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에 나타난 성(性)과 병(病)의 상징성 연구
―융 개성화 이론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Sex and disease Symbolism in Kim Soo-young's Poetry
―focused on Jung’s theory of Individualization
1)김지훈*
2)
∥차 례∥
1. 머리말 2. 개성화와 시적 주체의 그림자 3. 성(性)의 주체와 그림자 4. 병(病)의 주체와 그림자 5. 맺음말
【국문초록】
이 논문은 김수영 시에 나타난 ‘그림자(Shadow)’ 형상화 방법을
**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연구전담조교수
** 이 연구는 2016년도 단국대학교 대학연구비의 지원으로 연구되었음.“The present research was conducted by the research fund of Dankook university in 2016”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융에 따르면 ‘그림자’는 인간의 무의식 에 잠재된 인격으로 억압하고 숨겨야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과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심신의 안정과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선행연구에서 김수영의 시가 주 로 의식적·사회적 관점에서 논의되었다면 필자는 지금까지 선행연 구에서 미흡했던 한 개인의 일상과 의식을 전복하는 성(性)과 병 (病)을 모티프로 한 시편을 무의식적·개인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의 시에 형상화된 내향적·대상지향적·고백체지향적 시적 주체는 무의식 속 ‘그림자’를 형상화하는 데 적극적이다. 특히, ‘성(性)’과
‘병(病)’을 모티프로 한 작품에서 그들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즉, 사이의 존재로서 ‘같은 대상’도 ‘다른 시어’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 으며, ‘같은 시어’도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내포하고 시적 긴장을 형성하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해 ‘그림자’ 형상화의 긍정 성을 함의하고 있으며, 개성화의 일반적인 원리를 지향하고 있음 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 김수영의 시에서 ‘성’과 ‘병’의 ‘그림자’는
‘부정’과 ‘현존’의 의미를 가로질러 심층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실 존’을 증명하는 원동력으로 분석된다.
*주제어: 김수영, 시, 그림자, 사이, 성(性), 병(病), 분석심리학, 개성화
1. 머리말
이 논문은 개성화1)의 관점에서 김수영 시2)의 ‘그림자’ 형상화 방법을 살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지금까지 선행연구에서 규명되지 않은 성(性)과 병(病)을 모티프로 한 그의 시편은 그가 저항의 대상으로 인식한 적(敵)의 이미지를 함 의하면서,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개성화에서 반드시 부딪히게 되는 무의식 속 ‘그림자’의 속성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의 시에 쓰인 ‘적’,
‘그림자’, ‘설움’, ‘분노’ 등의 시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로질러 자기실현 즉, 진정한 자기가 되는 과정으로써 긍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수영의 시를 관통하는 주요한 정서가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 는 것은”( 거미 , 전집1, 64쪽) /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전집1, 313쪽)에서처럼 ‘설움과 분노’라는 점에는 대 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서가 지금 우리에게 환기하는 바는 무 엇인가? 또 그것이 정서적 울림이나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어떤 까닭에서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수영 시의 시적 주체는 끊임없는 자기갱신을 통해 현존 을 가로질러 실존적 주체를 증명하기 위해 금기의 주제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수영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그것을 지나치게 절제하는 것을 정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3)가령, 시 김일성 만세 에서 “김일성 만세/ 한국 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와 같이 당대 그리고 지금
1) 개성화Individuation란 개체가 되는 것, 본래의 자기Selbst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자기화’나 ‘자기실현’으로 번역할 수 있다. Jung C.G. 한국융연구원 C.G.융저작 번역위원회, 인격과 전이(융 기본저작집3), 솔출판사, 2007, 75쪽 참 조.
2) 본 논문에 인용된 기본 텍스트는 민음사에서 발행된 김수영전집1(2015), 김수 영전집2(2014),임을 밝힌다. 이후 표기는 전집1, 전집2로 통일한다.
3) 유종호, 김수영, 눈 , 시 읽기의 방법, 삶과꿈, 2005, 139-140쪽.
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주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시가 선행연구에서 주로 의식적·사회적 관점에서 논의되었다면 필자는 지금까지 선 행연구에서 미흡했던 한 개인의 일상과 의식을 전복하는 성(性)과 병(病)을 모 티프로 한 시편을 무의식적·개인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김수영의 시에서 금기 와 관련된 주제는 시적 주체의 슬픔과 분노 서러움 등의 정서로 표출되는 특징 이 있다. 분석심리학자 융은 슬픔, 분노, 파괴 등의 본능을 인간의 무의식 속 그림자의 속성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전체성(全體性)을 지향하며 태 어나면서부터 자기실현의 욕구 즉, 개성화에 대한 본능을 지니고 태어난다. 여 기서 문제는 ‘그림자’다. 개성화 과정에서 반드시 부딪치게 되는 그림자는 일상 에서 숨기고 싶은 부분이며 억압 기제 속에 잠재된 인격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시에서 시인이 사용한 시어의 특징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시인이 구사하는 시어에서 발생하는 정서가 시의 전체 의미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 이다. 김수영의 시어는 “거칠고 속되며 투박한 생활어가 관념어와 함께 거침없 이 사용”4)되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김수영은 무의식 속 그림자를 숨기거 나 피하지 않고 시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형상화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그의 시가 독자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 고 다양한 관점에서 읽힐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김수영 시의 문체적 특징으로 ‘고백체’5)를 사용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 요가 있다. 그가 1960년대에 들어서 자신의 치부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고백체 지향 시를 쓴 것은 독자를 비롯한 타자6)를 예민하게 의식함을 알 수 있는 중요
4) 여태천, 시어의 특성과 언어의식 , 김수영의 시와 언어, 월인, 2005, 287쪽.
