개를 검토해 보고, 적절한 인종, 눈 색깔, 키, 교육 수준, 관심사 등을 선택할 수 있다.

맞춤아기

착상 전 유전자 검사를 하면 기존의 형제자매에게 맞는 조직 기증자 역할을 할 아이를 낳기 위해 배아를 선택할 수 있다. 실제로 이것을 위해 법원에 호소해 허락된 사례들이 있다.

복제

복제양 돌리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돌리는 어른 양의 유선 세포로 배양한 세포주에서 취한 DNA를 사용해 만들었다. 원래의 핵을 제거한 미수정란에 핵물 질을 집어넣어 새로 만들어진 배아를 다른 양의 자궁에 넣었고, 그것이 자라나 돌리가 탄생했다. 논평가들과 윤리학자들은 즉각 인간에 대해서도 똑같은 과정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주제에 대한 여러 소설이 나오는 등 대중에 의식 속에서 복제 라는 개념은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장래에 전체주의 정부나 신나치 독재자가 과학 기술을 악용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신 의료 분야에서 인간 배아 복제를 요구하고 있다.

생식적 복제와 치료적 복제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자는 인간의 자궁에 착상시킬 배아를 만들어 새로운 한 사람이 발달하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후자는 인간의 배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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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후 그것을 조작해서 의학적 목적으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이다. 줄기세포를 질병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환호를 받는다.

줄기세포 치료법

줄기세포는 다양한 질병에 놀라운 치료의 전망을 제시한다. 환자와 동일한 유전자 조합 을 갖고 있는 혈액, 피부, 근육, 뇌세포 등을 실험실에서 키워서, 거부반응 방지 요법 없 이 이식할 수 있다.

또한 핵 치환 기술로 휘귀 질환들의 유전을 예방할 수 있다. 체외 수정을 한 후, 핵을 제 거한 기증자 난자에 모체의 핵 DNA를 집어넣으면 모체의 미토콘드리아 질병이 다음 세 대에 전달될 위험없이 유전적으로 자신과 닮은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복제 는 심지어 레즈비언 커플이 아이와 생물학적 부모 자식 관계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과학 기술의 향상

새로운 생명공학은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와 싸우는 데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신체의 구조와 능력을 바꿀 수 있는데, 근육의 강도와 지구력을 향상시 키고, 줄기세포나 인공 대체물로 신체 각 부분을 갈아 끼워 치료하고, 정신 활성제를 사 용하여 뇌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컴퓨터와 직접 연결하여 세포 조직 내에 있는 노화 작 용을 수정함으로써 수명을 연장할 것이다.

핵심 문제들

인간의 생명공학이 진보함으로써 발생한 당혹스러운 갖가지 이슈들 배후에는, 일정하게 되풀이되는 핵심적인 문제들이 있다.

생명공학은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구분을 무너뜨린다.

인간 세계에는 언제나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나뉘었다. 그런데 과학 기술의 발전 으로 인공적인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인간과 그들 육체의 관계는 어 떤 면에서 자연의 마지막 미개척 분야라고 주장했다. 계몽주의에서 유래한, 자연을 통제 하고 개선하려는 오랜 과학적 꿈은 인간의 육체에까지 확장될 수 있다.

생명공학은 부모 자식 관계의 본질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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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배아를 만들 난자와 정자 기증자를 선택할 수 있고 배아를 시험해서 최적의 유전 적 잠재력을 가진 배아를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자녀 교육과 아무 차이 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마 그리 멀지 않아, 최선의 배아를 선택하는 것은 책임 있는 부모 가 해야 할 필수 의무로 여겨질 것이다. 중산층의 책임이라는 미명하에, 소비주의라는 신 의 견고한 진이 마침내 부모 노릇에까지 확장될 것이다.

생명공학은 예로부터 내려온 인류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모든 세대마다 노화, 질병, 불임, 장애, 연약성, 쇠퇴, 죽음이라는 인간의 현실이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생명 공학이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듯 보인다. 최근 생겨 난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을 향상시키는 과학 기술들을 널리 사용해야 하며, 개인들은 이 과학 기술을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해 광범위한 판단력을 지녀야 하고, 부모들은 자녀 를 가지려 할 때 어떤 생식 기술을 사용할지 자유롭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래에 대단한 치료 요법이 나올 가능성이 현재의 윤리적 관심사에 우선한다.

