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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도 우리 글자인가?-논의의 맥락과 그 의의-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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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논의의 맥락과 그 의의

김영환*55)

Ⅰ. 머리말

Ⅱ. 몸말

1. 한자도 우리 글자다- 최근의 한 논의 2. 국문 의식의 성장

3. 한자도 우리 글자-수구파의 반론 4. 한자는 우리에게 동화된 글자인가

5. 라틴말과 한문, 라틴 알파벳과 한자 - 왜 같지 않나.

Ⅲ. 맺음말

국문요약

한자도 우리 글자란 주장은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주장이다. 이 주 장은 국문 애호의 흐름이 일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생겨난 주장이다.

전통적으로 한자는 중국 것이기에 숭상되었다. 대중의 통념 속에서

* 이 논문은 2016년 부경대학교 자율 창의 연구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논문은 배달말 학회 전국 학술대회(순천대. 2015.10.17.)에서 발표한 같은 제목의 논문을 많이 고치고 내용을 보탠 것입니다.

** 부경대

(2)

이 두 모순되는 생각이 뒤섞여 있다. 한자도 우리 것이란 생각을 논 박할 수 있는 이론적 모델은 기호학에서 찾을 수 있다. 형식적 기호 로서의 꼴(형)과 소릿값(음)만 남은 알파벳 낱자들은 국경을 쉽게 넘 어 국제적이 된다. 한자를 기호로 보자. 그 기의를 뜻으로, 기표를 시 각적 꼴(형)로 본다면 시각적 꼴로서의 한자는 분명 우리 것이 아니 . 한자의 음을 기표로 본다면 한국 한자음은 중국 한자음의 방언적 변이에 해당한다. 한자를 훈독하면, 시각적 기표의 차원에서만 한자 는 중국 것이 된다. 한자는 표의 문자여서 국적을 넘어가는 소리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훈독이 가능하다. 뜻으로 읽으면 우리 고유어의 소리와 뜻으로 이해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한자는 성 격이 매우 다르다. 한국은 훈독의 전통이 점차 소멸하였다.

한자가 동아시아 세 나라의 공통 글자라거나 우리에게 귀화한 글 자라 보는 생각은 근거없는 통념이다. 한자가 우리 것이기에 버려야 한다거나 써야 한다는 주장은 모두 논리적 비약으로서 발생론적 오 류를 범하고 있다. 엄격한 중국식 한문 쓰기는 사상의 교조화, 획일 , 문화 유산의 빈곤을 초래하였다. 한자는 뜻이 소리와 함께 가기 때문에 훈독을 하지 않는 한 국경을 넘어가지 못한다. 이 점에서 라 틴 알파벳이나 한글과 차이가 크다.

주제어 : 훈독, 기의 없는 기표, 일본, 알파벳, 모화사상, 발생론적 오류, 라틴어

Ⅰ. 머리말

한자는 차이나 글자이다. 따라서 한자는 우리 글자가 아니다. 이것 은 많은 사람에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국문을 존중해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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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런 전제가 있었다. ‘각국에서는 사 람들이 남녀 불문하고 본국 국문을 먼저 배워서 능통한 후에야 외국 글을 배우는 법인데 조선서는 조선 국문은 아니 배우더라도 한문만 공부하는 까닭에 국문을 잘 아는 사람이 드묾이라’ 는 󰡔독립신문󰡕 창 간호 논설에서도 이미 한자가 외국 글자임이 전제되어 있다. 또 국문 이 한문보다 더 나은 이유로 국문이 우리글임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글과 한자에 대한 논의에서도 이것은 분명한 것으로 전 제되었다.

그러나 한자에 대한 이와 다른 일반적인 견해를 보여 주는 여론 조사가 있다. 한자를 오랫동안 써 온 까닭에 이를 외국 글자로 느끼 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14년 10월에 발표된 한국 갤럽 여론 조사 에 다르면 47%는 외국 글자라고 대답하였으나 48%가 우리 글자라고 대답하였다. 이런 대답른 한자가 중국 것이지만 한국 것이기도 하다 는 생각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이런 수치는 12년 전의 2002년 조사 와 거의 같은 것으로 그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 .1) 한자에 대한 대중들의 통념은 혼란스럽다.

그런데 이 문제가 단순히 대중의 막연한 통념이 아니라 법적인 문 제로 비화되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어문 정책 정상화 추진회(회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지난 2012년 10월 국어기본법의 한글 전용 정 책에 위헌성이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현행 국 어기본법이야말로 한자 문맹(文盲) 현상이 확산되는 문제의 핵심’이 라면서 2005년에 제정된 국어기본법은 ‘위헌’이라고 지적하였다. 국 가 기관과 지자체의 어문 정책을 총체적으로 규율하는 역할을 하는 이 법의 3조 2항은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 문자를

1) 조사기간: 2014년 9월 30일∼10월 2일(3일간).

- 표본추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 응답방식: 전화조사원 인터뷰.

- 조사대상: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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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다’고 했으며, 14조 1항은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 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 고 규정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자’는 국어를 표기하는 문자가 아니라 ‘외국 글자’

임이 전제되었다. 청구인들은 ‘국어기본법은 한국어 표기 문자라는 한자의 법적 지위를 박탈했고, 언어 생활 속에서 한글 전용의 표기 원칙을 국가가 관철하려고 하는 것은 언어 인권을 침해한 위헌’이라 고 주장했다.2) 우리 민족의 사상과 정서를 담은 문자로 2000년 이상 이나 사용해온 고유 문자라는 것이다. 지금도 한자 혼용론에서는 한 자가 우리 글자임을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이런 주장 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현실적으로 한글 전용론의 확산을 차단하는 데 큰 심리적 효과를 낳는다. 이런 통념을 그냥 틀렸다고 내버려두기 보다 이론적으로 논파할 필요가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한자 혼용의 논리적 근거가 되는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한자도 우리 글자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역사적 맥 락을 추적하고 이런 주장의 타당성을 기호학적 관점에서 검토하려 한다. 여기에서 우선 한자를 동이족이 만들었기 때문에 한자도 우리 것이라는 주장은 논의에서 제외하였다. 갑골문에 씌어진 언어는 어 순으로 보아 원시 차이나어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 논문에서는 일본 에서 광범위하게 관찰되는 훈독 현상에 대한 기호학적 고찰을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삼으려 한다. 우선 한자의 소리(음), 꼴(형), 뜻(의)을 각각 청각적 기표, 시각적 기표, 기의로 나누어 보자. 표의 문자인 한 자에서 훈독의 경우에는 차이나의 청각 기표가 생략되고 한자를 들 여오는 나라(코리아, 일본)의 청각 기표로 대체된다는 사실이 중요 하다.

