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이 연구는 년도 서강대학교 교내연구비의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졌음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이 연구는 년도 서강대학교 교내연구비의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졌음"

Copied!
27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제 차 비잔틴 이코노클라즘과 동방 제 차 비잔틴 이코노클라즘과 동방제 차 비잔틴 이코노클라즘과 동방

제 차 비잔틴 이코노클라즘과 동방2222 신학신학신학신학

*

김 산 춘 김 산 춘 김 산 춘 김 산 춘

**

1)

목차

문제의 소재 .

제 차 이코노클라즘의 전말

. 2 ( )

년의 이콘 파괴파 교회회의 1. 815

비판과 반박

2.『

제 차 성화상 파괴 논쟁의 독창성 3. 2

총주교 니케포로스 .

이미지와 원형 1.

이미지와 닮음 2.

한계지음과 한계 지을 수 없음 3.

스투디오스의 테오도로스 .

이코노클라즘과 비잔틴 미술 .

결론 .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년 봄 학술대회의 발표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 2004 .)

이 연구는 년도 서강대학교 교내연구비의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졌음

* 2003 .

서강대학교 조교수

**

(2)

문제의 소재 문제의 소재 문제의 소재 문제의 소재 ....

세기 전반 처음으로 성화상 파괴 논쟁 에 휘말려 들어간 교회는

8 (iconoclasm) ,

년 제 차 공의회 제 차 니카이아 공의회 를 통해 이콘 공경을 장엄하게 선포

787 7 ( 2 )

함으로써 이를 해결하는 듯이 보였으나,1) 9세기 초반 또 다시 논쟁이 재연됨으로 써 이 문제가 결코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뿌리가 보다 깊이 내려져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실 현대의 거의 모든 학자들이 세기의 제 차 비잔틴 성화상 파괴 논쟁에9 2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논쟁은 이미 영적으로 고갈되어있었다 우스. “ .”(

펜스키), “논쟁은 옛 명제들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 아무런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 산하지 못했다. 815년의 교회회의는 독창성 없는 아류의 무능함(epigonenhafte 일 뿐이다 오스트로고르스키 논쟁은 권위에 호소하기 위한 부차적인 Impotenz) ”( ), “

것들이다 마르틴 그러나 알렉산더는 위와 같은 견해들이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 ).

주장한다.2) 9세기 초반의 제 차 성화상 파괴 논쟁은 세기의 제 차 성화상 파2 , 8 1 괴 논쟁의 열등한 복제품도 아니며 독창성이 없는 아류의 무능함도 아니며 오로, , 지 권위에만 의존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오히려 제 차 논쟁은. 2 전 성화상 파괴 논쟁의 절정이었다고 말한다 제 차 성화상 파괴 논쟁에 있어서. 2 , 이콘 파괴파(iconoclasts)와 이콘 옹호파(iconophiles) 양 진영은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에로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참된 종교적 이미지의 본성이란 무엇인, 가 라는 문제였다 이는 제 차 성화상 파괴 논쟁에서 피상적으로만 다루다 결국. 1 은 해결하지 못하고 세기로 넘겨진 문제였다 알렉산더는 이콘 옹호파 총주교 니9 . 케포로스(Nicephorus, 758-828)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와 같이 제 차 성2 화상 파괴 논쟁을 새로이 재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제 차 성화상 파괴 논쟁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이2 콘 옹호파 수도원장 스투디오스의 테오도로스(Theodorus Studita, 759-826)의 저 술과 편지들이다.3) 그 가운데서도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성화상 파괴론

1) 김산춘 , 「 이콘의 신학 」 『 , 』 제 20 집 (2003. 8), 5-26 쪽 참조 . 2) P.J. Alexander, “The Iconoclastic Council of St. Sophia(815) and its

Definition” in: Religious and Political History and Thought in the

Byzantine Empire, London, 1978, VIII, 37.

(3)

자에 대한 세 편의 논박(Antirrhetici Adversus Iconomachos)』4)이다 교회의 정. 통 교의는 항상 새로 발생하는 이단에 맞서서 발전해왔다 이콘 옹호론 또한 이콘. 파괴론에 맞서서 발전을 거듭한다 테오도로스는 그리스도론에 보다 치밀하게 호. , 소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세련시킨 황제 콘스탄티노스 세와5 754년의 이코노클 라스트 교회회의에 맞서 그리스도론 논쟁을 이콘 공경에 유리하도록 이끌어갔, 5).

테오도로스는성화상 파괴론자에 대한 세 편의 논박 에서 파괴파의 입장과 자신의 견해를 병기( )해가며 제기된 새로운 반대들을 철두철미하게 다루어간, 다.6)

첫째 이콘 파괴파는 하느님은 묘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하느님 그 자, . 체는 묘사될 수 없다 따라서 하느님이 묘사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논거는 그. 리스도의 육화(incarnatio) 뿐이다 즉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볼 수 있고 만질 수. , 있고 따라서 묘사할 수 있는 존재이다, .7) 만일 육화한 그리스도가 묘사될 수 없다 면 그것은 참된 인간성을 결하고 있거나, (假 8)), 그 인간성이 신성 안에 잠겨 버린 것( 9))이다.

둘째 원형, (prototype)과 이콘(image)과의 관계 규정이다 이콘 파괴파처럼 본성. 만을 생각한다면 이콘은 그 원형과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콘은 신성과 인성. 이 결합되어있는 그리스도의 위격10)과의 유사함을 나누어 가지고 있으며 원형과,

3) G. Ostrogorsky, Geschichte des byzantinischen Staates , tr., by J.Hussey, History of the Byzantine State, N.J. 1969, 150.

4) Theodorus Studita, Antirrhetici Adversus Iconomachos [ PG 99,328-436], tr., by C.P. Roth, On the Holy Icons (N.Y., 2001). 앞으로 나오는 번호는

의 구분에 따른 것이다

Roth .

