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Winter
식민지배의 상징 - 신사
신사(神社)는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 사원을 말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천황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저항하는 식민지 백성들을 세뇌, 순화시키기 위해 강제로 신사참배와 신도 신앙을 강요하였다. 특히 1930년대 일제가 조선을 대륙침 략의 병참기지로 삼기 위해 기만적인 내선 일체·황 민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신사참배는 강력하게 추진 되었다.
전부 1,141개소였던 신사는 광복이 되자 조선민중 의 분노로 대부분 불타거나 파괴되었지만 잔재들 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주안신사의 흔적도 그 중 하나이다.
전시프리뷰
정식 행정지명은 아니지만 ‘배다리’는 오랜 인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친숙한 동네다. 인천역을 출발한 경인선 전철이 동인천역을 지나자마자 철교 위를 통과하게 되는데, 그 오른편에 자리 잡은 오늘날 금창동 지역을 세칭
‘배다리’라 불러왔다. 개항 이후 몰려온 일본인들의 요구로 제물포 해안에 개항장이 조성되면서 이곳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식민지시대에 들어 일본인들이 이 일대에 성냥공장·간장공장·고무공장을 건립하여 운영하면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터전을 잡고 살던 곳 역시 배다리 지역이었다.
배다리는 또한 인천 근대교육의 산실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산실이기도 하였다. 1895년 조원시 목사는 한국 최초의 자립예배당을 배다리에 세웠다. 이후 이곳은 미북감리회의 한국 서지방(인천·강화·남양·황해도 연안
등) 선교기지가 되었다. 1905년 우각리 42번지에 인천주재 여선교사 합숙소인 갬블홈(Gamble’s Home)을 건축하여 여성 사경회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우각리 41-3번지 갬블홈 위쪽에는 남자 선교사를 위한 합숙소도 지어졌다. 인천시 지정 유형문화재인 영화학교 본관동 건물과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 구교사 건물은 배다리에서 이루어진 근대교육의 생생한 역사를 체현하고 있다.
식민지시대 초기인 1915년 2월 14일자 『매일신보』에 「배다리의 시장풍경」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비록 당시를 보여주는 사진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인천의 제일 볼 만한’ 시장인 배다리 시장은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매우 곤란할 뿐 아니라… 각 촌의 어른, 아이들은 물론하고 행인이 연락부절’일 정도로 번성했으며, 수로와 육로를 통해 온갖 문물이 넘쳐나던 매우 크고 번창한 시장이었다. 해방과 분단, 전쟁의 격랑 속에서도 일상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인천 사람들은 끈질긴 생활력과 생명력으로 배다리 시장을 가득 채웠다.
배다리는 또한 인천 사람에게 지적 허기를 채워주는 소중한 지식의 저장창고였다.
배다리 철교에서 우각로 안쪽 배다리 일대에는 해방 후 하나둘씩 헌책방들이 들어서면서 인천의 대표적인 헌책방거리가 자리 잡았던 것이다. 한때는 이곳에 20여 곳의 헌책방이 즐비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고작 6곳 정도가 남아 있다.
배다리 주변의 경동·유동·도원동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 철공소와 대장간, 죽재상과 각종 공구상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전문상가가 형성되어 번창하기도 했지만, 도로의 확장과 함께 1990년대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자본의 팽창논리에 따라 인천의 도심권역이 확장되고 시청을 비롯한 도시 인프라가 신도심으로 이전하면서 쇠락하던 배다리가 다시 깨어난 건 인천시의 끝 모를 무모한 개발정책 때문이었다. 송도와 청라를 직선으로 연결하기 위해 설계된 배다리 관통도로공사 강행은 오히려 망각되어 사라져가던 배다리의 인문적
인문도시를 향한 우리들의 협동전시
「안녕하세요, 배다리」
특별전에 부쳐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이희환
1930년대 경인철도 주변 배다리 일대(사진의 철도 상단 지역)
해방 직후의 배다리 시장
02 전시프리뷰
인문도시를 향한 우리들의 협동전시
04 전시리뷰호야가 들려주는 옛날 옛적 민화 이야기
05 교육리뷰청소년을 위한 한국사 강의
06 조사연구 인천의 전통시장 08 청소년기획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 줘, 부평향교야!
