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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 있어서 ‘생’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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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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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 정 임*1)

Ⅰ. 서론

Ⅱ. 헤겔의 초기 사유에서 ‘생’ 개념

Ⅲ. 자기의식의 대상으로서 ‘생’

Ⅳ. 이념으로서의 ‘생’

Ⅴ. ‘생’의 인식으로서 예술

Ⅵ. 결론

Ⅰ. 서론

‘생(das Leben)’은1) 공동체, 정치, 종교에 관한 헤겔(G. W. F. Hegel,

* 강원대학교 교수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2020년 봄 정기학술대회 기획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보완하여 게재한 것이며, 2020년도 강원대학교 대학회계 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수 행한 연구임.

* DOI http://dx.doi.org/10.17527/JASA.61.0.03

1) 본 연구에서는 문맥에 따라 ‘das Leben’의 의미로 ‘생’, ‘삶’, ‘생명’이란 용어를 병용한다.

일반적으로 생은 삶과 동의어로 이해되며, 죽음과 대비되는 개념인 생명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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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1831)의 초기 사유의 중점을 이루는 것이자 후기 사유 형성의 근간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헤겔 사유 내 ‘생’에 관한 연구들이 다수 수행되어 왔으며, 근래에는 환경과 생태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생’ 내지 ‘생명’에 대한 헤겔의 사유를 고찰해 보려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들을 주제별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헤겔의 초기 베른, 프랑크푸르트, 예나 시기 사유에서의 ‘생’의 개념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있으며,2) 이후 논리학(1816)의 ‘이념론’에서 다뤄지는

‘생’에 관한 규정에 관한 연구들이 있다.3) 또한 엔치클로페디(1817, 1827, 1830)의 자연철학과 정신철학에서의 ‘생’ 개념을 분석한 연구들과4) 헤겔의 ‘생’ 개념을 미와 포함하기도 한다. 백훈승은 ‘생명’은 유한자에 사용해야 하고, ‘생’은 무한자에만 사용 해야 하는 것으로 두 개념을 구분한다 (백훈승, 「헤겔 정신현상학의 생 개념」, 헤겔 연구 제12집 [2002. 12], pp. 53-77, p. 54, 각주 1).

2) 서정혁, 「초기 헤겔의 철학적 단초로서의 ‘통일적 삶’」, 원우론집 제29집, 연세대학교 대학원 (1999), pp. 43-83과 「프랑크푸르트 시기의 헤겔」, 헤겔연구 제14집 (2003.

12), pp. 213-240; 윤병태, 「욕구와 삶」, 청년기 헤겔철학 (용의 숲 2007), pp.

119-148; 백훈승, 「헤겔 정신현상학의 생 개념」, pp. 53-77과 「헤겔 정신현상학에 있어서의 직접적인 욕망과 생」, 가톨릭철학 제29집 (2017. 10), pp. 151-171 (DOI:

10.16895/cathp.2017.29.5.151). 그 외 국외 연구로는 Hubertus Busche, Das Leben der Lebendigen. Hegels politisch-religiöse Begründung der Philosophie freier Verbundenheit in seinen frühen Manuskripten (Bonn: Bouevier 1987); Christoph Asmuth, Das Denken leben (Technische Univ. Berlin 2007)이 있다.

3) 윤병태, 삶의 논리 (용의 숲 2005); 서정혁, 「헤겔 대논리학에서 ‘삶의 이념’과 ‘논 리적 방법’」, 헤겔연구 제17집 (2005.06), pp. 197-225; 강순전, 「실존하는 목적으로서의 생명 - 기계론 및 외적 목적론과의 대결을 통해 본 헤겔의 생명관」, 철학 제111집 (2012. 05), pp. 87-120. 국외 연구로는 Annette Sell, Leben aus der Perspektive des Absoluten. Perspektivwechsel und Aneignung in der Philosophie Hegels (Würzburg: Königshausen & Neumann 2003)와 Der lebendige Begriff. Leben und Logik bei G. W. F. Hegel (Freiburg/Munich: Karl Alber 2013); Michael Spieker, Wahres Leben denken: Über Sein, Leben und Wahrheit in Hegels Wissenschaft der Logik (Hamburg: Felix Meiner 2009); Stascha Rohmer, Die Idee des Lebens.

Zum Begriff der Grenze bei Hegel und Plessner (Freiburg/Munich: Karl Alber 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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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연관하여 고찰한 연구들도 있다.5) 이러한 연구들은 헤겔 사유의 특정 시기나 주요 저서들을 중심으로 헤겔의 ‘생’ 개념과 의미를 분석하고 있는 만큼, 매우 심도 있는 연구들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선행연구들의 성과를 바탕으로, 헤겔이 예술철학에 논구하는 ‘예술의 의미’를 이전 사유들에서 규정된 ‘생’과의 관계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생’은 많은 철학자들의 사유대상이며, 철학 일반의 근본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술 역시 인간의 ‘생’을 내용으로 한다는 것은 부정의 여지가 없을 것 이다. 그렇듯 헤겔에게서도 예술은 인간의 ‘생’ 혹은 생의 본질로서의 정신활동을 각 시대의 구체적 삶 속의 갈등과 화해, 인간의 주관성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 된다.

본 연구는 예술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되, 헤겔에 있어서 예술은 그의 초기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었던 생의 통합적 특성과 생으로서의 자기 의식, 그리고 생으로서의 이념을 예술미를 통해 직관하게 하는 인식론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서 본 연구는 먼저 베른, 프랑크푸르트 시기 ‘생’의 통합성을 중심 으로 한 헤겔의 초기 사유와 정신현상학에서 논의되는 자기의식의 욕구 대상

4) 양우석, 「헤겔의 자연철학과 생태학적 위기」, 철학연구 제62집 (1997), pp. 213-243;

연효숙, 「헤겔의 자연철학에서 ‘생명’의 형이상학적 의미」, 헤겔연구 제28집 (2010.

12), pp. 35-57 (DOI: 10.17281/khegel.2010..28.002); 최일규, 「상생의 의미와 자기 내면 으로 회귀하는 정신 – 헤겔의 생명과 정신개념을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제28집 (2017), pp. 133-163 (DOI: 10.25050/jdaos.2017.28.0.133). 국외 연구로는 L.G. Richter, Hegels begreifende Naturbetrachtung als Verschöhnung der spekulation mit der Erfahrung, 양우석 옮김, 헤겔의 자연철학 (서광사 1998); Christian Spahn,

“Zwischen Naturnotwendigkeit und geistiger Freihiet. Das Organische als unfreie Freiheit bei G. W. F. Hegel”, 헤겔연구 제36집 (2014/12), pp. 47-66; Frederick Beiser, “Hegel und Naturphilosophie”, in: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vol. 34 (2003), pp. 135-147 (DOI: 10.1016/S0039-3681(02)00083-3) 등이 있다.

5) 윤병태, 「헤겔의 자연미의 개념」, 헤겔연구 제18집 (2005. 12), pp. 175-206과 「헤겔 사유에서 미의 이념과 현존의 관계」, 인문언어 제8집 (2006. 12), pp. 39-58; 서정혁,

「헤겔의 미학에서 예술의 생명성」, 헤겔연구 제29집 (2011. 06), pp. 11-44 (DOI:

10.17281/khegel.2011..2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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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서의 ‘생’의 구조를 살펴본다. 그런 후 논리학에서의 ‘순수이념’과 자연철학에서 논의되는 ‘생’ 개념, 예술철학에서 규정된 ‘미 이념’으로서의 ‘생’ 개념을 고찰하며, 마지막으로 ‘미 이념’으로서의 ‘생’, 인간의 ‘정신적 생명’(영혼)의 표현과 인식으로 서의 예술의 의미가 핵심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헤겔이 생과의 관계에서 강조하는 예술의 인식론적 기능은 예술의 다양한 의미와 기능들에도 가운데서도 현대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예술의 기능을 환기시킨다는 데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예술의 기능은 오늘날 현대예술의 수행에서 예술의 목적과 필요성을 성찰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 으로 여겨진다.