5) [ 그림 1] 「 815 년의 이콘 파괴파 교회회의 」『 테오도로스 』 fol. 27v, 년 런던 대영도서관

1066 , .

6) Roth 의 Introduction 참조 . 7) 요한 1,14 ; 1 요한 1,1-3.

8) docetism. 그리스어 동사 dokeo(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에서 유래 ) . 9) monophysitism. 칼케돈 공의회의 과 달리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주장 . 10) 테오도로스는 위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 내가 사람 ‘ ’(man) 이라 고 말할 때 그것은 공통 본질 ‘ ’(common essence) 을 의미한다 내가 거기에 .

어떤 을 덧붙일 때 즉 어떤 사람 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위

‘ ’(a) ‘ ’(a man) ‘

격 ’(hypostasis) 을 의미한다 즉 의미되어진 것의 자존적 실존이다 그리고 . .

어떤 속성들 (properties) 로 이루어진 한계 지음 (circumscription) 이다 .”[3 A

17]

(4)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이콘이 공경을 받는 것은 그 본성 즉 나무나 물감 등의 성. 질 때문이 아니라 이콘 가운데 그려진 원형과의 유사함 때문이다, .

셋째 이콘 파괴파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이콘은 성체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 테오도로스에게 있어서 성체는 이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같은 실체이, 다 이것은 이콘이 그 원형과 가지는 유사. (homoiosis) 관계와는 전혀 다른 신비에 속하는 것이다.

넷째 이콘 파괴파가 십자가와 복음서는 공경하면서 이콘 공경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에게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된다.

오늘날 이콘 공경의 문제는 주변적인 이슈가 되어버렸지만 혹자는 현대 서방의, 영적 질병의 뿌리가 그리스도교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이콘에 대한 이단적 오해 안 에 있다고 말한다 현상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성당들은 종종 비가톨릭신자들에 의. 해 성상이 파괴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9세기 테오도로스에게 있어서도 이코노 클라즘은 다른 이단들 못지않게 신자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아주 심 각한 오류였다 중도적인 이콘 파괴파들조차도 그리스도 예수가 수난당할 때까지. 만 묘사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이 참으로 하느님 신성 과, ( ) 결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어떤 인간도 신성을 나. 누어받는 자”(theias koinonoi physeos : 2베드1,4)가 될 수도 있다는 인류의 기 대를 부정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테오도로스를 중심으로 제 차 성화상. 2 파괴논쟁의 핵심을 재고해보자 한다.

제 차 이코노클라즘의 전말 제 차 이코노클라즘의 전말 제 차 이코노클라즘의 전말 제 차 이코노클라즘의 전말

. 2 ( )

. 2 ( )

. 2 ( )

. 2 ( )

제 차 공의회의 결정 이후 비잔틴제국에서 이코노클라즘 정책이 회복된 것은7 황제 레오 세 재위5 ( 813-820 )년 때의 일이다 그는 이콘 파괴파 황제들의 시대가.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더 좋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24년간이나 장기 집권한 첫 이콘 파괴파 황제인 레오 세 재위3 ( 716-740 )년 처럼 되고 싶었다. 그는 군인들을 시켜서 칼케(chalke)라고 불리는 황궁 문에 있는 성상에 돌과 진흙 을 던지며 욕설을 퍼붓게 하였다 그리고는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군인들이 성상. . “

(5)

을 훼손하지 않도록 성상을 거기서 떼어내자 레오 세를 그대로 흉내낸 것이다.” 3 . 그를 지지한 것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성 세르지오와 바쿠스 수도원 원장이자 그 자 신이 이콘 화가인 요한(John the Grammarian)이었다 요한은 황제에 의해 이코노. 클라즘을 옹호하는 교부들의 권위있는 문서를 조사하는 위원회의 멤버로 지명되었 다 한편. 81412월 당시 황제는 총주교 니케포로스 재위( 806-815 )년 와 이콘 공 경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는 총주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성들이 공격을 받은 것은 이콘 때문이다 우리가 공경하지 말아야할 이콘을

.

공경하였기에 이방인들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과 타협하는 방식. 으로 조금 양보를 하자 즉 땅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이콘들을 제거하자 그러나. . 만일 그대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면 왜 그대가 이콘들을 공경해야 하는지 이유, 를 들어 우리를 설득해보라.”11)

타협은 단지 입맞춤을 못하도록 낮게 걸려있는 이콘들을 제거하는 선에서 머물 렀다 그것은 무지하고 신앙이 약한 사람들이 성화상을 예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 함이었다 한편 높은 곳에 있는 성화상은 그대로 허용되었다 그림이 문자를 대신. .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촛불과 향을 드리는 것은 금지되었다. .

레오 세는5 815년에 이콘 파괴파 교회회의를 열었는데 그것은754년의 이콘 파 괴파 교회회의의 결정들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815년의 교회회의의 결정(Horos, 은 니케포로스의 비판과 반박 안에 단편적으로 보존되어 있는데 거

Definition) ,

기에는 특히787년 제 차 공의회를 소집한 황후 이레네에 대한 비난이 가득 차7 있다.12) 첫째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로고스 아드님을 육화 기간 동안, 이나마 불명예스러운 질료에 의해 그리도록 가르쳤으며 둘째 성모와 성인들의 생, , 명 없는 초상이 그려져 공경을 받아야 한다고 조심성 없이 발언했으며 셋째 하느, , 님에게만 드려야할 흠숭을 생명 없는 이콘이라는 물질에다 드렸으며 넷째 이콘이, , 신적인 은총으로 가득 차 있다고 감히 말함으로써 순박한 사람들로 하여금 이콘에

11) C.A. Mango, The Art of the Byzantine Empire 312-1453, Toronto 2000, 157.

12) Ibid., 168-69.