2) 2016년 11월 24일 헌법 재판소는 국어기본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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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몸말

1. 한자도 우리 글자다- 최근의 한 논의

한자도 우리 것이란 주장의 의식적이고 명시적인 변호를 찾기는 쉽지 않다. 작은 중화 의식에 젖은 사대부에게 한자는 중국 것이기에 소중한 것이었고 지적 작업이란 으레 한자로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 게 우리 것은 천한 것이었다.

한자도 우리 것이라는 주장은 국문 의식의 성장에 대항하여 오랜 한문 숭상의 전통을 옹호하기 위해 한자도 우리의 것이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최근의 변호는 「한자의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3)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난 주요한 주 장을 낱낱이 따져 보기로 하자.4)

하나) 한자가 ‘중국 글자’라는 주장은 틀렸다. 문물 제도를 그 원적 의 나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큰 망발이다.

반론: 한글을 북한에서 ‘조선’ 글자라고 한다. 가나는 일본 글자이 . 분명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글자 이름은 나라 이름과 결합하 여 불린다. 망발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이 그것의 현실적 활용에 논 리적 근거가 된다면 이것은 발생론적 오류를 법한 것이다.

둘) 한자의 음이 (한, 중, 일) 세 나라가 확연히 달라,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나라 한자를 중국 글자로 부르지 못하는 근거가 된다.

한자의 자형(字形)과 자의(字義)는 조금 차이가 있어도 대체로 세 나 라에 공통된다.

3) 안병희(2004) 󰡔한글과 한자문화󰡕.

4) 이 부분은 이미 김영환(2012) 󰡔한글철학󰡕에서 짧게 다루었던 문제이다. 89-96쪽.

(6)

반론: 한국식 한자음은 중국식 한자음의 방언적 변이일 뿐이다. 한 국식 한자음은 그것이 중국 한자의 국내적 변이와도 큰 차이가 없다.

‘확연히’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조그만 차이가 조선의 글자라고 부를 이유가 되기에 모자란다. 이런 사실 때문에 ‘중국의 글자’가 아니란 주장도 하기 어렵다. 글자인 만큼 그 국적을 따지는 것은 그 시각적 기표(자형)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셋) 한국에서만 사용되거나 독특한 뜻으로 사용되는 글자가 있다.

이른바 韓國 俗字가 존재한다. 일본에도 그 나름의 俗字가 있으나 전 혀 다르다. ‘娚妹, 田沓, 垈地, 媤家, 黑太’ 등등의 ‘娚, 沓, 垈, 媤, 太’가 우리의 俗字다. 이러한 한자는 고문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실록과 같은 史書에도 빈번하게 사용되어 있다. 이들 俗字까지 통틀어서 차이나 글자라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반론: 이 부분은 대체로 온당한 주장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한자 가운데 몇몇 자를 우리가 만들었다고 한자가 차이나 것이라는 사실 에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차이나에서 유래한 글자를 재료로 회 , 형성 등 전통적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 맞는 말이기는 하나 중요 한 사실은 아니다.5)

넷) 한자가 이들 세 나라의 문화 발전에 남긴 불후의 공적을 인정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차이나 고전이나 우리 고전을 들지 않더라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朝鮮王朝實錄≫≪訓民正音≫ 우리에게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게 한 사실로써 충분히 인 정된다.

5) 일본제 한자는 한국제 한자보다 수가 많으며 대부분 뜻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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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이런 사실은 우리 기록 문화의 엄정성과 높은 수준을 말해 준다. 그러나 이런 문화 전통의 이면을 보아야 한다. 엄격한 중국식 한문 쓰기는 출판과 도서 유통의 귀족주의를 불러와 우리 생활과 사 상을 담을 기록 수단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고 문자 기록의 가난함을 피할 수 없었고 대중의 우민화를 불러왔다.6)

세종 及 세조 양조의 한국 문학의 재흥 노력은 드디어 후세의 성공을 보 지 못하게 되었나니이는 일반 지식 계급의 사람들이 여지없이 지나 문학 의 정신적 노예가 되어서, 자국의 글자를 숭상하며, 자국의 문학을 수립할 만한 독창력과 기백이 없었기 때문이니, 어찌 통탄하지 아니할 바이랴? 훈 민정음-세계에서도 첫째갈 만한 문자가 우리의 위대한 선인의 손으로 말미 암아 나온 지가 500년 동안에 여태껏 한국 문학의 전적으로 자랑할 만한 저술이 생겨난 것이 없고 있다 해야 다만 당, 송의 찌꺼기를 핥고 만 몇몇 의 한시 문호가 났을 뿐이 아닌가. 이것이 어찌 정신적 수치가 아니랴?7)

이 점에서 우리는 일본과 완전히 다르다. 일본의 한시는 훈독하면 번역된 산문시가 되므로, 이것을 ‘한시’라고 부르는 것은 ‘기이한 현 ’이다.8) 흔히 ‘한시’ 또는 ‘한문’으로 불리는 것은, 훈독하는 한, 일 본에서는 일본 문학에 속한다.9) 우리 역사의 오랜 한문 숭상을 비판 함은 한자 시대에 문화적 성취가 없었다는 게 아니다. 얻은 것보다 잃어버린 게 훨씬 많다는 뜻이고 미래에는 한자보다 더 좋은 글자로 더 바람직하고 훌륭한 문화를 창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10)

6) 국사 연구에서 사료의 부족을 지적하고 그 원인에 대해 분석한 글로서 신채 호(1975) 󰡔조선사 연구초󰡕 가운데 「한국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참조.

121-124쪽 .

7) 최현배(1937) 󰡔한글의 바른 길󰡕 158-159쪽. (본디글은 한자 혼용) 8) 가와모토(川本皓嗣)(2010) 󰡔大手前大學論集󰡕 11집. 19쪽

9) 국문학사에서 한시와 한문은 제외되며, 동아시아 한중일의 공동 문어 문학 도 성립하기 어렵다.