Ⅱ. 헤겔의 초기 사유에서 ‘생’ 개념

헤겔이 철학적 사유를 시작한 1790년대 독일은 왕권정치 하에 봉건주의 잔재가 남아 있었으며, 정치적 분열도 심한 상황이었다. 또한 유혈로 끝난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이루지 못한 자유의 실현에 대한 철학자들의 염원이 고취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헤겔은 분열된 삶을 통합하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철학의 궁극 목적은 자유를 실현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에 따라 헤겔에게서

‘생’(삶)은 처음부터 자신의 철학 대상 자체이기도 하였다.

초기 베른 시대(1793-1796)에 헤겔은 종교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관심사’로서 실천적 삶을 좌우하기 때문에 종교에서 통합적 생의 가능성을 찾았다. 헤겔은 종교가 원래 “마음을 흥미롭게 하고”, 인간의 “의지 규정과 감정”에 영향을6) 주어야 6) G. W. F. Hegel, “Fragment über Volksreligion und Christentum (1793-94)”, in: G.

W. F. Hegel, Frühe Schrften. Werke 1, hrsg. von E. Moldenhauer und K. Markus Michel (Frankfurt a.M.: Suhrkamp) (이하 W.1), pp. 9-103, p. 11 (이하 본문 속에 Fg와 쪽수로 표시). 헤겔의 초기신학 논저들에 관해서는 Herman Nohl의 편집본 (Teologische Jugendschrift, 1907)의 국역본을 참조할 수 있다 (정대성 옮김, 청년 헤겔의 신학론집: 베른, 프랑크푸르트 시기, [인간사랑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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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기독교는 기억과 오성에만 기초하여 실천적 힘이 결여된

“객관적 종교”에 불과함을 비판했다 (Fg 13). 이러한 종교에 반해 헤겔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아름다운 환상” (Fg 12)을 유발하여 통합적 삶을 위한 민중의

“행위와 사유방식에 영향” 주는 “주관적 종교”(Fg 14)를 촉구했다. 헤겔은 이러한

‘주관적 종교’가 “민중의 종교(Volksreligion)”가 되어 민중의 교육(Erziehung)과 도야(Bildung)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Fg 30f).

이 시기 헤겔은 1796 혹은 1797년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관념론의 가장 오랜 체계기획」 단편에서도 자신이 구상하는 새로운 실천 윤리학은 감성에 기초하여야 함을 역설한다. 이 단편에서 헤겔은 “미의 이념”이 “모든 것을 통합 한다”고 보며, 철학자도 “시인과 마찬가지 정도로 미적 힘을 소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성과 마음의 일신론”과 동시에 “환상과 예술의 다신론” 필요하 다고 서술하며 “새로운 신화”, 곧 “이성의 신화”를 통해 이념을 미적으로, 신화적 으로 만들어 민중들의 실천적 관심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호소한다.7) 이러한 맥락 에서 볼 때 초기 사유에서도 미와 예술은 아름다운 환상과 감성을 통해 민중들의 통합적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일깨우는 인식론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베른 시기에 헤겔은 민중종교로서의 ‘주관적 종교’를 “실천 이성의 필요성”에 (Fg 17) 기인하는 것으로 보며 그 가능성을 칸트 도덕철학에서 찾았지만, 이후 프랑크푸르트 시기(1797-1800)에 접어들어 칸트적 정언명법을 원리로 하는 도덕 개념을 비판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헤겔은 도덕 개념은 주관성이 결여 되어 있고 실천적 활동성이 없다는 점에서 “실증적 개념(ein positiver Begriff)”임을

7) G. W. F. Hegel, “Das älteste Systemprogramm des deutschen Idealismus”, in: W.1, pp. 234-236, p. 235, 236. 주지하다시피 이 단편은 헤겔이 기록한 것은 확실하나 내용적 측면에서 원저자에 관해 논란이 있다. 본고는 O. Pöggeler의 주장에 따라 헤겔의 저작으로 간주한다 (O. Pöggeler, “Das Menschenwerk des Staats”, in: Mythologie der Vernunft. Hegels ‘ältestes Systemprogramm des deutschen Idealismus’, hrsg.

von Ch. Jamme und H. Scheider, [Frankfurt a.M.: Suhrkamp 1984], pp. 173-225 참조).

이 단편의 내용 또한 헤겔의 초기 사유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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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며,8) 지고의 주관성을 본질로 하는 종교의 본질인 ‘사랑’에서 주관과 객관, 자아와 타자의 이분을 극복하는 화해와 실천적 힘을 찾는다. 따라서 종교와 사랑에 대한 숙고가 프랑크푸르트 시기 단편들의 주요 내용이 된다.

먼저 1797/98 「종교와 사랑에 관한 초안」이라는 단편을 살펴보면, 여기서도 헤겔은 주체과 객체 혹은 자유와 정신의 통합을 추구한다. 이 양 측면들이 분리 되지 않는 곳에 “신적인 것”이 있으며, “그러한 이상(Ideal)이 각 종교의 대상”

이라고 한다. 헤겔은 이러한 통합은 단지 객관적으로 머무는, 주관에 대립하는

“이론적 종합”으로는 달성될 수 없고 “실천적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실천적 활동”은 “객체를 무화하며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인데, 헤겔은 ‘사랑’을 이러한 활동으로 보며 “우리는 사랑에서만 오로지 객체와 하나가 된다”고 한다.

헤겔은 사랑에서 이루어지는 통합은 그가 추구하는 “주체와 객체, 자유와 자연, 현실적인 것과 가능적인 것의 통합”임을 강조한다 (Ent 242).9)

이렇듯 사랑은 주객이 평등한 통합적 삶과 자유의 실현을 위한 헤겔의 성찰 에서 고찰된다.10) 하지만 헤겔은 현실적 삶 속의 사랑의 한계도 인지한다. 즉, 사랑 속에서도 한 사람은 사랑을 하는 자, 한 사람은 사랑을 받는 자로 구분될 경우나, 또한 사랑하는 자들이 자신들 이외의 객체적인 것들, 물건에 재산과 권리들을 축적할 때 이에 대한 소유권 행사가 갈등과 이분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권리는 두 사람이 동등하게 보유하더라도 누군가가 그것을 사용하는 순간 동등성이 무너

8) G. W. F. Hegel, “Entwürfe über Religion und Liebe (1997/1798)”, in: W.1, pp.

239-254, p. 240 (이하 본문 속에 Ent와 쪽수로 표시).

9) 또한 헤겔은 “살아있는 것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 사랑이라고 본다. 이처럼 “살아 있는 것”이 갖는 감정으로서의 사랑은 인간 삶의 통합적 원리가 된다. 즉, 인간의 삶은 전개되지 않은 속성에서 나와서 도야를 통해 완성된 속성을 향해 원환을 돌게 되는데, 아직 전개되지 않은 속성에는 분리 가능성과 세계가 맞서 있고 발전과정에서 반성이 대립적인 것을 꾸준히 생산해내지만, 헤겔은 사랑이 “전적으로 무객관성 속에서” 이분 적인 반성을 중지시키고, 모든 낯설음을 없애며 “삶 스스로 어떠한 결핍도 없게 느끼게”

만든다고 보는 것이다 (Ent 246).

