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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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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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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공주박물관대학

2014년 9월 26일(금) 15:00 ~ 17:00

큐레이터와 함께하는 특별전시

김 미 경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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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미 경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Ⅰ. 머리말

국립공주박물관은 제60회 백제문화제를 기념하여 특별전 ‘무령왕 시대의 동아시아 세계’를 개최하였다. 이번 전시는 백제百濟 웅진시기熊津時期 무령왕 시대를 중심으로 고 대 한․중․일 문물교류文物交流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마련하였다. 140여점의 전 시품에는 무령왕의 국제성과 개방성을 보여주는 주요 출토품과 함께 고대 문물교류의 중심인 백제의 위상을 살펴볼 수 있는 한반도 내 중요 유물을 전시하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중국과 일본 각 지역에서 출토된 38점의 귀한 소장품이 먼 바다 를 건너와 최초로 국내에 소개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중국 남경시박물관南京市博物館에서 는 중국도자中國陶磁와 묘지墓誌, 매지권買地券, 진묘수鎭墓獸 등의 다양한 소장품들이 선보 입니다. 일본에서는 미야지다케고분과 긴레즈카고분 등에서 출토된 동제잔과 받침銅托有 蓋銅盒, 그리고 무령왕릉 청동거울과 흡사한 거울獸帶鏡까지 일본의 국보와 보물급 중요 문화재를 포함한 8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Ⅱ. 백제, 바닷길을 열다!

