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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위빠사나 수행법으로 바라본 사념처

문서에서 인식론적 인식론적 (페이지 67-72)

의 위빠사나 수행법에서 이러한 사념처의 원리를 더욱 자세히 설명하고 있 다.

을 보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단지 관찰하는 것만으로 그러한 변화가 일 어나는 것일까?

사념처에서와 마찬가지로 위빠사나에서도 몸에서부터 시작한다. 몸 중에 서도 호흡을 관찰한다. 부처님께서도 수식관(數息觀), 또는 안나반나념(安那 般那念)이라고 하여 호흡을 이용하여 사념처를 닦고 사선(四禪)116)을 지나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117) 그 만큼 호흡이 중요하고 모든 사 람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행동은 멈출 수 있지만 호 흡은 죽을 때까지 멈출 수가 없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호흡을 관찰함으로써 계속해서 자각하고 집중하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118))

그리고서는 자신의 감각을 관찰한다. 사념처와 거의 비슷한 과정이다. 감 각을 관찰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감각이 몸과 마음이 만나는 문이기 때문이다. 몸의 감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마음에서 일어나 는 즐거움, 괴로움 등도 감각적으로 인식되고 그것은 또한 몸에 영향을 준 다. 이렇듯 몸과 감각과 마음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져 있 고 각각의 연결성을 가장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감각이 된다.119) 이는 또한 연기법에 그대로 나와 있는 내용이다.

사념처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체적인 호흡에서 감각, 그리고 마음으로 관찰 의 대상이 이어지며 자각하고 집중하는 능력 또한 몸의 거친 감각에서 시작 하여 더욱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을 자각할 만큼 성장한다.

위빠사나는 이러한 과정으로 감각을 그냥 관찰한다. 우리는 보통 유쾌하 거나 불쾌한 감각이 느껴지면 자동적으로 그 감각들을 갈망하거나 싫어한 다. 그럼으로써 무명을 조건으로 생긴 그 감각은 더욱 강화되고 그 감각을

116) 이연숙, 精選 아함경, p.766 참조. 괴로움을 소멸시켜 해탈․열반을 얻기 위해 닦는 선정 수행법 가운 데 하나로 4단계로 이루어져 있음.

117) 위의 책, pp.457-459 참조.

118) Goenka, 그냥 바라만 볼 뿐이다-삶의 고통에서 삶의 아름다움까지-, pp.100-101 참조.

119) 위의 책, pp.127-129, pp.198-199 참조.

따르거나 피하려는 경향성 또한 강화된다. 또는 그 감각의 원인을 살피려고 하는데 위빠사나는 그것 또한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원인을 살 피다가 그 감각으로 일어나는 반응에 휘말릴 수 있고 그렇다면 그 감각과 반응은 더욱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불쾌한 감각이 일어날 때, 그 원인을 찾으려 하다가 자신에게 일어나 불쾌한 감각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더 불쾌한 감각이 일어나는 것이 반복될 수 있다. 부처님도 오개(五蓋) 를 말씀하시면서 노여움이 아직 생기지 않은 노여움을 생기게 하고 이미 생 겨난 노여움을 더욱 불어나게 한다고 하셨다.120)

그래서 위빠사나는 단지 감각을 관찰한다. 어떤 감각이 일어나면 그 감각 에 대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데 위빠사나는 그 자극에 반응하기 전에 단지 그 감각을 자각하고 계속 관찰하려 노력한다. 물론 이러한 수행이 하루아침 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자신도 모르게 반응할 때도 있을 것 이다. 그것 역시 그대로 관찰한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다보면 짧은 순간이라 도 반응하지 않는 순간을 경험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감각을 관찰하는 의식 이란 전적으로 무명에 가려져 있는 의식이 아니라 정념의 과정으로 오기까 지 정견과 정사유, 그리고 계(戒)에 해당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진리에 대한 인식과 믿음, 평화로 어느 정도 안정되어서 조건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가능 성이 이미 준비되어 있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은 순간이라도 조건 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있고 계속해서 관찰했을 때, 반응으로 강화되지 않은 그 감각이 약화되어 마침내는 사라지는 것을 체험한다. 그리고는 차츰, 진짜 같던 그 감각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된 다.

단지 관찰만 함으로써 그 감각을 갈망하거나 혐오하게 반응하도록 하는 흐름을 차단하여 무명을 조건으로 일어난 감각이 강화되지 않게 되며 계속

120) 이연숙, 精選 아함경, p.518 참조.

