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 은 글 긴 생 각
저음으로 말할 것 / 잔잔하게 웃을 것 햇빛을 가득하게 / 음악은 고풍으로 그리고 목숨을 걸고 / 그 평화를 지킬 것
언젠가 인터넷으로 받은 현대 시조 한 편이다. 시조처럼만 한다면 가정은 평화롭기 그지 없을 것이 다. 읊조리고 있으면 마음이 흐뭇해지는 이 시조에서‘그리고 목숨을 걸고 / 그 평화를 지킬 것’이 라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물론 저음으로 말이 통하고, 잔잔한 웃음과 평화로운 음악이 흐 르는 가정일 때 목숨을 걸고 지킬 책임도 느끼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런 것을 따 지기 전에 목숨을 걸고 가정의 평화를 만들고 지키라는 준엄함은 왠지 가슴 뭉클하게 한다.
얼마 전부터 느껴지는 코끝의 건조하면서 찬 기운은 가을을 예감하게 한다. 동시에 약간의 설렘 이 동반되는데, 그것은 아마 추석 때문이지 싶다. 고향에는 늙으신 부모님과 어릴 적 친구가 있고, 그 고향에서 오랜 만에 온 가족이 모여 아이들의 재롱에 웃음꽃을 피우는 시간이 추석 아닌가. 내 가 추석을 느끼는 것은 가을을 감지하는 것처럼 본능적이다. 그것은 이유야 어찌됐든 흩어진 가족 이 추석을 계기로 모이게 되는 경우라면 다 그렇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추석은 해외여행의 성수기 로 자리 잡았다. 추석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가족에 대한 의미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하 는 것은 비약일까. 우리나라가 세계 이혼율 1위 국가라는 말은 이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다. 돈 때 문에, 성격 때문에 이혼이 급증하면서 단독가정이 늘어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싱글족이라는 신조 어가 등장할 정도로 결혼보다는 자신의 삶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풍조다. 어쩌면 지금 은 과도기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40, 50대가 가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면 자라나는 10대는 가정 보다 친구를 최우선으로 둘 것이라는 말도 나오기 때문이다. 지치고 힘들 때‘역시 가족밖에 없다’
는 말을 하는 세대와는 달리 그들은 가족이 아닌 친구를 찾는다는 얘기다.
최근 개봉한 영화‘바람난 가족’은 화합하지 못하는 가족과 그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었다. 그 가족의 가장인 주인공은 변호사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부류로 꼽히는 가정이지만 그 누구도 가 정 안에서 행복하지 않다.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이해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영 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정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200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한국인의 생활시간 배분실태’에 관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 사람이 일요일에 미취학 아이들을 씻기고 놀아 주는 시간은 고작 하루 평균 16분이며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38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가족은 친밀한 존재다. 하지만 생태적 친밀감이 계속 유지되는 것도, 가족 내 모든 문제를 해결 해주는 것도 아니다. 가까운 만큼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 친밀감을 높여주는 노력이 필요한 관 계가 가족이다. 가정은 생명의 원천이다. 행복한 가정이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기 때 문에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영진|월간‘The First’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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