(6)

다 촛불과 향을 드리게 했다는 것이다. 815년의 교회회의는754년의 교회회의를 제 차 공의회로 인정하고7 , 787년의 제 차 니카이아 공의회를 무효라고 선언하였2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콘을 우상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결국 니케포로스는 유. . 배를 가게 되었고 그는, 816-820년 사이에 유배지에서 세 편의 이코노클라즘에 대한 논박(Antirrhetici) 비판과 반박 을 쓴다 그러므로 이제 이콘 옹호파의 . 선봉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스투디오스 수도원의 원장 테오도로스가 맡게 되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유배되었고 유배지에서 니케포로스와 마찬가지로 세 편의 이코 노클라즘에 대한 논박을 쓰게 된다.

총주교 니케포로스 총주교 니케포로스 총주교 니케포로스 총주교 니케포로스 ....

년 죽기 전까지 유배 상태에서 니케포로스는

828 13) 많은 논문을 썼는데 그의 마,

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논문은 아주 긴 제목을 달고 있다. 『가톨릭이며 사도적인 교회로부터 탈퇴하여 이질적인 사고방식과 말씀이신 하느님에 의해 수여된 구원, , 의 섭리의 파괴에 집착한 자들로부터 제출된 불법적이고 막연하며 참으로 거짓인, 결정에 대한 비판과 반박 이 그것이다 이레네우스 시절부터 이단 반박의 성격의 . 지닌 저술들은 ‘Elegchos kai Anatrope’(Detectio et Eversio, Criticism and 이란 제목을 달았다 이 논박 제 부는 년의 교회회의의 결정을 길

Refutation) . 1 815

게 인용하고 있는데 니케포로스는 그것을 한 문장 한 문장씩 논박하고 있다 그리. 고 제 부는 더 긴데 그것은2 , 815년의 교회회의의 이콘 파괴파 주교들이 수집한 교부사화집( , Florilegium)에 대한 논박이다.

년의 이콘 파괴파 교회회의 년의 이콘 파괴파 교회회의년의 이콘 파괴파 교회회의 년의 이콘 파괴파 교회회의 1. 815

1. 815 1. 815 1. 815

년의 교회회의의 결정은 무엇이었는가 두 가지 형용사가 그 주제가 무엇이

815 ?

었는지를 암시해준다. 첫째, 성인들은 그리스도의 형태를 함께 나누 ’(symmorphous) 자들이라고 불린다[

frg

. 9].14) 둘째, 이콘은 혼이 없

13) 니케포로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알렉산더의 상게서를 참조하였다.

(7)

’(apsychois) 것이라고 불린다[frg. 13].15) 그리고 교회회의는 우리는 가짜 이 미지들(pseudonymon eikonon)의 부당한 제작을 추방한다”[frg. 14]고 선언하였 다 회화적 이미지가 가짜라는 주장은. 815년 교회회의가 자신의 권위로 내린 단 하나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교회회의는 상대를 특수한 이단이나 우상숭배로 몰고. 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범하게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하였다 회의의 결정은 그. . 방식에 있어서 신학적인 일로서는 강하게 표현되었지만 교회의 일로서는 부드러, , 운 편이었다.

알렉산더는 니케포로스의 논박문 제 부에 나오는 교부사화집을 주의 깊게 분석2 하고 있는데 그는, 754년의 교회회의가 이미 인용한 구절들을 옛 구절들 그리고 ’, 년의 교회회의만이 인용하고 있는 구절들을 새 구절들 이라고

815 ’(New Passages)

부르며 우리가 만일, 815년의 성화상 파괴 논쟁의 핵심을 관통하고자 한다면 바, 로 이 새 구절들을 주의 깊게 연구해야한다고 말한다 .16) 종교적 이미지에 반대 하며, 815년의 교회회의의 결정과 일치하는 새 구절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에피파니우스(Epiphanius)우상들의 양식에 따라 그리스도와 천상 의 어머니 순교자들 천사들 예언자들의 모상 제작에 관여하는 이들에 대한 반, , , 론 [

frg

. 30 B]이다 이를 통해 교회회의가 주장한 것은 성인들의 이미지는 성인. , 들을 명예롭게 한다기보다는 불명예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이미지들은 위조. 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을 그린다는 것은 그들의 (pseudonymoi, spurious) .

(arete)을 획득하고 그들이 명한 것을 따르는 것이다.17) 사도들은 자신들의 형 태에 대한 기억에 있어서 어떤 이미지를 보도록 명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에피파. 니우스는 그리스도는 오직 영과 진리 안에서만 예배될 수 있다 고 말한다 그러 . 므로 그분에 대한 어떠한 이미지도 위조 이미지 ’(pseudonymous image)인 것이

14) frg . 는 The fragments of Definition and florilegium of 815 ed., by Alexander [Decretum concilii iconomachi sub Leone V armeno Constantinopoli in ecclesia sanctae Sophiae habiti, cum florilegio in calce

성인들이 그리스도의 형태의 분여자 라고 한다면 로

decreti adiecto]. ( ) [

마 8,29] 이는 에피파니우스 [ frg . 30 B] 의 영향이다 그는 유덕한 사람을 그 . 리스도의 이콘이라고 보았다.

15) 회화적 이미지가 혼이 없는 것 [frg. 28] 이라고 할 때 참된 이미지는 의인들 , 의 영혼을 가리킬 것이다.

16) Alexander, op. cit., 42.

17) 여기서 화업 ( ) 은 곧 건덕 ( 建德 ) 이다 .

(8)

다.18) 참된 이미지는 성인들의 회화적 초상이 아니며 그들의 덕의 모방인 것이다.

