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 선생님이 들려주는 ‘벽 (癖)’에 걸린 조선예술가들 1.
- 무용가 운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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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형성의 배경과 인물개요
‘춤이 끝나니 온 좌석이 텅 빈 것 같이 고요하여’
박제가 스무 살에 장인 이관상 영변도호부사가 멋진 연희를 배풀어 줌.
: 성대중 ‘청성잡기’ - 운심은 밀양기생이다. 서울로 뽑혀 왔는데 검 무가 온 세상에 이름이 있었다. - 당대최고의 검무 무기 , 운심
“검무를 추는 근세의 기생으로 밀양의 운심을 일컬으니 내가 본 기생은 그의 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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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배경
- 검무의 연원 : 고구려 검무 – 신라 황창무 – 조선시대 게승 - 무예의 일종 : 유본학과 심능숙의 검객 전기, 김체건,
탁문학의 무예가
운심의 검무 또는오늘날 ‘검무’와는 차이 -검무의 발전과정 : 17세기 중반, 18세기 유행,
19세기 대표적 춤으로 자리매김
네명의 검무 , 두명의 검무, 항장무, 검기무 -검무의 기록 : 1712년 3월18일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 (평안도)
1773년 유득공의 검무부(충청도 공주)
19세기 정현석의 교방가요, 그외 도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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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글 속의 검무
박제가<검무기 劍舞記>
二妓劍舞, 絨服氈笠, 霎拜逈對, 徐徐而起. 旣掠其鬢 ?整其襟, 翹襪蹴裳, 以擧其袖.
劍器在前, 若將不顧, 悠揚折旋, 惟視其手.
室之隅樂作, 鼓隆笛亮. 於是, 二舞薺進, 頡頏久之, 張袖而合, 亞肩而分, 酒翩然而 坐, 目注於儉, 欲取未取, 愛而復惜, 將近忽却, 將襯忽驚. 如將得之 ?將失之, 虛挐 其光, 乍攫其旁. 袖欲興之掃, 口浴興之掃, 腋臥背起, 欹前側後, 以至衣帶毛髮, 無 不飛揚頓挫, 而十指無力, 幾委復擧, 舞之方促, 手如謠綏, 翻然而起, 劍不知處, 仰 首擲之, 雙墜如霜, 不徐不疾, 奪之空中. 以鐔尺臂, 昻然而退, 颯然相攻, 猛如可刺.
劍至於身, 不能以寸, 當掣不掣, 若相讓者, 欲閃未閃, 如不肯者, 引而莫伸, 結而莫 解, 合而爲四, 分而爲二, 劍氣映壁, 若波濤魚之狀, 驀焉分開, 一東一西. 西者揷劍 千地, 垂手而立, 東者奔之, 劍爲之翅, 走而剚衣, 仰而刮頰.西者寂然, 立不失容, 若 郢人之質也, 奔者一躍, 賈勇千前, 耀武而還, 立者逐之, 以報其事, 掀如馬笑, 忽如 豕怒, 俯首直拊, 如冒雨逆風而前趁也. 鬪而不能鬪, 止而不可止, 二肩趁搏, 名白不 音踵隨而旋, 如斡樞機, 俄之, 東者已西,而西者已東, 一時俱回, 額與之撞, 容與千上, 飛騰千下, 劍爲之眩, 希見其面, 或自指千身, 以示其能, 或虛迎千空, 以盡其能, 輕 步而跳, 若不履地, 盈之縮地, 以達餘氣, 凡擊者, 擲者,進者, 退者, 易地而立者, 佛 者, 扯者, 疾者, 疾者, 徐者, 皆以樂之範而隨其數焉, 已而鏗然有聲, 投劍而排, 能事 畢矣. 四生如空, 寂然無言. 樂之將終, 細其餘音, 以搖曳之. 其始舞而拜, 左手捧心, 右手鉗笠, 遲遲而立,若將不勝者, 始條理也, 鬖髿其鬖, 顚倒其裾, 倏忽俯仰, 翻然擲 劍者, 綜條理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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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의 <검무기>
기 생 둘 이 검 무 를 춘 다. 융 복 ( 戎 服 ) 입 고 , 전 립 ( 氈 笠 ) 쓰 고 , 잠 깐 절 하 고 서
