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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발표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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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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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식 순 • 개 회 사 : 권오영 (백제학회 회장)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3:30~13:40 •축. 사 : 이인숙 (한성백제박물관 관장)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3:40~13:50. 장내정리 : 13:50~14:00 •사회자:. 박윤선. (대진대학교). 제1주제 : 2018년도 경기·호서지역의 백제 관련 발굴조사 성과와 연구 경향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4:00~14:50 발 표 : 홍보식 (공주대학교) 토 론 : 성정용 (충북대학교)  . 휴 식 : 14:50~15:00  . 제2주제 : 2018년도 호남지역 마한·백제고고학 조사·연구 성과와 과제 · · · · · · · ·15:00~15:50 발 표 : 이영철 (대한문화재연구원) 토 론 : 김낙중 (전북대학교)  . 휴 식 : 15:50~16:00  . 제3주제 : 2018년 백제 한성기·웅진기 문헌 연구 성과와 과제 · · · · · · · · · · · · · · · · · · · · · · · ·16:00~16:50 발 표 : 이장웅 (한성백제박물관) 토 론 : 강종원 (한밭대학교)  . 휴 식 : 16:50~17:00 제4주제 : 2018년 사비기 백제사 문헌 연구의 현황과 과제 · · · · · · · · · · · · · · · · · · · · · · · · ·17:00~17:50 발 표 : 위가야 (성균관대학교) 토 론 : 정동준 (성균관대학교)  . 장내정리 : 17:5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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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 례. 제1주제 : 2018년도 경기·호서지역의 백제 관련 발굴조사 성과와 연구 경향 발 표 : 홍보식 (공주대학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토 론 : 성정용 (충북대학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3. 제2주제 : 2018년도 호남지역 마한·백제고고학 조사·연구 성과와 과제 발 표 : 이영철 (대한문화재연구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5 토 론 : 김낙중 (전북대학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3. 제3주제 : 2018년 백제 한성기·웅진기 문헌 연구 성과와 과제 발 표 : 이장웅 (한성백제박물관)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7 토 론 : 강종원 (한밭대학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69. 제4주제 : 2018년 사비기 백제사 문헌 연구의 현황과 과제 발 표 : 위가야 (성균관대학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71 토 론 : 정동준 (성균관대학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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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1주제. 2018년도 경기·호서지역의 백제 관련 발굴조사 성과와 연구 경향. 발 표 : 홍보식 (공주대학교) 토 론 : 성정용 (충북대학교).

(8) 발표문. 2018년도 경기·호서지역의 백제 관련 발굴조사 성과와 연구 경향 홍보식 (공주대학교). Ⅰ. 서언 2018년도에 이루어진 경기·호서지역의 백제 관련 발굴조사는 여러 가지 중요한 정 보를 제공하였는데, 한강변에 위치한 한성기의 고분군 조사, 공주지역 일대의 웅진기 관련 유적, 부여지역 일대의 사비기 도성 관련 시설과 부여와 예산 등지의 고분 조사 성과는 한성기·웅진기·사비기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그동안의 발굴조사 성과를 한군데 모은 전시와 특정 지역 또는 유적을 대상으로 한 학술심포지움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한 해이기도 하였다. 이하에서는 2018년도에 이루어진 경기·호서지역의 발굴조사 내용과 성과, 그리고 연구 경향을 소개한다.. Ⅱ. 발굴조사 내용과 성과 1. 한성기 2018년도에 경기·호서지역에서 이루어진 백제 관련 발굴조사는 대략 50여건을 상 회한다. 여기서는 조사된 유적을 일일이 소개할 여유가 없으므로 대체적인 내용을 한. - 1 -.

(9) 성기·웅진기·사비기로 나누어서 요약한다. 한성기의 주요 조사로는 한강수계 일대의 왕성과 취락, 매장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왕성 유적은 이전부터 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다. 몽촌토 성 조사(몽촌토성 발굴조사팀 2018)는 2015년 이후 북문지 일원을 대상으로 2015년도 부터 2018년도까지 계속 되었다. 2018년도의 조사에서는 굴립주건물지 6동, 벽주건물 지 4동, 수혈유구 등이 확인되었고, 2015년도 조사에서 확인된 남북대로와 동서도로의 연장 부분이 확인되었다. 26호 굴립주건물지에서 가야토기 대각편이, 23호 수혈유구에 서 창녕양식 토기 대부완이, 90호 벽주건물지에서 須惠器가 출토되어 1980년대의 조 사에서 출토한 가야계 토기와 더불어 한성 백제·가야·일본간의 교차편년에 대한 논 의도 부분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도로유구는 이미 이전 조사에서 확인되었듯이 백제 도로는 상·하층에서 각각 확인 되었다. 하층 도로는 북문지의 문도에서 직선방향인 남서쪽으로 진행하고 포장되었다. 도로는 중앙부에 도랑을 두고 남·북쪽에서 2개의 노면이 나란하게 진행한다. 상층도 로는 하층도로에서 80∼90㎝정도 퇴적된 층 위에 조성된 포장도로로서 북문지 내측에 서 평면 말각방형의 회전교차로에 3면 방향(남 북, 북서 남동, 회곽)의 구조가 확인되 었다. 노면 폭은 회전교차로와 남북도로는 10m 내외이고, 그 외 도로는 5∼7m로 확 인되었다. 도로 양측에 측구가 설치되었고, 회전교차로의 남동부 노면에서는 석축 암 거가 확인되었다. 도로 측구와 노면에서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전 조 사와 함께 몽촌토성 북문지 일원의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한성기 왕성 내부의 도로망 과 구조 등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향후 풍납토성 조사에서 확인 된 도로와의 비교 검토를 통해 한성기 도로의 특징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나오길 기대한다. 취락으로는 춘천 율문리유적(전일용 2018), 홍천 태학리유적(이효재·남승남 2018), 양평 하자포리 244 18번지 유적(김봉성 2018), 용원 원삼일반산업단지 조성부지내 유 적(김귀한 외 2018), 광주 곤지암역세권 도시개발사업부지내 유적 등이 있다.. 위의. 유적에서 확인된 취락은 100여기 내외의 거점 취락과 50여기 내외의 중심 취락, 10여 기 내외의 소규모 취락으로 구분된다. 지금까지 96기의 주거지와 수혈 85기, 굴립주건물지 11기, 주·수혈군 10기, 구상유 구 5기 등이 확인된 곤지암리유적(이강호 2018)은 2018년도 조사 이전에 확인된 43기. - 2 -.

(10) 의 주거지와 미조사구간의 것을 합치면 대략 400∼500여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어 곤지암천 수계의 거점 취락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확인된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오각 형·육각형·방형 등이 있고, 남쪽방향에 출입시설이 있는 ‘凸’자형이 대부분이다. 평면 형태가 오각형인 주거지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와 유사한 평면형태의 주거지와 비율 구성은 소양강변의 춘천 율문리유적과 홍천 태학리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이 시기의 주거지 내부에는 단위 유적 또는 개별 주거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 만, 부뚜막·외줄 구들·점토피복식 노지 등이 공통적으로 확인되어 한강수계의 일반 적인 주거 구조로 추정된다. 그리고 남한강과 북한강수계에서 확인된 취락의 주거지 평면형태와 구조는 한강 하 류인 서울지역 일대의 미사리와 풍납토성 등지에서 확인된 취락의 주거지와 대동소이 하지만, 출토된 유물, 특히 토기는 차이가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에는 한성중앙 양식의 비율이 적고, 재지 토기양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등 다소 이질적이다. 이 이 질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향후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그리고 한강수계에서 이루어진 취락의 조사는 일상적 생활이 이루어진 주거와 물품 을 보관한 창고군의 공간 구분과 함께 곤지암리유적에서 동 시기의 주거와 매장시설 이 확인되었으나 취락을 구성한 요소인 경작지와 수공업생산시설·제사와 의례시설 (공간) 등이 함께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영남지역과 호남지역에서는 일정범위에 주 거·경작·저장·수공업·의례(제사)·분묘 등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취락 조사가 이루 어진 점을 고려하면, 한강수계에서도 취락의 전모를 보여주는 유적이 확인될 가능성 이 높다. 이와 더불어 주거군 내부의 구성, 예를 들면, 공동시설, 엘리트의 거주 시설, 광장 등의 요소와 동일 시기의 주거 수와 주거군 단위 등에 대한 분석과 연구도 이루 어질 필요가 있다.1) 2018년도 한성기 유적 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한성기의 왕릉군에서부터 주변의 거 점 취락 집단 성원의 매장시설까지 확인된 점이다. 서울 석촌동고분군의 재조사는 2015년부터 2018년도까지 연차적으로 실시되었다. 2018년도의 석촌동고분군 조사에서 13기의 연접식 적석총과 이에 딸린 매장의례시설 3기, 목관묘 6기, 토광묘 1기, 묘역 경계시설 1기, 성토대지 1개소, 적석총 이전의 목관묘 1기 등이 확인되었다(정치영· 1) 춘천 율문리유적의 경우, 길이 21.6m의 대형 주거지 1동이 확인되었고, 조사지역 내의 남동 모서리, 북쪽, 중앙부, 서쪽 부분 등 4개의 작은 군을 이루는 양상이 확인되었다.. - 3 -.

