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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계지도 - ‘독도’ 표기의 심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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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계지도

- ‘독도’ 표기의 심각성

머리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지도가 당연히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그리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두 번이나 일본에게 독도를 빼앗긴 적이 있다. 실제 1945년 광 복 이후 세계지도만 보아도 독도는 남한의 영토로 표기된 시기도 있었고, 일본의 영토로 표기되었던 적도 있었다. 막강한 국력을 앞세운 일본으로부터 우리 한민족은 약 80년에 걸친 두 차례의 독도 침탈기를 겪으면서도 굳건히 독도를 지켜냈다.

최근에 발행된 세계지도(Atlas)에서는 독도를 대부분 “남한(S. Korea)이 점유한 땅 으로 일본에 의해 이의가 제기되었다”고 기록하면서, 독도를 Dok do(Takeshima, Liancourt Rocks)로 병기하고, 일본전도에 포함시키고 있다. ‘한국령 독도’를 침탈하려 는 일본에게 지극히 편향된 세계지도가 전 세계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사실에 우리는 아 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지도를 덮는 동안, 그들은 이미 제3차 독도 침략을 시작 했다. 그 생생한 증언을 지도를 통해 밝혀 본다.

제1차 독도 침탈기의 일본지도(1905~1945년)

배경 1890년대에 들어서면서 러시아가 태평양 진출의 발판으로 동해 진출을 꾀하자, 이를 견제해야 하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독도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가 매우 중요했 다. 특히 러일 전쟁(1904~1906)을 겪으면서 일본에게 독도의 위치는 절대적 요충지가 되 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이 ‘독도 강탈’을 구체화한 사건이 1905년, 소위 ‘시마네현 고시’

이다. 독도를 빼앗기 위해 일본은 1900년을 전후하여 ‘독도는 임자가 없는 섬’이라는 말을 지어냈고, 대한제국이 알지 못하도록 일개 지방정부인 시마네현(島根縣) 명의로 날조한 ‘시 지도가 증명하는 우리 땅 독도 4

양재룡 | 호야지리박물관장([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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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게 침탈당했지만, 해방과 함께 다시 한국의 영토로 환원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본의 2차 대전 패망으로 독도 반환이 이루어졌지만, 이 시기 에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알고 있던 일본인들은 극히 적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실례로

“1905년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일본의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했지만 정작 1940년 시마네현 지도에는 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다(지도 1). 일본육군성이 제작한 육지측량부발 행지도구역일람도(지도 2)에는 독도를 조선의 울릉도 영역 속에 그리고 있었다.

1905년부터 일본은 ‘독도 강탈’을 기정사실화하고, 그들이 송도(松島, 마츠시마, 독도 의 당시 일본 지명)라고 부르던 조선령 송도를 없애는 대신, 죽도(竹島, 다케시마)라는 새 로운 지명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 지도를 보면 1905년 이후에도 정작 일본의 주요 기관이나 시마네현 사람들조차 독도를 당연히 한국의 영토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왜냐하면 ‘시마네현 고시’ 자체가 극히 소수의 공모자들에 의해 진행되었기 때 문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일본인들 대부분은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일본 영토에 편입 시켰다’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했거나, 오히려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이 ‘시마네현 고시’의 부당성을 지도 속에 나타냈다는 해석까지도 가능하다.1)

1) 지금도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일본의 지식인들은 많이 있음.

〈지도 1〉 시마네현 지도(1940) <지도 2> 육지측량부발행지도구역일람도와 조선의 독도 부근(1937)