따라서 새 구절들에 의해서 지시되는 노선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이 . 미지는 모두 가짜이며 그들의 유일한 참된 이미지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예배하는, 유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이를 시각에 대한 청각의 우위라고. 보았다 이콘 파괴파는 쓰인 말. (written word)은 듣는 이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의 참된 이미지를 생산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19) 회화적 이미지의 위조성에 대 815년의 교회회의의 결정은754년의 교회회의의 결정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참된 이미지는 성체 성혈( )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덕목을 부여받은 인간인 것이다. 754년의 교회회의와 달리815년의 교회회의의 주교들은 논쟁의 중심 문제였던 참된 이미지의 본성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 754년과

년의 동일한 전제는 이것이다 이미지는 그 원형과 동일 실체

815 . (homoousion,

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종교적 인물은 오직 이 인물과 동일 consubstantial) .

실체인 것에 의해서만 재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콘 파괴파에게 있어서 한 종교. , 적 인물의 회화적 이미지는 참다운 재현이 아니라 위조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비판과 반박 비판과 반박 비판과 반박 비판과 반박 2.

2.

2.

2. 『

사실 니케포로스의 논박문의 긴 제목이 모든 것을 밝혀준다 그는. 815년의 교회 회의의 결정이 불법적이고 막연하고 참으로 거짓이다 라고 요약하고 있다 첫 , , . 째 결정이 불법인, (athesmos, unlawful) 것은 로마교황이나 다른 총주교들이 참석, 하지 않았기에 지역 교회회의가 보편 공의회의 결정을 무효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 다 둘째 결정이 막연한. , (aoristos, ill-defined) 것은 상대방, (787 )년 의 결정만을 부 정할 뿐 자신들의 긍정의 원리는 전혀 제시되지 않은 채754년의 교회회의의 결

18) 이에 대해서 테오도로스는 성화상에 있어서도 하느님은 분명히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받으신다고 말한다 . “ 거기서는 물질이 정신의 하느님에게로 상승함으로써 고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은 물질을 신뢰하지 않고 물 . 질과 함께 머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우상숭배자의 오해이다 그렇기는커 . 녕 물질을 통하여 정신은 원형에로 상승하여 가는 것이다 이것이 정통신앙 , . 이다.”[1,13]

19) Alexander, op. cit., 54 주석 21.

(9)

정만을 다시 긍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결정이 참으로 거짓인. , (pseudonymon,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이미지를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spurious) , .

니케포로스의 논박문 제 부는 모두 참된 이미지론이다 그는 하나의 이미지는2 . 닮음(homoioma, likeness)의 관계라고 하는 논리적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다 재 . 현하는 것과 재현된 것 사이의 닮음은 그 둘의 본성(nature)이 다를지라도 그 둘을 형태에 있어서(in form) 결합한다.

따라서 닮음이 있는 곳에는 서로 닮은 두 사물은 함께 존재하거나 함께 파괴

,

된다.”[

B

223 b ;

C

50 b]20)

니케포로스는 만일 누군가가 어떤 황제의 초상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 황제, 가 참 황제라면 그 이미지도 참 이미지이며 그 황제가 거짓 황제라면 그 이미지, 도 거짓이라고 말한다 아니 거짓된 것의 이미지는 이미지라고도 할 수 없다고 말. ,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 회화적 재현은 그 원형이 담고 있는. . 진리를 왜곡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범주론 에서 관 계를 가지는 것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서로를 취소한다고 말했다면 그는 그것들이, 존재에 있어서 서로 의존 관계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관계에 있어서 만 그렇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하여간 니케포로스가 관계의 범주를 종교적 이. 미지의 문제에 적용시켰다는 점은 흥미롭다 알렉산더는 전반적으로 니케포로스의. 논박문이 설득력이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나 자연학의. 개념들을 신학적 문제에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21)

제 차 성화상 파괴 논쟁의 독창성 제 차 성화상 파괴 논쟁의 독창성제 차 성화상 파괴 논쟁의 독창성 제 차 성화상 파괴 논쟁의 독창성 3. 2

3. 2 3. 2 3. 2

년 교회회의가 강조점을 둔 곳은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유일한 참된 이미지

815 ,

는 그리스도교의 덕목이 부여된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세기의 오리게. 3

20) B = Paris. Graecus 1250, saec. XIII, fols. 173a-332a./ C = Paris.

Coislinianus 93, saec. XV, fols. 1a-159a.

21) Alexander, op. cit., 48-49.

(10)

네스가 이미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공경용 입상 이나 하느님께 봉헌하는 작품들은 무식한 장

(恭敬 ) ( )

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분명, 하게 형성되는 것이다 즉 그것들은 모든 피조물의 맏물 골로. ’[ 1,15]의 모방인 덕 들인데 그분 안에 정의 사려 용기 지혜 경건 및 다른 덕들의 본이 있는 것이, , , , , 다 그러므로 공경용 입상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일치해있는 모든 사람들 안에 있. 최선의 노력으로 맏물이신 분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 안에는 창조주와의 닮 음 안에 있는 골로’[ 3,10] 바로 그 입상이 있다 그들이 하느님과 닮은 자들이 되. 었을 때 에페[ 5,1],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관상함으로써 그 입상을 제 공한다 그리고 간단히 말해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단과 입상을 세우고자 한다 그. , . 것들은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의 영은 덕의 입상 위에 내리. 고 마치 그 핏줄인 것처럼 창조주와의 닮음 안에 있는 사람들 위에 내린다 그, . 러므로 그리스도의 영 또한 그분의 형상을 함께 나누는 자들 위에 (symmorphois

로마 내린다

: 8,29) .”22)

그러나 신성의 참된 이미지로서의 덕스런 인간 이란 관념은 사실 오리게네스 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로부터 가져온 것이고 또 자신과 동시대인인 플로티, 노스나 포르피리오스와도 공유하고 있던 관념이었다.23) 오리게네스주의 단성론, , 이코노클라즘은 공통적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에 과도한 강조점을 두었다 헬레니즘. 의 정신대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어리석었기에 ”[1고린1,23]종교를 내 적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24)

알레산더는 헬레니즘 전통에 충실한 제 차 이코노클라즘은 그리스도교의 이, 2 , 미지에 대한 정교한 공격의 기초로서 오리게네스의 설을 사용했다는 데에 그 독창 성이 있다고 말한다.25) 그에게 있어서 독창성이란 다소 타자에 의해 우연히 처음

22) Origenes, Contra Celsum , VIII 17-18.