5) 이러한 관점에서 성(性)을 모티프로 한 시로 여자(1963) , 성(1968) 등이 있다.
여기서 시적 주체는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인물들이 저지를 수 있는 부정적 행동의 양상들을 풍자적 희화화를 통해 폭로하지만, 그러한 희화화의 익살스러움 이 비판과 부정의 대상이 되는 모든 인물들의 인간적 면모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중략― 그것들이 그렇게 폭로되고 부정됨으로써 인간 그 자체는 오히려 구원의 빛 속에 놓이게 된다.” 강웅식, 김수영 문학의 연대기 , 김수영 신화의 이면, 청 동거울, 2012, 60쪽 참조.
6) 이와 관련해서는 본론에서 김수영 시의 시적 주체를 ‘내향형’으로 분석하고 ‘대상
한 단서다. 그의 시에서 시적 주체의 타자에 대한 의식은 갈등7)을 함의한다.
다시 말해 ‘개인적 욕망’ 즉, 종전의 시에서 전례가 없던 욕망을 과감하게 또 지속적으로, 비판적 목소리로 표출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김수영 시에 대한 선행연구는 주로 의식적·사회적 측면에서 규명 되었다. 필자는 그간 연구에서 미흡했던 무의식적·개인적 측면에 비중을 두고 접근하려 한다. 구체적으로 그의 시에 나타난 정서와 시어가 발생하게 된 뿌리 를 분석심리학의 핵심개념인 개성화(個性化)의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규명하고 자 한다.
2. 개성화와 시적 주체의 그림자
개성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아(自我)를 너머 자기(自己)를 실현하는 것이 다. 개성화 과정에서 자아와 반드시 부딪치게 되는 것이 무의식 속 ‘그림자’다.
자아가 의식에 속하는 페르소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자기는 의식과 더 불어 무의식 속 그림자8)까지 포괄하는 더 큰 개념이다. 다시 말해 분석심리학
지향적 시’ 로 규정하여 자세히 살펴보겠다. 그의 시에는 여편네, 친구, 아내, 식모, 아버지 등 다양한 타자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일상 공간에서 마주칠 수 있는 구체 적 대상들이며, 그들의 시선을 통해 시적 주체가 탄생한다. 김수영은 이러한 타자 가 던지는 시선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억압에 대한 투쟁적 주체를 형상화한다. 여 기서 중요한 것은 타자의 그림자가 지닌 이중성이다.
7) 김수영 시의 특징 중 하나인 ‘연극성’은 갈등과 긴장을 통해 평면성을 극복하게 한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주제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며 비판의식을 통해 타자와 나 즉,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 묻혀버린 ‘개인’을 찾고자 하는 데 의의가 있 다.
8) “우리는 최소한 개인적인 무의식을 지양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인격의 살아 있는 부분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함께 살아가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것 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것이 해롭지 않다고 꾸밀 수도 없다.” Jung C.G. 한국융 연구원 C.G.융저작 번역위원회, 원형과 무의식(융 기본저작집2), 솔출판사, 2006, 127쪽.
에서 인간으로서 자기실현은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가는 것에만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다. 즉, 사회가 요구하는 페르소나는 물론 무의식 속 그림자까지 포 괄하는 총체적 인간을 재조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수영의 시에 형상화된 시적 주체의 사유와 행위는 사회적 동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 과는 또 다른 문제점을 제기한다. 가령, 사회적 관점에서 “우산대로/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죄와 벌)”와 같이 가정폭력으로 치부될만한 행위, “그것하고 와 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性)”, “내가 지금 6학년 아이들의 과외공부집에서 만난 학부형회의 어떤 어머니에게 느낀 여자의 감각 (여자).”에서처럼 불륜행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김수영의 시에서 “적 이 어디에 있느냐?/ 적은 꼭 있어야 하느냐?(적), “우리는 무슨 적이든 적을 갖 고 있다/ 적에는 가벼운 적도 무거운 적도 없다(적1), “제일 피곤할 때 적에 대 한다/ 날이 흐릴 때면 너와 대한다/ 가장 가까운 적에 대한다/ 가장 사랑하는 적에 대한다/ 우연한 싸움에 이겨보려고”(적2)와 같이 직접적으로 적(敵)이라 는 시어로 형상화되는 경우와 적(敵)이라는 시어가 그림자의 속성을 내포하고 간접적으로 형상화되는 경우가 있다. 선행연구에서 ‘적(敵)’은 크게 세 가지 범 주로 나누어진다. “첫째, 주로 ‘외부의 권력 주체’ 혹은 ‘독점적 권력’으로서 역 사적 관점, 둘째, 주로 내부적이며 일상생활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 것으로, 물질중심적인 관점, 셋째, 실상이 파악되지 않고 주체의 내․외부에 산재하여 구분이 어려우며 규정 불가능한 것”9)이 그것이다. 여기서 “구분이 어려우며 규정 불가능한 것”은 융이 말한 무의식 속 ‘그림자’10)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인 간의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자는 무의식에 속하며 일 상에서 억압되는 인격이다. 하지만 김수영 시의 시적 주체는 그림자 형상화에 적극적이다. 지금까지 선행연구에서 욕망의 긍정성을 전제로 직접적으로 쓰인 시어, ‘적(敵)에 한정하여 논의가 되었다면, 필자는 연구가 미흡했던 성(性)과
9) 고명재, 김수영 시의 '적(敵)' 연구, 영남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13, 120-122쪽.