10) 안병희(2004) 「한자의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는 세 나라 사이의 경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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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문 의식의 성장

한자가 우리 글자라는 주장은 구한 말에 한자 폐지 문제가 제기되 자 이에 맞서기 위해 나왔다. 그 당시에 한글은 한자 폐지의 명분이 되고 있었다. 황현은 그 당시 일어난 전통적 문자관의 변혁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이때에 중앙의 관보 및 지방의 공문서들은 모두 진서와 언문을 섞어 자 구를 연결한 것이었으나 일본의 쓰는 법을 본뜬 것이었다. 우리나라 말에서 는 예부터 중국 문자를 진서라 하고 훈민정음을 언문이라 하여 통칭 진언 이라고 불렀다. 갑오년 이후로 시무를 추중하는 자들은 언문을 대단히 떠받 들어 국문이라 일컫고, 진서를 구분지어 외국 것으로 취급하여 한문이라 불 렀다. 이에 국한문이라는 세 글자가 우리말이 되었고 진서나 언문이라는 말 은 없어지게 되었다.11)

이러한 진술을 전통적인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진서는 중국 것이 기 때문에 숭앙되다가 중국 것이기 때문에 배척받게 되었다. 천하 체 제에서 벗어나 민족국가의식이 생겨났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것 을 오랑캐 문물이라 배척했던 주자학적 문명 의식에서 큰 전환이었 . 모화적 문화 의식이 두드러진 최만리의 상소문에서는 차이나와 다른 우리 문물은 오랑캐의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금석문에 새겨진 최초의 한글이라는 영비에서도 언문은 글자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본다.12) 또한 여기서 황현은 국한문 혼용을 일본의 영향으로 파악하

교류에 한자가 유용함을 강조하면서 한자를 차이나 글자라 보는 관점을 ‘편 협한 애국주의’라 하였다. 말과 문화를 보는 눈이 지나치게 도구주의적이다.

11) 황현(2006) 󰡔매천야록󰡕 권2, 문학과 지성사 是時京中官報及外道文移, 皆眞諺 相錯, 以綴字句, 盖效日本文法也, 我國方言, 古稱華文曰眞書, 稱訓民正音曰諺 文, 故統稱眞諺, 及甲午(高宗三十一年)後趨時務者盛推諺文曰國文, 別眞書以 外之曰漢文, 於是國漢文三字遂成方言, 而眞諺之稱泯焉.(1894년.12월).

(9)

고 있음이 눈에 뜨인다. 전통적 동아시아 국제 질서인 천하 체제의 붕괴와 한문의 공적 지위 변경은 나란히 진행된다. 고종의 국문 조서 (1894.11.21.)와 독립 서고문(1895.1.7.)도 이때 나왔다. 우리 것은 버려 야 할 것에서 존중해야 할 것으로 바뀌었다. 이 무렵에 나온 유길준 의 󰡔서유견문󰡕(1895)의 에도 한글을 ‘아문’ 즉 우리 글자라 하였 는데 이는 한자 한문이 우리 글자가 아님을 전제한 표현이다. 이때에 도 ‘언문’을 섞어 쓰는 데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차라리 나는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아주 버리고, 우리 글을 순용하지 못 함을 유감으로 생각하느니, 우리글(我文)과 한문을 번갈아 씀(交用)은 오늘 의 시의를 위함일 따름이오.13)

󰡔독립신문󰡕은 그 창간호(1896.4.7.)에서 우리글에 대한 무지와 무관 , 한문 숭상의 인습에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우리신문이 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거슨 샹하귀쳔이 다보 게 홈이라  국문을 이러케 귀졀을 여 쓴즉 아모라도 이신문 보기가 쉽 고 신문속에 잇말을 자세이 알어 보게 이라 각국에셔 사들이 남녀 무론고 본국 국문을 몬저 화 능통 후에야 외국 글을 오 법인

죠션셔 죠션 국문은 아니 오드도 한문만 공부  에 국문을 잘 아 사이 드물미라 죠션 국문고 한문고 비교여 보면 죠션국문이 한문 보다 얼마가 나흔거시 무어신고니 첫 호기가 쉬흔이 됴흔 글 이요 둘 이글이 죠션글이니 죠션 인민 들이 알어셔 을 한문신 국 문으로 써야 샹하 귀쳔이 모도보고 알어보기가 쉬흘터이라 한문만 늘써 버 릇고 국문은 폐 에 국문으로 쓴건 죠션 인민이 도로혀 잘 아러보지 못고 한문을 잘알아보니 그게 엇지 한심치 아니리요  국문을 알아보 기가 어려운건 다름이 아니라 쳣 말마을 이지 아니고 그져 줄줄 12) 그 뒷부분 “이는 글 모르는 사람에게 이름이라.”에서 글 가운데 한글이 포

햠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3) 최현배(1937), 󰡔한글의 바른 길󰡕 23쪽에 소개된 최현배의 현대어 번역에 따름.

(10)

려 쓰 에 글가 우희부터 지 아부터 지 몰나셔 몃번 일거 본후에야 글가 어부터 지 비로소 알고 일그니 국문으로 쓴편지 쟝 을 보자면 한문으로 쓴것 보다 더듸 보고  그나마 국문을 자조 아니 쓴

고로 셔툴어셔 잘못봄이라 그런고로 졍부에셔 리 명녕과 국가 문젹을 한문으로만 쓴즉 한문못 인민은 나모 말만 듯고 무 명녕인줄 알고 이 편이 친이 그글을 못 보니 그사은 무단이 병신이 됨이라

이것은 문자와 동일시되던 한자를 단순히 차이나 글자로 격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글자의 우수성을 말하고 있어 글자 의식에서 커다란 혁신이었다. 그 이전에 ‘진서’는 굳이 어느 나라 것이냐를 따 질 것 없는 하나뿐인 문자 그 자체였다. 해학 이기(1848-1909)도 「 부벽파론」에서 타파해야 할 구 문명의 폐단으로 사대주의와 신분 파 벌의 차별과 함께 한문 쓰기를 꼽고 있다.

우리 대한이 불행히 지나와 가까이 있어서 예악과 제도가 모두 수입되어 온 까닭에 작은 중화라 칭하지만, 지금 세계 각국에서 인민 중에 문자를 모 르는 자가 우리 대한이 가장 많고 지나가 그 다음이 된다. 왜 그런고 하면 천하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것이 한문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려서부터 흰머리가 될 때까지 그 죽을 힘을 다해도 이름을 이루는 것에 이르는 것도 아주 적다. 비록 지나의 한어와 한문이 하나로 통해 있더라도 이처럼 괴롭 고 어렵거늘 하물며 우리 대한처럼 국어와 한문이 판연히 둘로 나뉘어 겨 우 번역해서 통하는 정도라면 어찌 되겠는가.14)

14) 󰡔호남학보󰡕 1호(1908.6) 17쪽 我韓이 不幸與支那接近야 禮樂制度ㅣ 皆其所 輸到故로 稱爲小華나 然今六洲列邦에 其人之不識字者ㅣ 惟我韓이 最多고 而支那爲次焉니 何也오.天下之至難學{者ㅣ 漢文이 是己라. 人自童幼至白紛

야 盡其死力이라도 而得以成名者ㅣ 其亦尠矣라. 雖支那之漢語漢文이 合爲 一途라도 猶此苦難이어든 況我韓之國語漢文이 判爲兩物야 纔能譯通者也아.