10 인천, 도시탐사 금곡동 1 11 박물관 소식
12 소장유물 명대 철제 범종
Contents
가치를 인천 시민이 자각하도록 만들었다. 이에서 비롯된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 활동가, 그리고 시민사회는 배다리를 훼손하는 산업도로 건설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격렬한 반대운동을 전개했고, 배다리에서 울려 퍼진 ‘막가파식 개발주의’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는 인천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된 개발주의의 문제를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와 배다리의 전면철거를 수단으로 삼은 ‘동인천역주변재정비촉진지구’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제기해 온 배다리 지역 주민들과 문화 운동가들은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을 구성하여, 주민이 주체가 되고 전문가와 관이 협력하는 새로운 방식의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만들기 활동을 제안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그 결과 현재 배다리 지역은 인천지역 도시개발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줄 상징적인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경향 각지의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배다리 역사문화마을’의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다행히 배다리 관통도로사업이 백지화되고, 배다리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연이어 수렴되어 재정비촉진지구에서 제척될 수 있다는 희망이 전해지면서 배다리는 지금 새로운 변신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시기 배다리가 겪었고 지역 배다리가 겪고 있는 개발주의와의 갈등은 고스란히 우리의 역사, 인문도시를 향한 우리의 고민과 질문으로 현존하고 있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이 배다리에 하나둘 모여든 문화기관(스페이스빔, 사진공간 배다리, 마을사진관 ‘다행’, 한점갤러리, 달이네)과 지역 주민들이 협동하여 「안녕하세요, 배다리」 기획특별전을 여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양키시장과 배다리 헌책방, 여인숙 골목과 창영학교, 우각로와 배다리를 거치며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갈등과 협동의 역사가 거기 담길 것이기 때문이다.
※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서는 2013 기획특별전 「안녕하세요, 배다리」전을 12월 3일부터 2014년 2월 2일까지 개최합니다.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부지가 양분한 배다리마을의 모습 배다리보존운동의 일환으로 작성된 ‘배다리 역사문화지도’
송암미술관에서는 2013년 하반기 기획특별전으로 10월 15일부터 2014년 3월 2일까지 미술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호야가 들려주는 옛날 옛적 민화 이야기」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300여 점의 민화들 중 선별된 다양한 주제의 민화와 함께 민화가
그려진 도자기 등 30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는 민화 속에 표현된 동물, 물고기, 꽃과 새, 산수, 글자, 책과 물건 이야기 등 총 6부로 구성하였다. 민화에 그려진 다양한 소재들은 각각 그 속에 흥미로운 옛 이야기들, 상징과 함께 행복, 장수, 화목, 출세, 부귀 등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다.
관람객은 전시된 민화 작품을 관람하면서 민화에 숨겨진 다양한 의미들을 통해 옛 사람들의 소망과 상상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관람객이 쉽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는 점이다. 민화 특별전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호작도(虎鵲圖)>에 그려진 익살스러운 모습의 호랑이가 ‘호야’라는 이름의 스토리텔러가 되어 민화 속 다양한 고사와 관련된 상징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하였다. 이와 함께 전시에 사용된 각종 설명패널에는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를 최대한 지양하고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한글 용어들로 풀어 쉽게 설명하였다. 또한 연령별 체험활동지와 학부모용 해설지를 제공하여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질문하며 전시를 관람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미술관을 방문한 가족단위의 관람객은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유발하는 미션과 질문이 있는 체험활동지를 함께 완성해갈 수 있다. 이로써 단순히 눈으로만 관람하는 전시가 아닌 가족과 함께하는, 이야기가 함께하는 전시가 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많은 사람이 옛 그림을 어렵다고 느낀다. 선비가 그린 격조 높은 그림이나 솜씨 좋은 화원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이해하기 힘들고 거리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번에 전시된 민화는 어려운 원리를 담은 그림과 달리 이해하기 쉽고 친근한 그림이다. 이름 없는 화가들이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그린 그림이라서 오히려 더 재미있고 쉽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민화의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와 상징들을 만나보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우리의 옛 그림에 한걸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다소 낯선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송암미술관의 문턱을 낮춰 언제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친근한 공간으로 다가설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전시리뷰
송암미술관 이현아
<책거리> 총8폭 중 제2폭, 19세기, 종이에 채색, 각 폭 68.8X42.4cm
요즈음 한국사 교육과 관련된 뉴스가 자주 나온다. 사실 박물관을 잘 활용하면 역사공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역사공부는 흐름이 중요하지만 또한 기본적인 암기도 필수다. 그런데 유물을 직접 보면 한층 더 기억이 새로워지고 오래간다. 폭넓은 독서와 체험활동이 필요한 시기가 청소년기다.