(11) 최진석·윤정현 2018). 연접식 적석총은 석축단을 만들고 내부에 점토를 채운 점토식과 돌을 채운 적석식 이 확인되었다. 기왕의 연구에서 점토식은 백제식 적석총, 적석식은 고구려식 적석총 에 대응되는 구조이다. 능선 정상부를 따라 적석총이 조영되었는데, 경사면에는 성토 를 하여 평탄면을 확보하였다. 적석총에는 매장주체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조사단은 매장주체부가 설치된 상부가 삭평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남동쪽에 위치한 점토부 14 의 하층에서 뼈 조각·유리구슬·중국 청자·다수의 토기가 집적되어 의례적 성격의 유구일 가능성도 제시하여 점토채움식의 유구는 매장시설이 아닌 제사시설로 볼 여지 도 있다. 그런데 하층에서 확인된 유물들이 점토부 14의 유구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서는 명확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유물집중부·점토부4·점토부12 등에서는 수 백점 의 기와, 수십 점의 토기, 각종 철기, 중층유리옥을 포함한 유리구슬, 금제귀걸이와 달개장식, 뼈 조각, 꺾쇠와 못 등의 유물이 목탄 소토와 함께 폐기된 상태로 출토되 었다. 피열 변형된 기와, 불에 탄 뼈 조각, 목탄과 소토, 한정된 공간 내 폐기 및 성 토매몰 등 제반 양상을 조합하여 기와를 인 목조구조물 내외에서의 화장 또는 의례 후 소각 행위와 관련된 공간으로 추정하였다. 꺽쇠와 관정, 불에 탄 뼈 조각 등을 고 려하면, 주검을 격납한 목관을 불에 태운 흔적일 가능성도 고려해볼만 하다. 적석총의 하부와 외부 성토층과 목관묘에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점토부5 적석묘의 동쪽 기단 하부 성토층에서 가야권역에서 주로 출토되는 유개식의 통형고배 1점이 출토되어 적석총의 시기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되었다. 적석총은 한강의 지류인 광주 곤지암변의 충적대지에서 상당수 확인되었다. 곤지암 유적에서 확인된 적석총은 동쪽으로 약 150m 이격된 지점에 같은 시기에 조영된 취 락이 위치하여 동시기의 취락과 매장시설이 동일 공간에 존재한 사례로서 주목된다 (이강호 2018). 이곳에서 확인된 적석총군의 범위는 동 서 54m, 남 북 34m로서 전체 평면형태가 타원형이고, 면적은 약 1,800㎡이다. 확인된 묘곽은 모두 79기이고, 각 묘 곽은 벽체를 공유하는 다곽식으로 동남 서북 방향의 열상으로 배치되었는데, 평면에 서 보았을 때 마치 벌집모양을 이루고 있다. 개별 묘곽의 평면형태는 모서리가 둥근 장방형이 기본이고, 세장방형과 방형도 일부 확인된다. 개별 묘곽의 규모를 보면, (세)장방형은 길이 425∼690㎝, 너비 210∼310㎝ 정도이고, 방형은 370×300㎝ 정도이. - 4 -.

(12) 다. 벽체는 냇돌을 쌓고 사이에 흙을 채워 넣었고, 한쪽 벽면의 하단에 지지석을 세 웠다. 내부 바닥은 정지면을 이용하였고, 바닥 위에 돌이 가득 채워져 있고, 함몰 현 상이 확인되지 않았다. 별도의 주검 안치시설은 확인되지 않았고, 함몰 현상이 관찰되 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묘곽을 만든 후 내부에 주검을 직장한 형태로 추정된다. 용인 마평동 574 1번지에서 확인된 적석총은 완만한 구릉상에 위치하며, 남 북 30.5m, 동 서 23.8m, 높이 최대 2.2m 크기이고, 평면형태가 타원형이다(이건충·조은 이·김방효 2018). 할석으로 적석하였고, 매장주체부는 바닥면이 적석부에 위치하고, 2기가 연접된 석곽이다. 석곽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고, 적석부에서 토기 편 과 연미형철모·철도자·불명철기 등이 출토되엇다. 이상과 같이 지금까지 한강수계에는 다양한 크기와 구조 및 형태를 가진 적석총이 확인되었는데, 이 적석총들이 동일한 계통 하에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인지, 아니 면 상관성 없이 자연발생적인 현상인지 등의 검토를 통해 백제 중심과 주변집단관의 관계를 해명하는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강수계에서는 많지는 않지만 한성기 또는 고구려의 횡혈식석실이 조사되었으나 집단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성기 백제 왕실에서는 횡혈식 석실을 묘제로 채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였으나 풍납토성으로부터 4㎞ 정도 떨어진 하남 감일동에서 대규모의 횡혈식석실군이 확인되었다. 하남 감일동고분군(재)高麗文化財硏究院·한국토지주택공사, 2018)의 횡혈식석실은 평면형태가 장방형이고, 천정은 궁륭형이다. 연도는 모두 우편재이고, 길이는 1∼2m 로 다양한데, 1.6m대가 가장 많다. 연도 개석 상부의 전벽 이상이 지상에 위치하고, 벽체는 지하에 위치하며, 현실과 연도 바닥에는 배수시설이 설치된 예가 많다. 벽체에 사용된 벽석은 장방형으로 가공된 할석이 사용되었고, 일부 석실의 벽면에 백회가 발 려있다. 감일동고분군에서 조사된 횡혈식석실과 유사한 구조는 방이동고분군에서도 확인되었는데 3호분이 그것이다. 방이동 3호분은 현실 평면형태가 방형인 점만 다르고, 연도 개석 상부의 전벽 이상 의 지상 위치, 벽체에 가공된 장방형 할석 사용, 벽면 백회 미장, 연도 우편재, 현실 연도 묘도로 연결된 배수구 설치 등의 점에서 감일동고분군의 석실과 공통한다. 그러나 감일동고분군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3㎞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금암산고분군에 서 조사된 석실은 감일동고분군의 석실 및 방이동 3호분의 석실과는 구축 위치, 연도. - 5 -.

(13) 접속 위치와 단, 시상, 벽석재 등에서 현저하게 다르다. 이 금암산고분군에서 확인된 석실은 전형적인 신라 석실로서 중곡리고분군과 여주 매룡리고분군 등에서 확인된 신 라 석실과 함께 한강수계의 대표적인 신라 고분이다. 향후 3개 고분군에서 확인된 석 실의 구조와 형태에 대한 면밀한 비교 검토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이 외에도 청주시 흥덕구 문암동 일대의 청주테크노폴리스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부지 내의 평지와 구릉 일대에서 대규모 유적이 확인되었다(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2018). 평지에는 부정형의 구상유구에 의해 구획되었고, 내외부에 주구부건물지·수혈 주거지·수혈유구, 부정형의 주혈군, 제철노, 분묘 등이, 구릉에는 분묘와 제철로가 배 치되었다. 일부 분묘는 제철로가 폐기된 후에 조성되어 제철로와 분묘의 선후관계가 확인되었다. 분묘는 목관묘와 목곽묘 등이 있고, 동혈합장 또는 이혈합장의 사례도 있 다. 분묘에서는 많은 수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조형토기·흑색마연토기 등과 가야 계로 추정되는 대부파수부직구호가 출토되었다. 토기 이외에도 청동제마형대구와 함 께 토제마형대구도 출토되었다. 호석 중서부지역의 조사 내용을 통한 이 지역의 2∼4세기의 문화 양상, 특히 토기 문화의 전체적인 양상은 영남지역의 토기문화와 유사한 내용과 방향으로 변화하는 양 상이 간취된다. 그동안의 발굴조사에서 출토한 대부직구호와 유개대부호 등이 영남지 역으로부터의 영향일 가능성을 타진하였으나 최근의 조사 성과를 고려하면, 영남지역 의 그것보다 시기가 다소 빠르거나 같은 시기를 보이고 있어 영남지역으로부터의 영 향에 전적으로 기대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 이 부문에 대해 호서 중서부지역과 영남지역 물질자료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공주 수촌리유적의 7차 시·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석곽묘 4기, 토광묘 4기, 수혈주거 지 1기, 수혈유구 20기, 적석유구 1기 등이 조사되었다(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8). 특히 수혈유구는 평면형태가 원형과 방형이 있는데, 27호 수혈은 직경 360 399㎝, 깊이 323㎝로 대형이다. 이전 조사에서 확인된 수혈주거지와 저장수혈 등이 고분과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천안시 동면 구도리의 구릉 정상부에서 고총고분 1기가 조사되었다(백제고 도문화재단 2018). 구도리고분은 목천에서 오창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상에 위치하며 1 기가 독립 위치한다. 봉분의 규모는 직경 21.9m, 높이 2.74m의 원형이며, 봉토에서 대금식 삼각판혁철판갑과 안교·흑색마연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매장주체시설은 수혈. - 6 -.