(11)

한문 숭상의 폐단을 잘 지적하였다. 한자는 글자 수가 많고 어려워 많은 문맹자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 문자가 자신들의 언어에 기반하 고 있는 차이나인도 배우기 어려운 한문을, 우리는 번역을 통해 접근 하고 있으니 더욱 어렵지 않겠는가 묻고 있다. 어려서부터 배워서 늙 을 때까지 익혀도 제대로 이루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문맹율이 높으 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에 국문을 통해 한문을 타파함으 로써 어려움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세종대왕이 그 폐단을 우려하여 국문을 제정하였는데, 당시 사대부들이 제대로 받 들지 못하여 겨우 부녀자들이 소설 읽는 데에나 사용한 것이 애석하 다고 하였고, 갑오경장으로 국한문 혼용이 시행되었지만 무지한 자 들이 비방을 하고 있으니 심각하다고 하였다.15) 신문명의 수용을 위 해 국문만을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3. 한자도 우리 글자-수구파의 반론

이러한 혁신적 주장에 대하여 수구파의 반발도 거셌다.

학부 대신 신긔션씨의 샹쇼를 들으니 머리 고 양복 닙거시 화

사이 야만이 되 시초요 죠션 셰죠 대왕이 드신 죠션 글 쓰거슨 사

을 변여 즘승을 든거시라 엿고 태양역을 쓰지 말고 쳥국 졍샥을 밧들자고 엿고 이런 일을 모도 기를 이왕 졍부에 잇던 역적들이  일 이라고 엿스니 우리가 다른 말을 다 샹관 아니 되 이 몃가지 일에 말

거슨 불가불 말을 여야 나라히 독립국이 될터이요 션왕의 신 일이 

15) 󰡔호남학보󰡕 2호(1908.7)2쪽 “一曰 以國文으로 破漢文習慣之弊니 於戱我世宗 大王은 固箕子後首出之聖也라. 己知其弊之必至於斯故로 遂製國文(卽 訓民正 音)야 將欲一變民俗이러니 而當時士大夫ㅣ 不能承奉야 因循苟且야 于今四百年에 惟閭巷婦女ㅣ 讀小說外에 鮮有用者니 可勝惜哉아. 自甲午更 張之後로 國漢文雜作이 旣己行於官府{고 又將施{於學{界어 而不知者ㅣ 猶且訾毁不己니 其亦甚哉뎌.”

(12)

아 질지라 국문이란 거슨 죠션 글이요 셰죠 대왕셔 드신거시라 한문 보다 빅가 낫고 편리 즉 내 나라에 죠흔게 잇스면 그 거슬 쓰거시 올 치 이 쓰 일은 사을 즘승 드것과 다고 엿스니 션왕의 졉도 아니요 죠션 사을 위것도 아니라.16)

신기선의 이런 생각은 최만리의 상소문에 전형적으로 나타났던 주 자학자들의 화이의식을 되풀이한 것이다. 1907년 무렵, 동경 유학생 들의 회보에 한문 폐지와 국문 사용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논설이 실 리고 대한제국에서 국문연구소를 세우자 수구파의 반발이 본격적으 로 나타났다. 이완용⋅조중응이 유림계를 친일화시키려는 일제의 자 금 지원을 받아 신기선 등을 내세워 1907년 12월 서울에서 조직된 대동학회는 기관지 󰡔대동학회월보에서 이런 흐름에 반대하는 논의 를 실었다. 여기서 이런 논의를 대변했던 여규형은 한문이 우리 것이 라는 주장을 폈다.

우리 한국은 단군기자이래 한문을 병용해 온지 4천년 한문은 우리의 본 유한 글자다. 바깥으로부터 와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요즘 세속에서 한 문을 폐하고 국문만을 써야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하니, 어리석고 미혹됨 이 이와 같다.17)

오래 전부터 쓰였다는 것이 한문 폐지에 반대하는 근거가 되고 있 . 지금도 한자 폐지 운동에 대한 반발로 되풀이되는 논의가 이때부 터 나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자 폐지에 반대하는 전통적인 문화 의식에서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전의 관점에서는 한자 가 우리 것이 아닌 중국 것이기에 소중한 참 글자였다. 한자가 우리

16) 󰡔독립신문󰡕1896.6.3.

17) 󰡔대동학회월보󰡕창간호(1908.2.25.) 我韓自檀箕開國幷用漢文行之四千年漢文卽 我韓本有之文非自外襲而取之也今世俗之言曰廢漢文純用國文然後始可以立國 也愚迷如此

(13)

의 본유한 글자이기에 폐지할 수 없다는 주장은 우리 것이 아니라 중국 것이기에 받들자는 생각이 이미 사라졌음을 뜻한다.18) 이 논의 가 나온 뒤 약 20일이 지난 3월 15일에 󰡔황성신문󰡕에 황희성의 반론 이 실렸다.

夫自國自愛며 自國自重은 古今東西人同壹바라 法國 三尺童子執야 曰爾必英法이라 稱고 法英이라 勿稱라면 箠楚가 雨下야도 彼必不屈지며 日本의 壹個丐雛를 脅하야 曰爾必淸日이라 云

고 日淸이라 勿云라며 嚴令霜打하야도 彼必不肯리니 世界列强 立國精神卽此며 거 惜哉韓國幾百年來漢문학 朝鮮二字背後全付고 惟漢是慕며 惟漢是仰하며 是師 是尊며 是依是賴야 彼敬야 曰大國이라며 卑야 曰小國 이라고 國必稱華東이라며 문必稱眞諺이라던 惡果가 未刈야 國勢 가 如此不競더니 苦痛이 旣迫에 人心이 感悟하야 今是昨非婦孺도 皆 인19)

신채호의 글로 추정되는 󰡔대한매일신보󰡕의 「국한문의 경중」도 바 로 여규형을 비판하는 글이다.

今乃幾個癡人이 謬見妄執으로 芒毫가 泰山보다 大타며 一涓이 黃河 보다 廣타야 或會場演說에 聽衆이 雲集대 國문은 漢문附屬品에 不過

다고 大叫며 或雜誌文苑天下事惟漢文 能做다고 放言며 甚者문으로 삼으며 문으로 를고 國文으로 을으며 漢文으로 을 어 駸駸然國文廢止고 漢文崇尙랴 意思이니 俄人波蘭을 㓕고 波蘭語禁고 外語

用야 漸漸其故國思想을 澌減얏다더니 今日韓人은 自國문을 自禁 外國을 用코니 記者於是에 不必論國漢文輕重을 不得不一論

18) 논리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실은 한문 폐지, 한자 폐지의 반대 근거가 될 수 없다.

19) 󰡔황성신문󰡕1908.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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境遇에 處얏도다20)

국문보다 한문을 중시하는 태도가 어이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문 숭상은 오래 된 것이다. 주자학의 동문(同文) 개념에 따르면 오랑 캐를 면하려면 언문은 물론이고 이두도 쓰면 안 된다. 박제가가 「 학의에서 한 말은 충격적이다.

