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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의 8가지 폐단

문서에서 문틈으로 본 조선의 농업과 사회상 (페이지 140-150)

현산(峴山)은 강원도 양양의 옛 이름이다. 조선후기의 문신 채팽윤(蔡 彭胤, 1669∼1731)은 현산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폐단에 대해 ‘현산의 8가지 폐단을 병풍에 써 놓고 민풍을 관찰하는 이 에게 보이다’라는 긴 제목의 시를 읊고 있다. 8수의 시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이 날카롭다.

그 첫 수는 산삼 공납에 관한 것이다.

<산삼 공납>

이름난 산에는 맑은 기운 상서롭게 모이고, 무수한 붉은 벼랑에 산삼이 흩어져 있다.

매년 화전을 만들어 신령스러운 약초가 적어졌지만, 백성들 편의에 따라 세금 대신 받아주기도 한다네.

<峴山八弊. 書諸屛以示觀民風者.> 蔡彭胤(1669∼1731, 希菴集卷之十六) 名山淑氣欝扶輿, 無數丹厓五葉敷. 每歲燒畬靈草少, 便隨民戶折官租.

右貢參

扶輿: 상서로운 기운. 五葉: 인삼의 별칭이다. 줄기가 세 대로 갈라지고, 다섯 개의 작은 잎이 손바닥 모양으로 겹쳐 있기 때문에 삼아오엽(三椏五葉)이라고도 한다(뺷본초강목뺸). 折 租: 다른 물건으로 대신 바치는 조세(租稅).

우선 산에 들어가 캔 산삼을 공물로 바치는 심마니의 상황이다.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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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심마니의 삶이 평이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시인이 산삼 공납이 폐 단 중의 하나라고 하였으니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다.

예전에 삼을 캐는 사람들은 탐관오리의 표적이 되었다. 정약용의 뺷목 민심서뺸에 그 실상이 잘 기록되어 있다.

“산삼을 캐려는 자는 모두 관의 허락서[官帖]120를 받고 입산한다. 그 들이 산속에 들어가 한 해 가을과 겨울을 풍찬노숙(風餐露宿)으로 넘기 면서 위험한 모든 산짐승과 함께 지내다가 구사일생으로 모든 고초를 겪 고 산에서 나오게 되는데, 산에서 나오는 날이면 관에서 그 주머니와 전 대를 뒤지고, 그 품안과 옷소매를 수색하여 한 조각의 산삼도 용서 없이 모두 헐값으로 강탈하여 관에 들여가는데, 나라에 바친다고 핑계하지만 실은 사복을 채우는 것이다. 간사하고 교활한 벼슬아치가 아래에서 조종 하여 뇌물을 주고 서로 빠질 구멍을 뚫으니 국법은 시행되지 않고 관리 의 사악(邪惡)만이 조장된다. 마침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깊은 산에서 산삼을 캐는 것은 고달프다. 게다가 화전을 하려고 산을 개간하다 보니 삼도 드물어졌다. 그래도 삼을 캐면 쌀이나 베로 바쳐야 할 세금을 삼으로 계산해서 바칠 수는 있다. 고을벼슬아치들에게도 세금 을 산삼으로 받는 것이 팔아서 실제 세금과의 차액을 착복할 여지가 많 아 더 이득이었을 것이다.

<물고기 잡이>

식량을 싸들고 험한 길 다니며 가래를 캐어 오니, 폭우로 물결일어 푸른 물굽이 넘실대네.

비 개고 날씨 들어 관가의 명령 내려오길 다시 기다리거나, 아니면 호미 쟁기 집어던지고 서쪽 산속으로 들어가던지.

120 官帖: 고려시대에 향직(鄕職) 벼슬아치에게 주던 임명장. 혹은 관의 명령서.

贏糧歷險採楸還, 暴雨新波漲綠灣. 更待晴暄官帖下, 又抛鋤耒入西山.

右楸打

楸打: 물에 독초를 흘려 고기를 잡는 것으로 보인다.