(14) 식석곽이고, 규모는 길이 222㎝, 너비 57㎝, 깊이 60㎝의 소형이다. 내부에서 도자 1 점이 출토되었다. 구릉 정상부에 1기만 독립 분포하고, 석관계 석곽의 매장주체시설, 대금식판갑 등의 요소로 볼 때, 왜계 고분일 가능성이 있다. 제사유구 또는 관방시설 등의 견해가 있는 서천 봉선리유적의 3차 발굴조사도 실시 되었으나(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8), 유적의 성격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발굴조사를 통해 대규모의 성토와 함께 적심이 있는 건물지, 수혈유구, 수혈을 판 후 내부에 점토를 채워 만든 점토유구(6기)가 확인되어 유적의 성격뿐만 아니라 유적 내 에 새로 확인된 유구의 성격도 밝혀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2. 웅진기 웅진기를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들이 2018년도에 조사가 되었는데, 그 대표적 유적이 대통사지·송산리고분군 방형석축유구·교촌리고분군과 방형석축유 구 등이다. 그동안 공주 시내의 소규모 개발에 수반하여 여러 지점을 대상으로 입회 또는 시굴 조사가 실시되었으나 분명한 웅진기의 백제문화층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공주시 반죽동 197 4번지와 172번지 일대의 조사에서 대통사의 실마 리를 찾게 되었다. 조사 지점은 반죽동 당간지주로부터 서쪽으로 130m 떨어진 197 4번지 일대로 소규 모 면적의 조사에서 조선∼통일신라시대층 아래에서 백제 웅진기에 조성된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많은 수량의 웅진기 기와(평기 와 및 ‘○通’명 인각와·지두문 암막새·연목와·치미편 등)와 소조불·토기 등의 유물 이 출토되었다(조원창, 2018). 특히 이곳에서 소조불이 출토되어 이 일대가 대통사의 사역 일부임이 확인되었다. 대통사를 건설하기 위해 꽤 넓은 범위를 대상으로 성토하 여 대지가 조성되었음도 확인하였다. 197 4번지에서 동쪽으로 30여m 떨어진 172번지 에서도 백제문화층과 “大通之寺” “大通” ‘大“명 인각와와 타날문토기와 삼족기 등의 유 물이 확인되었고(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8), 부분적인 조사로 웅진기의 유구는 확 인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확인된 백제문화층은 현 지표면으로부터 약 2.5m 아래에 해 당하고, 백제층 아래에는 제민천의 하상퇴적층이 확인되었다. 197 4번지 일대에서 대통사와 관련된 사역 일부가 확인됨에 따라 관련 지역 연구 - 7 -.

(15) 자와 학회에서 그 중요성을 인식하여 개발로 훼손되지 않고 보존할 것을 해당 국가기 관과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하여 관철하였다. 이 보존 결정은 향후 대통사에 대한 보존 과 반죽동 일대를 대상으로 한 정밀발굴조사의 토대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공주시 가지 일대를 대상으로 한 웅진기 도성 조사의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보존과 함께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백제학회·한국고고학회 주최로 공주 대통 사지 성격 규명과 활용 이란 심포지움이 개최되어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과 관련 연구자에게 대통사의 역사적 중요성과 의미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88년의 조사로 알려진 송산리고분군의 소위 방단적석유구의 정확한 양상과 성격규 명을 위한 조사가 2018년도에 실시되었다(이창호 2018). 무녕왕릉과 5·6호분이 위치 한 남쪽의 A지구와 1∼4호분이 있는 D지구의 방단적석유구가 조사되었다. A지구의 방 단적석유구는 심한 교란으로 대부분 파괴되었고, 남측과 서측 일부에서 석축시설이 확 인되었다. 석축시설의 규모는 한 변 길이가 20∼20.5m로 평면형태가 방형이고, 내부 중앙에 대형 수혈 1기가 확인되었다. 남측 석축시설 중앙부에는 계단시설로 추정되는 석축열이 확인되었다. 추정 계단 석축열의 남서쪽에도 수혈이 확인되었는데, 북측의 수 혈에 앞서 조성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석축 중앙부에서 확인된 수혈은 가로 5.2m, 세 로 2.1m, 깊이 3.1m이고, 석축 남측 바깥에 위치한 수혈은 이보다 규모가 작다. 이 수혈의 기능에 대해서는 신성구역을 표시하는 시설을 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나 전체 적인 유구의 파괴가 심하여 어떤 형태와 구조인지 추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1∼4호분이 위치한 D지구의 북측 구릉 정상부 가까이에 입지한 방형적석유구는 3단 으로 구성되었고, 하부의 1단에서 상부의 3단으로 높아지면서 규모가 축소되었다. 1단 의 하변 규모는 15m 내외이다. 각 단의 외측에는 석축하고, 내부는 흙을 성토하여 조 성하였다. 2단과 3단이 시작되는 가장자리에는 너비 1.8m 내외에 편평한 돌과 자갈을 깔아 테라스를 만들었다. 3단은 대부분 파괴되어 상부구조는 파악되지 않았다. 3단의 중앙부에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수혈이 확인되었는데, 1988년도의 조사에서 출토한 삼족기의 출토 지점과의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성토층 내부와 주변에서 웅진기의 특징이 있는 토기들이 출토되었고, 교란된 부분에서 추정 쇠못이 출토되었다. 이 유구는 그동안 방형적석유구로 알려져 왔는데, 이번 조사에서 각 단의 외측에만 석축하였고, 내부는 흙을 성토한 구조물로서 적석은 확인되지 않았다. 파괴된 상부에 돌이 있었다면 적석이 아니라 즙석이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 - 8 -.

(16) 하고 이 유구는 적석은 되지 않았다. 따라서 서울의 석촌동고분군의 적석총과는 구분 해서 보아야 한다. 이 방형석축유구의 성격에 대해서 개로왕의 허묘 또는 탑, 제단 등 다양한 견해가 논의되어 왔다. 2018년도의 조사에서 교란된 부위에서 출토한 추정 쇠못은 형태와 수 화상태가 삼국시대의 것과 다를 뿐만 아니라 교란된 부위에서 출토되어 그것을 근거 로 고분으로 추정하기에는 어렵다. 매장주체시설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고, 상부 중 앙부에 판축이 되어 석촌동고분군에서 조사된 점토충전식 적석총의 성토와는 기법에 차이가 있다. 석촌동고분군의 3·4호분 등의 대형 적석총에는 1단 외측에 지지석이 설치되어 있는 등 송산리고분군의 방형석축 유구와는 다르므로 석촌동고분군과 같은 적석총은 아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판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단 위에 탑을 세우기에는 성토부 의 견고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3단 위에 탑이 존재한다면, 고분 아래에서 보았을 때 의 경관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3단 중앙부에서 확인된 수혈은 A지구에서 확인 된 수혈과 성격이 유사할 가능성도 있는데, 향후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송산리고분군의 방형석축유구는 송산리고분군의 2개 그룹과 대응하는 관계에 있고, 입지의 차이가 존재한다. A지구의 경우, 고분이 위치한 아래의 남쪽 구릉 능선에 입 지하였는데, 이곳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추정되지만, D지구의 경우, 고분 앞의 남쪽은 완만한 평탄지가 없고 급경사면으로서 시설물 설치가 어려운 지형이므로 고분의 북쪽인 윗쪽에 입지를 선정하였을 개연성이 있다. 지형의 차이에 의해 석축유구와 고분의 입지 차이가 존재한다면, 각각의 방형석축유구는 각각의 그 룹에 대응하는 시설의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입지의 차이에 의해 시설의 형태와 높 이도 달랐을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A지구의 경우, 방형석축유구의 높이가 높으면, 전면에서 보았을 때, 방형석축유구에 의해 고분이 시야에 가려진다. 그러나 D지구의 경우, 고분보다 높은 지점에 입지하여 높이를 높이면, 매우 웅장하게 보일수 도 있다. 이와 같은 차이와 함께 2기의 방형석축유구의 축조 시기에 대한 검토도 필 요하다. 송산리고분군의 방형석축유구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 는 유적이 조사되었는데, 그것이 교촌리유적이다. 교촌리유적은 그동안 전축분과 사비 기의 고분이 분포한 고분군으로 알려져 왔고, 송산리고분군의 무녕왕릉 및 6호분과. - 9 -.

