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건강식품특별할인판매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건강식품특별할인판매"

Copied!
16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제 60회 현충일 추념식이 지난달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개최됐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 영원히 잊 지 않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추념식은 호국영웅·전몰군경·독립유공 자 유족, 국가유공자, 학생 등 1만여 명 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추념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지 키고, 세계 속의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선열들의 희생 과 애국심이 버팀목이 되었기 때문에 가 능했다”며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 의 뜻을 궁극적으로 계승하는 길은 한반 도의 평화통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대한민국의 재도약 과 한반도 평화통일로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개 척해 온 대한민국의 역사를 더욱 위대하 게 만들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뤄나 가는 길에 국민 여러분께서 다함께 손잡 고 나아가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오늘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 은 나라 사랑의 마음으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 왔던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그 고귀한 뜻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 야 합니다.

정부는 선열들이 남기신 숭고한 정신 을 높이 기리면서, 그분들의 희생이 헛 되지 않도록 합당한 예우를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65년이 지났지 만, 북한은 여전히 핵과 장거리 미사일 을 개발하고, 최근에는 잠수함발사 탄도 미사일 사출시험으로 한반도와 국제사 회를 향한 위협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북아의 정세도 민감하게 돌아 가고 있습니다. 종군위안부 문제와 같은 과거의 역사적 진실 문제와 영토 분쟁 등으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 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어려움들에 굴하 지 않고 반드시 이 문제들을 해결해 나

갈 것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들을 극복해 가면서 조 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뜻을 궁극적 으로 계승하는 길은 한반도의 평화통일 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로 분단 70년이 되는 지구상 유일 의 분단 한반도를 이제 마감해야 합니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세계 모든 나라가 우려하고 반대하는 핵 무장을 포기하고, 하루속히 대화와 협력의 장으로 나와서 우리와 함께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2면에 계속>

“재도약과 통일 위해 우리 모두의 단합된 힘 필요”

박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국론분열땐 위기 겪어

향후 30년 성장기반 다질 것”

현충일 추념사

<요약>

지난달 6일 서울 현충원에서 열린 제60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주요 보훈단체장 등이 헌화 분향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2)

국가보훈처는 올해 6·25전쟁 참전유공자 2,320명을 정부 주 도로 새로 발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6일 열린 제60회 현충일 추념식에 서 올해 새로 발굴한 참전유공 자 대표로 진창수 씨 등 5명의 참전자에게 직접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했다.

이로써 지난해부터 정부가 직접 발굴한 참전유공자는 총 5,120으로 집계됐다.

국가보훈처는 지금까지 참전 유공자로 등록하지 않은 42만 명 가운데 5만 5,376명에 대한 참전 자료를 분석해 생존자 3,874명(7%), 사망자 4만 601명 (73.3%), 기준등록지(본적지) 및 거주지 불명자 1만 901명 (19.7%)을 확인했다.

이에따라 지난해 참전 관련 자 료 중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2만 3,003명의 참전용사와 최근 전역 해 생존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 된 2만 1,958명의 참전용사를 우 선 확인해 2,800명을 발굴한 바 있다. 이어 올해는 미등록자 37 만 6,390명을 법원행정처와 연계 해 성명과 생년월일 일치자 7,681명을 확보, 군 ‘거주표’ 등 자료를 분석하고 제적부와 가족 관계증명서 등을 확인, 주민조 회 등의 절차를 거쳐 5월 말까지 미등록자 2,320명을 발굴했다.

6·25전쟁 65주년 행사가 지난 달 25일 서울 송파 잠실실내체 육관에서 열렸다.

‘튼튼한 안보의 길, 하나된 통 일의 길’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날 행사는 황교안 국무총리, 박 승춘 국가보훈처장, 참전국 주 한 외교사절, 정부 주요인사, 각 계대표, 6·25참전용사, 시민, 군

장병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기 념사를 통해 “튼튼한 안보의 토 대가 없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 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 다는 6·25전쟁의 교훈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우 리의 안보의식을 더욱 굳건히 다지고 강력한 국방력을 갖추 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고 강조했다.

황 총리는 “우리 겨레의 가 장 큰 소망인 통일을 준비하는 데도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 라며 “정부는 북한의 위협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한편, ‘통 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평 화통일의 시대를 차근차근 대 비해 나가고 있다”고 말하고

“북한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한 민족 공동번영의 미래로 우리

와 함께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발행일 2015년 7월 1일 발행처 국가보훈처 발행인 박승춘 대표전화(정책·민원·상담) 1577-0606 편집·배포 044)866-0745

339-012세종특별자치시 도움4로 9

본지에 수록된 내용은 국가보훈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창간 1963년 9월 19일 홈페이지 www.narasarang.kr 제842호 2015년 7월 1일 수요일 (월간)

2

종합

6·25 65주년 행사

※ 7월 특별선물 : 홍삼녹용 1박스(70ml×30포) 특별선물로 더 드립니다!

건강식품 특별할인판매

178,000 188,000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

백령도 토종약쑥과 야생방목한 흑염소에 산삼배양근을 배합하여 제조한 여름철 최고의 건강보양식품으로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백령도토종 약쑥흑염소

고품격 홍삼을 진하게 마셔요~

홍삼 특유의 진한 향과 맛을 담은 고품격 진액입 니다. 원기회복·자양강장·면역력증진에 도움 을 줍니다

참녹용보위골드

옛부터 보약하면 녹용이죠

녹용은 옛부터 가장 널리 알려진 보양식품으로 몸을 튼튼히 하고 체력보강에 좋으며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은 보양식품입니다

※이런분께 좋습니다

•허약체질, 몸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시는분

•기력이 약하고 양기 부족하신분

•신경통, 관절통, 골다공증이 있으신분

•위장이 약하고 소화가 잘 안되시는분

•기타 혈액순환 및 저림증상에 도움을 줍니다

6년근 참홍삼골드

42 126 218,000

*옹진군특산품제1호

•제품 먼저 받아보시고 대금은 아래 계좌에 입금하시면 됩니다. •2세트 주문시 10% 추가할인 또는 1박스 더 드립니다.(선택)

참전유공자 2,320명 발굴

지난달 25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6·25전쟁 65주년 행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하고 있다.

정부는 TV수신료 면제대상 국가유공자 중 디지털TV를 보 유하지 않은 가구에 대해 대폭 할인된 가격에 디지털TV를 구 매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TV수신료 면제대상은 독립

유공자 본인 및 독립유 공자의 선순위유족, 전·

공상군경, 4·19부상자, 공상공무원, 특별공로 상이자, 5·18부상자로

가구당 1대만 살 수 있다. 전국에서 국번 없이 124번.

“안보의식 다지고 강력한 국방태세를”

정부 주도 발굴 작업 지속

<1면에서 계속>

그렇게 가기 위해서는 국민 여러분께서도 힘을 모아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 면, 국민이 하나 된 마음으로 단 결하고 전진할 때에는 발전과 번 영의 꽃을 피웠지만, 국론이 흩 어지고 분열과 갈등으로 갈 때는 반드시 위기를 겪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 습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나라 가 흔들리게 되면, 우리의 미래 도,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산도

없게 될 것입니다.

