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문의 역사
우리나라에 신문이 발행하기 전에는 관보 성격인 ‘조보(朝報)’와
‘기별(奇別)’이라는 것이 있었음
조보는 승정원이 발표하는 자료들을 각 관청의 기별서리(寄別書 吏)들이 베껴 각 관청과 양반에게 보내는 것. 조선 전기 또는 15세 기로 추정되고 있다.
조보는 우리나라 최초 근대신문은 ‘한성순보’와 ‘한성주보’가 발행 되기 전까지 존재. 1894년 ‘관보官報)’를 창간하면서 사라짐
한국신문 역사는 대체적으로 개화기, 일제시대, 미 군정기, 자유당 시대, 군부 정권 시대, 민주화 이후 시대로 나눔
개화기 신문
• 1. 한성순보
• 한국 최초의 근대신문은 1883년 10월 창간된 ‘한 성순보.
• 당시 정부기구인 박문국에서 월 3회 발간.
• 개화파가 개화사상을 알리려는 목적.
• 박영효가 주도.
• A4형태의 24쪽짜리 책자로 발간.
• 국제정세, 외국 문물, 역사, 과학, 지리, 천문 등 다 양한 내용이 담김.
• 1884년 발생한 갑신정변으로 폐간.
• 1886년 한성주보로 복간돼 1888년까지 발행.
2. 독립신문
• 우리나라 첫 민간신문은 1896년 4월 7일에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
• 서재필이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망명을 끝내고 귀국한 지 3 개월 만에 창간.
• 독립신문은 성격과 내용 면으로 볼 때 신문 역사에 엄청난 업 적을 남김.
• 주 3회(화, 목, 토요일) 발간.
• 한글전용과 띄어쓰기를 도입해 쉽게 읽도록 한 게 특징.
• 배우기 쉽게 쓰기 편한 한글로 신문을 제작.
• 또 사실 보도와 논평, 비판에 비중을 둠.
• 영문판에서는 외국인에게 국내의 사정과 여론을 알림
• 독립신문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활동도 지원.
황성신문 등
• 1998년 9월에는 황성신문이 창간
• 초대 사장 남궁억과 구한말의 대표 언론인인 장지연이 사장으로 선출.
•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장지연이 황성신문 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써 구속
• 국한문을 혼용해 구한말 지식인과 양반, 유생 들을 독자로 끌어들임
• 러일전쟁 후에는 <대한매일신보>, <만세보>,
<대한민보>가 창간해 국민들의 의식을 깨우
치기 위해 외세의 침략에 저항
시일야방성대곡 내용
일제시대 신문
• 1910년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면 민간신문들은 폐간.
• 총독부는 ‘대한매일신보’ 제호를 ‘매일신보’로 바꿈
• 3·1운동 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정치’라는 구호로 회유책
• 그 결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시사신문 1920년 창간
• 민간지들은 한민족의 이익을 수호하는 신문으로서 민족운동에 앞장 섬.
• 일제의 탄압으로 수없이 신문의 압수와 정간을 당한 신문사들은 경 영상 어려움을 겪음.
• 언론인들은 잦은 필화로 고통을 겪기도 함. 중후반기에는 일제에 부 역을 했다는 비판도 많이 받음. 민간지들은 1940년 8월10일 강제 폐 간
미군정기 신문
• 미군정시기 신문 발행을 정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꿈
• 서울에서 조선 인민보가 창간되고 지방에서 민중일보, 자유신, 대동 신문 등이 나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도 복간
• 당시 등록된 신문·잡지 등 정기간행물이 242종.
• 대부분의 신문은 자사 주장 내세우며 정치 정론지적 성격
• 언론인 테러와 신문사 습격, 기물파괴 등 무질서한 상황
• 1946년 신문발행을 허가제로 환원
• 이 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신문발행을 억제하는 근거.
• 이 시기 신문판형은 타블로이드로 시작해 현재와 비슷한 대판형으 로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