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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관계의 엔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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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소피 토이버 아르프와 한나 회흐의 다다

김 성 은*

1)

Ⅰ. 인류학으로 다다 읽기

Ⅱ. 소피 토이버 아르프와 퍼포먼스

Ⅲ. 한나 회흐와 포토몽타주

Ⅳ. 신체를 둘러싼 엔트로피

Ⅰ. 인류학으로 다다 읽기

다다가 미술사에서 신화적 위상을 획득하고 현대 미술에서 끊임없이 소환되 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최근의 현대 미술을 둘러싼 학제 적 논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다원성과 자기반영성의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각 매체 외의 여러 매체, 심지어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하 는 매체의 사용과, 예술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 자문하는 일을 주된 주제로 삼 는 현대 미술의 특징 말이다. 이 논문은 20세기 초반 다다의 중심부에서 활동했

* 삼성미술관 Leeum 책임연구원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2015년 여름 정기학술대회 기획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 정보완하여 게재한 것임.

* DOI http://dx.doi.org/10.17527/JASA.4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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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두 여성 아티스트, 소피 토이버 아르프와 한나 회흐의 작업을 인류학의 시각 으로 분석한다. 미술사적 작업을 현재의 인류학1)이라는 렌즈로 다시 보기란 과연 어떤 의미를 생산할 수 있을까?

20세기 초반의 유럽 인류학이 식민주의 입장에서 비서구의 문화적 산물의 미학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서구의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에 주력했다면, 20세기 후반의 인류학은 그 역사적 인류학의 식민주의 틀을 해체하는 동시에 미 술사에 있어 식민주의의 요소를 드러내는 일에 가담했다. 그리고 21세기의 인류 학은 현대 미술계의 글로벌 지형 속에서 미술을 통한 문화 간 소통과 이해가 도 모되는 양상에 집중하는 추세다. 현대 미술계는 누군가에게는 다양성을 흡수하는 이상적인 힘이 작동하는 공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패권을 쥔 권력 이 새로운 예술에 대한 잣대와 규범을 정하는 공간이다. 인류학은 현대 미술이 문화적 제국주의도, 그렇다고 타협하고 절충한 문화적 상대주의도 아닌, 온당하게 타자와 만날 수 있는 좌표를 규명해야 한다. 역으로 특수성과 보편성의 변증법을 통해 타자의 이상화에 빠지지 않으면서 차이를 동력으로 삼아 새로운 조건을 정 의해 나가고 있는 현대 미술은 경계와 관계의 학문인 인류학이 간과해서는 안 되 는 의제들을 동반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1990년대 이후 예술 작업과 비평 담론에 있어 타자성의 학 문인 인류학이 일종의 만국 공통어처럼 미술 제도에 대한 비판과 문화적 타자에 대한 탐구에 사용되고 있음을 할 포스터(Hal Foster)는 ‘인류학자로서 예술가(the artist as ethnographer)’, ‘인류학적 전환(ethnographic turn)’이라 칭했다.2) 어떤 지역사회나 커뮤니티에서의 현지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장소 특정적인 결과물을

1) 인류학은 매우 광범위한 학문으로 각 국가별로 조금씩 다른 분과가 존재하지만 여기에서 는 유럽의 미술 인류학(anthropology of art) 계열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다. 유럽의 미술 인류학은 ‘미술’, ‘예술’이라는 범주가 과연 인류 보편적인가 하는 문제로 오랫동안 씨름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이를 인간의 지각 작용과 결부시켜 개별 문화 특정적 미학을 밝히는 데 치중한 일군의 인류학자들도 생겨났다. Jeremy Coote and Anthony Shelton, eds., Anthropology, Art and Aesthetics, Oxford: Clarendon Press, 1992.

2) Hal Foster, The Return of the Real, Cambridge: The MIT Press, 1996, pp. 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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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해 내는 예술가들의 ‘인류학자’ 같은 작업을 말하는 것으로,3) 포스터는 이러 한 경향이 자칫 또 다른 타자에 대해 사실주의와 원시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 있 음을 경고하며 시차(視差), 즉 대상화 되는 타자와의 거리에 대한 변위를 강조했 다. 분명한 것은 예술가들의 이러한 인류학 차용은 문화적 다양성의 재현에 있어 여러 문제점과 가능성을 일깨워 주며 인류학의 방법론과 이론화에도 피드백 되었 다는 점이다.4)

그런데 미술에 있어 인류학을 논할 때 이 ‘타자성’과 ‘현지조사’라는 개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어 온 것이 인류학 이론과 방법의 또 하나 근간인 ‘신 체성’이다. 우선 참여 관찰이라는 연구자 자신의 신체적 실천뿐만 아니라 연구 대 상이 되는 문화적 현상을 일종의 퍼포먼스로 접근하는 전통에서도 신체적 요소는 중요하다. 예를 들면 종교적 의례나 주술적 관습처럼 연극적 형태를 띠는 현상을 사회적 드라마로 보고 일상을 벗어난 ‘문턱(liminality)’의 순간에 정치적 이념을 배포하고 강화하는 수행적 의식의 상연으로 보는 것이 대표적이다.5) 지금, 여기에 서 일어나는 유일무이한 행위의 실행과 그 표명에 의해 표명된 내용이 수행됨을 뜻하는 퍼포먼스(performance)와 수행성(performativity)은 여러 분야에서 매우 복 합적으로 논의되므로 인류학만의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최근 인류학에서 일 어나고 있는 ‘신체적 전환(corporeal turn)’은 넓은 의미의 예술에 있어서 퍼포먼스

3) Alex Coles, ed., Site-Specificity: The Ethnographic Turn, London: Black Dog Publishing, 2000.

4) George E. Marcus, “Anthropology Today and the Ethnographic in Artwork”, in: Arnd Schneider and Christopher Wright, eds., Between Art and Anthropology: Contemporary Ethnographic Practice, Oxford: Berg, 2010, pp. 85-87.

5) Victor Turner, Dramas, Fields and Metaphors: Symbolic Action in Human Society,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74; Victor Turner, From Ritual to Theatre: The Human Seriousness of Play, New York: Performing Arts Journal Publications, 1982;

Johannes Fabian, Power and Performance: Ethnographic Explorations through Proverbial Wisdom and Theater in Shaba, Zaire,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90; Johannes Fabian, “Theater and Anthropology, Theatricality and Culture”, in: Research in African Literature, vol. 30, no. 4 (1999), pp. 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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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수행성을 강조하며 예술에 대한 인류학적 정의를 재고하고 특히 20세기 이후 미술과 신체의 상관관계에도 주목하고 있다.6) 그 중에서도 이 논문은 인류학자 알프레드 젤(Alfred Gell)의 이론을 주요 배경으로 삼으려 한다.

젤은 서구, 비서구 미술에 상이한 잣대를 적용했던 유럽 인류학 전통에 반 기를 들고 하나의 통합적 인류학 이론 모델을 제시하면서 신체적 ‘행위의 작용력 (agency)’이라는 개념을 가져온다.7) 사물이 사람과 대칭적 행위력을 갖는 주체이 자 행위체며 사람과 사물 그 어느 쪽도 다른 한 쪽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 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비로소 둘 다 주체 혹은 객체로 정의되고 형성된다 는 것이다. 사람과 사물의 행위력이 작동하는 미술이라는 관계장(art nexus)에서, 사물이 창조하고 매개하는 사람의 사회적 관계, 사람의 행위 영향력과는 독자적 으로, 그러면서도 사회적 관계 안에서 작용하는 사물의 행위력을 분석하는 것이 젤의 미술 인류학 이론의 핵심이다. 콩고의 네일 페티시, 마오리족의 미팅 하우스, 힌두교의 시바신상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등 다 양한 ‘미술’을 설명하며 젤은 “사람이 어떻게 사물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뒤집 어 “사물이 어떻게 사람을 만드는가”로 관점을 전환하고 작품들이 “무엇을 의미 하는가”로부터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로, 즉 미술작품을 ‘행위지향적 체계’로 옮 겨 위치시켰다.