자료: 시마네현 지도, 시마네현, 1940, 50×40cm,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자료: 육지측량부발행지도구역일람도, 일본 육군성, 1937, 일본고지도선 집, 2014, 우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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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일본의 첫 번째 독도 침탈(1905~1945)은 조선의 영토인 독도를 ‘임자 없는 섬’으로 규정하여, 1905년 날조된 시마네현 고시에 ‘죽도(竹島, 다케시마)라 칭하고, 은기도사(隱 岐島司)가 이 섬을 관할한다’라고 조선의 영토 독도를 일본의 다케시마로 귀속시킨 사건 이었다(양재룡 2019). 날조된 이 문서로 인해 독도는 시마네현 고시(1905.2.22.), 을사늑 약(1905.11.19.), 한일합방(1910.7.27.)을 거치면서 무려 41년 동안 일본의 영토처럼 유린 당했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독도는 원래대로 한국의 영토로 반환되었고, 약 50년에 걸 친 일본의 제1차 독도 침탈 사건은 실패로 끝났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일본인들이 오 랫동안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해 왔고, 국제적으로는 독도가 남한의 영토로 반환되 어야 한다는 연합국들의 공통된 가치관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군국주의적 부활을 꿈꾸는 일부 우익세력들이 지금까지 도 주장하고 있는 ‘다케시마 영유권’의 단초가 되었다. 또 1905년 시마네현 고시에서 처 음 명시된 ‘다케시마(竹島)’의 지명은 이후 일본이 발행하는 모든 지도에 일본이 독자적으 로 표기하는 공식 지명이 되었다.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이전까지 조선의 독도를 송도(松島, 마츠시마)로, 울릉 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라고 바꿔서 잘못 표기해 왔다. 일본은 책으로 인쇄된 조선의 목판지도가 해안으로부터 멀리 위치한 독도를 안으로 접어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를 바뀌 어 표현한 조선의 ‘접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도가 조선의 영토이기 때문 에 일본인들은 조선의 지도를 보고, 그대로 옮겨 그렸기 때문에 독도와 울릉도의 위치를 바꾸어 그린 것이다. 결국 일본은 조선의 목판지도에 그려진 독도의 위치를 잘못 읽고, 여기에 임의적 해석을 덧붙여 오히려 독도를 ‘임자 없는 섬’으로 날조했다. 이에 독도를

‘임자 없는 섬’으로 규정한 일본의 억지 주장을 일축할 수 있는 우리의 논리적 대응이 선 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들 자신이 고지도, 특히 조선의 목판지도를 바르게 해석하여 지도 속에 그려진 독도의 위치를 논리적으로 밝히는 일이 시급하다(양재룡 2019).

해방 직후의 세계지도 - 독도는 남한의 영토 (1945~1952년)

해방 후(1945) 우리나라 영토를 획정한 최초의 지도는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영토를 규정한 SCAPIN 677호에 첨부된 지도이다(지 도 3). 이 지도는 일본과 남한의 행정관할 구역을 구분 한 지도로 울릉도와 독도(TAKE로 표기)는 남한에 포 지도가 증명하는 우리 땅 독도 4

〈지도 3〉 SCAPIN 677호에 첨부된 지도(1946)

자료: SCAP ADmINISTRATIVE AREA JAPAN and SOUTH KOREA(복제 본), 흑백, 연합국 최고사령부, 1946, 68.5×63cm, 독도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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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53)의 혼란을 틈타 다시금 독도를 침탈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을 간파한 남한 정 부는 1951년 2월, 이를 봉쇄하기 위해 ‘이승만 라인’(일명 평화선)으로 독도를 한국의 영 토로 확실히 선포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의 영토를 획정하였다(지도 5).

〈지도 4〉 맥아더 라인과 그 해설도

자료: 양재룡 2018, 15.

〈지도 5〉 이승만 라인(평화선) 지도

자료: 국가기록원.

그러나 이와 같이 분명하게 영토를 획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독도의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일본은 이 섬의 반환을 모면하고 오히려 독도를 다시 빼앗으려는 도발을 은밀하게 지속하였다. 이는 제2차 독도 침탈로 이어졌다.

제2차 독도 침탈기의 세계지도(1953~1968년)

배경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북한과 중국이 공산화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공산 화를 막아내는 일이 태평양 방어 전략상 매우 시급했다. 때문에 미국은 일본의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설상가상으로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일본 의 요구에 호응하게 되었다. 반면 남한은 1951년 독도를 지키기 위한 해양주권선, ‘이승만 라인(평화선)’을 선포했지만,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외교적 활동은 거의 불능 상태였다.

이를 기회로 일본은 또다시 독도 침탈을 노골적으로 공식화하고자 했다. 결정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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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한 사건이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1951.9.8.)이다. 이 조약은 미국과 영국의 주도로 2차 세계대전의 승전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강화 조약이다. 일본은 이 조약의 초 안 작성 과정에서 미국을 은밀히 설득하여 원래 한국에 반환하기로 SCAPIN 677호에 명 시되었던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에서 독도를 뺀 나머지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만 을 명시하여 강화 조약을 체결한다.

