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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기원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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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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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역사적 상황과 사건을 중심으로

김 영 철*

1)

Ⅰ.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이해와 정의

Ⅱ.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역사적 기원 1.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사회적 실천 2. 근대디자인의 사회적 이념과 실천

Ⅲ.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전개 과정

1. 1960년대 저항문화운동과 행동주의 예술․디자인 2. 환경․반소비주의 운동과 행동주의 예술․디자인 3. 한국의 사회변혁운동과 민족민중미술(1980년대) 4. 한국의 후기산업사회와 시각문화운동(1990년대)

Ⅳ. 결론

* 홍익대학교 겸임교수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2019년 여름 정기학술대회 기획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원고 를 수정보완하여 게재한 것임.

* DOI http://dx.doi.org/10.17527/JASA.58.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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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이해와 정의

이 연구는 예술과 디자인이 사회문제와 연계하여 어떻게 개입하여 작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다. 물론 예술이라는 영역 속에 디자인이 수렴되거나 포함 되는지, 아니면 별개의 영역인지에 관해 논할 문제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두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한 이유는 논하고자 하는 오늘날 행동주의 예술, 행동주의 디자인의 실천방식과 작품(업)형식이 구조적으로 큰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행동주의 예술 또는 행동주의 디자인은 여러 다른 이름으로도 불려왔다. 예컨대 주로 미술 분야에 있어서는 비판(적)예술(Critical Art), 공공(적)예술(Public Art), 공동체(적)예술(Community Art) 등이 있으며, 디자인 분야에서는 성찰적 디자인, 비판적 디자인, 참여(시민) 디자인, 공공 디자인, 커뮤니티 디자인, 사회적 디자인 등으로 불린다.

모두다 기존의 예술과 디자인의 장르에 대해 반성적으로 인식하고 사회문제에 관해 비판적 생각과 행동을 요구하는 것으로 귀결할 수 있다. 그런데 행동주의 예술 또는 행동주의 디자인이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데에는 대상에 대한 나름의 입장과 방법론에 따라 달리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성찰적․비 판적 예술과 디자인에 있어서는 자기 장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에 집중하는 편이며, 공공․공동체․참여․사회적 예술과 디자인은 성찰과 비판을 넘어 사회문제에 대한 실질적 대안과 행동을 요구하는 것에 집중하는 듯하다.

이에 대해 2018년 김준기의 박사논문 한국 사회예술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영역들을 ‘사회예술(Social Art)’로 통합 규정하고 각기 다른 이름들의 변별적 차이를 정의하고 있다. 다음의 표는 그의 주장을 정리한 내용이다 [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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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사회예술의 영역 및 성격

위 정리된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예술의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사회 예술은 사회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지점과 방향성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술이 사회와 적극적으로 만나야 하는 것만큼 사회예술은 단순히 비판적 입장에 머물지 않고, 주어진 (정부주도로 정책화된 사업) 공공사업의 차원을 넘어 변화와 혁신을 위한 운동주체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동시대 사회예술이 방향성으로 제안하고 있는 ‘행동주의예술’과 ‘공동체예술’에 관한 다음의 설명을 들어보자.

행동주의 예술은 ‘위로하기(console)’보다는 ‘맞서는(confront)’ 것을 자기 목적으로 삼는다. 그것은 사회현실에 개입하는 저항적, 전복적인 예술을 가리킨다. 미적 영역에서 행동주의 예술가들의 과제는 지배적인 미적 순수성 (aesthetic purity) 이데올로기에 도전하고 기존의 분과 영역들(existing disciplinary boundaries)을 뒤흔드는 식으로 질서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반면 공동체 예술은 공공영역에서의 대화적 상호작용에 기반한 예술에 해당된다. 그것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정체성의 형식들을 선회하며 공동체를 재정의 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물론 그것은 기존 공동 체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때도 있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 때도 있다. 만일 부정적인 태도가 지배 집단을 향한 것일 경우엔 ‘행동주의예술’ 색채를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예술은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을 긴장 속에서 창의적으로 결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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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서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의 공존을 핵심 가치로 둔다. 그것은 예술과 사회의 접점을 형성해온 비판예술이나 예술과 사회의 합치를 강조하는 공공예술과는 달리 공동체예술 또는 행동주의예술처럼 예술의 자율성을 견지 하되 사회적 실천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예술을 염두 해 둔다.1)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기원’에 관해 논하고자 하는 이 글에서 본 연구자가 이상과 같은 용어 설명을 하는 이유는 현재 하나의 용어로 정착되어 있지 못함을 말하고도 있지만 각기 다른 이름, 나아가 예술과 디자인의 장르구분에 있어서도 내용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와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이 실행되는 기능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예술과 디자인을 다소 구분할 수 있다. 이 를테면 기존의 디자인 영역에서 바라볼 때 예술 영역에서 사회적 개입과 관계가 적극적으로 작동될수록 창작방법론에 있어서 디자인 프로세스가 적극적으로 작용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논제에서 다른 용어보다 ‘행동주의’라는 용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오늘날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지난 시기보다 더 실천과 대안을 강조하고 있다고 판단되어지기 때문이다.

Ⅱ.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역사적 기원

이 논문의 주제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기원과 전개’를 내용적으로 한마 디로 풀어 말하면 ‘행동주의 예술 및 디자인에 관한 역사적 사건들의 나열’이다.

그러나 다음에 열거하는 역사적 상황과 사건들은 단순 나열의 차원을 넘어 행동 주의 예술․디자인이 작동하는 사고와 실천의 원천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1) 김준기, 한국의 사회예술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8), ⅱ (국문초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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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기술된 내용은 시기적으로 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발생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한 이유는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기원을 찾기 위 해 근대 이전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단정적으로 말하 면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은 ‘공화국(republic)’ 또는 ‘민주주의(democracy)’라는 역 사적 조건과 방식 속에만 유효한 의미를 갖는다.