흥미롭게도 젤은 기술, 마술, 그리고 미술을 동일 선상에 놓고 매체와 상관없 이 모든 미술 작품을 일종의 테크놀로지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 테크 놀로지는 관람자에게 ‘주술적 매혹’을 일으키는 기술(technology of enchantment) 인데, 주술적 매혹이란 충격, 색다름, 불안함, 사로잡힘 등의 느낌에 기꺼이 열려있 는 지각의 감응 상태를 의미한다고 풀이할 수 있겠고, 인지작용과 사회관계를 포 6) Barbara Kirshenblatt-Gimblett, “The Corporeal Turn”, in: The Jewish Quarterly Review, vol. 95, no. 3 (Summer 2005), pp. 447-461; Ina-Maria Greverus and Ute Ritschel, eds., Aesthetics and Anthropology: Performing Life - Performed Lives, Berlin: LIT Verlag, 2009.

7) Alfred Gell, Art and Agency: An Anthropological Theory, Oxford: Clarendon Press,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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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하여 변형함을 뜻한다.8) 젤은 이를 ‘가추(abduction)’라 표현했다. 이에 따르면 미술은 아름다움, 취향, 의미에 관한 것이 아니며, 미술 작품이란 기호학적으로 해 석해야 하는 성질을 지닌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가추될 수 있는 작용력을 갖고 있는 사물, 관람자가 가추적 추론을 하도록 촉발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작 용력은 즉물적이고 비인지적이며 정서적인 수준에서 일어나는 우회적 추론으로 일어나며, 언어에 의해 매개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 기관과 감정에 직접 작용한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개념이 나오는데 바로 ‘분산된 인격성(distributed personhood)’,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이다. 젤은 마르셀 뒤샹의 예를 들어, 뒤샹의 작품이 뒤샹과 대칭적인 ‘행위자’로서 어떻게 시공간을 넘나들며 퍼져나가 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뒤샹의 인격성 혹은 마음이 작품에 의해 분산되고 확장된 다는 말은 단순히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재적이고 물리적인 퍼져나감을 가리킨 다. 젤이 미술 인류학에 기여한 바는 아티스트의 인격성과 마음이 체현되고 또 변이된 사물로서의 미술 작품이 시대와 장소를 뛰어 넘어 어떤 결과를 일으키고 자 사회적 행위를 벌이고 있음을 환기시킨 일이다.

앞서 언급한 인류학적 전환이 우리 동시대 미술 현상에 대한 담론이라면 젤 의 인류학 이론은 미술사적 대상을 바라보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도 있겠다는 것이 저자의 출발점이다. 젤이 미완의 이론서를 남기고 요절한 후 많은 인류학자들이 후속 연구를 활발히 벌이고 있으며 전개되고 있는 그 논의를 모두 이 지면에서 짚을 수는 없지만, 현재 통상 미술이라 부르는 작용체를 다루는 데 있어 유럽식 미술사 전통에 따라 정의되는 미술과 다양한 문화적 맥락의 예술적 산물, 더 나아가 위와 같은 효과의 원천이 되는 현대의 여러 다른 사물과 행위까 지도 다룰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주요 흐름이라 요약할 수 있다. 젤이 유럽의 미 8) 젤은 ‘주술적 매혹의 기술(technology of enchantment)’과 ‘기술의 주술적 매혹(enchantment of technology)’을 대비시키면서 인류학이 미술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미학적 심미주의 에서 벗어나 일종의 속물적 태도를 방법론으로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 바 있다.

Alfred Gell, “The Technology of Enchantment and the Enchantment of Technology”, in:

Eric Hirsch, ed., The Art of Anthropology: Essays and Diagrams, London: Athlone Press, 1999, pp. 15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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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사적 인물인 뒤샹을 다룬 것이 여전히 특별하게 받아들여질 만큼 아직은 소수 의 연구사례 밖에는 없는 상황에서, 다다라는 미술사적 대상을 젤의 인류학으로 다시 보는 것이 섣부른 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논문의 목적이 인류학 이론의 전개를 위해 다다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다다를 재조명하는 관점을 발견하는 데 있으므로, 이론적 틀의 적확성 보다는 위와 같은 견지에서 미술 인류학의 쟁 점들을 함축하고 있는 토이버와 회흐 두 여성 아티스트의 다다 예술 작업을 다시 보는 일은 유의미한 시도라 생각한다. 다른 남성 다다 아티스트들과의 관계 속에 서만 주로 조명되던 토이버와 회흐의 다다 작업을 인류학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보 면서, 신체의 주술적 매혹의 기술이 어떻게 발휘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 정체성 형성의 틀이 되는 이분법적 경계, 즉 사람과 사물, 남성과 여성 등이 미술이라는 실천을 통해 어떻게 해체되며 미술의 관계장에서 세계의 몸, 물질, 시간, 공간에 대한 새로운 지각 양상이 어떻게 야기되는지 찾고자 한다.9)

Ⅱ. 소피 토이버 아르프와 퍼포먼스

“[토이버의 퍼포먼스는] 감미롭게 요동치는 당김음조의 재즈 같기도, 절제 되고 우아한 슬픈 블루스 같기도 했다” (마르셀 얀코, 1961).

유럽 각국의 예술가들, 혁명가들이 전쟁의 고통과 정치적 탄압을 피해 모여 들었던 중립국 스위스의 취리히에 후고 발(Hugo Ball)과 에미 헤닝스(Emmy 9) 이와 관련하여 인간을 ‘나눌 수 없는 것(individual)’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것(dividual)’

으로 보는 인류학자 마릴린 스트라던의 연구가 주목할 만하다. 멜라네시아 현지조사 연구 와 생식 복제 의학기술 연구를 통해 스트라던은 젠더를 비롯한 인간의 속성은 창조되고 교류되는 것이며 신체는 그 행위의 결과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사 람과 사물 모두 마디(波節) 같은 역할을 하며 실체가 얽힌 사회 관계를 통해 속성이 변화 하고 결정화(結晶化) 되므로 정체성이란 단수나 복수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그 관계들을 담고 있는 프랙털 같은 개체이다. Marilyn Strathern, Reproducing the Future:

Anthropology, Kinship and the New Reproductive Technologies,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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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nings)가 1916년 2월에 카바레 볼테르라는 소극장을 열면서 다다 예술은 태동 했다. 다보스 태생의 소피 토이버 아르프(Sophie Taeuber-Arp, 1889-1943)는 취 리히 다다의 유일한 스위스인이었다. 십대 때부터 기하학적 패턴의 대칭과 균형, 북미 원주민 문화에 나타나는 조형적 디자인 등 다양한 시각 요소에 관심을 가지 고 있었던 토이버는 1906년부터 세인트 갈렌, 뮌헨, 함부르크 세 곳의 학교를 거 치며 응용 미술을 공부했는데, 그 중 뮌헨의 데브스키츠 학교에서 수학하던 시기 가 토이버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 학교의 설립자인 헤르만 오 브리스트(Herman Obrist)와 빌헬름 폰 데브스키츠(Wilhelm von Debschitz)는 기 존의 장식 미술과 순수 미술의 엄격한 경계를 허물고 모든 예술은 삶에 응용된다 는 측면에서, 기존에 통용되던 수공 혹은 기술의 뜻이 강한 ‘크래프트(crafts)’ 대 신 ‘응용 미술(applied arts)’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주창했다. 이 학교는 후에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바우하우스의 모델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10)