23) Clemens of Alexandria, Strom. , VII 5 ; Plotinos, Enneades, I, 6, 9.

24) G. Florovsky, “Origen, Eusebius and the Iconoclastic Controversy”, in:

Church History XIX (1950) 참조 .

25) Alexander, op. cit., 52.

(11)

으로 말해진 논제가 새로운 일련의 문제들을 풀기 위한 초석이 되는 데에 있었다.

이 신선하고 활기찬 공격이 이콘 옹호파로 하여금 보다 독창적이고 학구적인 옹호 론을 펼치게 했는데 그 중심에 스투디오스의 테오도로스가 서있었다.

스투디오스의 테오도로스 스투디오스의 테오도로스 스투디오스의 테오도로스 스투디오스의 테오도로스 ....

이미지와 원형 이미지와 원형이미지와 원형 이미지와 원형 1.

1.

1.

1.

신약성서에는 예수와 바리사이파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예수는 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자 이 초상 (eikon)과 글자는 누구의 것 이냐 하고 물으셨다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그러면 카?” . “ .” 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라 하고 말씀 하셨다 마태.[ 22,20-21 ; 루까20,24-25]

여기서 카이사르의 이미지는 카이사르 자신을 대신하고 있다.26)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이미지와 원형 사이에는 분유(participation)의 관계 가 있다고 말한다.27) 그는 또 이미지와 원형 사이의 닮음의 동일성(identity of

을 제시한다

likeness) .28)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에 대한 공경은 그 원형에게 로 돌아가는 것이다.29) 이러한 생각은 테오도로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닮음의. 동일성이란 무엇인가?

화가의 부족한 기술 때문에 이미지가 원형과 동일한 형태

(atechnia) (isotypon)

26) 테오도로스에 의하면 , “ 원형에 대해서 말해지는 것은 다 그 모사에 대해서 도 똑같이 말해진다 . 그러나 원형의 경우에 그것은 동의어로서 고유하게 모사의 경우는 동음이의적으로 상징적으로 (synonymously and properly),

말해진다

(homonymously and figuratively) .”[2,16]

27) John of Damascus, Contra imaginum calumniatores orationes tres , tr., by D.Anderson, On the Divine Images, N.Y. 2002, 3,11.

28) Ibid., I, 9.

29) Basilius, De spiritu sancto, 18, 45.

(12)

를 가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미지는 그 원형과 닮고 있는 한 공경을 받는다 그, . 정도에 있어서 이미지는 원형과 같은 형태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공경을 받는, .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데 그것은 이미지 안에 있는 원형이다.”[3 C 5]

그러므로 테오도로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닮음 즉 어떻게 그려졌는 가가 아니라 누가 그려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단 하나의 기준은 이것이다 이콘으. . 로 그려져야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사람은 공경을 받을만한 인물인가 하는 점, 이다 물론 그리스도 하느님의 어머니 테오토코스 그리고 성인들뿐이다 이리하. , ( ), . 여 기술적 유사함을 희생하고 원형의 질에 강조를 둔 비잔틴 도상학은 미학보다는 윤리학에 닻을 내린다.30) 테오도로스의 사유에 있어서 이미지와 원형과의 관계에, 는 다음과 같이 세 단계가 있다.31)

첫째 이미지와 원형은 함께 하는 이름, ’(shared name)을 통하여 결합한다.

빛의 반사가 빛을 나누어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미지도 그 원형의 영광을 분유

,

하고 있다 왜냐하면 원형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같은 것을 모든 점에 있어. 서 그 결과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원인의 경우는 그것이 본성. 에 의해서 있으므로 참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결과의 경우는 원인과 명사적, 동일성( , identity of name)에 의해서 있으므로 원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서는 참으로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그리 스도라고 부르는데 그것이 또한 그리스도이기 때문이지 두 사람의 그리스도가 있, 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을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쌍방이 공유하고 있는 이름에. , 의해 한편을 다른 편에서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1,8]

테오도로스는 자연본성(physis, nature)과 인위적 정립(thesis, art), 원형

과 모사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강조하

(archetypon, original) (paragogon, copy)

30) K. Parry, Depicting the Word, Leiden, 1996, 27-28. 여기서 무엇이 이콘 이며 무엇이 우상 인지가 구별된다 우상이란 그 실재의 원형

(icon) (idol) . (real

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며 이콘은 실존하는 원형

prototype) , (existing

에 기초한 것이다

prototype) .

31) Ibid., 28-31.

(13)

지만 같은 이름의 사용 안에서는 동일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1,11]. 무엇보다도 테오도로스가 이콘 파괴파에게 상기시키고 싶었던 것은 이미지론이 삼위일체의 신 학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경륜32)과 관계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신학 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는 닮음

(theologia) .

에 대한 물음이 없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 (resemblance or likeness) .

의 구원 경륜(oikonomia)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원형과 그 모사를 본다 진실로. . 그대가 말씀이 육( )을 취하고 우리들과 같이 되셨다고 고백한다면 말이다.”[2,4]

영과 진리 안에서 공경하는 것 요한 은 신학에 속한다 성부는 영이시기

[ 4,24] .

에 성령과 진리 외아드님 요한( : 14,6) 안에서 공경을 받으신다 그러나 이미지 안. 에서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속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이시기에 영이시나 또한 사람이시기에 육인 것이다 그분의 신체적 이미지가 질료, . 안에서 재현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와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3 C 15]

우리가 원형과 이미지를 볼 수 있는 것은 성자의 육화(incarnatio) 안에서 이다. 성자는 자신이 원형인 이미지 안에서 공경을 받는다[2,5]. 이콘 파괴파는 성서에 는 원형과 이미지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고 반론하지만 테오도로스에게 있, 어서 성자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이미지의 원형을 정립하 였다는 것을 의미한다[2,6]. 즉 그리스도는 자신을 한계 지음(circumscription) 로써 그의 이미지의 원형이 된 것이다[2,9].

