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세네갈 알기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세네갈 알기"

Copied!
50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세네갈 알기

2015. 9

주세네갈 대한민국 대사관

(2)

세네갈 지도

(3)

세네갈 국기

세로로 된 삼색기로 초록, 금색, 붉은 색 순서이며, 중앙에 5개의 가지를 가진 초록색 별이 있음.

초록색은 삼림에서 온 것으로 희망을 의미하며, 금색은 초원(savane)을, 붉은색은 세네갈 투사들이 흘린 피를 상징하고, 중앙에 위치한 별의 다 섯 가지는 5대륙을 상징

(4)

세네갈 문장

사자와 바오밥 (사자는 힘을, 바오밥은 長壽를 의미)

세네갈 국가이념

Un Peuple, un But, une Foi

같은 국민, 같은 목표, 같은 믿음

(5)

목 차

1.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희망

2. 뗄레야 뗄 수 없는 프랑스와의 관계 3. 아프리카 대륙의 지성 레오폴 생고르

4. 서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시원하고 서늘한 나라 5. 서부 아프리카 물류 허브, 다카르

6. 식민시대의 역사가 공존하는 생루이 섬 7. 노예무역의 중심지 고레 섬

8. 카자망스와 지역분리운동

9. 세네갈 갈치를 맛보셨나요? 풍부한 수산물의 나라 10. 세네갈의 역설, 땅콩

11. 서아프리카 최대 시장, 카올락 중앙시장 12.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세네갈 음식 문화 13. 죽음의 경주, 다카르 랠리

14. 테랑가의 사자, 세네갈 축구팀 15. 재즈(Jazz)의 기원과 세네갈 음악 16. 핑크빛 호수 락 로즈

17. 펠리컨의 나라 “주주파크”

18.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세네갈의 주요 명절 19. 셋 플라스(Sept Place)? 세네갈의 교통수단 20. 한국이 세네갈에 선물한 희망

21. 세네갈의 다양한 종족

22. 세네갈 문화를 빛낸 사람들

23. 세네갈의 역사

(6)

1.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희망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세네갈은 독립 이후, 단 한 차례도 유혈사태나 군사정변을 경험하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거의 전무후무한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도 대통령 선거에서는 독립이후 40년간 지속된 사회당의 일당 집권이 야당이었던 세네갈 민주당(PDS) 와드 후보의 당선으로 무너졌다. 당시 선거를 전후하여 상당한 정치, 사회적 혼란이 예상되었으나,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차분한 민주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이후, 2012.3월 대선에서는 와드 대통령에서 현 마키 살 대통령(공화국연합당, APR)으로의 정권교체 또한 평화적인 전통을 유지하며 이루어졌다.

물론 세네갈도 민주적 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2년 초 전임 와드 대 통령이 말을 바꿔가며 3선 연임에 나서자, 세네갈 국민들은 항거에 나섰고, 시 위 진압과정에서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그러나 2012년 3월 28일 저녁,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 종료 3시간만에 와드 대통령이 마키 살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 패배를 인정하고 정권 인수준비를 부탁한 뒤, 물러났다. 최근에는 전임 와 드 대통령의 아들인 카림 와드 전 국제부 및 국토‧인프라부장관이 야당 PDS의 대선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세네갈 부정축재척결 특별재판소(CREI)에서 징역 6 년형을 선고받아 대선 출마가 불투명해 지고,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수도 다 카르 시내 거리에서 시위에 나서는 등 불안 요소를 잠재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프리카 대다수 나라의 통치자들이 오랜 기간 독재를 일삼기 위해 재 임기간을 늘리고 연임 가능 횟수를 조정하는 등 선거 관련 법안의 개정을 본 인의 구미에 맞게 일삼고 있는 것과는 달리, 2000년 이후 세 차례의 정권교체 가 국민적 합의에 따라 모두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대선 당시 공약으로 대통령 임기 축소를 내세웠던 현 마키 살 대통령은 최근 의회에 대통령의 임 기를 현행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고 연임을 1회로 제한하는 개헌안을 제출하고 내년 개헌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인 등, 세네갈에는 실질적이고 민주적인 선거 문화를 자리 잡아 나가고 있으며, 아프리카 민주화의 모범국가로 이미지를 굳 히고 있다.

* 신종원 駐세네갈 대사의 2012.7.11. 문화일보 기고문 ‘아프리카의 희망 세네갈’ 참고

(7)

2. 뗄레야 뗄 수 없는 프랑스와의 관계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세네갈은 146년간 프랑스의 통치를 받아 정치, 경 제, 사회, 문화의 다방면에서 프랑스의 영향을 느낄 수 있지만, 식민통치의 역사 를 경험했다고 하여 프랑스와의 관계가 나쁘지 만은 않다. 특히 프랑스는 세네 갈 제2도시의 생루이(Saint-Louis)를 서부아프리카 식민지의 수도로 삼았고, 1902년에는 다카르로 수도를 옮겨 서부아프리카 지역을 지배하였다. 또한 세네 갈은 아프리카 내 프랑스 군이 주둔하고 있는 4대 전략 요충지의 하나이다. 현 재 수도 다카르에는 350명의 프랑스군이 시내 전략지역에 상주하고 있다. 이는 세네갈은 물론 서부아프리카 지역의 안정에 위기가 발생할 때 긴급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이다.

안보적인 면 외에도, 통신, 대형 유통업, 은행, 건설, 항만, 호텔 및 관광 등 여 러 서비스 산업 분야에 많은 프랑스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점도 두 나라의 특별 한 관계를 보여주는 예이다. 또한 세네갈은 아프리카 국가 중 최초로 완전한 복 수 정당제도를 도입(1981년)했으며, 군인과 경찰의 정치개입을 헌법에 명문화 한 점은 프랑스의 정치적 영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프랑스의 대 세네갈 연간 공공무상원조는 약 1억 미불을 초과하고, 세네갈 통화인 세파프랑(CFA Franc) 은 프랑스 중앙은행이 지급을 보증하는 등 경제․통상 면에서도 긴밀한 협력관계 를 유지하고 있다.

1957년 개교한 다카르대학교(UCAD)는 불어권의 흑아프리카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이다. 재학생 수가 6만 명이나 되고, 외국인 유학생이 전공 학 과별로 5%~20%를 차지하고 있어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최고 대학 중 하나로 손 꼽힌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최고수준으로 꼽히는 의대와 약대는 알제리, 모로 코, 튀니지 등 마그레브(Maghreb)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이 많은 편이어서, 전체 재학생 수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다카르 대학과 생루이 대학을 비 롯한 여러 고등교육기관 이외에도 다양한 종합병원과 전문병원이 세네갈에 갖추 어져 있어 주변국의 위급 환자들이 긴급 호송되어 치료를 받고 있는 것도 식민 통치 시대부터 교육과 의료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프랑스와의 특별한 관 계 덕분이라 할 수 있다.

2012년 4월 취임한 마키 살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첫 번째 비아프리카 방문 국으로 프랑스를 선택하여, 양국 간 협력관계의 굳건함을 과시한 바 있다.

2014년 11월에는 “제15차 불어권 정상회의”가 세네갈 다카르에서 개최되었고,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 80여국 대표단이 참석해 불어권 국가 간 경제교류 활성화와 문화 다양성 강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 다. 압두 디우프 전 세네갈 대통령은 2003년부터 2014년간 “불어권 정상회의”

의 총재를 맡아왔다.

