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사고
제 3 장 분석적 사고
김남중
서론: 텍스트 분석의 어려움
대학에서 텍스트를 읽을 때는 종종 저자와 독자 사이에 이해력의 간격이 생기게 된다. 이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는 능동적 독해 활동이 요구되는데, 문제는 다음과 같은 실수를 자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I 부정확한 독해: 이 문제는 (i) 텍스트를 그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눈 가는 대로 읽거나, (ii) 텍스트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는지의 여부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iii) 이해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텍스트를 주의 깊게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실패하고 결과적으로 저자가 말하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잘못 파악하게 된다. I 문제 분석 또는 해결 과정 상의 실패: 우리는 (i) 텍스트가 다루는 문제가 무엇인지, (ii) 그 문제와 관련된 주요 쟁점은 무엇인지 고려하지 않고는 한다. (문제 분석의 실패) 또는 (iii) 그 문제를 해결하게 위해 필요한 배경지식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거나 (iv) 그것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간과한다.서론: 텍스트 분석의 어려움 (계속)
I 독해와 사고 과정에 대한 반성의 부재: 즉 자신의 텍스트 이해와 분석 과정의 타당성 여부를 중요하게 여기고 반성적으로 점검하지 않는다. 특히 문제가 요구하는 정답을 손쉽게 찾아 내려고 할 때 이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 주에는 체계적 훈련과 연습을 통해 이런 실수를 줄이는 법을 배울 것이다.글과 사고의 단위
글은 저자의 견해로서의 생각과 그것을 낳은 생각의 과정으로서의 추론의 표현이다. 그만큼 글과 생각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I 사고의 최소 단위는 개념이며, 그것은 낱말 또는 (낱말보다는 크지만 문장보다 작은) 어구로 표현되고 I 개념이 모이면 판단이 형성되며, 판단은 참/거짓을 가릴 수 있는 문장으로 표현되며, I 판단이 모여서 추론을 이룬다. 이렇게 글의 단위와 생각의 단위는 서로 대응한다. 그러므로 저자의 생각(⊃개념, 판단)의 분석은 결국 글의 단위의 분석을 통해 이뤄진다.글과 사고의 단위 (계속)
글의 상대적으로 큰 단위로서의 텍스트는 더 작은 단위들로부터 다음 방식으로 구성된다: I 글의 기본 단위는 (개념을 표현하는) 낱말이며, I 낱말들이모여 (판단을 표현하는) 문장이 되고, I 문장들이 모여 (추론과정을 표현하는) 단락이 된다. 더하여, 단락들이 모여 하나의 장/절을 이루거나 한편의 텍스트(예: 소설의 한 장; 한 편의 학술 논문)를 이룬다. 나아가 장/절들이 모여 더 큰 텍스트(예: 한 편의 소설)를 이룬다. 이처럼 (i) 어떤 글의 부분들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를 “구조”라고 부르는데, 때때로 (ii) 그런 구조를 갖춘 글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일반적으로, 글의 부분들이 모여–(ii)의 의미에서–구조를 이루고, 이것은 더 큰 구조의 일부분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읽을 때, 그 글을 구성하는 “부분들로 나누고” 다시 그 부분들의 관계즉–(i)의 의미에서–글의 구조를 파악하는 훈련을 한다. 이것이 글의 분석이다.이름의 양 측면: 외연과 내포
우리는 모든 사물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대단히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물들을 하나로 묶어 이름(name/noun)을 부여한다. 우리는 닮은 사물을 하나로 묶어 이름을—이 경우에는 일반 명사(general noun)를—부여한다. 이러한 일반명사에 대응하여 그것이 정확하게 적용되는 대상들의 집합이 존재할 텐데, 그 집합을 그 일반명사의 외연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일반명사가 그 외연을 확정하는 것은 직접 이뤄지는 것이아니라, 어떤 공통된 특징이나 조건을 통해서 이뤄지게 될 텐데, 그것을 그 일반명사의 내포라고 한다.이름의 양 측면: 외연과 내포 (계속)
예) “짝수”의 외연은 {2, 4, 6, 8, 10, 12, . . .} 또는 {x ∈ N|x mod 2 = 0}이며, 이때 x mod 2 = 0 또는 어떤 자연수로 나눴을 때 나머지가 없다는 조건을 “짝수”의 내포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일반명사와 비슷하게, 형용사도 외연과 내포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예) “양의(positive)”의 외연은 {x|x > 0} 이며 그 내포는 x > 0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표현이 나타내는개념이라고 하면 그 외연보다는 내포를 말하지만, 논의의 목적에 따라서는, 어떤 표현의 개념을 그 외연과 동일시해도 큰 문제가 안될 때도 있다.애매성과 모호성
