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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후에도 국가와 사회 발전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

문서에서 국토연구원 30 년사 (페이지 79-82)

김 용 웅

전 국토연구원 부원장(재임 2001. 10. 6~2003. 12. 31)

한다. 그러나 정책 환경에 대한 패러다임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국토연구원이 새로운 환경 변화 속에서도 선도적인 국가발전연구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변신노력이 있어야 한다.

첫째, 국토연구원은 공간정책연구기관의 한계를 벗어나 종합적인 국가발전전략 연구기관 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동안 공간정책은 국가발전의 전략적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세계 화의 진전으로 경제·사회적 문제와 해결방안이 지역적인 차원에서 모색되는 광역단위 국 가발전체제로의 이행이 불가피하게 됐다. 국토연구원이 국가발전을 위한 종합연구기관으 로 탈바꿈해야 하는 이유다. 종합연구기관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연구영역 개척과 연구 수행 시스템 혁신이 필요하다.

둘째, 국토연구원은 중앙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틀에서 벗어나 독립적 위상을 지닌 국가연구 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동안 국토연구원은 정부정책의 합리화를 위한 논리나 정책수 단 개발에 치중했다. 정부산하 연구기관은 정책의 본질적 목적이나 가치보다는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연구에 치중하는 특성이 있다. 국토연구원은 그때그때 정책수요에 대응 하는 연구보다 국가백년대계 차원에서 국가발전의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 향상 연구 및 정부 정책의 정당성과 적실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새로운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에 치중 해야 한다. 국책연구원의 독립적 위상 확보는 자립적 재정 확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연구 원의 독립적 운영을 위한 자립적 재정확보는 쉽지 않은 초장기적인 과제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종국에는 필연적 과제일 수밖에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셋째, 국토연구원은 개별 연구과제 수행연구기관에서 벗어나 국내 관련연구기관의 연구역 량을 키우고 지원하는 후견연구기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국토연구원은 연구자문, 코칭, 연구감리 기능의 강화를 통하여 밖으로는 그동안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관련분야 전문집단 과 공유하는 데 진력하고, 안으로는 새로운 연구영역과 자립기반 형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 다. 한편, 향후 30년,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게 된다. 국토연구원은 선진국의 국 책연구원으로서 동북아 등 국제사회의 공동문제 해결과 정책 공조 연구에도 주도적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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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연구 수행 등 많은 노력을 해왔다. 앞으로는 연구결과물의 국제적 공유를 위한 영문보고서 발간 확대 및 외국 전문인력 채용제도 도입 등에도 보다 적극적인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끝으로 국토연구원은 조직 구성원에만 의존하는 연구조직 형태에서 벗어나 국내외 전문 인 력을 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연구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향후 30년 경제·사회적 여건과 정책환경의 변화에 따라 연구수요는 양적·질적으로 크게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원 내의 한정된 전문인력만으로 증대되는 연구수요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 이 앞장서서 개방형 지식 네트워크의 선도적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국토연구원의 무궁 한 발전을 위한 힘찬 도약과 변신을 기대해 본다.

흔히 30년을 한 세대로 본다. 한 인간의 재생산 주기와 같다. 필자에게는 인생의 황금기(33~44 세)를 보낸 국토연구원의 30주년이 남다른 감회로 다가온다. 유신말기 KIST지역개발연구소에 서 해외유치과학자로서 임시행정수도 연구를 마무리한 후, 제1호 수석연구원으로 합류하였다.

그 당시 노융희 원장님을 비롯한 창립 멤버들은 한국개발연구원과 맞먹는 Think Tank를 단숨 에 만들어 보겠다는 조바심과 의욕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모든 변화는 그야말로 척박한 황무지에서 시작되었다. 주요 연구대상이 공간(space)이라 했더니, 초창기 자료실에는 우주 관련 서적도 다량 섞여 들어오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연 구원설립의명분이었던제2차국토종합개발계획(1982~1991)은전연구진이매달려우리손으로 명품을 만들자는 각오가 결집되었다. 개인적으로는 1979년 8월 수도권정책 국제세미나가 인상 깊다. Peter Hall을 비롯한 세계적 석학들이 모여 KRIHS의 존재를 국내외적으로 알리고 연구 원의 위상을 드높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충무로, 강남역 시절에 가정평화가 금이 갈 정도로 주말, 휴일 없이 열심히 뛰었던 OB들은 지금 도 끈끈한 전우애를 느낀다. 도시모형으로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전산실에서 밤늦게 IBM카드를 읽히고, 청와대 보고를 위해서 새벽녘까지‘차트’사를 대기시켜야 했다. 공판인쇄시대의 비능률 을 모르는 PPT세대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추억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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