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and Freud
Soo Churl Cho
Division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Department of Psychiatry, School of Medicine, Seoul University, Seoul, Korea
Beethoven과 Freud
조 수 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교실 소아청소년정신분과
According to the psychoanalytical premise that music has a significant influence on the human mind, music affects the conscious- ness, preconsiousness, and unconsciousness. It structurally influences the id, ego, and superego. Based on these findings, the au- thor reviewed the lives and works of Beethoven and Freud and investigated the following questions: 1) What developmental processes did these two luminaries go through? 2) How did the educational processes of the time affect their works? 3) What were their basic attitudes toward themselves and others? and 4) What were their final psychological and social achievements?
Throughout their lives, Beethoven and Freud faced physical, psychological, and social hardships. However, they were able to achieve mature development in the process of overcoming these challenges. Both figures were voracious readers, which helped them obtain a broader perspective on human beings and introspect deeply. Further, Beethoven and Freud were both able to achieve Gegensatzvereinigung and simultaneously integrate life and death into one unified concept, thereby attaining salvation.
Psychoanalysis 2012;23:10-19 KEY WORDS: Beethoven · Freud · Development · Gegensatzvereinigung.
Received: February 7, 2012 Revised: March 2, 2012 Accepted: March 15, 2012 Address for correspondence: Soo Churl Cho, MD
Division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Department of Psychiatry, School of Medicine, Seoul University, 101 Daehak-ro, Jongno-gu, Seoul 110-744,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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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음악과 정신분석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Cho 2001). Max Graf는 음악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Abrams 1993).
첫째, 음악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도덕적, 영적 수준으로 끌 어 올린다. 둘째, 음악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와 남들 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고취시킨다. 셋째, 음악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의 무의식에 접하게 만든다. 넷째 로 음악은 듣는 사람에게 현재와 과거 사이, 그리고 의식, 전 의식 그리고 무의식 사이에 마음 균형을 잡게 해준다.
Graf 이후에 음악에 대하여 정신분석적인 접근을 시도한 정신분석학자는 Kohut(Kohut 1957)이다. Kohut는 구조론 의 입장에서 음악의 심리적 기능에 대하여 논한 바 있다. 첫 째는 이드(id)와 관련된 기능이다. 음악은 무의식 내에 억압 되었던 욕구가 정화, 전이, 화해, 절충 또는 승화라는 과정을 통하여 대리 만족됨으로써 자아를 위협하던 긴장을 해소시 키는 기능이 있다. 둘째는 음악의 자아에 대한 영향이다. 음악
이란 소리이다. 생후 초기의 유아들은 소리에 대하여 아주 민 감하며 현실검증 능력이 아직 발달되지 않아 그 의미를 이해 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리에 대하여 불안하게 반응한다. 그러 나 점차 성장하면서 주변에서 오는 소리의 의미를 알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극복 할 수 있는 자아의 기능을 갖추 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음악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왜냐하면 음악 내에는 형태, 리듬, 가락, 질서가 포 함되어 있기 때문에 즐거움을 가져다 주며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아지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음악의 초 자아에 대한 영향이다. 심미론적 측면에서 본다면, 음악은 그 자체가 형태와 조화의 규칙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작곡 또는 연주를 한다는 것은 이러한 규칙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규칙을 가지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초자아의 기능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眞, 善, 美의 추 구라고 할 수 있는데, 음악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내부에 존재하는 진, 선, 미의 추구라고 한다면, 음악은 초자아의 발 달에 대하여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음악과 정신분석은 밀접한 관계 를 맺고 있다. 본 논문의 기본적인 목표는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업적을 성취한 Beethoven과 Freud의 삶과 그 업적을 살펴보고 비교하여 향후 인간의 총체적인 삶을 보람 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성찰하는 데 있어서 한 교훈을 얻 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Beethoven
의삶과음악Beethoven의 조상 및 가족관계
Beethoven은 1770년 12월 16일 Bonn에서 태어났다. Be- ethoven의 조상은 벨기에의 Marlines 지역에서 살았다. 조부 Ludwig van Beethoven부터 Bonn에서 살게 된다. Beeth- oven은 조부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Beethoven의 아 버지 Johann van Beethoven은 궁정음악가가 되었고, 비교 적 훌륭한 음악선생이었으나, 말년에는 알코올 중독에 걸려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다. Beethoven의 어머니 Maria Magdalena는 원래 시종무관 과 결혼하였는데, 1765년도에 남편이 사망한 후에 Beeth- oven의 아버지와 1767년에 재혼하였다. Johann과 결혼 한 후에 7남매를 두었는데, 4남매는 어려서 사망하고 세 아들만 생존한다. Beethoven의 형이 일찍 사망하였기 때문에 Beeth- oven이 장남역할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Beethoven의 나이 17세 때에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상당히 심한 우울증을 앓았 던 것으로 추정된다(Scott 1974).