10) 삶에 대한 헤겔 초기의 정치적, 종교적 사유에 관해서는 Hubertus Busche, Das Leben der Lebendigen (앞의 각주 2의 문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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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이분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Ent 249f). 이러한 숙고에서 헤겔은 보다 보편적 사랑의 개념을 탐색하며 이를 예수가 보여준 기독교적 사랑에서 찾는다.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1798-1800)에서 헤겔은 먼저, 유대교의 실정성에 맞서는 예수의 설교와 행위들을 분석하고 예수가 제시한 사랑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헤겔은 “미의 정신이 결여된” 종교적 행위는 “가장 공허하고”, “가장 의미 없는 노예근성”이며, 인간의 “비존재”와 “수동성”을 드러내는 행위인데, 유대교가 이러한 특성을 가진 종교임을 다시 거론한다. 이처럼 유대교는 ‘쾌’나 ‘사랑’ 없이 신에 대한 봉사와 순종만 요구하는 계율의 종교인데, 예수가 이에 맞서 “인간의 욕구”를 대치 시켰다고 본다. 예수의 행위는 “정신적인 것”, “아름다운 것”, “발전 과정에 필수 적인 분리를 통합하고자 노력하는 것이자 이상 속의 통합을 온전히 존재하는 것 으로서 현실에 더 이상 대립적이지 않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으로서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Geist 327).11)

헤겔은 예수가 계율 대신 심정을 내세우며 제시하는 사랑은 “인간이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는” 것이기에 나와 타자 간, 그리고 나아가 “삶의 통합 (eine Vereinigung des Lebens)”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특성짓는다. 또한 이러한 사랑은 “삶의 분리와, 전개, 형성된 다양성”을 전제하며, 삶은 그 형태가 많을수록

“생동적이며”, 사랑 속에서 더욱 통합적임을 느끼게 된다고 본다 (Geist 394).

하지만 헤겔은 기독교 공동체에 “사랑의 연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공동체 내 확산된 사랑은 “개별성들의 살아있는 통합이 아니며”, 사랑의 향유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상호적 의식”에 한정된다는 점을 언급한다. 기독교 공동체의 사랑은 그들이 규정한 보편적 사랑 외의 삶의 형식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세계와 대립적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사랑은 “신적이긴 하지만 종교는 아니다”고 하며 기독교 정신의 한정성을 지적한다 (Geist 405).

이렇듯 헤겔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사랑은 현실적 삶의 통합을 실현하지 못하고 단지 이상으로만 남게 됨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는 「1800년 체계단편」에서 11) G. W. F. Hegel. “Der Geist des Christentums und sein Schicksal (1798-1800)”, in:

W.1, pp. 274-418, p. 318 (이하 본문 속에 Geist와 쪽수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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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삶 자체를 고찰하며 다양과 분리를 포함하는 전체로서의 삶의 통합적 본질을 탐색한다. 이 글에서 그는 생명체들(die Lebendigen)과 삶은 “다양성”과

“대립”을 본질로 함을 명시한다. 다양성은 일부는 통합 속에 있지만, 일부는 “그 자체로 무한한 다양성”으로 끊임없이 대립을 이루는데 이러한 대립의 연속을 헤겔은 “살아있는” 것의 특성으로 본다. 즉, 삶의 다양성은 대립적 “관계 속에서만 고찰되며”, “삶의 존재는 이러한 관계” 자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개별성은

“무한한 다양성에 대한 대립과 자신에게서 배제된 생명체들과의 결합을 자체 내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된다.12)

이에 따라 개별적 인간의 삶도 한편으로는 자기외적인 것들과 구분되는 동시에 그러한 자기 밖의 삶의 무한성(다양성)과 하나인 한에서 생명체일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개별체가 하나의 생명체로 반성의 대상이 될 때, “우리의 한정된 삶 외부에 정립된 삶은 무한한 다양성의, 무한한 대립의, 무한한 관계의 무한한 삶”이 된다. 헤겔은 이러한 “개별체들과 유기조직들의 무한한 다양성”이자 “조직화 되고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통일된 전체”인 것이 “자연”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연은 반성이 분리와 관계의 개념을 적용하면서 “삶을 정립하는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것, 혹은 “삶의 정립(Setzen)”에 불과하게 된다 (Syst 420).

이처럼 삶은 “생명체의 무한성” 혹은 “형태들의 무한성”이지만 자연으로서는 여전히 “무한한 유한성, 무제한적 유한자,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합이자 자체 내 이러한 것들의 분리”이며, 자연이 그 자체 생이 아니라 반성에 의해 정립된 “고정된 삶”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을 고찰하는 사유하는 삶은 “무한한 삶에 대한 자신의 이러한 유일한, 여전히 존속하는 대립이라는 모순을” 느낀다 (Syst 420f). 그러므로 헤겔은 “무한한 삶”은 정신으로서만 가능하다고 보는데, 정신은 “다양한 것을 생동적으로 통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인간이 활기찬 다양한 것들을 살아있는 것에 결합하며 다수로서 정립할 때, “개별적 삶이 유기체가 되고, 무한한 전체는 삶의 무한한 만유(All)”가 된다고 본다 (Syst 421). 물론 이 과정에는 12) G. W. F. Hegel, “Systemfragment von 1800”, in: W.1, pp. 419-427, p. 419 (이하 본

문 속에 Syst와 쪽수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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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떠한 것이 배제되어 다양의 결합이 고립된 채 대립으로 남아 있기도 한다.

그래서 헤겔은 “삶은 결합과 비결합의 결합(die Verbindung der Verbindung und der Nichtverbindung)”이라고 규정한다 (Syst 422).

여기서도 유한적 삶과 무한적 삶의 통합에 대한 헤겔의 고민을 볼 수 있다.

언급된 무한한 전체로서의 만유를 종교에서와 같이 인간의 외부에 설정한다면, 인간은 신을 숭배하게 되고 유한자인 자신을 고양시켜 무한자와 통합되기를 추구 한다. 하지만 헤겔은 종교에서의 이러한 고양은 우연적이며, “단지 유한한 삶 머로의 고양일 뿐”이며, 무한자는 유한자에 대립하는 한에서 무한자임(무한자로서 위력을 가짐)으로 무한자와 유한자의 “대립이 아름다움 통합으로 지양되지 않는 다”는 문제를 인식한다 (Syst 427). 이러한 사유과정을 통해 헤겔은 유한자와 무한자, 개체와 다양의 통합의 문제를 더 이상 종교가 아닌 철학의 사변적 사유의 대상으로 전환한다.13) 그리하여 헤겔은 이후 부분과 전체, 분리와 통합은 정신 혹은 자기의식이 스스로를 대상화하며 발전해 나가는 전개과정임을 규명하며, 이를 변증법적 운동 구조를 통해 논술한다.

Ⅲ. 자기의식의 대상으로서 ‘생’

살펴본 바와 같이 헤겔은 초기에 공동체 삶 속의 주체와 객체, 유한한 삶과 무한한 삶의 통합 가능성을 ‘주관적 종교’, ‘사랑’에서 찾았지만 양 측면의 통합의 논리적 구조를 제시하지 못했다. 통합은 단지 직관이나 믿음을 통해 이뤄지는 것 으로 파악되었다. 예나시기에 들어서 헤겔은 대립적 두 측면의 합일 가능성이 외적인 힘이나 존재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대립자 모두에 목적론적으로 내재해 있다고 보며 정신의 전개과정을 통해 이를 논증한다. 이 장에서는 예나시기 대표적 저서인 정신현상학(1807)을 중심으로 이 시기의 생의 규정을 살펴본다.