1.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사회적 실천

파악되는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에 관한 작품의 대부분은 당대 사회현상과 구조에 대한 비판, 때로는 비타협적으로 곧바른 사회적 해결을 요구한다. 그것들은 마치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하는 것’2)처럼 보여 지기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역사 적으로 서구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이 그러한 면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세기 초 서구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급진적이며 전복적인 예술관을 형성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를테면 구시대적인 관습과 인습을 타파하자는 새로운 예술운동들의 부상이었다. 이를 ‘아방가르드 운동’이라 불렀다.

주로 ‘전위대’라는 군사용어로 사용되었던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말은 예술용어로 차용되어 그 의미에 따라 미리 앞서 상황을 정찰하는 전위대처럼 끊임없이 현재의 문제와 대결하며 미래를 새롭게 예측해보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한 시도들은 당시의 예술개념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혁명적 예술경향 또는 그 운동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이 용어가 발생한 시기로 보면 ‘모더니즘’ 또는

‘모던스타일’이라는 말과 같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3) 그런데 예술사가들이 예술의

2) “Be Realistic, Demand the Impossible(현실을 직시하고,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이 것은 파리 68혁명 당시 익명의 낙서화가가 파리의 어느 담벼락에 쓴 문구다. 세상은 변혁을 기다리고 있다. 피에르 베르나르(Pierre Bernard: 1986년 5월 파리 학생운동 이 후에 설립된 프랑스 디자이너 집단 그라푸스(Grapus)의 설립자. 그라푸스는 그래픽 아트와 정치적 행동의 역동성을 통해 문화를 정치에, 정치를 문화에 도입하려고 시도 했다.), 1968.

3) 아방가르드라는 용어가 다른 곳보다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뿌리를 내리고 익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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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명함에 있어서 ‘반사회적, 체제 전복적,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라는 특성이 드러난 작품에 아방가르드라는 말을 모던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방가르드 예술론의 저자 레나토 포지올리(Renato Poggioli, 1907-1963)는 아방가르드의 이념과 현상은 ‘사회적 소외’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면서 예술이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현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도 쓰여 진다고 말했다.

다다, 입체파, 초현실주의, 데 스틸, 절대주의, 구성주의, 표현주의로 대표되는 아방가르드 예술은 기본적으로 예술과 사회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운동들은 각각의 관심과 영역 속에서 조형의 변화만을 추구하는 예술 지향적 아방가르드와 조형의 급진적 변화는 물론 사회를 비판하고,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적극적 도구로 활용하는 사회 지향적 아방가르드로 구분되어진다. 그러나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다각적 전개상황으로 볼 때 각 예술운동들이 두 가지 관점으로만 꼭 나뉜다기보다는 오히려 당시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각 개인의 입장 차이에 따라 구분된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엘 리시츠키(El Lissitzky, 1890-1941), 타틀린(Vladimir Tatlin, 1885-1953),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 1891-1956),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 1891-1968), 게오르게 그로츠(George Grosz, 1893-1959), 케테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1867-1945) 등이 대표적인 사회 지향적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2. 근대디자인의 사회적 이념과 실천

행동주의 디자인, 또는 예술이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근대디자인의 탄생은 거대한 사회개혁 프로젝트로 기억될 수 있다.

진 이유는 그 두 나라의 문화전통에 그 용어에 함축된 문제에 대한 감각이 두드러졌 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문화적․미학적 문제의식에서, 프랑스는 예술과 문화에서의 사회성의 관점에서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언어학적으로 보아 이 용어와 개념의 라틴 어적 성격은 독일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로 독일에서는 ‘모더니즘’이라든가 ‘모던 스타일’과 같은 무의미한 용어들이 훨씬 우세하게 사용되었다. 레나토 포지올리, 아 방가르드 예술론, 박상진 옮김 (문예출판사 1996),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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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적 측면에서 강조되는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 윌리엄 모리 스(William Morris, 1834-1896), 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 형식미학을 갖춘 독일공작 연맹과 바우하우스 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디자인은 근대사회의 정치․경제․

사회․문화에 대한 하나의 위기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과 지식 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일종의 문명적 위기의 시대이며 이 위기를 새 로운 문화적 실천을 통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4)

근대 지식인들은 이러한 위기의 시대적 분위기를 사회․문화의 여러 측면에서 발견하였다. 대표적으로 사상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존 러스킨 역시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에 관한 다각적 관심과 활동을 보였으며, 이후 그의 생각은 근대디자인의 철학적 명제 또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러스킨은 시대의 문제를 인식한 결과로서 다음과 같은 사상을 펼쳤다. 이를 테면 중상주의(重商主義) 경제를 거부하고, 중세 고딕 성당의 디자인과 건축을 표본삼아 예술과 노동의 결합을 통한 사회봉사를 강조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배경에는 “사회가 최대 다수의 고상하고 행복한 인간군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깔려있었다. 러스킨은 이런 생각과 실천이야말로 “유럽이 다음 세대를 위해 회복해야만 하는 사회적 질서”라고 주장했다.

러스킨에 의하면 예술이 사회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 부터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산업화는 예술가를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예술 가들의 독창적 사고와 형식의 쇠퇴, 단순 기술자들에 의해 조악한 디자인을 대량

4) 윌리엄 모리스가 태어난 1830년대의 영국은 부르주아 계급이 서서히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는 시기였다. 1832년의 선거제도 개혁 결과 45만 명의 부르주아가 새롭게 선거 권을 갖게 됨으로써 19세기 중반에 부르주아는 결정적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1834 년 신구빈법이 제정되었고, 1837년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했으며, 1838년에는 차티 스트 운동이 시작되었다. 1846년에는 곡물법이 철폐되었고, 1848년 프랑스혁명이 일어 나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858년에는 영국이 인도를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고, 1871년 파리 코뮌이 성립되었다. 그야말로 국내외적 으로 여러 가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박홍규,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 상 (개마고원 1998), pp.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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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하게 되었으며, 이것으로 일명 ‘역사적 절충주의’라는 기괴한 상황을 야기했다.

