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공간과 장소
박기수
즐겁지 않은 것은 독이다
대중문화와 문화콘텐츠 9
공간의 모더니티
1. 시간과 공간은 실존의 기본 조건
실존으로서 어떤 개체가 정체성/동일성을 보존하고 있다는 말은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그의 삶/생명의 리듬이 지속되고 있음
직관적으로 공간경험이란 시각적/촉각적 검증 가능한 물리적 확실성=실 재성(reality)와 등치
모든 경험의 가능 조건으로서 사물이 담겨지고 활동이 벌어지는 공간이 현대과학의 합리적 세계상을 대변한다고 믿음
2. 하지만 공간의 모더니티란 우리시대에 일반적으로 인지되고 통용되는 공간의 특정한 이미지 의미
공간의 지각 및 관념은 특정한 시대와 사회 내에서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무/의식적으로 구조화된 사고와 행동의 기대 지평
우리의 공간관 역시 근대성의 경계에 한정된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
공간의 사회성과 근대적 배치
1. 공간은 항상 사회적으로 어떤 공간으로서만 유의미 맥락화
각각의 사회적 장소들-특정하게 규정된 공간은 그 자체의 고유한 규칙과 리 듬을 통해 작동
공간이 우리 사고와 행동양식, 습관 같은 무의식적 과정까지 지배
예)
학교, 가정, 군대에서의 행동방식
너 집에서 그렇게 배웠어?
사회적 공간의 구축과 구획, 곧 배치(agencement)의 문제는 공간에 대한 개인의 훈련과 밀접하게 관련
2. 근대공간의 배치가 갖는 특징은 ‘전 사회가 교육의 현장’이 된 것
임의의 어떤 장소에서나 공간에 적합한 사고와 행동을 실행하도록 강제되어 있는 것
제도가 가두지 못한 현실의 잉여는 매너와 에티켓과 같은 비/공식적 관례가 끌어안음으로써 그 전체성을 유지
지 전체성의 유지와 재생산이 근대적 사회체의 궁극적인 목표
3. 공간의 지배란 사회적 전체성을 달성하기 위해 근대사회가 취한 통 치 논리와 방법
사회적 공간을 특정한 방식으로 배치함으로써, 그런 공간들의 규칙을 신민들 이 무/의식적으로 습득함으로써 소속감과 복종심을 자발적으로 이끌어냄
공간의 근대적 배치는 국가적 수준에서 가장 사소하고 내밀한 영역까지 분절 되고 관리될 것을 요구
19세기 가정은 사교와 정치의 공적 영역에서 분리된 사적 영역의 확보를 위 한 공간으로 인식
19세기 가정생활에서 간섭 받지 않을 권리란 기실 부르주아 성인 남성들이 누렸 던 사적 지배의 공식적이 형태
가족적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는 명분에 공인된 사적 소유권의 사회적 배치
스위트홈이란 가장 사적인 만큼 가장 국가적이고 부르주아 자본주의적 공간
사회는 개인에 대한 통제권한을 각각의 사회적 영역으로 분배: 이는 본질적으로 공간적 통치의 성격을 가짐
표면상으로는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는 시산적인 태도에서 비롯하였지만, 실상 아직 정상적인 성인 혹은 사회인이 되지 못한 아이들과 여성들을 결박해두 는 감금 장치로 기능
4. 근대적 공간의 문제성은 신민의 정체성/동일성을 사회와 국가적 차 원에서 영토화하고, 그것을 보편적인 가치 내지 특질로 각인시킨다 는 점
영토공간의 근대: 지식, 지리, 화폐의 보편 경험
1. 배치(agencement)
들뢰즈와 가타리(Gilles Deleuze and Felix Guattari)가 『천의 고원』
에서 제시한 개념
어떤 요소들이 특정한 계열을 이룸으로써 구성되는 사물의 상태라 정의
공간을 특정한 방식으로 분절함으로써 일정한 효과를 창출하는 것
배치를 통해 공간은 내부/외부로 갈라지고 특정한 의미를 갖는데, 주로 외부를 배척하고 내부를 동일화하는 방식
공간의 특정한 배치는 내부적 영토성(territioriality)을 구축.