백제百濟는 고대국가 체계를 갖추기 전부터 주변지역과 밀접한 교류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중국의 『晉書진서』에 보이는 바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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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출토 시유도기 홍성 신금성 및 몽촌토성 출토 동전무늬도기편 몽촌토성 출토 금동제허리띠장신구 276~291년 사이 에 동이東夷 또 는 마한馬韓으로 표현되는 소국들 이 서진西晉과 교 류交流하고 있다. 백제가 중국과 정식으로 교류하 기 시작한 것은 『三國史記삼국사기』<百濟本紀백제본기>와 『진서』에 따르면 근초고왕近肖古王 27년(372) 이다. 근초고왕이 진晉에 사신을 보내어 동진東晋으로부터 ‘진동장군영낙랑태수鎭東將軍領 樂浪太守’를 책봉 받았다. 한성시기漢城時期 근초고왕대 이전에 이루어졌던 중국과의 교류 주체는 마한, 백제, 마한과 백제를 포함하는 다양한 세력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이 시기에 도입된 서진의 전문도기錢文陶器는 당시 중국과의 밀접했던 교류관계를 보여주 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서진과의 직접적인 교역보다는 낙랑樂浪의 동이교위東夷校尉를 매 개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도 한다. 4세기 중엽 백제는 고구려와 대립하면서 중국 동진과 국교를 맺고 바다 건너 왜倭와 도 교류를 하였다. 이 시기에는 중국으로 많은 물품이 수입 되었는데, 이는 중국과의 교역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현상 이지만 낙랑의 멸망에 따른 낙랑계 유민의 유입으로 촉진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시기에 출토되는 중국제 유물은 청자나 초두鐎斗와 같이 자신의 권위나 신분을 나타내기 위 한 위세품威勢品으로, 주로 지배계층과 관련이 있는 성곽이 나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다. 서진시기에 유행해오던 시유전 문도기施釉錢文陶器는 몽촌토성․풍납토성과 홍성 신금성에 서 발견된 바 있다. 몽촌토성에서 발견된 금동제 과대금구 金銅製銙帶金具는 중국 호북성湖北省 웅가령熊家嶺의 동진묘東 晉墓에서 발견된 과대의 부속금구와 동일한 형태이고, 안악 3호분 벽화에는 장하독帳下督이 이를 패용하고 있다. 이는 당시 고위 관직자와 관련되 는 유물로 진과의 조공무역을 통하여 수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중반에 이르면 백제의 수도인 한성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도 중국제품이 발견되고 있는데, 도자기가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도자기가 백제의 지 방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은 백제 중앙정부가 성장함에 따라 지방 세력에게 하사한 위 세품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원주 법천리에서는 청동제 초두와 더불어 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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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법천리 출토 양모양청자 오산 수청동 출토 청자반구호 공주 수촌리 출토 닭모양단지 풍납토성 출토 초두 양청자가 출토되었는데, 중국의 남경 상산象山 7호묘에서 나온 월주요越州窯의 그것과 아주 유사하다. 법천리 2호분은 4 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백제 토기와 함께 부장되는 것으로 보아 법천리 고분을 만든 세력은 백제에 통합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안 화성리 와 오산 수청동의 목이 긴 청자단지盤口壺는 동진의 것이고 서울 석촌동, 익산 입점리 의 청자네귀단지靑磁四耳壺도 손잡이의 형태가 각진 것으로 보아 동진대의 유물로 판단 된다. 공주 수촌리에서 나온 중국제 청자와 흑자도 역시 남조南朝와 관계가 있는 유물 이다. 이와 같이 백제에서는 중국 남조에서 만든 물건을 중앙이나 지방 상류층이 위세 품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원주 법천리, 천안 화성리는 백제가 장악하고 있는 주변 지역으로 한성기에 백제의 중앙과 관계가 있는 지방의 권력자가 복속의 대가로 하사받 은 것으로 추정된다. 왜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와 교류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왜와의 교류는 처음부터 삼국의 요 청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왜가 한반도 지역의 선진 기술 습득과 한반도를 통한 중국문화의 도입이 필요 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에 왜 사회의 변화에 따 라 교역의 형태나 교역지가 변화를 보이는데 지리적 으로 근접한 가야나 백제와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 다. 백제는 4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왜와의 교류 를 시작하였다. 『日本書紀일본서기』에는 27년(372)에 왜왕에게 칠지도七支刀를 하사한 기록과, 『삼국사 기』<백제본기>에서는 아신왕阿莘王 6년(397)에 왕이 왜와 우호관계를 맺고, 12년(403)에는 왜국의 사신이 백제를 방문한 것으로 왜와의 공 식적인 교류관계가 등장한다. 이후 백제는 여러 차례 왜국에 사신을 파견 한 것도 확 인할 수 있다. 이러한 지속적인 외교관계는 왜국의 요청과 함께 삼국간의 정치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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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장곡리 출토 붉은단지(하지키) 몽촌토성 출토 뚜껑접시(스에키) 풍납토성 출토 원통형토기편 관계도 크게 작용하였다. 왜 국에는 겹아가리단지二重口緣 土器 두귀단지兩耳附壺 새발무 늬토기鳥足文土器 등의 마한계 馬韓系 토기류와 기와와 벽돌 瓦塼 부뚜막 시설 대벽건물大 壁建物 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 굴 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 등 생활 관련 자료부터 위세품과 장송 의례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백제 문물이 전래되었다. 반대 로 왜의 문물 역시 백제로 들 어왔는데 한성시기에 해당하는 자료는 서울 몽촌토성의 스에 끼須惠器와 청주 신봉동의 하지 키편土師器片이 알려져 있으며, 웅진․사비시기에는 상당수의 스에키가 발견되고 있어서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성시기의 백제는 마한 소국을 차례로 병합하는 단계에 따라 주변국과의 교류를 새 롭게 변화시켜나갔다. 풍납토성에서 발견되는 가야 및 왜계토기는 가야를 통해 왜와의 교섭交涉을 시도하였던 문헌기록을 반영한다. 일본에서 출토된 칠지도는 백제가 왜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근초고왕대부터 이루어진 중국과의 국 교 수립과 지속적인 유대 관계는 정치 교류 뿐 아니라 새로운 문물을 들여오는데 기여 한 바가 크며, 백제 문화를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중요한 계기였을 것이다.

Ⅲ. 동아시아 문물교류의 보고, 무령왕릉!