러스킨은 아름다운 것은 바로 아름답다는 이유 때문에 가치 있고 유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름다움을 기능적 수단으로 여기지 말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정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개선, 국가교육시스 템, 그리고 노인들을 위한 퇴직연금제도 등을 주창하기도 했다. 러스킨의 심미적 철학과 사회의식에 대하여 당대의 건축가, 디자이너, 화가들이 깊은 공감을 했는 데, 그들 중 윌리엄 모리스는 그의 사상에 힘입어 서구 디자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인물이 되었다.5)

모리스는 러스킨의 사상에 힘입어 미술공예운동(Art & Craft movement)을 주창했다 [표 3-4]. 그가 단지 자신의 작품 및 작업영역에만 한정하지 않고 운동 이라는 것으로까지 전개하고자 했던 이유는 그가 살았던 빅토리아시대에 단순 기술공들에 의해 대량으로 쏟아 나온 생산품들의 무개념적 심미성에 대한 혐오스 러움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미술공예운동은 이러한 상황의 구조적인 이유가 19세기 말 경쟁적인 상업주의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적극 적으로 비판하였고, 분업화된 기계적 노동의 부당함을 강조하였으며, 나아가 자본 주의적 독점계급제를 부정하고, 인간 평등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게 되었다. 이에 덧붙여 아름다움의 개념적, 역사적 조형의 의미를 강조하는 수공예 창작방식의 복귀를 옹호하였으며, 모리스를 비롯해 함께한 디자이너들은 생산물의 합목적성, 소재의 본질과 제작 방법의 성실성, 그리고 디자이너와 제작자 양자의 독자적인 표현 등을 주창하였다.

이처럼 근대디자인은 자본주의적 분업화의 초기 단계에서 나타난 노동과 예술의 분리, 또는 기술과 예술의 분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5) Philip B. Meggs, A History of Graphic Design (New York: Van nostrand Reinhold 1983), p.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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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윌리엄 모리스 사상의 전후 영향관계6) [표 3] 윌리엄 모리스와 미술공예운동7)

Ⅲ.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전개 과정

1. 1960년대 저항문화운동과 행동주의 예술․디자인

1960년대는 오늘날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구체적인 성격과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민권․인권․사회적 약자에 관한 문제, 반전․반제국주의․

제3세계․지역성에 관한 문제인식은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전성기와 그 발현 형식의 전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기존 예술관을 포함한 사회-문화 전체 구조적 변화의 실천행동으로 기억될 수 있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도 러시아의 사회주의와는 다르게 유럽과 미국의 노동 계급의 상황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한 역사적 유물론에 근거한 사회적 변화가 전개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는 예측했던 것보다 한층 더 견고 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알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이론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6) Paddy O'Sullivan, William Morris & New from Nowhere: A Vision for Our Time, ed. Stephen Coleman & Paddy O'Sullivan, (Green Books 1990), p. 33.

7) Edward P. Thompson, William Morris: Romantic to Revolutionary (London:

Stanford 1988), pp. 8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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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하나의 가정을 세웠다. 자본주의 체제를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 데에는 정치․경제 권력 이면 혹은 그것들을 둘러싼 어떤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이면 혹은 정치․경제 권력을 둘러싼 그 무엇은 마치 윤활유처럼 정서적으로 자동시키는 ‘문화적 요인’에 있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프랑크푸르트 대학 사회연구소와 관련된 일련의 독일 지식인들을 지칭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알튀세르주의의 연구는 어떠한 문화적 요인이 자본주의 체제를 오랫동안 지속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람시는 자본주의가 견고히 유지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경제체제 작동에 관한 어떤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불어넣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시민사회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확고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헤게모니가 다시 체제를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사실상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문화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버려야만 노동 계급이 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8)

자본주의 체제와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항하여 유럽과 미국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저항문화운동’이 등장한 시기는 1960년대였다. 소위 정치․사회․

문화적으로 언급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최초로 도전받고 깨진 시기였다.

특히 전 세계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억압에 저항하는 ‘해방’에 대한 생각이 자리 잡은 결정적인 시기는 1968년이었다. 베트남이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1968년 5월 블랙 드워프9)의 표지에 “우리 투쟁하리라. 우리 승 리하리라. 파리, 런던, 로마, 베를린”이라고 쓰였다. 선동적이며 일방적인 이러한

8) Antonio Gramsci,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ed. and trans. Quintin Hoare and Geoffrey Nowell Smith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71), p.

276.

9) 1968년 6월 블랙 드워프는 런던에서 간행된 신문이다. ‘흑인 난쟁이’라는 뜻을 가진 이 신문은 노동자들에게 풍자적인 논조를 섞은 뉴스를 전달하던 19세기 초 차티스트 (Chartist) 운동의 출판물에서 따온 것이다. 이 신문은 2년 간 반체제운동의 표현 수단 이자 신좌파의 발언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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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는 당대의 시대정신으로 반영되어 프라하, 바르샤바, 드레스덴, 모스크바 등지 의 사람들에게 베트남의 미국에 대한 승리는 무너뜨릴 수 없는 거대한 권력이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해방이 시대정신으로 드러난 또 다른 새로운 자극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가 체 게바라(Ernest Che Guevara, 1928-1967)라는 인물을 통해서였다. 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1926-2016)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아르헨티나 의사출신이었던 게바라는 쿠바의 혁명을 위해 게릴라부대 활동을 하였다. 미국의 이데올로기 전략에 따라 독재자가 선택되는 나라를 그들은 혁명을 통해 변혁하고자 했다.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이루고 난 후 쿠바를 모델로 삼아 더 나아가 콩고, 볼리비아의 농민혁명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볼리비아에서 생포되어 총살된 것으로 그는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게바라의 사망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왔다. 게바라의 새로운 국가 형태의 제안은 서양의 많은 사람에게 기존의 국가관과 국가의 임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들었으며, 게바라는 그의 생각을 따르는 전 세계 수십만 사람들에게 해방 운동의 신화적 인물이 되었다.