이 때 영토적 경계는 공간을 내부와 외부로 구별하는 권력 효과의 준거점
공간의 권력이란 공간에 대한 정체성/동일성의 수여와 박탈을 의미
신분/자격을 나타내는 지표는 사회적 공간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를 보여 주며, 이 관계는 고간 내부에서 소통 가능성을 허/차단하는 것
2. 공간은 무수한 영토화와 배치가 진행되고, 이로써 출입과 소통 이 통제되는 사회적 격자들의 집합체
이 격자들을 통해 근대 사회는 개인을 주체로 생산하고 그 사회의 재생산 체제에 투입시킴: 이른바 근대사회의 훈육프로그램
학교, 병원, 공장, 군대 등의 하부 격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동일성을 확증하고, 보전하는 재생산 과정을 밟음
개인과 사회의 신원을 증명함으로써 사회적 전체성을 끊임없이 재생산
3. 근대적 주체의 생산은 근대적 공간 경험의 보편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
다수 개인들이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자격과 신분을 가진다고 믿 으며 살게 하기 위한 균질적이고 보편적인 무대 필요: 국가
국가는 국민/민족을 생산하고, 다시 국민/민족은 국가를 지속시킴
Nation: 국가, 국민, 민족
근대국가는 nation을 보존하고 재생산하는 공간의 배치, 곧 중단 없는 영토화를 본질적 과제로 삼음
4. 근대적 삶과 행위의 보편 공간으로서 국가를 지탱하는 힘은 지 식, 지리, 화폐의 세 가지 성분에서 극적으로 표현됨
근대인들이 이를 통해 획득하는 앎의 차원이 배치와 영토화, 정체성/동일 성의 생산 등 근대적 공간성의 양식을 띠고 있음
수학적 지식의 균질성, 지도적 공속성, 화폐적 가치의 보편성은 극대 국 가가 성립하기 위한 필연적 성분들인 동시에 근대인들이 영토국가의 일 원으로서 스스로를 확신하는 무/의식적 계기를 구성
표상의 근대성:코스모스에서 좌표공간으로
1. 근대적 공간의 가장 큰 특성은 그것이 표상가능한 무엇으로 인 지되기 시작했다는 점
표상(representation)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정신활동
2. 재현되는 대상은 언제나 그 시대가 요구하는 특정한 척도를 만 족시키며 이미지화
공간을 인식/재현하는 방식은 그 시대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짐
3. 근대의 공간관은 균질화와 계산가능성에 입각한 좌표계의 발 명은 근대적 공간관념의 필수적 전제
현실 속에서 운동하고 변화하는 사물들의 정량적 관계에 관심
질적인 차이체계를 대신해서 재현가능한 표상의 공간이 등장했으며, 균 질성은 그러한 공간의 필수적 속성으로 간주
4. 좌표계 도입의 두 가지 의미
좌표상의 모든 점은 다른 점의 위치를 통해 지정될 수 있으며, 이로써 모 든 위치가 전면적으로 상대화됨
모든 점, 모든 위치를 일거에 조망할 수 있는 전일적인 시점이 만들어짐
5. 좌표계, 근대적 표상공간이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믿게끔 만드는 원천은 공간 자체의 실재성이 아니라 공간의 근 대성, 즉 과학에 대한 근대인들의 무/의식적 신념일 뿐
2차원적 평면 위에 투사된 3차원 영상이 실재 정확한 이미지라는 믿음, 이런 표상의 공간이 과학의 논리로서 증명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근 대적 공간 또는 공간의 근대성을 지탱하는 버팀목
표상공간이 객관적이고 투명한 실재의 공간이라는 믿음은근대적 지식 일 반이 지식으로 공증받기 위한 제1 전제
지도의 근대: 공간은 어떻게 사회가 되었는가?
1. 근대적 표상공간에 현실 지리의 색채를 입힌 것이 지도
근대의 지도 제작과 지도관념 역시 근대성의 테두리를 통해서 사고되어야 함
T-O지도
무엇이 더 실재적인가에 대한 판단이 중세와 근대에서 상이했음
T-O지도의 세계는 보이는 세계의 묘사가 아니라 믿고 있는 세계의 이미지
중국의 삼례도
2. 우리는 지도를 보는 게 아니라 해석함
해석 행위를 통해 지도의 공간은 우리와 특정한 관계를 맺고 특정한 소속감을 부여
T-O도를 보는 중세인에게 그 지도는 가가 믿고 소개 있는 성서적 세계의 실재 성을 입증하는 자료
3. 지도를 통한 사회 및 사회적 주체의 생산은 근대사회에서야 비로서 유 의미하게 거론
근대사회만이 사회의 보편공간과 그 영토적 경계를 합치시킨 최초의 사회체였 기 때문
4. 근대국가의 새로운 보편성은 주권의 절대성이 영토 내에서 어디서나 균질하다는 원칙
국토는 국가의 신체다
일제가 식민지화할 대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이 토지조사사업(1910-18)
과학적, 합리적인 연구로 분류하는 지리학적 조사가 근대국가의 영토성 구축 과정
5. 지도는 국토라는 리얼리티는 생산하는 기계
지도는 국가를 가시적 조망권 안에 넣어 국가라는 공간을 표상
사회지도(인구분포, 교통지도, 특산물 지도, 기후도, 산업지도 등)의 학습은 개인을 사회에 일체화함으로써 사회적 주체성을 부여하는 훈육 프로그램의 주요 계기
6. 근대적 지도 만들기는 공간을 사회로서 생산함
과학적인 만큼 중성적인 좌표공간은 지도적 상상력을 통해 권력의 배치가 작 동하고 일정 훈육과정을 통과해야 신분을 발급받는 사회체=근대국가로 변모
이때 지도는 근대인들이 생활의 공통성을 경험하고 자기 정체성/동일성을 집합적 차원에서 재확인하는 영토화 기구로 작동
지도가 현실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모방하는 역설적 사태
지도는 사회 자체 혹은 사회를 재생산하는 막강한 영토화 기계임
보이는 게 아니라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다
이것은 아프리카가 아니다
지도와 지도 그리기
1. 장소는 의미들로 가득
주어진 장소 혹은 지역이 개인에 대해 갖는 함의에 주목
그러한 함의가 발생하는 문맥에 주목
장소와 그에 고착된 의미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
지역에 대해 유포된 이야기와 의미들은 ‘누구의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된 것인지 고려해야 함
극동: 기준은?