10) 김수영의 시에서 ‘적’은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숨기고 싶은 인격인 ‘그림자’의 속성을 함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성’과 ‘병’ 그리고 ‘병적 징후’ 등이 그것이다.
병(病)을 모티프로 한 시편에 주목을 했다. 이것은 적(敵)에 대한 시적 주체의 심리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상징적 시어로 분석된다. 다시 말해 성(性)과 병(病) 은 인간의 본성과 본질에서 피할 수 없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적(敵)의 개 념 즉, ‘그림자’의 속성을 함의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적(敵)과 그림자는 동일시되며, 성(性)과 병(病)은 그것의 구체적인 모티프로 분석된다.
한편, 김수영의 시에서 선행연구자들이 가장 주목한 시어가 동사, ‘보다’11) 이다. 이것은 다른 시어에 비해 그 사용빈도가 높기도 하고, 의미를 확장하고 조율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 시적 주체가 보는 대상 과 행위는 크게 육안과 심미안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필자자 주목한 것 은 후자다. 시어 ‘보다’는 ‘개성화과정’ 중에 주체가 무의식 속 그림자를 응시 하고 직시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을 이루는 의식과 무의 식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자기(自己)’를 직시하고 응시하는 과정이며, 궁 극적으로 자기실현이 목적이다.
김수영의 시에서 그림자는 적(敵)의 개념을 함의하면서 첫째, 성(性)이 모 티프가 되는 시, 둘째, 병리학적 관점에서 ‘병(病)’이나 ‘아픔’이 모티프가 되 는 시에서 눈에 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선행연구에서 그의 시에서 공감대 를 형성하는 요인 즉,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시어’, ‘풍자와 비판’ 그리고 ‘고백 체’를 사용하게 된 배경이다. 앞당겨 말하자면 이러한 배경이 주는 시적 긴장 은 시적 주체가 무의식 속 그림자를 피하거나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형상 화하는 데서 기인한다. 하지만 그림자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했다고 해서 그에 비례해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김수영 시의 공감대 형성 요인은 첫 째, 성(性)과 병(病)과 같이 금기시하는 문제를 육화하고 내면화하여 인간의 실존을 증명하는 것, 둘째, 자유분방하고 직설적인 풍자, 평이하지만 구체적 11) 김수영의 시에서 동사, ‘보다’는 같은 계열로 분류되는 ‘말하다’, ‘쓰다’ 등의 인식
의 언어에 비해 훨씬 많이 사용되었다.
인 시어, 같은 대상을 심리적 상황에 따라 다른 시어로 표현하기 등 한 편의 텍스트를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 가능하게 한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관 점에서 그의 시에서 시적 주체를 통해 형상화된 ‘성(性)’과 ‘병(病)’의 주체는 현존과 실존을 아우르는 중요한 매개체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김수영의 시에서 구원의 문제 즉, 자기구원 더 나아가 자기실현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 는 단서를 제공한다.
“나에게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좀처럼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죽음과 가난과 매명(賣名)이다. 죽음의 구원.
아직도 나는 시를 통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중략…)가난의 구원. 길가에서 매일같이 만나는 신문 파는 불쌍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자책감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역사를 긴 눈으로 보라 고 하지만, 그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저애들은 내 자식만큼도 행복 하지 못한가하는 막다른 수치감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나는 40여 년 동안을 문자 그대로 피해 살기만 한 셈이다. 매명의 구원. 지난 1년 동안에만 하더라도 나의 산문행위는 모두가 원고료를 벌기 위한 매문·매명 행위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에 하고 있는 것도 그것이다. 진정한 <나>의 생활로부터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 고, 나의 머리는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받을 원고료의 금액에서 헤어날 사이가 없 다.” ― 마리서사 부분(1966), 전집 2권, 107-108쪽.
위의 인용문에서 구원되어야 할 대상이 가시적으로는 ‘타자’로 상정되어 있 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다. 다시 말해 “진정한 나의 생활”이 없는 가운데에서 처럼 여기서 구원의 문제는 주체적 ‘자기’를 찾고 회복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읽어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길가에서 신문 파는 아이들은 왜 내 자식 만큼 행복하지 못한가’에서처럼 주체의 욕망이 타자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 이다. 이러한 특성은 그의 시가 ‘대상지향적 시’12)를 쓰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 다. 심리학적 유형론의 관점에서 ‘대상지향적 시’의 시적 주체는 ‘주체지향적
시’에 비해 내향형13)에 가깝다. 같은 맥락에서 김지녀는 김수영 시의 시적 주 체를 “수동적 주체”14)로 보았다. 이러한 “수동적 주체”는 타자의 시선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주체로 규정된다.
위의 인용문에서 주체의 ‘자책감’과 ‘수치감’은 ‘그림자’15)를 피하거나 숨기 지 않고 응시하고 직시한 결과다. 융은 자책감이나 수치감 또한 개인의 전체 성16)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파악했다. 그는 이러한 감정을 마냥 숨기거나 억 압만할 경우 심신의 건강에 치명적이며 극단적으로는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해결 하는 방법으로 그는 ‘적극적 상상’17)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으 로 정신적 활동인 예술 활동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임상논문18)을 통해 12) 시적 경향에 따라 크게 ‘주체 지향적 시’와 ‘대상 지향적 시’로 나눌 수 있다. 전자 는 시에 ‘나’가 직접적으로 언급되거나 ‘나’가 언급되지 않더라도 시적 주체를 중 심으로 전개되는 즉, 술어적 주체를 형상화한 시를 의미하며, 후자는 ‘나’가 아닌 대상을 통해 처음부터 시적 주체와 대상과의 거리감을 가시화하고 주제를 전달 하는 경향의 시를 의미한다.