언어는 생각을 반영한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 불명료할 때, 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어떤 표현을 불명료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 외연과 내포 역시 불투명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애매성(ambiguity)과 모호성(vagueness)이다.애매성과 모호성 (계속)
어떤 표현이 애매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모든 표현 x에 대해서, x가 문맥 c에서 애매하다 IFF x가 c에서 나타낼 수 있는 둘 이상의 개념들이 존재한다. 예) “나는 밤을 좋아한다”가 발화된 문맥에서 “밤”은 먹는 밤과 낮이아닌 밤의 두 개념들 중 어느 것도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그 문맥에서 “밤”은 애매하게 쓰였다. 다음으로, 어떤 표현이 모호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모든 표현 x에 대해서, x가 문맥 c에서 모호하다 IFF x가 c에서 가지는 적용범위가 분명하지 않다. 예) “병철이는 아동을 성추행했으니 무기징역을 받아야 돼!”라고 누군가가 말했다고 하자. 이 문맥에서 “아동”은 불분명한 적용범위를 가진다.애매성의 문제점
애매성의 문제점은 무익한 논쟁을 자주 일으킨다는 것이다. 어떤 표현을 논쟁의 한 당사자는 이 뜻으로, 또다른 당사자는 저 뜻으로 쓴다면, 언뜻 보기에 양자의 의견이 상충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역설적으로, 진정한 의견 충돌이 없기 때문에논쟁에 끝을 맺을 수 없게 된다. 예) 갑돌이는 “눈은 모두 희다”고 주장하는데 병철이는 “에이, 검은 눈도 파란 눈도 있는데 무슨 소리야?”라고 말하는 경우, 만일 갑돌이는 눈 (snow)을 뜻한 반면 병철이는 눈(eye)을 뜻했다면 이들은 상충하는 주장들을 하고 있지 않다. 이때 양자가 다른 뜻으로 “눈”이라는 표현을 쓰는 한, 이 논쟁이 해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표현의 애매성으로 인해 무익한 논쟁이 지속되는 경우, 그 애매성을 누군가가 지적함으로써 논쟁을 끝맺을 수 있다. 예) 갑돌이는 하늘에서 내리는 얼음가루 뭉치들이 희다고 말한 것이지만, 병철이는 어떤 사람들은 검은 색 눈동자를, 다른 이들은 파란 색 눈동자를 가졌다고 말한 것임을 누군가가지적하면 위의 논쟁은 끝날 수 있다.모호성의 문제점
모호성의 문제점도 비슷하다. 어떤 표현의 적용범위가 불분명하다면, 한 사람은 문제되는 사례에 그 표현이 적용된다고, 또 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각각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어느 한쪽도 상대방을 완전히 반박할 수없다. 예) 정희는 “병철이는 아동을 성추행했어!”라고 말하지만 진수는 “에이, 병철이가 성추행범인 것은 맞지만 상대방이 아동은 아니었지!”라고 말할 때, 어느 쪽도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이때 “아동”의 적용범위를 명료히 하지 않는 한,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표현의 모호성으로 말미암아 논쟁이 끝나지 않는 경우, 그 표현의 적용범위를 누군가가 명료하게 정하면 된다. 예) 우리 나라 법정에서는 아동의 범위를 13세 이하로 정함으로써 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정의 (Definitions)
글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낱말과 문장의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작업은 또 낱말과 문장에 대응하는 생각들, 즉 개념과 판단을 분명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것은 나아가서 그런 판단들로 이뤄진 추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돕는다. 그러면우리가 쓰는 낱말과 문장의 의미를 어떻게 명확히 할 수 있을까? 한 문장의 의미의 불명료성(즉 애매성 또는 모호성)은 그것을 구성하는 낱말들이 문법적으로 조합된 방식이 불명료하하거나 (문법적 불명료성) 그 낱말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의미가 불명료하기 때문에 (의미의 불명료성) 발생한다. 예1) “모든 포유류는 난생이지 않다”는 “[모든 포유류는 난생이지] 않다”와 같은 뜻으로도,“모든 포유류는 [난생이지 않다]”와 같은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예2) “자유의지와 결정론은 양립가능하다”라는 문장은 “자유의지”가 무슨 뜻으로 쓰이는지에 따라서 다른 뜻을 나타낼 수 있다. 어떤 표현의 의미의 불명료성은 흔히 그 표현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명료히 정의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약정적 정의