Beethoven의 어린 시절-Bonn 시절
1774년경, Beethoven의 나이 4세 때에 음악적인 재능이 처 음 드러났다는 기록이 있다(Bonn 생가 기념관의 연대표). 정 규교육은 Tirocinium이라는 라틴계통의 초등학교 과정을 밟은 것이 전부인데 1777~1780년까지 다녔다. 이 학교의 교 과과정은 아주 특이하여 쓰기나 수학과정이 없었다. 이 때문 에 Beethoven은 나중에 음악교육과정, 특히 대위법공부 과 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의 교육이 부족함을 느껴 19세 때에 본 대학의 철학과에 청강생으로 등록하여 강의를 받는다. 최초의 스승은 아버지 Johann이었다. 그 후 다른 음 악선생님들로부터도 음악교육을 받는다. Heinrich van den Eeden은 궁정의 오르간연주자로서 Beethoven에게 음악이 론과 피아노를 가르친다. 1779년부터 1781년 사이에는 To- bias Friedlich Pfeiffer, Frantz George Rovatini, Willibald Koch, Frantz Anton Ries, Zenser, Christian-Gottlob Neefe 등으로부터 사사를 받게 되는데, 특히 Neefe로부터 많은 영 향을 받는다. 1787년에 Vienna로 가서 Mozart를 만나서 즉
흥연주를 하게 되는데, 이 연주를 들은 Mozart는 “이 젊은이 를 눈 여겨 보라. 이 젊은이는 언젠가는 세상에 대하여 큰 소 리를 지를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라는 평을 하였다고 전한 다. 같은 해에 Beethoven은 어머니를 잃는다. 1791년(21세), Mozart가 세상을 떠나고, Haydn이 Bonn을 방문하였는데 이 때 스승 Neefe의 소개로 Beethoven이 Haydn을 만난다. Bee- thoven의 천재성을 알아본 Haydn이 Beethoven을 초청하여 이듬해 Vienna로 유학 길에 오르게 되고, 이후 Beethoven은 그의 전 생애를 Vienna에서 보내게 된다(Forbes 1967).
Beethoven의 제1기의 삶과 음악세계(모방의 시기, period of imitation)
Vienna로 유학 온 1792년부터 1802년 Heiligenstadt의 유 서를 쓰기 전까지를 제1기라 이르는데 Haydn이나 Mozart 등 선배 음악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에서 ‘모방의 시기’라고도 한다. Beethoven은 1792년 11월부터 1794년 1월 까지 Haydn에게 음악교습을 받게 된다. 그러나 Beethoven 은 Haydn에게 크게 실망한 나머지 다른 음악선생을 찾아 나 선다. 이리하여 만난 선생이 Johann Schenk였고 그로부터
“대위법”을 배운다. 1793년 작품번호 3번인 현악 삼중주곡 (Trio for strings, Op 3)이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Beethoven의 작품활동이 펼쳐진다. 1794년 Beethoven은 Albrechtsberger 를 만나서 “대위법”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게 되고, Salieri를 만나서 이탈리아 풍의 성악과 오페라의 작곡법을 배우게 된 다. 이 시기의 특히 중요한 작품으로는 제8번 피아노 소나타 (비창)이다. 이 곡은 Beethoven의 창의력이 번득이는 작품으 로 Beethoven 자신의 독자적인 음악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하 였다는 평을 받은 곡이다(Cho 1996).
시대정신(Zeitgeist)
Beethoven이 작품 활동을 하던 그 시기는 학문, 문학, 예술 분야 등 모든 분야에서 꽃을 피운 시대였다(Knight 1973).
Kant가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 판(1790) 등을 발표하고, Goethe의 희곡 Egmont(1788)와 Faust 제1부(1808)가 발표된다. 이 외에도 Schiller, Keats, Wordsworth, Byron, Heine, Pushkin, Hugo 등의 시인과 문 학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펼친 시기였다. Beethoven은 이러 한 철학가, 시인, 소설가들의 작품을 열심히 읽고 깊은 감동 을 받는다. 이러한 작품들 외에도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 Shakespeare, Plato, Aristotele, Euripides, Homer 등 고전을 열심히 읽고, 음악적인 창조성을 키운다. 사회적으로는 프랑 스 혁명(1789년)이 일어나고 Napoleon이라는 영웅이 탄생 한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이 Beethoven의 작품 활동에 지대
한 영향을 미쳤다. 1801년은 Beethoven이 처음 자신의 귓병 에 대하여 친구에게 고백을 한 해이기도 하다. 귓병의 치료를 위하여 1802년 4월 Heiligenstadt로 요양을 떠난다. 요양 도 중 Beethoven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죽을 결심을 하게 된다.
“Heiligenstadt 유서”는 이때 쓴 것이다. 이 사건은 Beethoven 의 정신적 발달, 인격적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 한 이유에서 이때까지의 Beethoven의 작품 활동을 “제1기”
라고 규정하고, 그 특징은 “Mozart, Haydn 등 선배 음악들의 영향을 받고 이를 모방하는 시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사 건은 Beethoven 인생에 있어서 과거의 자신을 청산하고 새로 태어나는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Broyles 1987).
Beethoven, 제2기의 삶과 음악세계(외향화 시기, period of externalization)
1802년 Heiligenstadt의 유서사건 이후부터 1814년까지를 Beethoven의 음악발달의 제2기라 이른다. 음악적인 특성이 자신의 감정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며, 내적 갈등을 투쟁을 통 하여 극복한다는 의미에서 외향화 시기라 일컬어진다. 이 해 에는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로만스, G 장조(Op 40), 바이 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로만스, F 장조(Op 50), 교향곡 2번(Op 36), 등이 발표된다. 이 곡들은 비교적 부드럽고 감미로운 느 낌을 주는 곡들이다. 엄청난 정신적인 위기와 이를 극복한 후, 인생에 대한 좌절에서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가치와 목 표를 깨달았을 때의 즐거움, 환희가 이 곡들에서 잘 표현되 어 있다. 이 시기의 곡들 중 특히 “교향곡 3번 영웅교향곡”은 그 곡이 교향곡의 역사에 있어서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인 면 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인 역할을 한 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 다. 1805년에는 피아노 소나타로는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 지는 피아노 소나타 제23번, 열정 소나타(Op 57)가 작곡된다.
이 해에 Beethoven은 Haydn, Mozart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곡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이 시기는 Beethoven이 자신의 정신적인 갈등에 대하여 격렬하게 싸우고, 투쟁하며, 외적인 힘으로 이를 극복하려고 하였다고 하여 “제2기, 외향화 시기”라고 명명하였다(Broyles 1987).
