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122
조령1관문
서울과 대구에서 2시간대로 오가는 청정한 오지
청정한 오지로 불리는 문경새재는 2004년 말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과 경부고속도로 김천을 잇는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2시간대로 닿는다. 영남 예순여섯 고 을 사람들이 수백 년을 밟아 다져놓은 미로 같은 고갯길과 산속 원주민들이 숙명처럼 먹었다는 도토리묵과 묵조밥이 옛 그대로 전해져온다.
김순경 음식칼럼니스트
문경새재 옛 길과 묵조밥
영남(嶺南)의 제1관문-조령(鳥嶺)
지난해 겨울 문경새재 옛 길이 그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 아 명승지 32호(2007년 12월 27일)로 지정됐다. 일명 조령(鳥 嶺)으로 불리어온 새재는 영남지역에서 서울로 오르던 고갯마 루다. 영남(嶺南)이란 바로 고개의 남쪽이란 뜻으로 문경과 예 천, 안동을 비롯해 멀리 동래까지 예순여섯 고을을 헤아린 것 으로 전해온다. 이곳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어야 서울을 오갈 수 있었고 새들도 쉬면서 넘는다고 해서 조령이다.
양 창자처럼 오불꼬불 돌아넘는 고갯길은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새여서 외적이나 반군의 군마가 집단으로 넘을 수 없도록 미로 같은 오솔길로 엮어놓고, 초입에서 정상까지 3 개의 관문을 세워 관군이 경계를 섰다. 하지만 고개를 넘어 서면 충주에서 뱃길을 이용해 여주와 이포나루를 거쳐 서울 의 뚝섬과 동호(한남동)까지 하룻길로 닿을 수 있어, 대부 분 영남사람에게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로 통했다.
수백 년을 이어오며 과거 길에 오른 선비들과 암행어사, 임지로 내려가는 관리와 파발말, 보부상들의 왕래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왕실의 정사와 문물이 이 고갯길을 통해 영남 권에 전해졌다. 1981년 산 전체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왕모래로 다져진 반듯한 새 길이 열리면서 이때 옛 길의 많 은 부분이 훼손됐지만, 타고난 산세 그대로 발을 밟기에 편 안한 경사도와 웬만한 눈비에도 왕래가 가능한 곳을 골라가
며 다져놓은 오솔길의 일부분이 옛 모습 그대로 이어져온다. 우리 옛 길의 고전이나 다름없는 이 길 을 한발 한발 걸어 오르며 옛 선조들의 숨결을 더듬어보는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새재 여인들의 슬기가 담긴‘묵조밥’
고갯길에는 60년대 초까지도 1관문 안 주막 촌과 계곡을 따라 양지바른 산간에 들어앉은 원주민들이 50여 가구를 헤아렸다. 대부분 산 에 의존해 살던 이들은 산밭에서 나는 조와 메 밀, 감자, 콩과 녹두 등 잡곡류와 도토리와 산 채로 연명했다. 전기와 전화는 물론 아이들은 20리 학교 길을 걸어 다녔다. 70년대로 접어들 면서 이런 오지에도 주말이면 서울과 대구에서
새재 옛길
수백 년을 밟아 다져놓은 흙길은 웬만한 장마에도 씻겨나가는 법이 없고 잡초조차 뿌리내릴 수 없을 정도다.
장아찌와 나물 일색인 새재 묵조밥
+ 125 124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도토리묵과 묵조밥이 선보이며 남다른 먹을거리와 이야 기가 있는 주말여행지로 알려져 왔다. 특히 새재사람들이 나면서부터 숙명처럼 먹었다는 도토리묵 과 조밥이 어우러진 묵조밥은 그 유래가 확실한 새재 고유의 토속별미로 손꼽힌다.
1관문 앞‘소문난묵집’은 묵조밥을 가장 오래 일관되게 이어오는 집이다. 70년대 중반 간판도 없 이 시작해 30년을 넘어서고 있다. 주인 장창복(73세)씨는 1관문 안에서 3대를 이어온 토박이 새재 사람으로 군대를 마치고 돌아와 부인 박남복(71세)씨와 결혼한 뒤, 대물림한 농사일을 놓을 수 없 어 새재를 떠난 적이 없다는 이다. 아직 밭일을 얼마만큼은 돌보면서 1주일에 2~3번, 아침과 저녁 으로 나누어 쑤는 도토리묵과 녹두묵은 나면서부터 먹고 자라, 남의 손을 빌만큼 큰일이 아니라고 한다. 부부가 함께 바늘에 실 가듯 일손을 주고 받으며 직접 묵을 만들어 내며 세상 어떤 일보다 즐 겁다고 이야기 한다.
묵조밥의 유래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들려준다. 식량이라고는 조와 옥수수 등, 잡곡이 전부였던 산간에서 쌀은 녹두와 팥을 팔아 사오지만 턱없이 부족했고, 그래서 어쩌다 흰 쌀알이 눈에 띌 정도 인 폴폴 흐트러지는 깔깔한 조밥은 특히 노인들과 어린 아이들이 먹기에는 힘겨울 수 밖에 없었다 는 것. 그래서 산골 여인들은 밥 때마다 아이들을 달래누라 애를 태웠고, 때로는 회초리를 옆에 놓 고 밥을 먹이며 이런 어려운 과정에서 슬기를 발휘한 것이 바로‘묵조밥’이라고 한다.