13) 융은 인간의 심리학적 유형을 크게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누었다. 여기서 내 향형은 흔히 내성적이라는 말과 구분된다. 전자는 “세계는 결코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보이는 것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는 생각을 지닌 유형으로 내향형과 외향형은 객체에 대한 태도에 따라 구분된다.
외향형은 객체를 주체보다 중요시하고, 내향형은 객체보다 주체를 중요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수영 시의 시적 주체는 사회통념과는 또 다른 문제적 인간형 을 지향하는 내향형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분석된다.
14) 김지녀, 김수영 시에 나타나는 타자의 ‘시선’과 ‘자유’의 의미 , 한국문예비평연 구 34권0호, 2011, 135쪽.
15) “그림자는 무의식 속 원형적 감정, 반사회적 인격이다. 이것은 의식과 조화를 통 해 긍정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Jung C.G. 한국융연구원 C.G. 융저작 번역 위원회, 원형과 무의식(융 기본저작집2), 솔출판사, 2006, 73쪽 참조.
16) “전체성은 의식뿐 아니라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등 무의식의 모든 속성을 포 함한 전체를 의미한다. 전체가 되고자 하는 경향이란 분열을 지양하고자 하는 경 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Jung C.G, 이부영 옮김, 마음의 구조와 기능 , 분석심 리학, 일조각, 2013, 127쪽 참조.
17) “적극적 상상은 수동적이고 의식의 개입이 미약한 꿈이나 환상과는 확연하게 구 별된다. 즉, 꿈이나 환상이 막연한 ‘생각’을 뜻하는 것이라면 적극적 상상은 내면 적인 심상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사고행위의 일종이다.” Jung C.G, . Hall G.S, Jacobi J.(1986), 설영환 역, 융 심리학 해설 , 선영사, 317쪽.
증명한 바 있다. 시는 비교적 완성된 텍스트로서 상징과 은유를 통해 ‘그림자’
를 형상화하는 데 적합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수영 시의 기저에 흐르는 자책 감과 수치감 그리고 분노와 서러움 등의 정서는 부정적인 것으로만 판단할 문 제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림자 형상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성화이다. ‘개성 화’는 또 다른 말로 ‘자기실현’으로 해석되며, 성인이나 군자가 되는 것과는 다 르다. 이것은 무의식 속 숨기고 싶은 인격인 그림자를 직시하고 응시함으로써 의식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자기실현을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융은
‘자아(自我)’와 ‘자기(自己)’19)를 명백하게 구분한다. 전자가 사회가 바라는 인 격(페르소나/가면)이라면, 후자는 전자를 비롯하여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전체성(全體性)20)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기’
가 된다는 것은 무의식 속 ‘그림자’를 피하거나 억압해서는 불가능하다. 그림자 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잠재된 인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3장과 4장에서는 융 분석심리학의 핵심개념인 개성화의 관점에서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그림자 형상화 방법’을 살펴보려 한다.
18) 1916년 적극적 상상에 대해 처음으로 기술한 논문 초월적 기능 을 위시하여 개 인적 무의식, 집단적 무의식,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 개성화 등의 개념이 무의 식의 구조에서 소개 되었다. Jung C.G. 이부영 옮김, 앞의 책, 33쪽 참조.
19) “자아는Ich는 무의식의 그때그때의 의식에서의 대변자다. 자아는Ich는 자기 Selbst에 대하여 마치 작용하는 자agens에 대한 견디는 자patiens, 주체에 대한 객체로서 있다. 왜냐하면 자기로부터 나오는 결정들은 광대하여 자아를 뛰어넘 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기는 자아를 이미 형성하고 있다. 내가 나 자신을 만드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나 자신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Jung C.G, 한국융 연구원, C.G.융저작번역위원회, 인간의 상과 신의 상(융 기본저작집4), 솔출판 사, 2008, 242-243쪽.
20) 융은 전체성을 의식뿐 아니라,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등 무의식의 모든 속성 을 포함한 전체로 보았다. 분석심리학에서 전체성의 개념은 완전성이 아니라, 원 만성을 의미한다. Jung C.G, 한국융연구원, C.G.융저작번역위원회, 인간의 상과 신의 상(융 기본저작집3), 솔출판사, 2007, 257쪽 참조.
3. 성(性)의 주체와 그림자
김수영의 시에서성(性)을 모티프로 형상화된 시적 주체는 크게 두 가지 양 상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성(性)을 ‘초월’21)하는 적극적 주체, 나머지 하나 는 대상에게 그림자를 ‘투사’하는 소극적인 주체가 그것이다. 김수영의 시에 서 ‘초월’과 ‘투사’는 자기실현을 위한 ‘심리적 이행’의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 가 있다.
그것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21) 개성화과정에서 ‘초월’은 신비함이나 성스러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 적 이행을 위한 정신적 활동과 기능을 의미한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 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1968. 1.19> ― 성(性) 전문, 전집 1권, 367-368쪽.
당대에 성(性)을 묘사한 시가 발표된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성(性)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림자’와 ‘페르소나’의 ‘대 극’22)상황과 시적 주체의 대응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적 주체가 아내 와 관계를 가지기 전에 다른 사람과 정을 나눈 것은 ‘자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수영 시의 기저에 흐르는 ‘슬픔과 분노’의 정서가 개인으로서 ‘자유’23)를 향 한 의지와 실패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수영의 시에서 ‘자유’
는 사회통념을 가로질러 인간 실존의 필요조건에 대한 당위성을 함의하고 있 다. 다시 말해 위의 시에 나타난 ‘자기반성’은 표면적으로는 불륜 즉, 보편적 윤리에 대한 반성을 환기하지만, 심층적으로는 ‘그림자’에 대한 자기성찰 더 나 아가 현존을 가로질러 실존에 대한 고민으로 읽어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 은 그가 쓴 산문을 통해서도 보완되고 있다.
