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이미지? 우리에게 서울은 어떤 곳인가? 한강의 대교들과 광화문 광장, 남산타워 같은 랜드마크들과 더 불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동네 시장, 친근 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낯익은 거리, 유년을 보낸 학 교들, 지하철 역사 등 각자의 생활반경과 일상 속 풍경 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완성의 퍼즐과도 같은 공간이 다. 미완성인 이유는 서울이 너무도 거대해져서 개인의 경험치를 넘어섰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 개발되며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서울이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 들에게도 항상 새롭게 방문하고 구경할 거리로 가득하 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완전한 퍼즐 상태의 경험치인 서울의 윤곽 을 잡아주는 것이 미디어를 통해서 얻게 되는 서울의 이 미지다. 미디어는 스토리를 생산해 공간을 구조화시키 고 의미를 입힌다. 과거엔 신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살
아갔던 공간으로서, 이제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공 간으로서 개인의 경험치를 넘어서는 이 공간이 의미를 얻게 된다.
서울은 언제부턴가 세계인의 집단 기억 속에서도 고유명사로서 의미 있는 장소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 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전체 그림을 그 리는 것이 불가능한 거대한 퍼즐과도 같은 서울이 세 계 속에서는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 유럽인, 북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인, 아프리카인에게, 그리고 드 넓은 유라시아 대륙의 한 지점에서 살아가는 먼 아시 아 사람들에게 여전히 분단된 극동의 작은 나라의 수 도라는 이 도시는 과연 어떤 장소이고 어떤 공간으로 서 의미를 갖는가? 한국의 역대 정부들이 관심을 지니 고 조사해온 한국의 이미지는 한국전쟁과 1988년 서 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 그리고 대기업의 이름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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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 1) 과 ‘클라우드 아틀라스’ 2)
장소로서의 서울, 공간으로서의 서울
홍석경 |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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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통해 듣는 ‘판타스틱 코리아’ 또는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한편으로는 공허 하게 들리는 환호 한가운데도 서울이 있 다. 20세기의 후반부에 벌어진 예외적 성 공 중 한 사례인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궁 금증 뒤에는 국민의 절반이 살아가는 수 도권 서울이 있다.
이 글은 서울에 대한 우리 스스로와 세 계인의 집단적인 이해가 투사되어 있는 영화를 통해서 서울이 과연 어떤 장소와 공간으로 존재하는지 알아보려는 시도다.
한국인에게 서울은 살아가는 배경이고 역 사와 경험으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장 소(place)’라면, 세계인에게 서울은 이해 와 상상력, 정보와 이미지에 의해 그 의 미가 구성되어 있는 하나의 ‘공간(space)’
이다. 서울을 구성하는 랜드마크들이 우 리에게는 첫사랑을 만났던 장소이고, 누
군가와의 이별의 배경이 되는 구체적인 체험의 장소이 지만, 대부분의 세계인들에게는 우편엽서나 여행 다큐 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배경일 뿐이다. 배경 은 내러티브를 통해서만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서 재생 될 수 있는데, 세계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지는 할리우드 의 미디어 콘텐츠야말로 이러한 도시의 이미지를 추적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례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은 전 세계에 배급되는 미 디어 콘텐츠에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공간으로 등장하 고 있다. 과거에도 한글이나 한국어, 한국인이 할리우 드 영화 속에 등장한 적은 있지만, 이젠 블록버스터 영 화 ‘어벤져스2’(현재 제작 중)가 마포대교와 강남대로 일 대를 액션의 장소로 한다거나, 미래 어느 시점에서 미
군 해병대와 범죄집단 사이에 대대적인 시가전을 벌이 는 세계적 게임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Advanced Warfare)’(2014년 11월 출시)의 전투장소로 서울의 강 남 일대가 선택되는 식이다. 뿐만 아니라 좀비 바이러 스의 위협을 다룬 공포영화 ‘World War Z’(2013)에서 지구를 멸망위기에 몰아넣는 치명적인 좀비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되어 보고된 곳도 평택의 미군기지다. 평택이 어딘지 모를 세계의 관객들에게 장소로서의 평택은 의 미가 없고, 영화의 원본인 원작소설에서는 중국이었던 좀비 바이러스의 발견지가 남한으로 장소를 옮긴 것, 그 것도 남북의 긴장관계 속으로 옮겨왔다는 것은 매우 의 미심장한 각색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발생한 곳은 북한 으로 추정되지만 북한당국이 잠재적 좀비인 “주민 전체
장소로서의 서울, 공간으로서의 서울
홍석경 |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email protected])
전 세계에 한국과 서울을 알리는 계기가 된 ‘제24회 서울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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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를 뽑아버려 좀비 바이러스가 더 이상 퍼지지 않았 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의 생성지로 북한은 의심될지언 정 영화 속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액션이 전개되 는 남한의 장소는 인간이 사라진 좀비들의 세계 속에서 섬처럼 남아 있는 미군기지가 위치한 휴전선 남쪽이다.
