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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의 모든 평범한 자들을 대변한다네. 나는 그들의 챔이언이자, 그들의 후원자이지. 그들을 대신하여 나는 당신의 무자비한 신을 부정하오. 당신의 신은 그들이 절대로 실현할 수 없는 꿈을 꾸게 만들었소. 신은 나 를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결코 신을 용서하지 않겠네.
I speak for all mediocrities in the world. I am their champion. I am their patron saint. On their behalf I deny Him, your God of no mercy. Your God who tortures men with longings they can never fulfill. He may forgive me: I shall never forgive Him.
- 영화 <아마데우스 (Amadeus)>, 살리에리의 말 중에서.
1987년 초였는지도 모르겠다) 대한극장의 모퉁이에 앉아서 보았던 영화 <아마데우스 (Amadeus)>
(1984)의 마지막 장면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제 막 이른 사춘기가 시작되던 어린 나이였기에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이 영화는 내게
‘예술가의 삶’을 꿈꾸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은 분명했 다 (때문에 한동안 나의 어머니는 내게 이 영화를 보 여주셨던 일을 후회하셨다). 결국 고등학생이 된 나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벅 벅 우기며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미대에 가기 위해 화실에 앉아 오롯한 투지를 불태우며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입시를 불과 한두어 달 앞둔 어느 늦은 가을 날 아 침, 나는 아무도 없는 화실에 앉아 친구가 간밤에 그 려놓고 간 그림 한 장을 보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엉 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5년 전, 나의 가슴에 문신처럼 남겨져 있던 살리에리의 고백이 결국 나의 것이라는 것을, 나야말로 꿈을 꾸었으되 이룰 수 없고, 신을 찬 미하고프되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헛된 욕망에 배신 당한 채 모든 것이 가난해져버린 예술가 지망생이었 기 때문이다. 친구의 작품에서 나는 모짜르트를 보았 다. 친구는 부모의 권유로 등 떠밀리듯 투덜투덜 화실 로 와서는 빈둥빈둥 한두어 장 그리고는“아, 귀찮아.
나도 너처럼 열심히 해야할 텐데, 영 귀찮아”라는 말 을 농담반 진담반 해댔던 아이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 은 우리 화실에서 항상 최우수 작품에 꼽혔고, 예능계 학교를 다녔던 그의 실기 성적 또한 언제나 최고점이 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미술영재라고 할 수 있는 학 생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부러움 반, 시기 반으로“저 아이의 그림이 왜 좋은 점수를 받는지 모르겠어. 그냥 평범한거 같은데!”라며 빈축 놓기도 하였다. 나는 내 할일에 마음이 바빠 그 친구의 그림에 대해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무도 없는 빈 화실에 일찍 도착하게 된 그 날, 장비를 풀며 여유로운 마음
닐 것 같은 그 친구의 석고상 데쌩 그림에는, 화실 선 생이 가르쳐준 적 없는 선의 표현, 그리고 당시 입시 미술의 공식화된 명암표현 방식과는 전혀 새로운 방 식의 질감이 표현되어 있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는 모짜르트를 증오 하며 시기하며 교모히 핍박하였지만, 동시에 그이만 큼 모짜르트의 예술을 이해하고 알아보았던 비평가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 내가 한국인으 로 태어난 것, 내가 화가를 꿈꾸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 이 모든 것은 내 의지 이전의 운명이다. 여기까지 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정작 내 자신에게는‘타고난 천재성’이 없고 오로지‘불타는 열의’만 있는 운명이 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천재’를 알아 보는‘눈’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가지고 있는 듯하 니, 나야말로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의 면면 을 그대로 빼다 박아 놓은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미술 대학에 진학하여 예술가로 육성되기를 바랬던 나는, 그 이후 나 자신이 하나의 그림이 되길 포기하고 그림 을 빛내주는 액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였다.