둘째 이미지와 원형은 함께 하는 닮음, ’(shared likeness)을 통하여 결합한다.

자연본성적인 이미지는 그 본질 에 있어서나 그 닮음

(physikos, natural) (ousia) , 에 있어서나 그 원형과 동일하다 그러나 인위적인

(homoiosis) (technetos,

이미지는 그 원형과 닮음에 있어서는 동일하나 그 본질에 있어서도 그

artificial) ,

32) V. Lossky, Essai sur la Théologie Mystique de L'Église d'Orient, 신

Paris, 1944. 宮 久 , 『 キリスト 敎東 の 』 ( 東京 , 1986) 107.

교부들은 하느님의 존재 자체에 관한 삼위일체론은 theologia 의 범주에 속하

고 하느님의 외적 현현과 피조물과의 연관 즉 세상의 창조와 유지 및 구원 ,

의 역사에 있어서 알려지는 삼위일체론은 oikonomia 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

았다.

(14)

런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와 그 이콘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3 B 2]

셋째 이미지와 원형은 위격의 닮음, ’(likeness of hypostasis)을 통하여 결합한 다 즉 원형과 이미지의 닮음은 그려진 인물의 한 위격에로 귀속한다 이콘 파괴파. . 는 닮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그 원형과 비교해볼 때 동등함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부족함을 드러내기에 같은 공경을 드릴 수 없다고 반론한다 이에 테오도로, . 스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원형은 본질적으로는 이미지 안에 있지 않다 오히려 원형은 위격의 닮음

.

에 의해 이미지 안에 있는 것이다 이미지는 유사함에 (hypostaseos homoiotes) .

관해서 원형과 동등하며 동등한 영광을 가지고 있다.”[3 C 1]

이미지와 닮음 이미지와 닮음이미지와 닮음 이미지와 닮음 2.2.

2.2.

이미지(image)와 닮음(likeness)의 분리는 로마서3 23절에서 기인한다. 바오로는 여기서 하느님의 영광 ’(doxa or likeness)의 상실만을 언급할 뿐 이미지 의 상실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eikon) .

는 플라톤의테아이테토스176 B (homoiosis theo: likeness to God) 세기126(kat'eikona kai kath'homoiosin: ad imaginem et similitudinem:

에 연결시킨다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 실존의 목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

표는 하느님과의 동화( , assimilation)인데 이는 지혜와 완덕을 통해 가능한 것 이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 또한 덕행으로 하느님을 닮아야한다. .33) 이리하여 닮음과 완덕의 연결이 전통이 되었다.34)

이콘 파괴파도 또한 이미지의 윤리적 이론을 택한다 즉 성인들의 이콘을 제작. 하기보다는 살아있는 이미지로서의 성인들의 덕을 재생산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 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도덕적 미는 생명이 없는 이콘에서는 붙잡을 수 없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그려진 이미지. (painted image)보다 쓰여 있는 문자(written

33) Clemes of Alexandria, Stromateis , 2, 131, 2-6.

34) Parry, op. cit., 89-90.

(15)

가 덕행생활을 위한 보다 큰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제 차 공의회는 문자

word) . 7

안에서 선포되는 것과 이콘이 색채 안에서 성취한 것은 동일하다”35)고 하는 바실 레이오스의강론 을 토대로 이를 반박한다 그런데 제 차 성화상 파괴 논쟁 . 2 이후 이콘 옹호파들은 이 균형을 깨고 다시 쓰여 있는 문자보다 그려진 이미지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논쟁 이전에는 이 두 가지 묘사 방식이 동등한 대접을 받았. 으나 논쟁의 영향으로 그 균형이 깨어져버린 것이다.36)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동 정 성모의 이미지를 복원하며 행한 포티오스의 강론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것들은 이야기와 그림 양쪽에 담겨있다 그러나 경쟁에서 이긴 것은 청

.

(hearers)이 아니라 관객(spectators)이다 그녀의 팔에 창조주이신 아기를 안고. 있는 동정녀를 보라. 누가 그 모든 언어를 능가하는 이 형언할 길 없는 겸손 을 보고 찬미하기 위하여 일어서지 않겠는가.”37)

테오도로스는 이미지란 용어의 사용을 신체적 형태(somatoeides charakter, 에만 국한한다 즉 이미지는 이성이나 영혼이나 덕이 아니라는 bodily form) [1,16].

것이다 요점은 이것이다 인간이 육체를 가진 것이 천사들보다 덜 영적이게 하지. . 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심신. ( ) 모두가 하느님에 의해 무로부터 창조되었 다면 그 심신 모두는 하느님의 이미지 안에 있는 것이 된다.38)

한계 지음과 한계 지을 수 없음 한계 지음과 한계 지을 수 없음한계 지음과 한계 지을 수 없음 한계 지음과 한계 지을 수 없음 3.3.

3.3.

이 주제에 대해 테오도로스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그것은 종교적 이미지 의 그리스도론적 옹호를 위해서 매우 의미심장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주요 관심은.

35) Basilius, Homilia 19 [ PG 31,509].

36) Parry, op. cit., 94. 테오도로스 자신은 시각과 청각은 같은 정도로 예민하 “ 다 그 . 等價 을 진지하게 파악해야한다 고 말한다 ” [1,13]. 그러나 다른 곳에 서는 “ 이 두 감각은 동등한 지각력을 가지고 있으며 같은 정도로 존중되어 , 야한다 고 말하면서도 ” “ 아마 시각이 보다 고상한 감각으로 우선일지도 모른 다 ”[1,19] 라고 말한다 .

37) C. Mango, The Homilies of Photius Patriarch of Constantinople , Cambridge, Mass. 1958, 294.