정부는 국민 여러분과 힘을 모아서 우리 국민의 안전을 최 우선으로 다지면서 경제에 역동 적인 활력을 불어넣고, 구조개 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서 30 년 성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대한 민국의 재도약과 한반도 평화통 일로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 두의 단합된 힘이 필요합니다.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개척해 온 대한민국의 역사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고 한반도 의 평화통일을 이뤄나가는 길 에 국민 여러분께서 다함께 손 잡고 나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박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유공자 DTV 할인 구매 지원

문의,

(3)

광화문광장에 우리 국민의 애국심을 상징적으로 모으는 대형 태극기가 들어선다.

국가보훈처와 서울특별시·광 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달 2일 광복 70년 기념사업 으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 ‘대형 태극기 게양대’ 구현과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의 전당’을 설

치하기 위한 업무협약(MOU) 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은 박승춘 국가 보훈처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열렸다.

광화문광장의 대형 태극기 구현사업은 국가보훈처가 서울 시와 공동으로 사업추진단을 구성해 자문위원회 구성과 전 문가 자문, 국민제안을 받아 ‘국 민이 함께 기획하고 세우는’ 프

로젝트로 추진한다.

이에 따라 광복 70년이 되는 오는 8월 15일에는 주요인사와 국민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게양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후에도 8·15 광복절 등 주요 국가 기념행사 등에 국 기 게양식을 거행하는 등 광화 문광장이 나라사랑의 상징적 장소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으 로 기대된다.

한편 서대문독립공원에 독립

유공자 2만명의 위패를 모실 수 있는 ‘독립의 전당’을 건립하여

3·1독립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 인 2019년에 개관할 예정이다.

국가보훈처 - 서울시 광복 70년 업무협약

지난달 2일 서울시장실에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광 복70년 기념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서에 사인한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현충의 빛’‘감사의 송가’…

호국정신·평화통일 기원

호국보훈의 달 6월. 전국이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우리 국민 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잊지 않았다. ‘호국정신으로 갈등과 분열을 넘어 미래로 통일로’라는 주제로 전국 각지에서 다양하고 뜻깊은 행사가 열린 가운데 국민의 호국 정신은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졌다. 호국보훈의 달 행사 현장 모습.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전초등학교에서 열린 호국영웅 우표 발행 기념식에서 박승춘 국가보 훈처장과 학생들이 호국영웅에게 보내는 편지를 하늘나라 우체통에 넣고 있다.(사진 왼쪽) 국가를 위 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감사와 국가의 소중함을 국민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현충의 빛이 지난달 4일 부터 3일간 하루 4시간 동안 국립서울현충원 하늘을 밝게 비췄다.(사진 오른쪽)

지난달 24일 국립대전현충원 보훈길 태극기 거리에 21개 유엔 참전국 국기와 유엔기, 태극기가 게양되고 있다.(사진 왼쪽) 지난달 12일 서울 청계천 모전교에서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6·25전쟁, 경제발전, 번영으 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빛 영상으로 표현한 퍼포먼스 모습.(사진 오른쪽)

광화문광장에 대형태극기 세워진다

(4)

제842호 2015년 7월 1일 수요일 (월간)

4

단체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회장 왕성원)는 지난달 10일 서울 중앙보훈회관에서 남다 른 열정과 헌신으로 자녀들을 훌륭히 성장시킨 어머니들에

게 주는 ‘제37회 장한어머니 상’시상식을 개최했다.<사진>

다음은 수상자 명단.

이예순(80세, 서울 중랑) 김윤순 (79세, 부산 동구) 유향순(70세, 인 천 남구) 손석순(76세, 대전 동구) 이복기(82세, 대구 달서) 서기순(76

세, 광주 북구) 최태임(83세, 울산 남구) 구양숙(88세, 경기 수원) 고연 규(85세, 강원 영월) 박민자(72세, 충북 청주) 김한영(81세, 충남 공주) 전정녀(84세, 전북 김제) 김연옥(72 세, 전남 화순) 장을수(81세, 경북 구미) 오도순(87세, 경남 진주) 김두 만(85세, 제주 제주) 이영자(65세, 경북 문경) 백숙녀(70세, 서울 중랑) 윤삼선(77세, 서울 영등포)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회장 최해근)는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중앙보훈회관에 서 전몰군경의 부모를 극진히 봉양한 효자·효부에게 주는

‘제38회 효자효부상 시상식’

을 개최했다.<사진>

다음은 수상자 명단.

윤오순(54세, 서울 종로) 서경자 (57세, 부산 사상) 박영한(65세, 대 구 북구) 박정순(50세, 인천 남동) 정금자(64세, 광주 서구) 임숙자(74

세, 대전 대덕) 박숙자(69세, 울산 중구) 유선미(51세, 경기 오산) 이종 선(57세, 강원 춘천) 이석현(73세, 충북 청주) 이홍원(76세, 충남 천안) 토문짠티(27세, 전북 전주) 박정숙 (64세, 전북 무주) 이동현(60세, 전 남 화순) 안채환(73세, 경북 청도) 문순심(70세, 제주 제주) 심매자(58 세, 울산 남구) 이영덕(71세, 서울 동대문) 안두일(79세, 인천 계양)

제38회 효자효부상 시상

제37회 장한어머니상 시상

대한민국상이군경회(회장 김덕남)는 지난달 24일 서울 중앙보훈회관에서 중상이군 경인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를 훌륭하게 성장시킨 아내에게

주는 제14회 장한 아내상 시상 식을 개최했다.<사진>

다음은 수상자 명단.

김희자(70세, 서울 은평구) 조금이 (60세, 부산 남구) 손차교(60세, 대구 북구) 김옥화(69세, 인천 남구) 박윤숙 (54세, 광주 광산구) 김한순(62세, 대

전 동구) 김순자(64세, 울산 중구) 이 학순(66세, 경기도 연천군) 조순자(82 세, 강원도 고성군) 곽선숙(58세, 충북 청주시) 정백순(83세, 충남 아산시) 채 옥하(61세, 경북 구미시) 안연순(63 세, 경남 함안군) 임순희(67세, 전북 군산시) 박영례(66세, 전남 나주시) 김 화월(74세, 제주도 제주시) 강경자(67 세, 경기도 구리시) 이정례(64세, 전남 목포시) 김양화(55세, 대전 유성구)

제14회 장한아내상 시상

상이군경회

전몰군경미망인회 전몰군경유족회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총 회장 이형규, 회장 강인호)는 6

월 2일 제60회 현충일 및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회장단, 임직

원, 대의원, 전 국 시·도지부장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및 고엽 제로 유명을 달리한 전우들을 기리는 행사를 가졌다.

한편 고엽제전우회는 11일

서울중앙보훈병원을 찾아 입 원 중인 국가유공자를 위문하 고 1,400만원 상당의 위문품을 전달했다.

국립현충원 참배·보훈병원 위문

고엽제전우회

(5)

우리 국민은 분단 극복과 통일을 위해 서는 ‘지나친 정치 이념 갈등, 분열의 완 화(36.7%)’, ‘통일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공감대 형성(23.4%)’, ‘국가관 확립 및 국 민의 하나된 마음(21.8%)’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보훈처가 한국정치학회, 광복70 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공동으로 실시 한 ‘분단 70년의 원인과 극복 과제에 대 한 국민인식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우 리 사회의 정치 이념의 갈등과 분열의 해 소가 통일의 관건’이라고 판단했다.