Beethoven, 제3기의 삶과 음악세계(내향화 시기, period of internalization)
1815년 Beethoven의 동생 Anton Carl Beethoven이 사망 한다. 이후 수년에 걸쳐 자신의 조카인 칼의 양육권을 싸고 지루한 재판이 시작되고 결국 Beethoven이 조카의 양육권 을 가져오게 된다. 작품 활동으로는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2개의 소나타(No 4,5, Op 102-1, 102-2)”를 발표하였다.
1816년에 이르러서는 Beethoven의 관심이 다시 Baroque 시 대로 되돌아가서 Bach와 Ha¨ndel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고 조된다. 작품 활동으로는 “피아노 소나타 제28번(Op 101)”,
“멀리 있는 애인에게(Op 98)” 등이 작곡된다. 1820년부터 1822년까지는 피아노 소나타가 집중적으로 작곡되어 최후의 피아노 소나타 제30번, 31번, 그리고 32번이 작곡된다. 1824 년에는 교향곡 제9번(Op 125)을 작곡하였다. 1825년과 1826 년은 후기 현악 4중주곡 5곡만이 작곡된다. 모두 극도의 성찰 을 통하여 “완벽한 심적인 평화”를 성취한 작품들이다. 조용 히 흐르나 그 속에서 엄청난 “내적인 힘”을 지닌 곡들이라 할 수 있으며 모든 복합적인 감정이 하나로 통괄된 곡들, 인격 적으로 성인의 경지에서만이 나올 수 있는 음성이라 할 수 있 다.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도 4악장, 5악장, 6악장, 7악장 등 자신의 감정을 아주 자유롭게 구사한다. Beethoven 자신이 일생 동안 추구하였던 완벽한 평화와 자유가 이 실내악곡들 에서 유감없이 구사되고 있다. 제16번 현악4중주곡이 작곡되 고 사망까지 약 6개월 동안 Beethoven은 투병 때문에 작곡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Beethoven은 병상에서 Ha¨ndel 악보를 통하여 공부를 계속하면서 크게 감동을 받는 다. ‘나는 Ha¨ndel 앞에서는 무릎을 굽힐 수 밖에 없다. 내가 만 약 병에서 회복이 되어 작곡을 계속할 수 있다면 나는 Ha¨ndel 처럼 작곡을 하겠다.’는 메모가 남아 있다. 죽음을 앞둔 상황 에서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Beethoven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1827년 3월 26일, 이 위대한 음악가는 세상을 떠나 고, 3일 후 장례식이 거행된다. Anshutz라는 시인이 조사를 낭독하고, Eybler, Kreutzer 등 그 당시 Vienna의 젊은 음악 도 8명이 운구를 하였다. Czerny, Schubert 등이 횃불 행진을 하였으며, 그 당시 신문은 약 15000~20000명의 시민이 장례 식에 참석하였다고 전하고 있다(Broyles 1973).
대인관계
Beethoven은 주변사람들과는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켰다 (Ciardiello 1985). Ludwig Rellstab은 “Beethoven은 성격상 일정한 조화로운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고 회상하고, Schindler도 “Beethoven에게 있어서 1년 이상 아무런 문제없 이 좋은 대인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 이다”라고 회상하고 있다. 기분의 변화가 아주 심하고 예측하 기 어려웠던 듯하다. 제자였던 Czerny는 “때로는 우울한 적 도 있고, 때로는 기분이 지나치게 좋아 활기에 차고, 장난기 서린 농담을 즐기기도 하였다”고 회상하고 있다. 성장한 후 의 대인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항상 대리가족이 있었다는 점 이다. 대개는 귀족가족들과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Bonn 시 절에는 Breuning, Koch, Westerhorlt 가족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Vienna에서는 Lichnowsky, Brunswik, Guicci- ardi, Deym, Bigot, Erdo‥dy, Malfatti, Brentano, Gianatasio, Streicher 등 가족들과 아주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결국 모 두 실패로 끝났지만 연인관계를 맺었던 모든 여인들도 모두 이 가족에 속하는 여인들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 에서 심한 좌절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어머니와 긍정적인 공 생관계를 찾으려는 노력은 평생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Beethoven은 자기애적 결여(narcissistic de- ficit)를 보상할 수 있을 만큼 지나치게 완벽한 대상을 원하 였기 때문에 항상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질 병
Beethoven의 귀질환(난청)에 대하여는 현재까지도 정확 한 진단명에 대하여는 이견이 많다. 부검소견과 Beethoven 의 임상적인 증상들과 연결 지어 보면 가능성이 있는 진단은 와우이경화증(cochlear otosclerosis)이다. 귓병 외에도 Bee- thoven은 많은 신체적인 질환을 앓았다. Beethoven 자신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발견된다. “심한 설 사병, 복통으로 고생하였다.”, “가슴의 통증(통풍으로 추정)”,
“내장이 망가졌다. 소화불량” 등의 메모들이다(Drake 1994).
1827년 3월 26일 간경화증으로 사망하였다.
Freud
의삶과사상Freud 조상 및 가족관계
친가의 조상들은 오랫동안 Rhine강변의 Koln에서 살다가, 그 후 동유럽, Lithuania, Galicia 지방에서 살았다. 아버지 Jacob은 원래 Galicia와 Moravia를 오가며 양모를 팔던 상 인이었는데 당시 교역의 중심지였던 Freiberg로 이사를 했 다. 1858년 Freud 가족은 독일의 Leipzig로 이사했는데 이사 하는 도중 기차 안에서 본 가스등의 불빛이 사람의 영혼을 연 상시켜 공포증을 일으켰는데 이후 지속적으로 Freud의 삶 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1860년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하게 되 자 다시 Vienna의 유대인 지역이었던 Leopoldstadt로 이주했 다. 그 후 1938년 Nazi의 박해로 빈을 떠날 때까지 빈에서 삶 의 터전을 마련하게 된다(Park 2007).