왜 국가는 개인의 삶을 규제해야 하는가? 왜 동성애는 오랫동안 금지되어 왔는가? 왜 낙태는 1967년이 될 때까지 합법화되지 않았는가? 왜 청소년들은 특정한 복장을 입어야만 하는가? 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임금과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는가? 왜 국가 관료들은 평범한 시민의 일용품과 생명에 대해 그렇게 무감각한가? 왜 대학생들은 그렇게 갑갑한 조건에서 살아야 하고 일해야 하는가? 왜 제3세계는 제1세계에 끊임없이 핍박받는가? 이러한 의문들이 다양한 형태로 곳곳에서 제기되었다.10)

이러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관련하여 1960년에는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의미와 형식 그리고 방법적인 문제까지 제기한 각종 사건이 등장했다 그 대표적 10) 티라크 알리․수잔 왓킨스, 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안찬수 옮김 (삼인

2001), p.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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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는 파리 68혁명 당시 에꼴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 Arts) 민중의 작업장 에서였다.

오래된 바로크 양식의 에꼴 데 보자르의 대형 건물은 학생과 노동자, 건축가, 미술가, 디자이너, 분노한 청년들에게 점거되었다. 그들은 매일 밤 총회에서 만나 진전된 정치적 상황과 그날 밤 만들 포스터에 어울리는 주제, 아이디어, 디자인, 슬로건 등에 대해 토론했다. 그리고 한번 투표가 실시되고 나면 바로 작업이 공동창작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스튜디오의 입구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여기는 민중의 작업장(Atelier Populaire)입니다. 부르주아의 작업장이 아닙 니다.”

그 말은 결코 개혁, 말하자면 기존의 것을 개선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개선은 기본 원칙이 바뀔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원칙이 정당 하다는 것을 이미 내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존 질서에 반대한다. 무엇이 기존 질서인가? 부르주아 예술과 부르주아 문화다. 무엇이 부르주아 문화인가?

지배 계급의 억압하는 힘은 예술가들에게 특권적인 사회적 지위를 제공 함으로써 예술가를 노동자에게서 격리시킨다. 부르주아 문화는 바로 그러한 격리 수단이 된다. 특권으로 말미암아 예술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 우리는 모두 부르주아 예술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민중의 작업장’이라는 말을 쓴 이유이다. 우리는 개선이 아니라 급진적 변화를 지향한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 내에서 존재상을 변화 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예술가와 현대적 기교 사이에 더욱 훌륭한 만남을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도록 하자. 현대적 기교는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그것은 다른 노동자들의 문제로 시야를 열어 놓는 것,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역사적 현실에 시야를 열어 놓는 것임을 분명히 하자. 어떤 선생도 우리가 그러한 현실과 더 친밀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한다. 이것이 대상, 따라서 받아들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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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울러 과거 예술가들과 선생들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스스로 사회 내에서 자신의 존재를 변혁하고 이러한 독학에 참여하는 것을 결심해 야만 하는 상황에 있다. 따라서 이제는 부르주아 교육이 도전을 받고 민중 교육으로 향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11)

파리 68혁명 당시 에꼴 데 보자르 민중의 작업장에서 제작된 행동주의 예술과 디자인은 아래 이미지들이다 [도 1-2]. 이러한 전단 및 포스터 이미지는 정교함은 없지만 어떤 포스터들보다 생생한 전달과 소통의 직접성을 갖고 있다. 마치 즉흥 시처럼 느껴지는 이 포스터들은 대중의 감성 코드를 잘 읽고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건의 맥락과 연계시켜 재치 있는 구성을 한다. 단순한 심볼 등으로 내용을 함축적으로 전달하여 정서적인 자극을 유도한다.

[도 1] 1968년 5월 파리 민중의 작업장에서 만든 포스터

[도 2] 1968년 5월 파리 학생 행동대가 사용했던

‘민중의 작업장’

에꼴 데 보자르의 민중의 작업장에서뿐만 아니라 1960년대 사회적 변혁의 11) 티라크 알리․수잔 왓킨스, 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pp. 17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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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담는 포스터를 비롯한 그 밖의 행동주의 예술․디자인 작품들은 대중적 소통을 중심으로 보다 직접적인 시각언어(판화, 일러스트레이션, 만화, 사진, 몽타주, 굵은 활자, 손글씨 등)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팝아트, 사이키델릭 포스터 작품들에 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대중의 문화적 코드에 근거한 직접적인 시각언어들은 다듬어지기 보다는 거친 현장성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확실한 메시지 중심의 조형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현재까지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의 전형적인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2. 환경․반소비주의 운동과 행동주의 예술․디자인

돌이켜보면 1960년대 세계는 정치․사회․문화적 혁명의 열기 속에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냉전 체제가 공고했으며, 사회적으로는 인권문제를 비롯한 불평등한 제도적 모순에 저항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문화적으로는 대중문화의 확산에 따른 권위적인 엘리트 문화(고급문화)에 대한 저항문화의 단초가 형성되 었다. 또한 사회변혁운동과 동반하여 생태환경운동도 대중적 주목을 받았다. 이것은 당시 기술진보주의 맹신에 대한 반작용이었으며, ‘당신은 소비하므로 존재한다.’라는 후기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소비주의 태도에 저항하는 것이기도 했다.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에 있어서 환경과 반소비주의에 관한 주제는 이 시기 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이슈가 되고 있으며, 특히 디자인 분야에 있어서 비판적 자기성찰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이 시도되었다.

1962년 레이첼 카슨(Rachél Carson, 1907-1964)의 침묵의 봄 Silent Spring

이 출판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농약, 살균제, 제초제가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카슨은 폭로했으며, 나아가 그것들이 지구 생태계 파괴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경고했다.

