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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전하는 세상의 스펙터클-
담당교수 전범주
조형3
조형예술작품에 있어 전개과정의 논리적 배경과 결과물 교수작품을 중심으로 9주차
피카소, 게르니카,349x775,1937
폭력의 본성, 연민의 한계 그리고 양심의 명령
스펙터클이 아닌 실제의 세계, 디지털 허상이 아닌 아날로그의 실 체를 왜곡되지 않은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동시대의 예술가의 역 할과 의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 안에서 살아가죠. 그 환경이란 자연적인 것 부터 공동체, 정치, 사회, 경제 등 인위적인 것들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매우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관심에 대해 어떠하든 의견을 표출하죠. 누군가는 글로 누군가는 음악으로 그리고 저나 여러분 같 은 시각 예술가는 무엇인가 만들어 그것을 통해 그 의견을 얘기합니다.
많은 이들이 제게 묻곤 합니다.
넌 왜 좀 예쁘고 아름다운 얘기에 관심을 갖지 않느냐고, 세상엔 예쁘고 밝은 일들이 너무도 많은데 왜 굳이 어두운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 불편한 얘기만 하느냐고 말이 죠. 사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하고많은 직업 중 예술가가 되었니? 라고 묻 는 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질문으로 제겐 답하기 매우 힘든 질문입니다.
굳이 대답을 찾자면 아마도 사람들이 얘기하는 ‘예쁘다’는 것에 그리 흥미가 없는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전범주, 가장, 60x80x50cm, 1996
고뇌의 원근법 저자인 서경석 교수는 ‘예쁘다’는 찬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쁘다’
는 것은 보는 이가 그다지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지루하다는 것도 된다는 얘기이죠.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거장들은 작품을 예쁘게 그려 사람들을 위로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진실이 아무리 추 하더라도 철저히 직시하면서 그리려 했죠.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거기에 ‘추’가
‘미’로 승화하는 예술적인 순간이 생깁니다.
‘미의식’이란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다.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할 것인가‘ 를 판단하는 의식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지성인(예술가 역시)의 조건은 신성하고 절대적인 권위를 거 부하는 비판정신이라 하였습니다. 또 제임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논 세 르비암 non serviam-누구도 섬기지 말것-이라고도 했었죠.
고등학생때 만난 독일 표현주의 작가 캐태콜비츠의 작업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제 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드리우는 대부분의 어둠은 누군가 밝음을 독차지하려 남들 위에 군림하여 생 기는 그늘입니다. 이 어두움이 왜 우리에게 드리우는지를 말하는 게 아마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미지 출처, 참조. (작가본인작품 외)
http://www.saatchigallery.com/aipe/andy_warhol.htm https://www.google.co.kr/search
Michael Light, 100 Suns, ALFRED A. KNOPF NEW YORK , 2003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이재원 역, 이후, 2004.
서경석, 고뇌의 원근법, 박소현 옮김, 돌베개, 2009.
진중권,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휴머니스트, 2013.
에드워드 W. 사이드, 권력과 지성인, 전신욱,서봉섭 역, 도서출판 창,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