38) Parry, op. cit., 96.

(16)

이 한계 지음(circumscription)을 그리스도의 위격과 나아가 그의 이미지와 연결시 키는 것이었다.39)

제 논박 그리스도론 제 논박 그리스도론 제 논박 그리스도론 제 논박 그리스도론 (1) 1 :

(1) 1 : (1) 1 : (1) 1 :

어떤 신학자도 하느님은 전혀 파악할 수 없고 한계를 그을 수 없는 분

,

이라고 하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하느님의 구원

(aperigrapton) .

경륜의 신비에 의하면 삼위일체 가운데 한 위격이 인간 본성에로 들어와 한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다 이것은 참으로 역설이다. [1,2]. 우리는 저 한계가 그어진 (perigrapton)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말씀의 육화를 완전히 부정. 하는 불신의 극치를 범할 것이다[1,3].”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 있는 두 본성에 대한 테오도로스의 답변은 비잔틴 그리스 도론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한 단순한 인간 이 된 것도 아니요 한 특정한 인

(psilos anthropos) ,

간을 취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정통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 . 려 그분은 보편적인 인간(katholou anthropos) 혹은 온전한 인간 본성(hole 을 취하셨다고 말해야만 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말해야만 한다 즉 이

physis) . .

온전한 인간 본성은 한 개인 안에서(en atomo)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다.”[1,4]

제 논박 부활한 그리스도 제 논박 부활한 그리스도 제 논박 부활한 그리스도 제 논박 부활한 그리스도 (2) 2 :

(2) 2 : (2) 2 : (2) 2 :

이콘 파괴파는 그리스도는 수난까지는 한계 지을 수 있었으나 부활 후에는 그, 렇지 않다고 말한다[2,41]. 그 근거는 예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육에 따라 이해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2고린5,16]는 성서 말씀이다 그러나 테오도로스는. 부활 후에도 그리스도는 그 인성의 속성들을 잃지 않았다고 말한다 부활 후에도. 그리스도는 당신 제자들에게 나타나 나의 손과 발을 보아라 그것이 바로 나 자 . 신이다 루까”[ 24,39]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명백히 수난 전에 그분에게 한계. 가 지어졌듯이 부활 후에도 그분은 한계 지어진다[2,42].

39) Ibid., 99.

(17)

이콘 파괴파는 앞의고린도후서516절을 인용하고 있는 닛사의 그리고리 오스의 글에서40)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듯한 두 가지 표현을 발견한다 하나. 는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느님의 구원 경륜 때에만 존재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 , 는 그 인성은 보다 나은 것을 위해서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즉 사멸에서 불멸, . 로 시간에서 영원으로 신체적인 것에서 비신체적인 것으로 반면에 테오도로스는, , . 세기의 시나이의 아나스타시우스의 글에서 지지를 발견한다 그의 몸은 부활 후

7 . “

에도 한계 지을 수 없는 것이 되지는 않았다 신성은 비가시적이나 신체는 그대로. 가시적인 것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성의 위격적 결합.”

은 그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 세기 이콘 옹호파의 입9 장이었다.41)

테오도로스의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은 한 몸(syssomos: 에페 이라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이는 그리스도 교회의 공동체성

3,6) . (concorporality)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스도가 부활 후 한계 지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인들. 도 그러하다.[2,47]

제 논박 수난과 한계 지음 제 논박 수난과 한계 지음 제 논박 수난과 한계 지음 제 논박 수난과 한계 지음 (3) 3 :

(3) 3 : (3) 3 :

(3) 3 : 42)42)42)42)

테오도로스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근거하여 한계지음을 주장한다[3 A 6]. 그리 스도의 신성은 수난을 받지 않으나 두 본성이 분리되지도 않고 혼합되지도 않는, 말씀의 위격은 수난에 참여한다 테오도로스는 만일 누 (undivided-unconfused) .

군가가 묘사될 때 그려지는 것은 본성이 아니라 보이는 위격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이미지 논쟁에 있어서 그의 특별한 공헌이다.43)

이코노클라즘과 비잔틴 미술 이코노클라즘과 비잔틴 미술 이코노클라즘과 비잔틴 미술 이코노클라즘과 비잔틴 미술 ....

40) Gregorius of Nyssa, Refutation of Apollinaris , 53.

41) Parry, op. cit., 103.

42) 니케포로스에게 있어서 한계 지음 , (perigraphe) 은 세 가지 방식으로 일어난 다 비신체적인 것은 공간 . (topos) 안에서 비시간적인 것은 시간 , (chronos) 안 에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파악 , (katalepsis) 안에서 제한된다 .[2,13]

43) Parry, op. cit., 108.

(18)

이코노클라즘은 본질적으로 신학 논쟁 그것도 그리스도론 논쟁이었기에 본 논문 은 어쩔 수 없이 신학적인 관점에로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비잔틴. 미술의 외적 고찰이라는 점에서 그 내적 고찰이랄 수 있는 구체적인 미술사적 보 완이 요청된다.44)

비잔틴 미술은8-9세기 이코노클라즘을 경계로 하나의 뚜렷한 변화를 보여주는 데 그것은, 6-7세기 바실리카 성당의 궁륭을 장식하던 십자가45),어린양46),키로 문자 등의 상징적 기호가9-10세기 원개식( ) 성당에서는 반신상( ) 판토크라토르(pantokrator)로 바뀌는 것이다47). 여기서 반신( )이 표현하는 것 은 창조주는 스스로의 위대함을 결코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며 이전부터 성부, , (

와 공유하던 위대함은 비천한 인간적 조건 아래로 내려왔어도 변함이 없음을 )

말하고 성부와 성자, ( )의 영광과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 다.48)

이코노클라즘 이전의 바실리카 성당의 신랑( , nave)은 땅을 상징하고 압시, (apsis)는 하늘을 상징하는 바 그곳은 하느님의 순간적 현현의 장소였다 그러므. 로 예언자들과 사도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변모와 승천의 증인들이 되었다49). 그러나 이코노클라즘 이후의 원개식 성당에서 성모와 천사들 예언자들과 사도들, 및 복음서 저자들은 그들의 관상 능력에 따라 하느님의 영원한 통치를 바라보고 있다.

