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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을 따는 여인, 채복녀

문서에서 문틈으로 본 조선의 농업과 사회상 (페이지 122-140)

실학자 이학규(李學逵, 1770~1835)가 김해에서 귀양을 살면서 전복 을 캐는 여인의 괴로움을 읊은 ‘채복녀’라는 장시가 있다. 워낙 긴 시인 데다 해녀의 잠수어로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어 해석이 쉽지 않았다. 새기는 과정을 밝히는 의미에서 시의 새김에 더하여 소감을 적 어 놓았다. 작업을 끝내고 나니 처연한 느낌뿐이다.

그림 8 낙하생집 채복녀 원문

110쉞문틈으로 본 조선의 농업과 사회상

채복녀 시를 구절별로 적으면서 뜻을 새겨본다.

<전복을 캐는 여인, 채복녀>

물고기 먹음에 전복을 탐하지 말고, 모름지기 길쌈하는 아내를 얻을지라.

길쌈을 하면 죽어서 같은 무덤에 묻히지만, 전복을 탐하면 물고기 뱃속을 살찌게 하리.

<採鰒女> 李學逵(1770~1835, 洛下生集)

食魚莫啖鰒, 取婦須績纑. 績纑死同穴, 啖鰒慕鮮腴.

전복은 미역 등의 해초 채취보다 바닷물 속으로 더 깊게 잠수해야 딸 수 있다. 이 구절에서는 여인이 전복을 채취하는 작업이 실로 위험한 것 임을 말하고 있다. 김춘택이 쓴 글에는 해녀가 수중에서 처할 수 있는 위 험을, “물 밑의 돌은 매우 날카로운 것도 있어, 부딪쳐 죽기도 합니다.

거기에 있는 큰 물고기[蟲]나 뱀과 같이 사나운 것에 물려 죽기도 합니 다. 그래서 저와 함께 작업하던 사람이 얼어서 급사하거나 돌과 물고기 때문에 죽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비록 요행히 살아있지만 병으로 고 생하고 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囚海錄, 北軒集卷之十三). 여기 서 충(蟲)이란 것은 상어와 같은 사나운 물고기를 뜻한다. 그러기에 농가 의 여자가 죽으면 남편과 같은 무덤에 묻힐 수 있지만, 해녀는 뭍에서 전 복을 따려다가 고기밥이 될 수 있는 그런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살을 당기면 기러기를 쏠 수 있고, 미끼를 던지면 농어를 낚을 수 있단다.

누가 물속의 전복으로 하여금,

진미로 삼아 소반에 채우게 했나.

援繳亦射鴈, 投餌亦釣鱸. 誰令水中鰒, 珍味充盤需.

盤需: 쟁반에 차린 음식[盤羞]와 같은 의미로 봄.

다른 일을 하면 위험을 피할 수 있는데도 해녀가 전복을 따야하는 일 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바다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여인들이 일 할 수 있는 잠녀(潛女)라는 특수한 기능이 발전하여 왔다. 그러나 전복 을 따는 일이 해녀가 원해서 하는 일만은 아닌 것이다. 해녀들은 전복을 따서 관에 납부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 전복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원치 않을 때에도 물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아아, 저 전복 따는 여인네여, 삶과 죽음이 순간에 달렸구나.

사는 곳이 본래 개펄 소금기 땅이라서, 누에치기나 농사짓기는 할 수 없다네.

噫彼採鰒女, 生死寄斯須. 處地本潟鹵, 蠶穀非所圖.

斯須: 잠시, 순간, 須臾와 같은 뜻.

해안지방은 농사를 지을 농경지가 적은 곳이어서 생계를 위해서는 여 인이 물속으로 들어가 수산물을 채취해야 하는 것이다. 옛 글에는 해녀 를 잠녀라고도 기록하고 있고, 미역을 따는 해녀는 채곽녀(採藿女), 전 복을 따는 해녀는 채복녀(採鰒女)라도 적고 있다. 사수(斯須)는 수유(須 臾)와 같은 뜻으로 ‘잠시, 순간’을 뜻한다. 이 구절들은 바다의 생활환경 과 물질하는 것이 항상 위험을 수반한 작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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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고기 잡는 천인 문서에 올라 있고, 발붙인 곳은 인어가 사는 곳 같다네.