우리나라는 땅이 중국과 가깝고 음성도 대략 중국과 같다. 그러니 온 나 라 사람이 본래 말(한국어)을 깡그리 버린다 해도 안 될 것이 없다. 그렇게 한 뒤라야 오랑캐라는 한 글자[夷]로 불리는 (수치를) 면할 수 있고, 수천 리 우리나라 땅이 절로 주(周)⋅한(漢)⋅당(唐)⋅송(宋)의 풍속을 갖게 될 것이니,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21)

황현은 “경박한 사람이 한문은 응당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으나 형세가 막혀서 제지되었다22)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한문 또는 한자 폐 지 운동은 이제 막 시작된 데 불과하였다. 다만 한문에 가까운 현토체 국한문 혼용이 많았다는 것은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한자는 우리에게 동화된 글자인가

1) 한국과 일본-음독과 훈독

한문을 오래 써 왔기에 우리글자라는 말은 우리에게 동화된 글자 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한자가 차이나 것이기는 하되 동화되었기에 굳이 버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황성신 20) 󰡔대한매일신보󰡕 1908.3.17

21) 󰡔북학의󰡕 「내편」 한어. 我國地近中華, 音聲略同, 擧國人而盡棄本話, 無不可 之理, 夫然後, 夷之一字可免, 而環東土數千里, 自開一周漢唐宋之風氣矣, 豈非 大快,

22) 󰡔매천야록󰡕其狂佻者倡漢文當廢之論, 然勢格而止。고종 31년 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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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1908년 6월10일 치에 소개된 유길준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漢字借用이 已久야 其同化習慣國語一部成야시니 苟其訓讀는 法을 則其形이 雖曰漢字이나 即吾國文의 附屬品이며 補助物이라.

한자를 국문의 보조물로 보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차이나 것 이지만 동화된 습관에 따라 훈독을 하면 국문의 부속품, 보조물이라 보았다. 이는 한자를 엄연히 외국문자로 보되 동화된 습관을 따라서 읽으면 국문이 됨을 뜻한다. 이것은 일본을 모범으로 삼고 하는 말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문을 훈으로만 읽는 전통은 한국에서 전문 가들이나 기억하는 것인데 이것을 되살리기는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최현배의 기념비적 저작 󰡔글자의 혁명󰡕 55쪽에서 한자가 동 화된 글자라는 생각에 대한 논박이 보인다.

우리는 한 걸음을 사양하여 한자가 완전히 동화된 제이차의 한국 문자이 라 하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자를 버림이 불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리 동화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금후의 민족 문화의 발전에 도움 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거침이 된다면 마당히 이를 버리기에 주저할 것이 아니다. 아니, 그뿐 아니다. 동화는 고사하고 설령 자가 우리의 손으로 만 들어 낸 문자이라 할지라도 필요가 없게 되면, 의례히 버릴 것이 아닌가.

이런 주장은 한자를 누가 만들었냐는 것이 한글만 쓰느냐 않느냐 와 논리적으로 무관함을 지적한 것이다. 즉 미래를 생각하여 오랫동 안 한자를 써 오던 과거와의 단절을 각오하는 경우이다. 한글을 우리 글자라고 했을 때, 한자가 차이나 것임은 당연히 전제된다. 이것은 오랫동안 유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모화 의식에서 차이나와 다 른 우리 것은 야만적인 것이었다가 이제 우리 것이니까 존중해야 한 다는 주장으로 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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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반론이 있은 지 70년이 지난 이제 더 생각해 볼 것 은 바로 이 ‘동화’의 성격이다. 우리가 한자 한문을 대하는 태도를 일 본과 비교해 볼 때, 우선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철저한 차이나식 한문 읽기라는 점이다. 이런 점은 낱말에서도 그렇지만 문장 차원에서 두 드러진다. 일본에서 한문은 기본적으로 훈독이었으며 한국식 음독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문을 훈독할 때, 글 말체의 성격이 강하지만 일본 사람에게는 어쨌거나 일본어가 된다.

낱말 차원에서도 뜻으로 읽는 게 많다. 우리는 ‘강(江)’과 ‘산(山)’을 얻은 대신, ‘가람’을 잃고 ‘뫼’를 잃어버렸다. 일본은 그렇지 않다. 우 리는 땅이름을 우리 스스로가 없애 거의 모두 차이나식으로 만들었 지만 일본은 대부분 토박이말 이름이다.23) 일본은 한국처럼 엄격한 차이나식 한문 쓰기를 하지 않았다. 여기에 바로 일본 문화의 독자성 과 건강함이 깃들어 있다. 18세기 초에 일본에 갔던 통신사 신유한의 다음과 같은 기록은 놀랍기만 하다.

지금 이 나라의 습속을 보건대 글로 사람을 골라 쓰지도 않고 글로 공무 를 처리하지도 않는다. 관백 이하 각 주의 태수나 온갖 관리들 가운데 글을 아는 자라곤 하나도 없다. 다만 언문 마흔 여덟 자를 가지고 한자를 조금 섞어 보고문도 만들며 공문서며 편지를 써서 상하의 사정을 통할 뿐이니 관백의 통솔이 늘 이래 왔다.24)

신유한은 일본 출판 문화의 융성함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였는데

23) 최근 미국은 알라스카의 해발 6200m의 매킨리봉을 전통적인 알래스카 토착 민들이 부르던 이름 ‘데날리(Denaly)’로 개명하였다. ‘데날리’는 알래스카와 캐나다 일대의 아사바스카 지역 토착어로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 산은 제25대 대통령 제임스 매킨리(1897-1901)의 이름을 따서 매킨리로 불리어 왔 다. 외래 정복자가 토박이에게 이름을 되돌려 준 경우이다. 우리는 우리 스 스로가 우리 이름을 없앴다. 사람 이름의 경우에도 일본은 차이나와 다른 독자성이 뚜렷하다. 󰡔한겨레󰡕 2015.9.1.

24) 신유한(2006), 󰡔해유록󰡕 344쪽. 김찬순 옮김.(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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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까닭도 일본이 조선처럼 중국식 한문 쓰기를 고집하지 않았기 때 문이었다. 조선에서는 서점이 끝내 생겨나지 못했음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따라서 한자, 한문은 일본에서 일본어에 길들여졌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그런 평가를 한다.