이콘에 있어서도 이코노클라즘을 경계로 뚜렷한 변화가 보이는데 예를 들어, 6 세기경의 이콘은50) 헬레니즘적 사실성( )을 지니고 있는데 비해서, 10세기의 이콘들은 정교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근동의 영향으로 관념적이 되어갔다51). 신성 에 의해 성화된 인간이 그 목표였기 때문이다.

44) Sahoko Tsuji, 『 ビザンティン の 界 』 , 東京 1993, 3-4.

45) 그림 [ 2] 산타폴리나레 인 클라세 성당 압시스와 승리의 문 모자이크 라벤 , 나 근교 , 549 년경 .

46) 그림 [ 3] 산 비탈레 성당 둥근 지붕의 모자이크 라벤나 , , 6 세기 . 47) 그림 [ 4] 몬레아레 대성당 압시스의 모자이크 , 1180 년대 . 48) Tsuji, op. cit. 21.

49) 그림 [ 5] 「 그리스도의 승천 」『 Rabbula 복음서 』 586 . 년

50) 그림 [ 6] 「 그리스도 시나이산 성 카타리나 수도원 」 , 6 세기 .

51) 그림 [ 4] 참조 .

(19)

결론결론 결론결론 ....

제 차 성화상 파괴 논쟁을 재고하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2 . 년 제 차 공의회까지만 해도 동방 비잔틴 교회의 정통적인 가르침 안에 1. 787 7

서 시각 그려진 이미지 과 청각 쓰여진 문자 은 동등한 가치와 존중을 받았다 그, ( ) ( ) . 러나 논쟁을 통해 이콘 파괴파는 청각을 이콘 옹호파는 시각을 우위에 두게 된, , 다 이후 서방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청각에로 기울어져 갔다 그러나 그 중간에 서. .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콘의 신학적 자리매김이 분명하게 정리된 제 차 공의7 회의 결정을 진정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인다.52)

년의 교회회의의 이콘 파괴파는 참다운 이미지의 본성이 그리스도교적 2. 815

덕목을 부여받은 인간의 영혼에 있다고 보며 이콘의 도덕적 미를 강조하였다 이. 에 반해 이콘 옹호파는 특히 테오도로스의 이미지론에서 보듯이 이콘을 신체적, 형태로만 국한하였다 그리고 그 이콘이 원형과 동등한 공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은 .

본성의 일치 에 따른 것이 아니라 위격적 닮음의 일치

’(the unity of nature) ’(the 에 따른다고 보았다

unity of hypostatic likeness) [3 C 9].

테오도로스는 어떤 물질 안에 그 이미지가 옮겨지지 않은 것은 원형이라 부

3.

를 수 없으며 그것은 일종의 낙태, ( , abortion)이다”[3 D 8]라고 말함으로써, 하느님의 인간체험( , incarnatio)이 그러하듯이, 인간의 하느님체험 신( , 또한 물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는 물

theosis) .

론 그리스도 가현설( , docetism)의 끈질긴 위험을 염려한 측면이 강하다 그. 는 오히려 정신은 물질을 통하여 원형에로 상승해 가는 것이 정통신앙이라고 주장 한다[1,13]. 그는 말한다. “그림자가 햇빛을 받아 더 분명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52) J. Kardinal Ratzinger, 「 Die Bilderfrage in: 」 Der Geist der Liturgie,

정종휴 역 과 과 제

Herder 2000. , 「 (I) : 」 『 , 』

호 년 여름

137 (2002 ), p.133.

(20)

이미지도 자신을 물질 안에 각인하여 드러날 때 더 또렷해지는 것이다, .”[3 D 12]

그러한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현전 ( )의 형상들을 능가해오는 것들의 광경53) 즉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있는 것 갈 ”[

3,1]이 아닐까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실수 없이? 그분을 묘사할 수 있다”[3 D 13]고 말한다.

핵심어핵심어 핵심어핵심어

성화상 파괴 논쟁 이콘 파괴파 이콘 옹호파 위격 구원 경륜 한계 지음 한계 지을 수 없음

53) 1 고전 13,12 “ 우리는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 ,

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수치

그림 몬레아레 대성당 압시[4] 스의 모자이크 , 1180 년대 . 그림[ 5 ] 「 그리스도의 승천 」복음서년Rabbula586 .『』 그림 6 「 그리스도 시나이산 성 카타리나」 수도원 , 6 세기 .

참조

관련 문서

상임위원회의 결정이 예결위의 결정과 유리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임위에서 삭감을 하였는데 예결위에서 증액하는 경우도 있고 상임 , 위에서 증액하였는데

• Serializable 하지 않은 것은 저장되지 않는다..

이원정이 이렇게 말한 것은 본인이 아들의 당락에 간여하지 않았기에 당당하게 말한 것인데 , 탄핵하는 사람은 그 말에 혐의를 두어 아들의 글이라는 것을

■ 실습기관 자체적으로 운영 일정, 규모, 지원 사항 및 계획 등 현장실습학기제 운영에 관한 의사 결정이 없는 상태에서 학교의 필요에 기반하여 운영하는 형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것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 다 가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다

예산의 총액을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에 예산의 개별 항목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식으로 예산에 대한 결정이 두 단계로 이루어질 경우 예산과정이

따라서 울타리나 담, 문과 같은 것은 조형물 이 아니고 다른 시설물로 취급되고 있다..

o 현대자동차가 1985년에 캐나다에 직접투자를 하였다가 철수한 것은 현대자동차가 외국인비용을 상쇄할 정도의 강한 경쟁우위가 없었기 때문이며, 이후 현대자동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