(8)

3. 아프리카 대륙의 지성 레오폴 생고르

레오폴 세다르 생고르(Leopold Sedar Senghor)는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으로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생고르는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가이기보다는 사 상가, 문화운동가이자 프랑스어권의 대문호로서 더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1930년대 흑인 문학의 독자적 가치를 추구하는 네그리튀드(Négritude) 운동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프랑스어로 시를 쓰는 아프리카의 대표적 흑인 시인으로서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의 시는 흑인 문명과 아프리카의 생 명력을 노래했으며, 현대 프랑스문화사는 생고르를 아라공, 르네 샤르, 생 종 페르스, 클로텔 등과 함께 갈리마르나 세게르스社의 시인 총서에 나란히 등재 할 정도로 뛰어난 시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세계불어권기구(Organisation Internationale de la Francophonie)는 그를 가르켜 용기와 비전을 가진 사상가, 현실참여적인 시인이자 철학자, 세네갈의 대통령을 지낸 다재다능한 인물로서, 현대 프랑스어권 문화를 위한 가치와 이 상을 구현한 인물로 평가한다. 그는 1983년 6월 2일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멤 버로 선출되는데,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선출된 첫 번째 아프리카인이었다.

1960년 세네갈이 독립할 당시, 생고르는 “하나의 국민, 하나의 목표, 하나의 신념”을 국가이념으로 삼고, 사회주의를 지향하였다. 사회주의자였음에도 당시 아프리카에 만연해 있던 공산주의와 반서구 정서를 거부했다. 그는 프랑스 및 서방세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데 힘썼는데, 이것은 오늘날까지 세네갈의

(9)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 되었으며,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세네갈 은 아직도 아프리카 국가들 중 쿠데타를 경험하지 않고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 뤄져온 거의 유일한 국가로 남아 있다.

생고르는 세네갈을 포함한 서부와 중부의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전 체 아프리카 대륙의 20세기 가장 중요한 아프리카 지식인 중 하나로 손꼽힌 다. 또한, 예술과 문학을 증진시킨 공헌으로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 르 훈장"의 1등급 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크루아(Grand-Croix)"를 서훈 받 았고. 그와 비견되는 "오르드르 나씨오날 뒤 메리트 훈장"(Ordre national du Mérite)을 받기도 했다.

생고르는 1960년부터 1980년까지 20년간 세네갈 대통령을 역임하고, 당시 총 리였던 압두 디우프(Abdou DIOUF)에게 대통령직을 평화적으로 인계해 주었 다. 인생의 말년을 프랑스에서 보내다가 2001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베르송에 서 생을 마감하고, 유해는 다카르에 안장되었다.

그의 죽음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시는 명인을 잃었고, 세네갈은 대변자를 잃었으며, 아프리카는 지성을 잃었고, 프랑스는 친구를 잃었다”고 애통해했다.

(10)

4. 서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시원하고 서늘한 나라

용맹한 호랑이의 모습을 한 한반도 지형처럼, 세네갈은 이웃나라인 감비아를 입 에 가득 물고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턱이 네모난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세 네갈은 아프리카 대륙의 최서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세네갈 강을 건너 모리타니아와 접하고 있고, 동으로는 말리, 남으로는 기니 및 기니비사우와 접 하고 있다. 특히 세네갈의 남서 지역으로 전체가 둘러싸인 독립국가인 감비아는 북부 세네갈과 남부 세네갈인 카자망스(Casamance) 지역을 분리하고 있다.

[세네갈 지도]

세네갈에는 3개의 강이 흐른다. 모리타니아와 국경을 형성하는 북쪽의 세네갈 강, 극동 쪽의 발원지만 제외하고는 감비아에 둘러싸인 중앙의 감비아 강, 인 근지역을 비옥하게 만들어주고 지역 명칭의 유래가 되기도 했던 남쪽의 카자 망스 강 등이다.

세네갈의 기후는 쾌적한 열대성 기후로 수도 다카르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가 장 시원하고 서늘한 지역이다. 11월에서 6월까지는 건조한 기후가 지속되고 있으며, 7월부터 10월까지는 고온다습한 기후가 지속되는데 1월부터 2~3개월 동안 사하라 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대규모 먼지바람인 ‘하마탄’ 때문에 호흡

(11)

기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세네갈에서 가장 더운 달은 9~10월로 기온이 섭씨 30~35도에 이르며, 가장 추운 달은 1월로 섭씨 18~26도 정도이다. 세네갈 사람들이 겨울이라 부르는 1~2월에는 섭씨 18도 정도에도 사람들이 두꺼운 파커 차림에 모자와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또한 가장 건조한 달은 4~5월로 평균 강우량이 1mm이고, 가장 습한 달은 8월로 평균 강우량이 254mm이다.

세네갈은 쾌적한 기후 때문에 유럽의 주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데, 대부분 유 럽에서 오는 관광객들로, 관광산업은 세네갈의 주된 수입원 중 하나이다. 세네 갈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는 2013년 백만 명을 넘어섰다. 2003년 기준으로 약 50만 명의 관광객이 주로 유럽 등지에서 방문하였다. 대서양 해변을 따라 외 국인을 위한 관광 리조트들이 개발되어 있으며, 유럽이 겨울철인 12~2월 중 따뜻한 기후를 즐기고, 월동을 위하여 세네갈에 도래하는 철새를 보기 위해 관 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기도 한다.

출처: 아프리카 맛보기 [세네갈] 편 참고

(12)

5. 서부 아프리카 물류 허브, 다카르

아프리카 대륙 서쪽 끝에 위치한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는 아프리카, 유럽, 아 메리카 등 세 대륙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서부 아프리카의 물류 중심지를 노리고 있다. 자원이 빈약한 국가인 세네갈은, 케냐에 이어 아 프리카 2대 관광지로 부상하였다. 특히 ‘바이 아프리카’ 열풍이 불어오면서, 서 아프리카 방문자수가 늘고 있으며, 서아프리카 국가의 관문이라는 점에서 세네 갈은 특수를 누리고 있다. 고레섬을 통해 과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세네갈 이 이제는 물류 허브로의 부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그림 출처: http://de.wikipedia.org/wiki/Dakar

다카르 국제공항은 최근 항공편의 증가로 상당히 북적이고 있다. 파리와 다카 르는 부정기편을 포함해 하루 7편의 직항편이 있고, 뉴욕과 요하네스버그에서 하루 2편 이상, 워싱턴, 브뤼셀, 런던, 로마, 프랑크푸르트, 마드리드 등 미국 과 유럽의 주요도시와 라고스, 카사블랑카, 나이로비를 비롯한 아프리카 주요 도시 등에서도 하루 3편의 왕복여객기가 운행되고 있다. 이처럼 다카르는 편 리한 교통과 접근성을 보유하고 역사 및 문화 관광 자원이 가득해 2006년 다 카르를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아프리카의 뉴욕에 온 것 같다”며 소 감을 밝히기도 했다.

(13)

이처럼 세네갈에 투자자와 관광객, 자금이 몰리자 세네갈 정부는 신공항 건설, 산업단지 조성, 다카르 항 증설 등 굵직한 인프라 건설투자를 진행 중에 있으 며, 이러한 건설투자 경기에 호응하여, 중동의 오일머니와 중국의 대규모 자금 이 수혈되고 있다. 프랑스 기업은 2013년, UAE의 두바이포트(DP)월드 그룹에 빼앗겼던(2007년) 다카르 국제항 운영권을 재탈환하고 약 9,700만 유로 투자 계획 등을 발표하는 등 물류시설 개선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다카르 외곽 쟘니아주(Diamniadio)에 건설 중인 다카르 신공항은 빠르면 2016년 상반기 개장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카르 공항을 통한 세네 갈 방문객은 2013년 최초로 100만 명을 넘겼으며, 세네갈 정부는 신공항 건설 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외국인 방문객 수가 300만 명 수준으로 올라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카르 항만과 공항 전경]

그림 출처: www.common.wikimedia.org

이러한 물류 및 인프라 붐이 활기를 띨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다카르가 정치 적으로 안정되어 치안이 좋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세네갈과 함께 패권을 다투던 코트디부아르에 2002년 내전이 발생하고 아직까지 정국 불안정이 계속 되면서, 코트디부아르에 주재하고 있던 기업체, 유엔 산하기관 등 여러 국제기구와 NGO 지역 사무소가 다카르로 이전함에 따라, 다카르는 명실상부한 서부 아프리카 불어권의 중심 도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MK뉴스 2008.04.22. 기사 참고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8&no=245279

(14)

6. 식민시대의 역사가 공존하는 생루이 섬

생루이 섬은 2000년(2007년 확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항구도 시로, 세네갈 강 어귀에 위치하여 육지와 바닷물이 만나는 풍경과 식민지 시대 의 건축물 유산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지정학적 관점에서 생루이 섬 은 바다 쪽으로는 자연 재방이 자리해 있어 대서양의 파고를 막아주고, 육지 쪽으로는 세네갈 강을 끼고 있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 는 천혜의 요새이다.