22) “대극이란 어떤 상태의 극단적인 성질이다. 이 성질 덕분에 대극은 실제로 지각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잠재능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정신은 여러 대극 의 조정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Jung C.G. 앞의 책, 71쪽.
23) “그(시인)는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고, 또 자유를 산다. 여기에 시의 새로움이 있고, 또 그 새로움이 문제되어야 한다. (…중략…) 새로움은 자유다, 자유는 새 로움이다.” 김수영, 생활 현실과 시(1964.12) , 전집 2권, 264쪽.
“ 성 이라는 작품은 아내와 그 일을 하고난 이튿날 그것에 대해서 쓴 것인데 성 묘사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는 처음이다. 이 작품을 쓰고 나서 도봉산 밑의 농장 에 가서 부삽을 쥐어보았다. 먼첨에는 부삽은 쥔 손이 약간 섬찍했지만 부끄럽지 는 않았다. 부끄럽지는 않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나는 더욱더 날쌔게 부삽질을 할 수 있었다. 장미나무 옆의 철망 앞으로 크고 작은 농구農具들이 보랏빛 산 너머로 지는 겨울의 석양빛을 받고 정답게 빛나고 있다. 기름을 칠한 듯이 길이 들은 연장 들은 마냥 다정하면서도 마냥 어렵게 보인다.
그것은 프로스트의 시詩에 나오는 외경에 찬 세계다. 그러나 나는 프티 부르주 아적인 <성>을 생각하면서 부삽의 세계에 그다지 압도당하지 않을만한 자신을 갖는다. 그리고 여전히 부삽질을 하면서 이것이 농부의 흉내가 되어서는 안 되겠 다고 생각한다. 나는 죽고 나서 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되면 내 아우보다 더 꾸지람을 더 많이 들을 것은 물론 뻔하다. 그것은 각오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농부의 흉내를 내고 죄의 감형을 기대하는 것 같은 태도는 더욱 불순하다. 나는 농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을 모르고 있다. 내가 나의 시를 모르듯이 그는 그의 노동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 반시론(1968) 부분, 전집 2권, 411쪽.
위의 인용문은 김수영이 시 성 을 쓰고 난 후에 쓴 글이다. 그가 노동의 의 미를 프티 부르주아적인 성(性)과 연관시킨 데 주목해보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김수영 시의 시적 주체는 내향형으로 타자와의 관계에 민감하며 자주 갈 등을 일으킨다. 이러한 갈등은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을 하고자 하는 적극적 주 체(그림자)와 대극의 상황을 이루는 타자(페르소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은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라는 전제와 “그래 도∼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전제와 결론은 농부가 농 장에서 부삽집을 하는 것 즉, “노동”으로 비유된다. 다시 말해 시적 주체에게 아내와 아내 아닌 여자와의 관계는 모두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
는 농부가 아니다”는 단언은 부삽을 쥐었다 놓는 행위를 통해 ‘사회적 동물’로 서 나’와 ‘생물학적·심리학적 동물로서 나’의 갈등 즉, 의식과 무의식의 대극 상 황을 암시하며 자기연민의 정서로 이해할 수 있다. 시적 주체에게 무의식 속
‘그림자’는 성(性)적 욕망을 통해 사회적인 관계의 의미를 가로질러 새로운 인 식 즉, 실존적 존재로서 ‘자기’에 도달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분석된다.
여자란 집중된 동물이다
그 이마의 힘줄같이 나에게 설움을 가르쳐준다 전란도 서러웠지만
포로수용소 안은 더 서러웠고 그 안의 여자들은 더 서러웠다 고난이 나를 집중시켰고
이런 집중이 여자의 선천적인 집중도와 기적적으로 마주치게 한 것이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쟁에 축복을 드렸다
내가 지금 6학년 아이들의 과외공부집에서 만난 학부형회의 어떤 어머니에게 느낀 여자의 감각 그 이마의 힘줄
그 힘줄의 집중도(集中度) 이것은 죄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여자의 본성은 에고이스트 뱀과 같은 에고이스트
그러니까 뱀은 선천적인 포로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속죄에 축복을 드렸다
― 여자(1963.6.2.) 전문, 전집 1권, 276쪽.
시적 주체에게 여성은 이기적인 속물로도 나타난다. 여기서도 내향적 시적
주체는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김수영의 시에는 여자 혹은 부인 등 화자와 얼마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관계에 놓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여성들은 화자와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화자의 시각에서 발견되고 평가된다.”24)이러한 점이 김 수영 시의 시적 주체가 내향형으로서 대상지향적 시를 지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여자의 본성은 에고이스트/뱀과 같은 에고이스 트/그러니까 뱀은 선천적인 포로인지도 모른다.”에서 주목할 것은 “-인지도.”