일본 한자는 거의 모든 한자가 음독과 함께 훈독이 있는데 이 점이 중요 하다. 한자가 나타내는 발음 체계가 음독과 훈독에 의한 이중 표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일본의 한자와 중국의 한자는 공통으로 사용하는 글자체 가 다수 있지만 용법이 체계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다른 문자로 간주된다.25)

2) 훈독 현상은 어떻게 가능한가-기호론적 고찰

한자 또는 한문 읽기에서 훈독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일단 한 자가 표어 문자로서 국경을 넘어갈 때 말의 소리에 관한 고정된 정 보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반면에 알파벳 낱자(letters of alphabet)는 음소의 소리값만 담고 있 을 뿐 모든 의미를 빼버린 형식적 부호이다.26) 바로 이런 경우야말로 문자 기호가 특정 국적을 벗어나 국제적이 될 수 있는 경우이다. 한 자의 경우에 한국이나 일본에서 훈독을 한다면 한자의 중국식 음성 기표(음)은 한국이나 일본의 음성 기표로 대체되어 버린다. 소리로 읽으면 음은 약간의 변이를 동반하지만 중국의 음이 거의 그대로 들 어온다. 음독의 경우에 한자는 분명 중국 것이다. 알파벳 낱자처럼 여러 나라 언어를 적을 수 있는 글자 체계가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 는 것과 다르다.27)

여기서 한자가 중국 것이라는 게 배척이나 수용의 논리적 근거는

25) 이누카이 다카시(2013) 󰡔한자를 길들이다󰡕 62쪽. 류민화 옮김. 인문사.

26) 알파벳 또는 그 낱자의 개념에 대해서는 김영환(2012) 356-359쪽 참조.

27) 알파벳이 본디부터 특정한 민족의 언어에 결속되어 있지 않은 국제적인 쓰 기 체계였다. 데리다(2010) 6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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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배척과 수용에 심리적 이데올로기적 요인 은 될 수 있겠다. 작은 중화를 지향하던 사대부나 선비에게는 떠받들 근거가 되고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배척의 이유가 되기 쉽다. 한자 의 국적을 따져 배척이나 수용의 근거로 삼는 것은 논리적 관점에서 는 모두 발생론적 오류에 속한다.

한문에 대한 훈독의 전통이 강렬한 일본에서는 한문은 겉으로는 중국어이지만 사실상 번역된 문어체 일본어가 된다. 그러나 문장에 대한 훈독 전통은 한국에서는 끊어진 지 오래다.

이러한 훈독 현상은 기호가 소리에 관한 고정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은 모든 경우에 일어날 수 있다. 이를테면 오늘날 자연어를 적는 데는 글자 외에 기호로서 아라비아 숫자가 널리 쓰이고 있다. 아라비 아 숫자는 쉽게 국경을 넘어간다. “7”은 우리말에서는 “일곱”으로 또 는 “칠”로 읽히기도 한다. 영어에서는 “세븐”으로 읽는다. “7”은 소 리에 대한 고정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말에서도 “7시 7분”을

“일곱 시 칠 분”으로 읽는다. 시각적 기표로서는 같은 “7”이 우리말 에서 한국식으로 “일곱”으로 읽을 수도 있고(한자의 경우에 훈독에 해당), 중국식으로 “칠”(한자의 경우에 음독)로 읽을 수도 있다. 여기 서 아라비아 숫자 “7”은 소리에 괸한 고정된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 는 점에서 표어문자로서의 한자와 같은 성격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7”이 아랍이나 인도에서 어떤 소리로 읽히는지 알 필 요조차 없다. 이런 기호는 쉽게 국제적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아라비아 숫자가 아라비아 (또는 인도)에서 왔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나라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자도 훈독되는 한 쉽게 국 경을 넘어가며 국제적 성격을 갖는다. 보편 기호학, 보편 언어를 기 획했던 라이프니쯔는 한자의 이런 비표음적 성격에 큰 의미를 부여 하고 한자를 벙어리가 창안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28) 국경을 넘 28) 데리다(2010), 󰡔그라마톨로지󰡕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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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보편적이 되려면 비표음적이어야 한다는 게 보편 언어에 대한 요 구 조건이었다. 오늘날 여러 형식 언어들은 그에 대응하는 자연 언어 의 음성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표음적이다. 훈독할 때, 기호로서 의 한자는 엄밀하게 비표음적인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자연 언어의 소리와 쉽게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기호로서 국제적이 될 수 있다.

즉 한자의 청각 기표는 한국이나 일본의 청각 기표로 대체될 수 있 . 그러나 그 시각적 기표, 즉 모양(형)에서는 여전히 외국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각적 차원은 책을 읽을 때 명화하게 의식화 또는 대상 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자는 훈독될 때만 국제 적인 문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한자가 우리 것일 수 있느냐에서 중 요한 것은 우리가 한자를 어떻게 읽느냐 하는 문제이다.

3) 한국식 음독

그러나 한국식 한문 읽기는 훈독 전통이 거의 잊힌 철저한 차이나 식이었다. 일본과 판이하게 달랐다. 음독에서 한국식 음성 기표는 차 이나 발음의 방언적 변이에 그친다. 문장 차원에서는 어순이 차이나 식으로 변해 버린다. 한자 한문이 우리에게 동화되었다기보다, 우리 가 한문에 동화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 한자가 우리에게 동화되었다 는 것은 착각이며 오랜 인습의 폐해에 대해 비판적 반성이 빠져 있 음을 뜻한다. 한국의 선비와 사대부들은 중국과 판이한 ‘언문’을 버림 과 동시에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쓰기와 읽기 방식도 잊어버렸다.29)

29) 우리 사상사에서 이런 변화는 한국의 공자보다 공자의 한국을 추구한 역사 와 긴밀한 연관 관계가 있다. 최현배 1926. “내가 십 년 전 광도 유학 시대 에 그곳 고등 사범 학교 부속 박물관에서 󰡔논어󰡕에 대한 주석서 전람회를 본 일이 있었는데 그 정확한 숫자는 지금 기억에 남아 있지 아니하지마는 대략 백여 종 내지 이백여 종이나 된 듯하다. 그때에 나의, 한국에서 󰡔논어󰡕

라 하면 한금해야궁정본 하나밖에 못 보던 눈에 매우 큰 경탄과 깊은 참괴 를 느꼈다.” 󰡔동아 ‘일보󰡕 1926년 10월 7일. (󰡔한국 민족 갱생의 도󰡕. 1964년 판, 51쪽. 정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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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의 오류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한자를 사용하면 사대사상을 길러 준다는 말도 사리 불변의 망론이 아닐 수 없다 … 또 보라. 이웃 나라인 일본은 저희들의 고유 문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가르쳐서 한자와 가나를 혼용하고 있으나 이로 하여 그들 의 애국심이 손상되었다는 말을 누구한테도 들은 적이 없다.30)

우리나라에서 한자 한문 중심의 글쓰기는 극심한 모화 사상에서 나온 것이었고, 한글과 가나는 성격이나 그 구실에서 큰 차이가 있 . 일본에서는 훈독이 있어 토박이말도 코리아보다 잘 보존되어 있 , 가나와 한자가 공존할 수 있지만 한글과 한자는 그렇지 않다.31) 한자가 사대사상과 무과하다는 주장은 이보다 훨씬 앞서 나온 국문 전용의 본디 뜻에 관한 이광수의 다음과 같은 인식보다도 퇴보한 것 이다.