15년 이상 지난 지금 와서 보니, 인간 배아 연구를 통한 치료법은 놀랄 만큼 별로 발전 하지 않은 듯하다. 놀라운 새 치료법에 대한 약속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 전히 개발될 대단한 치료법의 가능성이 이슈가 된다. 단순한 실용주의적 분석에서 연구 를 통해 미래에 얻을 수 있는 유익들을 배아 조작에 대한 윤리적 관심사와 비교 검토할 때, 언제나 새로운 치료법의 가능성을 자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것이 아무리 불확실한 것 이라도 말이다.

성경적 주제

이러한 도전들에 반응하여,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계시에 비추어 인간을 성경적으로 이 해해야 한다.

창조 질서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서 중심 주제는 하나님이 그분의 피조물에 질서를 부여하셨다는 것 이다. 생명이 있는 것이든 생명이 없는 것이든 모든 것에 위치와 기능을 부여하셨다. 창 조 세계의 어느 한 부분도, 아무리 혼란스럽고, 아무리 자율적이라 해도 창조주께서 설정 하신 본질적 한계에 종속되지 않은 것은 없다. 심지어 우리 안에 도덕적 질서 역시 창조 하셨다. 이 질서에 따라 살며 그것은 지혜로운 길일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 전체에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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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와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시는 분이다. 성경은 인간의 기원이나 자궁 내에서 각 태아의 발달이 세심한 사랑의 설계로 이루신 것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형상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독특한 존재다. 즉 인간은 하 나님을 닮은 존재다.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만이 아니라 창조에 의해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재료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는 형상이며 그의 반영이다. 우 리 인간의 존엄성은 그분에게서 오며, 우리는 의존적 존재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 정도 독립성, 진정한 선택의 존엄성, 피조물의 상대적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하나 님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각 인간의 생명은 그가 지닌 신적 형상 때문에 독특한 존엄성을 지닌다. 그래서 시편에 서 인간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묘사하듯, 각 생명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 윤리,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은 성경적 인류학, 곧 우리 가 지음 받은 방식에서 비롯된다.

타락의 결과

타락의 핵심은 인간이 창조 질서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타락 이후에 우주는 균열이 생기 고 무너졌지만, 우주는 여전히 도덕적 질서를, 감춰진 성질을 보여 준다. 그래도 질서는 무너졌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이 죽음을 세상에 들여왔다. 인간의 죽음과, 그 공포는 자연적인 것 이 아니다. 우리는 죽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고 영원히 살도록 지음 받았다. 죽음은 창 조 질서의 일부가 아니었다. 생물학적으로 죽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노화 과정은, 우리가 아직 제대로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회복과 갱신기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생물학적 쇠퇴와 사망에 이르게 하는 활발 한 생물학적 활동과 관계가 있다.

사망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것은 두려움이다. 인간의 삶이라는 축복이 두려움, 특히 죽 음에 대한 두려움에 종노릇 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들이 부패하고 타 락한 상태로 영원히 살지 않도록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게 하셨다. 인간의 수명이 제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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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단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다음 과 같아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죽음의 이질적이고 파괴적인 성질에 대해 격분해야 한다.

둘째로, 육체적 삶이 끝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궁극적으로 죽음이 멸망 당하리라는 것을 알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계속 품어야 한다. 어쨌든, 성경 적 관점은 우리가 의술과 건강관리에 의존해도 우리가 육체의 죽음과 부패의 순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에서 창조 질서의 정당함이 입증되고 성취된다.

창조 질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에서 재확립되고 또 성취된다. 그리스도께서 육체적인 인간으로서 부활하실 때, 하나님은 창조 질서에 대한 신임투표를 선포하신다.

