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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념처(四念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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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朴泳棟(이하 류만홍), “八正道 修行法과 心理治療”,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1989, p.74. 중아함경, 제49권, 189경.(논문에는 漢譯 원문이 云何比丘 若觀으로, 그리고 출처가 190경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음).

93) 동국 역경원, 한글 대장경 중아함경, 제3권, 동국 역경원, 2001, p.175. 각주 92)에 대한 한글 번역.

94) 이연숙, 精選 아함경, p202. 깨달음을 얻기 위한 37가지 수행법, 사념처(四念處)․사의단(四意斷)․사여 의족(四如意足)․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의(七覺意)․팔정도(八正道)의 총칭.

95) 한경수, “阿含經에 나타난 修行觀 연구”, p.53 참조. 박영동, 위의 논문, pp.74-75 참조. 류만홍, “根 本佛敎의 修行體系 硏究”, p.20 참조.

사념처 수행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위에서 언급했는데 부처님 역시 경전 속 에서 강조하고 있다.

중생들을 깨끗하게 하고 근심과 두려움을 건너게 하며 괴로움과 번뇌를 멸하 게 하고 울음을 그치게 하며 바른 법을 얻게 하는 한가지 도가 있으니 이른바 사념처(四念處)이다.

어떤 것이 사념처인가? 몸[身]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그 생각에 머물고, 감 수 작용[覺]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그 생각에 머물며, 마음[心]을 있는 그대 로 관찰하여 그 생각에 머물고, 만유[法]을 있는 그대로 관찰(觀-필자 부연)96) 하여 그 생각에 머무는 것이다.97)

사념처 수행법은 제목 그대로 네가지이다. 신념처(身念處), 수념처(受念處) 또는 각념처(覺念處)98), 심념처(心念處), 법념처(法念處)가 그것이다.99) 사념처 의 내용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알겠지만 몸-감각-마음-법의 순서로 되어있다.

즉 몸과 같이 가장 구체적이고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대상에서 시작하여 법과 같이 추상적이고 미묘한 대상으로 옮아가고 있다. 신념처부터 구체적으로 살 펴보자.

3.4.1. 신념처(身念處)

96) 大正, 大正新修大藏經, 제1권, p.582.

97) 이연숙, 精選 아함경, p.504, 중아함경, 제24권, 염처경(念處經).

98) 박영동, “八正道 修行法과 心理治療”, p.74, 중아함경, 제24권, 98경 참조. 아함경에서 수념처와 각념 처가 혼용되고 있다.

99) 냐나틸로카, 붓다의 말씀, p.130 참조.

신념처는 말 그대로 몸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한다. 일어서고, 걸어다니고 하는 것에서부터 들숨과 날숨, 그리고 몸의 내장과 썩어가는 모습까지 모두 관찰하고 나면 지혜가 밝아져서 참 모습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그 생각에 머무는 것인가? 비 구는 다니면 다니는 줄 알고 머물면 머무는 줄 알며 앉으면 앉는 줄 알고 누우 면 눕는 줄 알며 잠자면 잠자는 줄 알고 깨면 깨는 줄 알며 자거나 깨면 자거 나 깨는 줄 안다. 비구가 이와 같이 몸의 내부와 거죽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생각을 바로 세워 몸에 두어서 알고 보는 바가 있고 지혜가 밝아 참모습에 통 달하는 것을 일러 비구가 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100)

立念在身 有知有見有明有達 是謂比丘觀身如身101)

그리고 거기서 욕계(欲界)의 악(惡)을 여윈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고 청정 한 마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광명상(光明想)을 염두에 두고 잘 받아 지니고 기억하여 광명심(光明心)을 닦아 마음이 결코 어둡지 않게 된다고 한다.102)

단지 몸을 관찰할 뿐인데 어떻게 참 모습에 도달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 한 답은 사념처에 대한 설명 후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4.2. 수념처(受念處)

신념처에서는 대상이 몸이었지만 수념처에서는 감각의 내․외, 즉 마음과

100) 이연숙, 精選 아함경, p.504, 중아함경, 제24권, 염처경(念處經).

101) 大正, 大正新修大藏經, 1권, p.582. 각주 100)에서 밑줄 그은 부분에 대한 한글 번역.