미디어 속 서울의 이미지는 이렇듯 밝고 긍정적이지 못하다. 부서지고, 폭발되고, 파괴되는 장소다. 서울 시 가지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특별해서일까. 한국의 이미지
해 실질적인 전쟁 가능성의 장소라는 인식 에서일까. 아니면 이러한 극단적인 한국에 대한 이해가 교차되어서일까. 무슨 이유에 서든 ‘어벤져스2’, ‘콜 오브 듀티’, ‘World War Z’에서 서울과 한국은 전쟁터이고, 그 것도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전쟁에 장소만 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이 얼마나 허구 적이면서도 역사적 진실을 반영하고 있는 가? 구한말 이후 한반도에서 있었던 전쟁 에서 한국인이 완전한 주인공인 적이 없었 다는 현실이 내러티브가 전혀 다른 할리우 드의 미디어 속에서도 여전히 재현되고 있 는 것이다.
세계인이 볼 수 있었던 최근 영화 중 서 울이 앞에서 언급한 배경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의미 있 는 곳으로 재현된 영화를 사례로 서울의 이야기를 발전시 켜보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은 세계적으로 배급되 어 국내외 대중과 비평가의 호평을 동시에 받은 드문 작품 이고, 무엇보다도 서울의 랜드마크인 한강과 한강의 다리 가 주인공만큼이나 영화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 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강둔치와 한강의 대교들 이 배경이 되고, 카메라는 한강변을 달리는 사람의 눈높이 에서 수많은 거대한 원주가 만들어내는 원근의 공간, 하수 구를 강으로 토해내는 음습한 수로들, 공포를 주는 한강의 물결을 바로 옆에서 촬영한다. 이야기가 한강 주변을 벗어 나는 것은 단 한 번, 괴물에게 잡혀간 현서의 위치추적을 위 해 운동권 출신 삼촌 박남일이 도심의 이동통신회사를 방 문하는 장면이다. 땅에서 바라보는 수직적이고 거대한 통 신회사는 자본에 지배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그리는 역할 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이곳은 결국 현상금을 타려는 선배 의 배신의 장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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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2>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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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포름알데히드를 대 량 방출하고, 그로 인해 생겨난 괴물이 지니고 있 을지도 모르는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인체에 유해 한 강력 살충제를 살포하 는 권력의 공간이다. 이곳 은 또한 경제파탄으로 40 대 남자가 투신하는 공간 인 동시에 둔치의 깡통건 물에서 한 가족이 생계유지를 위해 장사하는 곳, 형제 고 아가 숨어들어 먹고살 길을 찾는 곳, 시민들이 해바라기 를 하는 평온한 휴일 오후 물속에서 튀어나온 괴물이 백 주대낮 죽음의 질주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 근대사 의 권력관계가 만들어 놓은 괴물에 대해 한국 정부는 공 포를 조장하고, 힘없는 시민을 통제하는 것 외에 무력하
기 이를 데 없다. 영화 속에서 현서가 전화로 살아 있음을 알렸을 때, 아이를 구하러 나서고 결국 괴물을 죽이는 것 은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영웅적인 개인이나 국가가 아 니라 한국사회의 주변인인 아이의 엉성한 가족이다. 그 것도 고성능 현대무기가 아니라 화염병과 화살과 죽창 을 연상시키는 도로표지판을 사용해서. 화염병은 즉각적 으로 1980~1990년대의 서울 시내 거리시위를 연상시키 고, 죽창은 수많은 농민봉기와 민중의 희생과 힘을 소환 하는 강력한 소품들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죽은 현서가 끝까지 보살폈지만 결국 혈혈단신 고아가 된 세주를 강두가 거두어서 둔치의 매 점에서 밥을 먹이는 장면이다. 딸을 앗아간 비극이 있었 던 그 장소에서 다시 삶은 시작되고, 강두는 강쪽으로 짙 어지는 어둠을 향해 긴장을 놓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일 상에는 체제가 만들어내었으나 그로부터 우리를 보호하 지 못하는 괴물의 위협이 상존하고, 그와 싸우는 것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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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 몫이라는 듯이... 이렇게 읽히는 영화 ‘괴물’은 세 계사 속 한국의 현실에 대한 우화인 동시에 괴물을 만들 어내는 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서울은 이러한 한 국 현대사의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이고, 그 한가운데 한 강이 있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는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에 참여한 공상과학영화로, 1849 년에서 미래의 어느 시점까지 6개의 시간대 속을 살아가 는 서로 엉킨 이야기와 인물들의 삶을 보여준다. 이야기 의 전개는 비선형이고, 같은 배우가 여러 인물을 남, 녀, 인종을 가리지 않고 분장하여 연기함으로써 기이함을 더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한 시점인 2144년의 배경이 네오서울이다. 영화 속에 서 이곳은 복제인간을 만 들어 순혈인간들을 위한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시 키는 거대한 지배의 힘에 저항하는 반군세력이 일 어서는 장소다.
