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현실
내 삶과 분석철학
철학이 내 삶에 가지는 의미
지난번 강의에서는 철학, 특히 분석철학이 어떤 학문인지를 살펴보았다. 이번 강의에서는 철학과 분석철학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논의해 볼 것이다.
역사적 실례로서, 탈레스를 생각해 보자. 그는 고대 그리스에서---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오니아의 밀레토스에서---활동했던 철학자로서,
만물은 물로 되어 있다
고 주장했다. 이 대답 자체는 분명히 틀렸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만물의 원리(arche)는 무엇인가?
라는 일반적 물음에 대해 합리적 방식으로 답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철학이 내 삶에 가지는 의미
또 한 사람 생각해 볼만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는, 물론
소크라테스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메논과 나누는 대화를 살펴보자:
소크라테스: 자 그렇다면 다시 묻겠네. 자네는 탁월함(arete)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메논: [만일 탁월함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하나의 어떤 것이라면 사람을 지배하는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소크라테스: 그러면, 아이의 탁월함도 노예의 탁월함도 동일한가?
노예의 탁월함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라면 그가 정말 노예인가?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탁월함 또는 덕(arete)에 대해서 탐구하는 방식이 합리적 사유에 근거했다는 것과 어떤 비합리적 권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철학이 내 삶에 가지는 의미 (계속)
지난 강의에서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했던 것을 다시 떠올려 보자. Sinott-Armstrong에 의하면, 철학이란
실재하는 것 전체, 즉 세계에 대한 체계적 이해
를 추구하는 합리적 탐구활동이다. 탈레스가 제시한 "만물은 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답은, 비록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명백히 틀렸지만, 그럼에도 철학적 사유의 좋은 예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예를 생각해 보면, 위의 체계적 세계관이란 결국
도덕적 행위주체로서 나를 포함하는 세계에 대한 체계적 이해 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철학이 내 삶에 가지는 의미 (계속)
정리해 보자면, 철학은 체계적 세계관을 목표로 하되,
● 국한된 한 영역에 대해 그 자체로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지향하고,
● 세계 속에 우리가 어떤 위치를 가지는지를 그 체계적 세계관의 일부로서 탐구하며,
● 합리적 사유를 진리탐구의 방법으로 채택하며,
● 위의 탐구들에 있어서 어떤 초합리적 권위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철학자는
철학이 내 삶에 가지는 의미 (계속)
● 세계 속의 어떤 존재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음미(examination)하며,
● 그 세계 속에서 나의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고민하고,
● 모든 철학적 논쟁을 계시 등이 아닌 합리적 사유를 토대로 해결하려 하며,
● 특히 그런 논쟁에 있어서 정치적, 종교적 권위도 무비판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다.
철학이 내 삶에 가지는 의미 (계속)
그렇다면, 명백히,
철학자는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이 철학이 우리로 하여금 의미있는 삶을 살게 해 준다. 왜냐하면, 앞에 언급한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순한 양처럼 지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초 일초를 그 의미를 곱씹어 가며 살아가는 이가 아니겠는가?
과학과 철학
철학의 이런 특징은 다른 학문 또는 지적 활동들과 다음과 같은 차이를 만든다:
(과학과 철학) 분과 학문의 과학자들은 합리적 사유를 도구로 특정한 부류의 존재자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지만, 그것들이 우리들의 체계적 세계관에 불러일으키는 개념적 문제들에
대해서 언제나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때는, 대개 그이들의 가장 철학적인 순간이다.
종교와 철학
(종교와 철학) 종교적 권위자들도 세계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지향하지만,
1. 첫째, 이 과정에서 영적 계시에 의존하며,
2. 둘째, 바로 그렇기 때문에, 초합리적인 권위를 인정한다.
이것이 꼭 종교와 철학이 피할 수 없는 갈등관계에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라이프니쯔는 불합리성과 초합리성을
구별한 바가 있는데, 건전한 태도를 가진 종교적 권위자들은 대개 종교적 계시가 초합리적일지언정 불합리하지는 않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테툴리아누스와 같이 예외적인 인물도 있다. "주여, 나는 그것이 불합리하기에 믿습니다.")
전문가 대 일반가
(Specialist vs. Generalist)
이제 철학이 내 삶을 의미있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점은 충분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내가 철학을 공부하면, 그 이외에, 특히 직업적으로는, 어떤 좋은 점들이 있을까?
이미 강조한 대로, 철학은 그 본질에 있어서 한 영역의 존재자들에 국한된 지식이 아니라, 세계의 일부로서의 그 존재자들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 예를 들어, 다음 물음들을 생각해 보자:
물리적 대상들의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은 무엇인가?
빛은 파동인가 입자인가?
...
이것들은 물리학자들이 물리학 안에서 묻고 답하려 하는 물음들의 전형적인 예다.
전문가 대 일반가
(Specialist vs. Generalist)
이에 반해, 물리학의 철학을 연구하는 앞 슬라이드의 물음과
같은 물리학 안의 물음보다, 물리학 밖에서 물리적 현상에 대해 합리적으로 물을 수 있는 물음, 예를 들어 운동이 발생할 수 있는 선행조건에 대한 물음을 묻고 답하려 한다. 다음 물음들을
생각해 보자:
물리적 대상들에 덧붙여 시공간적 장소들도 존재하는가?
시간은 왜 과거에서 미래로만 흐르는가?
과거의 사물과 사실들은 실재하는가?
미래의 사물과 사실들은 실재하는가?
...
전문가 대 일반가
(Specialist vs. Generalist) (계속)
나아가서, 철학자는 실재하는 것 전체에 대한 물음들---즉 체계적 세계관을 지향하는 물음들---예를 들어:
물리적 존재자들 이외에 비물리적 존재자들도 있나?