102) 이연숙, 위의 책, p.504-509 참조.

욕구의 감각과 육체적인 감각이 그 대상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감수작용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그 생각에 머무는 것인 가? 비구는 즐거운 감각을 감각하면 즐거운 감각을 감각한다고 알고 괴로운 감 각을 감각하면 괴로운 감각을 감각한다고 알며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각을 감각하면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각을 감각한다고 안다. 이와 같이 몸의 즐 거움[...]마음의 즐거움[...]먹는 것을 즐거워함[...]욕구를 즐거워함 [...]욕심 없는 감각을 즐거워함[...]비구가 이와 같이 감수 작용의 내부와 거죽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생각을 세워 감수 작용에 두어서 알고 보는 바가 있고 지혜가 밝아 참 모습에 통달한 것을 일어 비구가 감수작용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103)

역시 이 감각을 잘 관찰하면 참 모습에 통달한다고 말한다.

3.4.3. 심념처(心念處)

수념처에서는 마음에 대한 감각을 관찰하는데 심념처에서는 감각으로 느 끼기 전의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나중에 현대 위빠사나 수행법에서 설 명되겠지만 감각과 마음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그 생각에 머무는 것인가?

비구는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다고 진실 그대로 알고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다고 진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노여움이 있음과 없음․어리석음이[...]더 러움이[...]안정됨과 안정되지 않음․해탈하지 않은 마음과 해탈한 마음을 진실 그대로 안다.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의 내부와 거죽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생

103) 이연숙, 精選 아함경, pp.509-510.

각을 세워 마음에 두어서 알고 보는 바가 있고 지혜가 밝아 참모습에 통달한 것을 일러 비구가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104)

심념처는 우리 마음을 관찰하는 것인데 이 마음은 연기법의 여섯 감각기 관[六處]105)중의 하나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관찰의 대상이 되는 마음의 움 직임들이 대부분 연기법의 목마른 갈구[愛]에 해당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연기법에 따르면 육처(六處)로 인해 촉(觸)이 생기고, 그 촉으로 인해 수(受) 가 생기며, 그 수(受)로 인해 애(愛)가 생긴다. 연기법의 세부 항목들에 대한 설명을 보면 신념처의 신(身)과 수념처의 수(受) 역시 연기법에 해당하는 내 용임을 알 수 있다.106) 그렇다면 사념처는 근본적으로 연기법에 기초한 수 행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기법이 부처님이 깨달음을 정리한 최초의 내용이기 때문에 사념처가 연 기법에 기초하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1장에서 보았듯이 사성제와 팔정도가 연기법에 대한 실천적인 해석이기에 팔정도 중 의 하나인 정념의 내용에 해당하는 사념처 또한 연기법에 기초할 수밖에 없 을 것이다.

앞서 왜 단지 몸을 관찰할 뿐인데 참 모습에 도달하는지 질문을 던졌었 다. 마찬가지로 감각과 마음을 관찰하는데 왜 참 모습에 도달할까? 이는 사 념처가 철저히 연기법에 기초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념처에서 관찰의 대 상으로 삼는 것은 연기법에 나오는 몸과 감각과 마음으로 연기법에 따르면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명에 의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식의 결과로서의 몸과 감각과 마음이다.

104) 이연숙, 精選 아함경, p.510.

105) 위의 책, p.78 참조,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마음(意)을 말함. 마음은 때에 따라 심 (心)․ 의(意)․ 식(識)으로 표현됨. 심은 본체로서의 마음, 의는 생각과 의지라는 현상으로서의 마음, 식 은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작용으로서의 마음을 뜻함.

106) 위의 책, pp.376-377 참조.