이 같은 응답은 남녀, 연령, 학력별로 도 큰 차이 없이 고르게 나타났다.

조사에서는 분단 극복을 위한 국민 공 감대 형성의 우선 과제를 묻는 설문에서 도 38.6%와 34.8%라는 압도적인 응답자 들이 ‘정치권의 갈등’과 ‘이념 갈등’을 우 선 과제로 꼽았다. 반면 세대 갈등과 지 역 갈등에 답한 국민은 각각 10.7%와 9.7%에 그쳤다.

특히 20대와 30대 응답자들은 거의 절 반에 가까운 47.8%와 43.5%가 ‘정치권 의 갈등’이 분단극복을 위한 공감대 형 성을 위한 우선 과제로 꼽아 정치권의 갈등 해소가 시급하다고 보는 것으로 분

석됐다.

분단이 70년 동안 지속된 가장 큰 책임 에 대해서는 53.7%가 북한에 있다고 대 답했고, 38.4%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을 꼽았으며, 남한에 책임이 있다는 응답은 7.9% 수준에 그쳤다.

분단 지속의 내부적 원인과 관련해서 는 절반이 넘는 52.9%가 ‘정치인 또는 정 치권’을 꼽았으며 29.6%가 정부를, 이어 5.1%, 4.3%, 3.5%가 각각 언론과 국민, 시민단체에 원인이 있다고 응답했다.

“통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 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하는 설 문에는 주변강대국(30.5%), 북핵문제 (25.3%), 남 남 갈 등 (22.4%), 통 일 비 용

(19.3%) 등을 비교적 고르게 꼽은 것으 로 나타났다. 이 질문에는 남성 응답자 의 34.7%가 주변 강대국을 최대 장애물 로 지목한 데 비해, 여성응답자는 27.4%

가 북핵문제를 최대 장애물로 생각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통일이 남북한에 어떤 이익을 미칠지 를 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10명 중 70명 에 가까운 68%가 ‘남북한 모두 이익’이 라고 응답한 반면 ‘남북한 모두 손해’라 는 대답은 14.1%로 나타났다. 남북한 한

쪽의 이익을 꼽은 응답은 북한만 이익 15.7%, 남한만 이익 2.2%로 나타나, 상 대적으로 북한의 이익이 클 것으로 보는 응답자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통일이 어떤 정치 체제로 돼야 하느냐 를 묻는 질문에는 ‘남한식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압도적인 60.2%의 선택을 받은 데 이어, ‘각 체제를 유지, 공존하는 연방 제’가 27.8%, ‘제3의 체제’가 11.3%씩의

지지를 받았다.

한편 “통일을 위해 개인적으로 얼마 정도의 돈을 내실 의향이 있는지”를 묻 는 조사에서는 33.7%가 연 10만원 미만 을 부담하겠다고 대답했으며 20만원 미 만이 17.4%, 50만원 미만이 10.9% 부담 하겠다고 대답했다. ‘돈을 낼 생각이 없 다’는 대답을 한 응답자도 26.5% 수준으 로 나타났다.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교류협력을 잠 정적으로 중단한 5·24 대북 제재조치에 대해서는 절반에 가까운 46%의 응답자 가 ‘천안함 사과 때까지 제재를 풀어서 는 안 된다’고 대답했으며, ‘부분적으로

해제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41.1%로 나 타나 ‘전격 해제’를 요구한 12.9%를 크 게 앞지른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 치에 의해 지난달 9일부터 12일까지 전 국 16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16세 이상 성인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으 며, 무작위 추출을 전제할 경우 95% 신 뢰 수준에서 표집오차는 ±3.1%p.

ഐଞଖ෾թ

 

  

  

  

   





























 



 

 







남북한 모두 이익 남북한

모두 손해

북한만 이익 남한만 이익

  

  

࣫ۃ֥ࣔଖթ୓

  

   



































 

 



 

정치 이념 갈등, 분열 완화

통일의 긍정적 효과 공감 국민의

하나된 마음 통일 비용 인식 변화

  

  

  

  

   





























 



 

 



 

  

  

  

  

ഐଞऌ૜ࣩۊ૜ଖ





























 



 

 



 

돈을 낼 생각 없음 연 10만원 미만

연 10만~20만원 미만 연 20만~50만원 미만

연 100만원 이상 연 50만 ~100만원 미만

2015년 7월 1일 수요일 (월간) 제842호 5

이 시대의 호국정신

 

  





 



   

   



 

 



 



 

 

  

     





 

국가보훈처·한국정치학회 여론조사

‘정치·이념 갈등, 분열 해소가 통일의 관건’ 36.7%

‘분단 원인’, 북한 53.7%, 주변국 38.4%

“통일 남북 모두에게 이익 될 것” 68.0%

통일 위한 경제적 부담 33.7%가 10만원 미만

분단 내부원인, 정치인·정치권 30%

(6)

제842호 2015년 7월 1일 수요일 (월간)

6

이 시대의 호국정신

1. 한미동맹의 의의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로 구축된 60여 년의 한미동맹관계는, 내적 으로는 한국의 평화와 번영,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고, 외적으로 는 북한으로부터의 위협과 동북아지역 의 안보불안요인을 감소시키면서 이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해온 기제로 작동 해왔다.

동북아지역의 강대국들인 중국, 러시 아, 일본 등은 지역 강국이 아니라 글로 벌한 수준에서도 명실상부한 강대국들 이다. 이러한 강대국들에 비해 상대적 힘의 열위 상태에 있는 한국은 국내적 권력 자원에 의지한 내부적 균형만으로 중국, 일본과 균형을 이뤄낼 수 없고 외 부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 다. 군사적인 차원에서 혹은 경제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국력이 세계 전체에서 는 10위 정도에 위치하지만, 동북아 지 역에서 보면 한반도에 인접하고 있는 지 역 국가인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 로 크게 열세에 놓여 있다. 따라서 한국 은 국내적 권력 자원에 부가하여, 다른 국가와의 전략적 협력, 군사 동맹 등을 바탕으로 한 외부적 권력 자원을 동원하 여 외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동북아 지역 질서의 현재적 변화 를 잉태하고 촉발시키는 중요한 요인은 국가 간의 국력 성장 속도의 차이로 인 한 국가 간 역학관계의 유동성이다.

즉 중국은 이제까지의 높은 경제성장 과 이를 통한 축적된 정치·경제적 힘을 기반으로 미국과의 힘의 균형 상태를 추 구하고 있다. 또한 동북아 지역은, 2차 대전 이후 유럽의 경우처럼 유사한 국력 을 보유한 역내 국가 간 경쟁이 서로 일 탈 행위를 방지하면서 안정적인 지역 관 리로 이어질 수 있는 메커니즘이 부재한 상태이며, 이러한 지역 자체에 의한 균 형의 부재 상태에서 특정 국가의 국력 증강은 지역 자체의 안정성이 파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세력균형자로 서의 미국의 지위가 다양한 방식으로 지 속되어야 되어야 안정이 유지될 수 있 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따른 동북아 국제정세의 유동성 이 증대되면서 한미동맹 강화가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사이의 안보 딜레마

를 해결할 수 있으면서, 동북아에서 힘 의 균형을 형성하고, 동북아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강한 한미동맹은 양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것 이다.