과학적 물음이건 철학적 물음이건 그것의 답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X의 철학에 대한 물음이건, 일반철학에 대한 물음이건,
대부분의 철학적 물음들에 대해서 우리는 정답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물음들에 대해서는 결정적 증거(conclusive evidence)를 경험적으로 발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철학이 개념적 명료화 (conceptual clarification)를 목표로 하는 전반적으로 선험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전문가 대 일반가
(Specialist vs. Generalist) (계속)
이 때문에, "일반가"라는 말이 우리말에는 없지만, 말하자면, 철학자는 태생적으로 전문가(specialist)이기보다는 일반가
(generalist)이다.
이것은 철학자가 특정 영역의 존재자들에 국한된 문제들에 대해서 탐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물리학의 철학자들이 탐구하는 물음들에서 보았듯이, 철학자들도 그런 문제들을 연구한다. 다만, 그런 문제에 대한 이론을 옹호하거나 비판할 때에도, 철학자는 체계적 세계관의 일부로서 그 이론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 대 일반가
(Specialist vs. Generalist) (계속)
또, 그 본성 상,
철학자는 합리적 사유를 통해서 개념적 혼란을 해결하는데 능하다.
이런 두 가지 특징들로 인해서, 자연과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 같은 전문가들에 비해서,
개념적 혼란이 주로 문제의 원인이 되는 일반적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일반가로서의 철학자들은 유리하다.
분석철학을 공부하면 좋은 것은?
지금까지는 철학 일반에 대해서
1. 그것이 내 삶을 어떻게 치열하고 의미있게 해주는지, 그리고 2. 그것이 다른 이들에 비해서 직업인으로서의 나에게 어떤
장점들을 제공하는지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철학의 다른 전통들과 비교해 볼 때, 특히 분석철학은 어떤 잇점을 제공해 줄까?
물론 분석철학자들도 다른 전통의 철학자들과 마찬가지
이유에서, 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치열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분석철학을 공부하는 것의 좋은 점은 특히 그 직업적 잇점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분석철학이 내 삶에 가지는 의미 (계속)
예를 들어, 현상학자들은 "현상학적 판단중지"라고 불리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철학적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 문제들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고---그 창시자인 훗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문제들을 "괄호치고"---그 문제의 선행조건이 되는 주체의 의식 자체를 관조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사실의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어떤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다.
아마도, 그런 방법을 통해서 그런 문제들 가운데 어떤 것은 해결하거나 진전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분석철학이 내 삶에 가지는 의미 (계속)
그러나, 철학이 제공하는
● 개념적 혼란의 합리적 해소에 능하다거나
● 주어진 문제가 전문가적 관점이 아니라 일반적 관점을 오히려 요구하는 경우에 유리하다는
직업적 잇점에 있어서는, 앞에 살펴본 현상학적 판단중지의
훈련이 그런 잇점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반면 분석철학은 논리적 개념분석을 주된 방법론으로 하는 그 본성 때문에, 학부 레벨의 철학적 훈련은 졸업생에게, 비록
전문철학자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직업인으로서 미래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유리한 점을 제공한다.
가능한 진로: 논술
그렇다면,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학부에서 철학 특히
분석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내 삶에 어떤 진로를 열어줄까?
우리 학과에서는 이른바 논술트랙 맞춤교육을 제공한다. 이 트랙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논리적이고 명료한 방식으로 글을 쓰고, 또 다른 이들에게 그런 기술을 가르쳐줄 수 있는 직업으로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글쓰기는
글이 다루는 이슈 또는 문제에 대한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정리된 방식으로 써서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능한 진로: 출판
같은 이유에서, 철학과를 졸업한 많은 이들이 출판업에 종사하고는 한다. 왜냐하면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은 단지 수동적으로
작가의 글을 받아 인쇄하고 판촉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작가의 글을 합리적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고, 더 명료하게 읽힐 수 있도록 가다듬고 작가에게 조언을 제공하는
능동적 역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히 논픽션의
경우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넓고 합리적인 시각을 가지고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분석철학의 훈련이
유리하다.
가능한 진로: 타 전공 대학원
또, 이런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글쓰기 능력과 개념 분석 능력은 타 전공 대학원에 진학하는데 있어서도 상당한 잇점을
제공한다. 다음은 궁극적으로 법학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 미주리 대학 철학과에서 제시하는 조언이다:
...법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법조계에 진출하려는 학생들은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할만한 주된 이유가 둘 있다. 첫째, 철학 공부는 분석적 사고와 논리적 논증기술을 훈련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는 법대에서의 성공과 법조계에 있어서의 실제 성공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둘째,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법적인 문제들을 [철학적 방법으로]
음미하도록 하며, 이것은 변호사 판사, 법학자에게 흥미로울 수 있다.
이런 잇점들은 특히 분석철학을 공부할 때 많이 얻을 수 있기 마련이다.
요약
● 철학은, 탈레스와 소크라테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도덕적 주체로서의 우리들 자신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목표로 한다.
● 이때 철학자는 이 모든 것을 합리적 태도를 가지고 검토하고 비판하기 때문에, 치열한 삶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 철학이 제공하는 이런 삶의 방식은, 종교나 과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어떤 것이다.
● 직업적으로 봐도, 전문가적 관점 대신 (높은 레벨의!) 일반적 관점이 요구되는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철학적 훈련은
유리하다.
● 이 때문에,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논술 교육,
출판업, 그리고 특히 법대 등 타 전공 대학원에 진학 하는데 있어서 유리한 점들을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