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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화학 전망, 제23권 제3호, 2020장재, 인류는 동포요 만물은 친구라
❙이 상 은 교수 (상지대학교)
장재(張載, 1020-1077)도 역시 북송오자(北宋五子)로 불리는 철학자의 중의 한 사람이다. 그 가운데 나이는 소 옹(邵雍, 1011-1077)이 제일 많았고, 그 다음이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장재 그리고는 정호(程顥), 정이(程頤) 형제 순이다. 나이는 9살 적은데 소옹과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장재는 하남성(河南省) 출생했으나, 섬서성(陝 西省) 횡거진(橫渠鎭)에 정착하여 살았기 때문에 횡거선생이라 불렸다. 정호, 정이 형제와는 외사촌간이기도 하다.
그의 자(字)는 자후(子厚)이며, 그의 호(號)를 붙여 장횡거라고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를 존칭하여 장자(張子)라 고도 칭하는데, 도가사상가 장자(莊子)와는 다른 사람인 것이다. 젊었을 때는 군사문제와 병법에 깊은 관심을 보 였으며 장군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3대의 왕을 모셨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을 만나면서 인 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범중엄은 장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의 재주를 알아차리고 그의 호기(豪氣)를 경계하며 학문을 권했다.
“유가사상에는 훌륭한 가르침이 있어 그것을 연구하고 그것으로 즐거워할 수 있거늘, 그대는 어찌 병법에 그리 몰두하는가?” 하면서 유가경전 가운데 철학적 의미가 깊은 《중용(中庸)》 한 권을 주면서 잘 읽어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별 관심도 없이 대충 읽었으나, 차츰 그 글의 오묘한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 안에 지극한 진리가 들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를 계기로 하여 그는 병법을 배우고 군인이 되려던 생각을 접고 도(道)를 탐구 하고자 학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중간에 불교와 도가사상에도 심취해 공부했으나, 40세 이후에는 결국 유가사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장재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7세에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지방관으로서 여러 가지 공적을 쌓았다. 운암현(雲巖 縣)의 현장(縣長) 시절에 경노효친(敬老孝親)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자주 효도잔치를 열었던 것도 그 중의 하나다.
그는 고매한 이론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이를 실생활에 몸소 실 천하려고 하였던 인물이다. 당시 북송의 신종(神宗)은 그를 크게 등용하려고 하였으나 당시의 집정(執政) 즉, 내 각 최고책임자였던 신법(新法)을 주장하는 왕안석(王安石)과 의견이 맞지 않아 등용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과 교육에 힘을 쏟았다.
그는 강직하면서도 유머와 해학을 즐겼는데, 다만 우스갯소리 즉, 희언(戲言)이 지나치면 사람이 실없고 우습 게 된다고 경계하였다. 그는 학문을 연구하면서 기록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였다. 아무 때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 면 즉시 적었다고 한다.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 가운데 하나인 《정몽(正蒙)》도 그가 어느 날 잠을 자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 기록하기 시작하여 완성한 책이라고 한다.
메모를 잘하는 것은 훌륭한 학자의 필수요건일 뿐만 아니라, 성공하는 사람의 기본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 무리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도 이를 즉시 메모해두지 않으면, 바로 잊어버리거나 영영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들도 좋은 시를 즉석에서 완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순간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 즉, 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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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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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 News, Volume 23, No. 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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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를 바로 시작노트에 메모해 놓고, 자꾸 들여다보고 생각의 물을 주어 어느 날 싹을 틔워 명시로 꽃피워 내는 것이다.장재도 주돈이나 소옹과 관점이 다르기는 했지만 역시 《역전(易傳)》에 근거를 두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 가고 있다. 그의 철학을 일반적으로 기일원론(氣一元論)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만물의 본질뿐만 아니라 현실의 모 든 존재와 현상까지 모두 기로 설명하고 있다. 이 기(氣)의 개념은 후기 신유가의 우주론과 형이상학에서 점점 더 중요하게 되었는데, 풍우란(馮友蘭) ‘기’라는 말을 영어로 번역하면 Gas 또는 Ether를 뜻한다고 보았다.
장재는 우주전체가 이러한 기로 꽉 차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이는 바로 기의 본모습인 ‘태허의 기(太虛之氣)’가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 태허의 기가 모이면 만물이 되고, 흩어지면 다시 태 허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태허의 기와 현실 사물의 기는 모습은 달라도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기라 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물이 생겨나고 없어지고 하는 것은 단지 기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이합집산 (離合集散)의 과정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 기는 본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어디서 생겨나거나, 없어지는 그런 존재 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나고 죽는 것 같은 것도 기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원래 존재하고 있던 기들이 어떤 작용으로 모여 형체를 이루면 그게 사물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잠 시 기를 빌어 일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잠시 왔다 가는 손님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 장재의 설명이 다. 그러니 바야흐로 기가 흩어져 사물의 형체가 없어졌다고 무(無)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일원론을 주장함에 장재가 근거했던 것은 앞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역전》의 이 문구이다. “역에는 태극이 있는데, 이것이 양의를 낳고”(易有太極 是生兩儀)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주자는 후에 태극을 ‘이’(理) 로, 양의 즉, 음양을 ‘기’(氣)로 보았지만, 장재는 태극을 ‘기’라고 보았다. 《정몽》에는 다음과 같은 논술이 있다.