유럽인들의 발길이 닿기 전인 15세기 이전에는 모로코 상인들이 잠시 거치는 교역 중간 기착지였으나, 포르투갈, 네덜란드, 베네치아 인들의 탐사가 시작되 었고, 1633년 프랑스가 캅베르 회사를 세네갈에 세우면서, 1659년에는 이 섬 이 회사의 방어 시설로 선정되었다.

초기의 생루이 섬은 사람이 거주하기에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주거시설이 들어 서고,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자 고무, 가죽, 금, 상아, 곡물, 노예무역 등이 활 성화 되면서 대 유럽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1854년, 루이 페데르브가 총독 으로 임명되자 생루이 섬의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1872년에는 세네갈의 수도, 1895년에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수도로 선정되었다. 이 당시 생루이 섬은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문화, 예술, 교육 등에서 중심부 역할을 하였다.

[생루이 섬 전경]

사진출처: http://www.skyscrapercity.com/showthread.php?t=347399&page=4

그러나 프랑스 주둔군의 철수와 함께 생루이 섬의 영향력은 감소하였다. 1902 년에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수도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였고, 1957년에는 세네갈

(15)

수도 자리도 상실하였다. 1963년에는 마지막 건물인 세관의 폐쇄와 함께 프랑 스인 인구가 급격히 줄었지만, 전체 인구는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며 1997년에 는 섬 전체 인구가 15만 명을 기록했다.

식민시대의 건축물들이 유럽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한 편, 현재 섬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내기 도 한다. 또한 생루이 섬에는 주목받는 건축물이 있는데, 바로 페데르브 다리 (Pont Faidherbe)이다. 세네갈 강을 가로지르며, 본토와 섬을 연결하는 이 다리 는 에펠탑을 설계한 귀스타프 에펠이 설계한 다리로, 1897년에 완공되었으며, 19세기 건축설계의 명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2008년부터 2012년 까지 전체 철 판을 보강하는 공사가 이루어졌으며, 도보 또는 차량 모두로 통과가 가능하다.

[생루이 섬을 연결하는 페데르브 다리(Pont Faidherbe)]

그림출처: http://www.lonelyplanet.com/senegal/northern-senegal/saint-louis/sights/

이처럼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생루이를 보존하기 위해 지금 도 유네스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생루이 건축물 복원 및 보존 연합을 포함 한 기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현재는 오염된 세네갈 강의 수질 개선과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쓰레기 제거작업이 시급한 상황이다.

출처: 유네스코 세계유산/세계유산센터 http://whc.unesco.org/en/list/956

(16)

7. 노예무역의 중심지 고레 섬(Gorée Island)

고레 섬은 서부 아프리카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다카르 반대쪽 세네갈 해안에 서 3.5km 떨어져 있는 1.8ha 규모의 작은 섬으로 한때는 노예무역의 기지로 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의 쟁탈전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15세기 중반에서 18세기에 걸쳐 약 2천만 명으로 추정되는 아프리카 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미주 대륙으로 건너갔다. 우리가 기억하는 TV 드라마 “뿌리”의 주인공 쿤타킨테가 노예로 팔려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현재 는 화해의 장소이자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인권 유린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로 1978년 세네갈 최초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레 섬은 1444년 포르투갈 항해사 디니스 디아스(Dinis Dias)가 최초로 발을 내디뎠고, 포르투갈인 들에 의하여, 노예, 아라비아고무, 밀납을 거래하는 상업 기지로 건설되었다. 이후 프랑스 및 네덜란드인들이 이 섬에 정착하여 서부 아 프리카 노예무역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고레(Gorée)라는 이름은 이때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이 네덜란드 남부의 삼각주 괴레(Goerée)라는 지명을 따서 붙인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영국과 프랑스간 체결된 “아미앙조약(1802)”에 따라 섬의 주도권은 잠시 영국에게 넘어갔으나, 그러나 이후 다시 프랑스에게 반환되었다.

1776년 네덜란드에 의해 세워진 ‘노예의 집(House of Slave)’은 고레 섬에 마 지막으로 남은 노예의 시설이다. 막사의 방은 남자를 위한 시설로 가로, 세로 각각 2.6m이며, 성인 15~20명을 수용했다. 노예들은 목과 팔이 사슬에 묶인 채 등을 벽에 붙이고 앉았다. 쇠사슬의 중간에는 큰 쇠구슬이 달려 있어서 움 직이려면 노예가 두 발과 두 손으로 들어 옮겨야 했다. 노예들은 생리적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에 한 번, 집 안에서만 쇠사슬에서 해방되었다. 위생 상 태가 매우 불결해서 1779년 섬을 휩쓴 최초의 전염병이 이곳에서 발원되었다.

[노예의 집과 흑인 노예 동상]

(17)

작은 막사에는 150~200명의 노예를 수용했는데, 이곳에 수용된 노예는 길게는 3개월을 기다려야 배에 실려 다른 곳으로 팔려 나갔다. 그들의 행선지는 전적 으로 구매자에게 달려 있었고, 대부분의 노예는 가족과 생이별을 겪었다. 매수 자들과 유럽의 노예 무역상들은 이 계단의 발코니에 기대어 노예를 바라보며 근육 값을 매기고 품질을 논의했다.

어린아이들을 수용하는 특별한 방도 있었는데, 이곳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젊은 여성 노예들은 다른 여자들과 분리되어 가장 비싸게 팔려 나갔다. 남자 노예의 가치는 몸무게로 결정되었는데, 최소 몸무게 60㎏이 적정선이었다. 만 약 몸무게가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면 임시 시설에 수용되어 탄수화물 함유량 이 높은 니에베(niebe) 콩을 먹여 억지로 몸무게를 늘렸다.

노예의 집 내부, 경사진 복도는 오늘날 ‘돌아오지 않는 여행’으로 가는 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을 통해 바다로 끌려간 노예는 아프리카와 영영 이별했기 때문이다. 문 바로 밖에는 야자수 나무로 만든 부두가 있어, 짐 싣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일부 노예들은 배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다에 뛰어들어 도 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경비대가 쏜 총에 맞거나 상어에게 잡아먹혀 노예들 은 멀리 갈 수 없었다. 게다가 아프거나 부상당한 노예들은 바다에 던져져 상 어를 끌어들이는 미끼가 되었다.

[돌아오지 않는 여행으로 가는 문과 고레 섬 전경]

그림 출처: http://whc.unesco.org/en/list/26/gallery/

1815년 프랑스가 노예무역을 폐지하자 고레 섬의 상업기반은 약화되기 시작하 였고, 1850년부터 다카르 연안이 땅콩 무역 등 상업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많 은 주민들이 섬을 떠나가게 됨으로써 노예무역 기지로서의 고레 섬은 완전히 쇠퇴하였다.

(18)

현재 고레 섬에는 역사박물관, 18세기에 지어진 성당, 여성박물관, 해양 박물관 이 있고, 섬의 능선에 위치한 대부분의 집과 사제관도 예전에는 노예 막사였 다. 고레 섬 정상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설치한 대포 진지가 있어 이곳이 천혜 의 요새임을 느끼게 해준다.