데브스키츠 학교의 실험적 텍스타일 워크숍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직물과 자수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토이버는 수직, 수평의 격자 구도를 변 형하는 자신만의 추상 양식을 개발해 나가던 가운데 1915년 관련 전시가 열린 태 너 갤러리에서 한스 아르프(Jean Arp)를 만나게 된다.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계가 응용 미술계와의 교차를 모색하고 있었고, 아르프 역시 자신의 디자인을 동료 아 티스트들의 도움을 받아 직물과 자수로 실현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던 차였다. 두 사람은 새로운 예술 실험에 대한 공유점을 서로에게서 발견하였고 이후 예술적 동지이자 협력자로 긴밀한 공동 작업을 수행했다. 토이버의 기존 텍스타일 디자 인에 나타난 추상적, 기하학적 패턴이 콜라주 협력 작업에 근간을 이뤘으며 함께 구성한 디자인으로 토이버가 직물을 만들기도 했다. 토이버는 응용 미술과 추상 미술을 본격적으로 접목시키며 아르프와 함께 다다 활동에 가담했고, 다다 활동 참여를 숨긴 채 취리히응용미술학교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로도

10) Walburga Krupp, “Hans Arp and Sophie Taeuber: The Quintessential Dada Couple”, in:

Elza Adamowicz and Eric Robertson, eds., Dada and Beyond I, Amsterdam: Rodopi, 2011, p.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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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했다.

토이버의 추상 디자인에서 두드러지는 점 중 하나는 신체의 운동성이다. 예 를 들어 1917년경에 토이버는 <무용수>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변주를 시도했는데, 하이힐을 신은 무용수 신체를 단순화시켜 연필 드로잉에서 구아슈 회화로, 이를 다시 태피스트리로 제작하면서 팽팽한 근육과 촉감, 움직이려는 감각적 충동이 느껴지도록 표현했다.11) 직접적인 ‘인체’ 모티프가 아니더라도 토이버는 수직과 수평, 도형과 배경, 형태와 해체,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서 구성 요소들이 ‘움직임’

의 동력을 갖도록 배치하는 데 탁월했다. 토이버가 인체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된 것은 루돌프 폰 라반(Rudolf von Laban)의 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럽 현 대 무용을 개척한 이론가이자 안무가 라반이 몬테 베리타에 설립한 예술 공동체 에 토이버는 1915년부터 참여했고 그곳 야외 여름학교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 전에도 라반이 뮌헨에서 열었던 카니발 무도회에 참여했던 토이버의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토이버의 라반에 대한 관심은 다다 활동 이전부터 싹텄다고 할 수 있다.12) 라반은 움직임의 표현에 급진적 형태를 추구하며 20면체 안에 인체를 두 고 무용을 시각적으로 기술하고 해석하는 동작 분석 모델(Laban Movement Analysis)을 수립하였으며 모든 움직임을 공간 관계에서의 형태와 사용법으로 도 표화하는 키네토그래피(Kinetography Laban) 기보 체계, 즉 라바노테이션 (Labanotation)을 개발하였다. 라반은 무보를 연구하며 근대 사회의 산업, 치료 분 야 등의 각종 텍스트뿐만 아니라 초기 비교 인류학에서 수립한 상징 기호들을 반 영하면서 인류의 원초적 경험을 다루는 인류학이 무용 유산에 대한 자각을 다시 일깨웠다고 평하기도 했다.13) 원시적 의식, 자연의 리듬, 정신적인 차원을 강조하

11) Neil Andrew, “Dada Dance: Sophie Taeuber's Visceral Abstraction”, in: Art Journal, vol. 73, no. 1 (2014), pp. 22-24.

12) Jill Fell, “Zurich Dada Dance Performance and the Role of Sophie Taeuber”, in: Elza Adamowicz and Eric Robertson, eds., Dada and Beyond II, Amsterdam: Rodopi, 2012, p. 19.

13) Vera Maletic, Body-Space-Expression: The Development of Rudolf Laban's Movement and Dance Concepts, Berlin: Mouton de Gruyter, 1987, p.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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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몸짓과 소리의 관계를 탐구하며, 언어적 소통을 벗어난 비서사의 신체적 표현 으로서 무용을 추구하되 이를 도해하는 데에도 주력했던 라반의 작업세계는 추상 이라는 큰 틀에서 토이버를 매료시켰다.14)

1916년 4월부터 토이버는 역시 라반에게 사사한 마리 비그만(Mary Wigman)과 함께 카바레 볼테르에서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토이버의 퍼포먼스 사진을 보면, 크게 벌린 입과 비뚤어지고 넓적한 코를 가진 긴 사각형의 가면을 쓰고 있으며, 얼굴이 마치 몸으로부터 탈구되어 있는 것처럼 꺾인 채 판지로 만든 대롱 형 팔과 황금색으로 오려붙인 종이 손가락이 위협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다. 다다 퍼포먼스에서 가면이 주요하게 등장한 것은 1916년 5 월 카바레 볼테르 첫 번째 다다 퍼포먼스의 현장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르셀 얀코(Marcel Janco)가 사람 얼굴보다 큰 18인치 정도의 판지 가면을 가져왔고, 참 석한 아티스트들은 저마다 가면을 써보면서 즉흥적으로 퍼포먼스를 벌여 나갔다.

서로 창의성을 경쟁하듯 의상에 장식물을 추가하거나 표현하는 캐릭터의 동작을 과장하기도 했다.15) 인류 역사에서 가면은 주술적 힘을 발휘하는 장치로서 인간 이 아닌 존재로 변모하는 의식에 사용되었고 많은 경우 이러한 의식은 춤의 형태 를 띠었음을 어느 지역에서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다 퍼포먼스에서도 가면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 달라지는 퍼포머와 관객의 양상이 나타났으며 퍼포 먼스가 벌어지는 동안 감각의 집합성으로 도취적 공동체가 형성됨을 다다이스트 들은 목격하게 된다. 1916년 7월 발표된 첫 번째 다다 선언문에서는 무용, 시와 함께, 착용자를 제어하고 관람자를 홀리는 힘을 지닌 사물로 가면이 강조되었다.16) 토이버의 사진 속 퍼포먼스가 행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1917년 3월 갤러 리 다다의 오프닝에서는 ‘추상 무용’이 주요 프로그램이었다.17) 토이버는 아르프 14) Jill Fell, “Sophie Taeuber: The Masked Dada Dancer”, in: Forum for Modern Language

Studies, vol. 35, no. 3 (1999), p. 272.

15) 같은 논문, pp. 275-276.

16) Susan Valeria Harris Smith, Masks in Modern Dram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 p. 6.