인간에 대한 원래의 설계도는 버려지거나 멸시되거나 무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도 인들은 인간의 몸과 그 이상하고 특이한 설계를 특별히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바로 이 형태로 육체가 되셨다.

예수님은 피조물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지셨다. 그분은 피곤하고 화를 내고 배고프고 비 탄에 빠지고 번민하셨다.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원래의 아담이 되어야 했 던 완전한 인간상과 새로운 인간 유형의 청사진을 본다. 하나님은 흠잡을 것 없는 모습 으로 새로 시작하시는 대신,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앞으로 계속 원래 만들어진 인류를 유지하고 구속하고 변화시킬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세계 안에 있는 악의 실상, 모든 것을 왜곡시키고 손상시키는 타 락의 결과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처음에는 반영된 하나님의 성품은 왜곡되고 부분 적으로 희미해졌다. 이것을 흠 있는 걸작품에 비유한다면, 이것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 엇인가? 우리는 그것들을 원래 예술가의 의도에 맞게 복원하려 애써야 한다.

예술품 복원으로서의 의료 기술

생명공학을 예술품 복원의 관점으로 유비해보자. 생명공학을 함에 있어서 회복적 의도로 유전자 조작이나 줄기세포 치료법 같은 과학 기술을 사용하는 것, 손상된 DNA를 새로 만들거나 손상된 세포 조직을 정상적인 조직으로 바꾸는 것은 윤리적 관행에 맞는 듯 하 다. 그러나 향상시키기 위한 것, 팔다리가 더 강하고, 건강이 더 좋고, 두뇌가 더 비상한 아이를 낳기 위한 요법은 인간 책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회복적 요법과 향상적 요법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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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됨

그러므로 아이의 성별이나 유전적 구조를 결정하기 위해 배아를 만들고 선택하는 것, 혹 은 특정한 유전적 구조를 지닌 아이를 만들기 위한 생식 복제는 문제가 대단히 많은 듯 하다. 배아 시험과 선택, 또한 생식 복제를 하게 되면, 우리의 아이는 하나의 물품, 우리 가 선택한 것, 우리의 바람과 욕구를 반영하는 존재가 된다. 이것은 부모됨의 본질을 바 꾸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아이를 만든다고 하지 않고 우리는 아이를 낳을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아기는 우리와 다르다. 그 아기는 인공적인 존재, 우리 인간과 다른 이질적인 것 이다. 그 아기는 근본적으로 우리 재량에 달린 것이며, 우리 존재의 산물이기보다는 우리 의지의 산물이다. 생식 과학 기술의 위험 중 하나는 그것이 자녀와 우리의 관계의 변화 를 교묘하게 반영하고 그 변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반응

생명공학이 제기하고 있는 도전과 질문들에 대한 깔끔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노력해야 한다.

첫째, 자녀 없는 부부, 유전 질환으로 망연자실하고 있는 가족들, 알츠하이머병 등으로 퇴행 상태에 직면한 개인들의 깊이 감춰진 고통에 공감을 해주어야 한다. 이들의 감춰진 고통이 과학 기술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이다.

둘째, 기독교 공동체는 사회적 차원에서 새로운 유전자 조작과 생명공학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경제적,정치적 권력에 도전하고, 그 과학 기술을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민주적 책임 성, 투명성, 정의를 요구해야 한다.

셋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고, 오염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된 존재 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성경 세계와 현대 과학의 세계 사이에 다 리를 놓을 수 있는 의사, 유전학자, 생식 과학자들의 통찰과 실제적 경험이 필요하다.

넷째로, 우리는 인간이 복제적 유기체가 아니라 훌륭하지만 흠이 있는 걸작품으로 보는 세계관을 제시해야 한다. 기능 향상을 위한 생명공학이 남용될 가능성에 저항하는 한편, 회복 요법을 지지하고 격려하면서 우리의 인간됨이 주어진 것임을 존중하는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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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리는 생명공학을 적용하는 면에서 세계적 차원의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생명공학의 적절한 용도에 대해 토론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제한된 의료 자원을 적용하 는 방식에 관해 공평과 세계적 차원의 정의를 요구해야 한다.