Freud의 가족관계
부 모
아버지 Jacob Freud는 결혼을 세 번하였는데 첫 결혼은 17 세 때였다. 그는 이 초혼에서 두 아들, Emanuel과 Philip을 얻었는데 1852년 첫 아내가 사망했다. 그 후 Rebecca라는 여
인과 함께 살았는데 정상 결혼식을 올렸는지 올리지 않았는 지 분명하지 않으나 유대인 주민등록은 남아있어 결혼으로 간 주된다. 그 후 1855년 당시 20세였던 Amalia Natanson과 Vi- enna에서 재혼했다. 어머니 Amalia는 스스로 교육에 열정이 많았고 특히 장남 Freud에 대한 기대는 매우 지극했다. Fr- eud는 아버지의 사망 시기를 전후하여 자기 분석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견했다. Freud 는 어머니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관심을 받아왔는데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는 성장하는 동안 정서적으로 늘 굶주려 있는 상태를 보였으며, 그 후 자기 분석을 통해서도 이런 문제들 을 적절하게 다루지 못한 듯하다(Lee 2007). 또한 어린 시절 Freud는 가족 관계에 있어서 상당한 혼란이 야기되었다고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하여 아버지처 럼 느껴지는 이복형들, 외관상으로는 할아버지처럼 느껴지 는 아버지, 조카이면서 또래이자 친구 같은 이복형의 아들 존 과의 관계 등 모든 관계가 낯선 관계였다. 이러한 내적 관계 가 후에 일어나는 모든 대인관계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고 할 수 있다(Lee 2007).
교육과정
어려서부터 아버지 Jacob은 아이들로 하여금 책을 많이 읽 혔다. 정규적인 교육과정으로는 Freud는 아홉 살 때(1865) gym- nasium에 입학한다. 이 시절 어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 며, 독서광이었다고 전한다. Goethe, Shakespeare, Zola, Cer- vantes 등의 작품들을 즐겨 읽었다. 글쓰는 걸 무척 좋아하였 다. 한때는 의사보다는 오히려 소설가, 문학을 하겠다는 야심 을 품고 있었다. Freud는 Hannibal과 Napoleon, Massena, Cromwell 등 영웅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Robert 2007).
대학시절
철학과 Darwin의 진화론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Gymna- sium 졸업 직전 Karl Bru¨hl 교수의 Goethe의 ‘자연론’에 관 한 강연을 듣고 1873년 가을에 Vienna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 다. 초기에는 철학, 문학, 법학 등 인문-사회 분야에 많은 관 심을 보이다가 차츰, 생물학, 생리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Freud는 철학자 Franz Brentano, 물리학자 Theo- dor Fechner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Robert 2007). 1876년 당 시 유명한 생리학자 생리학 연구소에서 6년 동안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Bru¨cke와 더불어 3차례의 연구논문들도 발표할 기회를 가진다(Park 2007).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Freud의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더 이상 계속되지 못했다. Bru¨cke의 권유에 따라 1882년 7월 31일, 그는 Vienna 종합병원에 등록,
이곳에서 3년을 머무르게 된다. 임상조수로 시작하여 외과, 내과의 등 여러 과에서 일했고, 1881~1883년 사이에는 Mey- nert 정신과 클리닉에서 함께 환자를 돌보기도 한다. 1884년 1월에는 신경과로 과를 옮겨 7월 수석의사가 된다. Freud는 특히 신경병리학에 관심이 많았고, 이 당시 신경질환에 대하 여 Erb 전기요법을 시행하기도 했다(Robert 2007).
1885년 4월 Freud는 자신의 모든 논문을 파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던 차에 일대 전환기가 찾아온다. Bru¨cke 교수의 추천으로 장학금을 받고, 1885년 10월부터 1886년 2월까지 파리의 Salpetri 병원에서 Jean Charcot의 수련생이 될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10월 21일, Freud는 Charcot를 만 나고 Charcot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는다. Charcot와의 만남 을 통하여 Freud는 신경학자에서 정신병리학자로 변신하면 서 정신분석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Robert 2007).
Freud의 대인관계
일생을 통한 Freud의 대인관계는 그리 순탄치가 않았는 데 이는 내적 대상관계가 원만하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것이 다. 실제 환자들과의 관계, 동료관계, 제자들과의 관계 등에 서 Freud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많이 보였다. Freud에게 있어서는 변함없는 우정이나 친밀한 관계의 지속 등은 유지 되기가 어려웠다. Breuer, Fliess, Jung, Adler 등을 포함한 수 많은 제자들과의 불화 등을 통하여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기 도 했다. 가장 든든한 위안자는 평생을 변함없이 그의 곁을 지켜준 딸 Anna Freud였다(Lee 2007).
자기 분석
Freud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후에 4일간 반복된 자신 의 꿈을 집요하게 분석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무의식으로 들 어가는 보편적이고도 획기적인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Freud가 그 뒤로도 오랫동안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자기 분석을 되풀이하였다. 그는 자기 분석이 완성되었다거나 완 전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얘기를 결코 한 적이 없다. Freud는 자기 분석에 대하여 양가감정을 지니고 있었던 듯하다. 때로 는 ‘자기분석의 필요성은 아주 분명하다. 정신분석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분석해야 한다.’라고 하기도 하고, 반면
‘진정한 스스로의 분석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하 기도 한다(Park 2007).
꿈의 해석
1900년도에 출판된 ‘꿈의 해석’은 Freud의 대표적 저서로 통한다. 이 책에서 정신분석의 토대를 이루는 무의식, 지향학 적 모델, 1차과정과 2차과정, 소망, 억압, 유아성욕, 오이디푸
스 콤플렉스 등의 개념들이 언급된다. 이 책은 Freud로 하여 금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서 탈출시켜 준 책이다(Robert 2007).