이 책을 필두로 환경 및 생태문제 관련 서적들이 널리 보급되면서 점차 이전에 눈여겨보지 않던 산업화와 기술진보주의 맹신의 부작용이 압력단체12)의 관심사로 12) 1969년 미국에서 설립된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과 1971년 캐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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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각되었다. 이들은 급속한 산업화의 문제에 따른 수질오염, 대기오염뿐만 아니라 항공운항, 도심개발에서 발생하는 소음공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후기소비자본주의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자본주의체제의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다 더 가속화되었다. 전쟁은 인력과 군수품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기술 진보를 촉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전쟁 특수를 통해 크게 성장한 미국은 ‘고도 대량 소비기’, 다시 말해서 많은 상품이 포화 단계에 이르는 소비중심사회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를테면 집, 자동차, 일상용품, 서비스 시장을 확장시기위해 신흥 중산층의 성장을 독려했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는 결핍과 필요에 근거한 체계에서 풍요와 욕망에 근거한 체계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빠른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나라들은 미국을 하나의 모델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13)

소비중심사회에서 파생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라는 것은 결국 빈부의 극심한 갈등, 양극화 현상으로 구조화 되어있지만 보다 직접적인 문제는 생태환경적인 문제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소비 이후의 버려진 쓰레기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런 문제에 대한 지적으로 1956년 숨은 설득자들 The Hidden Persuaders과 쓰레기 생산자들 Waste-Makers의 저자 밴스 팩커드(Vance Packard, 1914-1996)는 자본주의 경제의 은밀한 작용을 분석하고, 대량소비의 이중성을 폭로하였다. 팩커드는 대량소비가 부를 배가시키는 한편 동시에 대중의 의식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면서 소비는 과잉생산과 필요이상의 수요를 발생시킨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정신적․환경적 침략’이라고 일축 했다.14)

당시 소비중심사회가 일으키는 문제들에 대해 팩커드와 같은 관점과 비판적 시각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본주의체제에서 디자인이 소비유혹 및 촉진을 위한 노력을 한 결과에 대한 출판물을 발표하였고, 디자인을 통한 사

시작된 환경운동 단체인 그린피스(Greenpeace)는 국제적인 압력단체로 성장하여 전지 구적 환경문제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3) 나이젤 휘틀리, 사회를 위한 디자인, 김상규 옮김 (시지락 2004), pp. 34-35.

14) 페니 스파크, 20세기 디자인의 문화, 최범 옮김 (시지락 1995), pp. 272-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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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문화․환경과의 관계를 재설정 할 수 있는 여러 대안들을 찾기 시작했다.

1973년 현실세계를 위한 디자인 Design for the Real World의 저자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 1927-1998)은 소비중심사회를 조장하거나 자극하는 디자 인에 대한 자기반성과 그 대안적 작업들을 구체적으로 제안하였다.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 체제 안에서 디자인이 수행하는 역할과 기능은 단순히 미적역할에만 충실할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도덕적․사회적 요구에도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더 이상 ‘성인의 장난감’을 만드는 일에 디자이너들이 전적으로 몰입하는 대신 산업으로부터 독립하여 진정한 인간의 문제를 다루길 촉구했다. 생태환경, 제3세계, 장애인, 노인 등의 문제에 관한 것들 이었다.15)

생태환경․반소비주의 운동은 1980-90년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한 이유는 아직까지 특별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바 그람시의 문화 헤게모니, 나아가 경제 헤게모니의 구조 속에서 후기소비자본주의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공모(共謀)하는 구조로 설계 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예컨대, 녹색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환경 친화적 제품 ‘그린 디자인’이 1980년대 말부터 유행했지만 이것 역시 결과적으로 마케팅적 포장논리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저성장, 지속가능한 상태유지라는 위로 섞인 관념적 개념들만 난무했다.

반면 1989년 ‘행동주의 디자인’의 한 사례로 애드버스터스 Adbusters [도 3] 라는 한 잡지가 창간되었는데 이 잡지의 주요 메시지는 ‘반소비주의’였다.

‘광고 파괴자’라는 뜻을 가진 애드버스터스는 광고가 시민들에게 소비욕망 을 자극하며, 심지어 그것이 진실이 아닌 잘못된 환상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 라 주장하면서 광고와의 전쟁을 선언한 잡지다. 광고의 무책임한 선전과 거짓말은 문화 전체를 소비욕망으로 변질시키고, 심지어 이 욕망은 인간적이며 정당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광고는 주지시킨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 잡지는 ‘문화 훼방꾼’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욕망의 정당성을 재생산하는 광고의 메시지를 뒤집고, 전파하려는 15) 빅터 파파넥, 인간을 위한 디자인, 현용순․이은재 옮김 (미진사 1983), pp. 4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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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을 막음으로써 지배문화에 훼방을 놓으 려 했다.

그러나 소비중심사회의 문제에 대한 강도 높은 체제비판을 해온 애드버스터스

역시 비판 이상의 특별한 대안적 모색을 찾 지 못했다.16) 이 점에 대해 ‘행동주의 예술․

디자인’으로써 사려 깊게 고민해야 할 점을  혁명을 팝니다 The Rebel Sell의 저자 문화 비평가 조지프 히스(Joseph Heath, 1967- ) 와 앤드류 포터(Andrew Potter, 1972- )의 다음과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룩한 큰 성과는 모두 체제 내에서의 신중한 개혁을 통해 이뤄졌다. 민권운동과 여권신장운동은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의 복지에 가시적 성과를 가져왔으며 복지국가가 제공하는 사회 안전망은 시민의 조건을 크게 개선시켰다. 하지만 이런 성과가 삶을 지배하는 환영의 망과 사람들의 ‘연결을 끊음으로써’ 얻은 것이 아니다.

민주적인 정치 행동이라는 논쟁하고, 조사를 하고, 연합을 하고, 법률을 통해 변화를 도모하는 힘겨운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17)

16) 애드버스터스의 편집자 칼레 라슨은 ‘스니커 프로젝트’가 ‘나이키의 쿨한 모습을 벗 기는 획기적인 마케팅 계획’이라고 설명하면서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자본주의를 혁명 적으로 변화시키는 선례를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인가? 리복, 아디다스, 푸마, 반스 및 이외 여러 기업이 수십 년 동안 나이키의 쿨한 모습을 벗기려 노력했다. 이게 바로 시장경쟁이라고 부 르는 것이며 사실상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라슨이 경쟁사와 달리 ‘노동 착취의 공장’

에서 신발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공정거래와 윤리 마케팅은 혁명적인 생각이 아니며 자본주의 체체를 위협하는 요소도 아니다. 소비자가 행복한 노동자가 만든 신 발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면 이런 제품을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벌 수 있을 뿐이다. 바디샵과 스타벅스가 이와 같은 사업모델로 이미 크게 성공을 두지 않 았나!”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혁명을 팝니다, 윤미경 옮김 (마티 2006) pp. 8-9.