17) 이 사진이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의 퍼포먼스 기록인지, 가면과 의상은 누가 만들었는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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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디자인한 가면과 의상을 입고 후고 발의 소리 시 해마와 날치의 노래 에 맞 춰 춤을 췄는데, 의미 없는 단어들의 연속인 이 시를 무용으로 옮기는 실험이었 으며 구체시, 소리시를 완결하는 ‘움직이는 통사(統辭)’였다.18) 조명에 의한 그림 자 효과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이 퍼포먼스는 저돌적인 속도와 파격적인 가벼움에 즉흥성까지 가미된 움직임으로 이뤄졌다. 현장에 있던 동료 다다 아티스트들은 토이버의 이 퍼포먼스가 수백 개의 신체 관절과 소리 마디가 어울리고 충돌하면 서 기괴함과 황홀함의 느낌을 동시에 준다고 전하고 있다.19) 트리스탄 차라 (Tristan Tzara)는 “조롱하듯 변덕스러운 착란을 향해 상승하며 빠르게 진동하는 거미손 같은 손아귀에서 혼미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했고, 후고 발은 “퍼포머 의 신경 시스템이 소리의 모든 진동과 징의 모든 감정을 샅샅이 소진하여 시각적 이미지로 변모시켰다”고 쓰고 있다.20) 자신의 신체를 마치 꼭두각시처럼 징의 박 자와 시인의 목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일종의 기계적 사물로 만든 그녀의 춤사위 는 “거리낌 없는 발작 같은 아름다움”이라고 평가 받았다.

1919년 4월 카우프로이텐 홀에서 열렸던 취리히 다다의 마지막 수와레 (soirée)에서 토이버는 또 다른 무용 작품 <느와르 카카두 Noir Kakadu>에 참여 했다. 아르프와 한스 리히터(Hans Richter)가 만든 무대 세트에서 케테 불프 (Käthe Wulff)를 포함한 라반의 무용수들이 춤을 춘 이 작품의 안무를 토이버가 맡은 것이다. 당시 토이버는 직접 춤을 추기보다는 안무를 시각적 그래픽, 추상적 도해로 표기하는 일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21) 얀코가 만든 아프리카 스타일 가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1916년 카바레 볼테르의 첫 퍼포먼스, 1917년 갤러리 다다 의 오프닝 퍼포먼스라는 두 갈래의 의견으로 나뉘어 있다. Neil Andrew, 앞의 논문, p. 14.

18) Gabriele Brandstetter, Poetics of Dance: Body, Image, and Space in the Historical Avant-Gard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pp. 353-354.

19) Jill Fell, 앞의 논문 (1999), p. 278.

20) Leah Dickerman, et.al., Dada: Zurich, Berlin, Hanover, Cologne, New York, Paris, Washington: D.A.P./The National Gallery of Art, 2005, p. 36.

21) Hans Richter, Dada: Art and Anti-Art, trans., David Britt, London: Thames and Hudson, 1965, p. 77. 토이버가 정확히 라바노테이션을 따른 것인지, 아니면 자신만의 추상 작업에 바 탕을 둔 독자적인 체계를 사용했는지, 더불어 라반의 시각적 무보에 사용된 기하학적 형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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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쓰고 추상 문양의 긴 카프탄을 입은 무용수들인 벌인 퍼포먼스는 대칭적 움 직임과 리듬이 강조된 반면 무용수의 여성성이나 개별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라 반의 동작분석 모델에 따르면 움직임을 구성하는 네 개의 요소는 신체(body), 공 간(space), 형태(shape), 에포트(effort)이며 이 중 움직임의 동기, 의도, 충동 등을 뜻하는 에포트는 다시 시간, 공간, 무게, 흐름의 네 인자로 구성되는데 이들의 조 합을 그래프로 표시해 에포트를 훈련하는 무용 교육법을 훗날 라반은 유키네틱스 로 명명, 정리했다.22) <느와르 카카두>에서처럼 다다 수와레 퍼포먼스에는 토이 버를 비롯해 라반의 무용수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으며 이들의 퍼포먼스가 유키 네틱스와 같은 라반의 무용 원리를 실행하면서도 다다의 철학을 실천한 측면 또 한 강했음을 볼 때 토이버가 다다와 라반 무용의 가교 역할을 했음은 의심의 여 지가 없으며 현대 무용 규범의 대전환에 토이버가 일조한 대목이기도 하다.23) 체의 움직임을 의식이 아닌 신체에 오롯이 맡기는 몸짓의 표현, 그러나 단순히 우연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흘러가 버려 손에 잡히지 않는 조각 인 신체의 운동을, 가변적인 규칙으로 작동하는 바로 그 신체라는 격자를 통해 발견되는 동작으로써 시공간에 펼쳐 놓는 게임이 바로 토이버의 퍼포먼스였다.24)

신체의 움직임에 관한 토이버의 안무적 탐구는 인형극 영역에까지 미치게 된다. 당시 유럽 전역에 걸쳐 부활한 인형극은 수공예와 무용과 극예술이 결합되 었다는 측면에서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들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인간을 대 체하는 꼭두각시 인형이라는 독일 낭만주의 문학 전통에서 극작가 에른스트 호프 만(Ernst Theodor Amadeus Hoffman)과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의 작품들이 19세기 연극과 발레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다시 20세기 바우 하우스 안무가인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의 <삼부작 발레 Triadic 토이버의 추상 디자인 간 유사성이 토이버의 라반에 대한 영향력을 말해주는 것인지 등은 추후 연구의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겠다.

22) Eden Davies, Beyond Dance: Laban's Legacy of Movement Analysis, London: Routledge, 2006.

23) Ruth Hemus, “Sex and the Cabaret: Dada's Dancers”, in: Nordlit, no. 21 (2007), p. 99.

24) Vera Maletic, 앞의 책,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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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t> 등에 영감을 줬다.25) 1918년에 토이버는 취리히 미술공예박물관의 관장 알프레드 알테르(Alfred Altherr)로부터 카를로 고치(Carlo Gozzi)의 연극 <수사슴 왕>의 무대 세트와 꼭두각시 인형 디자인을 의뢰 받는다. 정신분석과 다다를 결 합한 극으로, 리비도 캐릭터에 대한 1913년 프로이드와 융의 논쟁이 극의 갈등 구조를 이루는 작품이다. 프로이드 아날리티쿠스, 닥터 콤플렉스(융), 그리고 요정 우어리비도가 왕의 영혼을 두고 다투는 이야기를 규율에 대한 다툼이라는 현대적 우화로 각색한 극이다. 토이버는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북미 원주민의 가면으로 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구, 원뿔, 원통을 주요 형태로 한 꼭두각시들을 제작했는데, 부품들은 얼레와 실패를 연상시키고 다섯 개의 금속 대롱 팔을 가진 초병 꼭두각 시는 로봇을 떠올리게도 한다. 실제 인체로는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한 동작의 제 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꼭두각시의 움직임이, 대립하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심리 상 태를 물리적으로 드러내도록 했다.26) 아르프는 토이버의 꼭두각시 인형들에 대해 평하면서 클라이스트의 꼭두각시극에 관하여(1810)를 인용하는데, 클라이스트는 이 저술에서 수학 규칙과 진자 운동 역학에 의한 인형의 회전 움직임은 인간이 갖지 못하는 우아함을 갖는다고 적고 있다. 이는 완벽하게 의식이 없거나(‘null’) 신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무한대의 의식(‘full’)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아르프는 토 이버의 꼭두각시가 이 ‘없음과 무한’의 역설을 현현한다고 평했다.27)

남아 있는 기록 중 1920년경 토이버, 그녀의 동생, 다다 무용수들이 북미 원 주민인 호피 스타일의 가면과 의상을 입고 있는 사진들이 있다. 토이버의 호피 원주민 문화에 대한 관심은 십대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교수로 일하면서 는 호피의 카치나(kachina) 인형을 만들어 교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호피 문화에 서 카치나는 인간과 신의 세계를 중개하는 메신저의 정령들이며, 제의에 참여하 는 이들이 가면을 쓰고 의상을 입은 채 벌이는 라인 댄스에 의해 재현된다.28) 25) Juliet Koss, “Bauhaus Theater of Human Dolls”, in: Art Bulletin, vol. 85, no. 4 (December

2003), p. 728.