13)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서정혁, 「프랑크푸르트 시기의 헤겔」, pp. 213-24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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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에서 ‘생’은 자기의식의 인식구조를 규명하는 데 중요개념으로 다뤄진다. 생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자신과 분리된 하나의 대상 으로 경험하는 ‘대상의식’으로 파악되며, 자기의식이 분리를 일차적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생은 또한 그러한 일차적인, “직접적인 욕망의 대상”으로14) 규정된다. 생이 어떻게 ‘직접적인 욕망’으로서의 자기의식의 대상이 되는지는 자기의식의 인식구조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자기의식은 이전 단계의 의식(감각적 확신, 지각, 힘과 오성)과는 달리 대상 들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때 대상은 그 자체로(즉자, an sich) 그렇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해서 있는” 방식으로 (PG 133) 존립한다는 것이 밝혀 진다. 즉, 자기의식의 대상은 자기의식이 있음으로서만, 자기의식에 대한 것으로 서만 존립하며, 주체로서의 의식 작용의 결과로 생겨난 의식의 객체인 것이다.

의식은 이러한 대상을 성찰할 때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스스로를 타자화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는데,15) 이러한 의식이 ‘자기의식(Selbstbewußtsein)’이다. 헤겔은 자기 의식을 “감각적이고 지각된 세계의 존재로부터의 반성”이며 “타자존재로부터의 복귀”를 하는 “운동”이라고 규정한다 (PG 134).

이처럼 의식은 즉자에서 출발하여 스스로를 대자(für sich)로서 자신과 이분 (구분)하지만 다시 이 구분을 부정(비구분)하고 자기 내로 반성하며 귀환한다.

이러한 ‘구분과 비구분의 통합’ 과정이 바로 의식이 자신을 대상으로 경험하며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렇듯 구분을 부정하고 자기 내로 귀환하고자 하는 자기의식은 ‘욕망(Begriede)’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자기복귀로서의 통합을 추진하는 직접적인 욕망은 ‘이분과 (이분의) 부정’ 혹은 ‘구분과 비구분’의 통합’을 대상으로 하는데, 헤겔은 이 통합 구조를 ‘생’ 일반의 특성으로 간주한다 ― 여기서 생은 ‘살 아있는 것’ 그 자체, ‘생명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헤겔은 “직접적 욕망의

14) G. W. F.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Hamburg: Felix Meiner 1952, 6.

Auflage), p. 135 (이하 본문 속에 PG와 쪽수로 표기).

15) 헤겔은 지의 두 측면, “운동”하는 “개념”의 측면과 지를 취급하는 정지된 통일체인

“자아”가 다른 것이 아니라 일치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PG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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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은 “살아있는 것(ein Lebendiges)”이라고 규정한다 (PG 135).16)

자기의식의 직접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생의 본질과 특성은 다음과 같이 규명된다. 먼저, 자기의식과 마찬가지로 “생의 본질”은 “모든 구분들의 지양존재 로서 무한성”, “회전축을 돌아가는 운동”, “절대적으로 불안정한 무한성으로서의 무한성 자신의 안정”이라고 규정된다. 즉, 생은 “운동 속의 구분들이 지양되어 있는 자립성”이며, 이러한 “자기동등성” 속에서 공간의 견실한 형태를 가지는 “시간의 단순한 본질”로 설명되기도 한다 (PG 136).

생은 다른 한편, 구분들을 지속적으로 지양하는 ‘유동성’의 특성을 가진 것 으로 서술된다. 왜냐하면 “보편적인 유동성”이 분리를 완전히 지양하지 않음으로

단순한 보편적 매개체에도 마찬가지로 구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구분들은 생 속에 불가분하게 존속하며, 살아있는 생의 “유동성”은 구분들을 지속적으로 지양하면서 그것의 “부정적 성질”을 유지한다. 이러한 “유동성”은 생이 구분들을 “지양하는 운동”의 원리가 된다 (PG 136).17)

이러한 생의 특성으로 헤겔은 또한 “과정”을 든다. 즉, 헤겔은 “보편적인 유동적 매개체 속의 생”은 형태들이 “고요히 따로 따로 놓여 있는 것”이지만 바로 그러한 지양의 계기를 통해 생은 “형태들의 운동”이 되며, “과정으로서의 생”이 된다는 것이다.18) 이러한 구조는 개별적 생과 보편적 생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별성은 보편자의 대가를 치르고 스스로를 보유하며 자기 자신과의 통일의 감정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 “타자라는 자신의 대립”을 지양한다. 개별성이 이처럼 자신에게 부여하는 자기 자신과의 통일은 “차이들의 유동성” 혹은 “보편적인 와해”

이다 (PG 137).

16) 이에 대한 상세한 논리적 분석은 백훈승, 「헤겔 정신현상학에 있어서의 직접적인 욕 망과 생」, 특히 pp. 157-164 참조.

17) 헤겔은 자연이 보편화 속에서도 형태들을 지속적으로 구분하며 개별성을 유지하는 유 동성의 “무한한 운동”을 “살아있는 것으로서의 생”이라고 규정한다 (PG 137).

18) 백훈승은 정신현상학에서 다뤄지는 생을 “살아있는 것(생명체)”, “생명 과정”, “유 (類)”, “삶(목숨)”으로 구분하여 그 특성을 자세히 분석한다 (백훈승, 「헤겔 정신현상 학에서 생 개념」, pp. 60-7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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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전체 운동의 두 측면, 즉 “자기의식의 보편적 매개체 속에 고요히 따로 따로 놓인 형태”의 측면과 “생의 과정”의 측면이 서로 맞물리게 된다. 생의 과정이 “형태의 지양”이면서 형태이기도 한 것처럼, 형태도 지절화(Giederlung) 이면서 마찬가지로 “지양(Aufhebung)”이다. 이렇듯 유동적 요소는 그 자체로는

“본질의 추상”이지만 단지 “형태”를 띰으로서만 “현실적”이 된다. 또한 “스스로를 지절화한다는 것은 지절화된 것들을 이분하는 것”, 혹은 “이분화의 지양”이라는 이중 운동이다. 헤겔은 바로 이러한 “전체적 순환운동”이 “생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PG 138).

이렇게 형성되는 생은 “스스로 발전하는, 자신의 발전을 와해하는 그리고 이러한 [순환]운동 속에서 스스로를 단순히 보유하는 전체”로서의 생이다. 생은 첫 번째 직접적인 통일에서 벗어나 형태화와 과정의 계기들을 거쳐 이 [스스로 발전하며, 이를 와해하는] 두 계기들의 통일이 되며 이로써 첫 번째의 단순한 실체로 되돌아가는데, 이 자기 귀환이 (첫 번째 통일과 다른) “반성적 통일”이다.

이 반성적 통일에 의해 생은 “있는 그대로의 타자”에, 즉 “생이 이러한 통일로서, 혹은 류(Gattung)로서 있게 하는 의식”에 주목하게 된다. 헤겔은 “그 자체로서의 류”인 이와 같은 “다른 생”을 “자기의식”과 동일시한다 (PG 138).