(17) 함께 백제의 몇 안되는 전축분으로 알려져 왔다. 발굴조사 결과, 일제강점기 이후 파괴분으로 알려져 온 구릉 정상부의 유구는 전축 분이 아님이 확인되었고, 능선 사면부에 입지한 3호분은 전축분임이 확인되었다. 구릉 정상부의 유구는 정상부의 지표면을 정지하여 평탄하게 조성하고 동서 8.4m, 남북 7.0m 범위에 연화문전과 연화문+사격자문전을 깔고, 외측에 석축을 하였다. 석축 높 이는 20∼30㎝로 낮은데, 조성 당초부터 낮은지 후대에 파괴되어 낮아진 것인지는 훼 손이 심해 파악하기 어려웠다. 석축 내·외부에 주혈 등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남쪽 구릉의 8부 능선을 ‘」’자 모양으로 절토하여 단을 조성하였다. 이 단 일대에 통 일신라시대의 화장묘가 조성되었다(공주대학교박물관 2018). 3호분은 등고선 방향과 직교되게 묘광을 파고, 내부에 전을 쌓아 묘실을 구축하였 는데, 규모는 길이 340㎝, 너비 190㎝, 잔존 깊이 160㎝이다. 현실 벽체 상부와 천장, 전벽과 연도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묘도가 현실의 중앙부와 연결되게 설치된 점을 볼 때, 연도부가 존재했다면 중앙연도의 구조로 추정된다. 현실 바닥의 북벽 가까이에 집 수를 위한 구덩이와 이 구덩이와 연결되어 남쪽의 묘도로 이어진 배수구를 설치한 후, 전을 깔았다. 이 3호분은 일제강점기의 간단한 조사에서 전벽과 연도부가 존재하지 않아 미완성 분으로 논란이 되었는데, 2018년도의 조사에서도 이 부분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못하 였다. 무덤의 축조과정 상, 현실 바닥의 上面施設은 묘실이 거의 완성된 시점, 즉 최 종단계에 이루어지는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교촌리 3호분은 현실 바닥에 전이 모두 깔려 있어 미완성으로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 조사단에서는 1939년의 조사 시 촬영한 사진의 내용과 2018년도 조사시 다수 확인된 방형전 등에 근거하여 무녕왕릉 및 송산리 6호분과 동일한 터널형 천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3호분의 남쪽 묘도부를 파괴하고 사비기 석실인 6호분이 조성되었다. 3호분의 묘도 에 채워진 흙이 3호분의 묘도를 매립할 시 채워진 매토를 굴착하고 6호분이 조성되었 는지 아니면 6호분 개석 위를 덮고 있는 흙과 3호분의 묘도에 채워진 흙이 동일한 시점에 이루어졌는지 등 향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교촌리 3호분이 미완성분인지의 논란과 함께 이번 조사에서 방형석축시설로 확인된 유구의 성격이다. 송산리고분군에서 확인된 것과 유사한 방형석축유구가 교촌리유적 에서도 확인되었는데, 3호분을 비롯한 교촌리고분군과의 관계이다. 3호분과 방형석축. - 10 -.

(18) 유구의 조영 시기가 동일한지는 향후 검토가 필요하지만, 웅진기의 고분에 전을 사용 하여 축조한 시기가 매우 짧은 점을 고려하면 2기 모두 전을 사용한 점에서 거의 같 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형석축시설과 3호분이 상관관계가 없다면, 별도로 그 성격이 파악되어야 하지만, 송산리고분군에서 고분과 방형석축유구가 조합 된 점을 고려하면, 교촌리고분군과 정상부의 방형석축유구는 상관관계에 있었을 가능 성도 있다. 고분과 방형석축시설이 대응관계에 있다면, 웅진기의 왕릉 및 이에 준하는 고분 또는 소그룹 단위의 고분군에 방형석축시설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낸 웅진기 묘 장제의 특징일 가능성도 고려해 볼만하다. 이 외에도 공산성의 서쪽 성벽 바깥, 현재 공산성의 주출입구가 위치한 주차장으로 부터 남쪽으로 500m정도 떨어진 곳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유구는 현 도로 면으로부터 4∼5m 아래에서 청동기시대 묘역식지석묘와 백제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생 활유구가 확인되었다. 이 조사 결과 백제문화층은 현 지표면보다 훨씬 아래에 위치할 수 있다는 정보가 제공되었다.. 3. 사비기 경기·호서지역의 사비기 유적 조사는 당시 도성인 부여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이루 어졌다. 조사는 도성을 이루는 시설 및 구조와 나성 외곽에 분포하는 고분이 주 대상 이었고, 지방의 관방유적도 조사가 되었다. 도성 내부 조사로는 화지산유적, 쌍북리 56번지 유적, 쌍북리 596번지유적 등을 들 수 있다. 화지산유적은 2017년도 조사구역의 동쪽인 화지산의 서쪽 사면 일대를 대상 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2018년도의 조사(백제고도문화재단 2018)에서 화지산의 서쪽 사면부를 대상으로 절토와 성토를 하여 대규모의 평탄대지를 조성하고, 시설물 을 설치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대지 조성층은 크게 하·상층의 2단계로 구분되었다. 하층은 화지산의 서쪽 사면의 상단부를 ‘⌟’자 모양으로 삭평하고, 곡간부는 매워 평탄 대지를 2단으로 조성하였는데, 남 북 길이가 40m이고 조사 범위 밖으로 연장되 었다. 하층의 상단에는 굴립주 건물지로 추정할 수 있는 수혈이 수 기 확인되었다. 상단에서 하단 사이는 경사면을 이루고 하단 동쪽 가장자리에는 남 북에서 동서로 꺾 이어 이어지는 수로가 설치되었다. 남 북의 수로에는 구덩이 시설이 확인되었다. 이 - 11 -.

(19) 구덩이 시설은 수로 중앙부를 파 구덩이를 만들고, 양벽에 원통형의 목재를 가구하여 만든 구조가 매몰된 후 다시 굴착하고 돌을 쌓고, 상면에 ‘11’자로 목재를 올려서 조 성한 석조시설이 확인되었다. 수로에 설치된 석조시설의 내부퇴적토에서 외씨가 집적 된 층이 확인되었다. 목조와 석조시설의 성격에 대해 화장실 또는 용수를 모아 과일 등을 저장한 시설로 추정된다. 동서 수로의 북측에 설치된 구들은 동서 방향이고, 고래와 배연구가 딸려 있다. 구 들 내부에 소토와 재층이 있고, 벽체는 소결되었으나 바닥은 소결되지 않았다. 구들 바닥에서 복숭아씨가 확인되었다. 이 구들은 동북쪽에 위치한 석조시설과 연동하여 이곳에서 과일 등의 음식물을 조리한 시설로 추정된다. 상층의 2차 대지 조성층은 위쪽인 동쪽에서부터 낮은 곳인 서쪽으로 향해 경사성토 와 수평성토를 병행하여 조성하였다. 상단의 동쪽 법면은 기반토를 절토하여 경사면 을 조성하고, 서쪽의 평탄면에는 남북방향으로 나란하게 3동의 초석 건물지가 배치되 었다. 초석 건물지의 대지는 사질점토에 와편이 혼입된 층으로 매우 단단하다. 초석 건물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해 1호→2호→3호로 명명되었다. 1호 건물지는 원형의 주초석 사이에 장방형의 간주초석이 배치되었고, 주초석의 하부에는 적심을 한 굴광 이 확인되었으나 간주초석에는 적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 모이다. 2·3호 건물지의 초석 하부에도 적심부가 확인되었다. 건물지 동편과 절토한 법면 사이에는 배수구가 조성되었다. 배수구 내부에는 많은 수량의 기와가 폐기되었는데, 건물지의 지붕에 사용된 것이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2호 건물지의. 뒷쪽 배수로에는 다량의 기와가 쌓여 있고, 그 아래에 5개체 이상의. 대호가 완파된 상태로 확인되었고, 대호 편 아래에서 완·뚜껑·전달린토기·병·자배 기·중국 자기 등 소형 토기류가 상당수 파손되었거나 완형으로 확인되었다. 조사단 에서는 건물지 뒤쪽의 선반 위에 보관된 토기가 선반이 무너지면서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와 유사한 양상은 관북리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이곳 화지산은 백제의 이궁지 또는 망해정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어 왔다.. 삼국사. 기 무왕 37(636)년에 망해루에서 군신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고, 의자왕 15(655)년 에 왕궁 남쪽에 망해정을 세웠다고 한다. 무왕 35년 이전에 이미 망해루가 세워졌다 가 의자왕 15년에 새로 망해정을 세웠다고 이해된다. 그렇다면, 성토대지 하층에서 확인된 굴립주 건물지와 상층에 세워진 초석건물지에 각각 망해루와 망해정이 대응될. - 12 -.