國文專用하고 漢文專廢다 함은 國文獨立함이요 絶對的 漢文을 學하지 말나함이 아니라 此 萬國이 隣家와 갓치 交通 時代를 當야 外國語學을 硏究이 學術上 實業上 政治上을 勿論고 急務될 것 은 異議가 無 바이니 漢文도 外國語의 一課로 學지라.32)

한자도 우리 글자라든가, 우리에게 동화된 글자라는 생각은 한자 가 우리만의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따라서 한자가 동아시아 세 나라 의 공통 글자라는 주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30) 이희승(1983) 「나의 어문관」, 󰡔어문연구󰡕 11.49쪽

31)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면 정확한 표기로 독서 능률이 나아지리라는 통속적 인 생각도 근거가 약하다.

32) 이광수(1908), 「국문과 한문의 과도시대」, 󰡔태극학보󰡕」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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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중국과 일본과 더불어 세 나라가 한자를 함께 씀으로서 많은 편 익이 있었다. 과거에 있어서 선진국인 중국의 한자를 받아들이노라고 애쓴 것이 결국은 한자 사용을 가져온 것이어니와, 장래에는 더욱 중국의 새 용 어가 자꼬 들어오는 거시 피할 수 없는 일이요, 또 우리 문화의 촉진에 도 움이 될 것이다.33)

이런 생각을 달리 표현한 말이 ‘한자 문화권’일 것이다. 글자를 기 준으로 어떤 문화권을 설정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 과 아르헨티나가 같은 문화권에 속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문화의 보 편성에 관한 소박한 생각에서 유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학문과 문화의 활동이 외국 것을 수입하는 데 전념하는 것이란 생각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나름의 창조적 관점을 갖고 외래 문화와 언어를 받아들이는 전통을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세워가야 한다. 차 이나를 보면, 버스, 아파트, 텔레비전, 컴퓨터 등도 모두 뜻에 따라 바꾸어 쓰고 있다.

한자 문화권의 내용을 유교 문화로 잡더라도 세 나라의 차이가 무 척 크다. 한국의 성리학은 주자학 일색이라 숨막힐 정도로 답답하다.

또 너무나 깊이 중화 사상에 젖어 자신에 대한 망각과 모멸이 매우 심하다. 그 유명한 최만리의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은 한자를 ‘성현의 문자’라 하고 훈민정음은 오랑캐로 되는 것이라 폭언을 하고 있다.

송시열이나 최익현의 글을 보면 우리 겨레를 스스로 ‘동쪽 오랑캐 민 ’(夷民)이라 하고 고유 풍속을 ‘동쪽 오랑캐 풍속’(夷俗)이라 부르고 있다. 이렇게 ‘작은 중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버릇은 국제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어느덧 ‘작은 미국’, ‘작은 일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버 릇으로 바뀌어 버렸다. 오늘날 미국말 숭배로 말미암는 우리 말글의 훼손은 말하기도 새삼스런 일이다. 주자학은 차이나에서 생겨났지만 차이나인들은 우리처럼 주자학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일본 유학에는 33) 최현배(1947), 󰡔글자의 혁명󰡕 70-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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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사상에 대항하는 흐름이 끊이지 않고 흘렀다. ‘주자의 한국’만 있고 ‘한국의 주자’가 없는 우리와는 큰 차이가 난다.

차이나는 인도의 불교를 받아들일 때 한문 불경부터 만들었으나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문 불경이나 언해 수준의 불경이 대부 분이었다. 지난날 세 나라가 한문을 썼다는 점에서 겉보기의 공통성 이 있을 뿐이다. 얼핏 보면 같지만 들여다보면 다름을 새삼 알게 된 . 한자와 한문 숭상의 폐해는 차이나와 일본보다 한국에서 가장 컸 . 한자 문화권을 내세움은 차이나이나 일본을 뒤따라 가자는 말이 되는데, 우리와 그들은 매우 다르다. 하물며 동아시아의 패권을 추구 하는 그들과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정치 경제적 현실이 같을 수 없음은 두 번 다시 말할 것도 없다

중국과 일본이 다 한 모양으로 한자의 독한 구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 여서 고통을 하고 있으니, 그 중에서도 우리 한국이 가장 먼저 그 해독을 벗어나면, 그만큼 더 행복이 아닌가. 무슨 맛으로, 항상, 남의 뒤꽁문이만 따라가려는가. 가로되: “중국과 일본이 먼저 한자 폐지를 하거든 우리도 하 자”고. 이 어쩐 사려없고, 기력없는 소리인고.34)

삼국 공통의 문자라 하나 현실적으로 차이가 적지 않으므로 이 문 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일찍부터 눈에 뜨인다. 이 무렵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에는 한자 통일회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회장은 학부대신 이재곤이었다. 이 모임은 또 이토가 사살되자 앞장서서 추 도회를 열었다.35) 한자 문화권 개념은 지난날 차이나 중심의 동문 질 서의 변화된 형태이다.

34) 최현배(1947), 󰡔글자의 혁명󰡕 72쪽

35) 󰡔황성신문󰡕1909.12.7. 󰡔대한매일신보」1909.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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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라틴말과 한문, 라틴 알파벳과 한자 - 왜 같지 않나.

한자의 국적을 아예 무시하고 이를 중세의 라틴말처럼 보자는 생 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한자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을까.

西洋에서는 羅馬字外國文字로 생각하지 않는다. 各各 自己共用 文字로 생각한다. 羅馬字는 그 文化圈 안에서 棲息하고 있는 各民族 用 文字로 생각한다. 지금 東洋으로 돌아와 생각할 때에, 이 地域各民 漢文化共有하고 必然的結果漢字共有하고 있다. 그리하여 漢字는 實質的으로 東洋 民族들의 共用文字다. 또 이것이 近年에 새로 들 어온 것도 아니고 數千年 使用해 내려 온 文字다. 이것을 外國 文字라 하 排斥하고 驅逐해야 하겠는가. 이것은 너무 偏狹하고 固陋思考方式 라 아니할 수 없다.36)

여기서 이희승은 한자가 외국 문자임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 사실 이 한자 배척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일단 근거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자와 라틴 알파벳이 글 자의 성격으로 결코 같을 수 없음을 외면하였다.