이러한 자기의식과 이를 위한 대상은 “그 자체에 있어 의식의 타자이거나 구분을 부정적인 것으로서 정립하면서도”, “그러함에 있어 자립적인” 대상이다 (PG 140). 반면 “구분된 단지 살아있기만 한 형태는 생 자체의 과정에서 자신의 자립성을 지양해버리며”, “자신의 구분들과 더불어 자기 자신이기를 중단한다”.

이와 달리 자기의식의 대상은 “자기 자신의 부정성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자립적 이고”, “그 자체 대자적으로(자기 자신에 대해) 유(Gattung)”이며, “자신의 분리화 (Absonderung)의 고유성 속에 있는 보편적 유동성”이다. 헤겔은 그러한 대상을

“살아있는 의식”이라고 한다 (PG 139).

이러한 자기의식은 구분들의 통일을 자신에 대해서 있는 것으로 자각하는 정신적 생으로서, 그러한 통일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자연적 생과 구분된다 (Geist 135). 이와 같이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자연적 생과 정신적 생을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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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자기의식이 ‘정신적 생’으로서19)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노동을 통해 인륜성이라는 객관성에 도달하고 나아가 예술, 종교, 지(철학)의 절대지 영역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이와 같이 정신현상학에서 규정된 자기의식 및 생의 규정은 이후 생 개념의 근간이 된다.

Ⅳ. 이념으로서의 ‘생’

정신현상학 이후 생의 개념은 ‘이념’의 존재양태의 측면에서 ‘순수 이념’,

‘이념의 타자’, ‘미의 이념’으로 고찰된다. 순수 이념은 논리학에서 다뤄지는 ‘논리적 이념’으로, 현실성 등 아무런 전제를 가지지 않고도 가능한 ‘직접적인 이념’이다.

반면, ‘이념의 타자’는 이념이 최초로 현실적 양태로 나타난 것으로, 자연 내지 자연적 유기체와 동일시되는 이념이다. 마지막의 ‘미의 이념’은 살아있는 것, 생명 체와 동일시되는 미로서의 이념을 말한다. 이러한 양태의 이념들은 각각 논리학, 자연철학, 예술철학에서 다뤄진다. 다음에서는 언급된 세 가지 양태의 이념으로 규정되는 생 내지 생명, 생명체의 의미들을 간략히 이해하고, 이어 다음 장에서 특히 ‘미의 이념’에 초점을 맞추어 ‘미의 이념’이 ‘정신적 생’의 이념으로서 예술에 표현되는 필연적 과정과 이를 예술의 과제로 규정하는 헤겔의 사유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며 예술의 인식론적 기능을 재조명한다.

헤겔이 논리학에서 밝히는 이념의 일반적 규정은 개념이 “객관적 내지 실재적”으로 된 것, “개념과 객관성의 통일”, 곧 개념과 그 실재성이 통일을 이룬 것을 말한다.20) 이 이념은 논리학에서 세 가지 양태로 구분된다. 그 자체 직접 19)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죽음을 감내하고 죽음 속에서 스스로를 보존하는” 생이

“정신의 생”임을 강조한다 (PG 29). 이에 대해서는 서정혁, 「정신현상학에서 의식 의 경험과 삶의 의미」, p. 128, 130 참조.

20) G. W. F.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Zweiter Band: Die subjektive Logik (1816). Gesammelte Werke 12, hrsg. von F. Hogemann und W. Jaeschke (Hamburg: Felix Meiner 1981); 임석진 옮김, 대논리학 (III) (지학사 1982), p.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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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있는 즉자(an sich)로서의 이념, 자신을 외화하여 스스로에서 이분된 대자 (für sich)로서 이념, 그 이분을 부정하고 통일을 이루며 다시 자신으로 복귀한 즉자대자(an und für sch)로서의 이념이다. 이 논리적 계기들은 각각 “생명”,

“인식과 의욕으로서 진과 선”, “절대적 이념”으로 규정된다 (WL 306, 307). 이와 같은 구분은 이념의 전개 계기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러한 전개는 이념이 포함하고 있는 개념 자체가 이분과 이에 대한 부정적 통일을 통해 실재성과 연관을 형성하는 끊임없는 ‘운동’이라는 데 기인한다 (WL 304).

그 중 ‘직접적 이념’으로서 생 내지 생명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은

“이념이 생명이라고 하는 일차적인 직접적 규정성 속에서 파악”되는 것을 말한 다.21) 생명은 여기서 “순수이념으로서의 논리적 생명”으로, 자연의 생과 정신적 생과는 무관한 것이다 (WL 309). 이러한 생은 “객관적 외면성” 속에서, 그리고

“원자적 물질의 절대적인 수다성(Vielheit) 속에서 자기의 개념인 통일을 이루는”

것이 된다 (WL 312).22)

반면, 이러한 논리적 생과 구분되는 ‘자연의 생’은 이념의 “외면성 (Äußlichkeit)” 내지 이념의 “타자존재(Anderssein)”로서 엔치클로페디(1817, 1827, 1830) 내의 자연철학에서 다뤄진다.23) 헤겔은 자연철학을 역학, 물리학, 유기학(유기물리학)의 세 영역으로 구분하고, 유기학의 영역도 ‘지질학적 유기체’,

300 (이하 본문 속에 WL과 국역본 쪽수로 표시).

21) 이에 관한 상세한 분석은 서정혁, 「헤겔 대논리학에서 ‘삶의 이념’과 ‘논리적 방법’」, pp. 197-225 참조.

22) 헤겔은 이러한 생명을 “살아 있는 개체”, “생의 과정”, “유의 과정”으로 규정하는데 (WL, 313), 이는 앞서 살펴본 정신현상학에서의 생에 관한 규정과 거의 동일하다.

목적론에 입각한 ‘논리적 생’의 규정에 관한 자세한 의미 분석은 강순전, 「실존하는 목적론으로서의 생명 - 기계론 및 외적 목적론과의 대립을 통해 본 헤겔의 생명관」, pp. 87-120 참조.

23) G. W. F. Hegel, Enzyklopäd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 II (1830), W. 9,

§247과 Zusatz, p. 24, 25. 엔치클로패디는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 살펴본 1816년 논리학의 생 규정은 엔치클로패디의 <논리학> 장에 동일한 구성으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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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적 유기체’, ‘동물적 유기체’로 구분하며 ‘동물적 유기체’가 비로소 생명과 유기체의 형태를 갖춘 것이라고 규정한다. 더불어 그는, 동물적 유기체는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생명의 담지자이지만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주체성”을 벗어나 “자연 적인 것의 죽음”, “직접성의 지양”을 통해 “정신”에 이르러야 함을 강조한다.24)

마찬가지로 논리적 생과 구분되는 ‘정신의 생’은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정신현상학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논리학의 “절대적 이념”의 규정 에서도 논의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절대적 이념은 앞의 두 계기, 즉 ‘생명’으로서의

‘직접적 이념’과 ‘진’과 ‘선’으로서의 “인식의 이념”, 혹은 “이론적 이념”과 “실천 이념”의 동일성이 된다. 이렇듯 절대적 이념은 개념이 “대자적인 자각적 위치에 있는 인격성을 지닌 자유로운” 주체적 개념 (WL 409), 즉 “실천적이며 즉자 대자 적으로 규정된 객관적 개념”으로 발전한 상태가 된다 (WL 410). 이러한 절대적 이념은 한편으로는 내재된 직접성으로 인해 “생명을 향한 복귀”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성의 형식”을 지양하는 가운데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유한다 (WL 409).