경과 결국 일본은 전후 일본이 반환할 식민지에서 독도(리앙끄로 섬)을 제외시켜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존속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포함시켰다. 일 본의 제2차 독도 침탈 사건이다. 일본은 이 조약을 근거로 종래까지 유지되어 오던 ‘평화 선의 영토적 개념이 상실되었다’고 주장하고, 이로 말미암아 실효적으로는 독도가 남한 의 영토로 간주되면서도, 세계지도에는 ‘한국령 독도’ 대신 ‘일본령 다케시마’로 표기되는 제2차 독도 침탈기가 약 20년간 지속되었다.

결과 이렇게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과거 스카핀 지도(1946년) - 맥아더 라인(1949년) - 이승만 라인(평화선, 1951년)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해양주권선이 완전히 사라진 세계지도가 등장하게 되었다. 결국 한국의 영토였던 독도는 1950~1960년대 말까 지 약 20년 동안 일본의 영토, 다케시마(Dake Shima)로 표기되고, 울릉도와 독도(다케시 마) 사이에는 한국과 일본의 국경선이 그려졌다. 독도를 완벽하게 일본의 영토로 그리는 세계지도가 전 세계에 통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지도들이 오로지 일본의 영토에 ‘다 케시마’를 단독으로 표기했다. 한국 영토 독도는 일본의 섬이 되어 지도에서 사라지고, 대 신 일본 영토 ‘다케시마’를 전 세계 지도에 표기시켰던 것이다. 이때 그려진 대표적 지도로 는 링컨도서관의 월드 아틀라스(지도 6), 타임즈 아틀라스(지도 7), 브리태니커 아틀라스 (Encyclopaedia Britannica 1969, 59-60) 등이다.

지도가 증명하는 우리 땅 독도 4

자료: John Bartholomew 1958,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지도 7〉 The Times ATLAS 속의 독도(1958)

〈지도 6〉 World Atlas 속의 독도(1950)

자료: Lincoln Library 1950, 30-31,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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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결정적으로 1965년 한·일 어업 협정을 체결하면서 독도를 남한의 12해리 전관수역 에 포함시킴으로써 일본의 제2차 독도 침탈은 국제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자연스 럽게 1970년부터 세계지도는 한국의 ’독도의 영유권’을 완벽하게 그리기 시작하여 향후 약 35년 동안 온전히 ‘한국령 독도’를 지킬 수 있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1950~1960년대 말까지 약 20년간 세계지도는 독도를 다케시마 (Dake Shima, Liancourt Rocks)로 표기했으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지도에는

‘다케시마’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신 독도를(Dok do, Liancourt Rocks, South Korea) 남한의 영토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휴전 협정으로 남한 사회가 안정을 되찾았고, 국제사 회에서 스카핀 지도–맥아더 라인–이승만 라인(평화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선언들을 근거로 독도가 남한 영토라는 정통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1965년 박정희 정부는 한일 공동규제수역을 설정하면서 독도를 12해리 남한의 전 관수역으로 규정하는 한일 협정을 체결했다(지도 8). 독도를 남한의 영토로 인정하는 문 서에 일본 정부가 정식으로 서명함으로써 결정적인 공신력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 서 1970년 National Geographic Atlas(지도 9)를 시작으로 타임즈 아틀라스2), 브리태니 커 아틀라스3) 등 세계 유명 지도 제작사들이 앞다투어 ‘한국령 독도’를 그들의 지도에 표 기하기 시작했다. 독도를 남한의 영토로 표기한 이러한 세계지도들은 일본의 제3차 독도

2) John Bartholomew(1958)의 The Times ATLAS OF THE WORLD 5권 중 제1권,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3) William Benton, Encyclopaedia Britannica 1978, 82-83,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지도 8〉 공동규제수역도(1968) 〈지도 9〉 National Geographic Atlas(1970)

자료: 추성구, 추정면 1984,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자료: National Geographic Society 1970, 132-133, 호야지리박 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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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가 증명하는 우리 땅 독도 4

침탈이 시작된 2005년경까지 약 35년간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어 왔다.

제3차 독도 침탈기의 세계지도(2005년~현재)

배경 약 80년에 걸친 일본의 1, 2차 독도침탈은 실패로 돌아갔다. 제1차 독도 침탈은 1905년 날조된 ‘시마네현 고시’라는 문서로 독도를 강탈한 사건이었고, 제2차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약 20년간 세계지도에서 독도를 일본의 영토 ‘다케시마’로 단독 표기시킨 사건이었다.

