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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 은 글 긴 생 각
‘을숙도 철새공화국’ 에서 보내는 초대장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1,300리 물길을 돌아 대양으로 접어드는 길목. 해질녘 낙동강 하구 모 래톱 사이엔‘물별’이 뜬다. 천연기념물 제179호인 낙동강 하구엔 요즘 멀리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철새 들이 매일 여정을 풀고 있다. 겨울철 이곳은 고니·기러기·오리·갈매기·가마우지 등 70여종, 5만 7천 마리의 철새가 모여 사는‘철새들의 나라’다.
이곳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철새공화국’이 들어선 것은 2001년 12월 16일. ‘습지와 새들의 친구’, ‘부 산녹색연합’등 부산지역 환경단체가 이날‘을숙도 철새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을숙도 철새공화국 은 평화공화국이다(제1조)’, ‘을숙도 철새공화국의 영토는 을숙도와 그 일원으로 한다(제2조)’, ‘문화재 청과 문화재위원, 환경부는 이 지역을 보전할 의무가 있다(제17조)’등의 내용을 담은‘철새공화국 헌법’
을 공포했다. 이날 철새공화국 선포식은 철새들의 핵심 서식지를 관통하게 될 부산시의 명지대교 건설계 획과 주변에 들어설 20층 높이의 명지주거단지 건설계획의 문제점을 널리 알려 낙동강 하구에 대한 종합 대책 마련을 행정에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을숙도 철새공화국의 역사는 인간에 의한 파괴와 침탈의 역 사였다. 1966년 7월 문화재보호구역,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래 낙동강 하구에는 하구둑이 생기고, 을숙 도에는 압축쓰레기 매립장과 분뇨처리장이 들어섰는가 하면 주변 갯벌이 매립되어 녹산·신호·장림신 평공단, 명지주거단지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이렇게 해서 사라진 갯벌이 485만 평으로서 여의도 면적의 7~8배에 이른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부산시가 추진중인 낙동강 둔치 정비 및 서낙동강 하천정비계획으 로 인해 이들 철새의 마지막 먹이공급처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태다.
부산지역 환경단체 회원들은 지난해 이맘때‘을숙도 철새공화국 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오는 12 월에는‘을숙도 철새공화국 대통령 선거’를 준비중이다. 을숙도 하구의 거센 개발바람에 맞서 공화국을 지킬 수 있는 환경지도자를 뽑는 퍼포먼스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부터 우리 인간들도‘고니의 땅’, ‘철새들의 영토’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개발지상주의, 인간편 의주의, 무한속도주의에서 벗어나 생명과 존재 그리고 느림의 가치를 존중하는 철새공화국과 새로운 외 교관계를 맺어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2003년 한해가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을숙 도 철새공화국을 한번 방문해 볼 것을 권한다. 부산 다대포 아미산 중턱에 앉아 석양에 비치는 하구 모래 톱을 내려다보면서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철새들의 힘찬 날갯짓을 한번 느껴보길 바란다. 다만 이곳 철새 공화국에 발자국 외엔 아무 것도 남기지는 마시라(Leave only your footprints!).
김해창｜국제신문 기자, ‘그곳에 가면 새가 있다’저자 4도면-01 2003.12.30 4:33 PM 페이지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