수시로 도토리와 녹두로 묵을 쑤어 샘이나 집 앞 냇물에 담가놓고 한 모씩 건져다 곱게 채 썰어 참기름 양념장을 얹어 조밥을 비비거나 국물을 만들어 묵과 함께 말고 짭짤한 산채장아찌를 곁들였 다고 한다. 깔깔한 조밥은 매끄러운 묵에 파묻혀 씹힐 사이가 없이 넘어갔고, 그렇게 한 그릇씩 곁 들이면 먹기도 수월했고 양식도 절감되는 두 가지 효과를 누렸다는 얘기다. 어쩌다 한 번 먹는 도시 사람들은 씹을수록 고소하고 향미 그윽한 별미라고 좋아하지만, 새재사람들은 냄새조차도 눈물겨 웠던 깔깔한 조밥에 목이 메던 기억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고 회고한다.
산채장아찌와 솔잎차를 곁들인 자연 그대로의 건강별미
이처럼 새재 여인들의 애틋한 예지가 담긴 묵조밥은 그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다. 깔끄러 운 매조 대신 흰쌀과 부드러운 차조가 넉넉하게 들어가 고소하게 씹히는 향미가 실제로 별미나 다 름없다. 주문할 때 도토리묵과 청포묵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묵무침 한 사발과 조밥 한 그릇, 된장 찌개와 산채묵나물과 파란나물, 산채로 담근 지와 장아찌, 김치와 생채, 물김치 등을 상에 올린다.
그리고 전에는 없었던 생선구이나 멸치조림이 곁들여진다. 묵은 어느 것이나 장 씨 부부의 손길이 닿은 최상의 경지로 신선한 탄력과 은은하게 배어나는 고상한 여운이 각별하다.
그리고 2~3년 또는 7~8년씩 삭힌 밑반찬들이 몇 가지 어우러지고 나면, 소박하지만 전혀 낯설 지 않으면서 우리 음식 고유의 정취가 뭉클하게 배어난다. 이런 완성미를 해묵은 산채장아찌가 살 려낸다. 모두 소금과 된장으로 갈무리한 것이고 산속 생활에서 주식 못지않게 소중했던 염장식품들 이다. 지금도 소금은 1년에 한 번씩 들여다 큼직한 낡은 독에 가득가득 담아 서늘한 그늘에 놓아두 고 해를 묵혀가며 쓰는데, 고슬고슬하게 간수가 빠진 소금은 음식에 넣으면 뒷맛이 달면서 간과 조
미료 역할을 동시에 해준다고 한다.
이런 소금으로 김치와 제철에 나는 산채들로 참나물 과 취나물, 머우대, 깻잎, 더덕과 두릅, 참가죽순 등을 소금에 절여 그냥 삭히거나 간장과 식초로 맛을 돋우기 도 하고, 더러는 된장과 고추장에 한 번 더 옮겨 담가 몇 년씩 삭힌다. 오래 묵힌 것일수록 몹시 짜지 않으면 서 상큼하게 감칠맛이 나고 생기가 가득한 맛깔스런 찬 이면서 약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된장에 박아 3년 이상 삭힌다는 샛노랗게 익은 두릅 장아찌는 아삭아삭한 질감과 새콤한 뒷맛이 배어나며 된장과 두릅 맛이 합성된 전혀 새로운 맛을 낸다. 또 담 가서 7~8년을 묵혔다는 산초장아찌는 산초의 파란 껍 질이 터지기 전에 따서 맑은 물에 담가 하루 이틀 쯤 돌 로 눌러놓았다가 물을 찌워내고 다시 맑은 물을 붓고 소금으로 알맞게 간을 해 돌로 눌러 밀봉해 알맞게 익 었을 때 간장을 부어 색깔과 맛을 한 번 더 살려낸다는 데, 묵힐수록 향과 맛이 깊어진다고 한다.
이처럼 온갖 소재가 모두 자연에서 나고, 주인 부부의 인고와 혼이 담긴 정직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맛’의 진수들이다. 도토리묵과 녹두묵, 포근한 차조밥, 여기에 따라내는 12가지 찬과 솔잎차 까지 세월의 향이 차곡차곡 다져진 모습이 감동스럽기만 하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한식의 세계 화에 발맞춰 우리 고유의 묵과 장아찌를 서양의 음식에도 접목해 세계인이 함께 즐겼으면 하는 생 각이 들게 한다.
산초장아찌
참나물지
참고|상차림에 진품 장아찌가 빠진 듯싶으면 서슴없이 요청하면 된다. 7~8년 묵힌 장아찌를 손도 안대고 버리는 것이 아까워 분위기를 보아가며 일반 찬만 내는 경우가 있다.
주소|경북 문경시 문경읍 하초리 344 전화|054-572-2255
식후에 내는 솔잎차는 담가서 10년을 삭힌다고 한다. 생 솔잎 을 따서 맑은 물에 씻어 소금과 설탕을 약간 섞어 넣고 밀봉 해 서늘한 곳에 놓아두고 몇 년 지난 후에 열어보면 저절로 익어 새콤한 국물이 식초나 다름없고, 그냥 먹으면 약이고 물에 알맞게 희석하면 음료가 된다는 것이다.
맑은 물에 소금과 설탕으로 담가 10년 삭힌다는 솔잎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