에서처럼 막연한 추측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다. 이러한 ‘추측’은 시적 주체가 대 상에게 그림자를 투사하여 ‘구원’ 받고자 하는 보상심리25)로 해석된다. 시적 주 체의 이러한 여성에 대한 태도는 ‘아내’와 ‘여편네’ 즉 같은 대상을 달리 부르는 데서도 나타난다. 전자의 경우 “시적 주체의 어떠한 가치판단도 없는 일상 속 에 놓여 있는 현실에서, 후자의 경우 부정해야 하고 벗어나야 하지만 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26)에서 사용된다.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시적 주체(남성)가 “학부형회의 어떤 어머니에게 느 낀 여자의 감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관점에서 지켜야할 선 을 넘는 순간 그것은 금기를 깨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시적 주체의 대응방식은 비교를 통한 투사다. 시적 주체가 “그 이마의 힘줄같이 나에게 설 움을 가르쳐준다.”에서처럼 여자가 신체적 표현을 통해서 욕망을 들키는데도 숨기는 것은 “에고이스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포로수용소 안은 더 서러 웠고/여자들이 더 서러운.” 까닭도 그 때문이다. 김수영의 시에서 ‘여자’에 대한 인식은 대개 부정적이다. 이러한 점은 본고에 인용된 시 외에도 그의 산문을 24) 오채윤, 김수영 시의 관계적 측면에서 본 여성 ,인문연구72, 영남대학교인문
과학연구소, 2014, 110-111쪽.
25) “자기는 자아의식의 보상으로 작용할 수 있을 때에만 기능적인 의미를 갖는다.
만약 자아가 자기와의 동일시를 통해 해체되면, 교만한 자아와 불명료한 자기를 갖는 일종의 모호한 초인이 생겨난다.” Jung C.G. 한국융연구원, C.G.융저작번역 위원회, 원형과 무의식(융 기본저작집2), 솔출판사, 2006, 93쪽.
26) 박지해, 김수영 시에 나타나는 ‘아내’와 ‘여편네’의 정치성 ,한민족어문 65권0 호, 한민족어문학회, 2013, 736쪽.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옆의 방에서 또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처제가 치는 것이다. 처제라는 동물은 여편네보다도 더 다루기가 힘들다. 여편네는 사불여 의(事不如意)하면 마구 치고 차고 할 수도 있지만 처제는 못 그런다. 나만 그런 지 모르지만 나는 처제의 말에는 여편네의 말보다도 더 쩔쩔맨다. 아무리 중요 한 원고를 쓸 때에도 처제의 피아노 소리는 울려오고 나는 그 피아노 소리가 끝나기까지 이를 악물고 참고 있어야 한다.”
― 물부리(1963.4.2) , 전집 2권, 52쪽.
“미인과 돈의 인연이 가까운 경우를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은 흔히 우리들의 주변에서 보게 되는데, 그런 경우의 대부분이 돈이 미인을 갖게 되는 수가 많 지 미인이 돈을 갖게 되는 일이 드물다.”
― 미인(1968.2) , 전집 2권, 145쪽.
‘아내’, ‘여편네’ 등 ‘같은 여자’를 지칭하면서도 변화하는 그의 시어는 단순 히 서술상의 차원에서 이해될 것이 아니라 사유적 차원에서 분석할 것을 요구 한다. 그의 시에 나타난 ‘여성’은 분석심리학의 관점에서 ‘모성 원형’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으며, 통념적인 ‘모성애’의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모성원형의 양가적 측면으로 운명의 여신(파르젠, 그래엔, 노르넨)이 있으 며, 부정적으로는 마녀, 용(거대한 물고기와 뱀같이 모든 것을 삼키고 칭칭 감 는 동물들), 그리고 무덤, 석관, 물의 심연, 죽음, 유령 그리고 어린이를 놀라게 하는 괴물(엠푸사 유형, 일리스 등).”27)이 있다.
27) Jung C.G. 한국융연구원 C.G.융 저작 번역위원회, 모성 원형의 심리학적 측면 ,
원형과 무의식 (융 기본저작집2), 2006, 202쪽.
위의 시에서 시적 주체가 형상화한 “학부형회의 어떤 어머니(여성)”는 사회 윤리적으로 금기의 대상이며, 시적 주체의 그림자를 억압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속죄에 축복을 드렸다”에서처럼 시적 주체는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적 존재임을 자각하는 동시에 ‘여자’를 “나에게 설움을 가르쳐.”주는 일종의 저항의 매개체로 승화했다. 이와 같이 시에서 그림자의 투사는 사회적 관점과는 달리 심리적 이행의 긍정성을 함의하고 있다.
4. 병(病)의 주체와 그림자
본장에서는 ‘병(病)’을 매개로 한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시에서 ‘병’은 표층적으로는 몸의 질병을 형상화했지만, 심층적으로는 심리·정신적 문제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병이 매개가 되어 그림자를 형상화할 경우 두 가지 특 징이 포착된다. 첫째, 같은 시어라도 은유를 통해 의미를 확장하는 것, 둘째, 같은 의미라도 다른 단어로 그 의미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적 주체 가 시·공간적으로 ‘사이’의 존재이며, 그 반복이야말로 자기실현과정의 수순임 을 인식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설파제를 먹어도 설사가 막히지 않는다 하룻동안 겨우 막히다가 다시 뒤가 들먹들먹한다 꾸루룩거리는 배에는 푸른색도 흰색도 적(敵)이다
배가 모조리 설사를 하는 것은 머리가 설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성(性)도 윤리도 약이 되지 않는 머리가 불을 토한다
여름이 끝난 벽 저쪽에 서 있는 낯선 얼굴 가을이 설사를 하려고 약을 먹는다 서오가 윤리의 약을 먹는다 꽃을 거두어들인다
문명의 하늘은 무엇인가로 채워지기를 원한다 나는 지금 규제로 시를 쓰고 있다 타의의 규제 아슬아슬한 설사다
언어가 죽음의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숙제는 오래된다 이 숙제를 노상 방해하는 것이 성의 윤리와 윤리의 윤리다 중요한 것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이행이다 우리의 행동 이것을 우리의 시로 옮겨놓으려는 생각은 단념하라 괴로운 설사
괴로운 설사가 끝나거든 입을 다물어라 누가 보았는가 무엇을 보았는가 일절 말하지 말아라 그것이 우리의 증명이다
― 설사의 알리바이(1966. 8.23) 전문, 전집 1권, 331-332쪽.