약정적 정의(spitulative definition)는 새로이 도입되는 용어의 의미를 (즉 내포 또는 외연을)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의를 위해서는 그 의미가 정해지는 단어가 기존에 어떻게 쓰였는지 신경쓸 필요가 없다. 예) 당신이 “부분적으로 정렬된 집합”이라는 용어를 새로이 도입한다고 하자. 그 말의 뜻을 당신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모든 집합 A에 대해, A가 ≤에 의해 부분적으로 정렬된 집합이다 IFF 모든 x ∈ A에 대해 x ≤ x이고, 모든 x , y , z ∈ A에 대해 x ≤ y 이고 y ≤ z이면 x ≤ z이며, 모든 x , y ∈ A에 대해 x ≤ y 이고 x 6= y 이면 y 6≤ x 이다. 약정적 정의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이 도입되는 용어들의 의미를 명료하게 만들 수 있으며, 또 기존의 의미에 신경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정해진 의미는 매우 명료하고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존의 용어들과 그것들을 포함한 문장들의 뜻을 명료하게 하는데는 약정적 정의를 쓸 수 없다.사전적 정의
사전적 정의(lexical definition)는 어떤 용어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의미를 명시적으로 쓴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주로 사전에서 찾을 수 있다. 예) 네이버 국어 사전에 의하면 “원”은 “둥글게 그려진 모양”와 같은 뜻이며, 이것은 우리들이 “원”을 쓸 때 생각하는 개념과 대략 일치한다. 이 정의를 쌍조건문 형태로 다듬으면 아래와 같이 된다: (D*) 모든 x에 대해, x는 원이다 IFF x는 둥글게 그려진 모양이다. 약정적 정의와 달리, 사전적 정의는 기존의 용어에 대해서도 그 뜻을 더 명료하게 나타내어 줄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그렇게 정의된 용어가 원래부터 불명료한 뜻을 지니고 쓰였다면, 그 용어나 그것이 포함된 문장의 뜻을 사전적 정의를 통해서 명료하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둥글지만 아주 약간 일그러진 형태는 원인가 아닌가? “둥글게 그려진 모양”이란 정의만으로는 이 물음에 답하기 쉽지 않다.분석적 정의
어떤 용어에 대한 분석적 정의(analytic definition)는 그것이 원래 가졌던 뜻과 어느 정도 일치하지만 동시에 더 명료한 개념을 제공하는 정의이다. 예) 다음 두 정의를 비교해 보자: (D) 모든 x에 대해, x는 원이다 IFF x는 이차원 평면 위에서 어떤 점 y 로부터 동일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점들의 집합이다. (D) 역시 우리가 “원”에 결부시키는 개념과 꽤 합치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깨달으려면 상당히 골똘히 생각하여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가 (D*)보다 훨씬 명료한 정의라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왜 그런가?) 즉 (D)는, 기존의 원 개념을 상당히 충실히 담아낼뿐 아니라 더 명료하게 다듬어 제시한다는 점에서, 분석적 정의의 좋은 예이다. % 분석적 정의에 대한 위 논의는 교과서의 그것과 다르다. 이는 교과서 필진과 김남중 교수님 사이에 학문적 견해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우리 수업에서는 김교수님의 견해를 따르기로 한다.정의의 기법들: 직시와 서술
약정적, 사전적, 분석적 정의들을 막론하고, 어떤 용어를 정의함의 목표는 그 용어의 내포와 외연을 확정하는 것이다. 이 목표는 보통 직시나 서술의 기법을 통해 달성된다. 직시(ostension): 이것은 어떤 용어가 적용되는 대상들을 가리켜서 그외연을 확정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기린”의 외연을 정하기 위해서 동물원에 가서 실제 기린을 가리키면서 “이런 짐승들이 기린이야”라고 정의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기법은 어떤 용어가 유의미하지만 그 외연이 비어있을 때에는 적합하지 않다. 예1) “유니콘”의 뜻을 실제 유니콘을 가리키면서 정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주어진 용어의 외연이 무한집합일 때도 효과적이지 못하다. 예2) “짝수”의 뜻을 “2, 4, 그리고 비슷한 자연수들이 짝수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불명료하다. 왜냐하면 과연 짝수 즉 2, 4, 6, 8, 10, . . . 을 뜻한 것인지 아니면 2n 즉 2, 4, 8, 16, . . . 을 뜻한 것인지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다.정의의 기법들: 직시와 서술 (계속)
서술(description): 이것은 어떤 대상에 주어진 용어가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만족해야 하는 조건을 서술함으로써 그 용어가 나타내는 개념을 확정하는 방법이다. 예) “짝수”의 뜻을 다음 서술을 통해 정의할 수 있다: 모든 자연수 x에 대해, x는 짝수다 IFF 어떤 자연수 y 에 대해 x = 2 · y 이다.전통적으로는 이른바 류(genus)와 종차(specific difference)를 기술하여 어떤 종의 개념을 정의하고는 하였다. 예)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대략 다음같이 정의하였다고 한다: 모든 x에 대해, x는 인간이다 IFF x는 동물(animal)이고 x 는 합리적(사고능력을 가진 존재)이다. 여기서 동물은 인간이 속한 류, 합리성은 다른 동물로부터 인간을 구별하는 종차이다. 두 기법 가운데 서술법이 더 일반적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