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문헌 11장
• 예수의 재판과 수난
• 요한복음 18장
체포당하여 재판받는 그리스도
• [내용개요]
• 본장부터 19장까지는 예수의 수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본장은 주로 예수의 체포와 심문에 강조를 두고 있다.
• 요한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그의 영광의 때(참조, 요 17:1)라고 전제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수난 기사를 이 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 . 또한 요한은 예수의 수난에 대한 자발심을 강조하고 있 고, 빌라도의 심문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 공관복음과 비교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본장은 체포되시는 예수(1-9절), 잘려진 말고의 귀 (10-11절), 안나스 앞에 선 예수(12-14절), 예수를 부인하 는 베드로(15-18절), 안나스의 심문(19- 24절), 거듭되는 베드로의 부인(25-27절), 빌라도의 심문(28-40절)으로 구 성되어 있다..
• 이와 같은 예수님의 수난의 동기는, 예수의 중보 기도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수난과 죽음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 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사역은 이와 같은 수난과 죽음을 향해서 걸었던 행보라고 할 수 있다.
• [강 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이르러 유대인들은 예수를 잡아 빌라도의 법정에 세웠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죽일 만한 죄목을 발견할 수가 없었지만 유대인들의 강력 한 요구에 못이겨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형을 언도했 습니다.
•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던 것입니다
• 빌라도는 어떤 인물인가?
• http://koinenews.com/archives/184
• 빌라도는 로마 황제 「디베료·가이사」치하에서 유대지역 의 로마 5대 총독(AD26-36)으로 임명된 전형적인 군인이 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예수님의 재판을 직접 주관하였던 인물로서 성경에 언급되어있다. 사도신경에서도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suffered Under Pontius Pilate)라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 「아그립바」 1세가 말하는 빌라도는 천성적으로 고집이 센 사람이고 굽힐 줄 모르는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그를 규탄하였다. 빌라도와 유대인들 간에는 그가 총독으로 부 임하면서부터 원한과 감정으로 대립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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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필로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특별히 황제의 초 상이 새겨진 휘장을 사용하거나, 빌라도와 황제의 이름이 새겨진 방패를 걸어 놓음으로서 유대인의 감정을 자극하 였다. 또한 빌라도는 성전의 보물들을 압수하여 막대한 재 산을 모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필로와 요세푸스 는 빌라도를 강탈자와 포학자로 묘사하고 있다. 눅13:1에 의하면,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 물에 섞은” 극악한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 빌라도는 예수를 재판하기 전에 그의 총독직을 위협하는 민중봉기를 두 번이나 당했다. 첫 봉기는 로마군을 투입하 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세속화시키려고 시도한데서 발생했다. 유대인들은 즉각 폭동을 일으켰다. 빌라도는 5 일만에 군대를 철수시켰다. 두번째는 예루살렘에 있는 헤 롯 궁전에 세운 「로마」기념비를 제거하라고 민중봉기를 일으켰다.
• 그는 그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에 피에 굶주린 무리들이 외치는 소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의 아내의 청원은 그로 하여금 예수를 석방시키도록 용 기를 주었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자 신의 지위와 권력으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는데 용 기가 없었다. 그와 같은 그의 성격은 군중들의 압력 때문 에 예수에 대한 판결을 바꾸어버리는 성경의 기록을 참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떤 사마리아의 거짓 선지자가 그리심산에서 성전보물 을 찾아내겠다고 주장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심산으 로 몰려 들었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 빌라도는 군 중들이 갑자기 모임으로 인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오해하고 유대인들 몇 명을 죽였다고 한다. 이 사건이 화 근이 되어 사마리아 지방에서 격렬한 폭동이 일어나게 되 고 이 사건 때문에 빌라도는 AD 36년에 로마로 소환 당하 고 총독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 역사가「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항상 예수의 비 극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으며, 그로부터 수년 후에 칼리 쿨라 황제때에 유배를 당하여 고심하다가 자살했다고 하 기도 하고, 어떤 주장에 의하면 네로황제 때에 참수형을 당하였다고 한다.
• 그리고, 어떤 전승에 의하면 그가 후에 회심하여 그리스도 인이 되었고, 그의 아내와 함께 순교를 당하였다고 한다.
특히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이지 말라고 하였던 그의 아내 는 프로쿨라라고 알려져 있는데, 에디오피아교회에서는 빌라도와 그의 아내가 추앙을 받고 있으며, 희랍정교회는 그의 아내 프로쿨라만이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