26) Leah Dickerman, et.al., 앞의 책, p. 488.

27) Leah Dickerman and Matthew Affron, Inventing Abstraction, 1910-1925: How a Radical Idea Changed Modern Art, New York: MoMA, 2013, pp. 275-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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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버가 다다 퍼포먼스에 호피의 카치나 모티프를 활용한 것이 물론 그 문화적 맥 락까지 빌려온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래 맥락의 의미와 다르다고 해서 서구 예술 전통의 가면이나 의상으로 완전히 탈맥락화시켜 전용한 것 또한 아니 었다. 호피의 추상 패턴으로부터 시각적 리듬을 읽고 이를 그 춤 의식의 몸짓 리 듬과 결부시키며 환기되는 신체성을 자신의 작업에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16-1918년 토이버는 성배, 암포라, 푸드리에, 사발 등의 그릇 작품도 만들었는데 이 역시 전례 없는 응용 미술과 추상 조각의 결합이었다. 1918-1920 년에는 다섯 점의 <다다 두상> 조각을 만들었는데 둥근 좌대 위 흉상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 얼굴은 여러 기하학적 모양으로 파편화되어 있고 다양한 대칭 구 도 안에서 비틀려 있는 추상 조각이다. 특정 문화를 참조하지도, 그렇다고 기성 형식의 규정을 따르지도 않는 이 모든 작업에서 나타나는 것은 낯선 사물을 통해 끊임없이 타불라 라사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시도로서 ‘추상’이라는 방법론이다. 그 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거리, 즉 원래의 모습과 추상화된 모습 간의 거리에서 생기는 불확실성, 이로부터 생성되는 열역학적 운동감이 바로 토이버가 주된 소 재로 삼았던 감각이다. 회화, 시, 무용 등에서 급진적 추상을 시도한 다다 아티스 트들은 도구화된 언어적 소통에서 벗어나 감각적이고 즉물적인 소통으로의 변화 를 바랐다. 토이버의 추상 역시 회화적 형식주의 차원이 아니라 이러한 다다 철 학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여기에서 나아가 미술, 공예, 무용의 여러 매체를 넘나들 며 계속 변이해 가는 상태, 다른 감각을 사용하는 매체들의 속성이 서로 행위력 을 발휘하며 신체의 운동성으로 융합되는 토이버의 추상은 그 작업 세계 전반을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로 특징짓게 하는 지점이다.

28) Sarah Burkhalter, “Kachinas and Kinesthesia: Dance in the Art of Sophie Taeuber-Arp”, in: Aargauer Kunsthaus and Kunsthalle Bielefeld, eds., Sophie Taeuber-Arp: Today is Tomorrow, Zurich: Scheidegger & Spiess, 2014, pp. 226-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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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한나 회흐와 포토몽타주

“당신이 지적인 일을 한다고 믿는 현대 여성이라면 당신이 하는 바느질 또 한 당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나 회흐, 1918).

1918년 2월 리하르트 휠젠베크(Richard Huelsenbeck)의 다다 선언과 클럽 다다의 결성으로 시작된 베를린 다다의 유일한 여성 아티스트였던 한나 회흐 (Hannah Höch, 1889-1978)는 고타에서 나고 자랐다. 1912년부터 1914년까지 베를 린 샬로텐부르크 응용미술학교에서 유리 공예를 공부하다가 전쟁 발발로 고향에 서 적십자사 일을 잠시 했다. 1915년 베를린으로 돌아와 왕립공예미술관학교에서 유겐스틸 아티스트 에밀 오를릭(Emil Orlik)으로부터 그래픽 아트를 배웠다. 1916 년부터는 10여 년간 울슈타인 출판사(Ullstein Verlag)의 수공예과에서 일했는데, 주로 여성용 잡지나 소책자에 실리는 뜨개질, 자수 패턴, 레이스, 드레스 디자인 만드는 작업을 했고 레터링, 광고 삽화, 합성 사진, 공예 기사 등을 다루기도 했 다. 이곳에서 일했던 경험이 회흐의 다다 작업에 밑바탕을 이루게 된다. 1915년에 회흐는 라울 하우스만(Raoul Hausmann)을 만나게 되면서 휠젠베크, 요하네스 바 더(Johannes Baader)와 함께 베를린 다다의 중심인물이었던 하우스만을 따라 자 연스럽게 다다의 일원이 되었다. 무엇보다 부르주아 가정 출신이었지만 전쟁을 겪은 후 바뀐 세계관과 정치의식이 회흐의 다다 활동 참여에 주된 동기였다.

베를린 다다는 1차 세계대전 막바지 독일 왕조가 무너지던 시기에 형성된 까닭에 취리히에 비해 정치적 성향이 매우 강했고 사회적 변화라는 목표를 확고 하게 가지고 있었다. 민족주의와 독재주의가 팽배하던 당시 독일 사회에 대한 비 판의 내용을 강하게 담았으며, 형식에 있어서는 사진이나 영화 같은 새로운 매체 의 사용에 적극적이었다. 베를린 다다의 가장 중요한 미술사적 기여로 평가 받는 포토몽타주는 이러한 배경에서 이미지의 합성을 통한 정치적 비평이라는 기조로 시작되었는데 그 본격적인 출발이 바로 회흐와 하우스만에 의해서다. 1918년 우 연히 두 아티스트는 군인들이 잘라 붙인 합성 이미지로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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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서 ‘자르고 붙이기’ 기법이 구성 이미지들을 낯설게 하고 이질화하는 효과 를 내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로부터 두 아티스트는 포토몽타주 기법을 적극적으 로 사용하게 된다. 하우스만이 다다 예술로서 포토몽타주를 새롭게 발명했다고 본 반면, 회흐는 사진을 모으고 오리고 붙이는 대중적 사진 관행의 확장으로 다 다 포토몽타주를 인식했다.29) 이러한 시각차는 하우스만과 달리 회흐가 ‘미술’이 라는 영역의 경계에 대해 훨씬 유연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후 포토몽타주는 회흐 작품의 주된 매체가 되었고, 1920년 오토 부르하르트 갤러리 에서 열린 ‘제1회 국제 다다 박람회’에 회흐의 초기 포토몽타주 주요작들이 출품 되었다. 회흐는 다다 전시 중 최대 규모였던 이 행사에 참여한 유일한 여성 다다 이스트였다.

출품작 중 하나인 <독일 최후의 바이마르 배불뚝이 시대를 부엌칼로 가르 다>(1919-1920)는 당시 독일문화의 횡단도라 할 만하다. 프로이센 왕국의 카이저 빌헬름(Kaiser Wilhelm) 2세부터 바이마르공화국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버트 (Friedrich Ebert)와 내무장관 구스타프 노스케(Gustav Noske), 판화가 케테 콜비 츠(Käthe Kollwitz), 무용가 니디 임페코벤(Niddy Impekoven), 영화배우 아스타 닐센(Asta Nielsen), 시인 엘제 라스커-쉴러(Else Lasker-Schüler) 등 여러 인물 들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다다 파노라마>(1919)는 에버트와 노스케가 반제 호수에서 수영복을 입고 있는 한 잡지 사진 이미지를 중심으로 러시아, 프랑스 등 관계국의 수반들, 혁명과 보수 양 진영의 시위대, 이를 진압하거나 전쟁터에 나가 있는 군인들, 여성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두 작품 모두 인물의 머리와 몸을 분리하고 무기나 공장 부품 등 기계적 요소들과 결합시키며, 파편화되고 차원을 상실한 이질적 이미지들과 선전 문구들이 한 작품 안에서 수 평, 수직, 사선으로 제각각 배치되어 있다. 이미지 조각들은 저마다 어떤 클러스터 를 이루기는 하지만 그 틈틈이 삽입된 공백과 서로 다른 각도에 따른 시점의 차 이는 매끄러운 내러티브의 흐름을 차단한다. 하나의 이야기로 담겨 있기는 하지 만 실은 정확한 이음매를 찾지 못해, 혹은 이음매가 아직 완성되지 못해 분절되 29) Leah Dickerman, et.al., 앞의 책, p.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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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있는 당시 독일 사회의 모습을 재현한다고 할 수 있다.