2. 한미동맹과 한국의 국익

한미동맹이 앞으로도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유동성이 증대된 동북아 정세 속 에서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모색하고 국 익의 극대화를 위해서이다. 구체적으로 한미동맹은 북한의 위협과 침공에 대한 억지력이라는 전통적 역할을 넘어 중국 과 관련한 경제적·정치적 문제에 있어 서 한국에 중요한 지렛대를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에 따라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 는 일본의 행보는 일본의 국방력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과 중국 간의 역사 적 갈등과 경쟁을 고려하면 앞으로 한국 은 미·일동맹 또는 중국 중 한쪽 편에 설 것을 강요받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경우 한국에게 가장 바람직한 전략은, 강요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한 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강화된 한미 동맹은 지역 헤게모니로서 중국의 위협 을 억제하고 동시에 일본의 재무장을 억 제하는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 다. 북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고 국제 사회로부터 북한에 대한 경제원조를 이 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진 미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북 한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 이며, 남북 간 협력, 즉 민족 공조는 한미 간 공조가 전제되어야만 이뤄질 수 있으 며 한반도 평화 보장이라는 국제공조 없 이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다.

강력한 한미동맹은 중·일 간 평화를 매개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 을 이룩하는 데 있어 한국이 허브국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견인해줄 수 있다.

양국은 2008년 한미동맹을 ‘21세기 전 략동맹’으로 정의한 이래, ‘포괄적 전략 동맹’ ‘가치동맹’ ‘신뢰동맹’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며 동맹협력을 확대해 나 가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천명해 오 고 있다.

3. 한미동맹에 기여하는 보훈외교 학자들은 외교정책 수행 과정에서 국 내적인 측면과 국제적인 측면 등 양면적 요소의 연계성에 주목한다. 동맹관계 설 정 등 국가이익에 입각한 외교의 목표를 설정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국내 정치 적 과정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맹 관계를 실천적으로 수행하 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목표와 수단에 대한 공감대 형성, 관련 이해관계자 간의 협상을 통해 외교 에 임하는 입장을 정하지 않을 수 없고, 이 국내적인 과정은 동맹의 결과가 궁극 적으로 자국의 국내정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또다시 동맹외교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연히 한미동맹의 지속과 강화를 위해서는 우리 국민의 지지와 성 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몇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다수의 한국인이 한미관계 를 불평등하다고 평가했는데 65%의 한 국인이 한미관계가 불평등하다고 봤고, 한미관계가 불평등하다고 본 한국인 사 이에서는 통일 이후 한미동맹이 필요하 지 않다고 보는 시각과 한미 FTA에서 미국이 더 이득을 봤다고 여기는 경향이 뚜렷했다. 또한 앞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 한국인 사이에서 협 력해야 할 국가로 미국보다 중국을 선택 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많은 한국인은 미국과 중국의 향후 정치·경제부문 영 향력 평가에서, 앞으로 중국이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지금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와 관련, 한국 인은 향후 정치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국가로 45%가 미국을, 39%가 중 국을 꼽았고, 향후 경제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국가로는 67%가 중국 을, 22%가 미국을 선택했다. 주목할 점 은 향후 정치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국가로 중국을 선택한 한국인 중 43%가 한미일 안보협력 대신 한중 안보 협력을 해야 한다고 답한 점이다. 따라

서 한미동맹을 지속 가능한 관계로 유지 하고, 더욱 강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 민의 지지 기반의 확충이 무엇보다도 중 요하고, 이를 위한 실천적 노력으로서 보훈외교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민적 공감을 바탕으로 한 보훈외교의 내적 토대를 더욱 확고히 다지고, 대외적 역할을 확장해야 할 것 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보훈 정신은 대내 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공화정 의 보편적 가치를 선양한 시민적 덕성과 리더십을 조명하여야 하며 대외적으로 는 같은 보편적 가치를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미국과 같은 국가들과 국제기 구와 국제시민들과의 수평적 연대로 확 장되어야 한다. 특히 미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을 지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으므로 6·25 참전 국가들과 연 관된 각종 행사 등은 해당 국가의 대중 들에게도 호소할 수 있는 극적인 성격을 지닐 것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현재 한국전 참전용 사들은 미국 정치권 내외에서 친한파 내 지는 지한파로 통하며, 한국에 대한 각 종 정책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서 근 무한 경험이 있는 미군은 350만 명에 이 르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러한 경험이 있는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주한미군 전 우회'가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이는 보훈외교의 또 다른 차원의 확장 으로 볼 수 있다. 즉 한미동맹 강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내적인 국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도 경제력, 군사력과 같은 하드 파워(hard power)의 증대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국가 정체성 확립, 민족의식, 국가존립의 가치 등과 같은 보훈정신에 기초한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증대 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분단70년 원인과 과제 - 한미동맹의 새 역할

“한미동맹 강화와 내적 국력 확장, 보훈외교의 역할”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기 위한 이 시대의 과제는 무엇일까. 갖가지 갈등을 풀어내고 통합과 화합으로서의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모색하는 작업이 활발한 요즘이다. 이 와 관련 지난달 17~18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광복70년 분단70년 특별학술회의가 열려 ‘한 반도 분단70년의 원인과 과제’를 모색하는 학자들의 작업이 진행됐다. 국가보훈처와 한국정 치학회,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이날의 발표 일부를 요약한다.

유호근(청주대 정외과 교수)

(7)

2015년 8월 15일, 우리는 광복 70주년 이자 분단 70년을 맞는다. 미국과 소련 의 편의에 의해 그어진 분단의 선 38도 선은 북한의 전면 남침에 의한 6·25전쟁 을 겪으면서 민족 분단 고착의 선 휴전 선으로 변했다. 분단을 고착시킨 6·25전 쟁이 발발한 지 65년이 지났다. 6·25전쟁 은 한반도가 냉전체제의 최전선에 있음 을 보여주었고, 우리 한민족에게는 분단 극복이 남북한 차원에서뿐 아니라 국제 적 차원의 과제임을 각인시켜주었다.

전한반도의 공산화를 목표로 한 북한 의 무력통일전략은 실패로 끝났다. 유엔 이 개입하고 미국을 위시한 자유민주진 영의 도움으로 한국은 국가를 보전할 수 있었다. 또한 갓 탄생한 대한민국을 지 키기 위해 싸운 수많은 호국 영령들과 부상자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 전쟁 은 평화협정으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남 한과 북한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서로 다른 발전전략을 채택했다. 정전협정 체 결 이후 60여 년이 지난 현재, 남한은 G20의 일원이자 당당한 중견 국가로 성 장하였으며, 북한은 최악의 인권국가이 자 실패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여전히 정전협정이 규율하는 불안정한 상태이다.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와 냉전체제의 종식이 한반 도에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반도에 냉전의 유산이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 있다. 더욱이 세계적 차원의 냉전체제가 종식되었을 때 기대하였던 협력과 조화 의 평화로운 국제질서도 등장하지 않았 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환경은 새로운 갈등과 경쟁의 구 도가 등장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해 있는 안보 실상 을 몇 가지 차원에서 제시해본다.

첫째,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와 분단 의 현실에 따른 주변 각국 이해관계의 갈등, 충돌, 조정의 영향력이 더 부상하 고 있다. 오늘의 한국은 열강의 세력 각 축전에 무기력하게 반응했던 조선(대한 제국)은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 4국 의 힘의 크기는 변하고 있으나, 그들의 힘과 영향력은 여전히 한국에 앞선다.