토론을 위한 질문들

1. 현대에 와서 생명공학 기술로 말미암아 생겨난 윤리적 딜레마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2. (1) 당신은 일반적으로 회복을 목적으로 생명공학을 사용하는 것은 환영해야 하는 반 면, 기능 향상을 목적으로 생명공학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는가?

(2) 이런 맥락에서,

- 당신은 불임 부부가 자녀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수단으로서 체외수정에 원칙적으로 동 의하는가?

- 만일 그렇다면, 겸상 적혈구 빈혈과 낭포성 섬유증과 같은 유전 질환이 있는지 알아보 기 위해 태아 감별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

- 만일 그렇다면, 그 병의 잠재적 환자인지 알아볼 뿐 아니라 잠재적 보균자인지 알아보 기 위해 태아 감별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

- 만일 그렇다면, 심각한 질병에 걸릴 위험이 적은 태아(의학적으로 확실하기보다는)를 찾아 내기 위해 태아 감별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

- 만일 그렇다면, 성별이나 태아의 다른 긍정적 특징들(예를 들면, 더 강한 팔다리, 더 좋 은 두뇌)에 기초해서 태아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3. 14일 단계까지의 인간 태아를 만들고 파괴하는 것을 포함하는 인간의 줄기 세포 연구 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조화되는가?

4. 유전적 결함을 가진 기존의 형제자매를 위해 조직 기증자 역할을 하도록 아기를 만들 어 내는 ‘맞춤 아기’의 상황을 생각해 보라. 이면적 동기를 가지고 둘째 아이를 ‘만들고’

첫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자비로운 것으로 여겨야 하는가, 조작으로 여겨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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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동성애

최근 들어 동성애는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편, 교회는 동성애 반대 세력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 성경적으로 성찰하고 적절히 반 응함으로써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동성애 관행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일에 관여된 사람들을 비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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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할 자유는 없다. 우리도 모두 연약한 존재들이며,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 엇이 옳고 그른지 성경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될 것이다.

동성애 발생률

모든 사람이 전적으로 동생애적이거나 전적으로 이성애적인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서구 사회에서 십대 시절의 실험은 제쳐놓더라도, 남성들 중 3-5.5퍼센트가 성인 시 절에 동성애 행위를 했으며, 1.5-4퍼센트는 지난 5년 내에 동성애 파트너가 있었고, 남성 인구의 2퍼센트 미만과 여성 인구의 1퍼센트 미만은 성향 면에서나 실제로나 동성애만 행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핵심질문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동성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죄와 범죄의 구분

간음은 언제나 죄였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가에서 간음은 국가가 처벌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그에 반해 강간은 죄이며 또한 범죄다. 전 세계적으로 매우 다양한 태도가 있다.

전 세계 약 70개국에서는 동성애 관계가 불법이며, 또 어떤 나라들에서는 동성애자들을 장기 투옥할 수 있다.

성향과 실천의 구분

동성애 행위와 동성애 성향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 구분은 책임의 근원을 찾는 것을 넘 어 죄책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우리의 성향이 어떻든, 우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고, 성관계가 한 남성과 한 여성 간의 평생 연합을 기쁘게 경축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발적 동성애와 헌신된 동성애 간의 구분

책임있는 동성애자는 청소년이나 아동들을 폭력과 타락으로 끌어들이지 않을뿐더러 닥치 는 대로 ‘하룻밤 즐기기’를 조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성 간의 결혼과 동성 간의 결합은 둘 다 똑같이 애정이 담기고 성숙하며 신실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회 내에서도 동성애 관련자들이 지도자가 되는 등 문제들이 많았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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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문제는 이따금씩 일어나는 동성애적 행동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동성 간의 결합이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할 만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다.

성경의 금지

소돔과 기브아 이야기

전통적인 기독교적 견해는 소돔사람들이 동생애를 행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 앞에 악하며 큰 죄였다. 한편, 베일리 같은 사람은 소돔의 범죄가 동성애가 아니었다고 주장했 다. 하지만 이 주장은 몇 가지 이유로 설득력이 없다.