‘다다 박람회’에 회흐가 전시한 작품 중에는 포토몽타주 외에 수공 꼭두각시

<다다 인형>(1916)도 있었다. 천으로 꿰매 만든 60cm 정도 크기의 여자 인형 두 점으로, 극도로 단순화된 얼굴에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가슴은 작은 구슬을 달아 강조했으며 한껏 조인 허리선을 따라 치마를 입고 있는 형상이다. 높은 좌대 위 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으로 전시가 되었는데, 이후 회흐는 자신이 만든 인형 을 들고 포즈를 취한 사진을 여러 차례 찍었다. 꼭두각시 인형은 여성의 성적 대 상화라든가 가부장제의 오토마타 같은 여성을 상징한다고 보통 여겨지므로 회흐 의 인형은 단선적으로는 하우스만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된 여성의 자의식 표명으 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1921년에 회흐가 이 인형과 흡사한 의 상을 차려 입고 ‘다다 카니발 무도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신체를 직접 몽타주의 소재로 삼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30) 인형이 회흐의 이후 포토몽타주 작품에서도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여성 의 정체성과 사회적 맥락 간 불가분의 함수 관계, 그리고 여성의 정체성이 해체 되고 재구성되던 격변의 환경에 대한 회흐의 시대의식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부분 이다.

앞서 말한 두 포토몽타주 작품이 여러 실존 인물들의 이미지를 동원하여 일 종의 사회적 풍경을 그렸다면, 1920년대로 넘어 오면서 회흐는 특정한 인물을 드 러내기 보다는 유형화된 캐릭터를 표현하는 쪽에 집중하고 풍경이기 보다는 그 대상을 극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배경 화면을 구성했다. <아름다운 소녀>(1920) 의 경우 양산을 들고 포즈를 취한 부풀린 헤어스타일의 여성 신체 주변으로 BMW사의 로고, 타이어와 공구 등이 그 여성의 신체와 뒤엉켜 배치되어 있는데,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 상업화와 소비자의 욕망, 기술의 발전과 노동, 대중 매체의 관객성(spectatorship) 등을 다룬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거대 금 융>(1923)에서는 놀이동산의 조감도 위에 선 두 인물이 금속 클러치를 들고 서있 30) Maud Lavin, Cut with the Kitchen Knife: The Weimar Photomontages of Hannah Höch,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3, p.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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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 옆으로는 대형 타이어와 그 위를 달리는 트럭, 그리고 거대한 엽총이 배치 되어 있다. 1925년 라슬로 모홀리 너지(László Moholy-Nagy)가 펴낸 회화, 사 진, 영화라는 책에는 같은 작품이 <멀티밀리어네어: 지배자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비판하는 작품이다.

<거대 금융>에서 오른쪽 인물은 사진 기술을 발명했으며 ‘사진’, ‘양화’, ‘음 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존 허셜(John Herschel)의 얼굴이 합성되어 있다. 여 성 사진작가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Julia Margaret Cameron)이 찍은 사진으로, 회흐가 여성용 패션 잡지에 실린 카메론에 대한 기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진이 라는 당시 뉴미디어에 대한 역할들을 중첩시킨 것이다. <아름다운 소녀>와 <거 대 금융>은 커다란 타이어를 왼쪽에 놓은 것을 비롯해 비슷한 시각적 구도 안에 서 산업 기술의 발전이 삶에 가져온 변화를 표현하고 있지만 여성과 남성에 있어 그 변화의 지점은 대비시키고 있다.31) 회흐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신여성’

이라는 개념, 즉 전쟁 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여성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 이 어떻게 재정의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1919년 독일은 여성 참정권을 인정 하게 되었고 직업을 갖는 여성 근로자 수도 증가했다. 그러나 그 변화 이면에는 여성들의 저임금 단순 노동과 열악한 근로 환경, 부르주아의 가치 체계에서 역설 적으로 강조되는 가사 노동과 여성 상품화 등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에 따라 대중 매체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여성 정체성에 대한 욕망과 불안이 동 시에 표출되는 곳으로 기능했다. 회흐는 사진과 텍스트를 병치하면서 패러디하고 대중 매체가 재현하는 여성의 모습을 때로는 지지하고 때로는 비판하면서 새로운 여성성을 탐구했다.

여성 문제에 대한 회흐의 천착에는 유럽 식민주의가 가져 온 비서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또 하나의 층으로 더해졌다. 당시 다다이스트들은 원시주의에 심취 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북미 원주민 문화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1차 31) Matthew Biro, Dada Cyborg: Visions of the New Human in Weimar Berlin,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9, pp. 21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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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의 공포와 트라우마를 겪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유럽 문명이 인류의 원시적 양상을 잃었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그 탈출구를 태곳적 인류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 소위 문명이 덜 발전한 비서 구권에서 찾으려 했으며 새로운 예술 형식의 돌파구 또한 이들 ‘낯선’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32) 다다이스트들은 인류의 원초적 기억을 발굴하는 차원 에서 의례 같은 퍼포먼스나 구술 신화, 유럽의 미술과는 다른 문화 산물들에 관 심을 기울였다. 다다이스트 칼 아인슈타인(Carl Einstein)은 이러한 관점에서 아프 리카 예술의 가치를 유럽에 널리 알린 흑인의 조각(1915)이라는 책을 저술했고 회흐를 비롯해 많은 다다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들은 식민주 의에 의한 원시 문명의 사라짐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반식민주의 노선을 취했던 것은 아닌데, 본질적으로 현지 타자와의 직접 대면보다는 유럽 안에서 매 개되고 대상화된 타자의 이미지로부터 비서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는 1884년부터 1918년까지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비교적 짧은 식민주의 역사를 가졌고 점유한 식민지 또한 크지 않았으나, 훗날 나치의 우생학으로 전개되는 과학적 인종주의라는 특징을 띠며 인종을 유형화하고 인종 간의 위계질서를 세우는 이론과 연구가 득세했고 이는 비서구인에 대한 대중적 인식에도 파급되었다.33)

1923년부터 회흐 역시 작품 속에 이러한 비서구 이미지들을 담기 시작했다.

<혼혈(네덜란드 여인)>(1924)에서는 한 아프리카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뺨에는 흉터가 있고 입술 부위는 빨갛게 립스틱을 바른 코카서스 여성의 것으로 합성되었고 머리 부분은 마치 이슬람의 히잡을 쓴 것처럼 배경 화면과 일체화 되 어 있다. <한나와 그녀의 가위: 패션쇼>(1925)에서는 세 여성이 비슷한 체격으로 모두 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지만 각 얼굴은 다양한 인종의 얼굴들이 좌

32) Hermann Bahr, Expressionism, trans., R. T. Gribble, London: Frank Henderson, 1925, p. 87.