태화는 도라고 하는데, 그 안에는 떴다 가라앉았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움직였다 가만히 있다하여 서로 감응 하는 성질이 있다. 그리고 인온 즉, 음양의 기운이 화합하여 서로 움직이게 하며, 서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 며, 늦추었다 줄었다 하는 힘의 시초가 나타난다…(太和所謂道 中涵浮沈乘降動靜相感之性, 是生絪縕相盪勝負屈伸 之始…, 《장자전서(張子全書)》)
여기서 태화(太和)는 온전한 상태의 ‘기’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인데, 다른 곳에서는 태허(太虛)라고도 하였다.
좀 더 분석적으로 얘기한다면 태허를 기의 본체에 중점을 두어 한 말이라면, 태화는 태허의 기가 발현되어 조화 롭게 나타나는 작용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재는 《정몽》에서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일 때 우리 눈에 뚜렷이 볼 수 있게 되어 개개 사물의 형체가 있게 되고, 기가 흩어질 때 뚜렷이 볼 수 없게 되어 형체가 없게 된다. 바야흐로 기가 모였을 때 그것을 어찌 손님처럼 일시적으로 그런 모양을 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기가 흩어졌을 때 어찌 갑자기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氣聚則離明得施而有形, 氣 不聚則離明不得施而無形, 方其聚也, 安得不謂之客 方其散也 安得據謂之無)
장재의 이러한 주장에는 도가나 불가의 ‘무(無)’ 내지는 ‘공(空)’사상을 배척하려는 의식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 는 우리가 “허니 공이니 하는 것이 바로 기임을 알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知虛空卽氣則無 無)고 하였다. 요컨대 허(虛)나 공(空)은 완전히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가 흩어진 상태라서 우리의 눈에 어떤 형체가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정몽》 가운데 매우 유명한 문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서명(西銘)〉이다. 장재의 서재 서쪽 벽에 새겨져 있 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반대쪽에 붙어있던 〈동명(東銘)〉 그리 유명하지 않다. 〈서명〉의 내용이 참 좋아 앞부분만이라도 좀 살펴보고자 한다.
하늘은 아버지이고, 땅은 어머니이다. 나는 여기 미미한 존재로서, 그 가운데 혼연히 살아있다. 그러므로 천지 에 가득 찬 기운을 내 몸으로 삼고, 천지를 주재하는 이치를 내 본성으로 한다. 모든 백성은 나의 형제이고, 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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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화학 전망, 제23권 제3호, 2020은 나와 함께하는 친구다…(乾稱父 坤稱母 予玆藐焉 乃混然中處 故天地之塞 吾其體 天地之帥 吾其性 民吾同胞 物 吾與也)
여기서 장재는 우주만물이 모두 하나의 같은 ‘기’로 되어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인간과 모든 사물은 천지라 는 거대한 생명체의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과 땅 즉, 우주를 부모를 모시듯 받들어야 하고, 모든 사람은 형제이고, 만물은 좋은 짝인 친구라는 것이다. 성리학자들은 모든 논의의 중 심에 인간을 놓는다. 하지만 장재의 〈서명〉에서 보이듯이 자연과 만물의 관계를 매우 유기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명〉에 나오는 또 다른 구절 즉, “살아있을 때는 자연을 따르고, 죽으면 나는 편히 쉰다.”(生吾順事 歿吾寧 也)는 말은 후세 성리학자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이는 불가나 도가의 삶에 대한 태도와 분명히 다른 유가의 자 세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장재의 입장에서는 성인(聖人)은 우주의 본성을 이해하기 때문에, “살아도 얻는 바가 없으며, 죽어도 잃는 바가 없다.”(生無所得 死無所喪)는 사실을 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평범하게 생활하며, 살아 서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혹은 우주의 성원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다하고, 죽음에 자신에게 이르렀을 때는 편안히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인성론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천지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누었는데, 나중에 주희에 의해서 본연지성과 기질지 성으로 나누어 설명된다. 또한 인간의 마음이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통솔한다는 심통성정설(心統性情說)을 주장 하여 성리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장재 철학의 핵심은 만물이 생겨나서 자라고 죽는 과정이 다 기(氣)의 변화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모든 변화의 원인이 기 자체에 있는 것으로 보았던 것인데, 이는 세상을 창조한 신이 세상 밖에 존재한다고 하는 서구 적 세계관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그의 관점에서는 우주는 본디 “영원한 생명으로 가득한 기의 율동”이라고 본다.
장재의 철학은 실은 그 뒤 명나라의 왕정상(王廷相), 청나라의 왕부지(王夫之)와 대진(戴震), 그리고 조선의 서경 덕(徐敬德), 일본의 오시오 헤이하치로(大鹽平八郞)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