[도 3] 애드버스터스 No. 37 (2001) 잡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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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의 사회변혁운동과 민족민중미술(1980년대)

지금부터는 행동주의 예술과 디자인이 한국에서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 하였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에서 예술이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과 저항이 드러나는 시기를 말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예술이 사회현실과 밀접하게 관계 맺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본격적 으로 드러난 시기는 1980년대였다. 소위 ‘민족민중미술운동’을 통해서였다. 민족 민중미술운동이 촉발된 사회적 계기는 부마민주항쟁(1979)과 광주민주화운동 (1980)이었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사건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12․12 군사쿠데타’에 대한 저항으로만 머물지 않고, ‘미완의 4․19혁명’, ‘5․16 군사쿠데타’

등과 같은 반복되는 역사적 근본 원인, 제국주의 전선에 의한 분단문제, 독재에 항거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열망을 비롯한 사회․문화․생활 민주주의에 관한 총체적 모순에 대한 의문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1980년대적 상황은 곧 문화예술 영역에 있어서 ‘현실문제인식’에 관한 통로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1979년 11월 17일

‘현실과 발언’이라는 미술패 모임의 선언에 주목해 보자.

“[…] 따라서 우리의 모임에서 내세우는 ‘현실과 발언’이라는 명제는 우리가 앞으로 모색해야 할 방향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물음을 함축하고 있다고 봅 니다.”

1. 현실이란 무엇인가? 미술가에 있어서 현실은 예술 내부적 수렴으로 끝나 는가, 혹은 예술 외부적 충전의 절실함으로 확대되는가? 이 문제부터 현실의 의미에 대한 재검토 및 미술가의 의식과 현실의 만남의 문제.

2. 현실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 현실인식의 각도와 비판의식의 심화, 자기에게 뿌리내리고 있는 현실의 통찰로부터 이웃의 현실, 시대적 현실, 장소의 현실과의 관계, 소외된 인간의 회복 및 미래의 긍정적 현실에 대한 희망.

3. 발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발언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누가 발언자 17)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혁명을 팝니다, 윤미경 옮김 (마티 2006) p.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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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며 무엇을 향한 발언인가? 누구를 위한, 누구의 의한 발언인가? 발언자와 그 발언을 수용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4. 발언의 방식은 어떤 것인가? 어떻게, 어디서, 어떤 효율성을 기대해야 하 는가? 발언 방식의 창의성, 기존의 표현 및 수용 방식의 비판적 극복, 현실과 발언 간의 적합성과 상호작용.18)

현실과 발언의 선언은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사건이 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당시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공포스럽고 암울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행동은 마치 앞서 기술한 파리 68혁명 ‘민중의 작업장’을 연상케 한다. 그 내용적 맥락은 예술가는 한 사회에서 ‘가치중립적’이라는 특권 의식을 버리고 사회현실에 직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작품 및 작업행위가 하나의 사회적 발언으로써 창작방식과 소통의 다양한 형식을 갖고자 했다.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 즉 ‘현실주의’에 입각한 예술가들의 활동 및 문화 운동은 1980년대 예술의 주요한 특징이 되었다. 그렇다면 80년대 이전에는 한국의 예술(미술) 경향은 어떠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미술을 지배해 온 유미 주의와 형식주의였다. 주로는 서구로부터 직수입된 형식의 아카데미 속에 갇혀있 었고, 문화예술은 정부주도의 문화정책 속에서 한국식 모더니즘으로 고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신체제가 몰락하면서 봇물처럼 터져 나온 역사적, 사회적 모순 앞에서 수십 년 동안 지탱해온 지배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이제까지 지탱해온 예술적 개념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79년 11월에 결성되어 1980년 10월에 첫 전시를 가진 ‘현실과 발언’은 “유 한층의 속물적 취향에 아첨하거나 고답적인 관념의 유희에 빠져 있던 기존 미술의 관행을 깨고 미술의 건강한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19)는 인식 아래 참신하고 굳건한 조형이념 확립을 목표로 내세웠다.

당시 현실과 발언의 이론가였던 성완경은 “예술가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자유’라면 이 자유는 오늘의 예술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가를 인식하는데서 18) 현실과 발언2 편집위원회, 「민중미술을 향하여」, 과학과 사상 (1990), p. 595.

19) 현실과 발언2 편집위원회, 「민중미술을 향하여」, pp. 59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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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상상의 공간과 현실공간의 일치를 지향하는 것, 그것을 가로막는 어떤 힘에도 현실적으로 대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참된 자유”

라고 주장했다.20)

현실과 발언이후 1980년대를 관통하면서 소위 ‘좌파 예술’, ‘운동권 예술’로도 치부되는 ‘민족민중미술’은 하나의 조형적 전형성을 갖게 되었다. 이를테면 ‘민족 형식과 민중적 정서’, ‘공동창작의 활성화’, ‘대중적 소통전략의 개발’ 등의 이유로 전통 민화 화법과 집회에서 사용되는 걸개그림 및 벽화, 소비상품, 매체활용 등에 적극성을 발휘했다. 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행동주의 예술의 전형적 양식으로 남아있지만 예술로서 고립화된 형식적 비판을 넘어 이 시대가 한국사회 에서 예술의 사회화에 지대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도 4-9].

[도 4] 주재환, <몬드리안 호텔>, 1980 [도 5] 성완경, <드라마에서는 이 두 사람이 해외지사로 나가는 것으로 했다>, 1981

20) 성완경, 「미술제도의 반성과 그룹운동의 새로운 이념」, 마당 11월호,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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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6] 두렁, <통일염원도>, 1985 [도 7] 김환영, 남규선 외, <통일의 기쁨>, 1986

[도 8] 집회장의 걸개그림, 1988 [도 9] 솜씨공방, <솜씨카드>, 1988

4. 한국의 후기산업사회와 시각문화운동(1990년대)

‘저항운동․저항예술’로도 표명될 수 있는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은 1990년대 한국에서는 중심보다는 주변부의 문제에 대한 저항으로 드러나는 경향이 짙었다.