 ‘악’ ‘악행 ‘망령된 일’(창 19:7; 삿 19:23)이라는 말은 손대접을 이행하지 않은 것 을 묘사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듯 보인다.

 그 대신 여자들을 내주겠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야기에 어느 정도 성적 함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야다’라는 동사가 성관계를 의미하는 말로 단 10번만 쓰였다 하더라도, 베일리는 이 중 6번이 창세기에 그리고 1번은 소돔 이야기에서 롯의 딸들에 대해 쓰였다 는 것을 언급하지 않고 빼버린다.

 신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가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 라”갔다고 명백하게 언급한 유다의 말(7절)을 그저 유대 위서들을 잘못 베낀 것 이라고 무시해 버릴 수 없다. 분명 동성애 행위는 소돔만의 죄는 아니었다. 하지 만 성경에 따르면 분명 소돔이 저지른 죄 중 하나로서, 하나님이 무서운 심판을 내리셨다.

레위기 본문

다음의 두 본문은 성결 법전에 속한 것이다.

- “너는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안 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

(18:22)

-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여, 여자에게 하듯 그 남자에게 하면, 그 두 사 람은 망측한 짓을 한 것이므로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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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으로 죽는 것이다.” (20:13)

어떤 이들은 이것은 단지 종교적 관행을 금지하는 것이며 오늘날의 동성애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이 두 구절에 대한 명백하고 자연 스러운 해석은 모든 종류의 동성간 성관계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로마서 1장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자들은 남 자와의 바른 관계를 바르지 못한 관계로 바꾸고, 또한 남자들도 이와 같이, 여자와의 바 른 관계를 버리고 서로 욕정에 불탔으며,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잘못에 마땅한 대가를 스스로 받았습니다.” (롬 1:26-27)

이 본문은 당시 그리스-로마 사회의 우상을 숭배하던 이교도들을 묘사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악을 위해 그 진리를 억눌렀다. 하나님은 심판 으로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는데 ‘역리’로 쓰는 성도 포함된다. 즉 하나님을 우상과 바꾸는 부조리는 이성간 관계를 동성간 성관계로 바꾸는 부조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바울의 다른 본문들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 십시오.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male prostitutes, malakoi),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homosexual offenders, arsenokoitai),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중상하는 사람들이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고전 6:9-10)

“율법이 제정된 것은, 의로운 사람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 와,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않은 자와, 속된 자와, 아비를 살해하는 자와, 어미를 살해하는 자와, 살인자와, 간음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arsenokoitai), 사람을 유 괴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를 하는 자와, 그 밖에도,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 훈에 배치되는 일 때문임을 우리는 압니다. 건전한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딤전 1:9-10)

이것은 추한 죄의 목록이다. 한 부류는 말라코이(malakoi)이고 다른 한 부류는 아르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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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타이(arsenokoitai)이다. 전자는 동성간 성관계에서 수동적 역할을 하는 남성을 의미 하고, 후자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쪽을 묘사한다. 어쨌든, 바울은 로마서에서 동성애를 이방인의 악으로, 고린도전서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로 말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과 결혼 이성애적 성: 신적 창조

첫째, 인간은 반려자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회적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리 고 이어서 돕는 배필 혹은 반려자를 주어 성적 상대가 되고 한 몸을 이루며 사랑을 완성 하고 자녀를 낳아야 했다.

이성애적 결혼: 신적 제도

아담이라는 단일한 인간에게서 남자와 여자가 나왔다. 그는 자신의 반영물, 자신의 보완 물, 바로 자신의 일부를 보았다. 아담은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피조물이 서 있다고 말하며 최초의 사랑의 시를 읊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고 부를 것이다.” (창 2:23)

이성에 대한 정절: 신적 의도

이성 간의 성관계는 육체의 연합 훨씬 이상의 것으로 서로 보완하는 두 인격체가 융합하 여 만연한 소외 속에서도 인간이 창조 때 누리던 풍성한 하나됨을 다시 체험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결혼의 구성요소가 있다. 첫째, 하나님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 다.’ 둘째, 하나님은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라고 ‘말씀하셨다.’ 셋째, 하나님은 어떤 인간도 그들을 나누지 못하도록 하나로 ‘짝지어 주셨다.’ 여기서 이성의 성은 신적 창조물이라는 점, 이성 간의 결혼은 신적 제도라는 점, 이성 간의 정절은 신적 의도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현대의 논증들에 대한 고찰