해서 관찰할 때 그 감각은 약화되고 사라지는 것이다. 마치 물위에 그어진 선처럼 그려지자마자 사라지거나 모래사장 위에 그어진 선처럼 잠깐 형태가 있다가 물이나 바람에 의해 없어지는 것과 같다. Goenka는 이렇게 감각이 사라지는 이유를 그러한 감각은 영원하지 않고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데 그 렇게 영원하지 않은 것은 조건화 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그 감각이 근본적으로 무명을 조건으로 하여 생긴 것임을 말하고 있다 하겠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무명 때문에 조건화된 인식의 경향성은 약화되고 그 뿌 리가 뽑히기 시작한다. 물론 그 뿌리가 한꺼번에 뽑히지는 않는다. 누적된 과거의 감각과 반응들이 계속해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121) 앞서 수식관 과 위빠사나에서 강조한 호흡을 자각하는 것이 그것 자체만으로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누적된 조건화된 인식들을 약화시키고, 또 몸이나 마음의 감각과 반응을 관찰하여 그 흐름을 차단하고 경향성을 약화시키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관찰하고 집중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는 어떤 단어나 시각적인 이미 지, 신체적인 활동 등 많은 기법들이 있다. 그런데 그 단어나 이미지가 평소 에 우리가 갈망이나 혐오하는 느낌을 가지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 려 수행에 방해가 된다. 주의를 집중시키는 대상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여 다시 조건화된 반응이 일어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호흡이 이러한 이유 때문 에 좋은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호흡은 우리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대상과 는 거리가 먼 성격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호흡을 통해 우리 의 주의가 집중된 순간 우리의 마음은 갈망과 혐오와 무지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즉 짧은 순간이지만 갈망과 혐오가 없는 순수한 의식의 순간을 체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지만 이러한 의식은 최초의 정견에서부

121) Goenka, 그냥 바라만 볼 뿐이다-삶의 고통에서 삶의 아름다움까지-, p.60, pp.152-158 참조. 각주 120)이하의 내용 모두 해당.

터 정사유를 거쳐 계속 준비되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은 아무리 짧아도 강 력한 힘을 가지며 그 의식은 과거의 모든 조건에 도전한다. 이는 마치 2장 에서 불성이 자신을 드러내어 무명으로 오염된 의식을 정화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호흡으로 마음이 집중되자마자 그 자유롭고 순수한 의식의 도전으로 누적 된 모든 반응이 일어나고 신체적․정신적인 다양한 어려움으로 나타나서 자각 을 발달시키려는 노력을 방해한다. 그래서 때로는 참기 힘든 욕망을 느끼기 도 하고 분노나 무기력, 우울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호흡을 자각하고 집중하는 훈련을 반복하면 그러한 방해는 차츰 사라지고 호흡은 점점 부드러워지며 마음은 안정을 찾는다. 행복하고 충만한 에너지를 느끼 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수행중에 빛이나 환영과 같은 신비한 경험을 하기도 한 다. 이런 경험이 수행이 잘 되고 있다는 표시가 되기도 하지만 일어나지 않 는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그러한 감각을 체험 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즐겁고 자신이 원하는 감각 에 대한 갈망을 발달시키는 위험을 갖는다. 즐거운 감각 경험이 수행의 최 종 목적이 아니다. 부처님의 길은 이상하거나 즐거운 감각을 경험하고자 하 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건화된 반응을 뿌리 뽑아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 해서 모든 감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자신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 한 것이다.122)

Goenka의 책에서 명확히 구분하여 설명하지는 않지만 호흡을 통한 수련 은 두가지로 나눠지는 것 같다. 하나는 호흡을 자각함으로써 마음을 집중하 여 다른 감각을 더 잘 관찰하는 것인데 여기서의 호흡을 통한 집중은 그렇 게 깊은 단계로 보이지 않는다. 호흡을 통해 어느 정도 마음이 집중되면 비

122) Goenka, 그냥 바라만 볼 뿐이다-삶의 고통에서 삶의 아름다움까지-, pp.105-109, p.159 참조.

록 짧고 얕기는 하지만 무지로부터 자유로운 의식이 일어나기 때문에 다른 감각들을 더욱 깊이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위에서 설명 했던 것처럼 호흡을 통해 아주 깊은 집중이 일어나서 그 수련 자체로 마음 안에서 큰 움직임이 일어나고 역시 호흡을 통해 일어난 자유롭고 순수한 의 식으로 그것을 극복하는 수련이다.

이러한 위빠사나 수행법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서구 의료계에서 스트레 스 경감 클리닉이나 다른 여러 분야에서 정념 명상, 곧 위빠사나를 이용하 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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