33) 아르튀르 고비노(Joseph Arthur Comte de Gobineau)의 인종불평등론 (1853-1855), 한스 귄터(Hans F. K. Günther)의 유럽사의 인종적 요소 (1924), 에곤 폰 아이크슈테트(Egon Freiherr von Eickstedt)의 인종학과 인종사 (1934)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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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위아래로 합성되어 있어 패션쇼가 아닌 인종쇼를 방불케 한다. 이처럼 회흐의 포토몽타주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주제는 혼종적 정체성이다. 특히 회흐가 날카롭게 꼬집은 것은, 백인 남성 정복자와 원시적 원주민 여성이라는 구도 안에 서 비서구인에게 투사된 비합리성, 원시성, 자연성, 통제되지 않은 관능성 등을

‘여성적임’과 같은 범주 안에 묶어 내는 식민주의 판타지였다. ‘여성’과 ‘타자’의 등 가 관계 부각은 1920년대 우익 성향의 정치 담론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났다.34)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조차 동료 여성들을 타자화하곤 했으며 서구 문명에 대한 회 의로부터 생긴 타문화에 대한 이국취향(exoticism)과 에로티시즘(eroticism)이 중 첩된 의식을 가진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회흐는 여성으로서 이러한 문제들에 민 감하게 반응하면서 당시 유럽의 원시주의가 그 대상이 되는 ‘원시적’ 문화를 과학 적으로 체계화, 미학적 담론으로 맥락화하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프로토콜에 의 해 재현하며, TV 등 대중 매체의 매개에 의해 소비함으로써 형성되고 정형화된 것이라는 점을 포착했다.35)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회흐는 <인류학 박물관으로부터 From an Ethnographic Museum> 포토몽타주 연작을 만들었다. <낯선 아름다움>(1929) 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연상시키는 나신에 외계인 같은 주름진 얼굴 이 붙어 있는데 그 얼굴은 돋보기를 쓰고 있어서 관람자를 향한 시선이 확대되어 보인다. <인디언 무용수>(1930)는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에서 주인공을 연기 한 유명 여배우 르네 잔느 팔코네티(Renée Jeanne Falconetti)의 얼굴에 잿빛 종 이로 된 원시 부족의 가면을 투구처럼 얹어 얼굴의 반을 가리고 머리에는 부엌 도구들로 된 은박 왕관을 씌웠다. 회흐의 포토몽타주가 표현하는 신체는 인간과 조각,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고 서구와 비서구가 합성되며 전통적인 여성상과 근 대적이고 해방된 여성상이 공존할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경계

34) Elza Adamowicz, “Between Museum and Fashion Journal: Hybrid Identities in the Photomontages of Hannah Höch”, in: Elza Adamowicz and Eric Robertson, eds., Dada and Beyond I, Amsterdam: Rodopi, 2011, p. 190.

35) Matthew Biro, 앞의 책, 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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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허문다. 여러 작품에서 회흐는 자웅동체의 이미지를 형상화고 있는데, ‘다다 박람회’에 전시되었던 <멋쟁이>(1919)에서도 이미 이러한 구성이 엿보인다. 현대 적 패션으로 차려 입은 여성들이 마치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처 럼 서로 포개지며 내려오고 있는데 이들이 함께 이루는 윤곽선이 바로 남성 얼굴 의 옆모습이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콩고의 남성 우상과 서양 여성의 이목구비, 하이힐 신은 다리를 합성한 <달콤한 그>(1926)처럼 특히 <인류학 박물관으로부 터> 연작에서 앤드로지니, 양성성에 대한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타자 성과 여성성의 상관성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회흐 자신의 젠더 관계에 기인하기 도 한다. 1926년부터 10년 동안 회흐는 네덜란드의 문학가인 틸 부르크만(Til Brugman)과 동성애 관계를 유지했다. <초상화> 연작 중 <영국 무용수>와 <러 시아 무용수(나의 더블)>(1928)은 두 여성이 거울을 보듯 마주 보는 구도로 서로 에게 거울 혹은 그림자 같은 관계항을 형성하면서 회흐와 부르크만의 관계를 암 시한다.

이렇듯 일상의 사진 이미지 수집과 재편에 의거해 개인적인 삶과 사회문화 적 의미를 함께 투사한다는 점에서 회흐의 포토몽타주는 인류학적 자기 기술 (autoethnography)에 비견할 만하다. 회흐는 잡지나 화보집에 나타난 이미지를 사 용하되 이식, 조립, 접합 부문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원천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대 상들의 불편하고 삐걱거리는 만남을 통해 모순적인 시각의 공존을 표현했다. 그 리고 우스꽝스럽게 작거나 신체와 균형이 맞지 않는 좌대, 액자 같은 미술관 디 스플레이 장치를 자주 활용했는데 이는 진열되고 비춰지는 수동적이고 비주체적 인 정체성에 대한 회흐의 고민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36) 회흐의 포토몽타주는 공예적이면서도 영화적인 기법의 사용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앞서 언급한

<독일 최후의 바이마르 배불뚝이 시대를 부엌칼로 가르다>, <다다 파노라마>처 럼 인물의 군집으로 표현된 작품들은 정확히 맞물리지 않는 이미지 클러스터들이 한 폭에 담겨 마치 초창기 영화 필름의 깜박이는 환등효과를 낸다고도 볼 수 있 다.37) 포토몽타주 인물들 또한 비록 하나의 이미지로 평면화되어 있지만 마치 여 36) Elza Adamowicz, 앞의 책, 2011, pp. 19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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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장의 필름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하나의 프레임 속 움직임을 만들어내듯 오 려 붙여진 여러 이미지들이 그 인물에 대한 일종의 이야기 움직임을 창조한다.

회흐가 주로 참조했던 출판물은 이미지의 연관성과 서사성이라는 측면이 중시되 는 매체라면, 이들을 이미지의 원천으로 삼은 회흐는 입체적 대상의 이차원 이미 지를 다시 한 번 평면화하는 포토몽타주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 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다분히 직설적이고 선동적인 다른 다다이스트들의 포토몽 타주와는 다른 느낌을 자아내게 된다.

Ⅳ. 신체를 둘러싼 엔트로피

<러시아 무용수>의 외알 안경처럼 회흐의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인간의 눈이다. 때로는 어색한 크기와 비율 때문에, 때로는 그 위에 포개 진 안경 때문에 그 눈은 보는 이에게 시각적 관람 너머의 어떤 감각적 동요를 일 으킨다. 2차원의 평면 작품이지만 토이버의 몸짓만큼이나 강렬한 눈짓으로 관객 에게 다가가는 느낌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다다 예술은 거리를 두고 관조하기만 하는 예술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마치 총알이 관객을 쏘는 듯한 이벤트로 서 촉각적 충격 효과를 일으킨다고 발터 벤야민이 말했듯이,38) 다다이스트들 스 스로도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장르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예술이 관객을 총 알 같이 강타하는 것이기를 꿈꿨다.39) 토이버와 회흐의 다다 작업은 퍼포먼스와 포토몽타주라는 다른 매체 형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신체의 촉각성이 강조되었다 는 면에서, 다시 말해 신체를 어떤 주술적 매혹의 기술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공

37) Matthew Biro, 앞의 책, p. 207.

38) Walter Benjamin,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1936, in:

Illuminations with an Introduction by Hannah Arendt, London: Pimlico, 1999, p. 231.

39) Dorothée Brill, Shock and the Senseless in Dada and Fluxus, Hanover: Dartmouth College Press, 2010, p.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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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점을 갖는다. 그 신체는 아티스트의 것이되 그들의 주체성과는 독립적인 행위 체로서 인식 및 지각 영역을 물질적으로 확장시킨다.