고교는 대입에 매진할 때여서 독서할 여유가 없다. 청소년들이 자기들의 학습과 연계시켜 박물관을 자주 온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학생들과 대화해보면 청소년들에게 역사는 지루한 과목이라고 한다. 벼락치기용 암기과목으로 전락한 수십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난공불락이다. 일부 소수의 역사 마니아들을 제외하곤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엔 역사만화나 책을 즐겨 읽는다. 그러다 증학교에 올라가면 독서는 물 건너간다. 대부분 학생들은 시험공부와 성적 올리기에 급급하다. 역사는 국영수에 치여 사이드로 밀려나 대개 시험보기 전 벼락치기한다. 이것이 고교 졸업까지 지속된다. 그럼 앞으로도 한국사를 이렇게 공부해야 할까?
2017년부터 대입 필수로 되면 전국 학생들에게 한국사는 부담스런 과목이 될 것이다. 수능은 단기간에 준비가 되지 않는다. 한국사는 양이 방대하고 외울 것도 많다. 박물관이 입시준비 시키는
곳은 아니지만, 박물관 고유의 기능 이외에도 어찌하면 인천 지역의 청소년들의 고민을 덜어줄까 고민하였다.
그 결과 역사 관련 독서를 하게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물관의 특징을 살려 유물, 문화재, 인물, 사상 등 문화사 중심의 강의를 PPT로 진행한다. 유물 중심의 강의라고 단정하진 말라. 중학교 한국사 과정과 연계하여 한국사를 전공한 담당 학예사가 11월부터 매주 토요일 10시부터 두 시간 강의한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매주 퀴즈도 내고 조별 역사 게임도 하는 열려 있는 강의다. 효과적인 역사공부를 위해선 어려운 한자용어를 쉽게 설명해주는 고수가 필요하다. 앞으로 5개월 동안 진행되는 이 강좌에 많은 참여를 기대하며, 12월에 겨울방학기간 강좌를 추가 모집하니 관심 가져주기 바란다.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 강의
한국사 한방에 끝내기!
한국이민사박물관 연창호 교육리뷰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은 2012년부터 근·현대 인천생활문화라는 주제로 학술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그 첫 번째로 ‘인천 근현대 도시유적’
보고서가 간행되었다. 이 보고서는 개항기부터 1960년대까지 인천 지역의 주요 도시유적의 현황과 변화양상을 정리한 것으로 총 531개소의 유적이 수록되어 있다.
2013년 학술조사는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도시생 활사에 초점을 맞추어 일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는 전통시장을 주제로 하여 인천의 대표적인 상 권이었던 동구의 중앙시장 일대를 대상으로 하였다.
중앙시장 일대는 한복, 침구, 그릇 등을 판매하는 중앙시장과 군용품, 수입물품을 판매하는 송현자 유시장, 일명 양키시장이 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수요 감소와 백화점, 대형할인점의 영향으로 폐업하는 상점이 늘어나고 있으며, 동인천역 주변
지역과 함께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어 2018년에 완료를 목표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조사는 문헌조사와 현장조사가 함께 이루어졌다.
기초 자료조사로 중앙시장이 건설되기 이전의 모습 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지적원도와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소장의 <인천부 지도>를 참고하여 입체 지형도를 제작하였으며, 지형 도와 성공회역사자료관에 소장된 사진 자료의 비교 를 통해 중앙시장이 건설되기 전의 모습을 확인 하였다.
