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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대북·통일정책의 기본 방향과 추진전략

분단체제의 형성과 변화 과정에서 외세의 영향력이 작동하였으며, 현재에도 미국의 대북정책이 남북관계 변화에 직접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면, 한국의 대북·통일정 책은 기본적으로 동북아 정세에 대한 중장기적인 전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현 시 점에서 동북아 정세 변화와 그에 조응한 한반도 질서의 재편과 관련해서는 세 가지 전망이 유력하다.

다소 낙관적이지만 배제해서는 안 될 전망은 동북아 지역협력이 현재의 부정적 여 건에도 불구하고 순조롭게 추진되면서, 남북한이 협력을 통해 평화공동체 형성에 도 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에서 주요한 요인은 개별 국가들에서 평화세력이 대외정 책 결정의 주체가 되는 일이다. 시민사회 차원의 평화운동의 발전, 지역의 평화와 협 력을 목표로 개별 국가 내부에서의 그리고 국제적 차원에서의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사이의 연대, 전통적인 안보담론을 극복한 평화담론의 전파, 국민국가 또는 민족국가 단위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체성의 확립, 지역협력에 바탕을 둔 경제발전 등이 이러한 전망을 현실로 만들어줄 것이다. 동북아 지역에서는 사회국가적 성격을 지닌 사회경 제공동체가 형성되고, 한반도에서는 명실상부한 통일국가가 형성되거나 실질적인 평 화통일의 단계가 도래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전망은 강대국들 사이의 현실주의적 국가전략이 충돌하 면서, 현상적으로는 경쟁적 협력이 경제 분야에서 나타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비경쟁 이 심화되면서 미국의 패권이 불안한 형태로 유지되는 상황이다. 한반도에서는 북미 관계의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변형된 분단체제가 당분간 지속된다. 국가 중심의 외교 안보정책과 강대국들 사이의 세력정치가 작동하고,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심화된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미국-일본-호주의 군사동맹 강화는 중국-러시아-북한의 군사협

력 강화를 불러올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기존의 외교안보전략 기조를 바꾸

지 않는다면, 군사안보전략의 차원에서 미국의 패권에 편승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한국은 경제적으로 대중국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대외관계에

서 불안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강대국들 사이의 국가전략 충돌은 동북아 세력균형을 흔들 수도 있다. 현재 유지되 고 있는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미국의 국력 쇠퇴와 중국의 국력 상승으로 사라지고, 동북아에서는 ‘세력불균형에 기초한 패권질서’가 ‘지역패권을 둘러싼 경쟁 상태’로 변 화할 것이다. 이처럼 중국과 미국 사이에 지역패권 경쟁이 나타날 경우, 한국은 해양 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거나, 어느 한편에 기울거나, 균형추의 역할을 해야 한다. 세 가지 선택 중 어느 것도 한국에게는 쉬운 결정이 아니며, 한국이 주도 하는 한반도 평화공동체 형성은 당분간 불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남한과 북한의 전략 적 선택이 맞물리면서,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 다.

세 가지 전망을 모두 고려할 때, 한국의 대북·통일정책은 외교안보전략의 차원에서 중장기적으로는 ‘탈동맹의 지역협력’을 추구하면서, 단기적으로는 ‘교차승인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단기적으로 북미관계 정상화와 북일 수교가 이루어지고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수립된다면, 한반도는 동북아 지역의 불안정이나 패권경쟁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적게 받을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에 기 반을 둔 남북관계 발전은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장기적 으로 남북관계가 굳건한 협력체제로까지 발전한다면, 한국은 한미군사동맹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면서 동북아 지역협력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남북한 협력체제의 구축에서 핵심 과제는 평화체제와 남북경제공동체의 형성이다. 평화체제 형성을 위해 남한이 추진해야 할 기본적인 대 북·통일정책은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한 군사전략의 변경, 한미군사동맹의 균형적 발 전을 통한 외교안보전략의 자율성 증대, ‘합리적 충분성’ 내지는 ‘거부적 억지력’ 개념 에 기반을 둔 통제된 군비 증강, 대북 적대적 법·제도의 개선·폐지 등이다. 군사력에 서 이미 대북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남한이 군사안보전략을 방어적 성격으로 수정하 고 북한에 대해 정치적 차원의 화해를 추진한다면, 북한 지도부의 입장에서 체제 보 장에 대한 확신에 기초하여 평화체제 수립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남북경제공동체의 형성과 관련하여 대북·통일정책은 기본적으로 ‘병행전략’을 추진