하지만 동생애자인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성별과 이성 간의 결혼 제도에 대한 이러한 성 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동성애 관계의 합법성을 변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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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문화에 대한 논증

전통적으로 성경은 동성애 행동을 정죄해 왔다. 하지만 반대의견을 가진 자들은 이것이 저자의 경험과 문화에 속박된 관점이라 말한다. 첫째, 성경 저자들은 자신의 상황에 관련 된 질문을 다루었으며, 그 질문은 우리의 것과 상당히 달라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둘째, 보완적인 문화적 문제는 성경 저자들이 우리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바울 은 동성애적 성향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고 성도착증과 변태의 구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견도 하나님의 결혼 제정과 관련해서 보면 받아들여질 수 없다.

창조와 자연에 대한 논증

어떤 이들은 동성애인 것이 자연(본성)에 따른 것이라고 할 것이다. 첫째로, 많은 원시 사회에서 그러한 행동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고, 몇몇 발달된 문명사회에서는 그러한 행동을 이상화하기까지 했으며, 동물학자들이 동물들에게는 그러한 행동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증들은 자연스러운 것과 정상적인 것에 대해 극도로 주관적인 견해를 표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조에 의해 성과 결혼의 규범을 확정하셨다. 이것은 자연 즉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반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었다.

관계의 질에 대한 논증

프렌즈 리포트는 동성애를 찬성하며 중요한 것은 관계의 특성과 질이라고 했다. 감리교 회의 사회적 책임 분과는 “어떤 동생애적 활동”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고 하며 동성애 관계의 질은…이성 관계에 적용해 온 것과 동일한 판단 기준에 따라 평가해 야 한다 라고 했다. 하지만 동성애의 특질에 대한 주장에는 결함이 있다. 첫째, 동성애 관계에서 부부에 준하는 두 사람이 평생토록 정절을 지킬 수 있다는 개념은 대체로 신화 이며 사실과는 모순되는 이론적 이상이다. 둘째, 동생애는 에이즈를 포함한 해를 끼칠 수 있다. 셋째는, 사랑의 질이 본질적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사랑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충분한 판단 기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부다처제는 분명 여러 명의 아내와 관계를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성이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율법과는 대치된다.

정의와 권리에 대한 논증

어떤 자들은 정의를 근거로 동성애 관계를 지지한다.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별과 피부색, 인종과 계층으로 사람들을 차별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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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과 마찬가지로, 성적 편향으로 그들을 차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 시지 않은 ‘동성애’를 인간의 권리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수용과 복음에 대한 논증

분명 동성애자 그리스도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성애자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다. 그런 데 그분이 우리를 받아 주심은 회개하는 자를 값없이 용서해 주신다는 의미이지 우리가 계속 죄를 짓는 것을 허용하신다는 것은 아니다. 그분은 우리를 죄 속에 남겨 두기 위해 서가 아니라 구속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를 맞아들이신다.

믿음, 소망, 사랑

성경에 근거해 동성애자들에게 그 관행과 파트너를 포기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면, 그들이 이러한 요구에 반응하도록 어떤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바울이 말하는 믿음과 소 망과 사랑을 동성애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적용하고 싶다.

믿음에 대한 기독교적 부르심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우리 인간의 반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믿음 은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인다. 세상은 “성은 인간이 만족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동 성애자가 동성애를 그만두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들을 정죄하여 좌절시키고, 노이로제와 절망과 심지어 자살로 몰고 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다르다.

그것은 필수라기 보다,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이다. 예수님도 독신이면서 동시에 온전 한 인성을 지니고 계셨다. 둘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들인다.