중앙시장의 연혁을 확인하기 위해서 근·현대 신 문과 조선총독부관보, 인천공보 등을 참고하였 으며, 이를 연표로 제작하였다. 1910년 지적 원도와 지도 자료에 따르면 중앙시장 일대는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에 갈대밭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것을 매립한 것은 1925년의 일이다. 이후 1935년 인천 부에서 송현, 금곡 화평 일대의 발전 목적으로
‘송현리일용품시장’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송현자유 시장의 위치에 180여 점포가 개설된 것이 시장의 시작이다. 광복 이후 현재 동인천 북광장인 송현동 100번지에 노점으로 이루어진 소성자유시장이 생겨났으며, 1950년에 기존 일용품시장과 소성 자유시장을 합하여 중앙시장이 탄생하였다. 이후 시장은 배다리 방면으로 확장되었고 목조건물이던 것을 여러 차례 증개축을 거쳐 1970년대 초에 3층의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중앙시장 도로의 변화 모습은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소장의 근·현대기 지도, 사진, 건축물대장, 토지대 장, 항공사진을 활용하였다. 현재 경인선과 나란히 위치한 중앙로는 1935년에 개설되었으며, 그릇과 가구상점이 위치한 현재의 화도진로는 인천시가 지계획으로 1938년에 개설된 것이다. 이 두 도로의 개설로 화평동과 금곡동이 연결되었으며, 이 길은 배다리철교와 화평철교를 통해 경인선의 남쪽과 연결되었다. 1963년에는 중앙시장과 동인천역 앞으로 연결되는 지하도가 건설되었는데, 배다리철 교와 화평철교로 돌아서 시장의 접근이 가능하였던 것을 지하도의 개설로 직접적인 접근이 가능해졌다.
시장 점포와 업종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하여 인천통 계연보와 인천상공명람을 활용하였는데, 특히 시장 이 활성화된 시기인 1968년의 인천상공명람에는 업종, 업체명, 대표자, 소재지를 비롯하여 설립연 조사연구
유물관리부 홍현도
2013 학술조사 보고서
인천의 전통시장 – 중앙시장, 송현자유시장
매립지로 표시된 시장부근
1967년 건설된 지하도 1960년대 중앙시장
월일, 종업원 수까지 기록되어 있어 조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송현리일용품시장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에 판매 물품은 생활필수품을 위주로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1968년 인천상공명람에 따르면 의류제조업, 의류 및 섬유판매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중앙시장 현장조사에서는 현재 중앙시장 내의 상점 현황을 조사하였으며 1968년 인천상공명람과 비교자료로 사용하였다.
현장조사에서 상점의 현황조사와 함께 중앙시장의 상인인터뷰도 진행하였다. 대상 상점으로는 중앙시장의 대표 상품인 한복을 판매하는 용신상회, 태양주단을 비롯하여 참기름전문점 장단방앗간, 복어전문점인 송미옥 등도 인터뷰하였다. 인터뷰는 1회에 그치기도 하였으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얻기 위해 수시로 찾아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으며, 상인들의 생활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고서에 수록할 예정이다. 인터뷰 대상은 중앙시장 상인회를 통하여 소개받거나 방문을 통하여 선정하였다. 상인의 대부분은 타지에서 유입되어 장사를 시작하였으며, 대를 이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통하여 문헌자료를 통해 얻을 수 없는 실생활과 밀접한 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었다.
중앙시장 상인회의 시작은 확인할 수 없으나 가입된 상인들의 나이가 60~80세로 그 이전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 상인회와 별개로 인천시에서 마을살리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중앙시장 마을 협동조합’이 탄생하였다. 중앙시장 협동조합의 등장으로 2개의 상인회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중앙시장 마을협동조합에서는 올해 첫 사업으로 한복과 침구 등 결혼준비를 위한 물품을 주로 판매하는 중앙시장의 특성에 맞춰 전통혼례인 초례청 행사를 열었다.