백제는 삼국 중에서도 비교적 활발한 대외교섭과 문물교류를 하였으며, 이중 웅진시 기는 중국의 남조와 전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무령왕이 재위 (501~523)한 기간 동안 중국은 양梁 무제武帝가 통치(502~549)한 시기였다. 무령왕은 모 두 네 차례에 걸쳐 양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무령왕이 사망한 다음 해인 524년 에 聖王은 부왕의 사망을 알리기 위해 사신을 보내기도 하였다. 백제의 물질문화가 양 나라의 영향을 얼마나 강하게 받았는지는 송산리 6호분에서 발견된 ‘梁宣以爲師矣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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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오수전 청자단지(청자육이호) 이위사의’명 벽돌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두 나라 사이의 정치·문화분야의 우호관계 는 무령왕대에 백제가 부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국제적 위상 회복을 알리는 표현 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백제가 중국과 교류한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무령왕릉 출 토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다양한 중국제 문물 중에는 중 국에서 만들어져 유행한 시기와 큰 차이 없이 곧바로 입수된 것들이 많다. 문물의 수입과 기술 전수는 대개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지만, 당시 백제는 수요자들의 욕 구에서나 고급 문화를 향유하는 자세에서나 매우 발빠 르게 중국 문화를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령왕대 의 시차 없는 문물 교류의 현상은 왕릉의 구조적인 공 통성이나, 묘지와 매지권의 표현방식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구리가 아닌 철로 만든 오수전鐵製五銖錢 중국에서도 양 무제 때인 523년에 제작된 것으로, 무령왕이 사망한 해에 제작된 동전이 무령왕릉에 부장되었다는 사실로 보아 문물교류의 빠른 속도를 가늠할 수 있다. 백제는 문물과 기술의 수입뿐 아니라 중국의 종교와 사상도 수용하였는데, 무령왕릉의 구조와 벽돌의 문양 및 진묘수, 묘지와 매지권, 은잔과 동제받침銅托銀盞 등에 서 중국의 불교 및 도교사상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특 히 도교사상은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이기 이전부터 중 앙의 지배계층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널리 뿌리 깊게 믿어 온 종교사상이었다. 이러한 도교적 매장문화의 정 수를 보여주는 무령왕릉은 위에서 말한 부장품 외에도 왕과 왕비의 신발飾履, 청동거울銅鏡, 금은제 허리띠장신 구銙帶, 유리동자상과 흑옥제黑玉製 동물장신구 등이 있 다. 이중 진묘수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침입자나 악귀 를 막고, 죽은 자를 서왕모西王母(불로․불사약을 가졌다고 하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 신)가 사는 곳으로 인도함으로써 영혼의 승선昇仙을 도와주는 안내자 역할을 하였을 것 이다. 묘지와 매지권도 명문 내용이 대부분 십간十干이나 사신四神을 이용하여 막연하게 표현하는 방식이며, 특히 ‘~不從律令부종율령’ 또한 ‘율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글자 그대 로의 의미보다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 도교의 주문 말미에 주술적 위엄을 나타내고자 상투적으로 덧붙이는 주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칼과 함께 도교의 중요 법 기法器인 청동거울이 죽은 자의 혼령이 숨 쉬는 유체의 머리맡과 승선도구인 금동신발 이 있는 발치 쪽에 놓인 것은 죽은 자를 악귀로부터 구하고, 동시에 영혼을 승선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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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진묘수 신선의 세계를 담아 낸 은잔과 동제받침 宜子孫명 청동거울 용봉무늬고리자루큰칼 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또한 길상吉祥과 벽사辟邪용으로 차고 다닌 각종 동물모 양 흑옥제 장신구나 유리동자상 등의 장신구들도 도교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반 면 은잔과 동제받침은 기형의 원류는 중국 남북조南北朝에서 차용하였으나, 둥그스름한 형태나, 짧은 굽, 그리고 굽을 별도로 만들어 땜으로 붙이는 기술과 가늘고 긴 선으로 문양을 그리는 선조線彫 기법으로 제 작한 방식 등은 백제 공예의 특징을 더 잘 드러내고 있다. 신선의 세계를 담아낸 듯한 은잔의 모습은 가히 무 령왕이 승선하여 새로운 불로불사不老 不死를 꿈꾸었던 세계임을 짐작케 한 다. 이렇듯 백제는 중국의 종교와 사상도 매우 성숙하고 심도 있게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무령왕은 양나라와 대외 교류를 한 방식과 동일하게 왜와 교류하였다. 『일본 서기』에 따르면 무령왕은 513년 한학漢學에 능통한 오경박사五經博士 단양이段楊爾를 왜 국에 파견하고, 3년 뒤에는 고안무高安茂를 파견하여 교대시켰다. 이러한 양상은 성왕대 에도 계속되었는데, 중국 무제대武帝代에 마련된 오경박사가 시차를 보이지 않고 백제 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간 것이다. 중국 남조를 통해 수입된 유학과 도교사상은 백제에 서 다듬어져 다시 일본으로 전래되었는데, 국가를 운영할 제도와 이념에 목말라하던 일본의 지배층들은 백제를 통해 수혈되는 고급 학문과 사상에 크게 의지하였을 것이 다. 일본과의 문물교류를 잘 보여주는 무령왕릉 출토품으로는 관장식, 신발, 중층重層 유 리구슬, 고리자루큰칼 등이 있다. 이 부장품들은 백제 고유의 제작기법을 갖고 있으며, 일본에서 출토된 유사 문물들도 백제계百濟系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일본에서 출토된 동제잔과 받침銅托有蓋銅盒, 청동제 다리미, 청동거울 등은 6세기 전반 중국―백제―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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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제 다리미 을 연결하는 문화 교류의 네트워크를 여실히 보여 주는 문물이다. 이렇듯 외교․군사․경제․문화 등 모든 방면 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한 무령왕 은 백제 대외 교류의 중심이자, 고대 동아시아 문화 완성에 중추적인 역할 을 다하였다.