(20) 수 있는지의 검토 여부도 주목된다. 이곳 조사에서 확인된 건물지의 망해정 가능성과 함께 이곳 일대에 대규모의 토목사업으로 넓은 대지가 조성된 점도 사비 도성 내부의 토지 개발과 활용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로서 가치가 있다. 쌍북리 56번지 일대의 조사는 사비한옥마을 조성사업에 수반되어 실시되었다(울산 발전연구원 2018). 조사 면적은 26,127㎡이고, 2017년2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실시되 었다. 지금까지의 조사에서 도로유구·벽주건물지·공방 관련 유구·화장실유구·구상 유구·수혈유구·우물 등 약 200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도로는 남북방향(도로 2)과 동서방향(도로 1)이 확인되었고, 도로 2에서 서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동서방 향 도로와 직교하는 남북방향의 도로가 확인되었다. 동서방향 도로와의 교차자점에 목교가 확인되었다. 도로의 노면 폭은 3.5m, 측구 폭 50㎝ 내외인데, 사비도성 내의 기조사에서 확인된 소로의 노면 폭과 동일하다. 중심 도로를 따라 벽주건물이 배치되었고, 건물 사이에는 폭 1.5m 내외의 소로에 의해 구획되었고, 소로 양쪽에는 소형 목주열이 확인되었다. 32·39·40호 벽주건물 지에는 벽주를 구성한 목주가 다수 확인되었다. 40호와 32호는 규모가 다른 2기의 벽 주건물지가 나란하게 배치되었다. 우물은 내부에 직경 60㎝ 크기의 통나무를 설치한 후 벽을 만든 구조이고, 주위에 할석을 부석하였다. 쌍북리 590번지의 하층과 상층에서도 동서와 남북 방향의 도로, 벽주건물지·목곽 고·수혈·우물·매납유구·석축시설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호남문화재연구원 2018). 각종 유구에서는 평기와와 막새·인장와, 토기·칠기 뚜껑, 중국 청자 등 다양 한 종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곳에서 출토한 인각와중 조합식인각와는 모두 3점으 로 ‘戈 斯’, ‘甲 ○’, ‘己 ○’로 파악된다. 이 중 ‘戈 斯’명 인각와가 가장 잘 남아있으며, 인근유적 출토사례를 볼 때 ‘甲 ○’은 ‘甲 毛’로 추정되고, ‘己 ○力’은 ‘己 日力’으로 파 악되는데 ‘己 肋’ 또는 ‘己 功’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쌍북리 56·590번지의 조사를 통해 남북·동서 도로에 의해 면적이 구획되고, 구획 된 내부에 벽주건물이 배치된 사비도성 내부의 도시 경관 일부가 확인되었다. 사비기의 고분 조사로는 능산리 서고분군 7차 조사와 능안골 3차 조사가 이루어졌 다. 18년도 조사는 아니지만, 17년도 말에 조사가 종료된 예산 고덕면 석곡리고분군 의 사비기 석실의 경우, 장지에서의 매장프로세스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므로 여기 서 소개한다.. - 13 -.

(21) 능산리 서고분군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2016년도부터 시작되었고, 2018년도의 조 사는 고분군의 윗쪽에 위치한 3호분(일제강점기 9호분)이 대상이었다(한국전통문화대 학교 고고학연구소 2018). 구릉 사면의 표토를 정지하고, 묘광을 굴착한 후 묘실을 구축하였다. 묘실은 완전히 지하에 구축되었고, 판석을 사용하여 단면 육각형의 현실 을 만들고, 현문부와 연도 입구에는 판석 1매로 막음한 전형적인 능산리형 석실이다. 호석은 확인되지 않았다. 2018년도의 능안골고분군 3차 조사 대상지는 능안골고분군의 중앙부에 입지한 4기 가 대상이었다(백제고도문화재단 2018). 4기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은 전체 길이가 12.7m에 달하는데, 내부에서 현실과 연도 구축에 사용된 벽체의 벽석은 확인되지 않 았고, 바닥에 돌을 세운 홈만 확인되었다. 현실과 연도로 추정되는 바닥에서 목질이 부착된 관정 10편이 확인되었다. 묘광 내부에 채워진 흙은 극히 짧은 시간 내에 메워 진 것으로 판단되었다. 조사단에서는 이 고분을 파묘 혹은 무덤이 완성된 이후, 다른 고분을 만들기 위해 석재를 가져간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앞으로의 다른 조사 사례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예산 고덕면 석곡리의 나지막한 구릉에서 완전하게 남아 있는 사비기의 능산리형 석실 고분이 조사되었다. 이 고분군에는 모두 6기의 능산리식 석실 고분과 같은 시기 에 만든 옹관고분 7기가 확인되었다. 발굴조사단에 의해 6기의 고분 가운데 2호분은 구조와 매장 당시의 모습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겨레문화유산연구원, 2017). 2호 무덤은 구릉의 가장 중심부인 정상부 가까이에 서남쪽으로 장방형 묘광을 파 고, 내부에 석실을 만들었다. 석실 입구에서 남쪽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좁고 긴 배 수로를 만들어 석실 안에 고이는 물이 빠져 나가도록 하였다. 무덤은 현재의 생토면 으로부터 50㎝ 아래까지 봉토가 덮혀 있었다. 발굴조사 당시 묘광 바깥측 주변에는 봉토가 전혀 확인되지 않아 고분을 만들 당시 봉토로 이루어진 분구의 범위와 높이 등은 확인되지 못하였다. 봉토는 연도가 위치한 곳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곳에서 성분이 다른 흙을 사용하고, 그 위에 길다란 돌을 놓아 구분되었다. 이렇게 구분된 사례는 능산리형 석실의 무덤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백제 무덤에서 이런 양상은 처음 이라 조사단에서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을 추론하였으나 만족스러운 해석은 나오지 않았다. 석실로 들어가는 문틀 시설 위쪽의 뚜껑돌 가까이의 봉토에서 성질이 다른 흙을 동. - 14 -.