올해로 시장이 생긴지 78년이 되었다. 중앙시장과 송현자유시장은 인천을 대표하던 시장으로 인천시민의 생활 일부를 담당하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일부 상점을 제외한 대부분 상점이 개점휴업 상태로 재개발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2013년 시행된 중앙시장, 송현자유시장 학술조사는 인천의 도시생활사에 대한 첫 번째 조사로 관련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시장을 추억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기 바란다.
현재 송현자유시장
전시교육과 조유미
4page Cartoon
야미
yami의 생활 속 미술사
인천에는 인천향교, 부평향교, 강화향교, 교동향교가 있다. 부평향교는 1127년(인종 5) 계양산 남측에 지어진 향교로 부평향교, 교동향교, 강화향교는 같은 해에 지어졌고 인천향교보다는 약 100년 정도 앞선다. 그 중에서 인천유형문화재 제12호인 부평향교는 병자호란 후 숙종 14년에 재건하여 계양구 계산동에 있다.
부평향교는 조선시대에 부평 지역의 교육을 담당한 관립 학교 건물이다. 부평향교의 원래 이름은 부천향교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구로동, 오류동부터 경기도 부천과 인천광역시의 부평과 서구까지 관할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역이 생기면서 부평향교로 부르게 되었다.
향교는 지금의 학교 개념으로 향교를 졸업하지 않아도 성균관에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향교에서 교사는 그 지역의 유림들 중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 맡게 된다. 향교에서는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는데 전국에 있는 모든 향교에서 한날한시에 제사를 지낸다. 이번 가을에는 9월 28일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부평향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홍살문을 지나야 한다. 홍살문은 향교 영역의 표시이며 대소인을 막론하고 말에서 내린다(하마). 그 다음 교궁을 출입하는 문인 외삼문을 지나면 명륜당과 동재, 서재가 나오는데 명륜당은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으로 지금의 교실과 같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지나 내삼문을 지나면 현인들의 위패를 모시던 동무, 서무와 함께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은 5성위(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와 정·주양공(예국종 정호, 휘국공 주희) 그리고 최치원, 정몽주, 이황, 이이 등 한국18현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며 향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대성전은 건물의 두 옆면과 뒷면 벽 아랫부분에 돌아가며 낮게 벽담을 쌓았는데, 이는 전통문묘에 대한 건축기법을 느끼게 한다.
청소년기획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줘, 부평향교야!
1기 청소년기자
김영진(작전고), 유혜리, 이가영, 이주영(이상 초은고)
부평향교를 3대째 관리하는 관계자분을 만나봤다.
- 안녕하세요,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 인천사람들은 인천향교만 알고 있습니다. 인천향교하고 부평향교가 다른 점이 뭐가 있을까요?
“저도 인천사람들이 부평향교보다 인천향교에 대해서만 아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인천향교가 부평향교보다 100여 년 먼저 지어졌습니다.”
- 어째서 사람들은 부평향교에 대해서는 모르고 인천향교에 대해서는 잘 알까요?
“인천시에서 인천향교를 많이 지원했습니다. 월드컵 때 인천향교가 문학경기장 주변이라서 인천시에서 지원을 많이 했고, 그 결과 인천향교 건물들이 보수가 되었고 시설도 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인천시민들이 부평향교보다 인천향교를 많이 아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부평향교는 건물보수는 해주고 있지만 인천향교보다는 지원이 적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 향교가 있다는 것은 그 곳 주변이 중심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데요. 그러면 부평향교도 옛날 부평의 중심지였습니까?
“요즘 인천사람들은 못 믿겠지만 사실입니다. 옛날의 부평향교는 부평읍에 있었습니다. 부평향교 주변에는 부평도호부청사도 있었고요. 도호부청사하고 향교가 있으면 그 곳이 중심지라는 걸 보여줍니다.”
- 하지만 인천에 사는 젊은이들은 부평의 중심지가 과거에도 부평역 중심이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고요. 역사나 문화적으로 볼 때 당연히 현재에도 부평의 중심지가 부평역이 아닌 부평향교나 부평도호부청사 중심이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바뀌게 됐나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사람들이 부평역이 부평의 중심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람들에게 계속 퍼졌고, 이후 북구에서 부평역과 그 주변지역을 부평으로 정하게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볼 때는 부평향교하고 부평도호부청사가 있으므로 이곳이 원래 부평이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구청의 자리도 향교 주변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인천사람들은 옛날의 부평의 중심지가 부평향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아니라 부평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게 아쉽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해 주세요.