고레 섬은 2013년 6월 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 방문하는 등 각국 정상 들은 물론, 세네갈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들에게 세네갈과 아프리카를 이해하 기 위하여 꼭 들러야 하는 명소로 인식되고 있다.

출처: http://whc.unesco.org/en/list/26/

(19)

8. 카자망스와 지역분리운동

카자망스(Casamance)는 서아프리카 세네갈 남부에 위치해 있는 지역으로, 감 비아와 기니비사우의 사이에 위치한다. 특히, 감비아가 세네갈 남부와 북부 지 역 중간에 위치해 있어 디올라 (Diola)족의 거주 지역인 카자망스는 다카르를 비롯한 세네갈의 북부 지역으로부터 고립되어 북부의 월로프 (Wolof) 족과는 문화적 이질감이 존재한다. 1886년 프랑스와 포르투갈 간 카자망스 영토를 두 고 벌어진 식민지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하며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 갈 영토로 편입되었다.

[카자망스 지역]

그림출처: "Senegal's Casamance MFDC rebels declare a ceasefire", BBC New, April 30 2014.

http://www.bbc.com/news/world-africa-27221999

1960년 8월 독립 후 1980년까지는 카자망스 지역 주민들은 별다른 정치적 목 소리를 내지 않았다. 주요 이유 중에 하나는 당시 레오폴 세다르 생고르 (Leopold Sedar Senghor) 대통령이 카자망스 출신 인물들을 중앙정부에 임 명하면서 카자망스 지역을 포용하는 정책을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 대에 들어서 경제적 위기와 함께 북부 지역 주민인 월로프족과 카자망스의 디 올라족 간 대립이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카자망스의 지역분리운동은 1980년에 항구도시인 지겐쇼(Ziguinchor)의 시위 에서 시작되어 2004년 평화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0년 간 계속되었다. 1947년 정당으로 창설된 카자망스민주세력운동(MFDC)은 1980년대에 이르러 카자망스

(20)

분리독립단체로 발전해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무장 반군인 아티카 (Atika)를 결성하여 세네갈 정부를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2000년대까지 정부군과 반군사이에 군사적 충돌 → 평화협상교섭 → 협상교섭 결렬 → 정부군 반군 소탕을 반복하게 되었다. 마침내 2004년 12월 30일에 MFDC 지도자인 오귀스탕 디마쿤 생고르(Augustin Dimacoune Senghor) 신부와 당시 세네갈 대통령이었던 압둘라이 와드(Abdoulaye Wade)가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으나, 이후 MFDC 분파그룹들의 간헐적인 활동 들은 이어졌다.

2012.3월 취임한 마키 살 대통령은 2013년부터 매년 카자망스 지역을 방문하며 동 지역에 대한 정치적 통합 노력에 지속적으로 역량을 기울인 결과, MFDC는 2014년 4월 휴전을 선언하였고, 이후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 정부는 동 지역 지리적 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출입 은행의 EDCF(대외 경제협력 기금) 차관으로 수도 다카르와 카자망스 제1도시 지겐쇼를 오가는 선박 2척을 건조하고 중남부 지역에 항만 접안시설, 여객터 미널 등을 구축했다. 지난 2.19 지겐쇼에서 열린 선박 출항식에 참석한 마키 살 대통령은 금번 출항으로 정치‧경제적으로 낙후된 남부 카자망스 지방을 수 도 다카르 및 중부 지역으로 연결해 세네갈 국민의 삶이 개선되고, 세네갈의 해상 교통망이 강화될 것이라며, 동 사업을 적극 지원해 준 우리 정부와 국민 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출처: 2014년 10월. 전경주, 세네갈 분쟁. 한국국방연구원 세계분쟁사이트.

(21)

9. 세네갈 갈치를 맛보셨나요? 풍부한 수산물의 나라

최근 한국의 대형마트나 할인 전단에서 세네갈 갈치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국 내산 수산물의 어획량 감소, 가격 상승 등으로 이를 대체하기 위한 북대서양, 동남아 산 등 수산물 수입이 증가하는 가운데, 갈치는 아프리카 세네갈 산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국내의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가 모두 세네갈에서 갈치를 수입하고 있다. 세네갈 갈치는 국내산과 외형, 식감이 유사해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적은데다 가격은 30% 저렴한 것이 장점 이어서 까다로운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 마트에서 판매중인 세네갈 갈치]

그림 출처: http://people.incruit.com/news/newsview.asp?newsno=1749974

수산물 수출과 가공은 세네갈의 산업과 대외교역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대륙 최서단에 위치하고, 대서양과 마주한 세네갈은 아 직까지 양식업이 활성화 되지 않았고, 세네갈 최대 어획량을 자랑하는 남서부의 수산도시 ‘조알-파디우쓰(Joal-Fadiouth)’ 에서도 대다수 주민들은 통발을 통해 문어를 잡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어획한 생선을 염장하는 등 낙후된 어업기술을 지닌 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원양어선들이 세네갈 연근해에서 활발히 조업 중인 점과 한-세네갈 교 역에서 수산물 비중이 월등히 높은 점을 볼 때, 양국 간의 수산관련 분야 협력 증대가 기대되기도 한다. 세계 최대 참치 캔 회사인 동원그룹은 2012년 9월 세 네갈 국영 참치공장을 인수하여 참치가공 공장을 설립, 다카르 현지에서 참치 캔을 생산하고 있다.

동원참치 이외에도, 세네갈 현지의 한국계 수산회사가 10여개에 달할 정도로 우 리 교민들의 상당수가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우리 교민들의 활발한 경제 활 동으로 세네갈의 한국 수출 중 80%가 수산물이며, 우리에게 익숙한 세네갈 갈 치 이외에도, 조기, 민어, 문어, 전복 등 우리가 좋아하는 수산물이 한국 소비자 에게 제공되고 있다.

* 머니투데이 뉴스 <아일랜드 고등어, 세네갈 갈치 들어보셨나요?> 2014.02.28. 기사 참고

(22)

10. 세네갈의 역설, 땅콩

땅콩은 19세기 식민시대의 프랑스가 세네갈에 도입한 대표적인 외래 농작물이 다. 프랑스는 당시 `세네갈의 황금'이라 불리던 땅콩의 수출을 위해 수도 다카 르에서 까올락, 탐바쿤다 등을 거쳐 이웃 국가인 말리(Mali)로 이어지는 철길 을 건설하게 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땅콩 무역의 성황을 이루게 되자 다카 르 항만이 본격 개발되었으며, 자연스레 노예 및 상업 무역 기지로 활용되던 고레 섬의 퇴조를 가져왔다.

세네갈은 현재 세계 8위의 땅콩 생산국이며, 인산염(phosphate), 철광석, 수산 물과 함께 세네갈의 주요 교역 품목이며, 1차 산업의 핵심 업종이다. 이 중 땅 콩 재배는 경작 가능 토지의 40%를 차지하면서 연간 1백만 명의 고용을 창출 하고 있다. 또한 땅콩 관련 제품 수출로 얻는 수입은 약 3천만 달러 규모이며, 이는 세네갈 전체 농산물 수출의 60%를 차지하지만, 땅콩의 국내 소비량은 연 간 전체 수확량인 85만 톤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땅콩은 지금도 세네갈 경지면적의 36%(1위 기장 40%)에서 재배될 정도로 세네갈 사람들의 중 요한 소득 작물이지만 주식으로는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해마다 쌀, 밀 등 7억 달러(8천600억 원 상당) 어치의 농작물을 수입해야 하는 역설을 낳고 있다.

[산처럼 쌓여있는 땅콩] [땅콩 운반 트럭]

세네갈의 전통적 농산물인 땅콩이 세네갈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엄 청나다. 과거 1984년 정부의 낮은 공식 수매가에 불만을 품은 세네갈 농부들 이 공식 수출량의 3배에 달하는 약 70만 톤의 땅콩을 이웃나라로 밀반출함으 로써 1981년에 취임한 디우프 대통령의 정권기반이 흔들리기도 하였다는 사실 은 땅콩이 세네갈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한다.