위의 시에서 ‘설사’는 은유로써 시의 형식에 변화를 주고 구체성을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언어가 죽음의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숙제는 오래된다 이 숙제 를 노상 방해하는 것이/ 성의 윤리와 윤리의 윤리다”라는 구절에 주목해보자.
다시 말해 이것은 표면적으로 ‘설사’는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지만, 심층적으로 는 “문명의 하늘은 무엇인가로 채워지기를 원한다”에서처럼 무언가 비우고 해 결하고자 하는 심리를 암시한 은유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설파 제’는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하지만 설사
가 “하룻동안 겨우 막히다가 다시 뒤가 들먹들먹한다”에서 그것이 그림자의 속성처럼 결코 사라지거나 억압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숙제”는 몸과 마음 즉, 의식과 무의식의 공통적 문제를 해결할 때 가능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전자와 후자 모두 “설사”라는 “숙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바람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것은 “단념하라 괴로운 설사”에서처럼 그 과정의 고단함과 고통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숙제는 불면증으로 인해 ‘불을 켜고 끄는 행위’를 통해서도 드러나며, 시적 주체는 불을 켜고 끄는 행위 ‘사이’
에 있는 존재가 자기임을 자각한다.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났다
암만 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없어지는 자체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까웁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은 켜지고 나는 잠시 아름다운 통각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지 않으려 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는지 대지의 진동이었는지 나는 자꾸 땅만 만지고 싶었는데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만을 힘삼고 있었는데
―중략 생활이여 생활이여
잊어버린 생활이여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천상의 무슨 등대같이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귀중한 생 활들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마지막에는 해저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대기처럼 무감각하 게 될 생활이여
조화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해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기고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아니 될 것이지만 천사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지만
아아 아아 아아 불은 켜지고
나는 쉴 사이 없이 가야 하는 몸이기에 구슬픈 육체여
― 구슬픈 육체(1954) 부분, 전집 1권, 70-72쪽.
대개 ‘어둠’이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과는 달리 위의 시에서는 “구슬 픈 육체”를 ‘바라보기’와 ‘바로보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분석된다. 이것은 시적 주체가 ‘그림자’를 직시함으로써 “땅과 몸이 일체가 되”는 과정 즉, ‘사이’
에 있는 존재로서 인간의 실존을 규명하고 있다. 시적 주체가 불을 켜는 순간
‘그림자’는 ‘구슬픈 육체’에 가려지고, 불을 끄는 순간 그림자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땅과 몸이 일치”되기를 희망한다. 대지와 땅은 ‘생명의 근원’, ‘태초’를 상징하며 모성 원형을 함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적 주체가 보이지 않는 실 체에 대응하는 방식은 “조화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가슴으
로 찾을 것은 아니로다/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다”에서 유 추할 수 있다. 이것은 시적 주체가 일치와 조화를 바라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는 것을 인지하고 경계가 없는 상태, 다시 말해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하지도 않아도 되는 ‘태초의 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본능’의 상태에 도달했음 을 의미한다. 이러한 본능은 불면증에 대한 시적 주체의 구체적인 대응 방식이 며, 바라고 기다리고 생각하는 ‘사이’의 존재로서 자기를 규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반복된 문장, “조화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조화를 원하는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에서처럼 김수영 시의 특징인 같은 대상을 ‘다르게 보기’, ‘다르게 쓰기(가슴/심 장)’28)는 대상을 ‘바로보기’ 위한 심리적 이행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병을 생각하는 것은/병에 매어달리는 것은/필경 내가 아직 건강 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파리와 더불어 174-175)”와 같이 일종의 허무함과 허탈함 따위의 감정과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사이’의 존재로서 현실을 직 시하고 실존을 증명하는 시창작방법론으로 분석된다.
내 몸은 아파서 태양에 비틀거린다 내 몸은 아파서 태양에 비틀거린다
믿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믿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광선의 미립자와 분말이 너무도 시들하다
28) 김수영의 시에서 같은 대상을 ‘다르게 보기와 쓰기’는 궁극적으로 의식과 무의식 의 균형과 조화를 전제로 심리적 이행을 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분석된다.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첫째, 한 편의 시 안에서 다른 시어로 사용된 경우(가슴/심장
―구슬픈 육체, 태양/햇빛 ―동맥(冬麥) 등이 있고, 둘째, 여성관에 따른 ‘아내(일 상적 자기고백)’와 ‘여편네(은유를 통한 자기비판)’의 구분이 그것이다.
(압박해 주고 싶다) 뒤집어진 세상의 저쪽에서는
나는 비틀거리지도 않고 타락도 안했으리라
그러나 이 눈망울을 휘덮는 싯퍼런 작열의 의미가 밝혀지기까지는 나는 여기 에 있겠다
햇빛에는 겨울보리에 싹이 트고 강아지는 낑낑거리고 골짜기들은 평화롭지 않으냐―
평화의 의지를 말하고 있지 않으냐
울고 간 새와 울러 올 새의 적막 사이에서
― 동맥 冬麥(1958) 부분, 전집 1권, 151-152쪽.