헤겔은 절대적 이념만이 “존재와 불멸의 생명”, 그리고 “자기를 깨우치는 진리”이며 “일체의 진리”라고 규정한다 (WL 410). 이 규정에서 우리는 절대적 이념이 곧 ‘정신적 생’이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절대적 이념은 다름 아닌, “모든 규정성을 자체 내에 포함”하고 있으며, “스스로의 자기규정”, 즉 “특수화를 통해 서” 자기에로 복귀하는 데 자신의 본질을 가진다. 이에 따라 절대적 이념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그러함에 있어 “자연과 정신”은 “이념의 현존재상을 표현 하기 위해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 양식”이 되는데, 헤겔은 ‘정신’으로서 절대적 이념의 “현존재상”이 예술과 종교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즉, “예술과 종교는 절대적 이념이 자기를 포착하면서 동시에 자기와 합체되는 현존재를 마련하기 위한 그

24) G. W. F. Hegel, Enzyklopäd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 II, §337, p. 36과

§376, p. 537. 유기체로서 구체적 생인 자연의 궁극적 목표는 자연성의 죽음을 통해

“정신의 실존”이 되는 것이다 (§ 252, p. 36). 이에 대한 자세한 과정은 연효숙, 「헤겔의 자연철학에서 ‘생명’의 형이상적적 의미」, pp. 35-57, 특히 p. 5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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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각이한 형태”라는 것이다 (WL 410).

물론 철학도 예술과 종교와 동일한 내용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며, 유한성 혹은 무한성으로 나타나는 절대적 이념의 여러 가지 형태들을 “개념으로 파악함 으로써 “절대적 이념을 포착할 수 있는 최고의 양식”이 된다 (WL 410). 하지만 헤겔은 철학의 최고의 학문인 논리학이 “말, 언어”를 통해 절대적 이념을 사유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정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즉 언어에 의해 표현되는 “표상, 표명”은 “외적인 것이며 표출되는 것이란 점에서 [본래의 성격이] 소멸되고야”

만다는 것이다. 이처럼 절대적 이념이 철학에서 언어를 통해 포괄적이고 명증하게 사유될 수 있지만, 언어의 시공간적 한정성으로 인해 “순수사상” 속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WL 411). 이에 반해 예술은 보편적 이념으로서의 절대적 이념이 특수성으로 나타나는 여러 현존재상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이를 보존하며 직관 적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고유한 인식론적 기능을 수행한다.

예술에서 이념은 ‘미’ ―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술미’ ― 의 형태로 인식된다.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예술미 규정에 앞서 “미 일반”에 대해, 즉 “미의 이념(die Idee des Schöhnen)” 혹은 ‘이념으로서의 미’에 관해 말한다.25) 이념은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개념과 이 개념의 실재성의 통일”이다. 이러한 이념의 규정은 예술철학 강의에서도 다시 제시된다. 또한 이념의 본성은 “자연적으로 살아있는 것 일반”

이며, 따라서 “미 일반”으로서의 “미는 생명체(살아있는 것/생동적인 것, das

25) 미의 이념이라는 것은 “특정한 형식으로 있는 이념”, 즉 “직접적으로 실존하는” 이념을 말한다. G. W. F.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Kunst. Berlin 1823, Nachgeschrieben von Heinrich Gustav Hotho, hrsg. von A. Gethmann-Siefert, Hamburg: F. Meiner 1998; 한동원, 권정임 옮김, 헤겔 예술철학. 베를린 1823년 강 의. H. G. 호토의 필기록 (미술문화 2008), p. 127 (이하 본문 속에 Hotho와 국역본 쪽수로 표시). 헤겔에 있어서 생과 예술의 관계 규명을 위해서는 ‘생명체’로서의 미와 이념의 규정과 생명체의 내적 필연성, 영혼, 정신성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서 의 예술미 규정이 중요하다. 이러한 규정은 G. H. 호토가 출간한 기존의 헤겔미학 편 집본(Berlin 1835ff, 1842)에는 모호하며, 새로 발굴된 여타의 베를린 예술철학강의 필 기록들에서도 1823년 강의를 제외하고는 거의 상론되어 있지 않다. 이에 따라 본 연 구는 1823년 예술철학강의 필기록을 주요 분석텍스트로 참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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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ndige)와 합치”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Hotho, 128).

여기서 생명체, 생동적인 것으로서의 이념과 미는 헤겔이 자연철학에서 이념의 외화 내지 타자로서 자연의 유기체에 국한되지 않고 고차적 생명체로서 의식인 인간 정신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자는 자연미의 대상이라면, 후자는 예술미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은 예술철학 강의에서 생명체로서의 자신의 미에 의식적이지 않은 자연미의 한정성을 시사하고, 정신의 활동을 통해 즉자대자적인 절대적 이념을 표현하며 생명체의 내적 필연성을 인식하게 하는 ‘예술미’를 고찰 대상으로 함을 명확히 밝힌다.

또한 중요한 것은 ‘현실적 생명체’와 ‘이념으로서의 생명체’를 구분하여 생각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체가 곧 이념이라고 할 때, 이념이 일종의 관념성으로서 생명체에 표면적으로 현상하지 않고 ‘내면적인 것’임으로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파악할 수 있는지가 헤겔의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헤겔은 예술철학에서 예술 혹은 예술미를 통해 그러한 이념, 관념성, 특히 그러한 것으로 서의 인간 정신이 인식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예술미의 필요성과 과제를 논한다.

Ⅴ. ‘생’의 인식으로서 예술

그렇다면 헤겔이 어떻게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는지 살펴보자. 예술철학에서 헤겔은 먼저 생명체가 그 자체 이념이며, 이념은 개념과 그 실재성 통일이기 때문에 개념의 특성을 통해 생명체의 규정을 서술한다. 개념은 “자신의 외적인 존재가 곧 자신에 머물러 있는 점(Punkt)과 같은 것”으로서, “절대적 통일이지만 다양한 규정들의 통일”이다 (Hotho 128). 또한 개념은 통일 속에 자신의 구분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구분들이 단순한 물질에서는 자립성을 갖지 않으며, “더 고차의 자연에서는 구분들이 자립적으로 실존하며, 각 구분은 다른 것의 외부에”

있게 된다 (Hotho 129).

헤겔은 구분된 것들은 고립된 채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통일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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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으로서의 현존만” 가지며 내적 법칙에 의해 결합된다는 사실을 통해 그러한 통일의 필연성을 설명한다. 헤겔은 이와 같이 구분들, 지절들 속에는 “개념의 통일성이 깃들어 있는데” 이러한 “통일성”이 “지절들의 실체이자 담지자이고 영혼이며 내재적인 것”임을 강조하며, 이것이 바로 이념으로서의 “생명체에 대한 규정”라고 한다 (Hotho 130).

“이념의 이러한 통일성”은 외적으로 현존하지 않고, “내면적인 것”이 된다 (Hotho 130). 이러한 통일성, 내면적인 것이 ‘생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생의 이념”은 “부분들이 상호 분리되어 있는 것이자 지속하는 것으로 보일 뿐인 이 상호분리의 부정적인 통일, 관념성(Idealität)”이며, 이러한 관념성을 보여주는 것이 생명체가 된다. 이 관념성은 생명체의 “과정”, “지속적인 생성”을 가리키기도 하며,

“이념적인 것”으로서 (구분들에 대한) “절대적인 부정성”, “주관적 통일성”으로 칭해진다. 생명체는 이처럼 이념이라는 관념성을 지니면서, 이 관념성을 “육체성, 현존재”로 나타내게 된다 (Hotho 131).26)

헤겔이 이와 연관하여 강조하는 바는, 이러한 “생명성의 [객관적] 관념론”이

“우리에 대한 것(für uns)이며, 우리에 대해서 현상”하는데, 우리는 이 관념론을 고찰하고 “그것의 합목적성, 즉 규정된 개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Hotho 133). 헤겔은 객관적 관념론의 근거가 되는 것인, “생명체를 현존하게 하는, 생명 체가 현현하도록 만드는 어떤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것은 다름 아닌 ‘관념성’, ‘이념’을 말하는데, 이것은 내적인 합목적성을 갖는 것이지만 오직 “형태의 현상”과 관계되기 때문에 현상하는 형태를 “직관하는 자, 감각적으로 고찰하는 자”인 “우리”에게만 고찰이 가능함을 강조한다 (Hotho 134).