(23)

이처럼 땅콩 재배는 농가 소득의 창출이나 국가 경제에 도움은 되어 왔으나, 땅 속의 모든 양분을 빨아들이는 땅콩 재배의 특성으로 인해, 한 번 땅콩을 재 배한 토양은 비와 바람 등에 의해 쉽게 풍화, 침식되어 환경에는 치명적인 영 향을 미친다. 이러한 땅콩은 세네갈 정부의 농업 구조조정 핵심 대상 품목이다.

세네갈 정부는 주식인 쌀, 옥수수, 감자 등 식량작물의 재배를 늘이고, 땅콩의 경작 면적을 축소하는 대신, 우수한 땅콩 품종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세계은행이나 주요 농업 선진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이러한 농업의 구조조정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자 하나, 가시적인 성과는 아직까지 미흡한 편이다.

출처: 아프리카 맛보기 [세네갈] 편, 연합뉴스

(24)

11. 서아프리카 최대 시장, 카올락 중앙시장

카올락(Kaolack) 지역은 감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세네갈 남부지역의 교통 요지이자 중심도시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세네갈의 주요 농산물인 땅콩의 거래 와 가공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 곳 카올락의 중심에 위치한 ‘카 올락 중앙시장’은 아프리카에서 모로코의 마라케쉬 시장 다음으로 큰 시장이며, 서아프리카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시장이다.

[카올락 중앙시장]

그림출처: https://www.pinterest.com/pin/245798092136804102/

카올락 중앙시장에서는 다양한 상품들이 판매되는데, 그 중에서도 화려한 색감 이 특징인 아프리카 왁스염색직물을 만날 수 있으며, 많은 소매상들이 염색직물 을 구입하기 위해 카올락을 찾고 있기도 하다. 보통 2미터에 1500~2000 세파프 랑(3000원~4000원) 또는 6미터에 3500~5000(7000원~10000원) 세파프랑 정도 가격에 직물을 구입할 수 있다. 또한 카올락 중앙시장에는 ‘그리그리(gris-gris)’

라 불리는 시장이 있으며, 수많은 시장상인들이 동물 가죽에서부터 조개껍질에 이르기까지 지역 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품을 내다 팔고 있다. 지 역시장에서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고, 현지인들이 생 활모습을 엿볼 수 있기에 지역 시장에 대한 방문은 세네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25)

12.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세네갈 음식문화

신선하게 구할 수 있는 풍부한 식재료와 프랑스, 모로코, 포르투갈 식문화의 영향, 그리고 보통 2~3시간 정도 공들여 조리하는 조리법, 다채로운 향신료와 허브사용 등으로 인해 세네갈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을뿐더러, 아프리카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음식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서단 해안에 위 치한 세네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생선뿐만 아니라 닭고기, 양고기, 소고기, 새우 등을 활용한 요리가 발달해있지만, 이슬람국가인 탓에 돼지고기 메뉴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특산품인 땅콩과 비삽(히비스커스과 식물), 양파 등을 이용한 소스가 발달하였으며, 이외에 북서아프리카 지역에 보편적인 식재료인 쿠스쿠스나 쌀, 렌틸콩 등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불고기나 김치처럼, 전통음식이자 대표적인 음식으로 꼽히는 세네 갈 음식은 쩨부젠, 야사뿔레, 마페 등이 있으며, 더위와 갈증해소에 좋은 전통 음료 역시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세네갈 전통음식 쩨부젠(좌)과 야싸뿔레(우)]

그림출처: http://www.banlieusardises.com/mon-premier-poulet-yassa / https://www.pinterest.com/pin/514958538613153702/

가장 대표적인 세네갈 음식 중 하나인 ‘쩨부젠(Thiebou Dieune)’은 생선을 이 용한 요리로, 생선을 이용한 것은 쩨부‘젠’, 고기를 이용한 것은 쩨부‘얍’으로 불린다. 전통요리인 만큼 만드는 법이 간단하지 않은데, 우선 양파, 파슬리, 마 늘, 레몬과 각종 허브채소를 다져 페이스트처럼 만든 후, 반으로 가른 생선 속 에 넣은 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토마토소스와 각종 채소를 볶은 소스에 넣 어 찐다. 이때 쌀은 생선을 쪄내는 증기로 한 번 찌고, 이후, 생선과 채소를 볶은 기름을 찐 밥에 부어 한 번 더 쪄낸 후, 넓은 접시에 기름에 찐 밥을 두

(26)

르고, 위에 생선과 야채를 담아내는 음식이다. 가족 여러 명이 둘러 앉아 함께 나눠먹는 식문화로 인해, 여러 명이 한 접시에 담긴 음식을 손으로 뜯으며 즐 긴다.

‘야싸 뿔레(Yassa Poulet)’는 '야싸'라고 불리는 소스와 숯불에 구운 닭고기를 곁들에 내는 요리로, 주재료로 사용되는 식재료에 따라, ‘야싸 크레벳 (Crevettes 작은새우)’, ‘야싸 뿌아쏭(Poissons 생선)’ 등이 있다. 또한 세네갈 의 주요 농산품인 땅콩과 토마토를 섞어 만든 소스와 고기와 생선을 넣어 요 리한 음식인 ‘마페(Mafe)’는 그 맛이 우리나라에서 먹는 하이라이스와 비슷해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다.

[부이 주스(좌)와 비삽 주스(우)]

그림출처: https://www.pinterest.com/pin/514958538613153702/

http://www.nairaland.com/1051018/african-cuisine/10

이외에도 전통적인 세네갈 음료로는 히비스커스 나무 열매로 만든 ‘비삽 주스 (Jus Bissap)’와 바오밥나무 열매로 만든 ‘부이 주스(Jus Bouye)’가 있으며, 민 트를 넣어 끓인 차 ‘아따야(Attaya)’와 집에서 직접 볶은 원두로 끓여내고 신 선한 클로브를 곁들여 세네갈 국민 커피로 불리는 ‘카페 투바(Cafe Touba)’가 있다. 이외에도 신선하고 다양한 식재료로 만든 세네갈 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기에, 세네갈을 방문한다면, 놓치지 말고 꼭 한번 즐겨보기를 권 한다.

(27)

13. 죽음의 경주, 다카르 랠리

‘죽음의 경주’로 불리는 ‘다카르 랠리: 파리-다카르 자동차 경주 대회’는 프랑 스의 모험가 티에리 사빈(Thierry Sabine)이 1970년대 중반 모터사이클로 사 하라 사막 횡단에 나섰다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극한체험을 경험하고, 이 에 푹 빠져 사막을 횡단하는 자동차 경주를 꿈꾸면서 시작되었다. 제1회 대회 는 1978년 12월 26일,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알제리, 니제르, 말리를 거쳐 1979년 1월 14일에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도착하는 여정으로 시작되었다.

[다카르 랠리 모터사이클 경주 장면]

그림출처: www.wikimedia.org

공식 완주율이 25%에도 미치지 못하고, 지난 35년 간 50 여 명이 목숨을 잃 고, 부상자도 수없이 발생했으며, 대회의 창시자인 사빈 역시 1986년 코스 답 사 도중 헬기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다카르 랠리’는 대회가 거듭될수록 수많 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대회의 존폐 여부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특히 10 회 대회에서는 운전사 3명, 기자 2명, 민간이 2명 등 총 7명이 숨지고, 100명 가까이 중상을 입었다. 이를 계기로 11회부터 코스 길이와 대회 일정이 짧아 졌으며, 하루에 달릴 수 있는 구간도 800km 이상을 넘지 못하게 제한하였다.

뿐만 아니라, 마을을 지날 때는 시속 40km를 넘지 못하게 규정하고, 국제랠리 선수권 선수자격증이 있어야 출전 기회를 주게 되었다.