창백한 피부에 붉은 머리칼, 무엇이 요괴나 귀신과 다르랴.

名參漁蠻籍, 足踏鮫人居. 霜膚赤髲髮, 何異魈與魖.

鮫人: 전설의 인어를 말함.

조선시대에는 해녀, 특히 전복을 딸 수 있는 심해 잠수를 할 수 있는 특수 기능을 가진 해녀는 관에 등록하고 관리하였다. 원래 전복을 따는 일은 포작(鮑作)이라고 해서 남자의 일이었다. 그러나 포작의 수가 감소 하면서 전복 진상의 역(役)이 잠녀들에게 전가되었다. 해녀들은 관아의

‘잠녀안(潛女案)’에 등록되어 있었고, 채취한 수산물을 정기적으로 진상 또는 관아용의 명목으로 상납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전복을 채취하는 부 역의 부담은 혹심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해녀의 모습을 시인은 인어나 요괴처럼 보인다 하며 가엾이 여기며 바라보고 있다.

구월에서 시월로 넘어갈 즈음엔, 거센 물결은 아침저녁이 없다.

모래언덕에는 술항아리가 늘어섰고, 배를 뜨듯이 하기에는 우선 한 단지 술이다.

九月十月交, 驚浪無朝晡. 沙頭列酒缸, 煗腹先一壺.

驚浪: 거센 물결, 놀란 물결.

해녀가 물질을 하러 가는 날이다. 계절은 바로 음력구월에서 시월로 접어드는 때이니 초겨울이며 꽤 쌀쌀한 시기일 것이다. 풍랑이 심한 계

절이어서 바다물결이 잔잔한 때가 없지만, 전복을 따러 바닷물에 들어가 야 하는 것이다. 바닷가에는 술항아리가 늘어서 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덥히기 위해 마시는 술 한 잔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술이 항아리 째로 늘어서 있다고 한다. 해녀들이 마시기 위한 술이 아니라, 관 리 나부랭이들이 해녀로 하여금 전복을 따오라 시키고, 저희들이 술을 마시려고 준비한 것일 수도 있다. 경랑(驚浪)은 ‘놀란 파도’라는 뜻이지 만, 때 아닌 거센 물결을 말하는 것이다.

거센 파도, 집채 같은 흰 물결은, 뭍에 서서 보아도 두렵거늘.

사람에게 그 물결 속에 들어가게 하다니, 호랑이를 건드리는 어리석음과 어찌 다르랴.

洶洶白銀屋, 立地猶愁予. 敎人到彼中, 奚翅撲虎愚.

奚翅: ‘어찌... 뿐이겠느냐?’

바다에는 경랑(驚浪), 격랑(激浪)이 일고 있다. 시에서는 ‘희고 집채만 한 물결’이라는 의미에서 백은옥(白銀屋)이라 표현하고 있다. 뭍에서 바 라보기에도 물결은 무섭게 치고 있다. 그런데도 해녀는 물질을 하러 물 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사람에게 그 물결 속에 들어가게 시켰다[敎 人]’는 것이다. 4구의 어리석은 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물속에 들어가는 해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복을 따오라고 시킨 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해녀는 구경꾼이 웃는 것을 돌아보고는, 흔연히 치마저고리를 벗네.

지닌 칼을 손목에다 비끄러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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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끌어 몸에다 묶는구나.

女乃顧之笑, 怡肰脫裙襦. 持刀綰手腕, 牽繩約身軀.

肰: 然과 동자. 怡肰: 怡然과 같은 의미로 기쁘고 좋음, 즐겁게, 기꺼이. 卒肰: 猝然, 卒 然과 같은 의미로 봄.