“부평향교도 인천향교처럼 지원을 많이 해서 인천시민들한테 홍보했으면 좋겠네요. 이 글을 읽고 인천시민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합니다.”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부평향교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던 것을 풀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부평향교를 많이 찾고, 부평향교에 대해 모르고 있는 사람들한테 알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쇳골 금곡동의 초입, 싸리재의 내리막과 쇠뿔고개의 오르막이 만나는 지점에 기찻길 철교가 지난다. 사람 들은 이 철교 언저리를 ‘배다리’라 부른다. 배다리는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10개 안팎의 지역에 붙어있는 비교적 흔한 이름이다. 전국에 분포하는 배다리라는 지명 대부분이 ‘배가 닿던 곳’ 또는 ‘배를 이어 만든 다리가 있던 곳’이라는 어원을 갖는다. 둘 다 물과 관련된 것으로, 배다리 이름이 붙은 곳은 어김없이 물가에 있다. 인천 금곡동 초입의 배다리도 마찬가 지였다. 지금은 매립되고, 복개되어 흔적을 찾기 어렵 지만 괭이부리를 돌아드는 주안갯골의 작은 줄기가 송현동 수문통 부근에서 방향을 바꿔 이곳에 이르렀다.
비록 큰 배는 다닐 수 없는 좁은 물길이었지만, 물이 차는 만조 때면 작은 배들이 닿았다 하여 배다리라는 이름이 생겼다.
행정지명이 아닌 탓에 배다리의 공간범위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쇠뿔고개 마루턱에서 동인천역까지라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철교 아래만을 배다 리라 부른다. 배다리라는 이름이 보편화한 것은 개항 이 후 형 성 된 배 다 리 시 장 때 문 이 다 . 배 다 리 는 개항장에서 서울로 향하는 경인가로에 위치하는 데다 조선 마을이 밀집해 있던 송림동, 송현동, 금곡동, 창영동의 중심에 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길목이었다.
사람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었고, ‘인 천에서 가장 볼 만한 시장’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배다리 시장은 좌판에 물건을 올려놓고 판매하는 난전(亂廛) 형태의 전형적인 우리네 시장 모습이었고,
미곡에서부터 그릇, 옷감 등 모든 상품이 거래되는 만물 시장이었다.
1929년과 1932년 인천부에서 각 점포마다 깨끗한 시설을 갖춘 공설 어시장과 청과물시장-지금의 신 포시장-을 신포동에 개설하였으나, 조선 사람들은 여전히 배다리 시장을 애용했다. 배다리 시장은 우리 전통 시장의 운영방식인 5일장이 아니라 상설시장 형태로 운영되었다. 이는 오가는 사람들이 끊일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의 혼란 속에서도,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배다리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1946년 인천시에서 배다리 일대 암시장을 없애고자 공설시장-지금의 중앙시장-을 개설하였지만, 거리에 좌판을 놓고 하루를 살아가던 배다리 상인들을 쫓아낼 수는 없었다. 1955년 송림 초등학교 앞 배다리 삼거리에서 송림로터리 방향으로 신작로가 뚫리면서 상인들은 결국 배다리를 떠나야 했고, 사람으로 늘 북적대던 배다리 시장은 그렇게 중앙시장으로 흡수되었다.
조선 사람들에게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람을 만나거나 바깥소식을 듣기 위해, 혹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시장으로 모여들었다. 시장에서 혼담이 오가는가 하면 청첩과 부 고가 돌았으며, 재주구경·싸움구경 등 볼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인천에서 가장 볼 만한 시장 배다리 시장의 모 습도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인천, 도시탐사
전시교육부장 배성수
금곡동 1
배다리 시장
1890년대 내동 성공회성당에서 바라본 배다리 물길
1911년 인천시가도에서 보이는 배다리
상설음악회 박물관으로 떠나는 음악여행
주 제ㅣ 국악, 클래식, 팝페라, 재즈, 음악극 등 다양한 장르의 상설공연
일 시ㅣ 2013년 3~12월
매월 둘째·넷째 주 일요일 오후 4~5시 장 소ㅣ 시립박물관 1층 석남홀
대 상ㅣ 일반시민 200명 신 청ㅣ 홈페이지 선착순 접수
가족체험 박
博장
場대
大소
小, 토요일!