예컨대 거대 담론이나 정치적 이슈에 치중하기 보다는 일상 속에 녹아있는 비 민주적 장치, 차별적 요소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민간정부라는 의미의 문민정부가 1993년 탄생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6․29선언을 통한 군사정권의 과도기를 지나 1990년 3당(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합당이라는 과정이 있었다. 3당 합당에 따른 정권의 변화는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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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새로운 정권의 탄생이었는가에 대한 정당성에 대한 의문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혁명적 변화보다는 온건한 개혁을 선택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1980년대에 비해 1990년대 저항운동은 다소 그 열기가 식었다.

문화운동 역시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저항의 이유가 불분명해지는 듯했다.

여기에는 정치․사회적 저항문화와는 별개로 형성된 대중문화의 형성과정과 관계가 있다. 1980년대 세계경기 부흥에 힘입어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사회 계급․계층구조가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소위 중산층의 증가다. 이를 배경으로 다양한 문화적 층위가 생겨났다.

1990년대 한국은 신흥 중산층의 증가로 인한 소비자본주의 사회로의 급격한 이동이었다. 따라서 사회 계급․계층 모순도 1980년대보다 한층 더 복잡하게 나 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변혁운동과 문화운동에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만들 었다. 예컨대 민족민중미술운동에 있어서 민족적, 민중적인 지향성을 토대로 여러 운동의 방식을 제안하고 실천해왔지만, 산업구조의 변화, 새로운 대중매체의 등장에 따라 이념은 좋으나 형식적인 면에서 정서적 공감대를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1990년대 사회변혁운동과 문화운동은 대중소비사회에 대항하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 하였는데, 그것은 대중을 상대로 한 ‘소통’과 ‘소통방식’의 변화였다.

볼프강 하우크가 후기 산업사회의 지탱 이유를 사용가치의 미적 약속, 미적 추상, 미적 혁신, 감성의 정형화로 본 것처럼 이를 추동하고 소통하게 하는 ‘대중 매체’에 관한 연구와 그 대응방식에 대한 고민이었다. 사회변혁운동가와 문화운동 가들은 그동안 소통의 과학과 소통방식의 감성적인 면을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국의 ‘리얼리즘과 미술’에 관한 1980년대의 고답적 논의를 미술비 평가 엄혁(嚴赫, 1958- )은 다음과 같이 일축하고, 예술(미술)을 ‘소통방식을 위한 도구’라고까지 말하였다.

우리가 리얼리즘(현실주의)이 단순한 미학적 사조가 아니고, 형식도 아닌 시대의 정신이라는 사실에 동의했을 때 미학, 형식, 창작 등은 정신의 도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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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하다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 현실과 현실적인 관계를 지속하 면서, 형식적 민중성 혹은 형식적 리얼리즘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생생하고 구체적인 미술을 위해 우리는 우리 시대의 우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따라서 리얼리즘은 비디오, 영화, 사진, 출판미술, 컴퓨터 등 모든 시각매체를 포용 하여 적극적 실험을 중요시하고 다각적이며 심층적인 결과를 요구한다.21)

그러나 새로운 소통방식을 통한 대응 또는 저항은 미술 또는 예술운동 차원 에서 전개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의식을 가진 각 개인 및 그룹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위 하위문화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평범한 일상 속에 들어있는 문제들, 달리 말하면 변혁운동에서 주변부에 해당되었던 것들에 관한 관심이었다.

내용적인 면에서 주변 논제가 중심 논제로 바뀌었고, 기존 질서뿐만 아니라 기존 질서와 대항하는 방식 모두가 문제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의 1990년대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다. 대중문화, 시각문화의 일상성에 관한 관심은 소위 ‘언더그라운드’ 혹은 ‘인디펜던트’라고 불리는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 홍대 앞이나 신촌 주변의 카페와 클럽 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인디밴드들은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록이나, 펑크, 하드코어 등으로 저변을 넓혔고, 이 형식적 저항의 성격을 가진 밴드들이 진보적 문화 기획자들과 만나 주류의 권위에 대한 ‘저항’ 또는 ‘대항’이라는 공통의 이슈를 보여주곤 했다. 이를테면 거리미술제, 독립예술제, 인디 록 페스티벌, 하자센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매스미디어적 대중문화의 다른 측면에서 언더, 인디펜던트 문화는 언더 만화, 인디 공연물 디자인, 저예산 비디오 영화, 웹 아트 등의 시각 생산물이 독립적인 형태로 자리를 잡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별히 이러한 조류에 가장 눈에 띄게 부각된 장르는 만화였다. 그동안 한국에서 예술이라는 범주에 있지 못했던 만화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소위 대본소 만화에서 본격적인 출판만화가 등장했고, 해외사례를 통한 만화의 대중성 및 예술적 정당성을 피력했으며, 작가들은 이를 통해 권위적인 잣대에 밀려나 있던 21) 엄혁, 「미신, 미학, 그리고 미술: 우리 시대의 아우라와 리얼리즘」, 미술비평연구회, 

문화변동과 미술비평의 대응 (시각과 언어 1993), p.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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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내적 욕망을 낱낱이 드러내는 작업들을 보여주었다.

Ⅲ. 결론

연구자는 오늘날 ‘행동주의 예술’, ‘행동주의 디자인’에 관한 일종의 역사적 출처를 찾아 확인해 보았다.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과 디자인 역시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런데 유독 예술과 디자인이 사회에 적극 개입하고자 했고, 때로는 사회변혁의 주체와 도구로 활용되고자 노력한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이는 문화, 더 구체적으로는 예술과 디자인이 역사적으로 정치, 사회, 경제 분야에 비해 한 사회의 핵심가치가 아닌 어쩌면 ‘여분’ 또는 ‘장 식’의 기능을 넘지 못해서 일지 모른다.