따라서 사념처 수행을 통해 우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몸과 감 각과 마음을 관찰함으로써 그것이 무명에 의해 생긴 것임을 인지하게 되고 무명에 의해 생긴 인식은 사라지며 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법념처를 보고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3.4.4. 법념처(法念處)

법념처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념처가 연기법에 기초하였음이 더욱 명확해 진다. 법념처의 내용 또한 마음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을 포함하는데 법념 처에서는 이 마음이 연기법에 기초한 육내처의 마음이며, 그 육내처를 조건 (緣)으로 해서 마음에 움직임이 생긴다는 연기법의 내용을 명확히 언급하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만유(법념처에서의 법 즉 만유란 몸․마음․감수 작용을 제외 한 그 나머지 모든 것을 말함-저자 주)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그 생각에 머 무는 것인가? 눈과 모양과 빛깔을 조건으로 하여[緣] 마음에 번뇌[結]가 생기 는데, 비구가 마음에 번뇌가 있으면 있다고 진실 그대로 알고, 마음에 번뇌가 없으면 없다고 진실 그대로 알며, 생기지 않았던 번뇌가 생기면 그것을 진실 그 대로 알고, 생겼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진실 그대로 안 다. 이와 같이 귀․코․혀․몸․마음과 소리․냄새․맛․닿거나 만져서 느낄 수 있는 것․만 유를 조건으로 하여 생기는 번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한다. 비구가 이와 같 이 만유의 내부와 거죽을 있는 그대로 관찰(觀-필자 부연)107)하고 생각을 세워 만유에 두어서 알고 보는 바가 있고 지혜가 밝아 참모습에 도달하는 것을 일러 비구가 만유 가운데 육내처(六內處)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 다.[...]또 비구는 마음에 탐욕이 있으면 있다고 진실 그대로 알고, 마음에 탐

107) 大正, 大正新修大藏經, 제1권, p.584.

욕이 없으면 없다고 진실 그대로 알며[...]비구가 만유 가운데 이른바 오개 (五蓋)108)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는 마음에 염각지(念覺支)가 있으면 있다고 진실 그대로 알고, 마음에 염각지가 없으면 없다고 진실 그대로 알며[...]이와 같이[...]비구가 만유 가운데 칠각지(七覺支)109)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비구․비구니가 이와 같이 만유를 있는 그대로 조금이라도 관찰하면 그것을 일 러 만유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그 생각에 머무는 것이라고 한다.110)

이연숙은 법(만유)을 몸․감수작용․마음을 제외한 그 나머지 모든 것이라고 표현하였는데 문맥상 법을 몸․감수작용․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원리와 그 밖에 모든 불교의 원리로 보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겠다. 심념처가 단지 마음의 움 직임을 관찰하는 것이라면 법념처는 그 움직임의 원리가 되는 법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번뇌가 있는데 그 번뇌는 육내처로부터 온 번뇌이고, 마음에 탐욕이 있는데 그것은 오개에 해당하는 것이며 가르침을 잊지 않는 마 음이 있는데 그것은 칠각지에 해당하는 것임을 관찰하여 알고 그 생각에 머무 는 것이다. 즉 법념처는 몸, 감각, 마음에 일어나는 움직임의 원리가 되는 모 든 법을 관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속을 벗어난 정념이 사성제의 내용을 깊이 관찰하고 새기고 기억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사념처가 연기법에 기초한 수행법이기에 사념처 수행법을 닦으면 무명에 의한 인식은 사라지고 세상의 참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이다.111) 현대

108) 이연숙, 精選 아함경, p.457 참조. 마음을 가려 착한 도리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다섯가지 번뇌.

탐욕․노여움․수면․들뜸․의심.

109) 위의 책, p.291 참조, 1.염각지 : 뛰어난 지혜로 가르침을 잊지 않는 것, 2.택법각지 : 진실된 가르 침만을 선택하고 그릇된 가르침을 버리는 것, 3.정진각지 : 진실된 가르침을 사유하면서 수행하는 것, 4.희각지 : 정진하는 수행자에게 기쁨이 생기는 것, 5.경안각지(식각지와 동일, 용어가 약간씩 다르게 사용됨-필자 부연) : 기쁨이 생긴 수행자의 몸과 마음이 경쾌한 것, 6.정각지 : 몸과 마음이 경쾌한 수 행자가 정신을 통일하여 삼매에 드는 것, 7.사각지 : 통일된 마음을 평등하게 잘 관찰하는 것.

110) 위의 책, pp.510-512, 중아함경, 제24권, 염처경.

111) 김열권, 보면 사라진다, 정신세계사, 2001, pp.86-87 참조.

의 위빠사나 수행법에서 이러한 사념처의 원리를 더욱 자세히 설명하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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