한자는 훈독하지 않는 한 시각적 기표와 청각적 기표가 모두 중국 것이다. 중국식 청각 기표(한자의 음)가 사라져야만 외국 문자로서의 성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문은 내용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차이나 의 역사와 문학, 철학이다. 그것은 오늘날 차이나와 직결된다. 라틴어 는 오늘날의 서구 언어처럼 로마자로 적혔다. 라틴어와 오늘날의 서 구어는 크게 보아 같은 어족에 속한다. 라틴어의 유산은 유럽 안에서 는 적어도 어떤 특정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중세 보편문 어로서 라틴어는 유럽 각국에 대하여 대등하게 외래어다. 그러나 한 문은 차이나어의 옛말이고 내용으로 보면 제국의 운영 원리를 담고

36) 이희승(1983) 「나의 어문관」 󰡔어문연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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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 강한 중화주의적 색채를 띤다. 한국어와 차이나어는 계통이 판 이하다. 글자도 한자와 알파벳이라는 반대되는 성격을 갖고 있다. 한 자는 차이나라는 특정한 나라의 글자란 성격이 뚜렷하다. 한문은 그 형식이나 내용에서 차이나 문화와 분리되기 어렵다. 한자가 차이나 밖으로 나갔을 때 이를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없다면 끝까지 외국 문자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알파벳은 한자와 달리 특정한 자연 언어 특정한 민족과 연 결되어 있지 않다. 의미가 없는 형식적 기호, 기의(뜻, 의) 없는 기표 (꼴, 소리)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회화를 대리 보충하고 무의미한 분석까지 밀어붙여진 분석, 이것이 알파 벳과 문명 사회에 고유한 합리성이다. 그것이 가져온 것은 대리 표상체의 절대적 익명성이고 고유성의 절대적 상실이다.37)

알파벳은 순수한 대리 표상체들과만 관련을 맺는다. 그것은 일정 기표 들의 체계인데, 이 기표들의 기의들은 기표들, 즉 음소이다. 기호들의 유통 은 무한정으로 수월해진다. 알파벳은 문자들 가운데 가장 무언적인 문자이 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적으로 어떤 언어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 나 그것은 목소리에 무관하면서도 그것에 더 충실하며 그것을 더 잘 대리 표상한다.38)

한글과 한국어의 결합은 한 알파벳과 한 자연 언어가 결합한 경우 인데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알파벳은 특정한 언어에 얽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성격 자체가 국제적이다. 원칙상 알파벳은 모든 언어 를 적을 수 있다. 따라서 한글이 우리의 고유 문자란 생각도 이론적 맥락에서는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39) 현실에서 한국어와 직접적

37) 데리다(2010) 󰡔그라마톨로지󰡕 665쪽 38) 데리다(2010) 󰡔그라마톨로지󰡕 666쪽

39) 한글이 알파벳의 한 갈래임을 잘 의식하지 못하는 중요한 까닭은 마디 단위 로 모아쓰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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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연관되어 있지만, 차이나어나 일본어를 적을 수도 있다. 라틴자 나 한글은 원칙적으로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와 분리될 수 있는 글자 . 한글이 우리 겨레의 고유한 글자라는 주장은 일시적이다. 한문이 나 라틴어는 중세의 보편 문어로서 지식인 사이의 소통 수단이었다 는 점에서만 공통성을 갖는다.

유럽에서는 라틴어는 유럽어가 크게 어족이 같고 문자도 라틴 알 파벳으로 공통이었다. 한자 한문에서 한글로의 전환은 고립어에서 교착어로, 뜻글자에서 소리글자로 극단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었 . 소리글자는 뜻글자에 비기면 더 민주적이고 국제적이라 할 수 있 . 근대화 과정에서 이런 격렬한 전환은 다른 나라에서는 아마도 비 슷한 예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에서 중세적 질곡 , 한자 한문 쓰기의 폐해가 컸다는 말이 된다.40)

우리가 한자의 국적 문제를 의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자를 기표 의 차원, 즉 그것의 감각적 물질적 차원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기의의 차원에서만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문자의 원형적인 단계에는 이를테면 자연적인 보편성이 있었다. 화화는 알파벳과 같이 어떤 특정한 언어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모든 감각적 존재를 재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보편적 문자다. 그러 나 언어에 대한 그것의 자유는 회화를 그것의 모델과 분리시키는 거리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를 이 모델과 연결시키는 모방적 인접성에 기인 한다. 반면에 표음 문자의 관념적 보편성은 소리에 대한, 그리고 음성언어 에 의해 기호화된 의미에 대한 표음 문자의 무한한 거리에 기인한다. 이 양 극 사이에서 보편성은 상실된다. 우리는 분명히 양극 사이라고 말한다. 왜 냐하면 우리가 확인한 바와 같이, 순순한 회화 문자와 순수한 표음 서법은

40) 일본은 일찍부터 한자의 단순화로 문자 생활을 해 나간 결과, 문자 기록 유 산이 우리에 비해 훨씬 풍부하다. 일반 백성들의 식자율도 한국보다 높았고 번역 문화의 전통도 뿌리깊다. 출판과 도서 유통도 한국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하였다. 신유한, 󰡔해유록󰡕 245, 34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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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대표하는 두 관념이기 때문이다. 순수 현전의 두 관념들. 첫 번째의 경우는 그것의 완전한 모방에서 대리된 사물의 현전이며, 두 번째의 경우는 음성언어 자체가 자신에 현전하는 것이다. 매번 기표는 기의의 현전 앞에서 지워지는 경향이 있다.41)

Ⅲ. 맺음말

한자도 우리 것이란 주장은 근대 이후 국어 의식이 싹틈에 따라 한자 한문 폐지 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생겨났다. 오래 써온 동화된 글자라든가, 동아시아 공통의 글자라는 이유를 많이 내 세웠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이론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기의는 빠지고 기표만 남은 알파벳 낱자는 형식적 기호이기에 쉽게 국경을 넘어 국제적이 된다. 라틴 알파벳의 경우, 그 국적을 따지는 게 별 의 미가 없다. 한자는 의미가 추상화되지 않기 때문에 이처럼 국제화되 지 않는다.

한자가 중국 것이란 사실은 한자 폐지의 논리적 타당성과는 무관 한 일이지만 심리적 이데올로기적으로 큰 호소력을 갖는다. 한자의 (형, 形)과 소리(음,音)은 기호로서의 한자가 갖는 두 기표라고 할 수 있는데 한자가 국경을 넘어가려면 청각 기표 즉 차이나의 한자음 이 사라지고 다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山’은 한국이나 일본으로 건너올 때 소리가 ‘뫼’나 ‘야마’로 변해야 한다. 훈독이 바로 이런 경 우이다. 그러나 한국식 음독 전통에서는 한자의 꼴, 소리, 뜻이 모두 거의 그대로 건너온다. 한문도 한국에서는 중국어 어순에 따라 읽으 므로 한국어가 될 수 없다. 한자나 한문은 일본에서는 일본 글자가 될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한국 글자가 될 수 없다. 여기서 주의할 점 41) 데리다,(2010) 󰡔그라마톨로지󰡕 668-66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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