최근의 동북아 정세를 개괄하면, 미국 의 경제는 회복 국면에 있고 오바마 대 통령이 쿠바와의 관계 개선, 이란 핵 문 제 해결 진전 등으로 외교적 업적을 쌓 고 있으며, 셰일오일 개발 등 국제에너 지 시장 재편전략으로 국제 영향력을 강 화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정부는 AIIB 설립,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추 진 등 아시아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

하는 공세전략을 지속하고 있으며, 러시 아의 푸틴 정부는 크림반도 일방적 병합 이후 미국 등 서방과 갈등관계 속에서도 강한 러시아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일 본의 아베 정부는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면서 ‘보통국가’화 가속화로 중국 을 견제하고, 한국과의 갈등 상황은 지 속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적극적 주변 외교를 추진 하면서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에 대응 한 봉쇄 우회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은 일본, 호주 등과 안보협력을 강화 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도 전통적 양자 안 보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사드 (THAAD)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둘러 싼 중국의 내정 간섭적인 대 한국 압박 공세는 미국에 대한 견제 전략이다. 향후 미·중의 전략적 협력 갈등 관계가 어떻 게 전개되는가에 따라서 한국, 일본 등의 안보전략 전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둘째, 북한의 공세적 대남전략이 지속 되고 있다. 김정은의 권력 불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 있으나 북한 의 핵·미사일 전력에 기반을 둔 대남 강 경공세의 본질은 지속되고 있다. 김정은 의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

은 핵무기 전력 증강에 토대한 안보 강 화와 경제 건설 추진 전략이다. 핵무기 와 미사일은 김정은의 통치기반이자 정 권안보를 지키는 동시에 군사안보와 대 남 및 대미전략의 핵심 수단이다. 특히 대남전략에서 한국을 핵 공포의 인질로 하면서 자기식의 대화와 협력을 강요하 기 위한 수단이다. 북한은 한국에서 보 수 정부 등장 이후 대북정책의 전환을 압박하기 위해 공세전략을 구사했으며,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에도 이러한 전략 은 바뀌지 않고 있다. 더욱이 대남 군사 적 긴장조성의 수위와 강도가 높아졌다.

또 위협공세의 시간적 주기도 짧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전 략은 체제 방어적 측면도 있다.

셋째, 한국 사회의 통합력은 남북관계 를 발전시키기에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관용과 타협의 정치문화가 결여되어 있 다. 책임을 동반하지 않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은 이념과 지역으로 우리 사회 를 분절시켰다. 또한 설득과 통합의 정 치리더십이 결여되어 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를 구축하 는 작업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한미동맹은 6·25 전쟁 이후 한국의 국 가발전의 튼튼한 배경이었다. 한미동맹 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는 장치 로 출발하였고 여전히 그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보는 인식이나 전반적인 북한과의 관계 변화 는 당연히 한미동맹 자체에 영향을 미친 다. 한국의 국력 신장은 동맹관계의 규 범을 새롭게 설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 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전쟁에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자유는 무료로 얻 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라는 명분으로 참여해 많은 희생자를 본 미국의 입장에서는 동맹규범의 변화 요 구가 동맹관계를 새롭게 규정해야 하는 부담으로 다가설 수 있다.

한미 양국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과 정에서 각각의 국가 위상과 전략, 국가 이익, 정책적 관심 사안 등에 따라 북한 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 있고, 또한 정책 의 우선순위와 추진 방안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 의 평화와 안정, 동북아지역의 안정과 경제적 상호의존, 자유민주주의 가치 추 구 등에서 공동의 이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이러한 이익을 저해하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점에서도 이해가 일치 하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이익의 기 반 위에서 한국과 미국은 북한 문제에 대한 보다 사려 깊은 조율을 추진해 나 가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 제,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신장시키는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남북관계의 안 정적 발전을 위해서 안보적 불안감의 해 소와 평화, 그리고 남북 간 교류협력이 라는 지속적인 과제와 통일 추진과정에 서의 지원 세력이자 지속적인 국가발전 을 위한 동맹국으로서의 미국과의 관계 조정 과제는 양자 간의 선택문제가 아니 라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나가는가의 문 제다.

2015년 7월 1일 수요일 (월간) 제842호 7

이 시대의 호국정신

한·미, 통일추진에 협력하고 ‘지속발전 동맹’ 노력을

보훈복지는 선진국진입의 초석이 다. 선진국 대부분이 보훈 관련 정부 기관은 보훈부로 되어있다. 규모나 예산이 대부분 다 부처 중에서도 상 위권에 속한다. 보훈 선진국이 되려 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보훈부로의 승 격이 이뤄져야 하며 기관장이 국무위 원으로 당당하게 국무회의에 참여해 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명예로운 보훈 실천의 첫 단추인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나라사랑 교육을 통한

애국심 함양이 가능해진다. 광복-분 단극복-보훈이 왜 통일로 연결되는 지를 교육하고 이를 통해 미래 세대 의 의식이 바뀌고 통일을 준비하고 마침내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이와 함께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교 육 예산 증액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

2015년 정부예산 중 나라사랑정신 관련 예산은 너무나 미미하다. 보건·

복지·고용 예산이 116조원이고, 군사

적 대비 예산이 39조원인데 비해 국 가보훈처의 나라사랑교육 예산은 26 억원에 불과하다. 2014년 나라사랑교 육 총괄부처로 지정된 만큼 그 위상 에 걸맞은 지위와 예산의 뒷받침이 시급한 것이다.

최소한 호국정신 함양 관련 예산은 국방예산의 1/10, 갈등비용의 1/100 수준으로 편성될 필요가 있다. 우리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해결하는 일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보훈부 승격, 예산 확충 시급하다

 

  





 



   

   



 

 



 



 

 

  

     





 

분단70년 원인과 과제 - 안보실상과 해법

박영호(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안성호(충북대 정외과 교수)

우리나라의 안보실상을 국민이 공감하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의지를 함께 모으는 나라사랑교육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사진은 철의삼각지전투 추모제 모습)

(8)

6·25전쟁과 미국의 신속한 참전 그 리고 한미동맹

6·25전쟁 때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국은 어떻게 됐을까? 전쟁은 소련과 북한이 계획했던 1개월 작전으로 끝났 을 공산이 다분했다. 북한의 남침공격계 획은 2차대전 시 독일군과 싸웠던 대령 급의 유능한 전략가들로 구성된 소련군 사고문단에 의해 작성됐고, 그들은 1개 월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소련이 전 쟁을 1개월 만에 끝내려고 한 데에는 이 유가 있었다. 그것은 미 본토의 증원군 이 오기 전에 서울을 점령한 다음, 신속 히 남해안까지 진출하여 전쟁을 끝낸다 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미국과의 전쟁을 피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소련의 군사전문가들은 전쟁이 일어 나면, 미 본토에서 증원군이 파견되는데 최소한 1개월 반 정도가 걸릴 것으로 판 단했다. 그래서 미국참전 이전에 전쟁을 끝냄으로써 한국을 도울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없애려는 속셈이었다. 이를 위해 미 증원군이 들어올 남해안의 세 항구 (부산항·여수항·목포항)를 원천봉쇄할 계획이었다. 이처럼 소련과 북한은 남침 계획 수립단계에서부터 미국이 참전하 기 전에 전쟁을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혹 미국이 참전하더라도 한반도에 발을 붙일 수 있는 발판을 없앤다는 계 획이었다.