다카르 랠리는 자동차, 트럭, 모터사이클, 쿼드(ATV)까지 총 4가지 클래스가 지정되어 있다. 자동차의 경우는 T1(개조 금지)/T2(부분 개조)/T3(완전 개조)로 분류되며, 모터사이클은 프로, 아마추어, 여성참가자 부문으로 분류해 경기를 치른다.

(28)

코스는 스피드와 시간을 다투는 ‘경쟁구간(Special Stage)’와 다음 경쟁국간으 로 이동하는 ‘연결구간(Liaison Stage)’로 구분된다. 연결구간은 정해진 시간 에 통과만 하면 되고, 팀의 지원차로부터 정비도 받을 수 있다. 경쟁구간은 미 리 결정된 최소 시간 안에 들어야 하는 구간으로 초까지 계산된다. 허가된 최 대 시간을 넘겨서는 안 되며 늦거나 반칙을 할 경우 실격되어 공식 순위에서 제외된다.

프로 선수들은 자신이 길을 개척해나가며 시간을 단축해 나가야 한다. 모든 출 전 차량은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위성항법장치(GPS)를 의무적 으로 설치해야 하며, 운전석 옆에 동승하는 항법사(코드라이버)가 GPS를 수시 로 참조하여 운전자에게 차량 진행 방향을 알려준다.

[파리-다카르 랠리 원 코스(1회-10회)와 수정 코스(11회 이후)]

그러나 오늘날의 다카르 랠리는 첫 대회와는 코스가 많이 달라졌다. 기존에는 사하라 사막을 통과하는 여정이 대회마다 빠짐없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2008 년 아프리카의 전쟁과 테러 위협으로 개막 하루를 앞두고 대회가 취소되는 상 황이 발생했다. 그 후 2009년 대회부터는 사하라 사막 통과 구간이 코스에서 빠졌다. 대신 남미의 아타카마 사막을 거치는 코스로 변경되었다. 대회를 치르 면서 출발지와 경유지, 도착지가 조금씩 바뀌었지만, ‘문명의 때가 타지 않는 오지를 달린다’는 모토와 상징성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다카르 랠 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출처: 전기신문 <죽음과 맞바꾼 희열, 다카르 랠리> 2015년 2월 3일자 / 아프리카 맛보기 [세네갈] 편 참고

(29)

14. 테랑가의 사자, 세네갈 축구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잊지 못 할 것이 다. 같은 기간에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월드컵을 열광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 이유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출전한 세네갈이 2002년 대회에서 8강까지 진출 하는 쾌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테랑가(용맹과 관용을 의미하는 세네갈 고유어)의 사자’로도 불리는 세네갈 축 구단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브르노 메추 감독의 지휘 하에 세계를 놀라게 하 였다. 첫 월드컵 무대에 오르는 세네갈은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1-0으로 꺾 는 이변과 함께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다. 프랑스를 꺽은 후 세네갈 전 역에 온 국민들이 축포를 쏘며 열화와 같이 일어나 수일 동안을 축제를 즐겼 다. 이날은 세네갈의 오랜 식민지 종주국인 프랑스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가능성을 확인한 역사적 날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같이 출전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카메룬, 나이지 리아, 남아공, 튀니지)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조별 토너먼트에서 탈락을 한 것 을 감안하면 세네갈의 활약은 주목할 만하다. 8강에 진출한 세네갈은 아쉽게 도 터키에 지면서 다음 월드컵을 기약해야 했지만, 아쉽게도 개최된 3개 월드 컵 (2006년, 2010년, 2014년) 본선 무대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 엘 하지 디우푸 및 열광하는 세네갈 시민들]

사진 출처: www.telegraph.co.uk

2002년 세네갈이 달성한 쾌거의 주역은 세네갈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인 엘 하지 디우푸다. 엘 하지 디우프는 1981년 1월 15일 세네갈 다카르에서 태어났

(30)

다. 그는 17살 때 프랑스 1부 리그에 속해 있는 소쇼 (Sochaux)구단에 입단 하였으며, 2001년과 2002년에는 아프리카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2004년에 는 세계 최고 축구선수 125인 명단에 들었다. 그러나 세네갈 축구협회와의 잦 은 마찰 등으로 인해 하락세를 겪으며 2007년 대표팀에서 은퇴를 하였다. 은 퇴를 번복하며 다시 대표팀에 복귀했지만 2009년에 다시 한 번 국가대표 은퇴 선언을 하였다. 이후 2014년 11월에는 말레이시아 2부 리그 사바 축구단에 입 단하여 축구 인생을 이어오고 있다.

세네갈에서 축구는 국기로 인식되고 있으며, 축구협회장은 정부의 각료만큼이 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축구가 있는 날은 전 국민들이 TV앞 에 모여 다같이 관전하고 있다. 2015년 1월 “아프리칸 네이션스 컵” 본선에서 오랜 숙적인 가나를 역전승으로 꺾었을 때에도 다카르 전역에 시민들이 뛰어 나와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승리를 만끽했었다.

세네갈 국가대표 축구팀은 알리우 시쎄 감독의 지휘 하에 2015년 현재 아프리 카 리그 9위, 피파랭킹 36위를 기록하고 있다.

(31)

15. 재즈(Jazz)의 기원과 세네갈 음악

재즈(Jazz)는 노예제도를 배경으로 하여 노예 신분이었던 흑인들에 의해 시작된 음악이다. 17세기부터 성행한 노예무역을 주로 서부 아프리카 지역인 세네갈, 기니 해안, 니제르 강 유역, 그리고 콩고 등지를 중심으로 행해졌다. 재즈는 아 프리카계 흑인에게서 비롯된 음악으로 아프리카의 음악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속에는 그들 특유의 정서와 가치관이 흐르고 있다.

이처럼 재즈의 기원은 노예무역으로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흑인들에게 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고, 특히 서아프리카의 문화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세네갈이 그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940년대 세네갈 제2 의 도시 생루이 출신의 밴드들이 파리와 유럽에서 활동하여 큰 인기를 끌었고, 현재도 국제재즈축제(St. Louis International Jazz Festival)가 매년 5월 생루 이에서 개최되고 있다.

세네갈 음악은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이라는 두 개의 큰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 다. 현재의 팝스타들은 음악의 기초를 전통 사운드와 리듬에 두고 있다.

[쌩루이 재즈페스티벌 및 세네갈의 세계적인 팝스타, 유쑤 은두르(Youssou N'Dour)]

그림출처: www.wikimedia.org

세네갈 현대 음악의 아버지는 이브라 카쎄(Ibra Kasse)로, 1960년대 초에 ‘스타 밴드 드 다카르(Star Band de Dakar)’를 결성했다. 현재 스타들 중 선두주자는 유쑤 은두르(Youssou N'Dour)로 전통음악과 서양 팝, 록, 소울을 결합하였으 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공식 주제곡인 "La Cour des Grands“을 직접 작곡하여 열창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외에도 뚜레 툰다(Toure Kunda)는 세계적인 연주자이며, 북부 세네갈 출신 플족인 바바 말(Baaba Maal)은 종족의 언어로 노래하며 훨씬 ‘아프리카’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32)

16. 핑크빛 호수 락 로즈(Lac Rose)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40 km 남짓 떨어진 곳에 방문자의 시선을 한눈에 사 로잡는 분홍빛 “락 로즈(Lac Rose)” 호수(장미 호수)가 있다. “락 로즈”는 대 서양과 좁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으며, 건기에는 소금 함유량이 1 리터당 300 그램 이상으로 중동의 사해와 비슷한 수준의 염도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파리-다카르 랠리의 결승 지점이며, 시상식의 무대이기도 하다.