약으로 잡는 물고기잡이[楸打]를 읊은 것이다. 먹을 것을 싸들고 산에 가서 가래를 캐어 왔다고 하지만, 가래를 캐어 온 이유가 불분명하다.

‘타(打)’는 주로 고기잡이 혹은 천렵을 했다는 데 쓰는 표현이다. 시인의 다른 시 ‘원일천에서 진상 은어잡이를 구경하다[元一川觀進供銀魚楸 打]’에서도 ‘추타’란 표현이 나온다. 시인의 또 다른 시 ‘비가 쏟아지고 내가 넘쳐서 고기잡이를 했지만 잡지 못했다[積雨川漲, 楸打不得魚.]’

에도 ‘추를 빻은 진액이 효과가 있다[楸液搗何功]’란 표현이 있다.

시에서 말하는 ‘추타’란 일반 고기잡이가 아니라 독약을 풀어 물고기 를 잡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옛글에 망초즙, 초피, 말여뀌, 황병목, 모과, 파두 등을 독약삼아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어구변증설, 뺷오주연문장 전산고뺸). 그러나 추(楸: 가래, 호두, 개오동나무)를 물고기 잡는 독약으 로 쓴 것은 시인의 자료 3건뿐이다. 다른 식물성 독약을 ‘추’자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시에서도 관가에서 시키는 진상 물고기를 잡기 위해 산속에 들어가 독약을 구해 왔지만 비가 많이 와 강물이 불어서 ‘추타’가 어려워졌고, 관가에서 다시 날짜를 잡는 것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홧김에 ‘다 집어치우고 산속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푸념을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진 상 물고기가 나는 곳에 사는 백성이 겪는 괴로움 중 한가지이다.

<송어와 연어의 진상>

남북으로 다녀보아도 고기 때가 맞지 않는데, 고기를 잡기로 한 모임은 정한 때가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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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어부는 살진 물고기를 구해야 하나, 푼돈[五千鵝眼]을 주고 긁어모으려 하니 걱정이라네.

來南來北不齊時, 都會惟操一定期. 何處漁郞先得雋, 五千鵝眼斂揮罹.

右進上松連魚

송어와 연어와 같은 진상물고기를 잡아야 하는 백성들의 애환을 그리 고 있다. 현산에는 회귀성 물고기인 송어와 연어가 돌아오는 하천이 있 다. 송어와 연어는 진상하는 물고기로 어부들이 해마다 잡아다 바치는 양과 시기가 정해져 있다.

송어를 진상물로 바쳐야 할 시기는 왔는데 연어와 송어가 아직 바다 에서 강으로 오르지 않아 잡을 수 없다. 진상 기한은 촉박하고 고기를 잡 지 못하는 어부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진상품은 현물로 바쳐야 하기 때 문에 어부가 진상할 송어, 연어를 잡지 못하면 사서라도 바쳐야 했다.

일반 진상품에 대해서 나라에서 대금을 지불하지는 않는데 이 시에서 는 진상물로 바치는 송어에 대해 관에서 돈을 지불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의 ‘5천아안(五千鵝眼)’이란 표현이 묘하다. 아안전(鵝眼錢)은 중국 남조 송나라 때 주조한 구멍 뚫린 쇠돈이다. 화폐 유통질서가 어지 러워지자 사용하던 주화 1천전(錢) 한 꿰미의 길이가 3치[寸]도 안 되게 얇아졌다고 한다. 거위눈알 같이 작다고 해서 아안전(鵝眼錢)이라고 했 는데, 워낙 가벼워서 물에 가라앉지 않았으며 손을 대면 부서졌다 한다 (뺷宋書뺸·「顔竣傳」). 후대에 악전(惡錢)의 대명사로 쓰인다.