소망의 대한 기독교적 부르심

동성애의 원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마찬가지로 이것에 대한 치유의 가능성과 수단 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이 다르다. 첫째, 그들은 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변화하 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치유를 성적 성향의 전환으로 이해하여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셋째는 치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동 성애 상태는 하나님의 규범에서 벗어난 것이므로 창조된 질서의 표지가 아니라 타락한 무질서의 표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성향에서 해방은 아니어도 이전에 속박되었던 동성애 적 생활 방식에서 해방된 사례와 간증들이 많다. 그렇다면 성향이 실질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소망은 없는가? 엘리자벳 모벌리는 소망이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동성애가 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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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것이 아니라 부모-자녀 관계, 특히 인생의 초기에 이 관계에서 겪은 어려움으로 인 한 것이라는 견해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부모의 보살핌에 대한 대체 관계가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 있다. 부모와의 관계가 그분의 창조계획 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라 고 말했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의 기도와 사랑의 관계가 기본적인 치료책 이다. 사랑은 기본적인 문제요 커다란 욕구이며 유일한 참 해결책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의 치유하시고 구속하시는 사랑을 추구하고 전해 주려 한다면, 동성애자의 치유는 위대 하고 영광스러운 현실이 될 것이다.”

사랑에 대한 기독교적 부르심

현재 우리는 ‘중간기’, 우리가 믿음으로 붙잡는 은혜와 소망으로 예상하는 영광 사이의 때에 살고 있다. 그 둘 사이에 사랑이 놓여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교회는 동성애자들 에게 바로 그 사랑을 보여 주는 데 실패했다. 이것에 대해 교회는 속죄를 해야 한다.

동성애 상태의 핵심에는 깊은 외로움, 상호적 사랑에 대한 자연스럽고 이간적인 갈망, 정 체성 추구, 완전에 대한 열망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동성애자들이 지역 교회 가족에게서 이런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가족이라는 표현을 쓸 권리가 없을 것이다. 그들에 게는 심중을 털어놓을 수 있는 믿을 만한 친구가 적어도 한 명은 정말로 필요하다. 그 친구는 그들을 멸시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우정과 기도로 후원해 줄 것이다.

동성애자 그리스도인의 딜레마는 복잡하고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녀) 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제시하신다.

토론을 위한 질문들

1. 레위기 18:22과 20:13을 살펴보라. 당신은 이 본문들이 동성애적 매음 의식을 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모든 동성간 성관계가 불법이라고 선언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가? 레위기 19:19의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재료를 섞어 짠 옷감 으로 만든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와 같은 다른 율법들의 맥락에서 볼 때, 무엇이 오늘날 이 본문들에 구속력을 부여하는가?

2. 로마서 1:18-32, 고린도전서 6:9-10, 디모데전서 1:8-11을 읽으라.

a.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이 동성애 관계를 “역리”라고 한 것은 그들 자신의 본 성에 반하여 행동하는 이성애적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참여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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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성향이 어떻든 모든 동성애적 행동을 말하는 것인가?

b. 고린도전서 6:9-10에서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male prostitutes)과 “동 성애를 하는 사람들”(homosexual offenders)이라고, 그리고 디모데전서 1:10에서 “남색하는 자”(perverts)라고 번역된 단어들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당신은 이 두 본문이 단지 남창들과 상업적인 남색만 언급한다고 생각 하는가, 아니면 더 광범위한 모든 동성 성관계를 함축한다고 생각하는가?

c. 당신은 피터 콜먼의 다음과 같은 말에 동의하는가? “종합해 보면, 사도바 울은 동성애적 행동을 로마서에서는 이방인들의 악으로, 고린도전서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로, 디모데전서에서는 도덕법 에 근거에 부인해야 하는 범죄로 지목한다.”

3. 그리스도인은 법률을 제정할 때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신념을 어느 정도로 간직 하도록 애써야 하는가? 당신은 다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동성 파트너를 국가가 합법화하는 것 b. 동성 결혼을 국가가 합법화하는 것

4.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성애자들에게 그들의 행위를 포기하라고 할 때, 우리가 가져 야 할 세 가지 덕목은 무엇인지 말해보고 자신의 의견을 나누어 보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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