1970년대까지 “락 로즈” 호수는 평범한 호수에 불과했으나 세네갈에 극심한 가뭄이 들이닥쳐 호수가 급격히 마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호수바닥에 있던 소금 추출이 가능해지면서 호수가 분홍빛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분홍빛을 내 는 이유는 호수의 염분에 의해 생기는 시아노 박테리아(남세균)에 의한 것으 로, 이 박테리아는 햇빛을 흡수하기 위해 붉은색소를 내는 성질이 있다. 호수 의 염도가 너무 높아 다른 유기체는 서식하지 못하나, 이 박테리아는 신체에 무해한 것으로 호수에서 수영이 가능하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높은 염 도에 의하여 호수 위에 두둥실 떠있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피부 보호를 위해 시어버터를 바르는 것이 좋다.

[락 로즈 호수]

그림 출처: http://tripfreakz.com/offthebeatenpath/the-pink-lake-retba

“락 로즈” 호수는 현재 관광과 소금생산을 위한 용도로만 쓰이며, 실제로 호수 에 방문하면 소금을 모으는 인부들과 호수 연안에 높이 쌓인 소금을 볼 수 있 다. 현지인들은 호수 바닥에서 긁어모은 소금을 바구니에 담아 생선이 썩지 않 도록 보존하는데 사용한다. 호수의 분홍빛은 건기인 11월~6월 사이에 더욱 선 명하며, 우기인 7월~10월 사이에는 상대적으로 연한 빛을 띤다.

(33)

17. 펠리컨의 나라, 주주 파크

생루이 북쪽에서 61km 떨어진 곳에 주주 새 국립공원(Parc national des oiseaux de DJOUDJ)은 16,000ha 정도의 큰 면적을 자랑한다. 1977년 람사 (RAMSAR) 조약에서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습지로 지정하였고 1981년에 유네스 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에, 유네스코, 국제 자연 보전 연맹(L'UICN) 등 의 기관에서 이 곳 국립공원 생태계 보존의 중요성을 잊지 않기 위해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주주 새 국립공원은 유럽 등지에서 오는 10만 마리 이상의 철새와 텃새가 함께 서식하는데, 300종 이상의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으며 약 200만 마리의 철새 들이 이 서식지로 날아온다. 이러한 새들을 제외하고라도 포유류, 파충류 및 곤 충들도 관찰이 가능하다. 포유류로는 멧돼지, 원숭이, 재칼 등이 있고, 파충류 종류로는 큰 도마뱀, 비단뱀, 악어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펠리컨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주주 공원의 가마우지와 펠리컨 무리]

공원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피로그라는 작은 배를 타는데, 이는 가장 고전적이며 전통적인 방법이기에 방문객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공원은 약 17km 의 길이로, 피로그를 타고 둘러보는 데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가 소요된 다.

관광객들을 위해 주주 새 국립공원 바로 옆 호텔이 있어 머물 수 있으며, 호텔 주변에는 캠핑장도 마련되어 있다.

반면, 오늘날에는 공원의 사막화와 공원 내 작은 서식지 섬들이 풍화 위험에 노 출되어 있어 보호가 필요한 실정이다.

(34)

18.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세네갈의 주요 명절

세네갈은 11세기에 이슬람화가 진행되어 현재 전체 인구의 약 94%가 이슬람교 도(수니파)이며, 5%가 카톨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도 이고, 나머지는 전통종교 를 믿고 있다. 이슬람교가 절대적 다수 종교인 관계로 이슬람교의 주요 종파 지 도자들이 세네갈 실제 국내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는 있으나, 세네갈 은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가 헌법으로 보장된 국가로, 종교간 종파 간 분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국가이다.

이처럼 종교가 다수 공존하고 있는 세네갈에서는 주요 명절 역시 종교적 전통을 따른다. 인구의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인 만큼 이슬람 국가에서 주로 지키는 이슬 람 명절과 카톨릭의 휴일 모두 통상적인 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우선 우리나라 의 한가위나 구정과 같은 최대 명절로는 이슬람 명절인 ‘코리떼(La Korite)’와

‘따바스키(La Tabaski)’가 있다.

[코리떼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세네갈 사람들]

그림출처: http://www.senenews.com/2013/08/08

이슬람력으로 10월 첫째 날에 개최되는 ‘코리떼’는 다른 이슬람국가에서 Aid el Fitr 라 불리는데, 이는 라마단 종료를 기념하는 명절로, 아침에는 온 가족이 함 께 띠아크리(Thiakry) 또는 라크(Lakh)라 불리는 아침식사를 만들어 함께 먹고, 점심은 닭고기난 양고기 등으로 만들어 가족, 친지, 이웃들과 나누며, 저녁때 아 이들은 새 옷을 입고 이웃집을 돌며 선물을 얻으러 다닌다. 이때는 어른들도 서 로를 방문하여 일상생활에서 쌓일 수 있는 감정을 해소하고 서로 간에 용서를 구하기도 하다.

(35)

이슬람력 12월 10일부터 시작되는 ‘따바스키’는 이슬람 최대의 명절로 Aid el Kebir라고도 불린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목을 베어 신께 바치려 하자 신이 대신 아브라함에게 양을 보낸 것을 기념하여, 양을 잡아 가족, 이웃 등과 나누 어 먹는 명절이다. 이때는 기독교 가정이 이슬람 가정에 초대되기도 하고, 코리 떼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새 옷을 입고 이웃집을 돌며 선물을 얻으러 다니면서 서로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따바스키에 모여 음식을 나누는 모습]

그림출처: http://www.janginanuyu.blogspot.kr/2006/01/naka-lauy-rey-xar.html

따바스키가 끝난 한달 후에는 회교력 새해를 기념하는 ‘땀카리트(La Tamxarit)’

축제가 열린다. 이슬람력 상 1년의 마지막 날 밤에 전개되는 동 축제 때는 남자 는 여장을 하고 여자는 남장을 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신년 선물을 요구하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이슬람력 3월 12일은 예언자 마호메트의 탄신일을 기리는 ‘마울루(Le Maouloud)’

에는 밤늦게까지 기도행사가 열리고 다음날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세네갈은 가톨릭 휴일인 성모승천일(Assomption), 만성절(Toussaint), 부활절(Paques), 성탄절(Noel), 성신강림축일(Pentecote), 예수승천일(Ascension) 등을 휴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36)

19. 셋 플라스(Sept Place)? 세네갈의 교통수단

현지생활에 적응하게 되면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활용하게 되는 데, 지하철, 버스, 택시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 우리의 대중교통에 비해 그 종류 가 매우 다양한 편이다. 그러나 우리 생각에는 폐차 직전으로 여겨지는 차량들 이 운행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오래된 차량 상태로 인해, 이동 중, 타이 어나 기계적인 문제로 한참동안 정비를 하고 출발하는 경우도 흔히 발생한다.

우선 우리에게도 익숙한 택시는 주로 다카르, 티에스, 생루이, 까올락과 같은 대 도시와 지방 주요도시에서 많이 탈 수 있으며, 우리네 택시처럼 미터기가 장착 된 것이 아니기에 탈 때마다 가격을 흥정해야 하지만, 생루이와 같은 지역에서 는 기본요금이 400~500 세파프랑(800원~1000원) 정도로 정해져 있기도 하다.

[대중교통수단, 카 라피드 (Car Rapid)]

그림출처: www.wikimedia.org

또한 수도와 지방 대도시에서는 '카 라피드(Car Rapide)'라 불리는 대중버스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카 라피드는 정해진 루트로만 이동을 하며, 차장이 있 어, 요금을 받고 안내를 하며, 요금은 50(100원), 75(150원), 100(200원) 세파프 랑 정도이다. 수도 다카르에서만 볼 수 있는 ‘다카르 뎀 딕(Dakar DEM Dikk, DDD), 일명 데데데’ 버스는 우리 시내버스와 가장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다카르, 티에스, 생루이 같은 세네갈 주요 도시들의 시내 중심부에는 우리 버스 터미널과 같은 가라주(garage)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 가라주에서 출발하는 차들은 도시와 지방, 지방과 지방 사이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수단이다.