빙 돌 아 마 주 선 채 천 천 히 일 어 난 다. 귀 밑 머 리 쓸 어 올 리 고 옷 깃 을 여 민 다 . 버 선 발 가 만 히 들 어 치 마 를 툭 차 더 니 소 매 를 치 켜 든 다. 검 은 앞 에 놓 였 거 만 알 은 체 도 하 지 않 고 멋 지 게 회 전 하 며 손 끝 만 을 쳐 다 본 다. 방 모 퉁 이 에 서 풍 악 이 시 작 되 어 북 은 둥 둥, 저 는 시 원 스 럽 다 . 그 제 야 기 생 둘 은 나 란 히 앞 에 나 와 앞 서 거 니 뒤 서 거 니 한 참 을 논 다. 소 매 를 활 짝 펴 고 모 이 더 니 어 깨 를 스 치 고 서 떨 어 진 다. 그 러 더 니 살 포 시 앉 아 서 는 앞 에 놓 인 검 을 쳐 다 본 다 . 집 을 듯 집 지 않 고 아 끼 는 물 건 을 조 심 스 레 다 루 듯, 가 까 이 가 려 다 가 문 득 물 러 나 고, 손 을 대 려 다 가 주 춤 놀 란 다 . 물 건 을 줍 는 듯 , 물 건 을 버 리 는 듯 , 검 의 광 채 를 잡 으 려 고 얼 른 그 곁 에 서 낚 아 채 기 도 한 다. 소 매 로 는 휩 쓸 어 가 려 는 지, 입 으 로 는 물 려 는 지 , 겨 드 랑 이 를 깔 고 눕 다 가 등 으 로 일 어 나 고 , 앞 으 로 기 우 뚱 뒤 로 기 우 뚱 거 린 다. 그 러 니 옷 과 띠 , 머 리 털 까 지 휘 날 린 다 . 문 득 멈 칫 하 여 열 손 가 락 맥 이 빠 진 듯 쓰 러 질 듯 다 시 일 어 난 다. 춤 이 막 빨 라 져 서 손 은 칼 에 달 린 끈 을 흔 드 는 가 하 였 더 니 훌 쩍 일 어 날 때 검 은 간 데 없 다. 머 리 를 치 켜 들 고 던 진 쌍 검 이 서 리 처 럼 떨 어 지 는 데 , 느 리 지 도 빠 르 지 도 않 게 공 중 에 서 앗 아 간 다. 칼 날 로 팔 뚝 을 재 다 가 헌 거 롭 게 물 러 선 다 . 홀 연 서 로 공 격 하 여 사 납 게 찌 르 는 듯 검 이 몸 에 겨 우 한 치 떨 어 졌 다. 칠 듯 하 다 아 니 치 고 서 로 사 양 하 는 듯, 찌 르 려 다 아 니 찌 르 니 차 마 못 하 는 듯, 당 기 고 는 다 시 펴 지 못 하 고 묶 은 뒤 엔 좀 처 럼 풀 지 못 한 다 . 싸 울 적 에 네 자 루 요, 갈 리 니 두 자 루 다 . 검 은 기 운 이 벽 에 어 른 거 려 파 도 를 희 롱 하 는 물 고 기 의 형 상 같 다. 문 득 갈 라 져 하 나 는 동 에 , 하 나 는 서 에 선 다 . 서 쪽 기 생 은 검 을 땅 에 꽂 고 팔 을 늘 어 뜨 리 고 섰 는 데 동 쪽 기 생 이 달 려 든 다. 검 은 날 개 가 달 린 듯 달 려 나 가 서 쪽 기 생 의 옷 을 푹 찌 르 고, 고 개 를 쳐 들 고 뺨 을 벗 겨 내 기 도 한 다.
서쪽 기생은 까딱않고 선 채 얼굴빛도 바꾸지 않으니 옛날 영인(郢人?)의몸가짐 같다. 달려온 기생은 훌쩍 날뛰며 용맹을 뽐내고 무예를 자랑하다가 돌아간다.
서 있던 기생이 그를 쫓아가 보복한다.처음에는 히죽이죽 말이웃듯 부르르 떨더 니 문득 성난 멧돼지처럼 고개를 숙이고 곧바로 달려든다. 질풍폭우를 무릎쓰고 내달리는 용사와도 같다. 그러나 정작 곁에 가서는 싸우려다 싸우지도 못하고, 말자 해도 말지 않는다. 두 어깨가 슬쩍 부딪치더니 각자가 불의에 서로 발꿈치 를 물고 돌아가는 모양이 마치 지도리를 박은 무슨 물체가 도는 듯 하다. 어느새 아까 동쪽에 있던 기생은 서쪽으로, 서쪽에 있던 기생은 동쪽으로 위치를 바꾼 다. 일시에 함께 몸을 돌려 이마를 마주 부딪고 위에서는 넘실넘실 춤추고 아래 에서는 씩씩 거린다. 싸움 때문에 검광이 현란하여 낯이 보이지 않는다. 혹은 자 기 몸을 가리켜서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 혹은 부질없이 허공을 안으면서 온갖 태도를 다한다. 사뿐사뿐 걷다가 날름 뛰어 땅을 밟지도 않는 듯 하고, 걸음을 늘였다 줄였다 하여 미진한 기운을 뽐낸다. 무릇치는 동작, 던지는 동작, 나아가 는 동작, 물러나는 동작, 위치를 바꾸어 서는 동작, 스치는 동작, 떨어지는동작, 빠른동작, 느린동작이다. 음악의 장단에 따라 합치됨으로써 멋을 자아내었다. 이 윽고 쟁그랑 소리가 나더니 검을 던지고 넙죽 절했다. 춤이 다 끝난 것이다. 온 좌석이 텅 빈 것 같이 고요하여 말이 없다. 음악이 그치려는지 여음이 가늘게 흔 들리며 소리르 끌었다. 검무를 시작할 때는 절을 하고 왼손을 가슴에 대고 바른 손으로 전립을 잡는다. 더디게 일어나는 자태가 몸을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 이 것이 시조리(始條理)다. 귀밑머리가 흐트러지고 옷자락이 어수선하게 나풀거리 며 순간몸을 뒤집으며 훌쩍 검을 던지는 것이 종조리(終條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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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의 <검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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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심의 검무 , 시로 표현하다
문사 신국빈의 시 두편
1. 연아(煙兒)가 스물에 장안에 들어가
가을 연꽃처럼 춤을 추자 일만 개의 눈이 서늘했지 들으니 청루(靑樓)에는 말들이 몰려들어
젊은 귀족 자제들 쉴 새가 없다지 감상 :
2. 호서 상인의 모시는 눈처럼 새하얗고 송도 객주의 운라 비단은 값이 얼만가?
