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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선 매주 목요일에 재 활용품 분리배출을 한다. 새벽 6시부터 10시 까지 시간을 정해놨으므로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우리집에서 이 일은 내 몫이 되어 버렸다. 아내를 돕겠다는 일념으 로 몇 차례 배출 일을 거들었더니 은근슬쩍 내 차지가 된 것이다. 귀찮은 거야 상관없지만 경 비원 보기가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아이고, 사장님! 그냥 놔두세요.”
거수경례에 허리까지 굽혀 인사하는 경비원과 종종 실랑이가 벌어진다. 못 들은 척하지만 우격다짐하듯 하는 경비원에게 결국 일을 미루게 된다.
“저, 사장님 댁은 늘 손님들이 오시는 모양이지요?”
물음에 즉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살며시 웃는다.
“술병이 제법 많아 여쭙는 겁니다.”
뜨거운 물에 덴 것처럼 몸이 움츠려든다. “아, 네….”그저 입만 달싹거렸다. 신바람이 나서 팔을 걷어붙 이는 경비원의 폼은 언제나 그럴싸하다. 기분 좋게 일을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변함없이 실천하 는 듯싶다. 내게“사장님!”하는 소리가 민망해 사양해도 경비원은 자기방식을 고수할 뿐이다.
어느 날인가 아파트입구에 차단기가 설치되고 현관마다 개폐기가 달렸다. 경비원이 늠름하게 지키던 초 소는 불이 꺼진 채로 컴컴했다. 노란색 완장에 으쓱거리던 노인이 사라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기계화란 미 명에 밀려 어디론가 노인이 가버렸다. 소주병이 많은 것을 우회적으로 꼬집는 재치와 충고가 고마웠고, 손 님이 많을수록 부자가 된다던 덕담도 그립다.
어젯밤이었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얼핏 보였다. 놀 라서 야구방망이를 움켜쥐고는 그림자를 향해 돌진하는데, 아뿔싸! 안부가 궁금하던 경비원 노인이 아닌 가. 복도에 내놓은 병과 파지를 줍고 있었다. 혹시 누가 봤을까 얼른 달아나던 뒷모습이 쓸쓸했다. 경비로 일을 하면서도 늘 당당했는데, 그새 폭삭 늙어버린 것 같았다.
재활용은 쓰레기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고령의 노인들도 일자리를 마련하여 재활용해야 한다.
새롭고 빠른 것도 좋지만, 오래되고 느린 것도 쓰임새가 요긴한 법이다. 점차 확산되어가는 고령시대에 노 인들이 소외되어선 안된다. 왜냐하면 노인은 우리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김영태|시인, 수필가
완장을 빼앗긴 노인
짧 은 글 긴 생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