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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주차 강의: 낙태와 안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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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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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주차 강의: 낙태와 안락사

낙태와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은 의학적, 법적, 신학적, 윤리적, 사회적, 개인적 차원이 포 함될 만큼 복잡하고 감정적인 주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렇다고 해서 이 문제 에 관한 개인적 의사 결정이나 공적 토론에서 손을 떼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교리

그리스도인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고 유지하시고 거두어 가시는 유일한 분임 을 믿는다. 그러므로 생명을 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정한 명령에 의해서만 인간에게 허 용되는 하나님의 특권이다. 낙태와 안락사 문제는 인간에 대한 교리와도 상관이 있다. 모 든 인간은 고귀한 생명체이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데, 낙태와 안락사에는 반대의 생 각이 내포되어 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존엄성 양자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대중의 태도의 혁명

최근 들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중의 태도에 혁명이 일어났다. 낙태에 관한 법이나 인식이 바뀌어 갔는데, 1929년 유아 생명(보존) 법령에서 “어머니의 생명을 구하려는 의 도로 충실하게 행할 때에는” 어떤 행동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1976년에는 데이비드 스틸이 낙태법을 입안했다. 하지만 이것은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여 낙태 수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그 법안이 입법화되기 전에는 6,100건이 보고되었는데, 2002년에는 영국에서 500만 건이 넘는 낙태 수가 보고되었다. 그 중 1,000번 중 1번 미 만이 임산부의 위험 때문에 낙태했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적’ 이유로 시행되었다. 오늘날 에는 더 증가하여 1초에 1건 꼴로 낙태가 시행된다. 심지어 경구용 피임약으로 막는 초 기 낙태는 기록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 문제는 심각하다. 그런데 미국에 서는 선거 때마다 이런 문제가 화제가 되며, 낙태 반대 집단과 낙태 찬성 집단은 해마다 워싱턴에서 행진을 한다.

핵심 이슈

낙태 찬성론자들은 임산부의 선택 권리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을 피임에 불과한 것으 로 본다. 그리고 원치 않는 임신을 지속할 임산부와 그 가족들의 고통에 집중한다. 반면 에, 반대론자들은 아이의 살 권리를 강조하고 그 아이의 권리를 수호하려 한다. 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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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신학적, 도덕적 지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자궁에 있는 태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가?

무생물로서의 태아

첫 번째 견해는 태아는 그저 젤리 모양의 덩어리나 조직이기 때문에 치아나 종양이나 편 도처럼 떼 버리거나 제거할 수 있다는 관념이다. 태아는 임산부와 독립된 존재가 아니고 소속되어 있다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여성의 권리를 강조하여 여성이 자기 운명을 결정 하게 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 권리를 행사하여 선택할 때는 수태 이전이지 이 후가 아니다. 일단 수태하고 나면 그녀의 아이는 탄생 이전이나 이후나 독자적인 권리를 갖는다.

인간화의 착상

두 번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태아가 ‘인간화’되는 결정적 순간을 수태와 탄생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찾는다. 보통 착상이 그 순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착상은 태아의 성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바꿀 뿐이다.

태아의 생육력과 생존

세 번째 견해는 ‘생육력’, 즉 태아가 미숙아로 태어나더라도 생존할 수 있을 만한 때를 인간이 된 순간으로 본다. 하지만 의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 시기는 당겨질 것이다. 태 아의 지위를 의학 기술 수준에 의존해야 하는가?

탄생과 환영

네 번째 견해는 탄생 자체를 결정적 순간으로 간주한다. 렉스 가드너가 이것을 주장했는 데, 창세기 2:7을 증거로 인용했다.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으실 때 아담의 삶이 시작된 것처럼, 아기도 그러하다고 한다. 그러나 낳기 직전의 아기를 찍은 사진을 보면, 태어난 아기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태와 인간됨

다섯 번째 견해는 수태 혹은 난자와 정자의 융합을 인간이 되는 결정적 순간으로 보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여기에 속해야 할 것이다. 1967년 제1차 낙태에 대한 국제 회의에서도 이렇게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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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기초

다섯 번째 견해를 지지해 주는 성경의 가장 확고한 토대는 시편 139편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전지성과 편재성에 놀라며, 묵상하는 중에 우리의 출생 전 존재에 대해 중요한 진술을 한다.