미국 참전의 일등공신들

소련은 이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먼저 한국에 단 1대도 없던 전차 242대와 전투기 226대를 북한에 지원했다. 나아 가 사단단위 훈련까지 마쳤다. 그것도 모자라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단련된 중공군 내 한인 병사 5만 명을 북한군에 그대로 편입시켰다. 이때 편입된 중공군 사단이 북한군 제5사단·6사단·12사단·4 사단 18연대이다. 여기에 남로당 20만 봉 기도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이것 은 실패했다. 나중에 김일성은 남로당 봉기를 주장했던 부수상 박헌영을 사형 에 처했다. 이렇듯 소련과 북한은 ‘완벽 한 승리’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은 소련과 북한의 의도를 사전에 간파라도 한 듯 신속히 참전했 다. 북한이 남침한 지 불과 이틀 만에 해·

공군을 지원했고, 그로부터 3일 만에 미 지상군 파견을 결정했다. 그리고 전쟁발 발 6일 만에 미 지상군을 한국에 파견했 다. 이로써 6·25전쟁은 소련과 중국을 등 에 업은 북한 공산군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한미연합군의 전쟁으로 확대됐다.

그럼 미국은 왜 그렇게 빨리 참전했을 까? 미국이 참전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 들, 즉 주한미국대사 무초, 극동군사령 관 맥아더 원수, 국무장관 애치슨, 그리 고 트루먼 대통령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무초 대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잘 알려 지지 않았다. 무초는 전쟁 당시 50대의 노총각이자 초대 주한미국대사로서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한국에서의 전 쟁 상황을 미 국무부에 신속히 보고했 고, 그의 보고서는 애치슨 국무장관을 통해 트루먼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에 게 보내졌다. 전쟁 초기 무초는 평균 3시 간 간격으로 한국의 전황을 알렸다. 그 의 한국 전황을 알리는 보고서는 워싱턴 에서 한국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 한 자료로 활용됐다.

특히 무초 대사는 이승만 대통령과 만 나 한국군에 필요한 무기와 탄약을 극동 군사령부와 국무부에 보내 지원받게 했 다. 대한민국 공군이 전쟁발발 약 1주일 만에 F-51전투기 10대를 제공받을 수 있 었던 것도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신속히 극동군사령부에 요청했기 때문 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국군이 1950년 7 월, 한 달간의 지연작전 때 사용했던 탄 약과 무기도 모두 남침 직후 이승만 대 통령의 요청을 받고 무초 대사가 극동군 사령부와 국무부에 건의해서 이뤄졌다.

만약 무초가 이들 무기와 탄약을 신속히 요청하지 않았다면, 미군이 참전했다 하 더라도 무기와 탄약이 부족했던 국군과 는 협조 된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초 대사의 전쟁 초기 역할은 대한민국을 살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당시 무초의 요청으로 지 원받은 주요 무기로는 105밀리와 155밀 리 그리고 대전차포를 비롯하여 105밀 리 포탄 10만5천 발, 81밀리 박격포탄 26 만5천 발, 60밀리 박격포탄 8만9천 발, 소총탄 248만 발이었다. 여기에 F-51 전

투기 10대도 있었다.

맥아더 원수는 서울함락 직후 한강방 어선을 시찰하고 나서 워싱턴에 보낸 보 고서에서, “현재의 한국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미 지상군의 투 입뿐”이라며 강력히 건의했다. 맥아더 는 비행이 어려운 악천후와 북한 공군의 위협 속에 수원비행장에 도착하여 전황 을 브리핑받고, 서울의 북한군 동향과 국군의 한강방어 상태를 시찰한 후, 워 싱턴에 보낼 보고서를 직접 작성했다.

그것은 바로 “코브라처럼 공격해 오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미군의 지원이 긴급하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해공군 의 지원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 지상 군이 파견돼야 한다고 했다.

맥아더는 또 군사적 천재성을 발휘하 여 당시의 전세를 만회할 방책으로 인천 상륙작전을 구상했다. 맥아더다운 발상 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인천상륙 작전을 통해 북한군의 병참선을 서울에 서 끊고, 북한군으로 하여금 낙동강과 서울 등 두 개의 전선에서 싸우도록 강 요함으로써 그들의 전력을 분산시켰고, 이를 통해 총반격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은 미 국과 유엔의 전쟁목표를 바꾸게 했다.

남침 직후 미국과 유엔의 전쟁목표는 전 쟁 이전 상태의 유지(38선 회복)였으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한반도통일 로 확대했다. 이는 곧 국군과 유엔군의 38선 돌파와 북진작전으로 연결됐다. 그 런 점에서 맥아더는 6·25전쟁의 일등공 신이라 할만하다.

애치슨 국무장관도 미국이 참전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애치슨은 무초 대사의 전문을 보고받자, 미주리 고향에 서 주말 휴가를 보내고 있던 트루먼 대통 령에게 신속히 보고하는가 하

면, 한국 문제를 유엔안보리에 서 해결하도록 재빠르게 조치 제842호 2015년 7월 1일 수요일 (월간)

8

특별기획 - 참전국의 희생과 공헌

미국의 신속한 참전, 북·소련의 ‘1개월 작전’ 무산시켜

 

 

  





 



   

   



 

 



 



 

 

  

     





 

6·25전쟁 65년 … 유엔 참전국의 희생과 공헌 ①미국

최대 참전국

미국

참전현황 :

육·해·공군 1,789,000명

피해현황 :

36,940명 전사 등 137,250명

유엔군의 핵심축을 담당, 최대 규모 파병(유엔참전군의 92%)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 그 후 65년. 전쟁의 잔해는 치워졌고 상처 도 상당 부분 아물었지만, 분단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정전, 어정쩡한 전쟁의 중단이지만 전쟁의 마무리는 유엔군의 극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이뤄졌다. 이 름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참전하고 피 를 흘리고 큰 희생을 감수한 이들 나라 의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들의 희 생과 공헌을 잊을 수 없다. <나라사랑>

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참전국 들의 역할과 희생, 그 의미를 진단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6·25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전투현장 시찰에 나서 현지 지휘관의 보고를 듣는 장면.

⇩

(9)

미군 수뇌부 가족 참전·희생…전쟁 후엔 혈맹의 ‘맹우’로

함으로써 유엔에서 한국에 대 한 지원결의가 신속히 이루어 지도록 했다. 이후에도 애치슨 은 인천상륙작전을 전후하여 미국의 한 반도에서의 전쟁목표가 한반도통일이 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런 점에서 애치 슨의 역할도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의 참전 결정 과 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그 의 결심이 없었거나 조금이라도 늦었더 라면 미군의 참전은 불가능했을지도 모 른다. 설령 참전하려고 했더라도, 그 시 기를 놓침으로써 증원을 할 수 없는 상 황에 처하게 됐을 것이다. 이는 소련과 북한이 그들의 남침계획에서 노렸던 것 이었다. 트루먼은 소련과 북한의 그런 의도를 깨트렸다. 트루먼은 지상군 파병 을 건의한 맥아더의 보고서를 신뢰함으 로써 이를 즉각 승인했다. 그렇게 해서 맥아더 휘하의 주일미군 4개 사단이 한 국전선으로 파견됐다. 트루먼의 이러한 신속한 파병 결정으로 위기에 처했던 대 한민국을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릴

수 있게 됐다. 그런 점에서 6·25전쟁에서 트루먼의 역할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 치지 않을 것이다. 맥아더도 그런 트루 먼의 역할을 인정했다. 맥아더는 미군 파병을 결심하는 데 있어 최종결정권자 인 대통령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고 했 다. 맥아더는 한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 훈장을 전달받은 자리에서 미국 참전의 최대공로자로 트루먼 대통령을 꼽았다.