Ⅳ. 글로벌 교류왕국! 백제

백제는 주변의 나라와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정치․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교류를 위해서는 교역로를 마련해야 하는데, 고대 삼국시대 교역로에는 인간과 기술, 그리고 상품이 매우 활발히 이동하였을 것이다. 당시 항해술로는 근거리 항해만 가능하여, 중 국의 경우 국가 간 연근해를 통해 항해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따라서 중국은 한반도 가 동쪽의 해상교역의 중요한 길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령왕과 그를 계승한 역 대 백제왕들은 중국과의 외교방식을 왜에게 그대로 적용하면서 고대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에 서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백제지역에서 출토되는 화려한 위세품 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같거나 유사한 예로 출토되는 것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 소개되는 중국 남경시박물관 소장품과 일본 각 지역에서 출토된 백제와 관 련된 유물들은 백제가 고대 동아시아 문물교류의 중심이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해 주 고 있다. 남경시박물관 소장품 중에는 한반도에서 출토된 것과 똑같거나 유사한 예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중국도자이다. 백제는 중국의 동오東吳에서 수대隨代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교류하면서 시유전문도기부터 청자, 흑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자기를 수입하였다. 이번에 소개되는 중국도자는 종류로는 양모양청자, 청자변기, 어깨에 귀가 붙은 여러 청자단지青瓷盤口壺와 흑유닭모양단지, 연꽃무늬가 새겨진 청자완青瓷蓮瓣紋碗과 청자잔 등이다. 이 종류들은 한반도에서도 거의 흡사한 형태의 것이 출토되었다. 중국의 청자 가 매우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반면 백제지역에서 출토된 것은 형태가 일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 사람들이 선호했던 도자기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중국 남조의 장례문화가 통째로 도입된 예가 바로 무령왕릉이다. 무령왕릉을 보면 한․중․일의 문화가 보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부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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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단지(청자연판문육계관) 청자단지(청자반구호) 청자완(청자연판문완) 왕건지 묘지 돼지모양 진묘수 중에는 중국의 장례문화를 반영한 것이 많다. 벽돌무 덤이라는 무덤의 구조적 특징뿐 아니라 도교적 요소 를 듬뿍 담은 부장품은 종류도 여러 가지이다. 묘지와 매지권은 당시의 장례문화와 가족관계, 사회경제, 서 체까지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중국의 묘 지와 매지권은 한대漢代부터 출현하여 청대淸代까지 꾸준히 만들어 사용되었다. 이번 특별전에 전시되는 왕건지王建之 묘지는 부부 합장묘인데, 내용을 보면 매 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왕건지 보다 먼저 사 망한 부인 류씨劉氏가 왕건지와 사망 이후 합장된 예 로 보아 사망의 순서와는 상관없이 부부합장을 고집 한 중국 남조시대 매장풍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오봉원년五鳳元年의 매지권과 영녕永寧 2년 납 매지권에서는 무령왕릉 매지권과 달리 ‘~如律 令여율령’으로 문미가 마무리 되는 차이도 알 수 있었 다. 이 외에 무덤을 지키는 신령스런 진묘수는 도교의 진묘벽사鎭墓辟邪의 의미를 함축 해 놓은 문물이다. 본 특별전에는 돼지모양의 진묘수와 악어 및 물소모양과 비슷한 동 물 진묘수들도 다양하게 선보인다. 백제는 중국과 취한 외교적 방식을 고스란히 왜에게 적용하였다. 이 시기 일본에 많 은 영향을 준 문물로는 관, 신발, 고리자루큰칼, 중층 유리옥, 동물무늬 청동거울獸帶鏡 등 다양하다. 특히 용이나 봉황을 장식한 고리자루큰칼龍鳳文環頭大刀은 아직까지 남조에 서 확인되지 않고, 한성시기에 이미 이러한 것들이 출현하고 있어 백제 고유의 문물로 인식되는 유물이다. 이 유물과 흡사한 일본의 쿠키사키 3호분 출토 용무늬고리자루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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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미카미야마시타고분 출토 청동거울 다카사키 간논쓰카고분 출토 동제잔과 받침 칼은 백제와 왜와의 문물교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 다. 이 외에 전傳 미카미야마시타 고분 출토 수대경은 무령왕릉의 의자손수대경과 크기와 모양, 상처가 생긴 곳까지 거의 같아 자매경姉妹鏡으로 추정된다. 수대경의 무늬는 후한시대의 것을 따르고 있지만 이 보다 무령왕 릉의 출토품과 훨씬 흡사하다는 점이 주목된다. 한편 동제잔과 받침銅托有蓋銅盒은 한․중․일 모두에서 유사 형태의 잔과 받침이 출토되었다. 당시 일본이 중국에서 선진문물을 직수입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에 한․중․일 공통의 유물이 나타난다는 점은 백제가 그 만큼 동아시 아 문물교류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 다. 즉, 일본과 중국에서 보이는 대외교류 관계 유물의 교집합에는 언제든 백제의 문물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무령왕릉의 은제잔은 중국의 동제잔 모양을 차용하였 으나, 백제의 금속공예 기술로 만들어져 그 모양과 제 작기법에서 독창성을 갖는다. 반면에 일본의 동제잔과 받침은 출토 수량도 많고 오히려 중국 남북조 시대에 유행한 고족배高足杯나 금속제 잔과 받침의 모양과 더 유사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외에도 한반도에서는 왜와의 교류를 단적으로 보 여주는 지역적 특징이 있다. 바로 영산강 유역 출토 왜 계 유물과 옹관고분 및 장고형고분이 그 예이다. 지금까지 약 10여기 정도 조사되었는 데, 무덤의 구조와 부장품, 장례 풍습 등에서 이 지역의 전통이 가미된 요소와 일본의 요소가 함께 나타난다. 무덤에 묻힌 자가 영산강 유역의 세력가인지, 일본에서 건너 온 사람인지는 아직까지 논쟁이 되고 있지만, 주목할 점은 이러한 무덤이 만들어지는 시 기가 웅진시기에 속하며, 일부는 무령왕의 치세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 왕 릉과 지방의 무덤 성격이 매우 다른 점은 분명 백제의 중앙정부와 지방 수장들의 선호 도의 차이라고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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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공주박물관대학】

