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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드] 센스 앤 센서티비티 - 세상과 나 사이의 물리학 - 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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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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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첨단기술 MARCH 20 20 27 저자약력 정민기 교수는 POSTECH 신소재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KAIST 물리학과에서 물성실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CNRS와 스위스 EPFL 연구원을 거쳐, 현재 영국 버밍엄(Birmingham) 대학 물리학과 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문분야는 자기공명을 이용한 양자물성 연구다.

센스 앤 센서티비티 - 세상과 나 사이의 물리학

정 민 기

“인간은 세상 속에 있고, 세상 속에서만 자신을 알 수 있 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현관문을 열고 발을 내딛던 퍼셀(E. Purcell)은 한동안 자리 에 선 채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그날 눈을 반긴 사람은 퍼셀 뿐만이 아니었겠지만, 누구도 퍼셀처럼 벅찬 기분일 수는 없었 다. 수북한 하얀 눈, 무수한 물 분자.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 그리고, 핵과 전자가 있다. 물질의 기본 요소를 찾 는 인류의 긴 여정 속에서, 퍼셀은 이제 막 문 하나를 열어젖 히고 나온 참이었다. 그에게 보이는 건 더 이상 그저 하얀 눈더미가 아니었다. 눈 속 무수히 많은 원자핵 하나하나가 팽이처럼 세차운동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원자핵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자석과도 같다 는 걸 발견했다. 원자핵 자석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미 약한 지구 자기장을 중심으로 고요하게 돌고 도는 중이었다. 1945년, 하버드 대학이 있는 미국 동부 케임브리지의 겨울 어 느 날이었다. 퍼셀은 핵자기공명법을 개발하여 물질 속 원자핵의 자기적 성질을 밝혀낸 인물이다. 원소마다 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 자의 수가 달라서, 드러나는 자기적 성질도 다르다. 따라서, 핵 의 자기적 성질을 측정하면 구성요소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리학은 주로 연구 대상을 중심으로 분야가 나뉜다. 우주, 별, 빛, 물질, 분자, 원자, 핵, 입자 … 그런데, 핵자기공명은 오늘날 핵물리학자가 아닌 생물학자와 화학자가 제일 많이 연 구한다. 실은 최근 일도 아니다. 퍼셀은 앞서 첫 실험에 성공 하고 겨우 칠 년 뒤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는데, 당시 연설문 에서 벌써 자신의 연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분야로 확장 되는 것에 놀라워했다. 생물학자와 화학자는 핵자기공명을 통해 단백질 등의 분자 구조와 움직임을 알아낸다. 자세한 방법이야 복잡하지만, 간단 한 비유를 들어볼 수 있다. 막대자석 여러 개를 바닥에 아무렇 게나 던져두고, 그 위에 넓고 얇은 판을 올려 시야에서 가려보 자. 뒤따라온 사람이 판을 들추지 않고 자석들의 배치를 알아 낼 수 있을까?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판 위에 쇳가루를 뿌리 면 된다. 쇳가루가 만들어내는 패턴은 판 아래 자석들의 배치 에 따라 형성될 테니까. 핵자기공명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 속에 무수히 많은 원자핵을 쇳가루라 생각하고, 전자들을 막대자석이라 생각하면 된다. 전자는 원자핵보다 대략 천 배가량 힘이 센 자석이다. 핵의 자기적 성질을 살피면, 주변 전자 자석들의 분포와 떨림 을 재구성해 낼 수 있고, 원자 간 거리나 방향도 알아낼 수 있 다. 이를 통해 사람 몸속을 그려내는 것도 가능한데, 바로 자 기공명영상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다. 정확하게는 앞에 핵(Nuclear)을 나타내는 ‘N’이 붙어 NMRI가 되어야 하지 만, 일반인에게 괜한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빼고 사용한다. 말하자면, 원자핵은 물질이나 우리 몸속에 자연적으로 심어 진 자기장 센서다. 비록 사람은 직접 자기장을 느낄 수 없더라 도, 우리는 그 정보를 시각화해서 알아‘본’다. 그렇게 얻은 정 보를 다른 이에게 설명해주면 그들은 알아‘들을’ 테다. 자기장 처럼 오감의 영역 바깥에 놓인 물리량을 우리는 정보의 변환 을 통해 오감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러고 보면, 물리적 탐구는 꼭 대상을 향할 필요는 없다. 내가 세상을 마주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방식 역시 탐구의 대상이다. 다시 말해, 세상과 나 사이에도 물리학이 있다. 