“내 몸은 아파서/태양에 비틀거린다//믿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는 반 복에 주목해 보자. 반복은 강조 이외에도 시적 리듬의 조율을 통해 형식 적 통일성과 주제를 응집하는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앞서 반복된 행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눈망울을 휘덮는 싯퍼런 작열 의 의미가 밝혀지기까지는 나는 여기에 있겠다”는 시적 주체의 인식 과 정과 심리적 변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작열의 의미 즉, ‘적막’이 ‘평화’
가 되고 ‘태양’이 ‘햇빛’이 되는 이치를 깨닫기 전까지 온몸으로 직접 부 딪히겠다는 다짐으로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다짐은 ‘아픔’의 실체 즉,
‘햇빛에 싹이 트는 겨울보리’와 ‘낑낑거리는 강아지’를 통해 인식의 전환
에 다다른다. 여기서 시적 주체는 “적막”과 “평화”를 구분한다. 전자가
‘의지할 데 없이 외로움’의 상태라면, 후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 함’의 상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의어 ‘태양’과 ‘햇빛’을 나누어 쓴 것 은 ‘심리적 이행’의 전초로 읽어낼 수 있다. 아파서 비틀거리는 것은 ‘태 양’ 아래서 이루어지지만, 싹이 트는 것은 ‘햇빛’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수영 시의 병적 징후는 “뒤집어진 세상 의 저쪽에서는/나는 비틀거리지도 않고 타락도 안했으리라”와 같이 이 쪽과 저쪽 즉, 대극의 상황에서 양쪽의 균형을 잡는 데 의의가 있다. 이 러한 대극의 잠정적 종결을 의미하는 마지막 행 “울고 간 새와/울러 올 새”에 주목해 보자. 이것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현재’의 자신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는 늘 가치판단을 하게 되는 기준 이 되는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함의하는 가변성의 시점이다. 이러한 관 점에서 시적 주체는 ‘뒤집어진 세상의 저쪽’이 고착된 장소가 아니라 언 제라도 뒤집고 또 뒤집힐 수 있는 이쪽의 다름 아니며, 차이와 반복의 심미적 공간임을 인지한다.
5.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김수영 시의 시적 주체는 ‘그림자’를 형상화하는 데 적극적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시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크게 세 가지 의의를 함의한다.
첫째, 같은 대상이라도 다르게 말하기(쓰기)를 통해 이미지의 역동성, 이미 지의 확장이 가능했다. 둘째,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통념과는 다른 의미의 시적 주체를 성과 병의 그림자로 형상화함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 기능을 제공했
다. 셋째, 내향형 시적 주체(대상지향적·고백체지향적)는 독자와의 원활한 소 통을 전제로 형상화된 장치로 분석되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개성화의 관점에서 김수영의 시에서 자기구원과 실현 의 문제는 그림자를 숨기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응시함으로써 의 식과의 균형을 이루어 건강한 ‘자기’를 찾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이러한 점을 토대로 본론에서는 성(性)과 병(病)을 모티프로 형상화한 그림자의 의의 를 살펴보았다. 먼저 ‘성(性)을 모티프로 한 시편’에서 시적 주체는 ‘투사’를 통 해 성에 대한 관념을 단순히 서술상의 차원을 너머, 사유와 심리적 차원으로 확장하여 읽을 것을 요구하는 특징이 있었다. 여기서 시적 주체는 금기를 폭로 함으로써 구원 받는 인간의 양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금기 즉, ‘그림자’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자기연민의 정서도 함의하는 특징이 있었다. ‘병(病)을 모티프로 한 시편 ’에서 시적 주체 는 몸의 아픔 특히, 설사 등의 은유를 통해 육체적 고통과 심적 고통을 동시에 극복하는 방법으로 이쪽과 저쪽의 ‘사이’적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자기실현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결론적으로 김수영의 시에 형상화된 시적 주체의 ‘그림자’는 공통적으로 의 식과 무의식 ‘사이(being in -between)’의 존재로서 ‘그림자(Shadow)’를 직시하 고 응시함으로써 그것의 긍정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러한 점을 염두 에 두고 현대시에서 문제작들을 선별하여 그림자 형상화의 긍정성에서 한 걸 음 더 나아가 문학치료적 관점에서 그림자 형상화의 자기치유성에 대해서 연 구 범위를 확대해 갈 계획이다.
【참고문헌】
기본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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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the Sex and disease Symbolism in Kim Soo-young's Poetry
―focused on Jung’s theory of Individualization Kim Jihun(Dankook Univ.)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methods of embodying shadows in Kim Soo-young’s poetry. According to Jung, ‘shadow’ is a personality hidden in the human unconscious, which should not be suppressed or hidden, but should be kept in harmony and balance with the conscious.
In other words, it is an essential element for physical and mental stability and healthy life. ‘The positiveness of desires’ in Kim Soo-young’s poetry revealed in preceding studies is analyzed as an important base for the formation of a bond of sympathy with readers. In this sense, the researcher focused on the introverted, object-oriented and confessional tendencies of the poetic subjects embodied in Kim Soo-young’s poetry. In concrete, this study examined the significance of embodiment in his works that embodied fundamental human issues,
‘sex’ and ‘disease’ as motifs. In his poetry, even ‘the same object’ is sometimes classified by ‘a different poetic language,’ and even ‘the same poetic language’ implies multiple layers of meaning and forms a poetic tension in order to embody a poetic subject as a being in the
boundary between consciousness and the unconscious, that is, in-between. This, in other words, implies the positiveness of the embodiment of shadows, which proves that his poetry aims at the general principle of self-realization. In other words, in Kim Soo-young’s poetry, the shadows of ‘sex’ and ‘disease’ are analyzed as a driving force that cuts across the meanings of ‘negation’ and ‘presence’ and proves the ‘human nature’ and ‘existence’ in depth.
*Key words: Kim Soo-young, poetry, shadow, being in-between, sex, disease, analytic psychology, individual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