막강한 국력을 앞세운 일본의 독도 침탈이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독도가 원래 한 국의 영토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대내적으로는 일본인들 자신이 오랫동안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해왔고, 대외적으로는 한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식 때문에 일본의 독도 침략행위를 막을 수 있었다. 이에 일본의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한 아베정권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100년을 기해 2005년부터 전혀 새로운 제3차 독 도 침탈을 노골적으로 감행하기 시작했다.

그 구체적 전략은 첫째, 대내적으로는 날조된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을 교과서에 실어 자라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인식하게 만들어 일본 내부의 ‘한국 령 독도’에 대한 잔존된 인식을 지우는 교과서 왜곡이다. 둘째, 대외적으로는 ‘한국령 독 도’에 ‘다케시마’를 병기해 독도의 분쟁지역화를 명시토록 하는 세계지도를 확산시킴으로 써 이를 토대로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경과 일본의 제3차 독도 침탈은 1905년부터 대내적으로 교과서 왜곡을 통해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을 공식화했다(이 글에서는 생략), 대외적으로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신 한 일어업협정(1998)을 체결했다. 또한 2005년부터 세계지도에 독도(다케시마) 병기를 추 진하면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 ‘남한이 점유하고 있지만 일본에 의해 이의가 제 기된 미해결지역’이라는 내용을 기록한 지도를 확산시키는 단계까지 독도 침탈이 진행되 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1, 2차 독도 침탈에 실패한 일본이 최종적으로는 국제사법재판 소에 제소하여 대·내외적으로 독도 침탈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으려는 시나리오가 계속 진 행될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이다.

제3차 독도 침탈의 명분 만들기와 신 한일어업협정(1998)의 체결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은 과거 군국주의 우익세력이 중심이 되었던 18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약 130년 동안 지속돼왔다. 그러나 1965년 한일어업협정의 체결로, 독도는 12해리 남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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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수역으로 설정됨으로써 ‘한국령 독도’의 지위를 확실히 하고 있었다(지도 10).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이 채택되고, 1994년 말부터 200해리 경제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이 공인됐다. 이에 일본은 1996년 200해리 EEZ제도를 선포하고 구 어업협정을 일방 적으로 종료시키면서 1998년에 신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한 독도 문제는 양측이 서로 영유권 소속을 명시하지 않았 다. 이 협정에서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는 이상 한국의 실효적 지배와 1965년 한일어업협정에서 합의되었던 남한의 독도 전관수역을 일본이 인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한국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협정에서 유보된 ‘독도’

가 한 · 일 중간수역에 위치한 일본의 잠정 수역에 속하고 있다고 간주하여 <참고도>와 같은 EEZ를 주장함으로써 기존 한국의 EEZ와 상충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국령 독도’

의 재 침탈을 노려 온 일본은 이 협정을 토대로 독도를 국제적으로 분쟁지역화하여 국제 사법재판소에 독도 문제를 제소하려는 속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1905년 제1차 독도 침탈기에 독도를 ‘임자 없는 섬’으로 날조했던 일본은, 이번에도 역시 신 한일어업협 정을 날조해 독도를 ‘잠정적으로 한국과 공동 관리하는 중간수역에 위치한 일본의 관리 수역에 위치한 일본의 섬’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독도가 분쟁지역으로 표기된 오늘날의 세계지도(2005년~현재)

심각한 문제는 이 협정에서 제외된 독도를 한일 간 영토분쟁지역처럼 만들고자 하는 일 본의 야욕이 반영된 세계지도가 지금 현재 전 세계에 널리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005년 이후부터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세계지도가 지금도 전 세

자료: 국토지리정보원 2007, 5.

자료: 시사상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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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가 증명하는 우리 땅 독도 4

계에 널리 통용되고 있다. 앞 지도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2000년대 초까지 Dok do(Liancourt Rocks)로 표기되던 독도가 Dok do(Dake Shima, Liancourt Rocks)로 다 케시마 병기가 이루어지고 있다(지도 11). 아예 독도 표기가 없이 Liancourt Rocks 만 을 표기하고 있고(지도 12), 이전의 독도 주변에 표기되어 오던 South Korea가 사라지고

‘남한이 점유하고 있으나 일본에 의해 이의가 제기되었다’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기록하 여 이미 분쟁지역화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기존 한국전도에 그려지던 독도를 아 예 일본전도에 그린 지도가 나타나고(National Geographic 2009, 202-203) 독도 대 신 Dake를 표기하고, South Corea를 명시한 스페인 지도(Larousse Editorial 2009, 93)가 발견되고 있을 만큼 일본에 편향된 세계지도를 통해 이미 ‘한국령 독도’ 표기가 심 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필로그