정신분석의 탄생
Fliess와의 만남
Fliess는 Freud의 많은 초고에 대하여 충고도 해주고 도움 을 주었다. 14년 동안 교환한 서한 속에서 Freud는 사적인 고민을 포함하여 철저한 자기분석을 통해 정신분석학을 탄 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문학은 이들의 서신 교환에서 큰 역할 을 했다. 이 서한들이 후에 ‘정신분석의 탄생’이라는 제목으 로 출판된다.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맺었음에도 표절 문제로 관계가 악화되어 결별하게 된다(Park 2007).
Josef Breuer와 히스테리 공동연구
Josef Breuer는 유대인 내과의사로서 학창 시절에 만나는 데, 정신분석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1880년 Br- euer는 Anna O 사례로 알려진 21세의 Bertha Pappenheim 에 대하여 Freud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안나 O>와 다른 히 스테리 환자들의 증례를 모아 1895년 Freud는 Breuer와 공 동으로 ‘Study on Hysteria’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한다.
이것이 정신분석에 있어서 최초의 논문이며 이 논문을 계기 로 정신분석이 탄생하게 된다(Park 2007).
Freud 이론의 변천과정
Sandler 등(1972)은 Freud의 이론을 4단계로 나누어 설명 한다.
제1기 외상-감정이론(Trauma-affect theory)
1856년 Freud가 출생에서 1897년경(41세)까지를 이른다.
이 시기의 중요한 학문적인 발달과정은 Bru¨cke의 지도, Br- euer와의 히스테리 연구, Meynert와의 임상경험, Charcot와 의 만남, Fliess와의 서한 교환 시작 등이고, 인과론, 결정론, Darwin의 적자생존론에 영향을 받던 시기였다(Lee 2003).
이 시기의 요점은 의식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은 그에 수 반된 감정과 더불어 의식으로부터 억압되어 분리된다는 것 이다(Hong 2007).
제2기 지정학적 이론(Topographical theory)
1897년부터 1923년(67세)까지, 성격구조론을 발표하는 시 점까지를 이른다. 정신분석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시기 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의 마음은 의식계, 전의식계, 무의식 계의 3부분이 있다고 보는 관점이 제2기의 핵심적인 부분이
라고 할 수 있다(Hong 2007). 1922년 Berlin에서의 총회를 참 석으로 제2기가 마감된다(Robert 2007).
제3기 구조이론(Structural theory)
1923년, 턱암이 발견되는 시점에서 1939년 사망시까지를 이른다. 1923년 4월, Freud는 동료 의사인 Felix Deutsch로 부터 악성 종양이라는 진단을 받고, 며칠 후 Hajek 박사로부 터 첫 번째 수술을 받았다. 1933년 5월에 Freud는 자기가 쓴 책들이 베를린에서 불태워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1938년 3월, Freud의 딸 Anna가 게슈타포에 체포되고, 이를 계기로 6월, Freud는 Vienna를 떠나 런던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런던에서 는 정부 당국자들이 그를 국빈으로 대접했다(Robert 2007).
Freud 자신이 제2기의 지정학적 이론으로는 인간의 정신을 설명하는 데 모순이 있다고 느끼고 이의 해결을 위하여 새로 운 이론을 내세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구조이론이다. 정신 구조를 의식과 무의식이 아니라 기능에 의하여 구별할 필요 성을 느껴 정신의 기능을 자아, 이드, 초자아의 3가지 구조로 나누어 이전 이론의 모순을 해결하는 시기이다(Hong 2007).
1939년 2월 암이 재발했으나 수술은 불가능했다. 1939년 9월 19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기 위해 Jones가 불려왔다.
9월 21일 Freud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지면
“이 세상을 초연히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한 약속을 주치의 Sure에게 상기시킨다. 1939년 9월 23일 밤, Freud는 사망한다. 특별한 유언은 남기지 않았다(Robert 2007).
제4기: 1939년부터 현재까지. Freud 이후의 발전
Freud의 여섯 자녀들 중 Freud의 뒤를 이은 자녀는 Anna Freud가 유일하다. Anna Freud는 1936년 ‘자아와 방어기제’
라는 책을 출판했다. 3년 뒤 Heinz Hartman이 ‘자아심리학 과 적응’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 이 두 권의 책이 자아심 리학(ego psychology)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한 책들이다.
Kohut의 자기심리학(self psyhcology)도 제4기의 중요한 학 파 중 하나이다(Lee 2003).
이상에서 Beethoven과 Freud의 삶과 학문적 발달과정 그 리고 그들이 성취한 업적을 살펴 보았는데 이들 사이에는 많
은 공통점들이 있다(표 1). 먼저, 조상 및 가족환경이다. Bee- thoven과 Freud 모두 행복한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없 다. Beethoven의 조상들은 땅콩 농장의 노무자로 일하는 등 하층에 속하였고, 이에 Beethoven은 많은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다. Freud 역시 유대인으로 태어나 많은 핍박을 받는 상 황에서 성장하였다. 10세경 아버지는 자신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로부터 받은 푸대접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Freud는 심한 모멸감을 느끼면서 성장하였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Beethoven과 Freud 모두 정신적인 성숙 을 이룰 수가 있었다. 두 번째는 조기 교육이다. Beethoven의 아버지 John은 Beethoven이 어렸을 때부터, “제2의 Mozart 로 만들겠다.”라는 야심으로 Beethoven의 조기 교육을 시켰 다. Beethoven의 아버지는 성악가였지만 피아노와 바이올 린에는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고, 이것을 바탕으 로 비교적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시킬 수 있었다. Freud 또한 비교적 좋은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 학업에 몰두할 수 있었 다. 부모들은 장남인 Freud에게만 독방을 주어 학업에 몰두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셋째, 어렸을 때부터 많 은 선생님들로부터 다양한 각도에서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 었다는 점이다. Eeden, Pfeiffer, Rovatini, Ries, Neefe, Sch- enk, Albrechtsberger, Salieri, Dragonetti, Mozart, Haydn 등 Beethoven의 소아기 또는 청소년기에 그 당시의 훌륭한 음악선생님들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Freud 또한 아주 다양한 분야의 스승들을 만날 수 있었다.
