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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은어의 진상 30

오늘날은 브랜드시대이다. 쌀만 해도 ‘어디어디 진상미’라고 브랜드 를 내세우며 그 옛날 임금님도 잡쉈다는 이미지를 빌려 전통 있고 고급 쌀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진상’이란 이름이 붙은 지역 산물에 자부심을 갖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진상품이란 것이 그런 고급 특산품만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림 2 은어

지역에서 나는 귀한 산물도 진상품이 되었었지만, 왕가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여러 가지 물건들도 진상품이 되었다. 진상품을 마련하기 에 백성들의 노고는 너무나 많았고, 이에 얽힌 애환도 많았다.

은어(銀魚) 역시 진상을 하는 물고기의 하나였다. 은어는 우리나라 여 러 강에 사는 물고기이지만 은어만큼 조선 왕실과 관련이 깊고, 사연이 30 필자가 기발간한 책 뺷은어뺸(목근통, 2014년)의 진상 관련 부분만을 발췌해서 다

시 정리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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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물고기도 흔치않다. 은어는 외국사신에게 대접하거나 선사하는 품 목에도 포함되어 있었고, 중국으로 보내는 공물에도 은어가 포함되어 있 었다. 그리고 은어는 조선의 왕실 제사상에 오르는 물건이었고, 제사 외 에도 왕실의 식용으로 은어가 다량 필요해서 지방에서 공물로 걷어 들이 거나 진상물로 받아 들였다.

조선시대의 공물과 진상 제도를 간략히 살펴본다.

공물(貢物)은 중앙 관서와 궁중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군현에 부 과한 특산물로 일종의 현물세였고, 상공(常貢)과 별공(別貢)으로 구분된 다. 상공은 지방관이 중앙에 납부하는 수량, 시기가 정해져 있던 품목이다.

공물은 군현 단위로 그 지방의 산물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하고 또 관아의 경비를 고려하여 액수를 정하였고, 주현의 액수는 다시 민호(民 戶)31에 배정되었다. 공물은 중앙 각사(各司)만이 아니라 감영이나 병 영, 수영에서도 그 관하의 각 군현으로부터 징수하였으며, 군현은 다시 민간에게서 징수하였다. 공물의 종류와 수량은 국가의 필요를 기준으로 책정한 것이므로 공물이 배정된 장부인 공안(貢案)에 한번 오르게 되면 그 감면은 어려운 것이었다.

별공은 국가에서 필요한 지방 특산물 가운데 상공의 부족분을 부정기 적으로 책정한 공물이다. 품목과 수량이 매년 일정하게 책정된 상공과는 달리 별공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백성 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다. 정기적인 공물과 진상품도 문제였지만, 원래 수요에 없었던 왕실의 별공 요구의 경우도 문제가 되었다. 부정기 공물 인 별공의 예를 연산군일기를 통해 그 일단을 살펴본다.

31 백성들이 사는 민가를 뜻하지만, 글에서는 호당 혹은 가구당이라는 의미이다.

● 연산군9년 실록에 은어를 바치게 하다. 전교하기를,

“은어[銀口魚]가 생산되는 각도에서, 매년 진상하는 마른 고기를 제 하고, 생선으로 봉하여 올리게 하라. 또 2천 마리에 구애하지 말고 철 이 늦더라도 잡히는 대로 다소간에 그때그때 봉하여 올리게 하라.” 하 였다(1503년 6월 28일).

● 연산군10년 실록에 은어를 더 바치게 하다. 전교하기를,

“경상도로 하여금 은어 1만 마리를 별례(別例)로 바치게 하라.” 하였 다(1504년 7월 7일).

은어는 왕실 식용과 종묘 제수용으로 필요한 것이라서 공납과 진상을 하는 수량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연산군이 은어를 잡아들이라 명한 것 은 별공 형태이었지만, 그 수량이 천 마리, 만 마리 단위였다. 정해진 용 도외의 공물의 양이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 명령에 조선 삼천리 각지의 은어 산지가 들썩였을 것이다.

별공은 그 지방에서 나지 않는 특산물까지 부과되었고, 또한 이를 구 실로 권력과 결탁한 방납업자32, 권문세가, 간악한 고을 아전들이 공물 상납을 대행하고, 원래 세액의 수십 배를 백성들로부터 징수하게 되어 그 폐해는 컸다.

진상은 국가의 기념일과 경사 때 중앙과 지방의 책임자가 국왕에게 축하의 뜻으로 토산물을 바치는 예헌(禮獻)33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의 진상은 소박한 일종의 축하선물이었을 뿐이었고, 세금인 공물과는 구별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조의 발전에 따라 왕실의 소비규모가 커지면서 진상의 범위는 확대되었고 일종의 세금으로 제도화되었으며 공물과의

32 백성들이 납부하는 공물을 관청에 대신 납부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업자이다. 백 성의 공물을 퇴짜 놓고 자신이 마련한 물건을 비싸게 사게 해서 이익을 취했다.

33 예헌은 문자 그대로 ‘인사로 바치는’ 것이며 진상과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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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도 애매해졌다.