주 제ㅣ 2명의 가족이 참여하는 박물관 전시 연계 체험학습
일 시ㅣ 2013년 9~12월,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전 10~12시, 오후 1~3시 장 소ㅣ 시립박물관 2층 세미나실, 3층 해넘이방 대 상ㅣ 회당 초등학생 동반가족 30팀 신 청ㅣ 홈페이지 선착순 접수
가족체험 우리 가족 박물관 가는 날
주 제ㅣ 아름다운 우리 집 만들러, 우리 가족 박물관 가는 날
일 시ㅣ 2013년 1~12월,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오전 10~12시, 오후 1~3시 장 소ㅣ 시립박물관 3층 해넘이방 대 상ㅣ 회당 가족 15팀 신 청ㅣ 홈페이지 선착순 접수
어린이체험 가자! 박물관으로
주 제ㅣ 박물관 전시 및 초등학교 교과 연계 체험학습 일 시ㅣ 2013년 9~12월, 화~금요일
오전 10~12시, 오후 1~3시 장 소ㅣ 시립박물관 3층 해넘이방 대 상ㅣ 인천시내 초등학교 한 학급 신 청ㅣ 담당자 사전협의 후 신청서 팩스 접수
어린이체험 상설체험교실
주 제ㅣ 도자기, 발굴, 민속놀이, 탁본, 청동기 등 8가지 상시체험
일 시ㅣ 2013년 1~12월, 화~일요일 1일 3~6회 장 소ㅣ 시립박물관 2층 상설체험교실 대 상ㅣ 회당 초등학생 10명 신 청ㅣ 당일 안내데스크 접수
구분 1주차 2주차 3주차 4주차 5주차 12월 민화 민속놀이 청동기 전통인쇄 도자기
1월 도자기 발굴 탁본 고건축 민화
2월 민화 민속놀이 청동기 전통인쇄 도자기
기획특별전 안녕하세요, 배다리展
주 제ㅣ 연속과 단절로 보는 배다리의 역사와 사람들 기 간ㅣ 2013년 12월 3일~2014년 2월 2일 장 소ㅣ 시립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
민속행사 정월대보름맞이 민속놀이 한마당
내 용ㅣ 달집태우기 등 체험과 놀이가 함께하는 정월대보름 민속행사
일 시ㅣ 2014년 2월 15일(토), 오후 1~7시 장 소ㅣ 시립박물관 우현마당
대 상ㅣ 일반시민 1,000명
청소년진로 뮤지엄
+드림캐쳐·드림하이
주 제ㅣ 전시기획 등 박물관의 다양한 업무를 체험하고 진로계획 세우기
일 시ㅣ 2013년 9~12월, 화~금요일 오후 2~5시 장 소ㅣ 시립박물관 3층 해넘이방
대 상ㅣ 인천시내 중·고등학교 한 학급, 동아리 신 청ㅣ 담당자 사전협의 후 신청서 팩스 접수
성인교육 박물관 시민강좌
주 제ㅣ 달콤 쌉싸름한 역사 일 시ㅣ 2013년 1~12월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 2~5시 장 소ㅣ 시립박물관 1층 석남홀 대 상ㅣ 일반시민 150명 신 청ㅣ 당일 선착순 입장
성인교육 인천시민 인문학강좌 하반기과정
주 제ㅣ 영화로 읽는 인문학 일 시ㅣ 2013년 9~12월 격주 화요일 오후 2~4시 장 소ㅣ 시립박물관 1층 석남홀 대 상ㅣ 성인 140명 신 청ㅣ 홈페이지 선착순 접수
송암미술관
호야가 들려주는 옛날 옛적 민화 이야기
주 제ㅣ 민화를 통해 만나는 옛 사람들의 소망과 상상을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 전시회 기 간ㅣ 2013년 10월 15일~2014년 3월 2일 장 소ㅣ 송암미술관 기획전시실
문 의ㅣ 032-440-6782
검단선사박물관
클레이아트로 만나는 선사시대
주 제ㅣ 클레이를 이용한 선사유물 만들기 일 시ㅣ 2013년 12월 31일~2014년 1월 21일 매주 화요일 오후 1~3시, 3시 30분~5시 30분 장 소ㅣ 검단선사박물관 상설전시실, 아동도서실 대 상ㅣ 6세~초등2학년
신 청ㅣ 홈페이지 선착순 접수 문 의ㅣ 032-440-6790, 6796~7
어린이 발굴교실 고고학 올림픽
주 제ㅣ 어린이 발굴과정 체험 프로그램 일 시ㅣ 2013년 1월 3일~2014년 1월 24일 매주 금요일 오전 10~12시, 오후 2~4시 장 소ㅣ 검단선사박물관 발굴체험장
대 상ㅣ 초등3~6학년 신 청ㅣ 홈페이지 선착순 접수 문 의ㅣ 032-440-6790, 6796~7