Karl Bru¨hl 교수, 철학자 Franz Brentano, 생리학자 Bru¨cke, Sigmund Exner, Ernst von Fleischl-Marxow, Meynert, Erb, Jean Charcot, Babinski, Brouardel, Richet, 조직학자인 Ran- vier, 정신병 의사 Gilles de la Tourette 등 많은 분야의 학자 들의 영향을 받는다. 네 번째는 Beethoven과 Freud 모두 독 서광이었다는 점이다. Beethoven 시대 당시 Kant, Hegel, Go- ethe, Schiller, Wordsworth, Byron, Pushkin 등이 함께 활동 을 했던 시대였다. Beethoven은 이들의 작품에 크게 매료된 다. 뿐만 아니라 Shakespeare, Plato, Aristotele, Euripides, Homer, 그리스-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 힌두교 등에 대한 관심도 많이 이에 대한 독서도 열심히 하였다. Freud 또한 독서광이었다. Goethe, Shakespeare, Zola, Cervantes, Darwin 의 진화론, 철학자 Stuart Mill의 서적, Theodor Fechner의 정 신물리학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Hannibal과 Napoleon, Ma- ssena, Cromwell 등 영웅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독서를 통하여 Beethoven과 Freud 모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 들의 분야에서 혁명적인 업적을 남길 수가 있었다. 다섯 번째 는 Beethoven, Freud 모두 부단한 노력과 자신에 대한 철저 Table 1. Common developmental characteristics of Beethoven
and Freud
1. Ancestral and familial environment 2. Early education
3. Multifarious teachers 4. Great book-readers 5. Deep introspection
6. Serious psychological and physical illnesses
한 반성과 성찰을 하였다는 점이다. Beethoven은 정규 교육 과정이 초등학교 과정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Bonn 대학 의 철학과에 청강생으로 등록하여 자신에게 부족했던 부분 에 대하여 스스로 보충하려는 노력도 이미 청소년기에 시도 하였다. Vienna 유학 시에도 여러 스승들을 찾아 다니면서 배우는 자세를 지녔다. Freud 또한 자기 반성에 철저한 태도 를 지니고 있었다. 1885년 8월, 이때까지 써 왔던 자신의 모 든 원고들을 파기해버린다. 이 사건으로 Freud가 새롭게 태 어나는 계기가 된다.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자신의 꿈을 스스로 분석하여 정신분석이라는 학 문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Beethoven과 Freud 모두 제1 기, 2기, 3기의 발달과정을 밟게 되는데 이들 모두 자기반성 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섯 번째로 Beethoven과 Freud 모두 심각한 정신적 또는 신체적인 질병을 앓았고 이 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다 성숙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Be- ethoven의 경우, 정서상태가 불안한 상태에 있었으며 또한 각종 신체적인 질환을 많이 앓았다. 청력장애, 궤양성 대장 염, 류마치스성 관절염, 통풍 등이다. Freud 또한 정신적, 신 체적인 질환을 앓았다. 불안증, 우울증, 기차공포증 등을 스 스로 치료하는 과정에서 정신분석학이 탄생하게 된다. 또한 위통, 호흡곤란, 심장발작, 식은 땀, 어지럼증, 기절 등의 신체 적인 증상들도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했다. 더욱이 1923년 부터는 턱암이라는 불치의 병을 앓으면서도 이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엄청난 에너지로 학문발전에 전력 투구하여 많 은 업적을 남겼다. 무려 33회의 수술을 받으면서도 이에 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획득한 업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 면 대극의 합일(Gegensatzvereinigung)이다. 이에 대하여 각 각 살펴보자.
Beethoven 음악의 대극의 합일사상은 다음과 같이 정리 될 수 있다(표 2).
첫째, Beethoven은 “성악과 기악”이라는 대극적인 관계를 하나로 통합하였다.