감각 (senses)의 물리학이다. 퍼셀의 핵자기공명법 개발은 물리학을 통해 오감 너머의 새 로운 감각기관을 얻은 예가 된다. 더불어 물리학은 인간의 오 감을 강화해주며 문명의 발달을 도왔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사용하여 더 멀리 보고 더 작은 것을 보는 것은 타고난 인간 의 시각 능력을 강화한 것이고, 물리학이 기여한 바다. 하지만, 지난 백여 년간 물리학이 한 일은 사뭇 결이 다르다. 시각의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의미는 확장되고 변형되었을 뿐만 아니 라, 촉각이나 청각 등 다른 감각에 섞여들었다. 확장: 본다는 것은 물체에 반사된 빛을 감지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건 특정 파장 범위 내의 빛, 가시광선뿐이다. 과학은 적외선과 자외선, 엑스선과 감마선까 지 감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게 해주었다. 덕분에 어두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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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첨단기술 MARCH 20 20 28 길을 훤히 본다던가, 물질의 화학구조를 보고, 몸속을 들여다 보고, 폭발하는 별을 보는 일 등이 가능해졌다. 변형: 아무리 좋은 렌즈를 많이 조합하더라도,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작은 크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확대해서 보려 는 대상은 빛 파장의 절반보다는 커야 한다. 하지만, 양자역학 덕분에 이 한계를 에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전자는 한편으론 작은 점과 같은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공간적으로 펼쳐진 빛이나 물결처럼 파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를 가속 하여 에너지가 커지면, 그만큼 짧은 파장을 가지게 되어서 더 작은 것까지 볼 수 있게 된다. 렌즈를 통해 빛의 진행 방향이 바뀌듯이, 자석을 이용하면 전자가 움직이는 길을 바꿀 수 있 다. 그렇게 광학현미경을 훌쩍 능가하는 전자현미경이 만들어 졌다. 광학현미경은 물체에 반사된 빛을 모으지만, 전자현미경 은 반사된 전자를 모아 이미지로 구성한다. 이제, 인간은 더이 상 빛으로만 사물을 보지 않는다. 섞임: 상대적으로 최근 개발된 주사탐침현미경(Scanning Probe Microscope, SPM)은 또 다른 방식으로 원자를 본다. 비유하자면, 눈을 감고 한 손으로는 물체 표면을 훑어 만지고, 그 촉감을 바탕으로 다른 손으로는 펜을 쥐고 그림을 그려가 는 것과 비슷하다. 아주 얇게 가공된 탐침으로 보려는 물체 표 면으로 좌우 위아래로 훑으면, 탐침과 표면 원자 사이의 상호 작용에 따라 탐침의 반응이 달라진다. 위치에 따른 탐침 반응 을 기록하면, 이미지로 재구성할 수 있다. 말하자면, ‘만져-본’ 셈이다. 촉각을 통한 시각의 획득이고, 공감각의 실현이다. 학교에서 처음 배우는 물리학은 힘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하 지만, 현대물리학에서는 종종 상호작용이란 관점에서 문제를 다룬다. 오감은 나와 세상의 상호작용이다. 오감을 새롭게 정 의하고, 없던 감각을 더해가는 일이, 나와 세상 사이에 우주처 럼 펼쳐있다. 글 서두의 일화는 퍼셀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듣는 게 아무 래도 더 생생하게 느껴질까 싶어 아래에 가져와 봤다. “나는 그때의 경이로움과 희열을 아직 잊지 않았다. 미묘한 움직임은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모든 것들 속에 있었고, 그걸 찾으려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냈다. 겨우 칠 년 전, 첫 실 험이 있던 겨울날, 새로운 눈(eye)으로 눈(snow)을 바라보던 게 기억난다. 문간 주변으로 눈이 쌓여 있었다 - 지구 자기장 속 에서 조용히 세차운동하는 양성자 더미라니. 세상을 잠시나마 풍요하고 낯설게 바라볼 수 있었던 건, 발견에 따르곤 하는 개 인적 보상이다.” 그가 느낀 경이와 희열은 어떻게 오감으로 환원될까. 글을 쓰는 지금, 영국의 겨울에는 (늘 그렇듯) 비가 내린다. 그래도 빗방울 속의 원자핵은 눈송이 속 원자핵과 다르지 않 다. 퍼셀을 따라 잠시 새로운 눈으로 빗방울을 응시해본다. 조 용히 그가 느꼈을 경이와 희열을 반추해 본다. 잘 안 된다. 퍼셀이 말했듯, 그건 아마도 최초 발견자에게만 주어지는, 공유될 수 없는, 개인적 보상이리라. * 아태이론물리센터의 <크로스로드>지와의 상호 협약에 따라 크로스로드에 게재되는 원고를 본 칼럼에 게재합니다. 본 원고의 저작권은 아태이론물리센 터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목표로 한 <크로스로드>는 과학 특집, 과학 에세이, 과학 유머, 과학 소설, 과학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과학 글을 통해 미래의 과학적 비전을 보여주고자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에서 창간한 과학 웹 저널입니다. http://crossroads.apct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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