(37)

[셋 플라스(Sept Place)와 내부 모습]

그림출처: http://farm4.static.flickr.com/3308/3333269151_ef472cdbee.jpg

가라주에서 출발하는 차량은 주로 미니버스와 푸조나 토요타의 웨건식 차량을 개조한 셋 플라스(Sept Place)가 있다. 셋 플라스는 불어로 일곱 자리를 뜻하는 말로, 7명이 탈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지만, 도시와 지방, 지방에서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이다 보니 사람과 짐이 비좁게 뒤엉켜 있기 도 한다. 세네갈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주로 오래된 차량 상태와 낙후된 도로환경으로 인해 덜덜 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지만, 세네갈에서의 생활 에 익숙해지다 보면 친숙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인식된다.

(38)

20. 한국이 세네갈에 선물한 희망

우리나라는 세네갈에 희망을 심어 주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2011년부터 600만 불을 들여 세네갈 동북부 12개 오지마을에 우물 파기 사업 을 시행하고 있다. 세네갈의 토양은 수분 함양이 적은 사토질 성분으로 우기에 성난 듯 쏟아진 빗물은 곧바로 지하로 스며들어 버린다. 오지 마을 주민들은 만성적인 식수 부족에 허덕이는 것은 물론이며, 그나마 고인 물도 사람과 가축 의 폐수가 뒤섞여 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우물파기 사 업은 땅 밑 200-300미터까지 관정을 뚫어 지하로 스며든 물을 펌프로 지상 20미터 높이의 식수탑까지 끌어 올리고, 다시 낙차를 이용하는 수도관을 연결, 110개의 소규모 마을에 깨끗한 식수를 제공해 주는 사업이다.

오지 마을 주민들은 이를 “한국이 선사한 생명수”라 부른다. 2015년 4월을 기 점으로 12개 사업장의 우물 파기 공사가 대부분 완료되었다. 식수탑 준공식이 개최되는 날은 세네갈 오지 마을에의 성대한 축제가 벌어진다. 수백 명의 주민 들은 하나같이 말끔히 단장을 하고, 전통 타악기인 탐탐과 젬베를 두드리면서, 부족 전통의 축가를 부른다. 우리 정부 측 인사와 KOICA를 맞이하는 주민들 은 죽어가는 마을을 살려준 한국에 대하여 크게 감사해 한다. 식수탑이 준공되 기 전에는 인근 냇가의 오염된 물 때문에 가족 전체가 수인성 질병으로 고통 받거나, 물을 찾아서 마을 전체가 유랑민들처럼 이곳저곳 옮겨 다녔고, 아이들 은 공부보다는 물을 먼저 길어 오느라 학교를 예사로이 빼먹었다.

[KOICA 지원사업으로 설치된 식수탑과 즐거워하는 아이들]

(39)

우리 정부의 재정적 지원 하 KOICA를 통해 시행되는 세네갈 식수개발 사업은 동부엔지니어링이 민간 사업체로 참여해 설계 및 시공감리를 담당했으며, 시공 은 세네갈 현지 업체가 맡았다. KOICA는 2015년 6월부터 약 500만 달러 규모 의 2차 식수개발 사업에 착수할 예정이며, 현재 10여개 후보 지역을 물색하고 있다.

한국이 세네갈에 선사하고 있는 희망은 연안국가인 세네갈의 앞바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지난 2월 19일 세네갈 남부 지겐쇼 항에서는 대외경제협력기금 (EDCF)을 통해 건조된 선박 2척의 출항식이 열렸다. 지리적으로 남북 지역 간 육상교통이 사실상 단절된 세네갈의 해상교통망 연결을 돕고자 2010년부터 총 사업비 6천 1백만 달러 중 대부분을 한국의 EDCF 차관으로 조달한 사업(4천 8 백만 달러)으로, 세네갈은 이 사업을 통해 선박 2척을 건조하고 항만 접안 시설 과 여객 터미널을 만들었다.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은 출항식에 참석하여 선박 을 성공적으로 건조할 수 있도록 도와준 한국에 사의를 표명했다.

[우리의 EDCF 지원 사업으로 건조된 선박(다카르 ↔ 지겐쇼)]

이처럼 세네갈에 희망을 선물하고 있는 KOICA와 수출입은행 등 한국정부의 공 적개발원조 사업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국내 민간 기업의 기술력, 현지노동 력 등 세 가지가 모여 시너지가 최대화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 2012년도에 들 어서며 세네갈에서 독일, 프랑스, 미국, EU, 영국 등에 이은 공적개발원조 제공 국가로 그 위상을 더욱 단단히 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욱 강화될 양국 간의 관 계에 청사진을 그려본다.

출처: 서울경제 ‘왕복3시간 물 길으러 다닌 아이들 이젠 공부하며 꿈 키워요’ 2014년 4월 2일자 / 연합뉴스 ‘세네갈 대통령, 선박 건조자금 지원한 한국에 감사’ 2014년 2월 24일자

(40)

21. 세네갈의 다양한 종족

세네갈에는 50개 이상의 종족이 있으며, 주요 종족으로는 월로프족(43.3%), 뿔 족(23.8%), 세레르족(14.7%), 졸라족(3.7%), 만딘게족(3%), 소닌케족(1.1%) 등 이 있다. 수도 다카르에는 이들 종족 대다수가 모여 있다. 종족 간에는 문화적 으로 큰 장벽이 없으며, 이 때문에 다른 종족과의 결혼도 흔하게 이루어진다.

1) 세네갈의 주류, 월로프(Wolof)족

월로프족은 세네갈 인구의 43.3%로 세네갈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총 종족 수는 600만 명이며, 그 중 560만 명은 주로 세네갈 북서부에, 나머지는 감비아와 모리타니에 거주한다. 이들은 큰 키에 매우 검은 피부를 가졌으며, 자신감이 넘치고 민족적 자의식이 높다. 높은 자주성과 적응력 때문에 다른 종 족으로부터 경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월로프 여자들은 외모가 화려하고 아 름다운 사람들로 알려져 있으며, 세련된 의상과 헤어스타일로 여러 종족들 사 이에서 유행을 선도한다. 월로프족은 언어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세네갈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각 분야에 걸쳐 ‘월로프화(Wolofisation)’가 도심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되어 있다. 국회의 각료와 공무원 중에서 월로프족이 차지 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세네갈 3대 대통령 Abdoulaye Wade와 국민 가수 Youssou N'Dour가 월로프족이다.

[세네갈 내 월로프족 분포도] [월로프족 청년]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Wolof_people

14~19c 월로프 왕국을 지칭할 때 ‘Jolof’라는 스펠링도 종종 쓰이는데, 이러한 이유로 이들의 대표적인 음식은 영어로 ‘jollof rice’라고 불리기도 한다. 월로

참조

관련 문서

Various women, including a North Korean defector, a banned short track skater, middle age woman and a middle school student, come together to form the first

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소인국의 전경을 확대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루 이 다게르(Louis Daguerre)와 탈보트(Fox Talbot)가 태양광 현미경으로

- 이외에도 매년 코차니(Kocani)에선 아마추어 연극과 영화를 위한 축제 그리고 오케스트라 경연대회 (옆 아래 사진) 가 열리고 있으며, 마케도니아의 여러

Louis Working Paper No.. Louis Working

---- 매년 매년 매년 매년 사람들이 사람들이 사람들이 사람들이 인터넷을 인터넷을 인터넷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통해 통해 공유하는 공유하는 공유하는 공유하는

(18) 인화성 액체가 지표수 또는 지하수에서 발견되는 경우 폭발성 증기 농도가 도랑 또는 웅덩이로 확산될 수도 있다.. (가) 대부분의 경우 지표수에서 발견되는

[r]

여러 차례 정전이 합의되었지만, 2014년 카자망스 민주해방운동(MFDC)의 지도자가 세네갈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고.. 일방적 휴전을 선언하기까지 세네갈 정부와 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