한국이민사박물관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 강좌
주 제ㅣ 한국사 특강(조선후기~근현대사) 일 시ㅣ 2013년 11월~2014년 3월 매주 토요일 오전 10~12시 장 소ㅣ 한국이민사박물관 강당 대 상ㅣ 중학생
신 청ㅣ 홈페이지 선착순 접수 문 의ㅣ 032-440-4709
박물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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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 철제 범종(明代 鐵製 梵鐘)
소장유물
유물관리부 박용운인천광역시립박물관 야외에는 중국 종 3구가 전시되어 있다. 부평 조병창에서 발견된 중국 철제 종들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중국에서 가져온 종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작은 종이 명나라 범종이다.
범종의 중간 부분에 쓰인 명문을 통해, 중국 명나라 하남성 상구현에서 1638년에 쇠로 만들어진 종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이곳 출신의 고위관료였던 엽정계 부자 및 지역의 유력인사 대다수가 종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리고 태산행궁이라는 도교사원에 걸었던 종이라는 사실도 파악된다. 명문에 승려도 나오고 있어 불교에서 도교사원에 종을 희사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중국에서는 도교와 불교사원이 한 공간 안에 있는 경우가 많아 두 종교의 교류가 빈번하였다.
이 종은 한눈에 보기에도 우리나라의 범종과는 크게 달라 보인다. 아래쪽에 연화형이나 팔릉형이라고 부르는 8개 꽃잎 모양과, 꽃잎 모양이 시작되는 곳에서 밖으로 휘는 종의 모양 등이 한국의 범종과 큰 차이를 보인다. 또한 꼭대기에 있는 용의 모습은 형식적으로 변해서 마치 험상궂은 아랍상인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교는 인연을 중시하는 종교다. 주변의 생명 있는 것들뿐만 아니라 생명 없는 것들과도 인연을 중시한다. 범종 역시 그 특성상 지하세계 모든 중생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맡아 사찰에서 쳐진다고 한다. 중국 종이지만 인연을 따라 이 땅에 들어온 이 종은 한국의 중생을 구원하는 목소리를 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존재 자체로 이 땅 중생과의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요즘 부쩍 늘어난 중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 종과의 인연을 따라 온 것은 아닐는지 허튼 생각을 해본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청량로 160번길 26 T. 032 440 6750 F. 032 440 8871
http://museum.incheon.go.kr | www.facebook.com/icmuseum 창간일 2009년 3월 1일 발행인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이명숙 기획·편집 전시교육과 안성희 | 자원봉사자 구자인혜 김명숙 정효숙 표지사진·글 조오다 제호 이태용 디자인·인쇄 성광디자인(주)
✽ 「박물관풍경」 의 2013년 표지사진·글은 인천의 낯선 풍경을 주제로 합니다
명 1638년, 높이 140.0cm, 지름 81.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