해녀가 잠수하기 바로 전의 모습이다. 옷을 갈아입고, 칼과 밧줄 등 도구를 준비하고 있다. 이건(李健, 1614~1662)의 제주풍토기에는, “잠 녀들이 벌겋게 벗은 알몸[赤身露體]으로 물가에 그득히 들어선다.”고 기 록하였다. 해녀들이 물일을 할 때에는 물옷을 입는다. 물옷은 ‘전통 해녀 옷으로 무명으로 만든 물소중의와 그 위에 입는 물적삼’을 말하며, 잠수 작업을 하기 위해서 팔과 다리를 드러낸 옷이다. 이러한 모습을 양반네 가 보고 ‘적신로체(赤身露體)’라 표현한 것이다. 물가에 있는 사람들이 희희덕대며 웃는 모습을 해녀는 힐긋 바라보고는 잠수할 준비를 하는 것 이다. 해녀가 구경꾼들을 바라보고 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을 수도 있다.

만약 웃었다면, 그 웃음은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닌 자조의 웃음이자, 쓴웃 음이었을 것이다.

위백규(魏伯珪, 1727~1798)의 글에도, “순풍이 불자 배를 띄워 평이 도에 이르렀다. 온 포구에서 해녀들이 전복 따는 것을 구경했다. 이들은 벌거벗은 몸을 박 하나에 의지하고, 깊은 물속에 자맥질한다[順風流到 平伊島, 統浦觀海女採鰒, 其裸身佩瓢到入深淵.].”는 묘사가 있다(‘금 당도선유기’, 存齋全書). 물옷을 입은 해녀들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양반들이 구경삼아 보는 것이다.

먼저 줄을 물결에 밀어 넣고는, 손으로 석 섬들이 박을 띄어 놓는다.

바로 몸이 뒤따르더니,

잠깐 사이에 강물 속 물오리처럼 떠 있구나.

先將繩抵水, 拍浮三石ꇁ, 終乃以身隨, 瞥若江中鳧.

ꇁ는 ꇀ의 이체자이며, 뺷옥편뺸에, “ꇀ瓠也”라 하였다.

해녀가 전복을 따려고 막 입수하는 장면이다. 해녀가 물에 띄운 박은

‘테왁’이라고 하는 것이다. 테왁은 박을 타서 꼭지를 피해 구멍을 내고 속을 파내어 비게 한 후 구멍 낸 부분을 물이 들어가지 않게 막는다. 해 녀들이 잠수하다서 올라와 숨을 고르며 붙잡고 쉬는 장소의 역할을 하므 로 가슴에 품어 안기에 알맞은 크기의 것을 선호한다. 해녀는 이제 바다 에 들어가서 얼굴만 내놓고 떠 있다.

음침한 물속은 유리처럼 푸르고, 그 밝음에 참으로 놀라울 뿐이네.

용의 집이니 조개 궁궐이라느니, 전에 들은 것이 모두 헛소리로다.

陰沈碧琉璃, 晃朗驚一噓. 龍堂紫貝闕, 曩聞皆知誣.

龍堂: “물고기 비늘 집은 용의 저택이요, 붉은 조개 누각은 붉은 궁궐이로다[魚鱗屋兮龍 堂, 紫貝闕兮朱宮.]”라는 표현이 있다(뺷楚辭九歌뺸, 河伯).

해녀가 잠수한 바다 속 풍경이다. 물속은 유리처럼 짙푸르고, 해가 비 쳐들어 밝다. 시에서 말하는 용당(龍堂)은 ‘물고기들의 집은 용의 저택 이요, 붉은 조개 누각은 붉은 궁궐이로다.’라는 옛글에서 출전된 것으로 깊은 물속을 표현한 것이다. 해녀가 들어간 물속은 전설에서 말하는 낭 만적인 용궁이 아니라, 험한 현실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그 사정을 살펴

‘헛소리’라고 일갈하는 것이다.

116쉞문틈으로 본 조선의 농업과 사회상

이끼와 말이 바다 속에 무늬를 그리고, 흐늘흐늘 위로 올라가는 듯하다.

이끼와 말이 바다 속에 무늬를 그리고, 흐늘흐늘 위로 올라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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