(22) 시에 쌓지 않고, 고분의 뒤쪽인 동쪽의 봉토를 쌓은 후, 앞쪽인 서쪽에 봉토를 쌓아 봉토를 쌓는 순서에 빠르고 늦음이 있었음을 나타내었다. 봉토 쌓기에 시차가 있는 점은 석실을 만든 후, 주검과 부장품을 석실 내부로 안치하는 과정에서 생긴 현상일 가능성이 있었다. 석곡리 2호 무덤은 남쪽과 북쪽에 판석 2매를 세우고, 그 위에 경사지게 다듬은 돌 1매를 놓은 후, 대형 판석 1매를 덮어 천장을 만들었다. 석실 내부의 단면이 육각형 으로서 6세기 말에서 7세기 전반 백제 사비기의 석실 특징을 잘 나타내었다. 남쪽과 북쪽의 서쪽 끝 부분에 판석 1매를 세워 문틀을 만들었고, 문틀 바깥에는 판석 1매씩 세우고 그 위에 개석 1매를 덮었다. 석실과 묘도 모두 합해 뚜껑돌은 2매이고, 높이 도 동일하다. 문틀 바깥에는 판석 1매를 세워 막음하였다. 막음돌 바깥면에 너비가 좁고 길이가 긴 할석 6매를 막음돌에 비스듬하게 기댄 상태로 확인되었다. 막음돌 뒤 쪽에 길다란 돌을 비스듬하게 기대게 놓은 것은 막음돌이 바깥쪽으로 넘어지지 않도 록 지탱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 방안이었다. 막음돌에 비스듬하게 세운 돌 사 이와 뒤쪽에는 흙이 채워져 있었다. 이 흙은 주검과 부장품을 무덤에 넣은 후 무덤 안길과 겉길과 동시에 채워 넣은 것이다. 석실 내부는 주검을 보호한 목관 편과 목관을 조립할 때 사용된 쇠 못과 관을 옮 길 때 사용된 관고리 등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두개골․팔뼈․다리뼈 등의 사람 뼈와 동 북쪽 모서리에서 유개대부호 1점이 확인되었다. 목관 편은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문틀 쪽으로 일부 밀려 나왔다. 이는 석실 내부에 물이 고이고, 고인 물이 문틀쪽으 로 빠지면서 물의 흐름에 의해 목관 편 일부가 밀려났다. 인골은 1구인데, 두개골과 팔뼈 등이 잘 남아 있어 형질인류학과 고병리학, 유전학 등의 유합적 연구를 통해 성별과 연령, 사망 원인 또는 병명, 노동의 강약 여부, 신장 등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정보들이 확보되면,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석곡리 2호 무덤은 지하에 만들어졌고, 분구의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그 이외의 부분은 도굴이 되지 않아 무덤을 만들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사비기 능 산리형 석실의 매장 과정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확보되었다. 사비기 지방의 관방유적 조사는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에 위치한 예산산성과 천안시 위례산성이 대상이었다. 예산산성 조사에서 석축 담장이 있는 대형의 초석건물지 2동. - 15 -.

(23) 과 저장수혈 43기, 수혈주거지로 추정되는 수혈 4기, 저수조 1기 등이 확인되었다(가 경고고학연구소 2018). 초석건물지 2동 중 1동은 정ㅁ면 13칸, 측면 4칸 이상의 규모 이다. 저장수혈은 평면 형태가 원형이고, 상부 직경이 1.5∼3.4m, 깊이 1.2∼2.5m로 다양하다. 저수조는 굴광 규모가 동서 11.2m, 남북 10.5m, 깊이 5.1m이고, 내부 바 닥에 목판을 깔고, 사방에 목판을 결구하여 만들고, 굴광과 목조시설 사이에 점토를 채워 넣었다. 위의 유구 내부에서는 인각와·연화문수막새·평기와·토기 등이 출토 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예산산성은 사비기 백제의 지방 통치 거점성으로서 성 내부에는 다 양한 시설이 존재하였음이 확인되어 향후 백제의 성곽 내부 구조와 지방통치 방식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해석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Ⅲ. 연구 내용과 경향 2018년도의 경기·호서지역의 물질자료를 대상으로 한 고고학적 연구는 다양한 방 면에서 이루어졌는데, 특히 학회나 기관 주최의 학술심포지움 발표 논문이 다수를 이 루었다. 한성기를 다룬 연구로는 청주 오송·송절동유적과 진천 송두리유적 등 미호천 수계 와 충주 호암동·문암동·장태산·가장골유적 등 남한강 상류지역의 2∼4세기의 유적 을 대상으로 한 발굴조사 내용과 성과를 일별하고, 재지세력과 백제 중앙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였다(충북대학교 외 2018; 백제학회·(재)중앙문화재연구원 2018). 최근 오송과 송절동유적의 발굴조사 내용을 근거로 미호천수계가 백제로 편입된 시 기를 둘러싸고 다소의 견해 차이가 제기되었다. 물질자료에 백제 중앙의 요소가 어느 정도 어떻게 반영되어야만 이 지역이 백제로 편입되었다고 인정될 수 있는지? 물질자 료에 백제 중앙의 요소가 반영되지 않고 재지적인 전통이 강하게 유지되었더라도 어 느 시점에 백제로 편입되었는지 등에 대해 앞으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과제이다, 1970년대 중엽의 발굴조사 이후 조영 시기와 주체를 둘러싸고 백제와 신라의 논쟁 이 지속되어 온 가락동·방이동고분군의 성격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서울특별시·한성백제박물관, 2018). 앞의 Ⅱ장 1절에서도 짧게 언급하였는데, 이 논 - 16 -.

(24) 의는 방이동 3호분의 조사가 촉매가 되었다. 1974∼75년도의 발굴조사 보고에서 방이 동 고분군의 석실은 지상식으로 보고되었으나 3호분의 발굴조사 결과 반지하식임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조사 이후 가락동·방이동고분군을 모두 553년 신라 점 령 이후 조성된 신라 고분으로 파악하였으나 90년대 이후 가락동 3호분과 5호분에서 백제의 특징적인 관정과 승문타날된 암키와가 확인되면서 이 2기의 고분은 한성 백제 시기의 고분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 이외 고분은 귀속을 둘러싸고는 한성 백제 고 분, 고구려 고분, 553년 이후 조영된 신라 고분, 한성 백제의 석실 축조 기술을 지닌 백제계 기술자가 553년 신라의 점령 이후에 조영한 고분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 고,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서울과 호서 지역에도 한성기의 횡 혈식석실이 상당 수 확인된 양상을 고려할 때, 백제 왕실에서만 적석총을 고수하였을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가락동·방이동고분군으로부터 가까운 하남 감일동에서 한성 백제기의 대규모 횡혈식석실군이 확인되었고, 가락동·방이동고분군과 감일동고분군의 석실과 상호 비 교 검토와 함께 금암산고분군 및 양평 대평리 1·2호분의 신라 석실과의 면밀한 비교 검토를 한다면 가락동·방이동고분군의 조영 시기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으 로 기대된다. 가락동 3·5호분은 백제 한성기의 고분으로 인식하면서도 이 고분의 피장자가 누구 인가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가 있다. 횡혈식석실의 피장자가 백제 왕족일 경우, 백제 왕실의 묘제가 적석총에서 횡혈식석실로 변화하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한성기 말인 5세기 3/4분기까지 백제 왕실의 묘제를 적석총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 논쟁은 공주 송산리고분군의 소위 방형석축유구의 성격 문제로까지 이어진 다. 한성기 백제 왕실의 묘제를 적석총으로 볼 경우, 웅진 천도 후, 송산리고분군에 개로왕의 허묘를 한성기 묘제의 전통에 따라 적석총이 조영되었을 개연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한성기에 왕실의 묘제로 횡혈식석실이 채용되었다면, 천도한 웅진 에 적석총을 조영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웅진기의 고고학적인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쟁점백제사 학술회의인 백제 웅진기 왕계와 지배세력. 백제 웅진기 영역과 지방지배 등을 통. 해 웅진기의 백제의 정치와 지방 지배를 다루었다. 백제는 웅진 천도 이전에 금강수계의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지방지배를 구축하였는. - 17 -.