실제로 국왕의 식사를 비롯하여 궁중의 제사, 손님 접대, 선물 등에 막대한 물품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진상하는 품목과 수량은 증가될 수밖 에 없었고, 일반 백성에게 그 부담이 할당되어 세납의 일종으로 제도화 되었다. 진상은 조선 특유의 제도로서 진상물의 많은 것이 썩기 쉬운 식 료품이었으므로 그 수납에 까다로운 경우가 많았다. 그 까다로운 점을 악용하여 관리가 협잡을 부렸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민폐가 생기기도 하 였다. 공물은 조선중기 이후 대동법(大同法)34에 따라 쌀로 대신해 바치 게 되었으므로 관리의 협잡이 줄어들었으나, 진상은 여전히 현물로 받아 들였기 때문에 이에 따른 민폐가 그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은어 역시 나라에 바치는 공물이자 진상품의 한가지였다.

특히 생은어는 신선도가 중시되는 식품이었기 때문에 공물과 진상으로 상납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난다.

은어의 진상에 대한 시 한 수를 살펴본다.

<수성가, 그 다섯째 수>

송어 연어 그리고 은어는,

그 맛 향기롭고 달지만 서해에는 없다네.

살진 것 골라서 아침부터 나라님께 진상하는데, 하나하나 꾸려서 관가 돈으로 보낸다네.

34 조선시대에 각 지방의 특산물을 공물로 바치게 했는데, 부담이 불공평하고 수송 과 저장에도 불편이 많아 백성의 부담은 가중되고 국가수입은 감소되었던 것을 개선하여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납세제도이다. 1608년(광해군 즉위 년) 경기도부터 실시되어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水城歌 其五> 崔昌大(1669~1720, 昆侖集卷之二)

松魚鰱魚銀口魚, 厥味香甘西海無. 擇雋朝來封進上, 封餘箇箇付公須.

公須: 관청의 공적 비용. 公用과 같은 말.

시인이 읊은 수성(水城)은 오늘날 강원도 간성(杆城)을 말한다. 그래 서 동해 쪽에 은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에서는 물고기의 진상이 평화롭게 그려져 있지만, 왕가에서 맛볼 물고기를 진상하기 위해서 은어 를 잡는 백성들은 물론이고, 현지 관리들의 고생이 많았다. 관리들은 진 상품을 거둬서 정성껏 포장해서 한양에 바쳐야 했고, 그러기에 ‘진상 가 는 봉물짐 얽듯’이란 속담도 있는 것이다. ‘물건을 매우 단단히 얽어매었 다’는 뜻이다. 백성들이 노동력을 제공해 잡은 진상품을 한양으로 보내 는 비용은 현지 관가에서 부담한 모양이다.

은어는 우리 강계 여러 곳에서 나지만, 조선시대에는 특산지가 지정 되어 있어 은어 철이면 해당 지방 수령들이 은어를 수집해서 한양의 사 옹원으로 보내야만했다. 은어 산지에서 은어를 잡는 것도 어려웠지만, 잡 은 은어를 신선하게 한양으로 보내는 일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은어는 강에 흔히 있는 물고기였지만 강물 사정에 따라 잡히기도 하 고, 잡히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공물이나 진상은 날짜가 정해져 있어 지방에서는 골머리를 앓았다. 비록 은어가 살고 있는 강이라도 비가 와 서 물이 흐려지거나, 강물이 불면 은어를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 한 상황을 읊은 시가 있다.

<원일천에서 진상하는 고기 잡는 것을 보다. 그 첫 수>

오월이라 은어가 다 컸으니, 온 냇가 은어 떼로 흰 물결이 이네.

이날이 바로 진상 물고기 잡는 때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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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어부들이 모여 들었구나.

백성들 힘을 빌리지 말라 누가 말하랴, 오로지 수라간에 바치기 늦음이 걱정스럽네.

나라 일로 모이는 약속은 중요한 일인데, 비 때문에 모두 머뭇거리며 서 있네.

<元一川觀進供銀魚楸打, 其一首> 蔡彭胤(1669~1731, 希菴集卷之十六) 五月銀魚大, 羣川雪浪趍. 玆辰當貢節, 是處集漁夫.

敢道罷民力, 惟愁後御廚. 公家期會重, 雨立故踟躕.

公家: 조정이나 왕실을 이르는 말. 踟躕: 머뭇거리며 망설임, 주저(躊躇)와 같은 말.

시인은 은어 철이 되어 진상은어를 잡는 냇가로 간다. 은어가 한참 소 상할 때는 얕은 강물에 은빛 은어가 떼를 지어 움직이며 물결을 일으키 는 모습이 보인다. 시인은 그 물결을 ‘눈 물결[雪浪]’이라고 아름답게 묘 사하고 있다. 그러나 비가 와서 은어를 잡기는 어려운 사정이다. 모이라 고 해서 모였지만, 은어를 잡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은어를 진상하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는 이러한 제도를 철폐하자는 이야기는 누구도 할 수 없 다. 시인은 비 내리는 강에서 웅성거리며 서있는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 며 바라보고 있다.

진상 은어를 잡는데 동원된 백성들이 그날 은어를 못 잡아도 그 것으 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정된 수량의 은어를 채울 때까지 백성들이 동

진상 은어를 잡는데 동원된 백성들이 그날 은어를 못 잡아도 그 것으 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정된 수량의 은어를 채울 때까지 백성들이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