미군 참전과 막대한 희생

6·25전쟁 때 미국은 가장 먼저 육해공 군과 해병대를 모두 파병한 유일한 국가 다. 6·25전쟁은 미군의 지원규모와 역할 을 고려할 때, 미국의 전쟁이나 다름없 었다. 그만큼 미국의 역할이 컸고 지대 했음을 뜻한다. 미국은 항공모함 16척과 항공기 1,536대를 비롯해 1개 야전군, 3 개 군단, 9개 전투사단을 파견했다. 유엔 회원국 16개국이 전투부대를 파병했다 고는 하나, 미군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 하면 약과다. 유엔의 해·공군 전력 중 미 군이 약 90% 이상을 차지했고, 지상군

전력도 50%를 상회했다.

특히 유엔작전을 총괄하는 유엔군사 령부의 지휘부와 참모진은 모두 미군 장 성과 고급장교들로 채워졌다. 작전도 워 싱턴의 합참으로부터 전략지시를 받아 미군 수뇌부에서 이뤄졌다. 거기다가 유 엔군에 대한 군수품 지원도 전적으로 미 국이 담당했다. 이른바 한국전선에 소요 되는 무기와 장비의 대부분을 미국이 지 원한 군수물자로 채워졌다. 미국은 한국 정부와 국민들 생필품에 대한 지원까지 맡았다. 미국의 지원 없이는 전쟁을 수 행할 수도 없었고, 한국은 살아갈 수 없 는 처지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미 국에 대해, “대한민국이 의지하고 도움 을 요청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바로 미국”이라고 했다. 그만큼 미국의 지원 과 역할에 거는 기대가 컸고, 그런 미국 은 이승만과 대한민국을 실망시키지 않 았다.

미국은 약 180만 명을 한국에 파병했 다. 그 과정에서 미군 수뇌부의 자제들 도 참전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클라 크 유엔군사령관, 워커와 밴플리트 미8 군사령관의 아들들이 장교로 참전했다.

여기에 142명에 달하는 미군의 현역과 예비역 장성의 자제들이 참전해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 그중에는 미8 군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밴플리트 2 세 중위)은 전폭기 조종사로 야간임무 중 실종됐고, 유엔군사령관 클라크의 아 들(빌 클라크 대위)은 단장의 능선에서 중대장으로 참전해 중상을 입었고, 미 해병항공사단장 해리스 장군의 아들(해 리스 소령)은 장진호 전투에서 대대장으 로 전사했다. 남북전쟁의 영웅 로버트 리 장군의 손자는 미 군사고문관으로 참 전해 전사했다. 미군 지휘관들의 손실도 컸다. 워커 미8군사령관과 무어 미9군단 장이 전사했고, 윌리엄 딘 미24사단장은

대전사수를 온몸으로 막다가 포로가 됐 고, 마틴 34연대장은 천안에서 북한군 전차에 맞서 싸우다 적 전차포에 의해 몸이 두 동강이 났다. 그들은 그렇게 투 혼을 불사르며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다.

그 과정에서 미군의 희생은 막대했다.

3년 1개월의 전쟁 동안 약 3만7000명이 전사했고, 1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 국의 남북전쟁과 2차 대전에 이어 3번째 로 많은 희생이다. 특히 미국사회의 최 고엘리트인 하버드 학생들도 자원입대 해 한국전선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버드 학생은 미국 1개 주에서 한 명이 나올까 말까한 인재들이라고 한다. 지휘관들은 2차 대전의 맹장(猛將)들이었다.

미군들은 전혀 알지도 못한 나라, 한 번도 와보지도 않은 생면부지(生面不 知)의 나라에 와서 싸우다 장렬히 산화 했다. 그들은 40도를 웃도는 폭염의 낙 동강전선에서, 피를 얼어붙게 할 정도로 추운 영하 30도의 장진호전투에서, 신체 조건에 맞지 않은 잡목이 우거진 야트막 한 야산의 덤불숲 속에서, 인분(人糞)이 널려 있는 논과 밭에서, 칼날같이 험준 한 산악지형에서, 모기와 파리 떼가 우 글거리는 산야와 하천가에서, 전우를 살 리기 위해 한쪽 팔다리를 잃은 채 혼자 남아 몰려오는 중공군을 상대하며 외롭 게 싸우다 그들은 산화했다. 그렇게 해 서 미군의 6·25전쟁 영웅들이 탄생했다.

여기에는 군사령관부터 말단 병사에 이 르기까지 모두 한결 같은 마음으로 싸웠 다. 그들은 계급과 지위고하를 막론하 고, 대한민국과 그들의 전우 그리고 자 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미 국적 이념’을 위해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목숨 바쳐 싸웠다.

남정옥(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 구원, 문학박사)

지난 5월 20일 파주 미국군 참전기념비를 찾은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

6·25전쟁은 이승만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뜻대로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휴전협상을 통한 정전협정으로 마무 리됐다. 그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한국의 전후 보장책으로,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이른 바 한미동맹이었다. 하지만 한미동맹 의 진행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은 한국 과의 동맹을 바라지 않았다. 아시아 국 가와는 동맹을 맺은 적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 의회의 반대도 들먹였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은 다급했다. 휴전 협상 막바지에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과의 동맹을 강력히 요구했고,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지 동맹을 맺지 않으려 고 핑계를 둘러댔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후 한국의 살길 은 미국과의 동맹뿐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휴전을 강 행하고 있는 미국에 이승만은 전후 안 전보장책으로 한미동맹과 경제건설 그리고 국군의 전력증강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의 명문대학(조지워싱턴·

하버드·프린스턴)을 나와 미국역사에 정통하며 국제정치학자인 이승만은 누구보다 미국의 정치적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이 살길은 미 국을 꽉 붙잡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 면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았다. 이승만 은 “공산주의라는 사막에서 미국은 민 주주의의 오아시스 역할을 해야 한다”

며 미국을 압박했다.

휴전으로 치닫는 6·25전쟁의 막바지 에서 대한민국에 남겨진 유산은 전 국 토의 폐허와 공동묘지였다. 그것도 여 전히 남북으로 분단된 채였다. 그런 상 태에서는 희망이 없었다. 이승만은 이 를 묵인할 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한국은 살아갈 수 없었다. 대한민국이 살길은 단 하나였다. 미국과의 동맹으 로 안보를 보장받고, 미국의 경제적 도

움으로 전후복구를 통해 경제발전을 해야 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미국은 싫 은 기색이었다. 이승만은 답답했다.

