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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토 시 론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 만들기 : 공간계획을 통한 범죄예방
박재길 | 국토연구원 부원장
아무리 부(富)와 명예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생명이나 재산이 외부로부터 위협받거나 또는 위협받게 될 것으로 불안해한다면 그 사람은 결 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도시에 모여 서 집적이익을 누리고, 또 지역사회에 소속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도시는 각자 다른 배경과 성격의 사람들이 이웃해 사는 곳으로,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 유대가 약한 만큼 각종 범죄가 일 어나기 쉽고, 이에 따라서 일상생활의 심리적 안정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 사 람들의 심리적 안정은 매슬로(Maslow)가 말하는 다섯 가지 욕망 단계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1단계 욕망인 생리적 욕구에 이어 가장 기초적인 것 이다.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3단계의 소속감이나 애정, 4단계의 존경, 그리고 5단계의 자아실현 욕구들이 제대로 충족될 리 만무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생활’이라는 말이 사회 가치의 핵심어로 등장하고 있다. 정치에서도 ‘생활정치’가 회자(膾炙)되고 있다. 양적 성장 시대를 지나 서 말하는 생활이란 곧 생활의 질(質)이다. 생활의 질은 사람을 가치 중심에 두고 있다. 사회 전체의 경제 성장이나 체제(system) 발전에 주안해온 지금 까지의 가치 추구와는 구분된다. 물질적으로만 보면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과거에 비해 현격히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보다 한 단계 위의 생활 의 가치를 존중하는 새로운 성숙사회를 지향하게 되었다.
생활의 측면에서 보면 경제성장을 쫓아 만들어온 기존 도시에 대해 불편 을 느끼거나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존 도시는 인구증 가에 대응하여 주택, 도로, 상·하수도 등의 시설을 공급하면서 사람들의 일 차적 생리욕구와 기본 활동을 담는 곳으로 만들어져 왔다. 도시가 형성된 지 40~50년이 되면서 도시 시설 자체가 많이 노후화되기도 하였지만, 이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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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가 근본적으로 바뀌기도 하 였다. 도시를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곳, 사람들이 안 심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곳으로 다시 고쳐가는 노 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도시 만 들기를 재검토해야 할 상황에 와 있다. 1970년대부 터 선진국의 여러 나라에서도 사람들의 실생활(real life) 관점에서 전통적인 도시 만들기를 반성한 적이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바로 당시의 이들 나라와 같 은 사회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도시에서 범죄가 자 주 발생하여 사람들이 불안을 느낀다면, 이를 예방하 는 것이 생활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한 장 소를 찾아내 고치는 일은 생활 중심의 도시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방법론적으로는 1970년대부터 구미에서 새롭게 개발한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CPTED)이 한몫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발달된 정보통신 및 GIS 기술을 통해 이를 한 단계 더 성숙 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범죄예방설계를 통해 범죄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장소를 찾아서 도시를 바꾸어가야만 한 다. 지역사회가 직접 나서서 할 일도 많다. 설계과정 에서 지역 주민과 시민들이 스스로 살아오면서 체득 한 현장 지식을 범죄예방 및 설계 전문가의 전문지 식과 결합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 역 내 장소가 범죄 행동에 이용될 여건을 가지지 않 도록 하는 일이 된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장소로 도시를 만들어가는 일이야말로 쾌적한 도시를 만드 는 첫 번째 요건이다. 장소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도 그 위에서 비로소 형성될 수 있다.
지금까지 도로를 만들면서 보행자의 심리적 안정
까지 고려한 적은 별로 없었다. 밤길을 걷기가 불안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무섭게 느끼기도 한다. 사람 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범죄가 발생하여 불안해하 기도 한다. 토지이용, 도로망, 건물 배치를 사람들이 안심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다시 검토하여야 한다.
이를 모두 생활 인프라로 간주하여 재구성하고 가 로 조명, 녹화도 추진하며, CCTV 등의 보완 시설 배치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신도시에 대하여 범죄예방 환경설계를 시범적으로 해오고 있다. 한편 기존 도 시에 대해서도 이를 확대하여 도시재생에도 활용할 수 있다. 설계 과정은 전문가가 주도하지만 주민들 의 입장도 고려하여 조사·분석하고, 주민들 스스로 범죄예방을 위한 도시 만들기에 나서도록 하여야 한 다. 국가적으로도 도시설계, 범죄학 분야의 연구를 학제적으로 결합하여 현실성 있는 정책이 추진되도 록 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