예술, 그 피곤함과 필요성
그러나 당시의 이러한 나의 생각은 상당히 진화되 지 못한 (?) 예술가에 대한 편견이었음을 훨씬 나중 에야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천재성이 없으니, 예술가 로 성공할 수 없겠다는 생각, 이러한 마음 또한 다소 간 치기어린 감상이었다. 적당한 생존적 경쟁과 치열 한 일상과의 싸움, 심지어 출산의 고통마저 겪고 난 지금에서는, 다시 말해서 삶을 어느정도 살아보고 난 지금에는 저 높은 곳에 있다는 예술의 진지함이 너무 피곤하다. 아무리 수억원을 호가하는 유명 작가의 작 품이 있다해도 모짜르트 앞에 선 살리에리의 감동이 전혀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과거 서양 르네상스기에 형성되기 시작했던‘타고난 천재’의 개념은 너도나도 제법 글께나 한다는 20세기에서는 그 권위 또한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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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본질로서의 본질,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하며 서로 엇비슷한 말싸움질을 하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 더니즘 논쟁도 듣고 보면 돌고 돈다. 작가는 죽고 작 품만 살았네, 작품은 그저 산물이고 원본으로서의 작 가정신만이 중요하네, 떠들던 20세기의 예술논쟁에 대하여, 혹자는 말 많은 자들의 배부른 잡담이라고 여 길 수도 있겠다. 미술을 두고‘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 으니, 음악에 대한 예리한 귀를 가진 자들과 조형예술 작품에 남다른 식견을 가진 자들을 위해 20세기 이후 의“예술 시장”은 특권의식을 가지면서 자본주의 시 장논리로 성장해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21세기형 천재는 IQ 천재가 아니라 다중지능 을 가진, 다방면에서 뛰어나면서 사회적으로 인정 받 는 자들’이라는 말이 번번히 들리고 있다. (『21세기 新천재들』, 동아일보 문화부, 2007 참조) 상황이 이러 하니, 이제는‘타고난 재주’가 갖는 무게감은 확연히
예전의 것보다는 가벼운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란 영역은 뭐랄까, ‘잘 난 것’은 맞다. 동네 유치원에서 그림 한 장을 그린 아 이에게 칭찬과 도닥임을 줄수는 있지만, 크리스티 또 는 소더비에서 고가로 낙찰된 그림을 두고 동네 유치 원 아이의 것과 동급 취급하는 것은‘비문화적’인 행 동인 것이다.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무리 피곤하 고 지쳤다해도, 예술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문제는 분명히 아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스페인 알타미 라의 동굴벽화가 주는“인간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폐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사회구조가 복 잡하지 않던 원시 사회에서도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 과 달리 구별하면서 형상으로써 죽음 이후의 불멸을 갈구하였다. 예술이 비단‘배부른 자의 것’만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말대로, 사람 은 빵 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숫소 그림.
당히 많은 사람들은 (즉, 살리에리가 칭했던 우리네 범부(凡夫)들은) 천재 예술가들이란 타고난 재주로 시대의 기록에 남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 로 이해할 것이다. 서유럽의 경우, 나름의 전통 속에서 예술가들의 지위가 점진적으로 향상되면서 19세기 중 반 이후 대부분의 시민들에게도 예술의 어떤 영역에 대한 구분이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오스트리아의 미 술사학자, 베레네 크리커 (Verna Krieger)가 쓴『예 술가란 무엇인가』(2010, 김정근, 조이한 공역, 휴머니 스트)는 예술가라는 개념을 통시적인 관점에서 기술 한 책이다. 책에서는 과거 기술수공적인 개념의 예술 이 르네상스를 거쳐 16세기로 넘어오면서 처음으로 천재 예술가의 개념이 시작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저 자는 특히 현대에 이르러‘자유 (freedom)’을 기치로 내세우는 보헤미안적인 예술가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고 기술한다. 이러한 서구 예술가의 개념이 어떤 의미 에서‘보편적’인 예술가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동양 의 경우, 특히 중국, 한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 서의 예술가 개념은 오히려 시서화 (詩書畵)에 능했 던‘문인 (文人)’쪽이 서양의 그것과 가깝다 할 수 있다. 동양에서의 그림이나 조각은 서양 문물을 본격
만 유교, 도교 사상과 관련된 문인화의 영역은 과거 서유럽인들의 의식수준과는 다른, 오히려 현재의 서 유럽 지식인들이 열광하는 선(禪, Zen) 개념과 맞물 려 있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이렇듯, 동서양의 예술가 개념에는 다소간의 차이 는 있지만, 지역의 차이가 현대적 예술 개념의 보편성 을 크게 위배하지 않는다고 보았을 때, 어떻든 우리는 예술가들을‘범인(凡人)’이 아닌‘특별한’사람들로 보는 대중적이라 하겠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현대인들이 미학서적이나 미술사 관련 논문을 뒤져가며 예술가는 누구인지 고민하기에는 삶 은 너무나 바쁘다. (혹은, 그럴 이유도 없으리라) 따 라서, 대게의 사람들 머리 속에 자리잡은‘예술가’에 대한 의미나 고정관념은 예술가들을 다룬 영화, 소설, 다큐멘터리 등 각종 기타 예술 장르 안에서 확인된 경 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서론의 변
뒤늦게 사실을 고백하자면, 이 글 전체가 서론에 불 과하다. 다음 몇 회 정도에 나누어 영화, 소설, 및 기타 예술 장르 안에서 다루어진 예술가들에 대해 쓰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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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몇 마디 한다는 것이 이렇게 깜냥없이 길어졌다.
맨 처음에 밝혔던 낯간지러운 나의 과거사를 굳이 쓴 것은 영화라는 대중매체가 예술에 대해 알려주는 힘 이 얼마나 큰지, 그것이 결국 어떻게 한 개인의 인생 까지 바꾸어 놓았는지‘굳이’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시 내가‘모짜르트’라고 내 마음대로 이름 붙여버린 그 학생의 그 후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 해‘굳이’밝히자면, 물론 최고의 미술대학에 좋은 성 적으로 입학였으나, 얼마 간의 복잡다난한 개인사를 겪은 후, 세월이 지난 현재는 간간히 그림 재주를 발 휘하면서 가족 사업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안타깝께도, 내가‘모짜르트’라고 보았는 이는 현재 작가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히 단란한 가
정을 가진 행복한‘사람’으로 보이니, 행복한 예술가 임에는 틀림없다.
송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