서양/동양의 기준은?
2. 공간에 관한 재현물은 특수한 문화적 문맥으로부터 파생된 추상물
3. 장소는 특수한 문화적 조건들의 산물
단순히 활동의 장이 아니라 실제로 언제나 행동과 의미들의 일부
‘부재하지만 전능한 지도 제작자’의 의미
동일한 지역, 국가에 대한 상이한 지도 비교
4. 국가의 지도책들은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국가적 정체성을 시간과 공간상에 위치시키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장치
화폐의 근대: 자본주의 의 보편공간
1. 화폐경험의 보편성은 근대적 삶의 본질적 조건
근대국가는 자본주의 국가로 출현,
자본주의 국가의 근대성은 화폐경험으로 확인
화폐에 교환가능한 힘을 실어주는 것이 국가
화폐주권이란 영토적 경계 내부에서 국가가 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
화폐는 대외적 자율성과 대내적 통일성을 갖는 국가적 힘의 표상
국가와 화폐의 결착은 근대 이후에 나타난 특징적 현상
2. 근대 국가의 지식적, 영토적 통일성은 신민들의 자발적 복종과 승인을 이끄는 계기
일상적 지식의 균일성, 국토에 대한 공속감은 영토민을 하나의 사회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는 무/의식적 연대의 기초
경제적/경제 외적인 모든 사회적 차원에서의 생산을 일의적으로 관장
3. 자본주의 사회는 국가가 관장하는 화폐에 의해 매개되고 작동
근대 이전의 생산을 결정짓던 계기는 ‘코드의 잉여가치’, 코드가 지배하는 사 회에서 화폐의 균질적 공간은 성립할 수 없음
자본주의적 생산영식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코드는 더 이상 잉여가치의 원천 이 아님.영토 내부를 총체적으로 관통하고 파고드는 전면적인 생산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화폐
흐름의 잉여 가치: 모든 상품은 화폐로 통일되기 때문에 잉여가치는 코드가 아니라 생산의 흐름을 맺고 끊기는 각 지절에서 추출(원산지, 도매상 가격, 환율 차이 등)
화폐는 모든 가치의 파괴자이자 평등을 허락하는 해방자, 그 어떤 가치도 화 폐를 통해 측정되도록 강제하는 보편자로 등극
국가 없이 자본주의는 작동할 수 없고, 자본주의 없이 국가는 영토화를 완수 할 수 없음
4. 화폐적 공간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은 표상과 지리의 공간이 그러했 듯이 근대사회의 역사적 선험성에 지나지 않음
근대적 경험을 지식, 지리, 가치의 차원에서 보편적인 것이라고 믿게 하는 가 사의 보편성일뿐
자본주의 사회의 실제 공간은 균질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음. 소유권이라 는 초월적 요소가 공간의 선험적 가치를 미리 결정하기 때문
자본과 국가에 의해 미리 장악된 공간의 가치는 근대적 공간의 본질적인 비 균질성과 비보편성을 보여주는 것
5. 근대적 공간은 그 이상과는 달리 불균등하고 억압적인 공간인
동시에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국가-자본이 ‘-로서'라는 정체
성/동일성의 구조를 끊임없이 양산하는 기계
근대와 다른 공간?
1. 근대적 공간 배치의 힘
근대사회는 과학의 이름으로 공간의 균질성과 보편성을 가르쳤고, 학교, 군대, 가장 등의 다양한 배치에서 근대인들은 그런 공간의 실재성을 경험 한다고 믿음
현재적, 합리적인 세계에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발적으로 이 과정에 참 여해야 함
2.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했듯, 배치의 힘은 지속적으로 다른 것이 될 수 있다는 점
수학적으로 동질화되고 현실의 역학에 무관한 보편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물과 자연, 사람과 사람이 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이전 과는 다른 의미와 가치를 생성해낼 수 있는 배치, 정체성/동일성의 재생 산에 목적을 두지 않고 새로운 정체성/동일성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배치,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탈주하는 생성의 공간을 사유해 볼 여지
실재적인 것은 공간 자체가 아니라 공간의 변형 가능성
3. 가비오타스
공간의 국가적 배치, 자본의 영유를 벗어난 공간
콜롬비아 동쪽에 위치한 생태공동체
국가와 자본의 개입을 거부
생활의 모든 기술적 노하우는 공동의 것으로 인식
4.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고착된 배치를 교란하고 불안하게 함으로써 다른 배치로 이행하도록 추 동하는 탈영토화의 능력
현실을 전복하고 새판을 짜는 거대서사는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