(25) 데,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물질자료로서 횡혈식석실과 금동관모 등의 착장형 위 세품을 제시하였다. 한성기에 백제 중앙의 석실을 수용한 금강수계의 집단들과 웅진 천도 직후 횡혈식석실을 수용한 집단이 웅진기의 주요 지배세력을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이현숙, 2018). 한성기에 성장한 세력과 웅진 천도 이후 새로이 부상한 세 력들이 웅진기의 지배세력을 이루었을 것이란 추정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횡혈식석실 의 수용 여부뿐만 아니라 부장품의 구성과 고분군의 입지와 규모 등을 복합적으로 검 토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웅진기 백제 영역의 경우, 고구려 성곽과 고분 및 유물을 근거로 5세기 말까지 미 호천이 금강에 합수하는 부강의 남성골산성 일대까지 고구려의 지배하에 잇었고, 6세 기 전반 이후에는 한강 이북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였으며, 남한강 일대는 여전히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백제의 영역은 호서 중서부 지역을 제외한 범위였 을 것으로 추정하였다(양시은 2018). 그런데 경기 남부지역에서의 백제 영역과 6세기 이후 한강 이남지역의 귀속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남동쪽의 영역 범위는 전북 무주군의 서쪽지역, 진안고원의 금산분지, 백두대간 서 쪽 장수군, 운봉고원, 섬진강 이서의 전남 동부지역으로 설정되었다(곽장근 2018). 이 범위는 웅진기 후반인 6세기의 상황으로 파악되지만, 호남 동부지역에서의 물질 양상 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백제와 가야의 관계는 물론 백제의 지배형태 에 대한 이해도 달라질 수 있으므로 물질자료의 정확한 시기와 주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남쪽 지역의 백제의 지방지배를 담로제 실시와 연계하면서 이를 나타내는 물질자료 로서 횡혈식석실의 수용과 확산에 주목하면서도, 익산 입점리와 웅포리유적 같이 재 지세력이 강한 곳에는 재지세력을 담로제에 포함하여 중앙 관등에 편제시켜 지배하였 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금강 이북지역에는 횡혈식석실이 조영되지 않는 점을 근거로 담로제가 실시되지 않았을 것으로 파악하였다(서현주 2018). 담로제의 실시는 물질자료의 변화를 수반하였는지? 왜 횡혈식석실묘의 조영을 담로제 실시의 물질자료 로 보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물질자료가 정치적인 변화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하 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조사와 논의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공산성 왕궁 고증 복원 및 송산리고분군의 방형석축 유구의 성격 해명과 관련하여 건물 구조와 제의시설의 논의를 위한 학술심포지움이 수차례 실시되었다(공. - 18 -.

(26) 주시·공주대학교박물관 2018). 그리고 웅진기에 창건된 대통사와 관련한 조사가 이 루어지면서 대통사지의 성격 구명과 향후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공주 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백제학회·한국고고학회 2018). 또 세계유산인 백제역사유적 지구의 확대와 관련하여 백제 왕도 핵심유적의 문화유산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이루 어졌다(문화재청·백제학회 2018). 사비기의 고고학적 연구로는 부여와 익산지역에 소재한 불교사찰에서 출토한 치미 를 중심으로 한 특별전시회와 연관해서 백제·신라·중국·일본의 치미의 특징과 상 호 관련성과 치미를 통해 고대의 건축물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국립부여박물관 외 2018). 2011년 공산성 성안마을 일대 조사에서 출토한 貞觀十九年(645) 명 칠피 갑옷에 대한 칠 성분, 특징과 칠기의 복원과 보존처리 현황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대 한민국 국회 문화관광산업연구포럼 2018).. Ⅳ. 맺음말 이상 2018년도에 경기·호서지역의 발굴조사 성과와 과제, 연구 성과 내용을 간단 하게 정리 서술하였다. 2018년도의 발굴조사 성과도 여느 해에 못지않게 백제사 전체 를 복원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음은 틀림없다. 또한 2018년도에 이루 어진 백제의 고고학적인 연구 내용과 성과도 향후 백제사의 복원과 이해에 중요한 기 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의 자료 입수 능력의 한계와 이해의 부족 등으로 조사 내용과 연구 성과를 제 대로 다루지 못한 점에 대해 관련 기관 및 연구자의 양해를 구한다.. - 19 -.

(27) 참고문헌 가경고고학연구소 2018, 「예산산성 문화유적 발굴조사 및 추가 시굴조사 현장자문회의 자료집」 강태홍 2018, 「하남 공공주택지구 내 문화재 발굴조사 한성백제 횡혈식석실묘 」 겨레문화유산연구원, 2017,「덕산 고덕IC 도로건설공사 구간 내 유적 문화재 발굴조사」2차 학 술자문위원회의 자료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백제학회·한국고고학회 2018, 조사 및 활용 방안. 공주 대통사지 성격 구명과 향후. 공주대학교박물관 2018, 「공주 교촌리 백제전축분 탐색을 위한 발굴조사 개략보고서」 공주시·공주대학교박물관 2018, 백제시대 제의시설 발굴성과와 비교검토 공주시·공주대학교박물관 2018, 백제왕궁관련 유적의 조사성과와 앞으로의 과제 공주시·공주대학교박물관 2018, 공산성 건물지 복원고증을 위한 전문가 학술포럼 공주시·공주대학교박물관 2018, 공산성 왕궁유적 복원고증연구 심화를 위한 전문가 세미나 국립부여박물관 외 2018, 동아시아의 치미 김귀한 외 2018, 「용인 원삼일반산업단지 추가조성부지 내 유적」 중부지역 문화유적 발굴성과 2018년도 중부고고학회 유적조사 발표회 김봉성 2018, 「양평 하자포리 244 18번지 외 1필지 유적」 2018년도 중부고고학회 유적조사 발표회. 중부지역 문화유적 발굴성과. 대한민국 국회 문화관광산업연구포럼 2018, 백제 칠피 갑옷의 비밀 몽촌토성 발굴조사팀 2018, 「몽촌토성 북문지 일원 발굴조사 북문지 내측 삼국시대 문화층의 조사성과를 중심으로 」 중부지역 문화유적 발굴성과 2018년도 중부고고학회 유적 조사 발표회 문화재청·백제학회 2018, 백제왕도 핵심유적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 백제고도문화재단 2018, 「천안 동부바이오 일반산업단지 진입도로 개설공사구간 내 유적 발굴 조사 전문가 검토회의 자료집」 백제고도문화재단 2018, 「부여 화지산유적(사적 제425호) 5차 발굴(정밀)조사 약보고서」 백제고도문화재단 2018, 「부여 능안골고분군(사적 제420호) 3차 발굴(정밀)조사 약보고서」 백제학회·(재)중앙문화재연구원 2018, 中原, 마한에서 백제로 서길한 2018, 「하남 금암산 고분군」 서울특별시·한성백제박물관, 2018, 서울 방이동 고분군의 성격 양시은 2018, 「백제 웅진기 영토 개척과 지방지배1(북동쪽)」 제13회 쟁점백제사 학술회의, 한성백제박물관. 백제 웅진기 영역과 지방지배. 울산발전연구원 2018, 「부여 쌍북리(56번지) 사비한옥마을 조성사업 부지내 유적 학술자문회의. - 20 -.

(28) 자료집」 이강호 2018, 「광주 곤지암역세권 도시개발사업부지 내 유적」 중부지역 문화유적 발굴성과 2018년도 중부고고학회 유적조사 발표회 이건충·조은이·김방효 2018, 「용인 마평동 574 1번지 유적」 중부지역 문화유적 발굴성과 2018년도 중부고고학회 유적조사 발표회 이창호 2018, 「공주 송산리고분군 제단복원을 위한 발굴조사 성과」 백제시대 제의시설 발굴 성과와 비교검토 공주시·공주대학교박물관 이현숙, 2018, 「고분자료로 본 백제 웅진기 지배세력」 백제 웅진기 왕계와 지배세력 제12회 쟁점백제사 학술회의, 한성백제박물관 이효재·님승남 2018, 「홍천 태학리 유적 홍천 한국형 기동헬기 후속사업부지 내 유적 발굴조 사 」 중부지역 문화유적 발굴성과 2018년도 중부고고학회 유적조사 발표회 (재)고려문화재연구원·한국토지주택공사 2018, 「하남감일 공공주택지구 내 문화재 발굴(시굴) 조사 학술자문회의 자료집(12차) 1 ③지점 」 전일용 2018, 「춘천 율문리유적」 중부지역 문화유적 발굴성과 2018년도 중부고고학회 유적 조사 발표회 정치영·윤정현 2018, 「서울 방이동 고분군 3호분」 중부고고학회 유적조사 발표회. 중부지역 문화유적 발굴성과. 정치영·최진석·윤정현 2018, 「서울 석촌동고분군 1호분 북쪽 적석총 」 발굴성과 2018년도 중부고고학회 유적조사 발표회. 2018년도. 중부지역 문화유적. 조원창 2018, 「공주 반죽동 추정 대통사지 발굴조사 내용과 성과」 공주 대통사지 성격 구명 과 향후 조사 및 활용 방안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백제학회·한국고고학회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8, 백제 고분과 제의 시설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8, 「공주 수촌리 고분군 문화유적 7차 시·발굴조사 자문회의 자 료집」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8, 「서천 봉선리유적 탐방로구역 3차 발굴조사 개략보고서」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8, 「공주 대통사지 추정지 학술 발굴조사 중간자문회의 자료집」 충북대학교 외 2018, 청주 마한 백제를 품다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2018, 「청주테크노폴리스 일반산업단지 확장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전 문가검토회의 자료집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2018, 「부여 능산리 고분군(서고분군) 7차 발굴조사 자문회 의 자료집」 호남문화재연구원 2018, 「부여 쌍북리(590번지) 공동주택 신축사업 부지 내 문화재 발굴(시 굴)조사 약식보고서(부분완료)」. - 21 -.