서구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근대디자인운동이 그랬으며, 정치적으로도 아주 강력했던 서구의 1960년대 저항문화운동과 한국의 사회변혁을 꿈꿨던 1980 년대 민족민중미술운동 역시 현재에 이르러서는 미술관, 박물관 등에 고이 접혀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나 ‘행동주의 예술․디자인’이 비판․공공․공동체․참여․사회적 예술과 디자인이라는 여러 이름으로 동시대에 다시, 아니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유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사회가 겪는 사회․문화적 갈등의 적절한 완충과 대안을 찾고자 하는 목적에 있다 하겠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예술과 디자인에서 ‘행동주의’가 말하는 것은 현실의 제한된 상황과 결과보다 상상과 실천에 그 어떤 제한된 틀을 두지 않고, 사회문 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변혁을 모색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거 행동동주의 예술과 근대디자인의 사상과 실천, 그 한계를 거울삼아 다음의 해법을 더 찾아 나가야 한다.

22)

* 논문투고일: 2019년 8월 15일 / 심사기간: 2019년 8월 16일-2019년 9월 8일 / 최종게재 확정일: 2019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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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준기, 「한국의 사회예술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8.

나이젤 휘틀리, 사회를 위한 디자인, 김상규 옮김, 시지락 2004.

레나토 포지올리, 아방가르드 예술론, 박상진 옮김, 문예출판사 1996.

박홍규,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개마고원 1998.

빅터 파파넥, 인간을 위한 디자인, 현용순․이은재 옮김, 미진사 2008.

성완경, 「미술제도의 반성과 그룹운동의 새로운 이념」, 마당 11월호, 1980.

엄혁, 「미신, 미학, 그리고 미술: 우리 시대의 아우라와 리얼리즘」, 미술비평연구 회, 문화변동과 미술비형의 대응, 시각과 언어 1993.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혁명을 팝니다, 윤미경 옮김, 마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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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목록

[도 1] 1968년 5월 ‘민중의 작업장’에서 만든 포스터

[도 2] 1968년 5월 파리 학생 행동대가 사용했던 ‘민중의 작업장’

[도 3] 애드버스터스 No. 37 (2001) 잡지 표지 [도 4] 주재환, <몬드리안 호텔>, 1980

[도 5] 성완경, <드라마에서는 이 두 사람이 해외지사로 나가는 것으로 했다>, 1981

[도 6] 두렁, <통일 염원도>, 1985

[도 7] 김환영, 남규선 외, <통일의 기쁨>, 1986 [도 8] 집회장의 걸개그림, 1988

[도 9] 솜씨공방 <솜씨카드>, 1988

표목록

[표 1] 사회예술의 영역 및 성격

[표 2] 윌리엄 모리스 사상의 전후 영향관계 [표 3] 윌리엄 모리스와 미술공예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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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이 연구는 ‘행동주의 예술과 디자인’에 관한 역사적 측면의 연구다.

먼저 행동주의 예술과 디자인의 특징과 성향을 파악하는 차원에서 예술운동 과 디자인운동을 살펴보았다. 예술분야에서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운동 속 에서, 디자인분야에서는 근대디자인의 사회적 이념과 실천 속에서 성향과 특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에서 발견된 행동주의 예술의 특징은 ‘사 회적 소외’에서부터 비롯되며, 이를 저항하거나 극복하는 태도로 기존의 지배형식 에 관한 ‘비판적-전면적 부정’이라는 성향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행동주의 예술과 디자인에 관한 구체적 대상을 파악하는 차원에 서 1960년대 ‘저항문화운동’과 ‘환경․반소비주의운동’을 살펴보았다. 저항문화운동 에서는 민권․인권․사회적 약자에 관한 문제, 반전․반제국주의․제3세계․지역 성의 관한 문제인식으로 기존 예술관을 포함한 사회문화에 대한 구조적 변화를 시도하였다. 환경․반소비주의운동에서는 지구적 생태환경의 문제, 후기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세 번째로 한국의 행동주의 예술과 디자인에 관한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 1980년대 ‘한국의 사회변혁운동과 민족민중미술운동’과 1990년대 ‘한국의 후기산업 사회와 시각문화운동’을 살펴보았다. 한국의 사회변혁운동과 민족민중미술운동에 서는 한국의 예술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사회에 개입해 가야 하는가 의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후기산업사회와 시각문화운동에 서는 대중적 소통, 나아가 소통형식의 중요성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사회가 예술과 디자인에 대해 비판적 사고와 실천적 대안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사회가 함께 겪 는 사회․문화적 갈등에 대한 적절한 완충과 해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핵심어

비판적 예술, 사회적 디자인, 저항문화, 행동주의, 행동주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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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Activist Art․Design : Focusing on Historical Situations and Events

Young-Chul Kim*

23)

This is a historical study on ‘activist art and design’.

First, the art movement and design movement are researched to comprehend the characteristics and trends of activist art and design. The characteristics and trends of the art field were understood avant-garde art movement of the early 20th century, and the design field were understood in the social ideology and practice of modern design. The characteristics of activist art found in the avant-garde art movement were derived from ‘social alienation’, and the attitude to resist or overcome this appeared as the tendency of 'critical-total negation' against the existing domination form.

Second, ‘counterculture movement’ and ‘environmental and anti-consumerism movement’ of the 1960s were researched to comprehend the specific objects of activist art and design. The resistance culture movement tried the structural change in social culture including the existing art viewpoints as awareness of problems about civil rights․human rights․the disadvantaged and problems about antiwar․anti-imperialism․the third world․

locality. The environmental and anti-consumerism movement's objects were

* Adjunct Professor, Hongik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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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uctural problems about the earth's ecological environment and postcapitalism system.

Third, ‘Korea's Social Change Movement & National People Art Movement of 1980s’ and ‘Korea's Post-industrial Society and Visual Culture Movement of 1990s’ were researched for understanding of the advent of the activist art and design in Korea. In Korea's Social Change Movement &

National People Art Movement, there was serious discussion on how Korea's art relates the society, and how it is involved with the society. In Korea's Post-industrial Society and Visual Culture Movement, public communication, or furthermore the importance of communication methods was highlighted.

In conclusion, today's society urgently demands the critical thinking and practical alternative about art and design. That's because countries in the world including Korea need proper buffer and solution for social and cultural conflicts that all of them experience.

Key Words

activism, activist art, counterculture, critical art, social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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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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