영화 ‘괴물’에서 양궁 선수였던 배두나는 이 영 화에서 복제인간인 ‘손미
451’ 역을 맡았다. 반군의 장교 장해주의 도움으로 복제 인간의 운명에 대해 알게 된 손미는 죽음을 무릅쓰고 복 제인간 전체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처형되는데, 미래의 다른 시점에서 손미신이라는 경배의 대상이 되어 다시 등장한다. 지구에 ‘사건’이라고 언급되는 묵시록적인 비 극이 있은 후 106번째 겨울이라는 시점에서, 손미는 외 계의 식민지로 통하는 길목에 그 신상이 위치하는 구원 의 여신이다. 복제인간의 자유획득을 종용했던 2144년 네오서울에서 손미의 연설은 성스러운 텍스트로 회자되 고 있다. 백인 배우가 분장한 장해주의 얼굴은 전혀 한 국적이지 않고 백인들의 상상력 속 아시아인 혼혈의 모 습을 닮았지만, 배두나의 등장은 이 장소가 미래의 서 울이라는 설정에 영화적인 그럴 듯함(vraisemblance) 를 확보해준다.
폐쇄공간에서 살아가던 복제인간이 스크린이 아닌 실재의 밖으로 나가서 본 서울은 영화 ‘제5원소’(1997) 에서처럼 수직적이고,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처럼 어두운 동시에 푸른빛이 돌고 있다. 인물들이 위치한 곳 은 고층빌딩의 어느 한 지점, 내려다보이는 것이 강변도 로와 주변의 건물들임을 추정할 수 있는 차들의 움직임 이 멀리 보일 뿐, 이곳이 서울임을 입증하는 어떤 랜드 마크도 없다. 2144년에서 100년 후 물에 잠길 것이라 는 영화 속 네오서울은 사실 어떤 장소성도 없는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이곳이 2144 년 네오베이징이라면, 네오도쿄라면, 아니 네오쿠알라 룸푸르나 네오싱가포르라면 무엇이 달라질까? 이 이야 기가 이런 도시들이 아니라 서울이기에 어떤 의미가 발 생하는가? 네오서울은 전체주의적인 힘이 지배하는 미 래의 세계 속에서 저항이 조직되고 반란이 일어나는 곳 인 동시에 후세에까지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메시아적인 장소다.
그러고 보니 이 글에서 언급된 모든 미디어 콘텐츠 속 ㅣ 영화와 도시 ㅣ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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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들어낸 괴물에 맞서서든, 전체주의적인 세계지배 의 힘에 맞서서든. 소설에 기초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 스’에서도 서울은 결국 투쟁의 장소다. 세계인의 현재적 집단 상상력 속에서 미래의 희망이 서구나 지구 어느 지 역보다 아시아에 있고, 그 장소로서 베이징이나 도쿄보 다 서울이 더욱 그럴 듯한 장소로 인식되는 것만은 틀림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인이 해외뉴스 속에서 본 서울 의 거리에서 벌어지던 시민봉기의 모습이 집단 기억에
각인되어서이든, 남북 긴장과 관련된 각종 군사훈련이 나 도발의 뉴스를 통해서이든, 한국의 미래가 밝아 보여 서이든 서울은 수많은 투쟁이 벌어지는 장소로 각인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인이 영화로 보는 서울은 여 러 가지 의미에서 전투적이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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