Beethoven 이전의 모든 작곡가들은 “성악과 기악”이라는 대극적인 모델로 작곡에 임하였다. 그러나 Beethoven은 ‘제
9번 교향곡’에서 마지막 4악장에 “합창”을 포함시킴으로써 성악과 기악을 하나로 통괄하고 있다(Cho 1997). 비단 성악 과 기악의 합일뿐만 아니라 “나와 너”의 합일을 통하여 대극 의 합일을 성취하고 있다. 둘째, Beethoven은 “강함(强)과 부 드러움(柔)”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교향곡에 서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Beethoven은 모두 9곡의 교 향곡을 작곡하였다. 이 중 홀수번호(1, 3, 5, 7, 9번)는 강렬하 고 남성적인 곡들이며, 짝수번호(2, 4, 6, 8번)는 부드럽고 여 성적인 곡들이다. 전체 9곡의 교향곡들에서 “强과 柔”가 절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가 되고 있다. 셋째, Beethoven 은 ‘투쟁(鬪爭)과 평화(平和)’를 하나로 통합하였다. 전형적 인 예가 ‘제5번 운명 교향곡’과 ‘제6번 전원 교향곡’이다. 제5 번 운명 교향곡은 ‘가혹한 운명과의 처절한 투쟁, 이 투쟁 끝 에 이끌어내는 인간승리’를 그리고 있는 곡이다. 그러나 제6 번 전원 교향곡은 ‘자연에 순응하며 더불어 사는 인간의 평 화로운 모습, 이에서 느끼는 환희, 자연에 대한 끝없는 사랑’
을 노래하고 있다. 투쟁과 평화라는 대극적인 가치가 Be- ethoven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이러한 사상은 후기 현악4중주곡들에서 극적으로 표현되 고 있다(Cho 1997). 넷째 Beethoven은 인간과 자연을 하나 로 통합하였다. 제6번 교향곡에서 전형적으로 표현되고 있 다. 전원 교향곡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평화로운 모습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Beethoven은 항상 자연 속에 서 살아가며,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자연 전체는 일체의 사물을 대립과 투쟁을 넘어 하나로 통합 하려는 열린 영역이며 Beethoven은 자연 속에서 투쟁과 대 립, 통일과 통합을 이루려고 하였다. 다섯째, Beethoven은 조 화로움과 부조화로움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조화로움과 부 조화로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조화로움은 부조화 로움이 존재해야지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피아노 소나타에 서의 불협화음은 특히 중기의 대표적인 소나타에서 흔히 관 찰된다. 피아노 소나타 제17번(템페스트)의 전 악장, 피아노 소나타 제23번(열정 소나타)의 전 악장에서 강력한 불협화 음들이 나타난다(Cho 2007). 현악4중주곡에서도 불협화음이 많이 관찰되는데, 특히 후기 현악4중주곡들에서 뚜렷이 나 Table 2. Common achievements of Beethoven and Freud in terms of Gegensatzvereinigung
Beethoven Freud
Vocal and instrumental music Various academic fields
Tenderness and rigidity, hardness Psychology and literature
Peace and struggle Psychology and philosophy
Human and nature Psychology, mythology and religion
Consonance and dissonance Ego, id and superego
Religiosity and secularity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Life and death Life and death
타난다(Cho 1997). 협화음과 불협화음은 서로 상반된 개념 인 듯하나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하나로 통합 되어야 하고, Beethoven에 의하여 소리라는 형태를 빌려서 완벽하게 대극의 합일사상이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Beethoven은 “聖과 俗”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Beethoven은 3곡의 종교음악을 작곡하였다. 즉 중기의 C장조 미사곡(Op.
86, 1807), 후기의 장엄미사곡 D장조(Op. 123, 124), 오라토리 오 ‘감람산의 그리스도’(Op. 85, 1803)가 있을 뿐이다. 이 곡들 의 상당부분은 세속적인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Beethoven 은 聖과 俗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본 것이다 (Cho 2007).
일곱 번째 Beethoven은 “전통과 개혁”을 하나로 통합하였 다. Beethoven은 엄청난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전 통(보수)적 가치를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교향곡, 또는 후기 피아노 소나타 또는 ‘후기 현악4중주곡’들 이다. 교향곡에 있어서는 3번부터 7번까지 엄청난 개혁을 시 도하다가 8번 교향곡에 이르러서는 다시 Haydn의 모델로 회 귀한다. 그 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제9번 교향곡을 작곡 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후기 현악4중주곡’들에서도 잘 표 현되고 있다. 이 곡들에서 한 악장은 반드시 Mozart나 Hay- dn 풍의 악장으로 작곡하였던 것이다.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전통을 중요시한 Beethoven의 ‘대극의 합일사상’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Cho, 2007).
마지막으로 Beethoven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Beethoven이 일생 동안 가장 애착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추구한 주제는 “영웅주제”였다. 1790년도에 작곡한 <요세프 2세 죽음에 즈음한 칸타타(WoO 87)>에서 Beethoven의 영 웅주의가 시작된다. 영웅주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 든 사회 모든 종족에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주제로서 인간 심 성의 원형(archetype)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웅주제는 공통적 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탄생(Birth)-죽음(Death)- 재생(Rebirth)의 3구조이다. 즉 영웅이란 태어나는 과정이 있고, 상징적 의미에서의 죽음을 경험하고 이를 통하여 부활 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는 존재를 이른다, Be- ethoven인 경우 실제 자신의 실질적인 체험(1802년의 하이 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이름)을 통하여 거듭나는 계기가 된 바 있다. 즉 Beethoven 자신의 삶 자체가 영웅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작곡 분야에 있어서는 제3번 영웅교향곡이 대표 적이다. 이 교향곡은 제1악장이 ‘영웅의 탄생’, 제2악장-영웅 의 죽음(장송행진곡), 제3악장-영웅부활의 준비단계, 제4악 장-영웅의 부활, 재생의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곡들을 통하 여 Beethoven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극적인 대 극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Freud의 사상 또한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표 2).
첫째, Freud의 학문의 발달과정에서 여러 가지 학문들이 모두 통합이 되고 있다. 대학 초기에 Darwin의 진화론, 생물 학, 생리학, 신경학 등 생물학 분야의 학문들에 관심을 가지 면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Freud는 물리학의 대가인 Helm- holtz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특히 그의 인과론, 결정론, 에너 지 불변의 법칙, 혹은 항상성 이론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정 신도 가능하면 에너지를 적게 소유한 상태에서 평형을 유지 하려 한다는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에너지가 축적이 되어 발 산이 되지 못하면 정신증상이 나타난다는 설명이었다(Lee 2003). Freud는 신경학에도 관심이 많아 신경질환에 Erb의 전기요법을 시도하기도 하였다(Park 2007). 또한 Freud는 Theodor Fechner의 정신물리학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이 런 다양한 학문의 분야가 서로 통합되어 정신분석이라는 새 로운 학문으로 탄생하게 된다(Robert 2007). 둘째는 심리학 과 문학과의 합일이다. 어려서부터 Freud는 독서를 많이 하 였다. 아버지 Jacob은 Freud로 하여금 책을 많이 읽혔다. Fr- eud는 ‘책에 대한 열정, 내 인생에 대한 성찰, 애서(愛書) 취 미는 이때부터 싹이 텄던 듯하다’고 회상하고 있다(Robert 2007). Freud는 아홉 살 때(1865) gymnasium에 입학하는데 어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며, 독서광이었다고 전한다.