또한 헤겔은 생명체의 이념적인 것이 구분들과 다양한 형태들을 통해서 현상할 때 이 형태들은 “어떤 내적인 연관”, 즉 “통일성”을 이루는데, 이러한 것 들은 “내적인 필연성”으로 “그 자체 현상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즉, 서로

26) 헤겔은 이념적인 것, 관념성이 육체성 현존재를 통해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하고, 이를 “일종의 실천적인 관념론, 합목적적인 행위”의 작용이라고 규정한다 (Hotho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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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되어 보이는 부분들 간의 내적인 연관은 “관념성”에 의해서 통일성으로 존속 하며 (Hotho 135), 그러한 연관은 “본질적이고 필연적이며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 으로서” “우리에게 현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Hotho 136).27) 이제 관건은 우리에 대해 현상하는, 생명체가 가진 구분된 지절들과 이를 합일시키는 “형성의 통일성”을 어떻게 파악될 수 있는가 이다.

헤겔은 먼저, 자연적 생명체의 다양한 현상들을 자세히 ‘관찰’하는 경우를 든다. 하지만 이러한 관찰의 대상은 ‘보편적인 표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의 개별적인 제한된 표상일 뿐”이다 (Hotho 138). 그러므로 특정 개체에 대한 관찰 에서 얻어지는 것은 생물체의 제한된 성질일 뿐, “내적 연관”인 “개념 전체, 영혼 전체는 아직 우리 앞에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Hotho 138). 헤겔은 이러한 전체는 자연적인 것에는 인식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것에서는 영혼 [개념] 그 자체가 아직 대자적으로(für sich)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헤겔은 그러한 영혼이 “우리에게 대한(für uns) 것”이어야 하는데 이는 “오직 개념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직관과 사유” 두 가지라고 한다 (Hotho 139).

‘사유’에 의한 방식은 논리학과 자연철학에서 다뤄진다면, ‘직관’에 의한 방식은 예술철학에서 핵심적이 된다. 직관은 감각적인 것에 대한 관찰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헤겔은 감각, 감관 혹은 의미를 뜻하는 ‘Sinn’이라는 용어 자체가 “감각적인 파악의 직접적인 기관”이자 동시에 “의미”, “내적인 것, 사상, 사태의 보편적인 것”을 이중적으로 뜻한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전자는 “직접 적인 것으로서의 사태”, 후자는 “사태에 대한 사유”가 됨으로 감각에 의한 직관은 감성과 지성의 통일에 의한 인식작용임으로 지성에 제한되는 사유의 한계를 넘어 선다는 특성이 있다 (Hotho 139).

이와 더불어 헤겔은 ‘어떤 것’을 직관할 때 생명체의 ‘영혼’, ‘개념’, ‘이념’이 파악될 수 있는지를 논증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연 혹은 자연미가 아니라 예술 미에서 그러한 ‘내적인 것’, 즉 ‘개념’에 대한 직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헤겔은 27) “생명성의 관념론은 우리에 대한 것이며, 우리에 대해서 현상한다” (Hotho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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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생명체에 대해 “감각으로 풍부한(sinnvoll)” 혹은 “의미심장한” 관찰을 할 때는 “개념을 예감하면서 직관”하는데, 이 때 개념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예감 으로 의식된다”고 한다 (Hotho 139).28)

헤겔은 우리가 자연적인 형상물을 직관하며 마치 그것이 “개념의 필연성”인 것처럼 느낄 때 “자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경우도 언급 한다. 헤겔은 이러한 것은 자연적인 것을 “예술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라고 하며, 이때도 직관은 “예감 이상” 나아가지 못함을 명시한다. 이러한 ‘예감’에서는 “부분 들의 본성 자체”이자 “생명성을 구성하는 것”인 자연적 형상물의 ‘내적인 연관’이 단지 “비규정적인 방식으로” 된 내적 통일성으로 나타날 뿐, 규정적으로 사유되면서 인식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Hotho 140).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각 지절들이 영혼이 깃들어진 연관을 가지며 형식과 질료가 상호 내재하는 것을 “미 일반”이 라고 할 때, “영혼이 생명성으로서, 지절들의 통일로서 현상한다”는 규정에 따라 그러한 것으로 보이는 “자연적인 것을 아름답다”고 부르기도 하는데, 헤겔은 이러한 미는 “비규정적”이며, 제한적이며, ‘내적 합목적성’에 대한 “예감”만 하게 한다고 보며, 자연미의 인식론적 한계를 언급한다 (Hotho 141).29)

이러한 서술을 통해 헤겔은 이념으로서의 생명체의 구분들, 지절들을 통일 하는 “어떤 내적인 합목적성”, “개념에 합당한 연관”은 “예술미”에서만 고찰이 가능함을 강조한다 (Hotho 141f). 헤겔은 그러한 ‘개념’ 및 ‘내적인 합목적성’은

“자신과 마주하여 대자적이고”, 따라서 “타자에 대해서도 자신을 표명하는 개념”이 될 때 오롯이 그 전체가 인식될 수 있다고 보며, 그러한 표명은 “의식”으로서의

“대자적인 자아”에 의한 것, 즉 “예술미”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Hotho 142f).

28) 또한 이러한 관찰의 대상은 보편적인 표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의 개별적인 제 한된 표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특정 개체에 대한 관찰에서 얻어지는 것은 생물체의 제한된 성질일 뿐, “내적 연관”인 “개념 전체, 영혼 전체는 아직 우리 앞에 나타나 있 지” 않다는 것이다 (Hotho 138).

29) G. W. F. Hegel, Vorlesung über Ästhetik. Berlin 1820/21, 서정혁 옮김, 미학 강의

(베를린, 1820/29)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p. 85-89 비교. 헤겔이 규정한 자연미의 특성에 관한 자세한 분석은 윤병태, 「헤겔의 자연미의 개념」, pp. 175-206 참조.

(21)

예술미는 이념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념상(das Ideal)”

으로 규정된다. 이념상은 이념의 “현존재(Dasein)”이다.30) 헤겔은 개념 혹은 영혼이 추상적으로만 현상하는 자연 자체에 대자적으로 의식되지 못하는 자연미에서와는 달리, 예술미, 즉 이념상에서는 “의식된 영혼이 비로소 구체적이고 대자적이며, 자신의 존재와 표명의 통일”을 이룬 채 현상한다고 본다 (Hotho 143). 더불어 예술은 자연에서 비현실적이며 추상적으로 있는 통일성이 “어떻게 생명체의 본성을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Hotho 153). 헤겔은 이러한 예술미의 특성을

“주관성”, 즉 “개별성” 및 “생명성”의 계기에서 규정하면서 (Hotho 154) 생명체에 내재된 합목적성과 이에 기초한 통일성이 예술에서 인식될 수 있음을 서술한다.