술에 취해 화대로 주어도 아깝지 않은건
운심의 검무와 옥랑의 거문고뿐이라네
3 옛 그림 속 검무
<신윤복의 검무>
박제가 <검무기> 내용과의 유사성 1.형식 :
2.의상 : 3.특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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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광정 연회도>
연광정 /대동강의 물결이 흐르는 천하절경의 누각
박제가 <검무기>와 유사한 기록흔적
숙종 38년(1712)의 기록인 김창업의 『연행일기』
-어 린 동기(童妓) 가학(駕鶴)과 초옥(楚玉)이 대 무(對舞) 형식으로 검을 들고 춤을 춘 것
조태억(趙泰億, 1675∼1728)은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했던 1721년에 자신의 문집인 『겸재집』
-천년의 경주 흥망을 탄식하니 반월성과 첨성대 는 반이나 황폐하구나 오직 교방이 있어 옛 풍속 을 전하니 추은 쌍검에서 왔으니 황창을 배웠도 다
김인겸(金仁謙, 1707∼1772)도 영조 40년(1764) 에 쓴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대구 기생 옥진 형제 황창무(黃倡舞)를 일등하 네”와 “음식도 무던하고 검무도 보암직다.”라 평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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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교방가요
박제가 <검무기>와 유사한 기록흔적
18세기 동래부사접왜사도
20세기 초 기생엽서
3 검무 와 운심
- 검무, 무예이자 예술
학술성, 예술성, 역사성을 지닌 명실상부 동양 최고의 예술 - 무기(舞技)의 사랑
조선 후기 최고의 서예가 ‘백하 윤순 ’의 사랑, 여자 ( 극치에 달한 예술가들의 공유, 동질감)
- 벼랑 끝에 선 몸
예술을 알고 호방한 협객의 풍모를 지닌 기생.
배경 : 진달래꽃이 아름다운 곳, 깎아지른듯 만 길 벼랑
“약산은 천하의 명승지요 운심은 천하의 명기다. 인생이란 몲지기 죽는법, 이 런곳에서 죽는다면 더없이 만족이다”
성대중의 반응
“운심의 풍정과 성깔이 저와 같기에 한 시대에 명성을 독차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 예술을 사랑했던 옛 사람들
1. “세속의 소란을 잠재운소리의 신 , 김성기(1649-1724)”
: 시대를 호령하는 위대한 예술가였으나, 먼 훗날에는 도대체 무슨 연유로 명성 을 얻었는지조차 감을 잡기 어려운 인물이 적지 않다. 불행한 운명에 처하기 쉬운 대표적 예술가가 음악인과 춤꾼이다.
예: 최고의 거문과 악사 ‘이마지’가 연주를 마치고 토해 낸 말들
“ 인생 백년도 잠깐이요, 부귀영화도 한순간입니다. 영웅호걸의 의기(意氣)도 그 가 죽고 나면 뉘 알겠습니까?, 오로지 문장을 잘하는 문사는 저술을 짓고, 글 씨와 그림을 잘하는 예술가는 작품을 남겨서 후세에 불후의 명성을 전합니다.
후세 사람들은 남겨진 자취를 비교하여 그들이 거둔 성취가 깊은지 얕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천년만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요, 허나 저 같은 것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죽고 나면 연기가 사라지고 구림이 없어지듯 자취가 사라집니 다. 이마지가 음률을 잘했다고 말한들 뒷 사람이 무엇을 근거로 그 수준과 품 격을 알겠는지요? 호파(瓠巴)와 백아(伯牙)가 중국의 뛰어난 악사였으나 죽은 날 밤 부터 벌써 그의 소리를 평가할 길은 없었습니다. 더욱이 천년이 지난 지금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
이미지가, 긴 한숨을 토해냈고, 모든이가 눈물로 옷깃을 적셨다.
: 배움의 갈증, 도둑 공부 – 밤마다 스승 ‘왕세기’의 집을 찾아가서 창 뒤에 바짝 붙어 몰래 훔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대로 연주한다.
: 장악원 악사로서의 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