지도는 해당 지역의 제작 당시 상황과 진실을 담고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지도에 그려진 사실을 진실로 믿게 된다. 일본은 2005년부터 교과서 왜곡과 함께 그들이 구상하 고 있는 ‘한국령 독도’를 ‘국제분쟁지역화’하려는 제3차 독도 침탈을 이미 시작했다. 최근 에 제작되고 있는 세계 유명 지도(Atlas)의 흐름은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세계 지도의 독도 표기는 일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우리는 지도를 보려고도, 지도 속 정보를 바르게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지도 12〉 The Times Universal Atlas of the World 속의 독도(2015)

자료: Times Books 2015, 151,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지도 11〉 National Geographic Atlas 속의 독도(2009)

자료: National Geographic 2009, 177,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4) 吉倉淸次郞, 실측일청한군용정도(實測日淸韓軍用精圖), 1895년, 105×77cm,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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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가도, 언론과 방송도, 전 국민도 환영했던 적이 있다. 독도의 다케시마 병기를 우리가 환영한 셈이다. 세계지도를 보지도, 제대로 읽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895년 일본이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국경선을 그린 실측 일청한군용정도4)가 발 표된 지 9년이 지났다. 이 지도는 일본이 다케시마 영유권을 주장하는 ‘시마네현 고시’

보다 10년 전에 일본에서 그려졌다. 그런데 왜 이 지도가 지금까지 박물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을까? 일본의 ‘시마네현 고시’와 ‘다케시마 영유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 는 이 지도를 우리는 알아보지도 못했고,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실증지도는 교 과서에도 싣고, 세계에도 알려서, 일본에 편향되게 그려지는 오늘날 세계지도의 흐름을 객관적 증거를 통해 막아야 한다. 최근 발행되는 세계지도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지도 를 덮으면 일본의 제3차 독도 침탈을 막기 어렵다. 우리는 ‘한국의 독도’가 전 세계지도 에 온전히 표기되도록 그 흐름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답답한 마음 가득한 채 4회에 걸친 ‘국토’ 연재를 마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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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식. 2010. 낱낱이 파헤친 독도사. 인천: 보학당.

양재룡. 2010. 독도가 한국 영토일 수밖에 없는 지도 속 독도. 독도연구저널 9호: 144-150. 서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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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 2013. [독도의 통곡] (8) 일본 근대지도의 고백 ‘독도는 일본의 영토기 아니다. 중부일보, 5월 14일.

______. 2013. [독도의 통곡] (9) 한국령 독도의 침탈을 고발한 일청한군용정도. 중부일보, 5월 16일.

______. 2010. 우리 땅 독도 동해바다 한국해(2015, 5쇄). 영월: 호야지리박물관.

______. 2015. 한국령 독도의 정체성과 고지도의 실증적 해석. 영월: 영월박물관협회.

______. 2016. 지도가 실증하는 한국령 독도 「독도 도록」. 영월: 호야지리박물관.

______. 2018. 지도로 읽는 한국 영토 독도. 영월: 호야지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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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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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본의 탈동조화 촉진 요인 으로 일본 철강재의 고부가가치화, 일본 철강산업의 에너지효율기술 개발, 일본 철강산업의 전 략적 M&amp;A, 일본 철강재의

한편, 한국 여야 국회의원들이 한국과 일본간 분쟁 중인 독도 (다케시마)를 방문한 것에 대해 Yoshihide Suga 일본의 관방장관은 한국 의원 들의 독도 방문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따라서, 몬테루카스트는 CYP2C8에 의해 주로 대사되는 약물(예, paclitaxel, rosiglitazone, repaglinide)의 대사를 저해시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여성의 대부분은

그래도 변화 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결국 군주는 다치고 국가는 패망에 이른다.. 3월에

교착어(膠着語)인 한국어는 어미변화가 무척 심하나 고립어인

있는데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 독도를 조선 영토로 표기. 일본 시마네현, 지도 를 작성하면서 독도를 시마네현 지도에

이시다 사키(2012)는 다문화 사회의 언어 정책 연구(한국과 일본의 언어 정책 비교를 중 심으로)에서 최근 본격적으로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