먼저, 개별성은 보편적이고 즉자적인 이념을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헤겔은 미의 이념이 참다운 이념이 되려면 “현실성”을 띠어야 한다고 본다. 즉, 헤겔은 “참된 것은 이를 알고 있는 개별자에게서 참된 것으로 있으며”, “인간에 의해 현실화”된다는 측면에서 참된 이념으로서의 미도 현실 속의

“개별성”으로 나타나야 된다고 보는 것이다 (Hotho 154).31) 또한 헤겔이 예술미 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대자존재”, 즉 “주관성”이다. 이 대자존재로서의 주관성은 이분에 대한 “부정적인 통일 속에” 있으며, 동시에 “양자의 부정적인 통일”이 된다.

이 통일은 모든 정립된 차이가 지양된 상태이며, “자신에 대해 있는 [대자적인]

무한한 통일”로서 생명체의 “영혼”으로 간주된다. 헤겔은 이러한 “영혼이 자연적인 것 속에 어떻게 현전해 있는가”를 고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보는데 (Hotho 154), 예술에서 그러한 영혼은 “주관성”으로 나타난다.

주관성에 대한 헤겔의 서술은 예술미에서 이념이 어떻게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현존재로 현현하는지를 보여준다. 헤겔은 주관성을 “자기 자신과의 부정적인 통일 30) 헤겔은 “형태화된 이념이 이념상이다”고 하며, 이념상의 두 측면을 이념과 형태로 나 누어 규정하기도 한다 (G. W. F. Hegel, Philosophie der Kunst oder Ästhetik. Nach Hegel. Im Sommer 1826. Mitschrift Friedrich Carl Hermann Victor von Kehler, hrsg. von A. Gethmann-Siefert und B. Collenberg-Plotnikov [München: W. Fink 2005], p. 26).

31) 이에 대해서는 윤병태, 「헤겔 사유에서 미의 이념과 현존의 관계」, pp. 39-58 참조.

(22)

이며 일자”라고 보며, 더 나아가 “개별성”이라고 규정한다 (Hotho 154f). 왜냐하면 주체는 자신을 분리들에 대한 “부정적인 통일로 정립하기 때문에 단순한 직접자, 개별자가” 된다는 것이다. 헤겔은 개별성이 그 본질상 “배타적이며”, 타자에 대해 부정적인 직접성으로 인해 주관성으로서의 이념은 “현존재 속으로, 외적인 것 및 타자와의 무한히 다양한 연관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고 서술한다 (Hotho 155).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정신적인 것”도 “주관적”이며, “개별성의 양상”을 띠며 예술 에서 다뤄진다.

이처럼 주관성 및 개별성이 자연미와 다른 예술미의 특성이 되는데,32)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술미는 이러한 개별성에 기초한 유기적 생명체의 대자적이며 스스 로를 보존하는 “내적인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내적 과정은 또한 “자기 자신과의 부정적인 관계이며, 외부의 것을 자신에게 동화시키고 내면적인 어떤 것으로 변화시키는 부단한 과정”이기도 하다 (Hotho 155). 헤겔은 이러한 과정은 식물과 동물에게서도 볼 수 있지만, 동물의 유기조직은 “생명성으로, 개별적인 것 으로 현상하지 않는다”는 (Hotho 156) 결함이 있다고 본다. 이와 달리, 인간은 모든 유기조직 전체가 생동적인 것이어서 “어느 부분에서나 감지하는 하나의 것임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성은 더 고차적”이며, “인간의 몸이 현 상할 때 이미 생명성으로 나타나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헤겔은 개별성의 첫 번째 측면으로, 이처럼 인간의 육체에는

32) 예술미로서의 이념상은 “이념이 개별성, 현실성, 주관성과 동시에 더불어 있는” 것이다 (G. W. F. Hegel, Philosophie der Kunst. Vorlesung von 1826, hrsg. von A.

Gethmann-Siefert, Jeong-Im Kwon und Karsten Berr [Frankfurt a. M.: Suhrkamp 2004], p. 65). 예술미와 이념상에 관한 자세한 분석은 Jeong-Im Kwon, “Das moderne Ideal. Die Bedeutung der Hegelschen Ästhetik in Gegenwart”, in:

Kulturpolitik und Kunstgeschichte. Perspektiven der Hegelschen Ästhetik (Sonderheft des Jahrgangs 2005 der Zeitschrift für Ästhetik und Allgemeine Kunstwissenschaft), hrsg. von A. Gethmann-Siefert und B. Collenberg-Plotnikov (Hamburg: Felix Meiner 2005), pp. 3-22와 권정임, 「헤겔의 ‘예술미’ 개념에 기초한 근대 부조화적 미(추)의 성립원리에 관하여」, 미학예술학연구 27집 (2008. 06), pp.

5-38 참조.

(23)

“영혼, 곧 정신이 들어” 있다는 것, 감각도 “개별성의 [지]점”으로 현상한다는 것을 말한다 (Hotho 157). 개별성의 두 번째 측면은, 외부 세계와 연루되어 있으며

“외적인 것 자체를 수단으로서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개별성이 외적인 것과 맺는 관계는 “다양한 방식”을 띠며, “부자유한 것으로 보이는 측면을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Hotho 158). 헤겔은 이러한 현상은 “산문적 인간 세계”에서도 보이며, “정신적인 세계”에도 해당된다고 본다 (Hotho 158f). 이것은 다름 아니라 “생명성이 자신 ― 일자 ― 으로 있으면서 타자에 의존한다는 모순 속에 있으며, 이 모순을 지양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임을 의미한다 (Hotho 159). 개별성의 세 번째 측면은 생명체가 이처럼 외적인 것에의 의존성 속에서 제한된 것으로 현상하는 것과 더불어, “자기 자신 속에서 개별적으로 특수화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체가 “자기 자신 속에서 어떤 확고한 한정성을 가지며 하나의 종 (Art)”, 하나의 “특정한 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인간은 “가장 생동하는 유기조직”을 가진 종이며, “일반적인 생명성의 상, 즉 진화된 유기조직의 상이 현전하는 정신”의 담지자로서 예술적 직관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유기조직은 일정한 성장 후 정지되기도 하고, 유전적이기도 하지만, 이와 달리 “생명성”, 특히

“정신적 생명성”은 그렇지 않다 (Hotho 159). 헤겔은 이러한 ‘정신적 생명성’의 현상을 “외적으로”, “그것의 자유 속에서 표현하는 것”, “감각적인 현상을 개념에 부합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일”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자연의 현상에 감춰져 있는 “진리, 개념”을 밝혀내는 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것이 곧 “예술의 과제”임을 천명한다 (Hotho 160).33)

33) 예술이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는지는 예술미에 대한 서술들에서 설명된다. 기 본적으로 헤겔은 “예술은 표면의 모든 지점들에서 현상하는 것을, 영혼의 장소로서 정신을 현상하게 하는 눈으로 고양시켜야 한다”고 본다 (Hotho 160). 이러한 예술에서 형성되는 예술미로서의 이념상도 구체적인 형태와 소재를 통해 “현실성”을 띠어야 하기 때문에 이념상의 현존재는 첫째, “상태”로서의 “외부 세계”, 둘째, “특수한 상황”, 셋째,

“상황에 대응 하는 반작용”, 넷째, 시공간에 의한 “외적인 규정성”의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는데 (Hotho 164), 이에 대한 구체적 논의들이 예술철학의 내용을 이룬다. 본 연구에서는 지면의 한정상, 이념상이나 예술 속에 구현된 이념상의 다양한 사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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