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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출산 생애 변동과 정책 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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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는 단계에 대한 개입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측면이 있다. 학교교육이 중심을 이루는 아동·청소년기 그리고 연금 수급(은퇴)이 특징적인 노년기 를 다른 생애 단계들과 구분 짓는 데 국가의 역할은 지대했다. 지난 20세 기까지 (준)보편적(의무적) 학교교육 그리고 노후 빈곤 및 생활 수준 유지 를 위한 연금제도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국가가 핵심 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비록 생애 과정의 중간(청년-장년-중년) 단계로서의 성격을 지닌 그리 고 경제활동-가족생활이 중심을 이루는 성인기에 대한 국가적 개입이 상 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지난 20세기 중(후)반까지 성인기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생애 고용 (life-time employment)과 남성 부양자(male bread-winner) 모델에 기초하여 성인기 생애 과정 또한 상당히 안정되고 표준화된 형태를 띨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세기 후반부터 복지국가의 재편 작업이 이 루어지는 한편 대량실업과 사회적 배제와 같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크 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변화는 생애 과정을 탈표준화하고 유 연화함으로써 개인들이 일-가족 영역에서 경험하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 을 크게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이해된다(Leisering, 2003, pp.

221-222).

우리나라 또한 학교교육을 통한 아동·청소년기의 형성 과정에서 국가 가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생애 단계 중 노년기의 확립은 선진 복지국가들과는 차이를 보이는 측면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선 진 복지국가들에서 생애 과정 중 노년기의 등장은 노동시장에서의 은퇴 그리고 노령연금의 수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하면 연금 수급이 곧 노년기 진입 혹은 은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서 노년기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으며, 이로 인해 연금

수급과 은퇴의 연관성은 상당히 느슨한 관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해방과 한국전쟁 후 높은 출산율에 기초한 노동력의 과잉 공급 문 제 그리고 현 정부에 들어서야 비로소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추진되고 있 는 점(국정기획자문위원회, 2017, p. 82)을 고려하면 한국 사회에서 성 인기와 구분하여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한 아동·청소년기의 등장을 아동 과 청소년의 복지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관심을 반영한 결과라고 해석 하기는 쉽지 않다. 한편, 선진 복지국가들에 비해 생애 단계 중 노년기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개입이 상대적으로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다소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노년기에 대한 국가 의 정책적 개입이 증가하는 현상은 현 노인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에 기초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구 선진 복지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 호황기 동안 복지국 가를 실현하여 노후 빈곤을 효과적으로 해소한 바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의 괄목한 만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현 노인세대가 경 험하는 경제적 어려움의 문제는 매우 컸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도입 되었으나 제도 도입 시점에서 이미 노년기에 진입했거나 혹은 가까운 미 래에 은퇴를 앞둔 개인들에 대한 고려는 미흡했다. 노후 불안에 대한 사 회적 우려에 따라 정부는 2007년 현 노인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하 고자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였으며, 후속적으로 2014년에는 기초연금 도입으로 이어졌다.

선진 복지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1980년대까지 경제활동-가족생 활을 중심으로 하는 성인기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더욱 제한적이었던 것 으로 볼 수 있다. 경제성장을 통한 국가의 부(富) 증가가 자동적으로 개인 의 복지를 증진한다는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논리(김원섭, 2007, p. 148)는 고성장 기조가 지속된 1980년대까지도 큰 문제를 초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세 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을 통한 노동시장의 점진적인 유연화 과정을 거쳐 1997년 말의 경제위기는 성인기의 경제활동-가족생활 영역에서 커 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사회안전망에 대한 국가적 개입 수준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경제활동과 가족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개인들이 인식하 는 불확실성 수준이 급격히 높아진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경험하고 있는 저출산 문제는 경제활동-가족생활이 핵심을 이루는 성인기의 불확실성과도 관련 이 있다.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의 이행 문제나 실업 혹은 일자리의 불안 정과 같은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가족 형성이나 출산을 계획 하고 실행할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Leisering (2003, p. 211)은 생애 과정의 다양한 단계, 특히 경제활동-가족생활이 중심을 이루는 생애 과정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단절과 이행을 적절히 조절하여 생애 과정의 연속성을 높일 수 있는 위험 관리(risk manage-ment) 체계(예컨대,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 하고 있다.

개인들의 생애 과정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짐과 동시에 개인 들의 가치관이나 규범의 변동 또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생애 과정에 걸친 개인들의 의사결정이 전적으로 경제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은 아니다. 혼인-출산과 관련된 의사결정도 단순히 세계화와 같은 구조적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 욕구와 같은 가치 관 혹은 사회 규범이나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근본적으로 혼인과 출산의 의미 또한 과거와 상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Mills

& Blossfeld(2013)는 성인기 이행과 가족 형성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 하기 위해서는 세계화와 같은 구조적 조건에서의 변동과 함께 개인들의

가치관과 문화적 변동(예컨대, 제2차 인구변천)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필 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