옛날에 쓰던 엽전은 경화(硬貨)로 쇠의 가치가 화폐 액면 가치와 같아 야 했다. 그러나 화폐제도가 문란해지자, 쇠를 적게 쓴 위조화폐인 사주 전이 횡행하면서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큰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관리들이 세금은 진짜 돈으로 받고, 백성에게 지불하는 돈은 사주전으로 지불하는 것이 수탈수단의 하나였다. 또 정화(正貨)로

세금을 걷고 나서, 중앙에는 사주전으로 바꾸어 보내는 것도 악덕관리의 치부수단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어부들이 송어 값으로 받은 돈은 명목상 금액은 정가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생계에 도움이 되지 못할 정도의 푼돈 이 되는 것이다.

시의 현산(峴山)인 오늘날 강원도 양양에 있는 남대천과 같은 맑은 하 천에는 먼 바다에서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송어와 연어가 뛰놀고 있다.

<도기그릇 공납>

고을 남쪽에서 나는 흑석은 백성들 고혈을 쥐어짜는 것인데, 나라의 사신이 동쪽으로 온다니 아전들이 바빠진다.

어쩐 일로 새것을 구하고 옛것을 구하지 않나, 한 번 접대하고 나면 다시 한 번 근심스럽다.

州南黑石斲民膏, 槎信東飛吏足高. 何事求新不求舊, 一回延接一回勞.

右勑需陶礶

陶礶: 陶罐과 같은 말, 도기항아리 혹은 질주전자. 槎: 楂와 동자. 求舊: 중국의 현인 지 임(遲任)이 한 말로, “사람은 옛사람을 구하고, 그릇은 옛것을 구할 것이 아니라 새 그릇을 쓰 라[人惟求舊, 器非求舊惟新].”고 했다(뺷書經뺸·「盤庚」). 勑需: 칙수(勅需)와 같은 의미로 칙사 (勅使)를 접대하는 일, 勑需錢은 그 비용으로 마련해둔 돈이다. 延接: 迎接과 같은 말로 손님 을 맞아서 대접하는 일.

질그릇 항아리를 나라에 바치는 어려움을 읊은 것이다. 이 수는 새김 이 어렵다. 우선 흑석이 지명인지 아니면 특별한 물건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아무튼 백성들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귀의 제목이

‘도기 항아리’ 아니면 ‘질그릇차주전자’를 중앙에서 현산지역에 요구하는 것이고, 그 공납과정의 문제를 쓴 시이다. 이렇게 보면 흑석은 도기를 만 드는 원료일수도 있다. 칙수청(勑需廳)은 ‘나라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물품을 비축하는 것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그 관리가 현산에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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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의 사신은 엄청난 국가 간의 사신이 아니라 중앙관리를 말하는 것이다. ‘웬 일로 새것을 구하고 옛것을 구하지 않나’는 구절도 시인이 중앙에서 온 칙수(勑需) 관리를 비꼬는 말이다. “사람은 옛사람을 구하 고, 그릇은 옛것을 구할 것이 아니라 새 그릇을 쓰라[人惟求舊, 器非求 舊惟新.].”는 옛 말이 있다. 즉 중앙관리가 현산지역에 와서 인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공납그릇만을 챙기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관리가 오면 접 대하는 것이 커다란 일거리이고, 또 다음에 올 것이 걱정스러운 것이다.

<공납하는 매>

설악산 꼭대기엔 매가 오지 않으니, 어느 때에나 정한대로 매를 바치게 되나.

해마다 누에치는 농가를 점검하는데, 그나마 누구 집에서 술대접 하는가.

雪岳山頭鷹不來, 何時著令與東萊. 年年再括耕桑戶, 一半誰家當酒杯.

右東萊鷹連

鷹連: 매 특히 칙사 행차에 부칠 매.

매를 잡아다 바침을 읊고 있다. 매는 사냥을 하는 도구이자 중국에 보 내는 공물의 하나였다. 시에서는 매를 응련(鷹連)이라고 하였다. 이익

매를 잡아다 바침을 읊고 있다. 매는 사냥을 하는 도구이자 중국에 보 내는 공물의 하나였다. 시에서는 매를 응련(鷹連)이라고 하였다.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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