Goethe, Shakespeare, Zola, Cervantes 등의 작품들을 즐겨 읽었다. 또한 Freud는 글 쓰기를 무척 좋아하였다. Vienna 대 학 의학부에 입학하게 된 동기가 gymnasium 졸업 직전 Karl Bru¨hl 교수의 Goethe의 ‘자연론’에 관한 강연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때는 의사보다는 오히려 소설가, 문학을 하 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첫 번째 문학연구의 대상으로 삼 았던 작품은 Wilhelm Jensen의 중편 ‘Gradiva’였다. ‘Gradiva’
이후 Freud는 꿈과 문학 창조 사이에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 을 깨닫게 되었으며 폼페이의 역사적 운명과 인간 영혼의 심 리적 억압 현상의 유사성에 매료된다. 1917년 ‘괴테의 허구 와 진실에 나타난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는 글을 발표한다 (Robert 2007). Freud가 문학 작품을 마지막 다룬 글은 Dos- toevsky의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인데 이 작품에서는 아버 지의 살해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Freud의 꿈은 후일 괴테상(Goethe Prize)을 받음으로써 진정한 문학가로서의 자신의 꿈을 실현하게 된다(Robert 2007). 셋째 심리학과 철 학의 합일이다. Freud가 자주 들었던 강의 가운데 철학자 Franz Brentano의 명강의가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거의 3년 동안이나 이 교양 강의에 참석하여 Brentano의 아 리스토텔레스 강의를 세 강좌씩이나 들었다. Brentano의 권 유에 따라 그는 철학자 Stuart Mill의 서적을 탐독하기도 했 다. Brentano는 심리학에 새로운 사상을 도입했는데, 심리 생
활을 뚜렷이 구분되는 세 개의 구역(표상, 감정 변화, 판단) 으로 나눔으로써 자신의 심리학의 토대를 마련한다. Scho- penhauer의 의지에 대한 개념은 Freud의 무의식에 대한 개 념의 발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Sheehy 2009).
넷째, 신화학 또는 종교와 심리학의 합일이다. Freud 자신 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발달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종교가 미친 영향은 아주 크다. 대학시절에도 성경을 즐겨 읽었다. Freud는 어렸을 때 부터 성경을 읽은 것이 자신의 지적, 정신적 발전에 깊은 영 향을 미쳤다는 점을 늘 솔직하게 인정하였다. 그리스의 ‘오 이디푸스 왕’ 신화에서 따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Freud 의 정신분석 이론의 핵심사상이다. Freud는 오이디푸스 콤플 렉스를 ‘인간이면 누구나 성장과정 중에 경험하는 인류의 보 편적인 현상이며, 신경증의 핵심적 원인’이라고 하였다. 다 섯째, Freud의 각 이론 내에서의 합일이다. 제2기 지정학적 이론에서 Freud는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작동하는 마음 의 부분을 무의식상태라고 규정하고 인간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무의식계는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전혀 알 수 없는 부분, 즉 무의식계와 주 의집중을 하면 알 수 있는 전의식계라고 하였다. 즉, 인간의 마음은 의식계, 전의식계, 무의식계의 세 부분이 있다고 보 는 관점이 제2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차과정과 이차 과정의 개념,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개념 등이 이 시기의 중요한 개념이다. 제3기 구조이론에서는 정신의 기능을 자 아, 이드, 초자아의 세 가지 구조로 나누어 인간의 정신을 정 의하려 하였다. 이러한 구분의 궁극적 목표는 각 구조들 간 의 조화로움의 성취이며, 가장 완벽한 조화로움은 합일이다.
즉 의식, 전의식, 무의식이 하나가 되고, 일차과정과 이차과 정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드와 자아 그리고 초자아가 하나 가 되면 가장 완벽한 정신상태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마 지막으로는 삶과 죽음의 합일이다. 암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도 Freud는 16년간을 초연하게 지내면서 자신의 학문의 영역을 넓혀 갔다. 죽음에 임박하면 서도 아주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장엄하게 받아들이고 있 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고 있다,
최근 들어 Freud의 이론과 학설 자체에 대한 여러 가지 비 판들이 노출되고 있다. Freud의 이론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를 떠나 자신의 학문에 대하여 그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Freud의 태도와 인간의 정신 속에 무 의식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적용시킨 업적, 치료자 자신이 자 신의 정신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는 깊이만큼 환자나 다른 사람들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Freud의 전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중되어야 할 가치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의미에서는 Freud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였 다고 할 수 있다. Freud는 Hannibal과 Napoleon, Massena, Cromwell 등 영웅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급기 야는 스스로 영웅이 되었다.
결
론
음악은 인간의 정신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며, 정신의학 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정신분석의 이론에 따르면 음악 은 인간 정신의 의식과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구조적으로 는 이드, 자아, 그리고 초자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에 음악 과 정신분석에 있어서 각각 뛰어난 업적을 남긴 Beethoven 과 Freud에 대하여, 발달과정, 발달과정에 있어서의 공통점 그리고 이를 통하여 성취하고자 한 궁극적인 가치가 무엇인 가를 살펴보았다. 양자 모두 심리적 또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성장하여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격적인 성숙 을 이룰 수 있었으며,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하여 인간 존 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었다. 또한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태도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과 정을 통하여 양자가 공통적으로 성취한 가치는 대극의 합일 이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삶과 죽음이라는 대극을 초월함 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고 있다.
Conflicts of Interest
The author has no financial conflicts of 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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