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5 -
그림으로 보는 질병의 문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한 성 구
Non-medical Session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질병은 무엇일까?
결핵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지 만 페스트도 공포의 대상이었고, 나병 또한 오랜 기간 인류 를 괴롭혔다.
서양미술에는 이런 병에 관한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 이를 찬찬히 보면 병에 따라 사람들의 느낌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결핵은 병에 걸린 후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 리는 병이었다. 환자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으니 환자의 표정에는 우수가 곁들인다. 게다가 결핵에 잘 걸리는 체질은 그 유명한 선병질이다. 호리호리하고 체격인데다가 창백하 고 기운이 없으니 말소리도 조용조용하니 주위 사람들이 보 기에는 연민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수많은 예술 작품에는 결핵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 한다. 그림 중에서는 Delacroix의 쇼팽의 초상화, 뭉크의 봄(1898), 로하스의 처음 이자 마지막 영성체, Thayer의 천사 등이 결핵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다. 그림 속의 결핵을 한 마디로 한다면 “연민”이다.
나병은 병리학적으로는 결핵과 비슷하지만 대중에게 주 는 인상은 완전히 다르다. 나병 환자들은 병이 진행하면서 진물이 나고, 눈썹이 빠지고, 손가락 발가락의 마디가 떨어 져나가는 병이니 대중이 보기에는 진저리 칠 정도로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세 이후 나병 환자는 반드시 종을 치 면서 마을을 지나가도록 했는데 이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 들이 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렘브란트의 우찌아 왕, 쿠퍼
의 나병환자, 소로야의 슬픈 유전 등이 나병을 주제로 한 그 림의 대표적 작품들이다. 나병을 서양 미술 속의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혐오”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매독은 처음부터 대중은 화류병인 것을 알고 있었 다. 사실 매독은 남자는 여자한테서 옮고, 여자는 남자한테 서 옮는 것이지만 오랜 기간 서양 미술은 남자 위주의 시각 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매독은 치명적인 매력, 그렇지만 사악 한 여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매력에 빠진 어리석 은 남자의 관념이 고착되었다. 쿠퍼의 매독, 카사스의 매독, 브루벨의 앉아있는 악마, 피카소의 우울한 여인 등등이 매독 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보면 매독은 “죄와 벌”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마지막으로 페스트는 위의 세 가지 병들과는 달리 전격적 으로 인류를 습격하면서 짧은 시간에 마을을 초토화 시키는 급성 전염성 병이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죽 어 나가는 것은 공포스러운 재난이었다. 뵈클린의 페스트, 고야의 페스트 병동, 그로스의 나폴레옹이 자파의 페스트 수 용소를 방문함 등등이 페스트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페스 트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공포”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보듯이 서양 미술에는 인류에게 고통을 주었던 질병 들이 질병에 따른 이미지가 확연히 다르다. 이를 보는 것은 또 다른 면에서 대중이 의료, 도는 질병을 보는 시각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