해야 할 것이다. 군사·안보 문제와 경협 문제를 직접 연계하지 않는 병행전략은 북핵

위기가 북-미간 군사·안보 차원의 갈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며, 남한의

대북포용정책에 기반을 둔 남북관계 진전이 한반도 위기의 무력분쟁화를 막고 있기

는 하지만 북-미 대결로 해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의 병행전략

이 북핵위기 해결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은 연계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리가 될지는 몰라도,

북한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미국의 대북적

대정책 포기가 핵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북미관계 개선에 맞추어 남북관계

발전이 요구되고 있는 최근의 사태 전개는 병행전략의 합리성을 사후적으로 확인해

주었다.

병행전략과 함께 남한은 북한 개혁개방을 전제로 하지 않는 대북경협정책을 적극 적으로 펴 나가야 할 것이다. 개혁개방을 전제로 한 대북경협이나 대북경제지원은 북 한에 대한 체제 전환 압력으로 작용함으로써, 오히려 남북경협 자체를 지연시키거나 경제지원의 성과를 축소시킬 수 있다. 북한 지도부가 경제적 차원의 대남의존도 증대 나 남북경협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화를 남한이 의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평화적 체 제전환 또는 흡수통일 전략의 핵심 요소로 인식한다면, 남북경협의 확대는 머지 않아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오히려 개혁개방 압력이나 흡수통일 의도를 철저하게 배 제한 남북경협이 북한 지도부의 개혁개방이나 남북경협에 대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높다.

대북·통일정책의 기본 방향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할 사항은 앞에서도 지적하였던 남북관계에서 ‘시민사회의 자율성 증대’와 이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변화’

이다. 남한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발휘될수록 남북관계 발전에서 새로운 동 력과 창의력이 증대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율성에 바탕을 둔 남북관계 발전은 장 기적으로 북한 사회가 아래로부터 변화를 할 수 있는 여지도 넓혀주게 된다.

대북·통일정책의 추진 전략을 몇 가지 영역에서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중요한 영역 으로 주목을 받는 분야는 평화체제 수립 전략, 남북한 공통의 통일방안 실천 전략, 남북경제공동체 형성 전략이다.

30)

이 글에서는 평화체제 수립 전략과 남북한 공통의 통일방안 실천 전략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다룰 것이다.

평화체제 수립 전략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하나의 방안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국제조약의 성격을 갖는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다. 다른 하나 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선언적 차원의 종전협정에 합의하거나 종전선언을 하고, 북한과 미국이 관계정상화를 하는 것이다. 평화협정을 맺을 경우, 한반도 평화는 형 식적으로는 확고하게 보장될지 모르지만,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개 입 가능성이 남는다는 단점이 있다. 종전선언과 북미 관계정상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방법은 절차적으로는 간단하지만, 평화체제를 관리할 국제기구나 미 국과 중국의 책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 고 두 번째 방안은 한반도 평화체제에서 남북한의 주도적 역할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다. 평화체제의 관리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통해서 할 수 있으며, 미국과 중 국의 책임성은 지역안보협력의 추구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 은 평화협정 체결이나 종전선언 이후에 평화체제를 굳건하게 만들기 위한 실질적 조 치를 남북한과 주변국들이 해 나가는 일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군비 통제, 나아가 군축과 협력안보체제의 구축이라고 하겠다.

30) 이 세 가지 분야는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주요 의제이기도 하다. “남북 정상분들의 상봉은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과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에로 확대 발전시켜 한반도 의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는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 「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남북합의서」(2007. 8. 5).