창조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13절). 욥도 하나님 께서 마치 토기장이와 같이 그를 빚으시고 만드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주께서 피부와 살 을 입히시고 뼈와 힘줄로 엮으셨다고, 생명을 주셨다고 말했다. 성경 저자들은 태아의 발 달을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없었지만 태아의 성장 과정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거나 심지어 자동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창조 기술로 만드신 작품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연속성

시편 기자는 둘째로, 연속성을 강조한다. 그는 성인이지만, 자신의 출생 전이나 후에 똑 같은 인칭 대명사인 ‘나’를 사용한다. 자궁 내의 태아였을 때에도 동일하게 인격적인 정 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친교

시편 기자는 세 번째로, ‘친교’를 말한다. 하나님은 그를 창조하시고, 유지하시고, 그를 알 고 사랑하시고, 영원히 굳게 붙드실, 동일한 분이다. 이것을 더 잘 표현하는 말은 ‘언약’

일 것인데, 이것은 일방적인 언약 혹은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지속하시는 ‘은혜’의 언약이 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의 인격체다.

현대 의학도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확증하는 듯하다. 정자가 난자가 만나 수정된 순간 염색체가 23쌍으로 완성되며, 접합체는 양부모와 다른 독특한 유전자형을 갖게 되고, 여 러 가지 특성들이 바로 결정된다. 출생 이전, 3주나 3주 반 정도 되면 작은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한편, 이런 의학적인 것을 떠나서, 임산부들은 경험이나, 느낌으로도 아이가 하 나의 인격체이며 독립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현대의 기독교적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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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의견이 일치한다고 보기 힘들다. 어떤 이들은 수정란이 잠재가능성은 있지만, 그 자체가 사람 특유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 다. 한편, 다른 이들은 수정란이 된 순간부터 그것이 사람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신약 성경에서 익히 보아 온 ‘이미’와 ‘아직’ 사이의 오래된 긴장에 근거한 것 같다. 이 내용을 접하고 시편 139편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으로 돌아가 보면, 역시 성경은 은혜에 대해, 하나님이 창조와 사랑에서 주권적 주도권을 쥐셨다고 이 해한다. 태아에 인간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중대한 관계는 하나님께서 그 태아에게 주 시는 의식적인 사랑의 헌신일 것이다.

기술과 예외들

인간 태아의 독특성에 대한 평가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킬 것인데, 어머니와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서로 다른 발달 단계에 있는 두 인간으로 보는 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어휘를 수정해야 한다. 어 머니의 자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수태의 산물’ 혹은 ‘생식체 물질’이 아니라 ‘태어나지 않은 아이’다.

낙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가? 이것에 대해 신학과 의학이 필요하며 학문 간 협의가 필요할 것이다.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다른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거나 보전하기 위해서 라면 - 예를 들면, 정당 방위로 - 인간의 생명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로서 든 위험으로서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죽음을 끌어들일 자유는 없다.

아이가 심각한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게 될 상당한 위험이 있는 경우는 어떤가? 그리스도 인들은 여기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가? 출생 후 생존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무뇌증 등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낙태를 시행해야 하며, 다른 심각한 기형으로 낙태의 정당성 을 확장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적어도 세 가지 있다.

생명의 존엄성

심각한 장애가 있는 사람의 생명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말을 누가 감히 할 수 있겠는 가? 그리고 감히 누가 결정할 수 있겠는가? 결국 삶에 질적 특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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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있는 아이를 출생 전에 죽이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출생 후에는 그렇게 하지 말 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것을 인정한다면, 장애가 있는 신생아, 사고로 다친 희생 자, 정신 박약아와 고령자를 죽여도 된다는 논리가 된다.

생명에 대한 결정

아이를 낙태하는 것은 마치 인간이 하나님 노릇하는 것과 같다. 생명을 주관하는 권위는 인간에게 있지 아니하다. 낙태를 찬성하며, 장애를 가질 아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사실 아이가 아니라 그들이 지게 될 짐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 그 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장애인들과 약한 자들을 특별히 보호하고 돌보시는 분임을 기억 해야 한다.