급기야 그는 반공포로석방을 단행하 며 미국을 압박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승부수였다. 미국은 그 보복으 로 이승만 제거계획을 수립했다. 하지 만 한국에 그를 대신할 만한 지도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철회했다. 그런 아픔 과 시련을 겪고 얻어낸 것이 바로 1953 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다. 이승만은 미국에 하찮은 존재가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미국을 상대로 한미동맹을 얻어냈다.

그렇게 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혈맹(血盟)에서 한미동맹으로

(10)

제842호 2015년 7월 1일 수요일 (월간)

10

현충

송헌주 선생은 대한제국 시기 관립 영어학교에서 수학한 후 1903년 경 하 와이로 이주했다.

1906년 경 미국 본토로 건너가 프린 스턴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로녹대학 재학 중이던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한국특사의 통역을 맡았다.

1919년 3·1운동이 미주에 알려진 직후 선생은 하와 이 한인들로부터 독립금 3만 5,000달러를 모금해 대 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 등에 사용하도록 지원 했다. 1937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 됐으며, 대한인국민회 총회관의 건축위원장직을 맡

아 LA에서 낙성식을 치렀다. 1939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에 선임돼 미주 한인사회를 대한인국 민회 중심으로 통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선생은 1941년 재미 한인단체의 역량을 집중하고 항일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한 재미한족연합위 원회의 국방과장을 맡아 맹호군으로 불리던 캘리포 니아 주 민병대 소속 한인국방경위대의 정위로 임명 됐다. 1945년에는 광복 직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 된 유엔 연합국 회의에 참가할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 표단으로 선임됐다.

선생은 1965년 85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으며 정 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953년 7월 휴전조인을 앞둔 상황 에서 중공군은 이른바 ‘7·13공세’라 고 불리는 대규모 공세를 펼쳐 왔다.

강원도 김화군 원동면에 위치한 교암 산의 금성돌출부를 차지하기 위한 중 공군 최후 공세도 그중 하나였다.

7월 13일 21시 적은 교암산 전초에 공격을 가했다.

자정 무렵 전초를 우회한 적은 교암산의 주진지에 대 한 공격을 개시했다.

김 대위를 비롯한 중대원은 수류탄전에 이어 육박 전을 감행했으나, 중앙이 돌파되는 최대의 위기에 봉 착했다. 김 대위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포병 의 진내사격을 요청하는 한편 중대원에게 동굴로 대 피할 것을 명령했다. 즉각적인 아군 전 포병의 진내 사격이 제6중대 진지인 ‘가’고지를 강습했고, 포격에

의해 유·무선이 두절된 가운데 제6중대가 포진한 능 선에서는 전사상 유례가 드문 백병전이 전개됐다.

이때 김 대위는 모든 중대원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한 치도 물러나지 말고 적을 무찌르도록 격려하며 진 두지휘했다. 몰려오는 적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며 총검을 휘두르며 진지를 사수하던 김 대위는 적진으 로부터 날아든 총탄에 전사했다.

중대장을 잃고도 7~8시간 동안 고군분투하던 중 대원들은 결국 적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인해 대부분 전사하고, 단 6명만이 생환했다.

이 전투는 어려운 상황에서 진지를 사수함으로써 연대 주력과 인접한 지원부대가 성공적으로 철수작 전을 전개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으며, 화 천 방향으로 철수한 병력이 전열을 재정비, 반격을 감행함으로써 실지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송헌주

선생(1880. 10. 22 ~ 1965. 7. 31)

헤이그 평화회의 등 국제회의서 독립 활동

교암산 전투서 백병전으로 진지 사수

이달의 6·25전쟁영웅 김교수

대위(1923. 6. 19 ~ 1953. 7. 14)

백범 김구선생 66주기 추모식

백범 김구선생 66 주기 추모식이 지난 달 26일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 서 열렸다.<사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회장 김신) 주관으 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각계 인사, 독립유공단체장, 광복회원,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의병활동과 계몽운동 등을 전 개했으며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해로 망명 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선임된 이 후 내무총장·국무령·주석 등을 역임했다.

무력 투쟁을 통한 항일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인 식하고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윤봉길 의사 의 거사를 지휘했으며, 한국광복군을 창설해 대일 항전을 준비하는 등 27년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든든한 주춧돌로서 항일독립운동에 온 평생을 헌 신했다.

선생은 8·15 광복을 맞아 환국해 통일된 완전 자 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진력하다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한용운 선생 71주기 추모행사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 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으로서 항일독립운동 에 앞장섰던 한용운 선생의 서거 제71주기를 기리 는 ‘만해 추모 다례제’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 AW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선학원(이사장 법진)에서 주관한 이날 행사는 문 태선 서울북부보훈지청장, 각계인사, 유족, 독립 운동 관련 단체장,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한편 같은 날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서도 성북문 화원(원장 조태권) 주관으로 다례재가 열렸으며, 이날 불교계 주요인사와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 한 가운데 추모식이 진행됐다.

판매정가 798,000원

*많은 국가유공자분들이 사용하며 효과를 보고있습니다!

*수도권은(서울, 경기일부) 방문해 드립니다 무릎이 소리가 나면서 아프다

무릎을 굽혔다 펴는것이 잘 안된다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다 앉았다 일어나기가 어렵다 허리 및 관절부위가 아프다

저출력 레이저402를 관절연골세포에 직접 조사하여 연골세포의 활성화를 유도하여 조직의 재생과 회복 을 자극하여 관절염통증을 해소하므로 치료한다 장기간 통원치료의 불편을 해소하고 가정에서 편하게 사용 1일 30~60분 사용(자동리모콘으로 어르신 쉽게 사용)

* 식약처허가(제허04-1227)

* 특허청실용신안특허(0373065)

* 미국FDA치료용레이저조사기 공식인증(D207636)

* 유럽인증CE획득

라파 레이저402골드구입자 특별선물 1. 불가마발열 허리벨트(음이온) 증정 2. 불가마발열 무릎보호대증정 3. 홍삼녹용 1박스(70ml×30포) 증정

8주간 임상실험결과 약 81% 퇴행성관절염 통증완화 치료가 입증되어 특허 제조되었음

참조

관련 문서

본 연구는 Fitness-Sharing 운동 어플리케이션을 직접 이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매체인 스마트폰을 활용한 Fitness-Sharing 어플리 케이션

이는 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세력이 무력화되어 서일 수도 있고, 東學 이래 민중 중심의 다양한 종교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만일 그러한 경험이 있다면 어떤 일이 었는지 그리고 그때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통합체육수업에 참여 유무에 따른 통합체육수업에 대한 인식에 대하여 살펴보면, 통합체육수업의 환경에서 경험이 있는 경우보다 경험이 없는 경우에

통합학급 담임 경험에 따라서는 통합학급 담임 경험이 있는 집단은 장애이해 교육을 받은 후 학생들에게 장애이해교육을 실시해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55.. 75점으로

최근 행정패러다임이 공급자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되고 동시다 발적인 FTA 가 체결되는 21 세기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에 관세청은 이러한

20 14년 4월 1 일부터 9월 30까지 광양시에 소재한 하타요가 수련 경험이 없 는 중년여성에게 하타요가 자격증을 갖고 있는 본 연구자가 직접 하타요가 시행을

특히 SPEC태클의 경우, 전형과정 중 학교, 학력 등을 일체 묻지 않기 때문에, 스펙보단 해당 직무에 대한 경험이 많은 지원자들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