(29)

(30) 토론문. “2018년도 경기·호서지역의 백제 관련 발굴조사 성과와 연구 경향” 토론 성 정 용 (충북대학교). 홍보식선생님의 발표문에 의하면 2018년도에도 역시 경기·호서지역에서는 다양한 조사연구성과들이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백제와 한 뿌리라 할 수 있는 마한과 관련된 초기철기―원삼국시대 관련 유적 조사성과도 소개 되었으나, 이번에는 빠져 있다. 토론자도 이 지역 유적들을 극히 일부만 둘러보았었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이 많다. 혹시 이 시기 조사 성과사례가 있으면 먼저 잠시 소개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또 이전에는 지역적으로 중부지역의 조사성과를 따로 발표하 였었는데 이번에 같이 준비하면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래도 혹시 강원도 지역에서의 주요한 백제 관련 유적 조사성과가 있다면 함께 소개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몇 가지 궁금한 것을 여쭈어보고자 한다. 먼저 발표문에 사진 등이 없어 확실치는 않지만, 몽촌토성 26호 굴립주건물지 출토 가야토기 대각편과 23호 수혈 출토 창녕양식 토기 대부완, 90호 벽주건물지 출토 須 惠器, 석촌동 적석총 출토 유개식의 통형고배 1점 등이 어떠한 형식이지 그리고 가야 와 왜 지역의 것과 어느 정도 비교해볼 수 있을지 말씀을 부탁드리고 싶다. 발표문에 나와 있는 청주 문암동 일대의 가야계로 추정되는 대부파수부직구호와 함께 5세기 무 렵 백제 여러 지역과 주변 세력들과의 교섭관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한편 천안 구도리고분에서는 비록 토기는 없지만 또하나 중요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바로 발표문에 있는 대금식판갑이 그것인데, 매장주체시설 또한 백제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구조여서 역시 왜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5세기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다양한 교섭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 - 23 -.

(31) 최근 백제지역에서 주목할 만한 조사 성과 중의 하나는 한성 남쪽 외곽지역에서 적 석총이 확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발표문에 나와 있는 용인 곤지암리와 용인 마평동 적석총이 그것인데, 이들은 구조와 축조시기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들이 동일한 계통 하에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상관성 없이 자연발 생적인 현상인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이들의 축조시기와 함께 한성백제 중 앙과 관계없이 출현하였다고 보고 있는지 어떠한지 여쭈어보고 싶다. 혹시 발표문에 있는 석촌동 적석총과 북한강 및 남한강·연천. 지역 등지에 있는 적석분구묘들과의. 구조적 상관관계가 있을지 여쭈어보고 싶다.. 웅진기의 조사성과는 역시 송산리고분군과 교촌리에서 확인된 적석유구들과 함께 대통사지의 존재를 다시끔 알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중 교촌리와 정상부 에 있는 적석유구와 송산리에서 조사된 2기의 적석유구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약간 재고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송산리는 바로 인근에 관련 무덤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교촌리 적석유구는 주릉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3호분과도 상당한 거리로 이격되어 있어 3호분을 위한 의례시설로 보기 쉽지 않다. 주변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입지로 미루어 다른 종류의 의례시설이 아닐까?. 사기비는 조사성과가 다양하여 어느 하나를 꼽기 어려울 듯한데, 도굴되지 않은 채 로 조사되어 매장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예산 석곡리 2호분은 대단히 중요한 발 견이라 생각된다. 한편 백제 이궁지 또는 망해정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어 왔던 부여 화지산 서쪽 건물지군은 조사하면 할수록 구릉 정상쪽으로 규모가 확대되고 있어 이 시기 부여 도성 구조를 해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짧은 시간에 발표문을 검토하느라 필자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점 이해를 부탁드리고 싶다.. - 24 -.

(32) 제2주제. 2018년도 호남지역 마한·백제고고학 조사·연구 성과와 과제. 발 표 : 이 영 철 (대한문화재연구원) 토 론 : 김 낙 중 (전북대학교).

(33) 발표문. 2018년도 호남지역 마한·백제고고학 조사·연구 성과와 과제 이 영 철 (대한문화재연구원). Ⅰ. 머리말 이 발표문은 호남지역에서 2018년부터 2019년 초까지에 진행된 마한·백제고고학 관련 조사·출간 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조사 자료는 구제발굴조사와 학술발굴조사 보고 내용을 토대로 정리하였으며, 출간 자료는 보고서, 연구논문, 학술세미나 등의 내용을 살펴 정리하였다.. Ⅱ. 조사 자료 검토. 1. 구제발굴조사 주요자료 ① 익산 어량리 호천유적(2018, 전주문화유산연구원) 유적은 전북 익산시 낭산면 삼당리 1 41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 인된 유구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원형수혈과 석실분 자료이다. 원형수혈은 구릉 사면 에서 확인되었는데 두 지점으로 나뉘어 군집되었다. 원형수혈 단면형태는 원통형과 플라스크형으로 나뉘며, 저장용 수혈로 용도가 알려져 있는 유구이다. 백제의 영역확. - 25 -.

(34) 장과 관련해 논의되는 대표적 고고자료이다. 석실분은 7세기경에 조성된 사비식 구조 의 무덤 자료이다. 단면 6각형을 띠는 고임식구조도 확인되며, 판석을 놓아 바닥석을 갖춘 예도 있다. 묘실 입구에 문주섟을 세우고 급경사를 이룬 묘도의 구조는 용기리 고분과 유사한 것으로 보았다. 석실에서는 장식과대와 함께 인골이 출토되었다. 유사 한 석실 자료는 익산 쌍릉, 성남리·용기리, 완주 둔산유적 등에서 찾아지는데, 미륵 사 조영 시기에 존재한 유력 귀족층의 무덤으로 평가되고 있다.. ② 화순 삼천리 황새봉유적(대한문화재연구원, 2018) 유적은 전남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 85답 일원에 위치한다. 발굴조사 결과, 마한∼ 백제시대에 걸친 생활유구와 생산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생활유구는 주거지와 수혈(저 장·폐기·의례 등) 유구가 대표적이며, 주거지 평면형태가 말각방형, 타원형, 원형이 라는 점이 흥미롭다. 점토로 구축된 부뚜막과 장타원형구덩이의 초현 시기와 관련해 중요한 자료가 확보된 발굴조사이다. 또한 영산강유역에서 경질무문토기와 삼각형점 토대토기가 공반되는 생활유구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기원전후 토기편년과 취락연구에 일조할 수 있는 조사 성과였다.. 그림 1. 화순 삼천리 황새봉유적 유구분포도. - 26 -.

(35) 유적 조사내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유구는 토기가마이다. 가마에서 생산한 제품 은 자비용기류와 함께 기와가 출토되었다. 기와는 적갈색 연질이며, 격자문 타날이 다 수를 차지한다. 내면에는 포흔이 확인되고 측면은 전면 와도흔의 특징을 보이고 있 다. 이러한 특징은 한성기 서울 몽촌토성・풍납토성・순천 검단산성의 출토품과 비교 된다고 한다. 가마 운영 시기는 한성기 말에서 웅진기 초로 추정되고 있다.. ③ 장흥 송촌리 평촌유적(2018, 전남문화재연구원) 유적은 전남 장흥군 관산읍 외동리 97 4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발굴조사에서 확인 된 유구 가운데 주목되는 내용은 삼국시대 관련 자료이다. 넓지 않은 면적에서 53기 의 주거지와 관련 수혈, 그리고 고상식 창고건물 2동이 조사된 어촌 경관의 취락 자 료이다. 가야로부터 영산강을 거쳐 백제로 이어지는 연안 항로상에 자리한 취락은 백 제 영역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취락유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한 변의 길이가 13m에 이르는 28 4호 주거지의 존재는 호남지역 백제계취락의 형성과 관련한 또 하 나의 중요 자료로 볼 수 있다. 주거지에서는 다양한 재지계토기와 더불어 백제계 개 배와 발, 호, 왜계 개배, 가야계 고배, 단경호 등이 출토되어, 남해연안의 항로가 가장 활발히 사용되던 5세기 중엽의 지역간 교류 정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림 5. 장흥 송촌리 평촌유적 유구 배치도. - 27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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