행동하라는 명령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더 엄격 한 낙태 방지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임신한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것을 조금이라도 꺼리는 마음을 극복하도록 돕고, 그들이 가능한 한 모든 개인적, 의학적, 사회적, 재정적 지원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서로 짐을 지라는 그리 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일 것이다. 셋째, 우리는 적극적인 교육과 사회적 캠페인을 지원 해야 한다. 특히 학교에서 인간됨의 가치와 삶의 신성함에 대한 성경의 관점을 철저하고 꾸준하게 가르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안락사

안락사가 오늘날 대중적 관심사가 되었다. 생명을 연장한 의학 기술의 진보, 에이즈의 만 연, 동정적 근거에서 안락사를 외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 같은 것들이 그 요소들이다.

안락사는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어떤 조치를 취하거나 취하지 않음으 로써 의도적으로 죽이는 것이다.”라고 정의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자비로운 살인’이라 고 불리며, 환자가 확고히 간청하여 죽음이 일어나는 ‘자발적 안락사’와 환자가 동의할 수 없는 상태에 경우인 ‘비자발적 안락사’로 나뉜다. 자발적이든 아니든 안락사가 의도적 인 살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안락사 논쟁에는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가치’(인간의 생명은 어떤 가치를 지 니고 있는가?), ‘두려움’(안락사로 덜어 주고자 하는 주된 두려움은 무엇인가?), ‘자율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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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자신의 생명에 대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가치의 문제

몇몇 비그리스도인 저술가들은 인간의 생명이 어떤 절대적 혹은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단호히 부인한다. 어떤 비그리스도인 학자들 중 성경적 근거는 아니지만 여 전히 인간이 독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기독교적 대안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서, 짐승과 구분되는 독특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공포라는 망령

두려움이라는 공포의 씨앗이 안락사 논쟁에 늘 붙어 다닌다. 첫째,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둘째, 모욕적 대우, 비인간화하는 현대 의술에 종속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셋째, 의존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의사가 그들을 죽이지 않을 까 하는 두려움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를 이 같은 공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로 본다. 하지만 대안이 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촉진하고자 하는 현대의 통증 완화 치료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것과 관련된 기관에 있는 말기 환자들을 사랑하고 후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으며 관여해야 한다.

자율권

하나님은 우리를 이성적이고 의지를 지닌 존재로 만드셨다. 따라서 강압이 아니라 선택 에 따라 살고, 우리가 결정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 유와 독립과 생명과 관련한 우리의 주장에 즉시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자유

절대적 자유라는 개념은 환상이다. 하나님조차도 그분의 본성에 의해 제한 받으신다. 동 일한 원리가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본성에 따라 살 때에 만 자유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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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존

인간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 분야에서 우리의 자율성 을 선포하는 것,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 는 것은 성숙이 아니라 죄의 진수다. 의존은 일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품위 없 는 나쁜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감사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창조하시고, 주시고, 유지하시고, 거두시 는 분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들이 많 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주제넘게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독특한 위엄과 권능 을 지닌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 겸손히 경배해야 한다.

토론을 위한 질문들

1. 다음 본문들을 읽으라. 시편 139:13-16, 욥기 31:15, 시편 119:73, 시편 22:9-10, 예레 미야 1:5, 이사야 49:1, 5, 누가복음 1:41, 44.

1) 당신은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어떤 단계에서 하나의 세포 혹은 세포 덩어리가 인간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2) 당신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어느 시점에서 당신은 ‘당신’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에 베소서 1:4이 이 점에서 도움이 되는가?

2. 당신은 다음 두 진술 중 어느 것에 동의하는가? 그 대답은 ‘성관계 후에 먹는 경구용 피임약’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어떻게 반영하는가?

1) “수정하는 그 순간부터 태아는 ‘사람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태아를 돌보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2) “수정하는 순간 수정란은 생물학적 생명과 놀라운 잠재력의 레퍼토리를 지닌다. 하지 만… 그것은 두뇌 발달로 자기 감독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권리를 소유하고 보살핌을 요 구하는 한 사람이 된다.

3. 낙태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정당화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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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산부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

2) 임산부 혹은 기존의 자녀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3) 심각한 장애를 발견한 경우

4)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

4. 생명의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성경적으로 논해 보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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