토이버의 퍼포먼스는 시각이라는 감각의 독재를 타파하기 위해 인류학에서 말하는 제의나 의례의 가면, 춤의 요소를 차용했다고 할 수 있다.40) 언어라는 틀 에서 벗어나 물리적이고 직접적이며 보편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신체의 움직임인 무용의 가능성을 간파한 것이기도 하다. 회흐의 포토몽타주 역시 무대 혹은 연극 적인 화면 구성에서 인류학이 대상화하는 타자가 뒤섞인 혼종적 신체가 정면을 바라보며 무용 동작 같은 포즈를 취함으로써 수행적인 광경을 이룬다. 무용가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고 신체의 동작이 무용의 그것과 유사해 보이는 경우가 많 은데 이는 한편으로 새로운 시대 여성의 활동적이며 자율적인 모습을 신체적으로 상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불안하고 아슬아슬해 보이는 몸짓이 사회 적 고정 관념에 따라 가장무도회처럼 벌이는 여성 예술가의 정체성 퍼포먼스를 가리키며 격변과 혼란의 시기에 그 정체성이란 것이 얼마나 유동적인 지를 암시 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토이버가 1926년에 찍은 <다다 두상과 자화상>이라는 사진을 보면 현대적 패션 모자와 베일을 쓰고 있는 토이버가 자신의 얼굴 앞에 원시 조각상처럼 보이지만 “다다 1920”이라고 새겨진 <다다 두상> 하나를 들고 있다. 차분한 색조의 기하학적 도형들이 과감하게 배치된 조각상 뒤에서 토이버 의 얼굴은 반쯤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데 이는 ‘되기(becoming)’의 상태, 혹은 계 속해서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여성 다다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발언 하는 듯하다. 그리고 마음은 신체에 의해 물리적으로 구획되는 것이 아니라 몸 바깥의 물질세계로 확장되며 그 물질 세계에 스며들어 작동함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탈 혹은 초상이라는 소재는, 복합적인 여러 겹의 정체 성 문제를 안고 분절되고 배제되었던 이들 여성 아티스트들의 삶을 그 수행 속에 서 문득 드러나게 하는 물활론적 속성을 발휘한다.

타문화의 가면이나 조각상에 대한 이들의 전유는 당시 사회의 남성 아티스 40) Rebecca Schneider, The Explicit Body in Performance, London: Routledge, 1997, pp.

14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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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들을 비롯해 부르주아 계급 등 지배 세력의 시선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그렇다 고 해서 유럽 식민주의의 인식 틀에서 완전히 비껴나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나 와 상관없이 저 너머에 존재하는 타자의 ‘진짜임’과 그들의 사회적 ‘미개함’을 부 정하거나 반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이버와 회흐는, 전쟁 때문에 무장해야 하는 신체, 산업 노동으로 기계화되고 파편화된 신체, 자본주의 가 상업화하는 신체, 식민주의가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신체를 지배적 권력의 미학적 상상이 아니라 불안정하지만 즉물적인 자신의 신체적 수행으로써 드러냈 다는 점에서 차별화 된다. 매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토이버와 회흐는 조각, 회화, 직물, 무용, 사진 등을 넘나들며 이미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미지의 해석에 다른 차원을 개입시키면서, 매체의 위계질서에 개입하고 매체의 수사를 재편했다. 당시 사진이나 영화 같은 새로운 대중 매체는 현실과의 일대일 대응관 계를 가지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포착한다는 믿음을 주었고, 이들 매체 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의 파편은 대중들이 이미지를 촉각적으로 수용하게 하면서 현실과 이미지를 동일시하고 그 괴리를 망각하게 만들었다. 꼭두각시 인형에서부 터 퍼포먼스, 포토몽타주까지 이어지는 토이버와 회흐의 작업에서 신체는 규율과 통제를 거부하면서, 신중하게 사전 조율되는 대신에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퍼포먼 스, 조직화되지 않은 요소들의 의도적 도치와 병치를 통해 혼돈 속에서 유희를 창출하고 그 안에서 현실에 대한 지표라는 매체적 역할을 배반한다.

신체라는 소통의 매체를 무질서와 잡음의 형국으로 치닫게 하는 토이버와 회흐의 작업은 새로운 근대성, 정체성 구축의 매개가 되기도 하고 장소가 되기도 하는 신체에 대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며 여러 종류의 어떤 ‘길들여짐’을 각성하 도록 한다. 독자적인 예술 행위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관계망의 동인으로서 이 들의 예술은 의미를 생산하는 데 있어 누가 기준과 범주를 정의하고, 누가 누구 를 위해 무엇을 수행하며, 또 어떤 환경 하에서 그것을 수행하며, 어떤 요소가 그 창조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관한 수행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도 래한 사회문화적 위기감으로부터 잉태된 다다 예술은 의도적인 자기 부정이 내포 되어 있었다. “다다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다다에 반대하는 이가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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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다이스트”라고 선언할 만큼 ‘반-예술’을 주장한 다다는 예술에 대한 철학적 정의를 다시 내릴 뿐만 아니라 전통적 ‘예술 노동’을 재정의하기에 이른다. 다다의 카바레나 클럽의 퍼포먼스, 선동적인 강연, 노이즈 콘서트, 즉흥적인 해프닝 등 달 라진 예술 노동은 다감각적 성격을 띠며, 이전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의 ‘총체 예술(Gesamtkunstwerk)’을 이어 받고 이후 플럭서스 아티스트 딕 히긴 스(Dick Higgins)의 ‘인터미디어(intermedia)’를 예견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다는 강박적으로 융합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혼재를 지향 함으로써, 생각의 재현, 지시, 묘사의 도구가 아니라 행동과 상황을 생성하는 예술 이 새로운 형식과 전략을 도모함과 동시에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와 ‘일 부러 잊기(unlearning)’라는 인식 변화를 일으키고 그로부터 수행성을 생산하도록 했다.

“모든 예술은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로 이뤄지는 법이다. 시각예술인 미술을 창조하는 퍼포먼스는 무대 뒤에서 이뤄지는 셈이지만, 그렇더라도 렘브란트의 회 화는 렘브란트의 퍼포먼스이다. 그래서 오늘날 무용가나 음악가가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보여주는 퍼포먼스처럼 받아들여야 한다.”41) 알프레드 젤이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언급했던 예술의 근원적 수행성, 즉 시대를 달리하는 창작자로부터 관 람자에게 작용하는 힘을 다다는 매우 적절하게도 상기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여 성 수공 영역의 매체와 근대 아방가르드 예술, 대중문화의 매체를 결합시킨 토이 버와 회흐는 신체를 존재의 공간이자 행위의 매체로 사용하면서 신체의 비물질성 을 물질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지표가 아닌 조형 신체의 다감각적 예술 노동, 엔트로피를 높이는 수행적 행위로 다다를 실천했으며, 이는 예술이라는 영 역과 여성이라는 일상의 주변을 부단히 움직이며 당시 근대화와 산업화, 식민주 의 상황에서 급변하고 있던 유럽 사회의 문화적 지형에 작은 결절들을 맺히게 했 다. 그 마디를 이어가며 그려본 인류학적 좌표에서 발견한 것은 지리적, 사회적, 예술적으로 끼인 공간, 구분의 틈에서 확고했던 경계선을 흐려놓고 관계에 대한 확신을 유보시킴으로써 이들이 일으킨 균열, 그리고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미치고 41) Alfred Gell, 앞의 책, 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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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 파열음, 바로 두 여성 다다이스트들이 ‘주술적 매혹의 기술’을 발휘한 퍼 포먼스의 작용이다.

42)

* 논문투고일: 2015년 8월 15일 / 심사기간: 2015년 8월 16일-9월 19일 / 최종게재확정일: 2015 년 9월 20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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