인문학과 함께 떠나는 특별전시 산책

● 기 간: 2014.02.21. ~ 11.21. 격주 금요일(총15회)/15:00~17:00 ● 장 소: 국립공주박물관 세미나실 ● 강의 일정 및 내용 연차 일자 강의 주제(안) 강사 전시기간 1 02.21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김진경(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찰나 속에 흐르는 삼 천년의 혼,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01.28. ~ 03.30.) 2 02.28 고인돌 조현종(국립광주박물관장) 3 03.14 한국의 전통마을 김봉건(한국전통문화대학교총장) 4 03.28 종묘와 궁궐 남호현(국립순천대학교 건축학부교수) 5 04.25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김미경(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하늘이 내린 살기좋 은 고 장, 天下大安 (04.22. ~ 06.29.) 6 05.09 청동기시대 마을 배진성(부산대학교 고고학과교수) 7 05.23 고려시대 석조미술 소재구(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 8 06.13 조선시대 초상화 이수미(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9 07.25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김진경(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여인의 숨결이 담긴 색실공예, 刺繡자수 (07.21. ~ 09.10.) 10 08.08 우리나라의 자수 심연옥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교수) 11 08.22 한국복식의 문양 민보라(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12 09.26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김미경(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무령왕 시대의 동아시아 세계 (09.25. ~ 11.23.) 13 10.10 글로벌 교류왕국 백제 양기석 (충북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14 10.24 한·중·일 탁잔과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 주경미(문화재전문위원) 15 11.7 삼국시대 한반도의 중국도자기 정상기(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 상기 일정 및 강의 내용은 박물관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본 강의의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다음과 같이 진행하오니, 아래의 사항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강의는 정시에 시작되오니 강의 5분전 까지 강의실 입실을 완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2. 강의 중에는 휴대폰을 꺼주시 바랍니다. 3. 추가로 교재가 필요하신 분은 홈페이지→학술․교육․행사→교육자료에서 교재파일을 다운받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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